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8금옥장심
꼬마 주방장은 블레이즈에게 특별히 만든 귤홍소를 대접하게 되고, 블레이즈는 마침내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모든 퍼즐을 맞추게 된다. 한편, 영술은 대리사를 찾아가 수감 중인 우징에게 40년 전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는다.
등장 오퍼레이터: 블레이즈, 블레이즈 디 이그나이팅 스파크, 위, 싱주
귤홍소 1인분…… 포장 부탁드립니다.
아, 왔구나.
이번에도 빅토리아로 보내려고?
아니요…… 전 이제 곧 돌아갑니다……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엔……
콜록, 콜록콜록! 1인분만 포장해 주세요. 길에서 먹게요.
이런, 기침이 심한데.
단 건 먹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대신 생강차를 끓여줄게.
아니요…… 괜찮습니다…… 폐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다.
무슨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해, 병원은 가봤어?
가봤어요, 의사 말로는 얼마 못 살 거라더군요.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고 했어요.
……뭐?
괜찮아요…… 사람은 누구나 죽잖아요.
제가 해야 할 일도 거의 다 끝냈습니다……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분명…… 빅토리아에 가족이 있다고 했잖아. 가……가족들은 네가 돌아오길 기다릴 텐데.
맞아요…… 저도 다시 만날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콜록……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 같네요……
제가 일평생 이룬 건 없지만, 적어도 마음속의 이상과 도의를 저버린 적은 없어요.
하지만 이제야 알게 됐어요. 가족에게 얼마나 큰 빚을 졌는지……
하…… 사람 사는 게 그런 거지 뭐, 갈등 없는 인간관계가 어디 있겠어? 만약 누군가가 모든 사람에게 한 점 부끄러움 없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뻔뻔한 거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집에 돌아가 봐야 하는 거 아냐?
저도 가족들을 보고 싶어요. 하지만 저를 만나지 않는 편이 더 좋을 겁니다.
다 그렇잖아요…… 무언가를 이뤄내기 위해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하는 법이니까.
그들이 내려놓은 것처럼, 저도 그래야겠죠……
그동안 신세 많이 졌어요. 실없는 마지막 꿈 얘기를 털어놓을 곳도 여기뿐입니다.
그럼 이젠……
남은…… 소원이 있어?
소원이라……
꼼꼼히, 더 꼼꼼히 쓸어라. 바닥이 아직 먼지투성이다.
구석구석 빠뜨리지 말고 깨끗하게 청소해라. 이제 떠나야 한다. 새로운 집주인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지.
어르신, 시간이 늦었는데 어딜 가십니까?
바람 좀 쐬러 다녀올 테니 신경 쓰지 마라.
영 대인이 오늘따라 정말 이상하시네.
추석인데 달 구경은 안 하시고 우리가 청소하는 모습이나 지켜보시다니.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청소나 제대로 하자고.
오늘 달빛이 유독 밝네, 바닥도 말끔히 치워야겠어.
내가…… 왜 여기에……
할아버지의 서재?
머리가 어지럽고 무거웠다. 마치 뭔가 중요한 걸 잊은 것처럼.
오래된 책 한 권이 책상 위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염국사 124권 17판 추가본》…… 1062년…… 태사각에 이런 책이 있었나?
……할아버지?
5층 감옥에 죄수를 가둔 게 얼마 만이더라. 오늘 밤 들어온 저 사람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어전에 난입하여 암살을 시도하다 금위군에게 생포됐다고 하더라고.
그런 짓을……!
쉿!
쓸데없는 생각이나 질문은 넣어두고, 감시나 똑바로 하자고.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너랑 나 둘 다 끝장이야.
백조에 돌아온 후 일어난 모든 일은 마치 계획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눈앞에 놓인 단서들은 전부 미끼 같았고, 그 결과는 막다른 길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범인은 무공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대리사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어, 분명 사전에 우징과 결탁했을 거야……
……
우징은 자신이 심문을 받을 때 서기관으로 너를 지명했어. 이건 네가 지금 이곳에 있는 이유이자 내가 너의 개입을 막아야 하는 이유야.
우징이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든, 너도 분명 그 계획의 일부겠지.
……린 소경이 그런 질문을 던진다는 건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뜻 아닌가?
린 소경은 정말 진실을 보지 못했나? 아니면 두려움에 진실을 외면하는 건가?
해진 어사는 어째서 유독 우징 사건에만 관심을 두는 겁니까?
달이 서서히 서쪽으로 기울었고, 달빛은 철창을 넘어 감옥을 비췄다. 차가운 밤공기에 맺힌 이슬이 린 칭옌의 미간으로 떨어졌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만 아니면, 이 감옥도 조용히 생각을 하기엔 나쁘지 않은데 말이죠.
맞아요. 여기 머무는 동안 많은 것들을 깨달았습니다.
문서고에 불을 지른 건 당신인가요?
저의 등장이 린 소경에게 답이 되어준 겁니까? 아니면 답을 미리 알고 있던 건가요?
또 보는군요, 린 소경.
이봐, 지금 디저트로 너랑 옥신각신할 여유는 없어. 난 사람을 구하러 가야 해!
진정해, 서두른다고 뭐가 달라져?
네가 뭘 안다고……
제대로 익기 전까진 뚜껑을 열 수 없다는 거, 그거 하나는 확실히 알아.
……
휴, 중요한 일일수록 밥을 든든하게 먹어야 하는 거야. 밥을 제대로 안 먹으면 될 일도 안 된다고.
맛 좀 봐, 네가 그렇게 찾던 귤홍소잖아!
너…… 백조를 샅샅이 뒤져도 내가 찾는 맛은 없을 거라 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난 백조 최고의 요리사라고 말했잖아! 이 세상에 존재했던 요리라면 어떤 맛이든 똑같이 만들어낼 수 있어.
잠깐만, 이건 내가 직접 만든 거니까 우리의 내기는 무효야.
이건 네가 전에 만들었던 그 귤홍소잖아……
블레이즈는 반신반의하며 귤홍소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
며칠간 블레이즈는 맛있는 음식을 다양하게 맛보았고, 요리를 품평하는 방법들도 배웠다. 눈앞의 그 디저트는 분명 맛있지는 않았다.
싱주가 한 말이 맞았다. 설탕을 과하게 넣으면 귤껍질의 상큼한 향이 묻혀버리게 되고, 기름을 너무 많이 넣으면 바삭한 식감을 해치게 된다.
이건 별로 맛있지 않은 디저트였다……
하지만 분명 기억 속의 그 맛이었다.
네가 어떻게……
어떻게…… 이 맛을 낼 수 있는 거지?
내가 만든 귤홍소가 단맛이 부족하다고 계속 그랬잖아, 그래서 생각해 봤어. 대체 어떤 요리사가 그런 귤홍소를 만들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디저트를 그렇게 달게 만든 사람이라면, 애초에 맛을 위해 그렇게 만든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맛을 위해 만들지 않았다는 건……
그러니까, 이걸 빅토리아에서 먹었다는 거지?
문득 옛날 일이 생각났어. 몇 년 전에 가게에 자주 오던 손님이 있었거든. 늘 귤홍소를 주문하면서 외국에 있는 딸에게 보낼 거라고 했지.
난 빅토리아까진 너무 멀어서 귤홍소가 도착하기도 전에 상할 거라고 했었어.
그런데도 그 사람은 한 번 더 가공하고, 편지지로 겹겹이 싸더라고. 편지를 보내는 건지 디저트를 보내는 건지.
너, 그 사람을 아는구나!
여기 왔었구나…… 계속 찾았는데……
혹시 그 사람이……
잘 아는 건 아니고. 몇 년 전, 이 가게의 단골손님 중 하나일 뿐이거든.
그 사람은 늘 해가 뜨기도 전에 와서, 가장 저렴한 아침을 주문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나.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창가에 앉았지.
누구를 기다렸는데……?
나야 모르지, 네가 직접 봐.
동이 트기 시작했다.
하늘엔 희미하게 보이는 달이 있었다. 아름다운 밤은 저물어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하는 단란한 꿈속에 빠져 있었다.
부지런한 노점상들은 일찌감치 장사를 시작했고, 거리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이 넓은 도시를 깨웠다.
블레이즈는 길모퉁이에서 낯익은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평소였다면 이 작은 식당과 그 커다란 저택이 사실 길모퉁이 하나만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 풍경은, 아빠가 오랫동안 봤던 풍경이 아니었을까?
그래……
그랬구나……
……여기 계셨군요.
죽기 전에 자네를 다시 볼 수 있을 줄 몰랐군.
방구석에 기대앉은 남자는 허름한 옷차림에 손에는 월병을 들고 있었고, 수염과 얼굴에 부스러기를 잔뜩 묻힌 채 월병을 먹고 있었다. 찾아온 사람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천장의 철창 사이로 내리쬐는 한줄기 햇빛이 죄수의 초췌한 얼굴을 비췄다.
대리사도 참 인간적이네. 추석이라고 감옥에서 심판을 기다리는 죄수들에게까지 월병을 나눠주다니.
맛도 괜찮은데, 한 조각 드릴까요?
필요 없다. 어차피 한동안 이 감옥에서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으니까.
유감이군요. 앞으로 나눌 이야기가 많은데, 대화만 하기엔 입이 심심하지 않겠습니까?
노인은 애써 웃음을 보이며, 죄수복을 입은 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 늙은이를 몇십 년 동안이나 추궁하려 했는데, 오늘 드디어 그 소원을 이루겠군.
영 대인은 뼛속까지 저를 원망하겠죠.
거의 다 왔는데. 이제 한 걸음만 더 하면 한시름 놓고 고향으로 내려가 자식, 손주들과 함께 말년을 편히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정말 얼마 안 남았었는데 말입니다…… 하하하하하하.
그렇게 보니 자네가 정말 원망스럽군. 당장이라도 자네를 물어뜯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자네는 이 늙은이 때문에 몇십 년을 바쳤고, 대리사 소경 직도 잃은 데다, 이제는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게 생겼지……
그렇게 보면 자네야말로 날 원망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하하하하하…… 괜한 걱정입니다, 영 대인.
전에 말했다시피, 저는 훌륭한 관리도, 좋은 사람도 아닙니다…… 고전과는 다르죠.
저는 그저 식탐이 많은 사람일 뿐입니다. 냄새를 맡으면서 가장 깊이 숨겨진 진실을 찾는 걸 좋아하죠. 껍질을 벗겨내고 살과 뼈까지 전부 씹어 맛을 봐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두 손이 피투성이가 되고, 이빨이 전부 부러져도 말이죠.
그리고 요 몇십 년 동안 당신은 제 식탁 위의 가장 크고 탐나는 셸비스트였죠. 그런 당신을 제가 어떻게 원망하겠나요?
원망한다 해도…… 그건 저 자신 때문이 아닙니다.
치아 하나는 튼튼하군, 이 늙은이의 뼈를 물어뜯었는데도 아직 성하다니.
그런데 우징, 내가 찾아올 거라는 걸 어떻게 확신했지?
내가 이대로 떠났다면, 자네가 오래도록 공들인 모든 계획이 전부 물거품이 되었을 텐데.
하하하하…… 그건 제가 당신을 잘 알기 때문이죠, 영 대인.
저는 당신에게 걸었어요. 아무리 관직에서 수십 년을 보내 두 손이 더러워졌을지라도, 당신은 여전히 인간이라는 것에 말이죠.
어쨌든 고전은 당신의 보호 아래에서 오래 살 수 있었고, 당신도 고전의 딸을 오랫동안 보살펴줬으니까요.
당신은 그 아이…… 그 두 아이의 생사가 마음에 걸렸던 거죠.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그 아이들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길 원했으니까……
당신이 하루빨리 입을 열지 않으면, 그 아이들은 단 하루도 편히 지낼 수 없다는 걸 당신은 아주 잘 알고 있죠.
그래서 당신은 반드시 저를 만나러 와야 했습니다…… 반드시 말이죠.
그런 것까지 조사해 내다니…… 알아내야 할 것들은 전부 알아낸 것 같군.
얼마나 됐지?
모든 단서를 끼워 맞추고 사건을 낱낱이 이해하게 된 건 불과 작년이었습니다. 대리사 소경답지 못하게 너무 늦었죠.
반면 고전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더군요.
그건 생각지도 못했군……
고전이 백조로 돌아왔을 때, 당신은 고전을 자기 밑에 두고 지켜보았죠. 하지만 설마 고전이 십여 년간 당신 집에 머물며 편지를 필사했다는 사실은 모르셨던 것 같군요.
고위 관리들이 주고받던 편지를 보면서, 일개 9품 봉례랑에 불과한 고전은 그해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를 모두 찾아냈고,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며 모든 조각을 맞춰 진실을 밝혀냈죠.
고전이 그리 치밀했을 줄이야. 너무 과소평가했군.
영 대인, 다른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하하하……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인정할 죄는 인정해야지.
당시, 태사 사건을 담당하던 형부 상서는 내가 사람을 시켜 죽인 게 맞아.
하지만 그 이유는 나를 반역 공모자로 지목했기 때문이 아니라……
태사의 반역 사건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억울한 사건이었기 때문이지.
조금 궁금하군요. 린 소경께서는 언제 알아채셨나요?
정풍루에 불이 났을 때, 전 당신이 방화범일 거라고 의심했습니다.
왜죠? 전 그 사건들과 아무런 연관도 없었을 텐데요.
그냥 직감입니다.
설령 그때 당신이 자신의 무공을 쓰지 않았더라도, 가면을 쓴 자의 체격과 움직임이 어딘가 낯익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하지만 나중에 당신이 대리사에서 저를 먼저 찾아오셨을 때는 오히려 의심을 거뒀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제가 우징을 끌어내리려던 때부터 당신은 그와 깊게 연관되어 있었던 거였군요. 우징과 그렇게 오래전부터 연결되어 있었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문서고 화재부터 영 씨 저택의 그림, 그리고 정풍루 화재 사건까지. 최근에 벌어진 의문스러운 사건들은 모두 제가 단서를 찾을 수 있게 의도적으로 일으킨 건가요?
워낙 다급했던 상황이라 좀 무리를 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조금 억지스러운 면도 있고요.
그렇다면 백진연의 화재도……
유감스럽지만, 그건 제가 벌인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됐죠.
이런 일을 벌이는 이유가 대체 뭐죠?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모든 일의 시작은 별거 아닌 옛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제가 숙정원에 들어간 후 우연히 접하게 된 사건이었죠.
형부 상서가 길거리에서 거지의 칼에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건이었지만, 대충 종결되어 버렸습니다.
범인은 사형 처분을 받았지만, 그 신분이나 암살 동기는…… 서류상 아주 모호하게 기록되어 있었죠.
전 더 깊이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단서는 더 거대한 사건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모든 단서가 끊겨버렸죠.
태사 역모 사건……
린 소경께서도 조사한 적이 있을 겁니다.
삼공의 반역 사건은 세상을 뒤흔든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연루된 인원만 해도 수천수만에 달했죠. 진상 조사는커녕 한동안 그 태사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습니다.
“태사가 황자를 부추겨 황제를 시해했다.” 역사서에는 이렇게 딱 한 문장만 기록되어 있어요.
하지만 선대 진룡께서 붕어하신 그날 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방위군은 대체 누구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고, 궁으로 들어간 자는 누구였을까요?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이 사건을 추적하는 사람이 저만은 아니었단 것을.
그때 우징을 알게 된 겁니까?
음, 의기투합이라고 해야 할지, 끼리끼리 모인다고 해야 할지?
당신들은 단서를 찾지 못했다면서, 무슨 근거로 태사의 결백을 확신하는 거죠?
그건 저희가 알아낸 게 아닙니다……
모든 진실을 밝힌 사람은 고전입니다.
왜죠?
정말로 모른단 말인가?
물론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영 대인께 직접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 '이유'를 직접 말할 때는 어떤 기분이실까?
……요동치는 민심과 퍼져가는 불안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오늘날 염국의 평화가 얼마나 어렵게 얻어진 것인지.
이건 아주 오래된 일이지.
선대 진룡께선 한평생 근면하셨지. 그때는 오리지늄 공업이 대륙의 판도를 흔들어 놓았을 때야. 그리고 진룡께선 대격동의 시대에 염국이 테라의 다른 나라들보다 뒤처지지 않게끔 힘을 썼지.
아주 위대한 군주였어. 하지만 말년에 광석병에 걸렸지. 본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랬던 건지, 편파적이고 편향된 정책들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황자는 진룡을 막으려 했었지…… 태사 역시 황자의 편에서 힘을 보탰고.
태사가 도왔다는 건, 황자에게 역모를 일으켜 황위를 빼앗을 것을 지지했다는 뜻인가요?
선대 진룡은 황자가 궁에 들어가 간언하던 그날 밤 붕어했다. 황자 역시 그 후로 종적을 감췄고. 그리고 이런 엄청난 사건에는 반드시 명분이 필요한 법이지.
……그래서 그 죄를 대신 짊어질 사람이 필요했던 거군요.
자네는 지금의 진룡께서 그걸 몰랐을 거라 생각하나……?
……흥.
조정이 교체되면 민심도 흔들리는 법, '반역자 숙청'은 아주 적절한 명분이지.
당시 젊었던 진룡은 강경한 조치로 야심을 품은 자들을 대거 숙청했어. 짧은 시간에 정국을 수습했고, 궁정의 혼란이 금성 밖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막았지.
벌써 40년이 된 이야기군. 진룡을 제외하고 그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은 나뿐인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 사건이 있고 십여 년이 지난 후, 그 젊은이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영 대인은 그 일을 너무 가볍게 얘기하는 것 같군요.
당시 '숙청'된 사람은 반역자 몇 명뿐이 아니라, 태사의 일족 28명도 있었죠.
그들은 모조리 감옥에 갇혔어요. 일부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자 감옥에서 자결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유배되었죠. 그들의 행방을 추적해 보려 했지만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
딱 아이 1명만 빼고…… 그 혼란 속에 누군가 데려간 포대기 속의 갓난아이 말이죠.
나도 그 아이가 살아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죽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지.
그 아이를 만난 적이 있는 모양이군요.
며칠 전에 만났던 적이 있다…… 생김새는 별로 닮지 않았더군. 하지만, 성격만큼은 아주 판박이였다.
고전은 백조에서 십여 년을 살면서도 죽을 때까지 그 아이의 행방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지……
그렇다면 영 대인도 왜 고전이 빅토리아로 돌아가는 길에 죽었는지 알고 있겠군요.
……우징, 이 교활한 자식.
자네는 고전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어 그 아이의 행방을 찾을 가능성을 모두 차단했지, 게다가 나를 조사할 기회를 얻었고.
그때, 난 고전이 태사 사건을 끝내 밝혀내지 못하고 실망한 나머지 백조를 떠나려는 줄 알았죠.
저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어요. 고전이 원했던 건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방금 말했던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들, 고전은 그때부터 이미 답을 알고 있었죠.
고전이 제게 바라고 있던 건 다른 일입니다.
이해할 수 없군요……
처음부터 블레이즈가 그 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고아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겁니까?
린 소경도 조사를 했으니 알 겁니다. 고전과 우징은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였다는 것을.
고전은 아이를 데려가고 수십 년 동안 그 비밀을 철저하게 숨겼습니다. 하지만 죽기 전에 유일한 '친구'였던 우징에게 그 아이의 행방을 털어놓았죠.
고전이 죽은 후, 우징은 곧바로 그 아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당시 우징은 대리사 소경이라는 직위 때문에 직접 나서기 어려웠고,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조정의 하급 관리였던 제게 비밀리에 그 아이를 수소문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전 빅토리아에서 그 아이를 찾았지만, 그 아이는 이미 감염자가 되어 있었죠.
저 또한 그 아이를 곧바로 백조로 데려올 수는 없었습니다.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먼저 감염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죠.
그게 당신이었군요……
그때부터 당신들 모두 한패였던 거였군요.
하지만 린 소경도 이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린 소경이 어떻게 블레이즈에 대한 단서를 찾아내고, 또 과거 기록들에 접근할 수 있었을까요? 린 소경께서도 이 모든 것이 우연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죠.
……
우징은 절대 이 사실을 직접 당신에게 말해주지 않았을 겁니다. 이 일은 너무나도 위험했고, 다른 누군가가 알아서도 안 됐죠.
하지만 우징은 줄곧 적임자를 물색해 왔습니다…… 진실의 편에서 싸울 용기를 가진 자를.
우징은 오래전부터 희생할 각오를 마쳤습니다. 제 손을 더럽히는 한이 있더라도, 전 우징을 대신해 꼭 해야 할 일들을 해낼 겁니다.
하지만 부족했습니다. 우리에겐 결백한 사람이 필요했죠. 떳떳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 진실을 알릴 사람 말이에요.
린 소경, 때가 되었습니다.
아직 마지막 기회가 남았습니다……
린 소경, 함께 세상에 진실을 밝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