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5비단 짓기
천 년 전, 사고로 땅속에 묻힌 데몬의 조각이 지금 대황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원흉이 되고 만다. 모든 사람이 손을 쓰지 못하는 와중, 슈는 홀로 논밭으로 걸어간다.
꿈을 꾸는 듯했다.
그녀는 먼 길을 걸었다. 눈 덮인 산을 넘고,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논밭을 하염없이 걸어갔다.
잘 여문 벼 이삭이 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누가 심었는지, 어떻게 이렇게 잘 자랄 수 있는지를 아는 이는 없었다.
좋은 곳이네.
“이곳에 머물러야겠어.”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있고,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벼 이삭 하나를 집었다.
흐릿한 그림자가 괭이를 휘두르며 씨앗을 정성스럽게 땅에 심었다.
돌아오셨네요?! 다행입니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어요!
먼 길을 걸어오셨는데, 무탈하셨는지요? 원하는 작물은 찾으셨나요?
선생님…… 괜찮으세요? 뭔가 조금……
이게…… 이게 대체 뭐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화생? 왜 아직 여기 있는 거야?
알아냈어요……
오염은…… 홍수와 함께 온 게 아니라, 오염의 근원이 지하에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당장 천사부 사람을 모아서 연구를 시작해야 해요. 아직 늦지 않았을 거예요!
이제 됐어.
이미 결정이 내려졌어. 이 땅을 포기하는 것으로……
시간은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2~3일이면 오염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분명히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대황성의 모든 농지는 쉽게 얻어진 게 아니잖아요. 아직 시도조차 안 해봤는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나요……
몇 군데만 문제인 것이 아니야. 온 대황성이 위험해.
네……?
내일까지 모든 사람이 코어로 이동하고, 함께 동쪽으로 이동할 거다. 나머지 농지는 여기 그대로 두고.
다른 천사들도 이미 사람들을 이동시킬 준비를 하고 있어.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제시간에 이동하는 거야…… 너도 도와줘.
이건……누구의 결정인가요?
도시를 이동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너도 알잖아?
어째서……
이 시험 농지에 이제 막 심은 작물들이 있는데……
올해는 이미 흉년이에요. 이 작물을 포기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주리게 될까요.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요.
우리는 최선을 다했어.
이제 사람을 빨리 대피시키고, 다시 올 수 있는 재난에 대응할 준비를 서둘러야지. 너도 천사부의 천사니까 이럴 때는 더 단호해야 해……
신화는 사실이었나요……?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북쪽 강가의 얼어붙은 땅, 그곳에 무엇인가 숨겨져 있는 거죠? 그것 때문에 땅이 오염된 거잖아요, 맞죠?
그냥 재앙일 뿐이야.
오랜 시간 동안, 우리가 지키지 못했던 게 얼마나 많았는데……
우리는 떠나지 않을 거예요.
이곳은 우리의 땅이니까요.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명확히 밝혀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떠나지 않을 겁니다.
신농께서 적을 집 밖으로 몰아내셨다면, 우리도 할 수 있어요.
……
환각일까?
넓은 농지가 순식간에 황폐해졌다.
아니, 이건 황폐해진 게 아니다. 온 세상이 완전히 다른 차원에 삼켜져 버린 것이다. 이곳은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그 농지가 아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요?!
이미 늦었나……
슈 씨, 방금 그건 도대체……
선생님이…… 병에 걸렸나요? 왜 이런 모습이?
……
잘 묻어 줘……
가느다란 몸이 차가운 땅 위에 쓰러져 있었다. 얇은 옷의 주머니 속에는 씨앗 한 봉지가 들어 있었다.
이게 가져온 씨앗인가요? 전설 속의 씨앗을 찾아낸 건가요?
최근 동안 수확이 안 좋았어요, 이 씨앗이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을지도 몰라요……
가지고 돌아가죠……
데몬의 오염이 왜 지하에서 시작된 거지?
천기각이 바깥을 지키고 있잖아? 오염물질이 어떻게 그 노친네를 피해 지하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거야?
현재 관측 결과를 토대로 보면, 이곳의 오염물질은 천기각이 세워지기 훨씬 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땅의 지하는 이미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데몬이 확산하지 않았던 건, 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인가?
하지만 왜 지금 이 시점에…… 설마……
재앙의 원인은 천기각에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지만, 당장 급한 건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대처할지입니다.
이번 데몬 재앙은 전례 없는 상황입니다. 천기각의 모든 예상을 벗어났어요.
천기각의 천사가 직접 나를 찾아오다니…… 지금 천기각의 대책은 뭐지?
북쪽 천기각은 전면 철수를, 그리고 데몬의 방어선을 남쪽으로 50km 후퇴할 예정입니다.
모든 섹터를 포기하고 코어만 철수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이 코어의 일부 방어 기능을 가동하면, 코어를 중심으로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할 겁니다.
이 결정, 아무래도 희생자의 수는 고려하지 않은 것 같은데?
데몬의 오염물질은 일반적인 재앙과는 다른 만큼, 결정을 내릴 때는 단호해야 합니다.
대황성이 이렇게 소극적인 판단을 하는 건 처음이야. 누가 명령했지?
……혹시 너희의 수장,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노천사의 뜻인 거야?
그저 명을 따르시면 됩니다. 묻지 말고 행동하십시오.
……
뭘 보고 있어?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아마 이곳이 아까웠던 거겠지……
만약 예전부터 데몬이 이미 이 땅을 오염시키고 있었던 거라면…… 모든 시간을 혼자 견뎌냈던 걸지도 몰라.
천 년…… 데몬에 의해 천 년 동안 마음이 침식당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이 언니가…… 정말이지……
다른 방법은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네가 그림으로 이곳 사람을 모두 데려갈 수 없고, 나도 공중에 모두를 이동시킬 수 있는 도시를 만들 수는 없어.
그럼, 그 사람은?
무슨 소리야……?
그 사람도 이런 날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 어디에 있을까?
……
울음소리.
먼 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울음소리, 노인의 흐느끼는 소리, 논밭의 작물이 슬피 우는 소리가.
마치 40년 전의 그날 같았다.
그해도 흉년이었다.
그쪽이 슈?
그쪽은…… 사세대 사람?
대황성에서 농사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잖아, 최근 재앙이 빈번하게 일어나 흉년이 계속되고 있어. 대리인으로서 이 작물을 살릴 힘이 있으면서도 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거야?
……
내 능력은 다른 사람이 따라 할 수 없는 거야.
이번에 내가 도와주게 된다면, 이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신의 기적'이 일어날지만을 생각하게 될 거야.
언제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어…… 난 언젠가 사라질 테니까.
그때가 되면 내 힘은 사람들을 다치게 되는 '악한 원인'이 되고 말겠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아…… 과거의 일을 기록해 두고, 후대 사람에게 가르쳐줄 뿐이지.
재앙이 지나고 나면 풍년이 올 거야, 사람들 스스로 모든 걸 이겨내야 해.
그렇다면 네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염국과 염국 백성들에게 좋은 일을 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
……
얼마나 여기 머물 거야?
……내년 이맘때까지.
올해의 수확철이 되면 보게 될 거야.
그나저나, 농사일을 해본 적 있어?
지금은 한창 모내기를 할 때라서 다들 바빠. 조금 도와주지 않을래?
아직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해의 작물은 정말 잘 자랐다는 것을.
타작한 벼가 쌓여 작은 산이 되었고, 농부들은 앞으로 몇 년간 재앙이 온다 해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웃는 거야?
……정말 기뻐.
사세대에 보고할 때 나에 대한 이야기도 넣을 거야?
넌 계속 여기 있는 거야? 이곳에서 우리를 돕는 건가……
네가 있으면 다들 안심할 수 있을 거야.
……
나도 친구가 있었어, 너랑 많이 닮았지.
……
지금 우린 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
한 번만 부탁할게…… 이번 한 번만 도와줘.
이곳 사람들을 구해주면 안 될까?
약속했잖아, 여기 계속 남아있겠다고……
슈……
방은 텅 비어 있었다.
탁자 위에는 아직 따뜻한 국이 한 그릇 남아 있었다.
넌…… 오래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나?
농부는 머리를 들어 달을 가린 얇은 구름을 보았다. 잠시 후, 시원한 비가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건 누구지……?
멀리서 누군가가 논밭의 깊은 곳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 사람은 황폐해진 농지 위를 걸었다. 발길이 닿는 곳에는 황폐해진 농지에 약간의 녹빛이 생겼다.
“이봐, 어디 가는 거야?”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점점 멀리 걸어갔고, 여름 번개와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며칠 전의 폭우와는 다르게, 이번 비는 아주 얇고 부드러웠다.
비가 내리자 대지의 깊은 균열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천 년간 갇혀 있던 영혼이 자취를 감췄다.
모든 생명이 새로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선생님?
비?
역시……
마치 먹물이 물에 번지듯, 이 세상을 담은 그림 두루마리가 점점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거지?!
얼마 안 남았군요……
당신……
좌 공자님, 저는 당신을 적으로 삼을 생각이 없습니다. 방금 드린 말씀을 잘 기억해 주세요.
남은 시간은 많습니다. 언젠가 또 만나게 되겠죠.
……결국 이렇게 된 건가요. 제가 말한 대로군요.
누님…… 이 사람들은 당신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이제 조금 쉬도록 하세요.
일어나면 모든 게 나아져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