HS-4농사에 관해
소만과 화생이 오염된 땅을 조사하던 중, 기이한 현상을 마주한다. 그곳에서 수수께끼의 천사부 학생이 소만에게 특별한 형태의 벼를 수집해달라고 부탁했다.
괜찮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북쪽에서 귀한 광석을 어렵게 구해 남쪽에서 팔 생각이었는데, 이곳에서 강도를 만나버렸군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이번 장사는 완전히 망쳤을 겁니다.
상인이라면 이런 좁은 길은 피해라.
시간에 쫓기다 보니……
아, 정말 감사합니다. 이건 제 작은 성의이니, 받아주시죠.
관심 없다. 이만 가지.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잠시만……
실력이 정말 굉장하시더군요…… 혹시 무인이신가요?
나랑 겨루어 보고 싶어서 그러나?
제가 어떻게 감히…… 보시다시피 저는 나약한 상인에 불과합니다. 당신과 어찌 힘을 겨루겠나요.
하지만 무인이라면…… 마침 최근에 귀한 무공 비급을 하나 얻었는데, 관심 있으실지 모르겠군요.
웃기지도 않는군. 내가 써먹을 만한 무공 비급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건가?
잠시만요. 선생님, 저희 카라반은 고객님께 딱 맞는 상품만을 취급합니다.
필요 없다.
한 번 보시죠, 잠깐이면 됩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적당히……
귀공의 무예가 이토록 놀랍게 발전했을 줄이야……
이제 난 귀공의 상대가 되지 않겠군.
너……
너를 이기면 천하제일이 되는 건가?
귀공은 이미 천하제일이야.
천하제일…… 내가 천하제일이라고?
가슴속에서 피가 끓어올랐고, 주먹 끝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다.
높은 곳에 올라 정점에 서니, 평생의 소망이 이루어지는구나……
아니, 잠깐!
이 사람은 누구지?
한순간 혼란스러움이 몰려왔다.
……어떻게 된 거지?
넌 도대체 뭐냐!
말씀 드렸잖습니까, 저는 그저 상인일 뿐입니다.
뭐든지 팔고, 뭐든지 삽니다.
어떻게 나를 찾아낸 거지?
……어째서 날 찾아온 거냐?
당신이 단 한 사람을 이기기 위해 무술에 40년을 바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 앞에 그 사람을 몇십 년을 앞당겨 따라잡을 기회가 생겼는데, 갖고 싶지 않은 겁니까?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당신이 제 상품에 관심이 없다 해도, 전 당신에게 사고 싶은 물건이 있습니다.
최근에 보검 한 자루를 손에 넣었다고 들었습니다. 얼마면 그 보검을 파시겠나요?
꺼져!
귀신이 곡할 노릇이로구나……
제가 제안한 가격이 맘에 들지 않나 보군요.
가격 문제라면 천천히 이야기해 보죠. 굳이 서두를 필요 있나요?
협상 따윈 없어!
자네는 이 검을 중요시하고, 약속도 중요시하는군. 역시 의형제다워, 내가 본 게 맞군.
40년 동안 무술로 정상을 찍겠다는 꿈 하나만을 쫓다니, 대단해.
그 목표를 위해 정말 모든 것을 바쳐도 괜찮은 거야?
허튼 짓은 멈춰라!
아버지?
……!
아, 세상에 성사되지 않는 거래는 없습니다. 가격이 맞지 않을 뿐이죠. 괜찮습니다. 가격을 더 올리면 되니까요.
예를 들자면 당신 딸의 목숨, 이건 어떤가요?
어이, 여긴 공사 중이야.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오랜만이군요. 니엔.
이렇게 거대하다니, 모두 당신의 설계인가요?
아첨은 됐으니까 본론만 말해.
오랜만에 만났는데 차갑게 대하다니, 마음이 아프군요.
제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고, 매년 세금을 낸 게 아니었더라면, 이런 거대한 것을 만들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시끄러워, 그 돈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건데? 차익을 위해 값을 후려쳐서 산 거잖아. 파는 물건도 네가 직접 만든 게 아니지.
솔직히 말하자면…… 옛날에 상인이 별로 대접받지 못한 것엔 다 이유가 있었던 법이야.
근데 왜 여기로 온 거지? 슈 언니를 먼저 찾아갈 줄 알았는데.
신경이 쓰여서 말이죠. 우리 가족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해준다는 물건이 있다니, 너무 신기해서요.
이것을 짓는 것도 꽤 난항이 많았다고 하던데, 도와줄 사람을 찾지 않는 건가요?
설령 도움이 필요해도 널 찾진 않아. 공사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잖아.
슈 누님이 도울 수 있는 거라면, 아마 저도 도울 수 있을 겁니다.
……또 뭘 꾸미고 있는 건데?
이 코어 에너지가 단순한 공사가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존을 유지해 줄 수 있는 개념적인 '베헤모스'가 되기 위해서는 개념적인 '생명'을 부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누님의 능력이 필요한 겁니다. 하지만 누님 혼자서 이 모든 것을 하는 것은 무리겠죠.
누님이 가진 능력은 저도 어느 정도는 배웠습니다. 제가 대신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아직 슈 언니를 많이 생각하는 거였군…… 난 둘 사이가 틀어졌다고 들었는데?
에이 설마요……
자, 동의하신 건가요?
아니, 됐어.
빨리 돌아가, 오늘은 널 못 본 걸로 할게.
하아, 누님도 동생도 모두 저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군요.
머리를 굴리는 게 안심할 수 없어. 말 몇 마디만 주고받는 걸로도 깜빡 속아넘어갈지도 몰라.
여태까지 나랑 만날 때마다 날 얼마나 속여먹었는진 알아?
당신의 물건을 파는 것을 도와드렸을 뿐, 분명 이득은 충분히 취했을 텐데요.
그만, 거기까지. 지금은 네 말을 들을 여유 없어.
그냥 빨리 돌아가. 가급적이면 내 공사랑 멀리 떨어져 줘, 저 늙은이들한테 또 잔소리 듣고 싶지 않아.
만약, 제가 정말 들어가서 보고 싶다면요?
……어이.
……
흥분하지 마세요. 마치 정말로 제가 여동생의 물건을 훔치려는 것 같잖습니까.
……
그냥 내 동생이 어떻게 지내는지 보러 왔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건강하게 뛰어다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한 번 만난 이후로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어……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저기.
크아아……
(이를 악문다)
너……!
……시?
왜 그래? 저번에 봤을 때는 생기가 넘치더니?
당신들 대리인이 능력을 함부로 사용하는 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시끄러워.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나도 사세대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
……역시 널 찾아갔구나.
당신들, 무슨 속셈이죠?
오성 십이루 공사가 시작될 즈음에 왜 갑자기 대황성으로 돌아온 거죠? 무슨 속셈입니까?
나한테 왜 물어? 지촉인은 너잖아.
물론 조사할 겁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생각이야?
이번 재앙에 분명 다른 원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오성 십이루의 공사가 눈앞에 있습니다. 범인이 근처에서 무언가를 꾸몄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혼자뿐인 지촉인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얼마나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
대황성에 있는 사세대 사람은 저 혼자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전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다른 사람의 뒤만 따라다닐 수 있겠네.
……
제복을 벗으니까 눈빛이 좀 살아난 것 같네.... 꽉 막힌 바보는 아닌 모양이야.
당신의 지적을 들을 필요까진……
난 계산적인 사람과 어울리기 싫으니까, 딱 한 번만 말할게.
그 자수꾼은 아주 영리해, 일을 할 때 절대 약점을 드러내지 않지. 너희 사세대가 녀석의 뒤를 오랫동안 캐왔으니, 실력에 대해선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런 녀석 상대로는…… 정면으로 나서는 게 더 나을 때도 있어.
정면으로 나선다고요?
받아.
그림?
너 혼자서는 녀석이 뭔가 나쁜 짓을 꾸미고 있다고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이걸 이용하면, 녀석을 잠깐이라도 붙잡아 둘 수 있을 거야.
지촉인과 대리인은 접촉이 금지되어 있고, 더군다나 대리인의 힘을 빌리는 건……
네 선택에 달렸어.
……정말 절 도와주시는 겁니까?
이야기는 여기까지, 잘해봐.
……감사합니다.
그래서 네가 여기 놀러 왔다가 강가에서 자는 날 발견했다는 거야?
이상한데, 꿈이라면 꿈속에서 따온 꽃이 왜 여기 있지? 다리도 아파.
다리가 아픈 꿈을 꾸면 키가 큰다던데, 축하해.
헤헤. 넌 몇 년 동안 키는 하나도 안 크고 목소리만 커졌네.
그리고 너, 학교 빼먹은 거지?
쉿, 쉿! 조용히 해!
하하! 역시 그랬구나!
정말 천사부 학생 맞아? 왜 항상 밖에 있는 거야?
내가 학교를 안 다니는 건, 학교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야. 신경 쓰지 마.
네가 학교 빼먹은 거 비밀로 해줄 테니까, 내가 강가에 온 것도 비밀로 해줘, 괜찮아?
내 부채는 어디 있어? 돌려줘.
네가 그걸 어떻게……
쳇, 쪼잔하기는.
피리도 줬잖아. 더 어떻게 해줘야 해?
대충 대나무로 만든 거잖아. 게다가 네가 먼저 불어보고 줬잖아.
대충?! 너……
이 음색, 이 재질을 좀 봐. 나도 아까워서 몇 번 불지 않은 거야. 네게 주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데, 싫으면 돌려줘!
……정말 그렇게 아끼는 거야?
알았어, 알았다고. 부채는 돌려줄게. 서로의 비밀은 꼭 지켜야 해.
그래, 이제야 좀……
자, 바로 이 벼야.
내 말이 맞지? 빨갛고 예뻐, 이 주변의 벼는 다 쓰러졌는데 이것만 살아남았어. 새 품종인 건가?
야! 갑자기 왜 뽑아버린 거야?
……숙제에 쓸 거야.
이런 벼 어디 더 없어? 다른 작물도 괜찮아. 이렇게 예쁘게 생긴 거면 돼.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말고 나한테 알려줘. 따갈 테니까.
그래도 돼? 그건 부정행위잖아!
아, 그리고 직접 따오지도 마, 따다가 잘못될지도 모르니까. 반드시 날 불러줘, 다른 사람에겐 비밀로 하고.
그래 알았어. 혹시 천사들에게 걸려도 날 끌어들이진 말아줘.
예전에 사료를 잘못 먹여서 실험 품종인 스톡비스트가 배탈 난 일을 생각해 보는 건 어때?
너……!
내겐 꿈이 있다.
대황성은 정말 넓기에,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걸어가려면 정말 하루 종일 걸어야 한다. 농지 전체를 다 둘러보려면 아마 다리가 먼저 부러져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생님은 항상 대황성이 아직 충분히 크지 않다고 하셨다. 여기서 재배된 작물로는 전 세계 사람을 배불리 먹일 수 없다고 하셨다.
난 아직 대황성 바깥의 세상으로 나가본 적 없다. 이곳은 염국의 북쪽 끝, 산은 높고 강은 긴 데다가, 길은 험난하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식량은 바깥세상과의 유일한 연결 고리가 되었다.
여름과 가을, 1년에 두 번의 수확이 있다. 줄기에 매달린 무거운 이삭은 바로 이 넓은 땅의 무게다. 풍년일 때의 농지는 그야말로 절경이 따로 없다.
저건 누구지……?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한 농부가 농지 가운데 서 있었다. 머리에는 작은 꽃 몇 송이를 꽂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자, 여기.
괭이?
이리 와서 밭을 갈아.
밭을 고르게 갈아서, 씨앗을 심고, 싹이 자라나게 해.
정성을 다해 밭을 갈아.
소년이 괭이를 받아 들자, 농부는 다시 허리를 숙이고 밭을 갈기 시작했다.
손에 쥔 괭이는 생각보다 무거웠지만, 소년은 그것을 힘껏 들어 올렸다.
그리고 힘차게 내리꽂았다.
푹!
갓 갈아놓은 땅에서 조그맣게 새싹이 싹트기 시작했고, 금세 자라나 가느다란 이삭을 틔우고 여린 꽃을 피웠다.
소년은 영문을 알 수 없는 피로감을 느끼며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다시 괭이를 들어 올렸다.
푹!
순간, 벼꽃이 피었다 졌고, 이삭이 순식간에 여물었다.
저기, 이삭이 여물었네요. 곧 수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소년은 괭이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다. 손을 내려다보니, 두꺼운 굳은살이 잡혀 있었고, 손과 팔 전체에는 깊은 주름이 나 있었다.
농부는 말없이 발밑의 흙을 열심히 갈고 있었다.
작은 싹이 땅속에서 머리를 내밀었고,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벼 사이로 낮게 자리 잡았다.
펑!
탄생이 있으면 죽음도 있는 법, 황금빛 볍씨가 이삭에서 떨어졌고, 곧 땅에 있는 많은 식물이 시들었다.
소년은 괭이를 내리치려는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저기……? 이 벼들은 도대체……?
콜록… …콜록콜록……
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계절마다 수확의 시간이 찾아오지.
자네에게 있어 한 철이란 무엇이지?
열매가 맺는 것? 배를 채우는 것? 아니면 씨앗을 다시 뿌려 다음을 준비하는 것?
소년은 괭이를 높이 들어, 한 번, 또 한 번 열심히 밭을 갈았다.
볍씨는 소년의 발밑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흙으로 돌아갔다. 씨앗이 소년의 손에 들어올 기회는 오지 않았다.
소년은 점점 노쇠해졌고, 머리카락도 거침없이 자라났다. 검고 힘 있던 머리칼은 희고 연약해졌고, 입고 있던 옷은 낡고 헤져 구부정한 등에 걸쳐졌다.
힘겹게 괭이를 내려친 후, 얼굴 옆에 희끗희끗한 백발 한 가닥이 내려왔다.
난 이곳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데에 일생을 바쳤지, 근데 인생이 참 짧더군.
수백, 수천, 수만…… 이런 숫자는 내겐 너무 큰 숫자야……
…… 내가……
…… 늙어버린 건가……?
발아래는 엉망진창이었다.
난 이것들이 자라나는 것을 볼 수 없어, 열매가 맺힐 때까지 지켜볼 시간이 없지.
남은 생에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이야.
농부는 강둑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농부가 손을 뻗어 나무를 어루만지더니, 이내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강둑 위로 나무가 점점 무성하게 자라나기 시작했고, 나무마다 목패가 걸린 붉은 비단 끈이 묶여 있었다. 목패에 새겨진 글씨는 흐릿해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바람이 불자, 숲의 나뭇잎이 부딪히며 으스스 소리를 냈다.
저 목패들은 다 뭔가요……?
…… 왜 땅에서 자라난 작물이 살아남지 못하는 거죠?
벼가 적막한 땅 위에 흩어져 있었다.
자네 눈에는 무엇이 보이나?
왜…… 결실이 보이지 않는 거죠……?
화생은 괭이를 다시 들어 올렸다. 땅을 내려쳤고, 말라갔고, 늙어갔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땅속으로 흘려보냈고, 땅은 그 생명을 받아 식물에 전했다. 하지만 식물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자라나고 시들기만 반복할 뿐, 씨앗을 남기지 않았다.
창백한 머리칼이 마른 풀잎처럼 그의 몸을 감쌌다.
……
이 모든 일에 진정 의미가 있을까?
소년은 허리가 굽은 채로, 늙음으로 인한 고통이 등줄기를 타고 퍼져가는 것을 느꼈다. 허약함은 입을 열 힘마저 앗아가 중얼거리며 알아듣기 어려운 소리만을 뱉어냈다.
뿌옇게 흐려진 눈동자가 아래로 향했다. 발밑에는 많은 벼가 쓰러져 있었다.
그날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화생이 고개를 돌렸다.
하얀 그림자가 화생의 뒤에 서있었다. 뒤로 흩날리는 머리칼은 고목과 같은 백색에, 강처럼 푸른색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소매를 휘두르자, 벼들이 갑자기 무성하게 자라나 주변을 울창하게 만들었다.
화생의 모든 시야를 가릴 때까지.
그가 한 걸음을 내딛자, 주위는 마치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
……!
……? …………!!
화생!
화생? 화생! 일어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