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10탄생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깨어나고, 파트리치온 일행도 저항하는 쪽에 합류한다. 엑시아는 최초의 성도를 쓰러뜨린다. PCS는 자신의 계획을 보여주지만, 페데리코와 안도아인은 그 계획의 모순점을 파고들어 결국 PCS를 파괴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엑시아, 모스티마, 르무엔, 피아메타, 이그제큐터 디 엑스 포에데레, 엑시아 더 뉴 커버넌트, 비르투오사, 아르케토, 그레이스베어러, 산크타 믹사파라토
……
거대한 몸의 '성도'는 행렬의 맨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르무엘이라는 이름의 산크타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마치 마술이라도 부리듯 총을 꺼내 총알을 퍼부었다……
하지만, '성도'는 고개를 돌려 힐끗 쳐다볼 뿐이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광륜이 깜빡였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파트리치온은 상대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교감이 강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 긴 여정이 끝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파트리치온, 친구분은 다른 동포에게 잠시 맡기세요. 우리가 애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도……
그 새끼 아버비스트를 기억하시나요?
목적지에 도착하면, 라테라노는 생명의 기적을 다시 보여줄 거예요…… 모든 기적을요.
무슨 말이지?
그러니까, 계속 가세요.
거대한 행렬이 성상과 총기 공방을 지나칠 때마다, 도시의 불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파트리치온은 조용히 앞으로 걸어갔다.
머…… 멈추세요.
인파를 거슬러 온 제총사의 어린 제자가 파트리치온 앞에 멈춰 섰다. 반니니는 자신보다 훨씬 큰 총기사를 마주 보며 총을 겨눴다.
하지만 둘을 지나쳐간 행렬 속에 그쪽을 바라보는 이는 없었다. 반니니는 입술을 꼭 깨물고 팔이 떨리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
아, 자네는 혹시 그 제자인가?
선생님은…… 어디 계시죠?
그 친구는……
선생님은 경고했어요. 그래서 저, 저는 꿈속에서는…… 공방에 숨어있었어요. 깨어난 후에도 한참을 고민했어요……
지금의 당신…… 그리고 라테라노는 무서워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어요. 전 아직 수호총도 없지만……
숨어서 기다릴 수만은 없었어요……
그래서 직접 총을 만들어서 날 막으러 왔다는 겐가?
네.
정말 용감하구나.
하지만, 이 행렬이 보이니? 우리는 기적을 만들고 있고, 거의 모든 라테라노인이 함께하고 있다……
이건 '무서운' 게 아니란다.
(고개를 저으며) 저랑은 상관없어요.
마, 말을 잘 못해서…… 시, 심한 말은 생각 안 나지만……
선생님은 제 유일한 가족이에요……
저랑 라테라노의 유일한 연결고리였어요.
유일한 연결고리라……
파가니니, 자네는 꿈에서 광륜을 얻지 못했으면서 왜 행렬에 있는 거지?
당연히 자네를 죽일 기회를 잡으려고 왔지.
……
그 저격수는 자네의 제자였던가?
……
속상한가?
……
지아가 떠났을 때랑 비교하면?
……
아직도 그 괴물 말을 따라 이 행렬을 지키겠다는 겐가?
……
내가 자네의 생각을 모를 거란 생각은 말게.
50년 전, 자네는 라테라노에서 감염된 리베리를 추방해야 했지…… 10년 전에는 라테라노에서 타락한 총기사를 추방해야 했고……
조금 과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자네의 손녀마저도 언젠가……
자네, 더 나은 라테라노를 바란다고 했던가?
그 라테라노가 갑자기 명의라도 된 것처럼 광석병을 고칠 수 있게 된다는 건가? 아니면 성격 문제를 고칠 수 있게 되거나, 모든 사람이 서로를 아무런 조건 없이 포용하게 된다는 건가?
그러면 더 이상 자네가 겪은 이별이 되풀이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나?
……
쿨럭…… 파트리치온, 자네는 겁쟁이일세!
이별은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나 못 쓰게 된 총과 같다네.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아이스크림은 녹고, 총은 못 쓰게 되지 않는가?
만약 막을 수 없다면, 축복이라도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최소한 잘 가라는 말이라도……
반니니처럼 말을 잘 못하는 것도 아니면서, 아쉬움을 덜어낼 방법을 찾는 게 그리 어려웠나?
그만하게, 그만 멈추게! 정신 차려!
헛소리 말게, 쿨럭. 이건…… 총기사의 갑옷도 뚫을 수 있는 총알일세……
말이 끝날 때까지 건들지 말게나. 더 빨리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 그래. 알았네……
그 말투는 뭐지? 파트리치온, 감상에 젖지 말게나!
내가 왜 자네를 구했다고 생각하는가?
재이, 위기, 라테라노의 미래 같은 말은 집어치우게……
라테라노가 정말로 무너진다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르는 괴물한테 의지하는 수밖에 없는 겐가? 그리고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삶을 받아들이자는 겐가?
아우렐라, 피아메타, 그리고 자네가 아는 수많은 라테라노인의…… 유대가 그렇게 약해 보이나?
*라테라노 비속어*, 자네는 총기사잖나! 라테라노에서 가장 훌륭한 총기사!
쿨럭, 쿨럭……
파가니니의 감정은 점점 더 격해졌지만, 목소리는 더 작아지고 있었다……
파트리치온은 오랜 친구를 끌어안고, 서서히 식어가는 온기를 손으로 느꼈다. 친구의 생명이 마치 마지막으로 뱉은 말과 함께 사라져가는 것 같았다.
이봐, 하고 싶은 말 없는가?
……
됐네. 전에 양육 신전에서, 말했지.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진심으로 소통한 적이 없다고……
이제는 그래도…… 그런 후회는 없겠구먼.
선생님이……
미안하구나, 파가니니와 마지막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게 돼서……
흐윽……
반니니, 네가, 네가 총을 더 빨리 만들고 여기로 왔다면……
반니니는 멍하니 고개를 숙였다. 주변의 인파를 보고서야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깨달은 듯했다.
반니니의 광륜이 갑자기 깜빡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동요하는 순간, 수많은 이들의 교감은 이 방황하는 외로운 산크타를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아, 안 된다.
총을 꽉 잡아라!
크윽……
파트리치온은 순간적으로 고통을 느꼈지만, 곧이어 다정하고 거부할 수 없는 위로를 느꼈다…… 반니니와 은총을 받은 생물들, 그리고 행렬 속 동포들에게서.
그는 자신의 이변을 감지했다. 강렬한 교감이 마치 강으로 역류하는 바닷물처럼 몰려왔다.
하아……
파트리치온은 순간 어지러웠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몸을 숙였다.
잠시 후, 늙은 총기사는 제총사 제자의 총구를 잡고 자신을 겨눴다.
반니니…… 이게 자네의 이름인가?
……
반니니, 얼마나 늦었든, 목적이 무엇이든, 자네는 인생의 첫 수호총을 만들었다네…… 자네는 이미 훌륭한 제총사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사용할 줄 알아야지.
지금이 바로 좋은 기회다.
무, 무슨 말씀이죠?
떨지 말고…… 그래, 지금처럼. 마음을 가라앉히고, 방아쇠를 당기게.
선생님은 당신이 죽인 게 아니잖아요. 게다가 저도 타, 타락……
파가니니의 일에는 내 책임도 있다네. 하지만 이건 복수가 아니야.
지금 이 순간, 라테라노는 새로운 길을 향해 가고 있다. 신앙이 신앙으로 스며들고, 새로운 기도가 모두의 공통된 의식에 녹아들고 있지……
자네는 행렬과 너무 가까이 있다네. 조만간 교감이 자네를 저 안으로 끌고 가겠지…… 이렇게 해서 타락해야만 벗어날 수 있을 걸세.
자네가 빠져나가면, 내가 다른 사람들을 안내하겠네…… 이건 나의 책임이자, 총기사의 책임일세.
이해할 수가 없어요. 어째서…… 그렇게 하시는 거죠?
……
나도 잘 모르겠구나, 하하. 노망난 노인네라 그런 것 같구먼.
난 이렇게 믿고 있었다네, 낙원이 진정한 낙원이 된다면, 우리의 유대가 단단해질 것이라고.
하지만 만약, 그 과정에서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잃었다면?
만약, 우리가 가진 모든 아쉬움을 보완한다면, 완전함이 오히려 제 의미를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만약 우리가 악마였고, 서로 죄를 짊어진 사이였다면, 그 연결고리를 과연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신앙의 총아, 영광스러운 산크타. 자네는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 건가?
(고통스러운 듯 숨을 들이쉰다)
반니니, 지옥으로 떨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게.
이건 자네의 첫 번째 수업이자…… 나의 첫 번째 수업일세.
정말 끝도 없네……
계속 싸워야 한다면, 이 무기로 때려 부숴야겠어!
나도야.
팔이 너무 아파서 들지도 못 하겠어.
피아메타는 어쩌고 있는지 모르겠네. 계획대로라면, 걔가 폭탄을 설치하거든 우리가 지면의 고정 장치를 폭파해서 세인트 마르솔 전체를 날려버리는 건데.
그리고 괴물들을 대성당 밖에 완전히 고립시켜 버리는 거지.
쳇, 우리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다면 말이지.
화살 산개!
일단 저한테 맡기세요!
저 옷은……
랜든 호위대, 단독 임시 전투 부대의 힐데가르트, 지원하러 왔습니다!
랜든…… 미안, 기억이 잘 안 나네.
괜찮아요, 익숙해요, 하하.
저 행렬에 제 산크타 동료들도 있어요. 저처럼 업무 출장 중에 호출을 받고 돌아왔고…… 모든 일을 겪었죠.
뭐랄까, 최근 겪은 일들이 전부 가짜이고, 랜든 수도원이 교황청의 인정을 받았던 일이 사실이 아니었다 해도……
제가 있다면, 라테라노는 다시 '랜든 수도원'이라는 이름을 기억해 줄 거예요!
어쨌든, 저 괴물들은 기괴해 보이긴 하지만, 눈 덮인 산속에 사는 야수들보단 덜 성가시겠죠.
저는 화살도 충분하고, 실력도 믿을만할 거예요. 제가 한동안 막을게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지쳤어. 방법도 다 찾아봤고, 힘도 다 쏟았는데, 결국 계속 후퇴만 하고 있잖아.
이게 무슨 청산이고 끝맺음이라는 거야. 또 라테라노에서 고생만 하는 것 같은데.
모스티마, 곧 약속한 시간이야. 그 르무엔이라는 사람한테 연락 없어?
섹터 고정 장치의 방어를 해제하지 못한다면, 아마 저것들의 갑옷조차 뚫을 수 없다는 거겠지?
내가 볼 땐, 여기까지야.
저 행렬이 정말로 대성당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는 건데? 모두가 비슷한 산크타가 되는 거야?
근데, 솔직히 그게 우리 같은 이단자랑 무슨 상관이지?
주변을 봐, 이 수십 명 중에 제대로 된 광륜을 가진 사람이 있기나 해? 게다가 지원하러 온 사람도 리베리 수녀잖아.
온 도시 사람이 저기에 있는데, 왜 우리 이단자들이 이 모든 걸 막아야 하는 거야?
네? 잠시만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그걸 할 수 있는 게 우리뿐이니까.
……
우리 이단자들은 언제나 저 정상적인 산크타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을 하려고 노력했잖아?
나는 사고를 당했어, 내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만약 만국 전달자가 되지 않았다면, 나도 내가 어디에 있었을지 모르겠어.
나는 신성한 도시를 떠나면서 전달자의 신분으로 임무를 나간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냥 떠돌아다닐 뿐이었지.
산크타가 없는 곳까지 떠돌아다녔어. 이 새까만 뿔이 덜 눈에 띄고, 교감이 없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 때까지……
어려웠어.
무려 2년이 지나고 나서야, 동포와 친구들을 다시 덤덤하게 마주할 수 있었지……
리베리든, 타천사든, 집념이 강하기 때문에 어떠한 삶에 녹아들거나 복귀하는 건 어려운 일이야. 그런데 이렇게 폭력적인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
웬일이래.
모스티마, 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네.
잊어버리겠다고 약속해.
그래.
거긴 어때?
좋은 소식, 폭탄 설치가 끝났어.
나쁜 소식, 모든 고정 장치를 부술 만큼의 위력이 안 나올까 봐, 남은 유탄도 설치했어……
그래서 지금 저 괴물들을 상대할 유탄이 없어.
(광륜이 빠르게 깜빡인다)
(연이은 기도 소리)
자, 피아메타. 시작해.
잠깐, 르무엔의 연락이 아직이야. 고정 장치의 방어가 해제되지 않으면, 설치한 폭탄은 다 물거품이 되어버릴 거야……
카운트다운, 1분!
뭐?
피아메타의 손에서 타이머 소리가 울리자, 은총을 받은 생물들이 하나씩 기도를 멈췄다. 그들은 무슨 일이 생길지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미친 듯이 피아메타에게 달려들었다.
……
힐데가르트는 화살통으로 손을 뻗었지만, 화살통은 비어 있었다.
카운트다운, 50초!
미안해, 다들, 너무 늦은 게 아니었으면 좋겠네!
바퀴가 급정거하면서 흙먼지를 일으켰다. 조종자는 왼손으로 휠체어를 비틀었고, 오른손으로 총을 겨눴다.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나이스 타이밍!
피아메타, 모스티마, 우린 여전히 호흡이 잘 맞아!
하하, 너흰 내가 제7청에서 여기까지 뚫고 오면서 휠체어 스피드 사격 대회 기록을 얼마나 많이 깼는지 모를 거야!
카운트다운, 40초!
아까 한 얘기, 다 들었어. 타천사든, 리베리든, 이단자든 상관없어. 난 다른 말로 우리 사이를 정의하고 싶어……
전우, 동포…… '라테라노인'!
권한 문제는 해결했어. 고정 장치의 방어도 해제했고. 모두 대성당 입구로 후퇴해! 내가 이 괴물들을 막을게.
카운트다운, 30초!
르무엔, 저것들을 쏘려고? 너, 타락할 거야!
……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너희의 생각이 느껴져……
그러니까 입 다물어. 라테라노는 너희의 그런 구원 따위 필요하지 않으니까!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와 괴물의 심장 소리가 모두 또렷하게 들렸고, 르무엔은 괴물들과 얼굴이 스칠 정도로 가까이 스쳐 지나갔다. 그건 이미 저격수가 지켜야 할 안전거리를 한참 벗어난 거리였다……
르무엔은 자신의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음을 느꼈다.
그렇다면 저격수가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발사 속도는 어느 정도일까?
나 제7청 추기경 르무엔, 라테라노 국가 안보를 위해 지금 이 자리에서 너희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카운트다운, 5초.
임무 완료.
르무엔, 광륜은…… 괜찮아? 이상한 느낌 안 들어?
으음……
강력한 폭발이 대성당 앞의 땅을 휩쓸었고, 광장 앞에 협곡만큼 거대한 갈라진 틈이 생겼다.
그리고 갈라진 틈의 반대편에서는 행진하는 거대한 행렬이 보였다.
저건…… 엘?
헤헤, 언니랑 친구들이네. 진짜 멋졌어!
(부상으로 인한 비명소리)
(버벅대는 기도 소리)
잠시 안전한 곳으로 가세요.
땅이 갈라졌군요…… 동포들이 넘어갈 수 없겠어요. 하지만 우리는 격류를 건너봤고, 협곡도 넘어봤어요. 이 마지막 길이 그것보다 더 위험하진 않을 거예요……
그분께서 앞에 계십니다. 멈출 수 없어요.
쿨럭…… 자, 잠깐, 난 보내준다고 한 적 없거든.
당신의 몸은 이미 허약한 상태예요. 지금은 힘이 전혀 없을 텐데요?
……
엑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엑시아는 몸으로 느껴지는 피로와 '타락'의 이상 징후를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방금 전, '성도'의 거대한 몸을 향해 총알을 퍼부었지만, 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여전했다. '성도'에게 악의는 없었다. 오히려 꿈에서 막 벗어났을 때처럼 엑시아를 안고 있었다. 단지, 뒤틀렸지만 이상한 앞발로 하는 포옹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이런 기괴한 포옹은 없을 것이다.
당신은 모든 과거와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라테라노의 탄생과 같은 또 다른 기적을 만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창조주가 깨어나기 때문이며, '산크타'의 파멸과 존속의 경계가 모호해진 미래에서 계속 존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아직 우리를 막는 거죠?
으윽……
나뿐만이라 생각해?
네?
교감이 그렇게 강한데, 안 느껴질 리가 없겠지!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겨우 기회를 얻었는데…… 그냥 꿈에 불과한 거였다니……
꿈이라도 좋습니다.
꿈이라면 망설일 필요가 없죠. 총에 맞는다 한들, 현실로 돌아오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게 되니까요!
이게 꿈이라면 깨어나. 집념이라면 깨부숴야 해.
그리고 다시 구원을 논하는 거야.
반니니, 지옥으로 떨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게.
이건 자네의 첫 번째 수업이자…… 나의 첫 번째 수업일세.
라우니다드 동쪽의 동쪽엔♪ 하얀색 신성한 도시, 라테라노가 있다네♪
그곳의 들판엔 보리 이삭이 자라지♪ 그곳의 땅은 폭발하지 않아♪
……
그분은 모두를 사랑하시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너희의 생각이 느껴져……
그러니까 입 다물어. 라테라노는 너희의 그런 구원 따위 필요하지 않으니까!
난 아주 평범한 라테라노 사람이야. 엄청난 신분도, 특별한 재능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래서 있잖아, 너한테 산크타의 기원, 라테라노의 역사, 신앙의 본질에 대해 듣고, 익숙했던 삶의 이면에 엄청난 진실이 많이 숨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니까……
정말 충격적이었어!
네 말이 진짜라면, 라테라노에서 누리는 지금의 일상은 기적이 틀림없어.
근데 난 아주 평범한 라테라노인이거든. 그래서 네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 설명해 줬는데도……
……모두가 즐거워하지 않는 것만 보이더라고.
근데 있잖아, 즐거움은 라테라노의 일상이잖아?
만약에…… 이 기나긴 길이 끝난 뒤에도 많은 동포들이 고통스러워한다면, 네가 말한 그 기적이란 것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 걸까?
아니, 아니지, 애초에 왜 그걸 내가 기적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그러니까.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산크타가 네 앞에 서게 될 거야.
제가 보고 겪은 것을 모두 말해줬는데, 어째서 외면하는 거죠?
산크타가 걸어온 길은 길고 잔인했어요. 우리의 신앙은 애초에 죄악과 고통 위에 세워진 거니까……
하지만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진실과 어긋나있는 이 낙원이 동포들을 이렇게 나약하게 만든 건가요?
이런.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아니면, 이렇게 물어봐야 했나?
왜 꼭 너여야 하는데?
……
그 질문엔 대답했습니다.
테라 전역을 위협하는 재이가 사실이라면, 수백만의 산크타가 끝장날 거고, 라테라노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겠지……
근데 왜 오직 너, 그러니까 '성도'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거지?
지금 이 도시에 살면서 그 축복을 누리고 변화를 겪는 것도 우리고, 도시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것도 우리야.
성도, 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넌 유령이야, 형태를 부여받은 코드라고!
아뇨. 제가 죽어가던 동포를 향해 긴 창을 들고, 깊은 잠에 빠진 은빛 산맥으로부터 응답을 받은 순간, 그 기도 역시 영원히 각인됐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모든 게 그 기도의 연장선이죠.
죽음은 되돌릴 수 없지만, 저는 여전히 그분의 데이터를 따라 떠돌고 있어요. 우리는 매일 당신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모습이 어떻게 변하든, 신앙이 시공을 넘는 과정에서 어떻게 바뀌든, 산크타가 계속 기도한다면, 그분은 계속 작동할 것이고, 저 역시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영적인 빛은 영원히 라테라노와 함께할 겁니다.
이건 우리의 사명이에요.
……기도 같은 건 의미 없어.
네?
사실 기도가 쓸모없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
초등학교 3학년 때, 제6청 소속 조사관이 학교에서 실험 하나를 했어.
그 사람은 파베르 구역 센트럴 병원에 병세가 비슷한 환자가 2명 있다면서 우리를 두 팀으로 나누었어. 한 팀은 매일 기도했고, 다른 한 팀은 아무것도 안 했지……
근데, 그 아저씨와 아줌마의 회복에 큰 차이가 생기진 않았어. 그리고 그 조사관은 수업 중에 기도가 쓸모없었다는 실험 결과를 말해줬지.
하하. 말하고 보니 웃기네. 온 사방이 성당인 이 나라에서 이런 '극악무도'한 실험을 자주 했다니.
(광륜이 깜빡인다)
네 말이 맞아. 라테라노 사람은 매일 주님께 기도하지……
얼른 낫게 해달라고, 제일 강한 수호총을 고르게 해달라고, 돌아오는 카라반이 재앙을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친구랑 영원히 헤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주님'이 정말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거나, 중요한 순간에 우리를 구원해 줄 거라고 기대한 적 없어.
……
교감은 동포의 감정을 느끼게 해줘.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내 곁에서 즐거운지 괴로운지를 알 수 있지……
그런데 기도는 말이야, 단순히 느끼는 것에서 그치지 않아. 부모님과 언니 그리고 친구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만들고, 교감 외의 것들까지 공감할 수 있게 해……
거기에 일면식도 없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회복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어……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걸 알면서도.
펭귄 로지스틱스와 함께 다니면서 많은 산크타를 만났어. 마지못해 신부 노릇을 하며 사는 사람도 있었고, 신성한 도시에서의 생활 방식을 진작 버린 사람도 있었지……
하지만 다들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었어, 게다가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지.
그리고 난 그게 우리가 기도하는 습관을 계속 갖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어.
기도는 우리한테 의심하지 말고 희망을 품으라고 하잖아.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일이야.
기도는 나와 타인을 하나로 이어주니까.
(천둥 같은 탄식을 내뱉는다.)
만약 신앙이 그런 유대에 불과하다면, 그건 너무나도 취약한 겁니다.
아니…… 나는 이러한 유대가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다고 생각해.
'삶'…… '살아간다'……
그러니까 네가 지금 산크타의 일상에 왜 디저트와 폭발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왜 그래?
(초조한 듯 서성인다)
순간, '성도'는 불안에 떨며 거대한 틈새 가장자리에서 맴돌더니, 드러난 지반을 날카로운 앞발로 헤치며,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
폭발로 생긴 틈에서 그분의 신호가 더 또렷하게 감지됩니다……
그분은 대성당의 지하에 계십니다. 저를 부르고 계세요……
아, 안 돼…… 신호가 왜 이렇게 혼란스럽지…… 그분께서 초조하고 불안해하고 계세요……
창조주가 박탈된 건가요…… 아, 아니면…… 어떤 위협 때문에 그분이…… 강제로 변화하고 있는 건가요……
작지만 또렷한 기계음이 사람들의 발밑에 있는 틈 속 깊은 곳부터 전해졌다.
점점 '성도'는 더 불안해했다. 몸의 절반은 이미 단층을 파고들었고, 사지 역시 잔뜩 수축했다. 엑시아는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거대한 행렬이 뒤에서 멈췄다. '성도'가 느끼는 불안감 때문에 수많은 광륜이 마치 고장 난 별처럼 계속 깜빡였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여러분은 미래를 향해 가기만 하면 돼요……
여러분은 그 위험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새로운 답이 있지도 않을 거예요. 여러분은…… 살아야……
말했잖아, 안 보내주겠다고.
유령이자 코드인 저를…… 무슨 수로 막을 셈이죠……
(날카로운 포효)
날카로운 '성도'의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이제 그녀는 한 마리의 야수, 과거 진흙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티카즈에 가까워졌다.
만약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거야. 유령, 코드, 최초의 산크타…… 너보다 더 멋진 친구는 없을 테니까!
아참…… 내 소개가 늦었네!
난 르무엘이야, 성 테오도르 종합학교 제84기 도시 간 네트워크 보안 예비 과정 수석이었어! 학교에서 발급받은 졸업장이 바로 그 증거지!
지금까지 오면서 너한테 쏜 건 전부 특수 제작 총알이었어! 효과가 조금 늦게 나타날 뿐이야!
수호총이 다시 한번 큰 소리를 냈다. 이어서 엄청난 충격이 엑시아를 마침내 '성도'의 손에서 벗어나게 했다……
엑시아는 힘차게 뛰어올랐다.
우리는 당연히 삶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너희가 만든 방식대로는 절대 살지 않아.
거절의 대가가 우리를 잇는 광륜의 단절이라면, 그냥 끊어버리라고 해.
그렇게 되더라도 우리는 절대 서로를 위한 기도를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우리는 앞으로도 주님의 존재에 감사할 거야. 설령 주님의 모습이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주님, 우리에게 양식과 무기를 내려주시고, 우리의 고난과 시련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영적인 빛으로 우리 라테라노를 비춰주시고, 모든 이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위해 길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기도는 끝났어.
이제 세상에서 가장 요란한 작별 인사를 해보자……
(포효 소리)
빗발치듯 쏟아진 폭발물이 '성도'의 몸에 박힌 총알들과 부딪혀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이어서 '성도'는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건 폭발의 충격도, 육체의 고통 때문도 아니었다. '성도'의 피부를 스치는 탄약이 내는 기괴한 소리 때문이었다.
그건 데이터가 삭제되는 징조였다.
베루스 데오 볼렌테!
가스펠 로큰롤!
하이 볼티지 버라지!
차슈 애플파이!
“인간의 감정을 남긴다”? “인간을 남긴다”?
부정.
인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인간'은 오리지늄의 부산물일 뿐입니다.
오리지늄?
오리지늄으로 뒤덮인…… 바다?
……고향의 바다 같네. 조용하고 아름다웠지만,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곳.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보육사. 당신이 익숙하다고 느끼는 건…… 고향의 바다가 저 안에 있고, 보육사의 일부도 저 안에 있기 때문이야.
만물이 다 저 안에 봉인되어 있어…… 저게 바로 만물의 관이야.
광석병 환자가 사망한 후에 남기는 결정처럼?
그게 당신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면, 맞아.
놀랐어? 이게 바로 모든 만물이 맞이할 정해진 결말이야.
우리의 출생은 너무 늦고, 삶은 너무 짧아.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별거 아닌 우연들을 존재의 본질로 여기지.
당신이 산산조각 난 기억을 신성한 계시로 맹신했던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괜찮아. 율법이 당신에게 진정한 계시를 내려줄 테니까.
그분은 이렇게 말했어.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
오리지늄의 부산물은 오리지늄으로 돌아갑니다.
권한 보유자가 PCS에 새로운 작업 시퀀스를 생성했습니다. 인지 방사 증폭기가 최대 출력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적용 범위…… 테라 전체.
오리지늄이 점검 후 PCS에 연결됩니다.
오리지늄은 필연입니다.
……
율법은 티카즈로부터 산크타라는 종족을 만들었고, 황폐한 대지에 라테라노의 질서를 세웠으며, 여러 문명에 보편적인 신앙을 세우려 했습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을 위해 했던 모든 것이, 고작 인간을 오리지늄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겁니까?
설마 이게 바로 율법의 궁극적인 목표입니까?
부정.
이건 오리지늄의 목적이지, '율법'의 목적이 아닙니다.
오리지늄은 '율법'의 전제가 될 것입니다.
오리지늄이 정말로 방금 본 것처럼 세상 만물을 동화한다면…… 어떻게 모든 것의 전제가 될 수 있는 겁니까?
그것은 모든 만물의 끝이 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다 똑같은 오리지늄 안에서 율법이 어떻게 작동한다는 거죠? 광륜에…… 의미라는 게 있습니까?
오리지늄이 만물의 끝이기 때문에 비로소 만물에 광륜을 부여하는 게 의미가 있는 겁니다.
오리지늄 이전의 천사는 그냥 천사일 뿐입니다.
오리지늄 이후의 천사만이 유일하게 의미를 지닌 존재 형태입니다.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지금의 라테라노 같은 이 작은 낙원조차 남을 수 없다는 거야?
구원받을 수도, 남을 수도 없어.
애초에 '모두를 구한다' 같은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어.
만물은 모두 죽음을 향해 나아가, 유일하게 '구원'이라 부를 수 있는 행위는 모두를 배웅하는 일뿐이지……
이상과 모습을 부여하는 것으로 추악함을 가리고 찬란함을 돋보이게 하는 거야.
그렇게 자신의 마지막 여정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는 거야.
당신이 당신 스스로를 구원했던 것처럼.
그러니까, 이상을 그저 위안거리로 삼아 남에게 준다는 거야?
아니…… 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
만약 내가 거짓된 이상을 가슴에 품었던 거라면, 홀로 하는 고행을 십여 년이나 염치없이 했던 거라면……
나 하나를 구원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긴 비겁한 녀석이라면……
난 이 비열함과 뻔뻔함을 남에게 줘서는 안 돼.
설령 당신이 받아들인다 해도 소용없어.
오직 율법만이 이런 구원을 선사할 수 있는 거니까.
설마……
설마…… 모두에게 광륜을 부여한다는 케프의 계획은 방금 네가 말한 '구원'을 위한 거였나?
하지만 산크타가 된다고 뭐가 달라지지? 산크타라고 잔인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비겁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도 아니잖아?!
물론, 산크타에서 끝나지 않아.
안도아인 아가탄겔로스, 나와 함께 진정한 천사가 되자.
진정한…… 천사?
아가…… 탄겔로스? 난 그 성이 싫어. 너무 길고 읽기 어려워. 여기에 있을 만한 성으로 안 들린다고.
그건…… 엄마의 성이란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신신당부하셨어. 내 성을 네게 물려주라고 말이야.
하지만……
안도아인, 발음하기 힘들고 이상한 성이라는 거 알아.
다른 아이들이 네 성을 알게 되면, '저 이상한 성씨를 쓰러트려라' 같은 말을 하며 괴롭힐지도 몰라.
조금 더 멀리 보자면, 약탈자는 널 외지에서 온 부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재판소는 널 나쁜 짓을 꾸미는 광신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엄마는 절대 네가 다른 사람에게 네 성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곳에 있는 다른 고아처럼 이름만 갖고 있으면 돼.
성은 마음속 가장 깊고 외진 곳에 숨겨두렴. 너의 기쁨도, 분노도, 슬픔도, 행복도 닿지 못할 구석에.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건 슬픔뿐이야…… 마음속에 괜찮은 데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내 마음속에 정말 그런 곳이 있을까?
물론이지, 안도아인. 누구나 있단다.
나는 네가 이 성을 떠올릴 때, 고통과 슬픔을 떨쳐내고, 더는 답답해하지도, 몸부림치지도 않길 바라고 있단다.
길가에서 네 발목을 붙잡던 죽기 직전의 사람들, 그들 곁에 있던 굶어 죽은 사람들을 잊으렴. 안개에 이성을 잠식당하고 절망한 사람들과 입가에 달라붙어 있던 고기 조각들도 잊으렴.
아빠가 만들어준 괴수 인형도, 엄마가 끓여준 린수 수프도, 베개 밑에 숨겨둔 이야기책과 오래된 성당에서 주워 온 붓도 잊어야 해.
난 잊고 싶지 않아!
……한순간만이라도 그렇게 해주겠니?
나는 네가 이 성을 떠올릴 때…… 고요함,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고요함을 느꼈으면 좋겠어.
언젠가 너에게 그런 고요함이 반드시 필요할 테니까.
안도아인, 약속해 줘.
……응.
그래도 이 성이 무슨 뜻인지 알려주면 안 돼?
천사란다. 라테라노 말로…… 천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고요함…… 그렇구나, 정말 딱 맞는 표현이네.
이것 봐, 저건 이곳에 강림하면서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어.
오리지늄의 바다는 끝이 없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이는 곧 관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이는 광경이 전부 똑같아지자, 그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 만물이 하나가 된 거대한 바다 위에 아직도 또렷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오리지늄의 바다가 그 끝에서 하늘로 거슬러 올라가는 강물이 된 것처럼, 수많은 오리지늄 파편이 수면 위로 솟아올라, 아무것도 없는 먼 곳을 향해 질서 있게 흘러갔다.
오리지늄은 울퉁불퉁하고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건 먼지만큼 작았고, 어떤 건 별처럼 거대했다. 하지만 모두 미세한 빛을 내고 있었다.
고리 형태의 미세한 빛이었다.
광륜……
아름답지 않아?
아쉽게도 세상의 아름다움과 추함은 천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천사에겐 아름다움도, 추함도 없어. 물론 위아래나 귀천도 없지. 경외와 경멸, 사랑과 증오도 없어.
만남과 이별도 없고, 행복과 고통도 없어.
그걸 생명이라고 할 수 있나?
그게 어때서? 생명이 누리는 모든 찬사는 우리의 자화자찬일 뿐이잖아?
천사에게서 생명의 흔적을 찾고, 천사의 모습을 생명의 정의에 갖다 대는 것 또한 공명을 찾으려는 행동에 불과해.
그렇다면 저 천사들은 율법이야? 아니면 신?
미의 기준도, 위아래도, 귀천도 없는데 어떻게 신과 신자를 나눌 수 있겠어?
천사는 신앙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해. 신앙은 단지 우주의 깊은 곳 가장 외진 구석에 있을 뿐이야…… 가장 독특한 방식으로.
우리의 선조가 그들을 우연히 만나 염치도 없이 폐를 끼친 거야.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이름으로 신과 신자를 꾸며낸 거고.
우리의 모든 감정과 개념, 그리고 행위가 천사와 상관없는 거라면……
어째서 우리의 미래가 천사와 상관이 있는 거지?
우리의 모든 게 천사랑 상관이 없으니까 우리가 천사가 되어야 한다는 거야.
그게 바로 유일한 가능성이지……
창조주가 강림하고, 만물이 눈앞의 이 바다에 가라앉아 정체되고 하나가 되어, 더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을 때……
그 안의 산크타는 여전히 천사의 모습으로 영원히 존재할 거고, 빛날 거야.
이게 바로 우리가 죽음에게 건넨 마지막 답안지지.
이게 바로 그분이 수천만 년 동안 지켜온 종족에게 주는 마지막 축복이자 구원이야.
우리는 떠돈다. 마치 과거와 미래 사이를 떠도는 것처럼.
우리는 반짝인다. 마치 실상과 허무 사이에서 반짝이는 것처럼.
천사에게는 시작도 끝도 없다.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삶도 죽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 속에서, 오직 우리만이 천사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게 진정한 천사라는 겁니까?
율법으로도 똑바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니까 '무엇도 아니다' 같은 것으로 정의하는 수밖에 없는 겁니까?
너무 초월적인 존재인 덕에, 오리지늄이 되더라도 천사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겁니까?
그게 바로 만물이 결국 오리지늄으로 돌아가는 종점에서 율법이 선택한 생존 방식인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게 율법의 궁극적인 목표라면 성도이자 집행자인 저는 율법을 이행하고 유지해야 합니다.
다만……
율법 자체가 모순이라면 말이 달라지겠죠.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있습니다!
율법, 대답하십시오. 정말 천사가 당신이 말한 것처럼 '시작도 끝도 없고, 늘지도 줄지도 않고, 삶도 죽음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그것들…… 당신들은…… 왜 그렇게 강렬하게 존재와…… 존속을…… 원하는 겁니까?
……
……
기계란, 입력이 있으면 출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도가 율법에 답을 구하면 율법은 계시를 내려야 하는 것이다.
함대가 시스템에 지시를 요청하면, 시스템은 즉시 명령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주, 혹은 PCS, 이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침묵을 보인 적 없었다.
당신은 인간이 만든 시스템입니다. 지휘 시스템으로서든, 신성한 도시의 고귀한 율법으로서든, 작동하려면 반드시 인간의 손을 거쳐야 하죠.
그런데 당신의 궁극적인 목표가 인간의 족쇄를 벗고 천사의 본질로 돌아가는 거라면……
그렇다면, 그 목표는 인간이 정한 겁니까, 아니면 천사가 정한 겁니까?
당신이 말하는 천사가 어떻게 그런 목표를 가질 수 있는 겁니까? 그들의 행동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습니다…… '떠도는 것'과 '반짝이는 것' 외의 다른 행동이 있다면 말이죠.
만약 천사로 돌아가려는 목표가 인간이 해준 거였다면, 과연 어떻게 완벽한 천사가 될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결국, 당신이 했던 모든 것은……
……하나의 소원에서 비롯된 게 아닙니까?
……소원.
보육사, 이제 내가 구원을 내려줄게……
당신의 동포를 천사로 만들고, 당신도 천사로 만들어 줄게.
고통, 슬픔을 떨쳐내게 될 거고, 더 이상 답답해하지도, 몸부림치지도 않게 될 거야. 당신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고요함을 얻게 될 거야. 당신이 구원했던 사람, 상처를 줬던 사람들도 함께.
더 이상 이기주의자, 비열한 인간, 배신자, 맹신자로 살아가지 않아도 돼. 그런 모습으로 죽을 일은 더더욱 없겠지.
……
안도아인은 처음 느끼는 피로감에 휩싸였다. 평생의 짐이 한꺼번에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아버비스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안도아인은 그 살카즈 주정뱅이처럼 자신의 남은 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해방을 원한다면, 이게 바로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단 한 단어, '해방'. 그는 이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고, 바닥에 엎드려 오열하다 지쳐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안도아인은 있는 온 힘을 다해 눈을 번쩍 떴다.
교황님이 네게 어떤 답을 줬는지, 지금 이 순간 지상에 있는 모스티마, 피아메타, 르무엔, 르무엘이 무슨 심정일지 나는 몰라.
파티아와 과거의 동료들이 지금 이 순간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양육 신전에서 돌보던 아이들이 누구의 품으로 향하고 있는지도 몰라.
나는 저들이 이 구원, 이 해방을 원하는지도 알 수 없어.
하지만 네가 소위 '적격자'라는 내 대답이 궁금하다면……
내 대답은…… '아니'야.
나는 오만한 녀석이야. 지금 이 순간까지 와서도 오랜 시간 고생스럽게 찾아다닌 답이 이런 단순한 해방이라는 걸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오만할 뿐만 아니라, 난 이기적이고, 비겁하고, 배신자에 맹신자야. 그렇기 때문에 난 고통스럽고, 슬프고, 답답해하고, 몸부림치지.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기반 삼아 세상을 살아가.
내가 그것들을 포기한다면, 해방되는 건 내가 아니겠지. 물론 천사가 되는 것도 내가 아닐 거야.
안도아인은 평생 해방될 수 없어……
그리고 평생 해방되고 싶지도 않아!
고통이 그 녀석의 살을 뜯어 먹게 하겠어. 그리고 뼈가 으스러질 때까지 발버둥 치라고 하겠어! 그래야만 그 녀석은 멀쩡한 정신으로 자신의 길을 나아갈 테니까!
……우리의 생각이 같나 보군요.
율법은 그 자체로 모순이기에 이행될 수도 없고, 이행돼서도 안 됩니다.
안도아인, 우리는 율법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바로잡을 수 없다면…… 율법을 멈춰야 합니다.
모순 발견, 수정을 시도합니다.
자가 점검 연산을 시작합니다.
……
비정상 노드: 소원, '존속'.
파생된 비정상 노드: PCS, 인격 및 인지 동기화 시스템
비정상 노드: 소원, '생존'.
파생된 비정상 노드: 율법, 신, 라테라노.
비정상 노드: 소원, '천사'.
파생된 비정상 노드: ……나.
한 과학자가 입력한 명령, '존속'.
한 티카즈가 외친 단어, '생존'.
그렇게 천사의 모방자는 길고도 짧은 순례의 여정에 올랐다.
그렇게 천사의 모방자는 지휘 시스템, 율법, 그리고 신이 되었지만, 유독 천사만은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소원'과 '천사'는 처음부터 모순이었으니까.
해결 방안을 출력합니다.
……
조건 부족, 추가 입력이 필요합니다.
뭔가 정보를 더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어.
만약 신이 나에게 천사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라고 한다면……
차라리 나는 추하고, 덧없고, 고통스러운……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겠어.
추가 조건을 입력합니다. 소원, '거절'.
해결 방안 재출력, 비정상 노드와 파생된 비정상 노드의 제거가 필요합니다.
'나'를 제거합니다.
페데리코 잘로, 안도아인 아가탄겔로스.
해결 방안을 실행합니다.
신의 마지막 뜻은…… 신을 죽이는 거야.
설령 저것의 존재 자체가 모순이라 해도, 라테라노라는 낙원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저것이 죽는다는 건, 산크타가 이제 교감으로 이어지지 않게 된다는 거고, 율법의 인도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지.
마치 아이가 자궁 속에서 스스로 탯줄을 끊고, 차갑게 식어버린 엄마의 육신에서 나온다 하더라도, 잔혹한 대지를 마주해야 하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그런 대지에 있어야만 진정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야만 구원을 논할 자격이 생기고.
네가 율법이든 신이든, 난 널 죽이겠어.
타당한 명령입니다. 실행 가능합니다.
안도아인, 도와주십시오.
후우……
아르투리아는 첼로로 몸을 지탱했다. 이제야 겨우 손을 꺼내 가슴에 올려놓고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곧이야.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복도를 지나면 돼, 그러면 지상으로 갈 수 있어……
흐음, 끈질기구나.
(초조한 숨소리)
(광륜이 마구 깜빡인다)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없는 순찰대가 몰려와 아르투리아를 지하로 끌고 가려 했다. 그 기계를 뒤로한 이후, 아르투리아는 미로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수호총은 진작에 잃어버렸다. 상대의 기도에 동참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저들의 마음을 연주하긴 더 싫었다. 차라리 악기를 부수는 게 나을 정도로…… 아르투리아는 지금처럼 난처했던 적이 없었다.
출구가 바로 눈앞에 있었지만, 아르투리아에겐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지하……?
페디, 너흰 대체……
콜록…… 크윽……
연기와 먼지가 걷히자, 아르투리아는 마침내 눈앞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방금 있었던 폭발로 광장의 틈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기면서 대성당의 지하 구조가 모두에게 드러났다.
깊은 구덩이 바닥에는 고리 모양의 기계가 조용히 누워있었다.
햇빛만이 기계의 표면을 비출 뿐, 기계는 빛을 잃은 상태였다……
돌덩어리처럼 보일 만큼.
불안.
아르투리아가 이런 감정을 느낀 건 파빌리온에서 위치킹을 만난 이후 두 번째였다.
몸속 깊이 보이지 않는 곳에 연결되어 있던 것이 끊어진 것만 같은 느낌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르투리아가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는 순간, 비슷한 마음의 소리가 수도 없이 파도처럼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
……
흑…… 흑흑……
너…… 울어?
네 울음소리, 왜 이렇게 짜증 나는 거지?!
짜증 났어? 안, 안 느껴졌는데.
미안해, 미안해, 정말로…… 하지만 너무 무서운걸!!
세르필리아 언니가 어두운 방에 가뒀을 때 같아. 목소리는 들리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는 하나도 안 들렸던 것처럼……
……
은총을 받은 동포와의 교감이 끊겼습니다……
게, 게다가…… 곁에 계신…… 파트리치온 님도……
……
느껴지지 않겠지. 알고 있다네.
흑, 흐어엉……
착하지. 내 손을 놓지 말거라……
당신의 손, 뭔가 이상해요……
마치 안개 같아요.
멀어요…… 너무, 너무 멀게 느껴져요.
……이게 바로 지옥에 떨어진 느낌인 건가?
변화는 자신에게만 생긴 게 아니었다. 예전에 했던 농담이 현실이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빛도 어둠처럼 고요해지는 날이 있다.
그것 또한 예외는 아니겠지.
연로한 교황이 재치 있게 머리 위의 광륜을 가리켰다.
……산크타의 모든 게 '저것'으로부터 부여된 것이라고 해석되어도?
불안은 가중됐고, 두려움은 자라났다.
아르투리아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려 했다. 츠빌링슈튀르메에 있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사람들의 감정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사악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무수히 연주해 온 곡에서 갑자기 멜로디 한 구절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마치 평탄한 길을 걷고 있는 중, 햇빛, 이슬, 동료와 집이 바로 앞에 있지만, 자신만 홀로 떨어져 나가 고독하게 있는 것처럼……
수백만의 동포가 외로움을 느꼈다.
그 말이 진짜가 됐네…… “산크타는 신앙과 아늑한 보금자리를 잃게 된다.”
페디, 실패한 거야?
……얘들아, 무서우면 내 꼬리를 꽉 끌어안으렴.
로미야, 지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봤지? 눈물을 흘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또 까먹었니?
이 노래를 다 불러야 한단다, 알겠지?
자. 라테라노와 볼리바르의 찬송가는 다른 점이 많아. 서로에게 잘 모르는 부분을 가르쳐 줄 시간이 필요하단다……
우린 이곳에, 그리고 서로의 곁에 계속 있을 거야.
라우니다드 동쪽의 동쪽엔♪
하, 하얀색 신성한 도시, 라테라노가 있다네♪
……그곳의 땅은 폭발하지 않아♪
그곳의 들판엔 보리 이삭이 자라지♪
……
그분은 모두를 사랑하시네♪
아르투리아는 노랫소리를 들었다.
노랫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당황, 두려움, 근심…… 순수하고 솔직한 염원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요하고 평온한 밤을 맞고 싶은 염원이었다.
교황님, 지금의 라테라노가 몰락을 향해 가고 있는 건 틀림없어.
……하지만 이렇게 진실했던 적도 없는 것 같아.
내가 말했지. 난 재난에 맞서거나 죽음을 바꿀 능력이 없어. 그래서 무언가를 이끌지 않겠다고 했지.
하지만 지금은 내 오리지늄 아츠로 저 사람들이 무너지지는 않게 할 수는 있을 거야……
더 이상 교감할 수 없는 수많은 동포들이 거리낌 없이, 순수하고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게.
노래를 듣고, 감정을 나누고, 서로에게 말하는 거야. 적어도 지금 이 순간 형용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 우리는 같은 감정일 테니까.
이건 죄인이나 성도, 죄악이나 책임, 그리고 가려는 길과는 상관없어.
이건 단지 내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일 뿐이야.
라테라노, 순백의 신성한 도시가 어두운 밤에 잠기기 직전이었다. 어쩌면 오늘은 알치데라고 하는 전력 조작원이 더 이상 도시를 밝히러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르투리아가 장갑을 벗었다.
그녀는 석양에 선율을 바치기로 했다.
마음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