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T-1찬송가 '맑은 하늘의 노래'
한 유명 화가가 《위치킹의 죽음》이라는 작품을 완성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고, 비비아나는 그림 앞에서 아르투리아를 만나게 된다. 미술관이 습격당하고, 헌병 대장은 그게 아르투리아를 쫓으러 온 페데리코의 소행임을 알게 된다.
고탑에서 보내는 밤은 늘 조용했지만, 도시의 밤은 매우 시끄러웠다.
환호성은 점점 더 높아졌고, 우아한 옷차림의 악사들은 악기를 들고…… 하나둘씩 차에서 내렸다. 그러나 오직 그녀만은 차 안의 맨 뒷좌석에 앉아 감히 일어나지도 못했고, 창밖을 내다볼 수도 없었다.
“비비아나, 괜찮아. 카시미어는 라이타니엔과 다르지만, 넌 금방 익숙해질 거야.” 누군가가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그랜드 나이트 영지의 네온사인이 눈을 비출 때마다 그녀는 계속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눈을 감은 건, 이 낯선 나라가 무서워서가 아니라고.
왜냐하면, 그녀에게 있어 라이타니엔은 고탑의 방에 있던 작은 창문 하나가 고작이었고, 그런 그녀가 라이타니엔에 익숙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무서웠던 건, 소란스러운 바깥세상이 자신의 기억 속 그 작은 밤과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비아나.
비비아나, 괜찮아?
……뢰벤슈타인 씨.
카시미어에 막 도착했을 때 일이 떠올랐어요. 그때도…… 당신이 지금처럼 제 손을 잡아 주셨죠.
너 손바닥이 땀 범벅이네. 방금 무슨 일 있었어?
저……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떤 묘한 여자분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에요.
요제프 백작의 사무실을 다녀오느라 조금 늦었는데, 도착했을 땐 너 혼자 여기 멍하니 서 있었어.
그 여자분은 제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적개심을 보이지도 않았어요. 그냥 그림을 보러 온 것 같았어요.
맞다, 저 그림.
……음.
죄송합니다. 제가 설명해 드릴까요?
아니, 고개를 돌리고 더 이상 쳐다보지 마.
확실히 그림에 문제가 있나요?
냄새야.
위치킹 시대의 사람들은 오늘날보다 오리지늄 연구에 훨씬 더 열광했어. 위치킹을 따르는 캐스터들, 혹은 예술가들은…… 오리지늄을 아츠의 재료나 에너지의 원천으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오리지늄을 다른 형태의 피와 살이라고 믿었고, 심지어 그걸 영혼의 매개체로 생각했어.
그렇다면, 그림의 이 검은색 물감은……
정제한 오리지늄 결정체에 화가 본인의 피를 섞은 거야.
……
그 말을 들으니, 확실히 공들인 '전시회' 같군요.
저 그림들을 전부 덮어 놔. 가장 두꺼운 천으로. 너희들도 최대한 그림에 닿지 말고.
알겠습니다.
아직 침입자를 찾지 못했어. 지금 이 미술관도 안전하지 않으니, 두 사람은 서둘러 여길 떠나는 게 좋겠군.
우리 두 사람만 위험한 건 아닐 텐데요.
이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시만 부인의 죽음, 그리고 그녀를 이용해 이 작품을 그린 사람은……
제발 그 이름만은 말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군.
뢰벤슈타인 씨, 여황 축제가 코앞이야. 폐하들께서 츠빌링슈튀르메가 혼란에 빠지는 모습은 절대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실 거란 건 당신이 누구보다 잘 알 텐데.
그게 바로 우리가 이곳에 와 있는 이유지.
……적어도, 오늘 미술관을 찾아온 사람들만이라도 알리면 안 될까요?
그 사람들도 이 무서운 그림을 봤을 텐데, 그 사람들의 정신 상태가 매우 걱정됩니다.
참으로 상냥하군.
이미 사람을 파견해 그림을 본 관람객을 일일이 확인하라고 했으니, 안심해도 좋아. 나 역시 그들이 아무것도 보지 않았기를 바라니까.
……자작님.
시만 부인이 이렇게 이유도 없이 사망할 순 없습니다.
23년 전의 그날 밤, 시만 부인은 그 폐하의 고탑을 방문했던 게 맞죠?
시만 부인은 위치킹이 무너지는 걸 보았고, 또 영웅이 탄생하는 것도 목격했을 겁니다.
……그런가.
그게…… 뭐 어떻단 거지?
날 믿어 줬으면 좋겠군. 그날 밤, 그 칠흑 같은 나선형 탑 앞에 모여 여명이 오기를 갈망했던 젊은이는…… 많고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중 대부분은 라이타니엔에 새로운 삶을 가져다줄 영웅이 되는 뜻을 이루지 못했지.
또 침입자에 대한 소식이군. 그럼, 먼저 실례하지.
저 사람 말이 맞아. 23년 전 그날 밤, 많은 게 변했어. 하지만, 모든 변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야.
잔당들이 프리다 시만의 죽음을 꾸민 것은 위치킹에 대한 그녀의 '배신'을 응징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이 일을 신호 삼아 그들의 큰 움직임을 선포하려는 것일 수도 있어.
……그럼 그들도 같은 이유로 제 아버지를 살해한 건가요?
……
아르투리아 씨.
잠깐, 조용히.
이 곡을 마저 듣고 싶어.
일개 부랑자의 연주일 뿐이야.
오늘 아침에도 똑같은 곡을 연주했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어.
아마 미술관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저녁에는 소시지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또 굶주린 배를 달래며 잠들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을 거야.
설마…… 오리지늄 아츠로 속마음까지 들여다본 거야?
그럴 필요 없어. 느껴지지 않아? 저 사람은 음악으로 계속 하소연하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경청해 주는 것뿐이고.
……저자의 사연은 중요하지 않아. 다음 무대가 이미 준비됐어.
화단 옆에 있던 악기 모양의 조각상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대신, 조각상 내부의 진동 구조에서 매끄럽지만 무거운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라이타니엔 사람들은 소리 나는 조각품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네.
연주는 하나같이 '완벽'하지만, 아무런 영혼도 없어…… 마치 고탑에 갇힌 사람들처럼.
아르투리아는 꽃잎을 불어 악기 모양의 조각상을 향해 날렸다.
꽃잎은 조각상에서 나오는 기류를 타고 나풀거렸고, 한결같은 선율에는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이제야 듣기 좋아졌네.
대장님, 분명 그 침입자를 거의 따라잡았었는데, 그자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바깥에 길은 아직 봉쇄되어 있고?
네, 그렇습니다. 설마 날개라도 달려 날아간 건 아니겠죠?
날개라…… 훗, 그럴 수도 있겠군.
저기…… 대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자꾸 사고가 생길 줄이야. 분명 대장님은 곧……
괜찮다, 핌. 요제프 백작을 찾아가 미술관 상황을 전해.
그러고 보니, 총소리를 못 들은 지도 오래됐군.
라테라노에 있을 땐 총을 사용할 자격이 없었지. 하지만 장담하건대 라이타니엔 헌병이 흔히 사용하는 아츠 스태프도 그 정확도나 위력은 총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아.
그러니, 내 부하가 돌아오기 전에 그 총과…… 다른 무기를 모두 거두었으면 좋겠군.
그러고 나서 설명하지 않겠나?
무슨 일 때문에 당신 같은 산크타가 츠빌링슈튀르메에 온 건지……
……
로리스 보르딘 씨.
흠? 나를 아는 건가.
당신은 전 라테라노 공민이었고, 28년 전 라이타니엔으로 넘어와 헌병이 되었습니다.
23년 전, 쌍둥이 여황이 당신에게 자작 작위를 주었고, 그 뒤로 지금까지 당신은 츠빌링슈튀르메의 헌병대를 이끌었죠.
……허허, 자기소개할 기회도 안 주는군.
중요한 지명 수배범을 라테라노로 데려가기 위해, 당신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지명 수배범?
그 여자의 이름은 아르투리아입니다.
……아, 생각났군.
당신은 라테라노 교황청 제5청 공증소의 집행자 페…… 페 뭐였더라…… 미안하군. 접두사가 너무 길다 보니 정작 뒤에 있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어.
페데리코 잘로입니다.
이번 교섭은 국제적인 업무로, 관례에 따르면 사인은 가능한 한 신중하고 완벽하게 서명해야 합니다.
하…… 하하, 당신이 보낸 그 열 몇 통의 편지를 모두 간직하고 있지……
27통입니다.
제가 보낸 편지를 자세히 읽지도, 심지어 확인하지도 않았군요?
크, 크흠! 그럴 리가…… 여하튼 당신이 라이타니엔에 직접 왔고, 요 몇 년 동안 그렇게 많은 편지를 보낸 것도 모두 지명 수배범을 쫓기 위해서라는 거군?
그 여자는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라이타니엔에서 활동했습니다. 저는 그 여자가 지금 당신이 맡은 여러 사건을 포함한, 라이타니엔에서 일어난 많은 특수 사건과 관련 있을 거라고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그 폐하에 이어 라테라노에서 온 지명 수배범까지…… 정말 갈수록 성가셔지는군.
제가 용의자의 상황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리도록 할까요? 혹은 제가 당신에게 보낸 편지 중 아무거나 읽었어도,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집행자 나리, 잠깐 실례하지.
……루카스 남작님, 말씀하십시오.
그…… 질서를 어지럽히는 길거리 폭력 조직이 또 나타났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바로 그쪽으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어…… 물론이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안심하십시오. 헌병대는 당신의 안전을 반드시 지킬 것이고, 라이타니엔의 영광에 먹칠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집행자 나리, 난 지금 무척 바빠.
인정할 수 없습니다. 신고자의 신분이 임무의 우선순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봐, 여긴 라테라노가 아니야. 당신도 더 이상 멋대로 총기를 사용하거나, 다른 무기를 이용하여 여기 주민들을 위협해서는 안 되고.
아니, 그뿐만이 아니지. 당신이 츠빌링슈튀르메에 있는 동안은,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그게 절차 규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규칙? 규칙은 사람이 정하는 거야.
이의를 제기할 겁니다.
그때엔 내가 가장 먼저 당신을 체포하지, 페데리코 씨.
귀족의 개인 미술관 근처에서 여러 차례 총을 쏜 사람으로서, 당신이야말로 츠빌링슈튀르메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최대의 위협 요소야.
보덴 구의 카를 슈미트 거리.
작품전에서 사망한 프리다 시만이 오랫동안 거기 살았습니다.
'금잔화 골목'은 화가와 시인들이 모두 좋아하는 곳이지.
루카스 남작은 '날로 옅어지는 예술의 분위기에 더 가까이'하려고 이 동네에 이사온 거야. 물론, 이 동네의 집값이 저렴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체포 대상도 이곳에 왔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경거망동하지 마. 우리의 약속을 잊은 건가? 라이타니엔에서 아르투리아 씨는 명성이 자자한 대음악가야.
당신은 현재 헌병대를 '협조'하여 다른 사건을 처리하는 중이지. 이 전제하에서 당신이 무엇을 발견하든, 나나 헌병대와는 무관해.
신고자가 말한 질서를 어지럽히는 길거리 폭력 조직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즉시 집행……
손대지 마!
즉시 체포 절차를 집행하길 제안합니다.
수업을 듣고 싶지 않은 젊은이들일 뿐이야.
자자, 다들 얼른 돌아가. 여기 있지 말고.
……
역시 너였나. 이 길거리 악기 조각상은 모두 여황의 명으로 세운 거니 함부로 파괴해서는 안 돼. 게다가 댕그랑거리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잖아.
아직도 아츠를 멈추지 않는 건가?
……
……너 지금 뭘 조각하고 있는 거냐?!
안 보여요? 전 그저 이 거리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것뿐이에요.
이런 나선형 뿔은 츠빌링슈튀르메…… 아니, 라이타니엔에선 절대 허용할 수 없어.
비켜, 여황의 목소리들이 발견하기 전에 빨리 저걸 부숴야 해.
부숴요? 당신이 헤르쿤프트쇼른의 마크를 부술 용기가 있다 생각하나요?
헤르쿤…… 너 어디서 그 이름을 들었지?
많은 사람이 알고 있어요. 그분이 곧 돌아올 거예요.
그가 통치하던 시절에 넌 아직 말도 할 수 없었어. 넌 이 나선형 뿔이 뭘 의미하는지도 몰라. 당시 그자가 반대자를 한 명 죽일 때마다, 거리에는 이와 같은 조각상이 하나씩 세워졌다고!
……이미 죽은 사람이 있잖아요?
이 동네에 살던 그 화가요. 그 여자가 시작이죠.
얼른 꼬리나 말고 도망가세요. 당신에겐 이미 그때의 용기가 없어요.
“위치킹 탑에 발을 들여놓은 첫 병사”는 무슨…… 당신은 아직도 자신이 그 영웅인 줄 아는 거예요?
……
이 자식이, 네가 그런 말을 한다고 내가 봐줄 줄 아냐……
이미 도망갔습니다.
흥, 갈 테면 가라 해.
왜 바로 체포하지 않았습니까?
감옥을 서둘러서 가득 채울 필요는 없지.
당신이 저자를 체포하지 않는 건, 사적인 감정 때문이라고 가정해도 되겠습니까?
……당신을 데리고 나온 게 더 후회되는군, 집행자 나리.
동의합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목표를 특정하는 데 더 유리하니까요.
그게 아니라, 당신을 사무실에 두고 혼자 왔어야 했다고.
……
어, 여기 한 명 더 있네? 야, 계속 소란 피우면 진짜로 잡아간다.
……나선형 뿔 조각상. 저것들을 치우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러고 보니 이 성가신 것들도 있었네. 요즘 어린 것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들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시대를 그리워하는 거예요. 그게 잘못된 건 아니죠. 라이타니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금에 대해 실망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빅토리아산 자율주행 차량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긴 운전 캐스터들, 랭크우드 영화의 수입으로 인해 문을 닫은 지역 극장 사장님들, 그리고 그 집 자녀들.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과거를 돌이키며 미래를 상상하는 수밖에 없어요.
허허, 꼬마야, 그런 말은 너희 집 어른이 가르쳐주더냐?
우리 집 어른이요? 장담하건대, 어른들은 절대 이런 말을 하지 않아요.
라이타니엔의 모든 위협을 새싹부터 잘라내기 급할 뿐이죠.
조각상이…… 부서졌다고? 이렇게 쉽게……
저 아이는 평범한 학생이 아닙니다. 저 아이를 불러 세워 몇 가지 더 물어봐야 했습니다.
음, 전혀 평범하지 않지. 그러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아.
……비가 오는군.
뭐 좀 마시겠나? 커피? 아니면 맥주? 이 가게에선 커피를 추천하지.
임무 중에는 이런 중추신경 계통에 영향을 주는 액체를 마시는 습관은 없습니다.
그렇군, 난 맥주나 마시지.
당신도 지금……
……임무 중이지. 그렇지 않으면 보통 이 시간부터 술을 마시진 않아.
아까 아이들이 당신을 '위치킹 탑에 발을 들여놓은 첫 병사'라고 했죠.
녀석 말 대로야. 왜, 냅킨에 사인이라도 해주길 바라나?
그보다 제가 보낸 협력 서류에 서명하길 더 바랍니다.
집행자 나리, 23년 전이면 당신은 몇 살이었지? 라테라노 신문에 실린 그 쿠데타 기사가, 아마 새로 오픈한 디저트 가게 광고보다도 작았을걸?
“츠빌링슈튀르메의 헌병대 대장이 된 라테라노인.” 이렇게 실렸습니다.
읽어보긴 했나 보군.
당신과 위치킹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 제가 아는 로리스 보르딘 씨는 여러 괴이한 사건을 해결한, 협력할 만한 집행자라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내게 그렇게 많은 편지를 보낸 건가?
아르투리아의 오리지늄 아츠는 매우 특별합니다. 당신은 이런 특별한 사건을 처리하는 데 경험이 많고요.
1079년, 당신은 거짓된 사랑의 환각을 만들어내는 것에 능숙한 절도 집단을 잡았고, 1085년에는 최면술을 사용하는 위험인물을……
그만, 집행자 나리! 난 추리 소설에 나오는 탐정이 아니야.
로리스 보르딘 씨, 당신은 지금 회피하고 있습니다.
뭘 회피한다는 거지? 난 단지 내가 실패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뿐이야.
그거 아나? 얀에게…… 방금 금잔화 골목에서 말대꾸하던 녀석에게 누나가 있는데, 예전에 이 가게에서 일했어.
그리고 15년 전, 그 누나가 실종되었고.
아까 그 아이에 대한 배려를 봤을 때, 그 사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 같군요.
그 사건은 내가 맡았던 유일한 미제 사건이 아니야. 첫 번째도 아니고, 마지막은 더더욱 아니지.
그건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아.
그 사건은 그저…… 그렇게 일어났을 뿐이야.
훗…… 당신은 공증소 집행자이니, 이런 실패 경험이 없겠지.
보르딘 씨, 오셨군요! 요즘 잘 지내셨나요?
의사가 술을 끊으라 하더군.
그건 너무 가혹하네요. 라이타니엔 중년 남성에게 술을 끊으라는 건 귀가 머는 것만큼이나 괴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은퇴하는 날에 헌병대 사람들과 함께 우리 가게에 오시면, 50% 할인을 해드리려고 했는데.
은퇴할 생각입니까?
이번 여황 축제가 끝나면 라이타니엔을 떠날 거야.
티엠, 얀 그 녀석은 요즘 뭐 하고 지내?
얀이요? 지원한 대학교에서 받아주질 않으니, 아마 기술이나 배워 먹고 살아야겠죠?
그 녀석은 오리지늄 아츠 재능도 괜찮고 학교 성적도 나쁘지 않은데, 왜 받아줄 대학이 없다는 거야?
보르딘 씨가 써준 추천서를 버렸으니까요.
이 자식이……
자기가 어떤 학교에 다닐지 걱정할 바엔, 차라리 율리아 행방이나 찾아 달라 하더군요.
……
게다가…… 하아, 얘기하고 보니 보르딘 씨, 얀이 요즘 확실히 좀 이상한 것 같아요.
보르딘 씨가 써준 추천서를 가지고 온 날, 저에게 왜 자기 아빠는 학교 다닐 때 이런 게 필요 없었냐고 물어보더군요. 자기 아빠는 예전에 본인 능력으로 어느 백작의 고탑에 들어갔다면서요.
“그 폐하의 시절엔 타고난 재능이 집안보다 훨씬 더 중요했어.” 이런 말까지 하더라니까요.
……그 녀석, 요즘 어디를 쏘다니고 다니는 거야?
그야 저도 모르죠.
나선형 뿔 조각상.
당신 말대로라면, 얀은 전에 나선형 뿔 조각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을 겁니다. 이건 누군가 그에게 보여줬다는 뜻이죠.
그렇군. 예전의 그 나선형 뿔 조각상이 어디에 가장 많았지?
어, 구스타프 공원이요. 여기서 멀지 않죠. 지금은 밀림 공원으로 이름을 바꿨지만요.
티엠, 오늘은 일찍 퇴근해.
네? 알겠습니다. 잠깐만요, 보르딘 씨, 왜 지갑을 제게 주시는 거죠? 이렇게 많은 돈이면 1년 치 맥줏값은 되겠는데요!
가지고 있어. 얀한테 주는 거야.
그 녀석은 머리가 좋으니까,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해. 이 돈이면 라이타니엔을 떠나, 빅토리아나 컬럼비아에 가서 공부해도 충분해.
비는 그쳤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동안에도 공원의 분수대는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나무 그늘에 앉아 있거나 나무 옆에 서 있었고, 손에는 대부분 바이올린, 플루트, 첼로 등 악기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거의 소통하지 않았지만, 악기의 음악 소리는 의외로 조화로웠다.
잔잔하고 슬픈 음악이 수면 위를 약동하고 나무 사이에서 울려 퍼졌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들은 얘긴데, 이동도시가 생기기 전, 이 아인발트 주는 거대한 검은 숲이었대.
중요한 사람이 죽을 때마다 사람들은 숲의 깊은 곳에서, 죽은 사람을 애도하기 위해 그가 가장 좋아했던 곡을 연주했지.
당신은 지금 악기를 들고 있지 않군요.
난 빈손으로 라이타니엔에 돌아왔어.
예전에는 수많은 악기를 다룰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한 존경스러운 스승님을 알게 되었고, 그 스승님은 내가 음악을 전혀 모른다고 했지.
음, 음악을 모른다기보다는…… 내가 감정을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야.
내가 감정을 모를 리가 있나? 내가 살아온 시간이 길지 않지만, 내 삶에는 온통 상실과 고통뿐이었는데.
그 후에는요?
그 후에는…… 내 친구가 죽었어.
아마 진정한 고통을 느꼈겠군요.
얼마나 느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그 뒤로 나는 라이타니엔을 떠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어. 도착한 곳마다 나는 사람들을 위해 연주했고, 내 음악을 칭찬해 주는 사람도 점점 많아졌지.
하지만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친구를 위해 연주하지 않았어.
연주 실력이 어떻든, 그 친구분은 당신의 연주를 무조건 좋아할 거예요.
알아. 나도 그걸 알기 때문에 더 나은 인간이 되길 바라는 거고.
결국 난 평생 동안 열심히 저항한 걸까?
과연 내가 평생을 충실하게 살았다고…… 그의 희생에 걸맞은 삶을 살았다고 당당하게 그 친구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
그 애가 뭐라고 할지 상상이 안 가. 왜냐하면…… 난 어떻게 입을 떼야 할지도 모르겠으니까.
그쪽은? 누구를 추모하러 온 거지?
스승님이에요. 23년 전 돌아가셨는데, 전 한순간도 그분을 잊은 적이 없죠.
그분은 분명 위대한 사람이었겠지.
이 공원은…… 23년 전에 희생한 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들었어. 모든 나무의 위치가 예전엔 피와 살로 쌓은 나선형 뿔 조각상이라던데.
모두 존경스러워. 그 사람들에겐 그 어두운 세월 속에서도 운명에 맞서 싸울 용기가 있었으니까.
아마 당신이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우리가 듣는 수많은 음악은 라이타니엔의 역사보다도 더 오래되었죠. 음악을 통해 죽은 이의 의지가 우리에게도 이어지고 있어요.
이어진다…… 그래, 나도 그렇게 믿고 싶어.
저기 서 있는 사람이 보여?
저기…… 검을 차고 계속 당신을 따라다닌 사람 말인가요?
맞아.
저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엄격하고, 냉정하며, 감정이 없는 사람이지.
저들은 늘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어, 내가 굳이 분간할 필요도 없지.
……
시간이 다 된 건가?
……이미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우르티카 백작'.
다행이다, 사람 잘못 본 게 아니네.
이 공원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는 이미 준비가 됐어, 감시자 씨.
“폐하께서 내 목숨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해.”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예측 가능한 미래까지도, 내 목숨은 진정으로 누군가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적이 없으니까.
설마 자살하려고 여기 온 건 아니겠지?
잠깐 고민해 봤어. 게다가, 설령 내가 아츠 스태프를 내 목에 겨냥한다 해도 네가 바로 달려와서 제지했을 거잖아, 안 그래?
속세의 음이 아직 울리지도 않았는데, 이대로 죽을 순 없지.
안타깝네…… 그 말 만큼은 누구 입에서도 듣고 싶지 않았는데.
이 첼로 소리가 들려? 오늘 오후, 나는 음악 속에서, 수면 위에서, 다시 한번 과거를 돌이켜 봤거든.
그 결론을 말하자면…… 내 목숨이 몇 년 전에 비해 더 가치 있게 변한 건 아니더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내 목숨을 아무나 이용하거나 지배할 순 없어. 특히……
……너희들에겐 말이야.
그게 무슨……
매복인가?!
여러 개의 검은색 아츠 구체가 물속에서 솟아올랐다.
아츠 구체는 나무의 그림자로 위장하여, 공중에 울려 퍼지는 선율과 함께 흔들리는 잔물결 속에서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었다.
……윽!
나 하나를 처형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보내다니. 나를 이리도 높게 평가한 여황 폐하들께 큰절이라도 올려야 하나?
유감이군, 폐하들을 실망시켜드릴 수밖에 없겠는데.
게다가 내가 언제 친구를 위해 연주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아.
하지만 단 한 가지만은, 말해줄 거야.
“난 시도했어. 계속 시도하고 있어.”
“난 저항을 멈추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