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T-4랩소디 '절망'
아르투리아를 찾기 위해 끝까지 탑에 오른 페데리코는 헌병과 충돌하게 된다. 학자가 에벤홀츠를 데리고 도망치자, 레싱은 포기하지 않고 뒤쫓는다. 게사츠슈베이터는 연로한 학자가 살카즈 리치인 걸 알아보았고, 우르티카의 밀실에 들어간 에벤홀츠는 위치킹의 잔당에게 매복 당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에벤홀츠, 레싱, 비비아나, 이그제큐터 디 엑스 포에데레, 베이스라인
위층이다!
우리가 찾고 있는 산크타가 위층에 숨어 있다고 방금 학생이 말했어!
파이프 오르간.
탑 전체를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의 형태로 설계했군요. 전에 그 첼로 곡에서 들었던 배경음의 특징에 부합합니다.
지명 수배범 아르투리아가 건물 위층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계속 위로 올라가려고?
조각상을 이용해 소리를 동시에 내는 오리지늄 아츠. 카를 슈미트 거리의 습격 현장에서 제가 들은 것과 똑같습니다.
당신은 '위치킹의 잔당'과 손을 잡은 게 확실하군요, 아르투리아.
만약에 내가…… 누가 위치킹의 잔당인지 따위엔 관심 없고, 라이타니엔의 이런 정치 분쟁에도 관심이 없다고 하면, 믿을 거야?
당신의 범죄 동기는 어느 한 개체를 향한 적이 없고, 권력과 이익을 다투기 위한 것일 가능성은 더더욱 없습니다.
아, 페데리코, 역시 너는 나를 가장 잘 알아. 누구나 잡념이 있지. 너는…… 따분하기 그지없지만, 나랑 가장 많이 닮았어.
내가 오랫동안 혼란 속을 걸었던 건, 더 강한 마음을 찾기 위해서야.
이번 여정도 마찬가지고. 난 라이타니엔 친구들의 초대를 받아 이곳에 잠깐 머무는 것뿐이지.
내가 장담하지 않아도 넌 잘 알고 있을 거야. 내일의 라이타니엔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라테라노와는 당분간 상관없다는걸.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 루포 꼬마 말대로 네 눈앞의 일은 이만 신경 좀 꺼줄래?
당신은 바로 위에 있습니다.
응, 네 말이 맞아. 원래라면 너에게 나를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는 상을 줄 수 있었는데.
이렇게 하자. 내 소원이 이루어져서 츠빌링슈튀르메를 떠나는 날, 도시를 나가는 출구에서 널 기다릴게.
만약 그때도 네가 여전히 나와 함께 라테라노로 돌아가고 싶다면, 고려해 볼게.
체포는 부탁이 아닙니다. 당신에겐 고려할 권리 따윈 없습니다.
내 사랑하는 동생아, 넌…… 역시 포기라는 걸 모르는구나.
목표 발견!
전에 보르딘 대장님의 사망 현장에 나타났던 산크타다! 다들 즉시 주명 탑을 포위해!
……
용의자가 계속 위로 올라가고 있다!
쫓아가!
한 층 또 한 층, 라이타니엔의 탑은 항상 이렇게 높다.
추격병은 점점 많아졌고, 새 신발과 낡은 신발은 계단을 밟으며 각기 다른 소리를 냈다.
탑의 벽을 이루는 파이프는 더 격렬하게 진동했고,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와 발소리가 섞여 특이한 곡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나선계단에 구불구불 이어진 대열이 바로 그 연주자였다.
맨 앞에 있는 페데리코는 안정적인 속도를 유지했고, 심박수조차 변하지 않았다.
그의 눈엔 뒤쫓아 오는 추격병은 보이질 않았고, 오직 눈앞의 목표뿐이었다. 십 년 동안 한결같이.
마지막 층.
눈앞의 계단을 수십 개만 오르면 목표의 위치에 다다를 수 있다.
우…… 움직이지 마!
산크타, 너 정말 날아오른 건 아니지? ……왜 이렇게 빨라!
학생들이 지름길을 알려줘서 다행이지…… 힘들어 죽을 뻔했네!
……
네가 얼마나 대단하든, 한 발짝만 더 앞으로 가면 가만두지 않겠다!
어때, 라이타니엔 헌병과 싸울 거야?
저들도 평범한 집행자야. 수많은 네 공증소 동료와 다를 바 없지. 너와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전투를 하기 전에 두려워하고 망설인다는 거야.
네가 목표를 쫓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릴 때, 눈빛이 잠깐이라도 곁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머문 적이 있어?
무슨 소리지? 누가 너한테 말하는 거야?
너랑 한패인가? 동료가 있었나? 너희들, 여기서 매복하고 있던 거냐?!
저 여자는 제 동료가 아닙니다.
하지만 나도 산크타야.
우리는 똑같은 광륜과 날개가 있어. 심지어 우리는 혈육이지.
어떻게 저들에게 네가 날 도우러 온 게 아니라, 잡으러 온 거라고 믿게 할 거야?
타인의 오해로는 절 동요시킬 수 없습니다.
동료도 곧 도착할 거다. 넌 도망 못 가!
……
항복해.
이 무의미한 추격전을 끝내고, 널 오해하는 사람한테 가서 네 입장과 네 동기를 설명하는 거야.
그리고, 또 한 번의 네 실패를 받아들이렴.
당신은 바로 앞에 있습니다. 이미 당신의 아츠 흔적을 포착했습니다.
무기를 내려놔! 저 말하는 조각상에서 떨어지고!
진정하십시오.
저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그렇겠지, 모든 적은 다 그렇게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니까! 하지만 난 내 눈과 내 손에 있는 아츠 유닛만 믿어!
산크타, 보르딘 대장님의 죽음은 네 목숨으로 보상받겠다……!
로리스 보르딘 씨는……
저 사람의 행동은 이미 비이성적인 감정에 지배당했어.
당신의 악기 소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거겠죠.
내가? 저들의…… 속마음이 그렇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내가 예전에도 말했잖아. 대다수 사람들의 정신은 우리 사회처럼 혼란으로 가득 차 있어.
넌 그 점을 무시하고 언제나 혼자 그 혼란을 딛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지름길을 찾으려고 하지.
불쌍한 페데리코, 아직도 모르겠어? 이렇게 오래도록 나를 쫓고 있으면서, 왜 여태껏 잡지 못했을까?
자신의 감각을 닫아버리고 혼란에 빠진 이들을 느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혼란 그 자체를 넘을 수 있겠니?
전 상관없습니다.
당신도 혼란 그 자체는 아닙니다.
당신은 범죄자고, 당신의 행동이 혼란을 불러올 뿐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저지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찾았습니다, 아르투리아.
페데리코는 총을 겨눴다.
총알이 페데리코 앞의 말하는 조각상을 뚫고 계속 날아가 벽을 부쉈다.
흑발의 산크타는 멀지 않은 테라스에 서 있었고, 손에 첼로의 활을 쥔 그녀는 석양을 등지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등 뒤에서 쫓아오던 오리지늄 아츠 하나하나의 빛이 마침내 집행자를 따라잡았다.
무슨 일이지? 헌병들이 주명 탑을 둘러싸고 있어!
못 들었어? 위치킹의 잔당이라잖아! 놈들이 우리 학교에 숨어서 사람을 해치는 아츠를 연구하고 있대! 이렇게 무서운 일을 우린 왜 여태 몰랐지?
마…… 말도 안 돼. 헌병들이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여황 폐하들이 예전부터 우리 학교를 못마땅해했잖아. 이참에 루트비히스 대학을 없애려고 핑계를 대는 건 아닐까……
너 어떻게 여황 폐하들을 의심할 수 있어?! 설마, 너 위치킹의 잔당에게 영향을 받은 거야? 아니지, 네가 놈들을 학교로 데려온 걸 수도 있겠다. 너도 놈들과 한패지?!
어떻게 나를 모욕할 수 있는 거지? 우리는 입학했을 때부터 같은 숙소에서 지냈잖아. 여름 방학 때, 너를 호숫가에 있는 우리 집 별장까지 데려갔는데……
하하, 그 예쁜 별장에 있는 물건 중에 네 할머니가 위치킹 시대에 긁어모은 하사품이 얼마나 많을까?
지하실에 있는 그 재앙 관측용 아츠 결정체도 감염자의 유골로 만든 거 아니야?
뭐라고? 날 욕하는 건 그렇다 쳐도, 우리 할머니는 건드리지 마! 할머니는 아인발트 주에서도 가장 유명한 재앙학자야. 라이타니엔을 위해 슈투름란트 북쪽 전장에서 희생했는데!
윽, 눈이…… 헌병대랑 여황의 목소리를 찾아가서 너와 네 가문을 고발할 거다!
빌어먹을…… 위치킹의 잔당 같으니라고……
그러는 넌? 쌍둥이 여황의 치맛자락을 잡고 여기까지 기어오른 천한 집안 주제에. 23년 전에 줄을 잘 섰기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너네 집은 아직도 귀족들의 배나 젓고 있었을 거야!
네가…… 네가 지식을 존중할 줄이나 알아? 연회에 어울리는 악기가 뭔지도 모르는 녀석이……
그래, 역시 나를 깔보는 게 맞았구나! 좋다, 한판 붙어보자!
……
왜 나만 막는 거야? 마이어, 너희 집도 전에는 귀족의 시종이었잖아. 이번 기회에 저 우쭐거리는 귀족들을 패주고 싶지 않아?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사적인 오리지늄 아츠 사용이 금지돼 있어.
천한 짐승 따위가 공부 좀 했다고 교양이 생기겠냐? 그것으로 송곳니나 가리기 바쁘겠지.
이런 평민 출신 폭도는 당장 잘라야 해. 저놈들은 루트비히스 대학의 우아한 기품을 더럽힐 뿐이야!
닥쳐.
우리는 수백 년 동안 노력해서 겨우 평민과 귀족이 같은 교실에 앉을 자격을 얻어냈어. 루트비히스 대학이든, 학교 밖의 사회든 다시 후퇴해서는 안 돼.
마이어, 비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도 내 적이야.
하하, 마이어, 너도 좋은 녀석은 아니었구나! 너를 키운 그 영감탱이가 이 거지 같은 곳에 가장 오래 있지 않았어?
내가 들은 바로는, 그놈이 수백 년 동안 살아오면서 죽은 사람의 뼈로 자신의 목숨을 연장했다던데! 설마 너도 그놈이 뼈로 만들어 낸 거 아니야?
나도 소문 들었어. 그 쌍둥이도 프레몬트가 주술로 만들어 낸 거라던데.
헛소리! 프레몬트는 위치킹이랑 가장 가까운 사이였잖아. 그자가 위치킹의 잔당 보스인 게 틀림없어!
……너희는, 좀 쉬어야겠군.
천으로 감긴 장검이 양쪽에서 날아온 오리지늄 아츠를 막았다.
레싱은 가볍게 두 사람을 제압했다.
하지만 고개를 든 레싱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더 많은 아츠의 빛을 보았다.
불꽃, 얼음 결정, 기이한 에너지볼, 날뛰는 화단, 거꾸로 된 분수. 수업 시간에 배운 오리지늄 아츠가 동시에 서로 뒤엉켜 있었다.
우르릉 쾅쾅, 여기저기 날뛰는 골렘이 표지판을 쓰러뜨렸다.
'루트비히스 대학교', 빛이 반짝이던 학교 마크가 먼지 속으로 떨어졌다.
후우…… 후우…… 역시 나이는 못 속이겠네요. 살짝 걸었을 뿐인데 계단을 몇백 층이나 오른 것 같아요.
지상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위치킹의 잔당과 학교 사람들이 싸우기 시작했나?
당신은 너무 허약해요. 이 전투는 다른 사람에게 맡깁시다.
만약 이 싸움이 나 때문에 일어난 거라면, 나는 숨어 있을 이유도 없어.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겠죠.
운명이 당신을 살아남게 한 건 자비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느낌, 제가 가장 잘 알죠.
비슷한 고통을 겪어본 적이 있는 거야?
마지막 전투에서 저는 중상을 입고 반년 동안 깨어나지 못했어요. 프레몬트 선생님이 힘을 다해 저를 치료해 주셨죠.
그리고 제가 드디어 그 새빨간 계단의 악몽에서 깨어난 날,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은…… 동창과 친구,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까지 모두 세상에 없다는 거였어요.
절망 속에 저는 주명 탑 꼭대기에 올라 뛰어내리려고 했죠.
선생님은 저를 발견했고, 저는 선생님께 제가 라이타니엔을 위해 한 모든 게 정말로 의미가 있는지 물었어요.
그래서, 의미를 찾았어?
선생님은 제게 귈데네스게사츠에 관한 책을 잔뜩 주시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을 때, 어쩌면 역사가 대답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악장을 연구하기 시작했죠. 라이타니엔이 무엇 때문에 생겨났고,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꼬박 20년 동안이나 연구했어요.
답은…… 뭐야?
귈데네스게사츠가 탄생한 이래, 라이타니엔의 문제는 사라진 적이 없어요. 부족 간의 문화 차이, 귀족과 평민의 갈등, 천 년 동안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죠.
역사가 증명하고 있어요. 라이타니엔을 바꾸는 게,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주는 게, 반복되는 무의미한 희생을 끝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오직 가장 굳건한 의지와 가장 강한 힘만이 그걸 해낼 수 있어요. 어느 하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다행히 이 힘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는 그걸 찾으려는 거고요.
당신이 말한 그 힘이 이 학교에 숨겨져 있는 건가?
맞아요.
그걸 얻으면 눈앞의 역경을 해결할 수 있고, 위치킹의 잔당으로 인한 위협도 사라지고…… 동시에 내 운명도 바뀔 수 있을까?
바로 그 믿음이 제게 프레몬트 선생님을 반대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어요.
자 프란츠, 그 힘이 바로 앞에 있어요.
안 돼.
또 너인가?
그 사람을 따라가지 마. 거긴 네가 갈 곳이 아니야.
나랑 돌아가.
……돌아가서 다시 나를 실험대에 묶어놓고, 위치킹 유산의 그릇이나 되라고? 꿈 깨.
구시대의 잔재는 세월 속에서 파멸하고, 라이타니엔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해.
그래야 되겠지. 그게 내가 해내고 싶은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전에……
그 전이란 건 없어. 여황의 보증조차도 내가 태워버렸는데, 위치킹의 잔당이 하는 약속을 내가 믿을 것 같아?
난 그저 위치킹의 유산을 얻고 싶을 뿐이야. 네가 말하는 위치킹을 소환하려는 놈들은 내 적이기도 하지.
……또 시작이네. 넌 인정하지 않으려는 취미라도 있는 거냐? 아니면, 그 부패한 왕좌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기어가려고 공적을 빼앗겠다는 건가?
이젠 지겨워. 다른 전리품을 고를 수는 없는 건가…… 제발 나한테서 떨어져!
윽…… 발밑의 계단이, 사라지고 있잖아?
이 학교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됐습니다. 역사의 힘에 저항하지 말고 포기하세요.
아니……!
레싱, 아무리 당신이라도, 이 변화하는 계단에 홀로 저항하는 건 무리입니다. 당신만 다칠 뿐이에요.
윽…… 아악!
넌 자신에게조차 자비가 없는 건가?
게르하르트가 너한테 뭐라고 했든, 절대 믿지 마.
스스로 위치킹한테 감사하다며 날 실험실에 가두려는 너보다…… 위치킹에게 저항했던, 내 목숨을 구해줬던 사람이 더 믿음직스러워.
'기원의 뿔'이 강림해도 높은 확률로 네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내가 할아버지랑 여러 번 확인했어.
그 과정이 매우 고통스럽겠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그런 것을 왜 네가 멋대로 날 대신해 결정하는 거지?
당연히 내가 결정할 수 없지. 누구나 자신만이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 있으니까.
더 이상 도망치지 마. '속세의 음'이든 우르티카의 핏줄이든, 이미 벌어진 일을 바꿀 수 없다면 그걸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받아들이라고?
내 부모님을 죽인 사람과 내게 '속세의 음'을 이어받도록 강요한 사람도 모두 똑같은 말을 했지.
나를 한 도시를 폭파해 버릴 도구로 만들 뻔했고, 내 형제를 죽인 사람도 똑같이 말했다고!
왜 너희들은 늘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길 좋아하지? 그렇게 하면 너희들이 일으킨 비명이 사라지기라도 하는 건가?!
윽……
빌어먹을, 이걸 맞고도 손을 놓으려 하지 않다니…… 계단의 고대 술식에 찢기고 싶어?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를 놈들 손에 넘길 수 없어.
이 일은 애초에 너만의 문제가 아니었어…… 나만의 문제는 더욱 아니고……
라이타니엔의 미래 앞에서는…… 그 어떤 희생도……
프란츠, 이쪽이요.
계속 앞으로 가야 합니다.
……
나를 감싼 이 에너지…… 네가 날 구한 건가?
널 구하려는 게 아니야. 단지, 너 같은 놈이 종일 희생을 입에 달고 사는 꼴이 보기 싫었을 뿐이야.
프란…… 츠……
……에벤홀츠.
그 함정에 들어가지 마……
들어오세요, 프란츠.
여기는……
여기가 바로 제가 말한 라이타니엔을 바꿀 열쇠가 되는 곳입니다.
천여 년 전, 각 부족의 선현들이 이곳에 모여 최강의 불사 캐스터가 지켜보는 가운데 맹약을 맺었죠.
그 맹약은 부족 간의 관계를 규정했고, 선제후 제도를 확립했으며, 나아가 라이타니엔 사람들의 도덕과 미학을 정했습니다.
귈데네스게사츠…… 인가.
그렇죠.
그 뒤로 수백 년 동안, 귈데네스게사츠는 라이타니엔의 안정을 확보했어요.
그러다가 백여 년 전에 시라쿠사인들이 먼저 악장을 배신하고, 라이타니엔에서 독립하려고 했죠.
그건…… 수년 동안 이어진 분쟁이었어요. 한 파트를 잃고 나서 악장은 불안정해졌죠. 그 뒤로 각 주가 잇달아 혼란에 빠졌고, 라이타니엔은 거의 붕괴 직전에 다다랐어요.
그렇게, 절체절명 속에서 한 사람이 일어났죠.
그는 귈데네스게사츠를 갱신할 필요성을 느꼈던 겁니다. 시라쿠사를 악장에서 삭제해야 나머지 아홉 개 주를 다시 하나로 연결할 수 있으니까요.
……위치킹.
맞아요.
당신이 지금 있는 곳은 루트비히스 대학교에서 가장 비밀스럽고 신비한 방입니다. 우르티카 가문의 천 년 동안 이어진 술식이 모여 있는 곳…… 동시에 헤르쿤프트쇼른이 귈데네스게사츠를 갱신한 곳이기도 하죠.
당신의 방식에 동의할 수 없어.
내가 당신을 믿는다 해도, 설령 '기원의 뿔'이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그것을 지금의 츠빌링슈튀르메에 강림시켜서는 절대 안 돼.
흥, 너희들은 머리가 투구보다 단단한 녀석들인 걸 아니까, 게사츠슈베이터한테 알리기 싫었던 거야.
당신이 말한 안전하고 통제 가능한 '기원의 뿔' 소환 계획은 이미 실패했어.
위치킹의 잔당은 이 학교 안에 숨어 있고, 놈들은 학교에 있는 위치킹의 유적을 이용해 전례 없는 재난을 일으킬 거야.
현재 놈들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하나뿐.
난 허락 못 한다.
내가 모든 교사와 학생들을 옮길 거다.
루트비히스 대학의 보물은 교수와 학생뿐만이 아니야!
난 이 학교에 몇백 년이나 있었어! 이곳에 귀중한 아츠 장치와 술식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
이해한다. 하지만 라이타니엔의 안위를 최우선……
네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한다고 하지 마라.
노인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그는 더 이상 날카로운 어조로 말을 빠르게 내뱉지 않았다. 그는 눈앞의 사람을 째려보았고, 벽에 비친 앙상한 그림자는 벽을 올라탄 덩굴처럼 갑자기 높아졌다.
고탑은 너희들이 건드려도 되는 게 아니야.
한 번만 더 내 탑을 부순다는 소리를 지껄이면, 당장 밖으로 내던져 버리겠다.
……이상합니다.
창밖의 석양이…… 사라졌네요?
사라진 건 태양뿐만이 아니다.
윽……
배짱 한번 좋구나.
하지만, 더 이상 내 그림자를 건드리려고 하지 마. 그림자에 녹아버리고 싶지 않다면.
프레몬트 씨의 그림자가……
셀 수 없이 많은 현으로…… 갈라졌네요……
드로스테, 오리지늄 아츠를 거둬.
그림자를 느끼려 하지 마. 저 안에는 프레몬트 공의 진짜 모습이 숨겨져 있어. 네 힘으로는 아직 저 영혼을 직시할 수 없다.
오호, 내가 누군지 아는 건가?
그렇다면 내가 던져 버린 사람은 다시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도 알겠군.
충분한 용기가 있다면 바깥을 한번 둘러봐라.
거긴 아무것도 없을 거다. 장담하는데, 너희들이 밖으로 날아갈 때 입도 뻥긋 못하게 해주지. 왜냐하면 너희들의 입과 성대, 손과 발은 모두 어둠 속에서 완전히 파멸해 버릴 테니까.
이런 오리지늄 아츠는…… 들어본 적도 없어요.
……'추방'.
옛날에 어떤 전설을 들은 적이 있었다. 오늘에야 그게 진짜라는 확신이 드는군.
라이타니엔에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 있었으면서, 왜 하필 오늘 그 모습을 드러내는 건가……
……리치 공?
리치?
프레몬트 씨는…… 살카즈였나요?
훗, 살카즈……
왕정의 그 빌어먹을 놈들을 만나러 갈 때 빼고는, 내 정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숨어 있다라…… 말 한번 잘했구나, 어린 양아. 그러고 보니 내가 라이타니엔에 확실히 너무 오래 있었군, 그렇지?
애초에 나는 정체를 감춘 적이 없어. 난 그저 고탑에 있으며 스크롤에 심취하는 데 익숙해졌을 뿐……
나를 잊은 건 너희들이야.
너희들이야말로…… 라이타니엔의 일로 항상 나를 귀찮게 했다. 전에는 늑대 새끼랑 양 새끼가 싸우더니, 이번에는 또 사슴과 사슴이 뿔을 맞대고 있다지. 아주 끝이 없어!
돌아가서 그리마흐트한테 전해라. 난 더 이상 아무것도 관여하고 싶지 않아. '기원의 뿔'에서 내가 빌려준 물건만 찾으면, 이 리치는 바로 라이타니엔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도 이만 꺼지도록. 앞으로 다시는 내 성전에 발을 들이지 마라!
……'기원의 뿔'은 강림해선 안 된다.
내 말을 이해 못 한 건가?
내가 당신의 상대가 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라이타니엔의 게사츠슈베이터가 쉽게 물러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럼 너는 어떻지, 어여쁜 사슴? 너도 죽고 싶은 건가?
그녀는 보내 줘라.
……프레몬트 씨, 우리에겐 아직 협상의 여지가 있습니다.
협상 따윈 필요 없어요.
음? 당신은……
안녕하세요, 드로스테…… 아니, 호흐베르크 씨라고 불러야겠네요.
다시 한번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미하엘, 라이타니엔 여황 그리마흐트 폐하의 전속 밀사입니다.
당신도 여황의 목소리인가요?
아닙니다.
여황의 목소리는 두 여황을 모두 섬기지만……
저는 그리마흐트만을 섬깁니다.
……저와 당신이 서로 적이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아마 길이 다를 겁니다.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거냐. 새끼 늑대야, 얼른 저 둘을 밖으로 던져버려라!
……알겠습니다.
브란트 씨, 호흐베르크 씨, 이것도 그리마흐트의 명령입니다.
저는 프레몬트 씨에게 협력하여 '기원의 뿔'이 무사히 츠빌링슈튀르메에 강림하게 해야 합니다.
어째서죠?
우선, 이건 그리마흐트가 프레몬트 씨께 한 약속입니다.
천 년 동안 라이타니엔에 대한 리치 일족의 공적을 위해, 나아가 앞으로 더 장기적인 우호를 위해, 저희는 프레몬트 씨가 자신의 물건을 되찾도록 도울 겁니다.
또한, 만약에 '기원의 뿔'을 이용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제 폐하뿐입니다.
당신의 폐하……
'폐하들'이…… 아니군요.
……저자의 말에 휘둘리지 마라, 드로스테.
이게 그리마흐트 님의 뜻이든 에비게그나데 님의 뜻이든, 너는 이 일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
위치킹과 쌍둥이 여황의 싸움 때문에, 그리고 이 악장 때문에, 호흐베르크 가문은 이미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어.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너를 안전하게 보내주겠다.
……
뭐죠?
왜…… 이 탑이 흔들리는 건가요?
탑이 아니라 지면이 흔들리는 것 같네요.
그림자가 찢어졌어요. 무언가가 나오려고 합니다.
학교의 이동 섹터 밑에 뭐가 있나?
우르티카의 밀실이야…… 그 멍청한 양들이 내 지하 공간에 들어갔어!
프레몬트야 프레몬트, 네가 라이타니엔에 오래 있긴 있었구나. 이 큰 뿔의 양들처럼 너도 바보가 되었으니!
다행이네요…… 전설이 진짜였어요. 선생님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어요.
술식, 아츠 장치, 모든 게 잘 보존되어 있네요.
이건 그야말로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아무리 잘 쓴 역사책이라도 당시의 상황을 이토록 생생하게 기록할 수는 없죠!
잠깐, 저건……
어둠 속에서 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뒤이어 두 번째, 세 번째가 나타났다.
20여 년 동안 변하지 않은 로브와 후드, 그리고 가면까지.
더없이 익숙한 그림자가, 평생 그를 괴롭혔던 그림자가 악몽에서 나와 그의 눈앞에 다가왔다.
영지에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우르티카 백작.
게르하르트!
왜 그러시나요, 프란츠?
이것 봐요, 제가 뭘 찾았는지 보세요…… 오래전에 잃어버린 아츠 스크롤이에요!
그리고 이거, 설마 헤르쿤프트쇼른이 사용했던 금관악기는 아니겠죠?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수확이 많네요!
내…… 내 머리가…… 빌어먹을, 너무 아파!
왜 하필 이럴 때? 지금이 가장 위험한 때인데…… 아니, 난 아직 쓰러질 수 없어.
게르하르트…… 얼른…… 도망쳐……
내가…… 당신을 지켜줄게……
무슨 말을 하시는 건가요?
레싱 말이 맞아. 난 더 이상 도망치지 말아야 해.
지금까지 계속, 다른 사람이 날 지켜줬지.
내 곁에 있는 사람…… 맨 처음에는 그 누나, 그 존경스러운 헌병, 체르니 선생님, 그리고…… 그까지. 다들 나보다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이번에는 내 차례야.
난 여기서 자결할 거야. 내 몸에는 아직 놈들이 노리는 '속세의 음'이 있으니…… 이 죄악의 방을 잿더미로 만들기에 충분해.
지금이 기회니까 얻은 것을 가지고 빨리…… 떠나……
조금 휴식이 필요해 보이는군요, 어리석은 아이여.
뭐라…… 고?
우리의 위대한 업적이 코앞인데, 이 모든 것에 당신이 빠질 순 없죠.
이번이 두 번째다.
누군가 금관악기를 치켜들고 그의 머리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우르티카 백작'.
몇 년 전, 잃어버린 의식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수갑이 달린 의자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 뒤로 10년 동안 그는 이 칭호를 얻었다.
그는 이 칭호를 원한 적이 없다. 그는 우르티카라는 성이 너무나도 혐오스러웠고, 프란츠라는 이 귀족 자녀들에게 자주 쓰이는 구닥다리 이름마저 싫었다.
그는 우르티카 영지 중앙에 우뚝 솟은 고탑 안에서 몇 번이고 그 의자에서 빠져나왔다. 어차피 영지 일을 보고하는 귀족들이 관심 있는 건 그가 아니었으니.
그들은 서로의 속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종들도 매일 가장 이른 시간에만 그를 커튼 뒤에서 강제로 끌어와 의자에 앉혀 놓았다.
그 이후의 긴긴 하루 동안 그는 정처 없이 고탑 안을 서성거렸다. 이튿날 아침이 오기 전까지 시종들도 그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반복 속에서 시간이 흘러갔다.
그가 더 멀리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면, 비슷한 운명을 가진 또 다른 사람을 떠올리지 못했다면, 저항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희망이라는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면……
그는 아마 평생 그 의자에만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그는 또다시 갇혔다. 등 뒤에는 또 다른 익숙한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의자의 그림자는 고풍스럽고 호화로웠으며 가시덤불이 둘려 있었다. 그저 한번 쳐다봤을 뿐임에도 소년의 눈과 머리, 그리고 심장은 마치 가시에 찔린 듯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비슷한 함성이 그를 에워쌌다.
다만 이번에는, 다들 그를 이렇게 불렀다……
'위치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