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T-5소나타 '가을'
헌병과 학생이 모두 환각에 빠져 서로를 공격하게 된다. 그런데 다정해 보이던 학자가 오히려 위치킹의 잔당이었고, 레싱은 밀실로 쳐들어가 에벤홀츠를 지킨다. 페데리코는 아르투리아를 찾았지만, 혼란을 일으킨 건 그녀가 아니었고, 그녀의 목표는 게사츠슈베이터라는 걸 알게 된다.
대치 상태.
원래는 기습일 터였다. 헬덴슈베르트 주의 캐스터 부대는 악사로 위장해 위치킹 탑에 들어갔고, 에덴헤르와 슈투름란트에서 온 부대는 술식을 이용해 탑 밖에 숨어 있었다.
위치킹의 힘을 얕잡아 본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전투는 상상 이상으로 가혹했다.
탑 밖의 부대는 아인발트 금위군에게 발견되었고, 첫 번째 캐스터 부대는 탑 밑동에서 죽었으며, 두 번째 캐스터 부대는 끝없는 계단에 삼켜졌다.
옥좌 앞까지 도달한 건 쌍둥이, 그리마흐트와 그녀의 자매 에비게그나데뿐이었다.
검은색과 빨간색은 우르티카 가문의 대표 색깔이었지만, 그때의 탑에서는 검은색 벽돌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
우르티카 밀실은 지하에 있고, 주명 탑과 매우 가깝습니다. 프레몬트 씨는 이미 출발했으니, 저희도 주명 탑으로 내려가 최대한 빨리 따라잡지 않으면……
아니.
왜 그러세요?
여기서 멈춰라.
위치킹의 금위군이 도착했다. 너희는 여기서 죽게 될 것이다.
금위군? 그게 무슨 말씀이죠?
헬덴슈베르트 녀석들은 너희가 이길 거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쌍둥이가 무사히 탑에 오를 수 있도록, 슈투름란트 부대가 금위군을 견제해주기만을 바랐을 뿐이지.
그 계획 속에서는 위치킹도 죽고, 쌍둥이도 죽는다. 너희들도 마찬가지고.
빨리 네 아버지와 에른스트에게 알려라. 호흐베르크 가문은 이 탑에서 죽어선 안 된다.
브란트 씨,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어요.
……너를 유일한 생존자로 만든 건 나다.
나는 네게서…… 자유를 빼앗은 거다……
저를 보세요, 저는 비비아나예요.
저를…… 아버지로 착각하신 건가요?
……
당장 루트비히스 대학을 떠나라.
그리마흐트 님의 밀사가 여황의 명령을 전달했으니, 여황의 목소리인 네겐 임무를 중단해도 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여황들 간의 목소리가 일치하지 않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에비게그나데 님은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의 소리가 들리세요?
어디서 들어본 것 같군.
여긴 이제 전장이나 다름없다. 나는 직책 때문에 너를 지켜줄 수 없다. 하지만 선율을 이용해 혼란 속에서 길을 내는 것쯤은 할 수 있지.
……아니요.
우리가 학교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이곳은 얼마나 평온하고 순수했는지 저는 잊을 수가 없어요. 그 젊은 학생들의 얼굴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죠.
학생들은 이 분쟁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브란트 씨나 프레몬트 씨처럼 강하진 않지만, 최선을 다해 더 약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이 앞에는 헤르쿤프트쇼른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에비게그나데 님은 여황 축제가 끝나면 네게 다시 선택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했겠지.
하지만 라이타니엔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보게 된다면, 넌 다른 선택의 기회를 잃게 될 거다.
그건 이미 예상했어요.
자유를 갈망하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 앞에서는 발길을 돌릴 수 없죠.
이 얼마나 모순인가요.
……넌 네 아버지와 참 많이 닮았군.
네, 그래서 저는 아버지를 이해해요.
줄곧…… 이해해 왔어요.
무슨 일이야? 밑에 왜 저렇게 사람이 많아?
학생들이 쳐들어왔어! 주명 탑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학사탑까지 온통 학생들이야!
못 들어오게 해! 계단을 막지 못하게 해. 그래야 우리도 쫓아갈 수……
누구야?
몰라, 너무 혼란스러워서 아무것도 안 보여!
……
위, 위치킹의 잔당이다!
경청하세요.
이 극도의 혼란과 혼란 속 유일한 선율을 들어보세요.
이건 헤르쿤프트쇼른의 숨결입니다.
이건 우리 왕이 이 땅에 남긴 마지막 목소리입니다.
지고의 탑이 전율의 그림자를 땅에 비춘다.
어둠에 빠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계단을 기어오른다.
칠흑 같은 의지는 옥좌를 떠나지 않고 다른 영혼의 물음을 조용히 기다린다.
장막 뒤에 숨은 자는 사랑의 추락을 아쉬워하고.
타인을 대신해 돌진한 자는 영웅의 정의를 고민하며.
전우의 피바다를 건넌 자는 희생의 대가를 비탄한다.
……
이들은 나선계단의 끝에 모여, 이 선율의 탄생을 지켜본다.
이 작품은 이름하여……
……《위치킹의 죽음》.
위치킹의 군대다. 놈들이 오고 있어!
재앙을 딛고 찾아온 캐스터!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오리지늄!
안 돼, 난 죽고 싶지 않아…… 아니, 죽어도 괜찮으니까, 차라리 불에 태워 재로 만들어 줘. 살아있는 고깃덩이가 되고 싶지 않아……!
크윽…… 윽!
왜 자신을 불태우려고 하나요, 바보 같이!
안 되겠다, 다들 미쳤어!
이 소리는…… 파, 파이프 오르간! 위치킹의 잔당이 연주하는 건가? 모두 아츠의 영향으로…… 환각에……
계단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지?
온통 피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저 피바다에 서 있는 건……
그리마흐트…… 에비게그나데!
아하하하, 너희구나! 사악한 쌍둥이!
소문이 다 사실이지? 그렇지? 살카즈의 아츠가 너희의 영혼을 만들었고, 배신자의 야망이 너희에게 피와 살을 채워 넣어 준 거잖아!
너희는 라이타니엔의 왕을 죽이고 옥좌마저 차지했어……
너희는 라이타니엔을 파괴하기 위해 태어난 거야!
아닙니다!
그리마흐트는 거칠긴 해도, 사악하진 않아요!
너는 또 뭐야? 여황의 목소리야? 쌍둥이의 의지를 실행하는 꼭두각시냐?
아니요, 그리마흐트는 제가 여황의 목소리가 되는 걸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제 목숨은 그리마흐트가 살려준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마흐트를 돕고 싶고, 저는……
마귀에게 상을 받은 사람도 마귀로 변하게 되지. 이 모든 걸 봐. 너희가 라이타니엔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보라고!
이 고탑과…… 이 학교……
너희들이 루트비히스 대학을 남겨둔 건, 라이타니엔 사람으로 가장해서 전통을 존중하는 척하기 위한 거잖아?
이젠 지긋지긋해. 수업 중에 나타나는 여황의 목소리도, 아첨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살롱도 이젠 진절머리가 난다고!
우리의 역사, 지식, 예술은 이미 오래전에 다 죽었어!
그러니까 차라리 같이 죽자.
너…… 너희를 죽여버리겠다……!
윽……!
뭐지, 이 오리지늄 아츠? 왜 막을 수 없지……
아니야, 이건 주먹? 내가……
미하엘은 망연자실하며 눈을 크게 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주명 탑으로 몰려왔고, 음악 속에서 이곳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다들 아츠 스태프는 버리고 주먹으로, 다리로, 이빨로 싸우고 있었다.
이게 정녕 그가 알고 있던 라이타니엔이던가?
그가 배웠던 화술, 전략, 심지어 오리지늄 아츠 자체도 효과를 잃어버렸다.
그는 방패 아래 웅크리고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막 고향을 떠나 츠빌링슈튀르메에 처음 온 아이로 되돌아간 것처럼.
한 번만 봐주세요, 제발요…… 에비게그나데,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저를…… 저를 해치지 마세요……
그리마흐트…… 그리마흐트……
일어나십시오.
누구……?
방패를 잡고 왼쪽으로 돌아서십시오.
……알겠습니다.
이 사람을 함께 부축해 주십시오.
……
헌병? 이 사람은 누구죠?
이름은 모르지만, 로리스 보르딘 씨의 부하입니다.
아까 오리지늄 아츠로 제 머리를 날려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구해주는 건가요?
윽……!
세 번째 조각상, 격파 완료.
저 사람은 임무를 집행했을 뿐이니, 해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마 오리지늄 아츠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속 깊은 곳의 가장 강렬한 감정에 지배되어 이성을 잃었고요.
이들을 상대하는 건 비효율적입니다. 저처럼 빠르게 기절시키는 것을 추천합니다.
……당신은 그렇게 사람들을 기절시키며 이 혼란 속을 빠져나왔나요?
최대한 사람들을 구석에 쌓아 놓았으니, 밟히거나 맞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저를 때리진 않아서 고맙네요.
감사는 필요 없습니다.
미하 볼프, 당신은 아직 어리지만, 일반적인 성인보다 더 강인한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일깨워주면 당신은 바로 환각에서 깨어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정확한 정보는 얻지 못했지만, 이 혼란이 정말 아르투리아의 첼로 때문에 생긴 거라면, 아르투리아가 연주를 멈추지 않는 이상, 사람들의 이상 행동은 계속될 겁니다.
여긴 당신에게 맡깁니다, 미하 볼프.
……미하엘이라고 불러요.
그럼 저는 계속 위로 올라가겠습니다, 미하엘 씨.
아주 익숙한 소리네.
바깥의 계단은 23년 전처럼 혼란스러운 걸까?
당황, 초조, 공포, 분노…… 모든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그 탑 때문에 생겨났어.
라이타니엔의 중앙에 우뚝 솟은 기원의 탑……
그것이 다시 소리를 낼 때, 과연 어떠한 선율을 가져다줄까?
헤르쿤프트쇼른, 우리의 유일한 왕이시여!
그대의 아름다움은 고탑을 지탱하고 있고, 그대의 영광은 대지를 뒤덮고 있습니다!
그대의 영혼은 영원히 빛이 나고, 그대의 아츠는 영원히 불멸할 것입니다!
그대는 라이타니엔의 지혜와 우아함의 상징이시고!
그대의 찬란함과 위대함은 라이타니엔을 이룩했습니다!
고개를 드십시오, 대지를 기어다니는 혈육들이여……
고개를 들어 왕의 명예와 위업을 우러러보십시오!
드디어…… 이날이 찾아왔습니다.
20여 년 동안, 저는 긴긴 계단을 지나 이 옥좌로 걸어오는 자신을 수도 없이 상상했습니다.
다행히 운명은 제게 귈데네스게사츠에 남긴 당신의 아츠를 얻게 해줬습니다.
오늘, 당신이 남긴 마지막 선율이 연주될 것입니다.
헤르쿤프트쇼른, 라이타니엔 지고의 왕이시여.
다시 한번 알현할 수 있게 해주소서.
당신의 용서를…… 빌게 해주소서.
……
프란츠.
어쩔 수 없이 당신을 때려서 정말 미안하군요. 머리는 아직도 아픈가요?
……
당신이 많은 질문을 할 줄 알았는데요.
……훗.
그렇죠, 바로 그 눈빛입니다. 고통스럽지만 절대 굴복하지 않고, 진흙탕에 무릎을 꿇더라도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멸시하려는 그 눈빛.
강하다고? 내 눈에 보이는 건 미치광이들의 연극뿐인데.
너희들의 그 헛소리는 내 머릿속의 잡음보다도 들을 가치가 없어.
저희가 정신이 이상해져서 당신을 위치킹으로 생각하고, 경건하게 참회하고 숭배한다고 생각하는군요.
안타깝지만, 저도 당신이 정말 위치킹이 되길 바라긴 했습니다.
만약…… 최초의 실험이 성공했더라면, 만약 처음부터 '속세의 음' 연주 방법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렇게 되면 당신,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그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
……너였나?
내가 너 따위를…… 지켜주려 했다니……
하…… 하하하하!
입가에서 피가 나는군요.
퉤.
내 피에 정말 사악한 힘이라도 있었으면 좋겠군. 네 그 위선적인 가면을 태워버리게.
하지만 제가 당신에게 했던 말은 모두 진심이에요.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은 걸음마를 떼지도 못했고 그저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죠.
어머니까지……
위치킹의 잔당 말인가요? 이 말이 하고 싶은 건가요?
당신은 자신의 탄생 자체가…… 사악한 의식이었던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군요?
……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심지어 당신은 그러길 바라고 있죠, 맞습니까? 당신은 자신의 생명 자체가 음모이길 바랄 겁니다. 그래야 마음 놓고 증오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프란츠,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당신의 어머니는 존경스러운 분이었고, 원래부터 우르티카 가문의 후손이자 위치킹이 남긴 핏줄이었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 눈에는 위치킹의 잔당으로 보일 수밖에 없죠.
당신의 어머니는 죽기 전에 당신을 동료에게, 위치킹의 옛 신하에게 맡겼어요. 그도 마찬가지로 당신을 구하기 위해 여황의 목소리 손에 죽었죠.
당신은 그들도 미워할 건가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준 사람들을?
……너희들은 내게 사랑을 빼앗아 놓고, 내게는 미워할 자격도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너희들은 내가 그저 빈껍데기이길 바라겠지. 그래야 그 노친네를 넣을 수 있을 테니까.
하하…… 그럼 어디 해보시던지.
위치킹의 속삭임, 로브, 왕관…… 그리고 또 뭐가 있지?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헤르쿤프트쇼른의 힘이 강림하면 그는 당신의 비천한 운명을 끝내고 당신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해 줄 겁니다.
내가 말했지, 그자를 놓아주라고.
역시, 여기까지 쫓아왔군요.
바깥에 있는 술식을 뚫느라 힘들었죠?
이건 내 책임이야. 난 포기하지 않아.
설마 제 방어 술식을 뚫어낼 줄이야.
나는 매일 오리지늄 아츠로 검을 다듬으니까. 이 검이 내 의지처럼 강인해지게끔 말이지.
그 검엔 특수한…… 라이타니엔의 전통적인 아츠를 상대하는 술식이 있군요.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나요? 그분도 라이타니엔을 적으로 돌리려고 했답니까?
할아버지는 한 번도 스스로 적을 선택한 적이 없어. 나도 그렇고. 적은 언제나 어둠으로부터 알아서 나오니까.
너처럼 말이지, 게르하르트.
설마 내 검이 옛 동료에게 향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우리는 서로에게 무기를 겨눌 필요가 없어요, 레싱.
마이어 가문은 대대로 우르티카 가문을 섬겼죠.
당신만 이쪽으로 넘어와 프란츠를 보좌해준다면, 옥좌 옆에도 분명 당신이 설 자리가 있을 겁니다.
……옥좌?
내 눈에는 그냥 낡은 의자만 보이는데.
내 할아버지, 부모님…… 우리는 저런 의자 옆에 너무 오랫동안 묶여 있었어.
내가 왜 스스로 손발을 묶고 같은 길을 걸어야 하지?
음, 그렇군요.
과거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사람은 모두 다른 운명을 시도해 보려고 하죠.
당신처럼, 그리고 저처럼.
'수석'의 연주는 시작됐습니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헤르쿤프트쇼른의 강림을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옥좌에 앉은 사람은 너희들이 말하는 헤르쿤프트쇼른이 아니야.
그의 이름은 에벤홀츠다.
그를 데리고 돌아가는 게 내가 할 일이고.
그러니까, 내 숨이 붙어있는 한 나는 그 낡아빠진 의자 앞까지 향하겠다.
너희들이 얼마나 많든……
다 덤벼라.
게사츠…… 슈베이터!
선율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그 흐름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럴지도.
검이…… 울리고 있네?
소용없어요, 게사츠슈베이터. 당신이 한 사람의 정신을 속박할 수 있어도 백 명, 천 명에게는 영향을 줄 수 없죠. 당신의 선율은 혼란 속에 파묻힐 겁니다.
23년 전, 게사츠슈베이터가 위치킹의 탑 아래에서 일어난 혼전을 막지 못한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내가 혼란 그 자체를 죽이겠다.
장검은 적의 가슴을 찌르지 않고 바닥에 꽂혔다.
검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와 게사츠슈베이터의 갑옷을 가득 채우고 하늘을 뚫고 올라갔다. 그리고 석양과 같은 색의 그물이 되어 주명 탑을 감쌌다.
아츠가 닿는 곳마다 모든 소리가 삼켜졌고, 장엄한 선율만이 허공에서 메아리쳤다.
금빛…… 장막?
이건 게사츠슈베이터가 10명 이상 모여야 쓸 수 있는 기술인데! 당신 혼자서, 어떻게?!
이건…… 으윽!
귈데네스게사츠의 조화를 깨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오늘, 루트비히스 대학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을 거다.
내 피와 살, 그리고 영혼으로 약속하지……
이 탑을 살아서 나갈 수 있는 위치킹의 잔당은 없다. 너희, 그리고 너희의 아츠는 반드시 여기서 파멸할 것이다.
선율이 또 변했군요.
게르하르트.
선생님, 한참 기다렸습니다.
우리와 같은 라이타니엔 캐스터를 죽이는 건 선생님께 일도 아니겠죠.
하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직접 나서려 하지 않는군요.
내가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리치는 그저 지식 전당을 지키는 수호자일 뿐이야.
우리는 지식을 다양한 종족에 전해 오리지늄 아츠를 크게 발전시키지만, 나라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이건 리치 왕정과 너희 선조가 맺은 계약이자, 리치가 생존하는 방식이기도 하지.
맞아요, 저도 압니다. 라이타니엔을 지배하는 오래된 고탑에 살카즈 무리가 살고 있다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라이타니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정말 부럽네요. 헤르쿤프트쇼른을 상대할 때조차도 당신은 그 쌍둥이를 만들어낸 술식만 제공했을 뿐이죠.
당신은 역사를 바꾸는 부담도 짊어질 필요 없고, 손에 가장 친한 친구의…… 피도 묻힐 필요가 없었죠.
정말 영문을 모르겠군. 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그때는 헤르쿤프트쇼른을 막아달라고 나를 설득했으면서, 지금은 그 저질 모방 쇼나 하는 광대들과 어울리기나 하고!
맞습니다, 전 변했어요. 선생님 덕분에 변했죠.
당신은 저에게 악장을 연구하게 했고 라이타니엔의 역사를 생각하라고 하셨죠. 저도 그렇게 했고요.
하지만 연구가 거듭될수록…… 점점 절망이 느껴지더군요.
헤르쿤프트쇼른의 업적은 너무 눈부셔요.
그는 시라쿠사의 문제를 해결해 뿔뿔이 흩어질 뻔한 라이타니엔을 구했고, 코르시카 1세를 이김으로써 라이타니엔이 가울의 속국이 되는 걸 막았죠.
몇 번이나 있었던 라이타니엔의 멸망 위기도 모두 그의 존재 덕분에 제거되었고요.
그런데 이런…… 위대한 왕을 우리가 죽여버렸습니다.
누가 헤르쿤프트쇼른이 위대한지 보라고 했나?
게다가 그놈이 위대한지 아닌지가, 수많은 살카즈와 라이타니엔 사람을 죽이고, 충언을 듣지도 않고 나라 자체를 혼돈에 빠뜨린 것과는 무슨 상관이냐?
귈데네스게사츠를 연구하라고 한 건, 네가 깨닫기를 바랐기 때문이야. 어차피 나라라는 게 다 그렇고, 네가 겪은 고통을 많은 사람도 겪었어. 하지만 다들 시간이 지나 잘만 살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는 이런 바보 같은 짓이나 저지르고 있다니. 죽은 전우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나?
……저는 이제 그들을 볼 수 없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다르죠. 당신은 죽음도 조종하는 살카즈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에요. 죽으면 그저 한 줌의 재가 되고, 죽은 사람은 영원히 제 후회를 느낄 수 없죠.
그때 그들을 설득하고 그들이 위치킹의 탑에서 전사하게 된 것은 다 저 때문이에요. 만약 그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위치킹도 죽지 않았고 그들도 죽을 일이 없었겠죠.
멍청한 것. 그래서 헤르쿤프트쇼른을 부활시키려는 거냐?
설마 그놈이 너를 칭찬하거나 위로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놈은 바보 같은 애한테 자장가나 불러주는 인자한 영감이 아니야!
그놈은 너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다. 그저 한 올의 먼지처럼 여기고 손으로 가볍게 털어낼 뿐이지.
하…… 하하…… 선생님, 아직도 이해를 못 하시네요……
저처럼 이기적이고 소심한 인간이……
이 모든 것을 한 이유는…… 스스로 용서받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그 손에 든 건…… 잃어버린 귈데네스게사츠인가?!
더 정확하게는 귈데네스게사츠에 남은 헤르쿤프트쇼른의 힘이죠.
헤르쿤프트쇼른의 술식을 억지로 발동하려고? 어리석은 짓 그만둬라, 게르하르트. 너는 할 수 없어!
저는 이미 너무 멀리 왔어요, 선생님.
또다시……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붉다 못해 시커메진, 선혈에 스며든 것 같은 불길이 솟아올랐다.
밀실의 벽은 격렬하게 진동했고, 오리지늄 결정이 벽돌 하나하나의 틈새에서 올라오며 바닥의 구조마저 뚫어버렸다.
으…… 아악……
에벤홀츠!
빨리 도망가, 게르하르트가 이 학교를 무너뜨리려고 해!
위…… 치…… 킹……
속세의 음이…… 내 머릿속에서 들썩이고 있어. 이제 곧…… 자유로워진다……
속세의 음 때문이 아니야.
아니…… 라고?
누가 실수한 건지, 아니면 게르하르트가 네 몸에서 위치킹을 소환하는 걸 포기한 건지 알 수 없지만……
헤르쿤프트쇼른의 힘은 네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야. 중요한 선율은 네 몸에 없어!
아르투리아.
예상보다 늦었네.
헌병들을 구하느라 늦었던 건가? 마음이 약해졌구나. 임무를 위해서라면 앞뒤 안 가리던 집행자는 어디 갔지?
네 번째 조각상.
당신은 연주하고 있지 않습니다.
집행자, 놀란 거야?
말했잖아. 서둘러 나를 찾을 필요는 없다고. 진정한 연주 대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나도 그냥 청중일 뿐이야.
밑에 있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환각은 당신의 연주 때문이 아닙니다.
나를 그렇게 오랫동안 상대했으면서, 아직도 내 음색이 가져오는 '진실'과 다른 마술사들이 일으키는 '환각'을 헷갈리다니. 너무 상처받는데.
게다가, 못 봤어? 이 탑에 갇힌 사람들은 애초에 서로를 미워했고 싸움이 끊이질 않았어.
혼란의 근원을 정신계 오리지늄 아츠로 결론짓는 것도 일종의 도피 아니야?
라이타니엔의 일은 라테라노 공증소의 계약 범위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당신, 그리고 당신과 관련된 사람입니다.
이 조각상을 조종해 당신을 지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 청중 중에 한 명이야.
넌 너무 늦게 왔어. 조금 더 빨리 왔더라면 둘이 함께 맨 앞줄에 앉아 다음 《위치킹의 죽음》을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다섯 번째.
아르투리아, 당신이 저지른 모든 죄를 저는 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아츠가 영향을 미치는 대상은 다양한 지역과 계층에 분포되어 있지만, 당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치적 분쟁에 직접 관여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엄마 장례식 기억나?
……
그날 내가 모두의 마음속에 숨은 감정을 풀어줬잖아. 사람들이 내 선율에 그렇게 쉽게 빠져들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지.
하지만 난 기쁘지 않았어. 반대로 실망을 느꼈지.
강렬한 감정은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뿐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해. 모든 역경과 방해…… 심지어 정해진 멸망까지 초월할 수 있을 정도로.
그래서 난 여기 그걸 찾으러 온 거야.
여섯 번째.
당신이 찾고 있는 연주 대상이 위치킹이라면 그건 불가능합니다. 위치킹은 이미 죽었고, 당신의 선율은 죽은 자에게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넌 이 공연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네.
옥좌의 그림자는 사라졌고, 쌍둥이 영웅은 고탑에서 나오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어…… 하지만 그 자리에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산의 붕괴를 목격했을 때의 여러 감정 속에 빠져 있지.
《위치킹의 죽음》…… 애초에 이 곡의 주인공이 위치킹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
어떻게 된 거야…… 우리가 왜 여기 있지? 으악, 손이 너무 아파! 피, 피가?
계단이 흔들리고 있어! 설마 탑이 무너지는 게 아니야? 이 검은 화염은 또 뭐고? 왜 땅에서 뭐가 자꾸 올라와…… 사, 사람 살려!
헤르쿤프트쇼른의 술식입니다. 다들 정신을 좀 차린 것 같은데…… 얼른 이 탑에서 나가야 해요!
크…… 윽……
당신도 정신이 들었나요?
촛불…… 초…… 촛……
촛불?
이쪽입니다.
하지만 이 흑염이…… 주명 탑 전체를 감싸버렸어요.
제가 길을 열어 줄게요.
당신의 촛불로요?
벽에 비친 불빛의 그림자를 잘 보세요.
그림자가…… 흑염을 찢고 있네요?
네, 이게 바로 제 오리지늄 아츠예요.
그리 아름답진 않죠?
아니요, 사실…… 너무 충격적이에요.
헤르쿤프트쇼른의 불멸의 흑염에 필적하는 오리지늄 아츠는 거의 본 적이 없거든요.
저는 그것을 이길 수 없어요.
실재하는 사물이라면 반드시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죠…… 저는 그걸 잠깐 이용해서 아주 작은 생존 가능성을 조금 키울 뿐입니다. 그것도 이미 한계지만.
……
왜 그래요?
그, 제가 아까 당신의 반대편에 섰던 걸 탓하지 않으실까 해서……
제가 당신을 원망할 게 뭐가 있나요?
당신은 여황의 목소리가 아니라고 했고, 공교롭게 저도 아직 정식으로 여황의 고탑에 들어간 것도 아니에요.
여기서만큼은 당신, 아니면 그냥 비비아나라고 불러도 충분합니다. 저희는 여황의 명령을 이행하는 게 아니라, 그 악기 소리에 몸부림치는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싶은 거니까요.
그러니까, 학생들이 움직일 수 있을 때 학생들을 데리고 나가세요. 저는 조금 더 버틸 수 있습니다.
탑 밖의 금빛이 보여요. 게사츠슈베이터의 '장막'이 이미 탑을 에워쌌습니다. 언제든지 이 탑을 무너뜨릴 수 있어요.
저는 브란트 씨가 최상의 선택을 할 거라 믿어요.
그럼 당신은?
촛불은 언젠가는 꺼져요. 저 스스로 의미 있는 순간을 고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호흐베르크 씨…… 비비아나 씨!
가세요, 미하엘 씨.
당신 스스로를, 그리고 이 젊은 사람들을 지켜주세요. 당신들에게는…… 저 같은 사람이 바랄 수 없는 미래가 있어요.
여기다.
탑을 포위해.
여황 탑의 캐스터?
맞아, 브란트.
내가 말했을 텐데……
이건 여황의 명령이야.
게사츠슈베이터 님, 저희가 돕겠습니다.
그래. 너희의 오리지늄 아츠로 나랑 합주해라.
내가 장막을 좁히겠다.
안 돼요, 브란트 씨!
비켜라, 그리마흐트의 밀사.
아직도 우릴 방해하려는 건가? 아까 한 짓만 봐도 너에겐 위치킹의 잔당과 결탁한 혐의가 있다.
주명 탑에는 아직 무고한 사람들이 있어요.
학생들이 다 나오는 걸 봤다. 프레몬트 공이 우리의 오리지늄 아츠로 죽지는 않을 거다.
산크타 씨, 그리고 비비아나 씨도……
비비아나가 아직 탑에 있다고?
흑염에 포위됐어요. 저와 다른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혼자 남았어요.
브란트!
이건 위협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합주가 끝나면 당신의 힘 때문에 탑 전체가 파멸하고, 그러면 비비아나는 죽게 돼!
……전장 깊숙이 들어간 건 그 아이의 선택이다.
베르너는 이미 라이타니엔을 위해 평생을 희생했어. 하나뿐인 딸도 그 뒤를 따르게 할 순 없어!
비비아나를 구하겠다고 우리 모두 베르너에게 약속했잖아. 설마 자신이 한 맹세를 잊은 거야?
……
라이너, 자신이 한 맹세를 잊은 건가?
게사츠슈베이터의 검과 아츠는 모두 귈데네스게사츠와 라이타니엔의 것이다.
헤르쿤프트쇼른이 그의 백성을 어떻게 대하든, 그분은 귈데네스게사츠가 인정한 라이타니엔의 군주다.
만약 네가 호흐베르크 가문과 함께 싸우기를 원한다면, 너는 게사츠슈베이터로서의 책임을 포기하는 거다.
한 걸음만 더 다가오면 넌 모든 게사츠슈베이터의 적이 될 것이다.
브란트…… 왜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았지?
우리는 함께 자랐고, 형제처럼 친했는데……
너도 위치킹을 원망했잖아. 그자가 슈투름란트 백성에게 행한 폭정과 우리의 고향을 전장과 실험장으로 만든 것도 원망하잖아!
사황 전쟁이 끝난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슈투름란트의 상공엔 오리지늄 파편으로 이루어진 재앙 구름이 가득해. 우리의 수많은 아이들은 이 저주받은 돌을 갖고 태어날 수밖에 없어……
왜 반항 못 하는 거야? 왜 그놈은 대가를 치르면 안 되는데?
귈데네스게사츠가 그자를 군주로 정했고, 우리를 하인으로 정해서?
아니야! 브란트, 우리는 이래선 안 돼.
만약, 네 힘이 어떤 거스를 수 없는 의지의 부속품이라면, 네 의지는, 게사츠슈베이터의 의지는 그저 거짓에 불과한 거 아니야?
바로 그 거짓말 때문에 넌 선택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어……
호흐베르크 가문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지.
브란트 라이너……
선택해라.
……비비아나.
그의 몸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게 흔들렸다.
금빛 장막에 작은 틈이 생겼다.
……공명.
드디어…… 잡았네.
일곱 번째.
모든 조각상이 파괴됐습니다. 아르투리아, 당신에게 더 이상 저항할 힘은 없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보렴, 사랑하는 페데리코.
들리니?
브란트 라이너, 그 사람이 드디어 내 선율을 향해 마음을 열었어.
완강한 의지가 마침내 속박을 뚫었고, 솟아오른 감정은 그를 가장 후회 없는 선택으로 이끌어 줄 거야.
이게 바로 내가 계속 기다린…… 이 곡의 진정한 클라이맥스야.
격앙되다 못해 날카로워진 선율이 아르투리아의 첼로 현으로부터 울려 퍼졌다.
마치 그 소리에 격려라도 받은 듯, 검은 오리지늄 불꽃이 땅속으로부터 치솟아 오르며 바닥을 찢어버렸다.
탑 아래를 지키던 위치킹의 악사들은 줄줄이 흑염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재가 되는 그 순간까지도 노래를 계속했다.
하늘을 떠받치는 고탑, 대체할 수 없는 영원한 기둥이시여……
솟아오르십시오!
무언가가 대지의 피와 살을 뚫고 나왔다.
그것은 고탑이었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검은색, 나선형 모양, 날카롭고 괴이한 모습.
마치 오래전에 사라진 위치킹의 탑이 다시 대지에 모습을 드러낸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