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5회음도
실수로 그림 속에 들어간 일행은 조금씩 자신의 의지를 잃고 그림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라이오스는, 자신을 습격한 묵량과 교류하며 점차 좋은 관계를 쌓아 간다.
5, 4, 3, 2, 1……
좋아, 종이 울렸어. 시작한다!
카앗!
마르실, 왼쪽!
얍!
라이오스, 앞! 그리고 오른쪽!
헛! 하앗!
센시, 뒤다! 왼쪽이랑…… 앞에도!
흡! 으랏!
앞, 뒤, 앞, 오른쪽, 왼쪽, 왼쪽, 뒤!
하아아앗!
앞, 뒤, 왼쪽, 앞, 오른쪽, 왼쪽, 뒤!
이야아앗!
후우, 하아…… 이 언저리에 있는 묵량은 다 해치운 것 같네.
고생하셨어요.
아냐! 마을 사람들이 우릴 환영해 줬으니까, 문제 해결을 돕는 정도는 해야지.
그러면, 나는 아직 밭일 도울 것이 남아 있으니 먼저 가 보겠네.
센시 저 녀석, 완전히 이 마을 사람 다 됐네.
칠책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찬 아저씨가 묵량을 처리하고 나면 술 마시러 오라고 전해달래요.
그쪽도 빨리 패배를 인정하면 좋을 텐데 말이지. 잘 마시지도 못하는 주제에 몇 번을 도전하겠다는 건지……
라이, 오늘 차 한 잔 하러 가도 될까?
마르실이 시간만 괜찮다면 물론 좋죠.
오늘은 당신의 모험담을 들을 차례였죠. 정말 기대돼요.
그런데……분명 처음 왔을 때, 라이오스 씨의 여동생을 구해야 한다고 했었죠.
아직 출발 안 해도 되나요?
……응. 파린을 구하러 가야 하는 건 사실이긴 한데.
그래도……
서두른다고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것도 그렇고, 여기가 너무 편안해서……
그때가 오면 다시 생각해 보자. 어때? 라이오스.
엉? 무슨 얘기?
너 또! 내 얘기 제대로 안 들었지!
……후훗. 라이오스 씨의 묵량 사랑은 이제 이 마을에서도 유명하니까요.
그나저나, 이 묵량이라는 슬라임은 정말 흥미롭네.
개체마다 정해진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머리와 몸, 팔과 다리 같은 부위를 구별할 수 있어. 공격 방식도 상대의 머리를 감싸는 게 아니고 짐승이 사람을 공격하는 방식에 가깝지. 게다가 짖을 줄도 알고!
가장 특이한 건, 일반 몬스터는 죽이면 시체가 남는데 묵량은 검은 물웅덩이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거야.
……
어제 묵량의 약점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줬는데, 딱히 다들 관심이 없더라고.
이런 거에 관심 가질 만한 사람은 라이오스정도밖에 없으니까.
……그런가?
그런데, 칠책조차도 맞서 싸우는 방법을 익혔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그걸 배울 생각이 없어. 묵량을 상대하는 걸 봐도, 매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
카각!!!
묵량들은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 느낌이란 말이지……
정말 신기한 일이야. 센시 말처럼, 슬라임과는 달리 몸의 기관이 뚜렷하게 구분돼 있고……
알았어, 알았으니까.
……어? 혹시 놓친 게 있나?
카아……
응? 저기 얼굴에 점 달린 개체는…… 전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맞아, 며칠 전에 해치웠었어. 왜 다시 나타난 거지?
……어떻게 된 거지? 혹시 이 놈들, 부활하는 건가? ……쫓아가 보자!
저녁 먹기 전엔 와야 돼!
……하아. 하나도 안 듣고 있네.
미안. 라이오스가 원래 좀 그래.
괜찮아요.
그보다…… 마르실, 우리가 파산 마을에 온 뒤 얼마나 지났는지 기억하나요?
당연히……
어라?
우리 언제부터 여기 있었더라?
자, 잠깐…… 너무 많은데?
캬오……
여기에 온 지도 꽤 오래됐어. 매일 그렇게나 많은 묵량을 쓰러뜨렸는데 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아 있다고?
그리고 이렇게 많은 개체가 한 곳에 모여 있는데, 무리 내에서 싸우는 일도 없는 것 같고…… 같은 종끼리 있으면 온건하게 지낼 수 있는 생명체인가?
……
그런데 새끼 같은 건 보이지 않네.……
생각해 보니까 외관으로는 암수의 구분도 안 되고.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성체인데 나이가 든 개체는 또 안 보여. 마물들이 사는 집단이라고 보기 힘든 광경인데……
어라? 아까 그 점 달린 놈은 어디로 갔지……?
……이런, 들켰나!
여기서 저 녀석이 동료를 불러 모으게 하면 안 돼…… 혹시 그렇게 되면 혼자선 감당 못 한다고!
안 돼, 지원을 부르려고……
……
오 그래, 이 과일을 입에 가득 채워버리자!
카오……우우? 우, 우걱우걱……
우걱우걱우걱……
카오……!
설마 더 먹겠다고?
가오오.
좋아. 큰 소리만 안 낸다면야.
자, 이건 간식용으로 남겨뒀던 거야…… 조용히 먹고, 다 먹으면 따라와. 같이 벽 뒤로 가자……
……이렇게나 얌전하다니. 뭐지……?
(벽 뒤로 몰래 기어간다)
(땅에 떨어진 살구를 겨냥한다)
(살구를 맛있게 먹는다)
아까까지 마을을 습격하던 녀석이 지금은 과일 몇 개에 이렇게 순해지다니.
우걱우걱……
(라이오스의 주머니를 문다)
……응? 뭐 하는 거야?
마을 사람들을 먼저 공격한 것 치고는 이기고 나서 기뻐하는 기색도 없고, 지고서 도망친 줄 알았더니 이런 데 숨어서 살구나 먹고 있고……
음…… 먹을 걸 두고 싸우기는 하는 것 같은데, 식량이 목적이라면 마을보다는 산이 과일이 더 많을 테고. 애초에 과일 조금 먹자고 이 정도로 자주 마을을 습격할 일이 있을까?
마을 사람들이 녀석들의 새끼를 잡거나 영역을 침범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묵량의 적대심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어라, 저 녀석은 아까 그 점 달린 놈인데?
읏차!
라이오스가 살구를 던지자, 퐁 하는 소리와 함께 점 달린 묵량의 머리에 명중했다.
묵량은 잠시 비틀거렸지만,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은 뒤 짧은 앞발로 머리를 감쌌다.
그리고 곧바로, 살구의 달콤한 향기를 맡은 듯했다.
카앗!
너도 살구가 목적이야?
이얍!
가악! 카오오!
우걱우걱……
어디 보자…… 점이 있고, 머리가 조금 크고, 가느다란 꼬리가 두 갈래로 나뉘어 있고……
확실히 예전에 본 개체야! 그때도 뭔가 이상하긴 했었어.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걸 보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을을 공격할 목적으로 온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카오……
그렇다는 건, 정말로 살아 돌아온 건가?
즉, 너희는 여기에서 죽었다 살았다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미궁에서의 우리 생활과도 비슷한 점이 있네.
카오?
이상하네. 이런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왜 마을을 공격하는 거지……?
다들 살구가 먹고 싶은가?
좋아. 조금 남아있기는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