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태양을 뿌리쳐라

AS-9과거와의 작별

사이드 스토리작전 전2025-01-16

주바이르는 페페를 보물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자신이 그곳을 지키는 이유를 설명한다. 페페는 주바이르의 고충을 이해했지만, 도시 전체의 안위를 위해 주바이르와 싸운다. 나란투야와 아스파시아도 계획 속에 있던 가장 어려운 부분을 실행할 사람을 두고 다투기 시작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페페, 나란투야, 파피루스, 샌드레코너


주바이르

환영한다, 페페.

페페

이게 샤가 남긴 보물창고야? 박물관이랑 비슷해 보여……

주바이르

그대의 느낌이 정확하다. 기억이 돌아오기 전, 난 이 도시의 곳곳을 보며 어디에선가 본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주바이르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아마 사람들은 능묘의 건축 양식을 참고했을 것이다.

페페

여기에 대체 뭐가 있는데, 주바이르?


[CG: pic_sandbox_1_5]

벽에 있는 램프가 켜지자 불빛은 거울처럼 매끄러운 벽과 기둥 사이를 돌아다니며 어두운 홀을 밝혔다.

그 순간, 무수한 유령 같은 허상들이 일제히 홀 안에 나타나 걸어 다니거나 가만히 서 있었다.

페페

그러니까 샤의 보물창고에 숨겨진 보물은…… 자기 자신이었구나.

페페

이렇게까지 자기애가 강했던 사람이었어……?

주바이르

그렇지 않다. 이 영상들은 모두 누님이 보관하라고 얘기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떠난 후, 누님은 아버지를 항상 그리워했다.

주바이르

천 년 전, 사관들은 발굴된 고대 기술을 통해 아버지의 모든 말과 행동을 생생하게 보존했다.

페페

나도 아르살란에서 비슷한 물건을 찾았어. 수정 동굴에서 샤의 영상을 한 편 봤었지.

주바이르

그건 내가 남긴 것이다. 나이츠모라의 후손이 그 영상을 찾은 뒤, 단서를 따라 이곳에 올 거라고 생각했다.

페페

너무 꼭꼭 숨겨놓았잖아, 주바이르. 다른 사람은 찾지 못했을 거야.

주바이르

숨겼다고? 난 밖에 거대한 신전을 지어뒀다.

페페

아무래도 세월을 이겨내지 못한 것 같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 무너져가는 폐허가 되어버린 뒤였어.

주바이르

하지만 그 신전은 결국 너를 이곳으로 인도했고, 나를 깨웠다.

주바이르

이것이 바로 세월의 변화가 가진 오묘함이지. 당시에는 쓸모없어 보였던 계획이라 할지라도 일련의 우연한 사건들로 인해 결국 아름다운 우연이 만들어지는 거다.

페페

가면을 벗은 샤의 모습도 있네……

페페

이런 영상은 아르살란에만 있던 게 아니야. 어렸을 때, 난 동생과 숨바꼭질을 하다가 관과 미라가 있는 밀실에 들어간 적이 있어.

페페

다행히 언젠가 이런 것들을 접하게 될 거라고 집안에서 교육을 받긴 했지만, 그건 어린아이 혼자 마주하기엔 너무 힘든 것이었지.

페페

당황했던 나는 무심코 어떤 장치를 건드려 버렸고, 샤의 영상을 보게 됐어. 하지만 난 샤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 그저 나와 소통하려는 유령이라고만 생각했지.

페페

그리고 샤는 내게 말했어. 이 관들은 모래에 묻힌 역사의 한 조각일 뿐이라고.

페페

후대 사람들이 이걸 발굴한다면, 이건 시간을 넘는 다리가 되어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 될 거라고 했어.

주바이르

기억나는군…… 그 말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관에 기대어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누님에게 아버지가 쪼그려 앉아 위로하며 하신 말씀이다.

주바이르

누님이 사관이 된 후, 아버지는 항상 당부했다. 영웅을……

페페

영웅을 영웅으로 만든 것, 즉 역사의 뒷면을 주목하라고.

주바이르

……그대는 이미 들었구나.

페페

그 영상의 마지막에 있던 말이야. 난 항상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어.

[CG: 53_i10]

루갈샤르거스의 영상을 보던 페페는 갑자기 허탈함을 느꼈다.

보물창고를 찾아오는 여정 속에서, 페페는 샤의 보물창고에 무엇이 보관되어 있을지 수없이 상상했었다.

하지만 페페는 깨달았다. 자신의 집착과 추구가 결국 한 허상에서 다른 허상으로 향하는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녀는 망치를 꽉 움켜쥔 채, 눈앞의 그림자를 향해 휘두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그녀를 더욱 두렵게 하는 건, 자기 가문의 직책과 전승 역시 허상에 불과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아야니

메제티케티, 전화번호부에 있는 다른 직원들에게 다 연락해 봤어요.

메제티케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와서 도와줄 사람은 있었어?

아야니

잘 모르겠어요. 다들 대답을 애매하게 해서……

메제티케티

……고마워, 아나트를 위해 물을 조금 더 찾아줄 수 있을까?

아야니

알았어요, 메제티케티.

메제티케티

……지야아랑 니야아처럼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결국 소수에 불과하네.

메제티케티

아나트,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2시간 정도뿐이야.

메제티케티

사실 가장 좋은 건, 지금 도시 밖으로 도망가는 거야.

아나트

죄송해요, 티티. 지금 도시의 측량 기록을 비교하느라 그런 생각을 할 여유는 없어요……

아나트

하지만 당신은 알겠죠, 제가 여기 남아있는 이유는 당신과 같다는 걸.

메제티케티

……직책.

메제티케티

하지만 그 두 관광객은? 그 사람들은 주바이르의 부활과 아무 관계가 없잖아.

메제티케티

게다가 이 도시와도 별 관계가 없지…… 근데 지금 우리는 그 사람들을 지하 수로로 보내 가장 위험한 탐사 작업을 하게 하고, 모래를 막을 방법을 찾게 하고 있어.

아나트

그래서 전 최선을 다해 그들의 용기가 헛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메제티케티

……귀를 좀 주물러 줄게.

아나트

고마워요, 티티.

메제티케티

아, 이것 봐. 공사 일지에 비정상적인 지질 구조에 대한 언급이 있어.

아나트

알겠습니다, 바로 기록할게요.

아나트

티티, 만약 주바이르에 대한 제 연구가 최종적으로 발표되지 못하고, 저희가 죽기 전에 도시 지하 구조를 탐색한 것도 알려지지 않는다면……

아나트

이대로 제가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죽는다면, 아버지께선 크게 실망하시겠죠?

메제티케티

그렇게 되면 전부 페페 때문이지. 우리 존경하는 파디샤의 따님께서 너무 출중한 능력을 가진 탓이야……

메제티케티

……라즈바르 님?

아나트

죄송해요, 라즈바르 님. 박물관이 지금 비상 상황이라 관리인님을 맞이할 시간은 없네요……

라즈바르

존칭은 됐어. 그리고 이제 관리인도 아니야. 그저 자유의 몸이 된 장인에 불과해.

아나트

하지만 지금 박물관은 누구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어요. 저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진심 어린 조언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빨리 도시 중심에서 벗어나라는 거예요……

라즈바르

……모든 것을 넘겨준 후, 나는 주바이르와 함께 천천히 흘러내리는 모래 앞에 잠시 서 있었어.

아나트

주바이르를 만났군요?!

라즈바르

주바이르는 아츠로 도자기 조각을 복원하려 했지만, 결국 멈추고 내게 이렇게 말했어. “이것이 우리의 직책이다.”

라즈바르

나도 알아. 직책에 대해서 절대 왜라는 질문을 하면 안 된다는걸……

라즈바르

설령 그 결과가 기대만큼이 아니더라도.

라즈바르

이 도시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 난 무엇을 해야 할까?


나란투야

잘 봐. 이번엔 내가 리더의 지휘 능력을 보여줄 차례야. 그러면 너는 곧 믿게 되겠지, 내 명령대로 박물관에 남아 다른 사람을 보호……

아스파시아

여기서 왼쪽으로 돌면 우리가 아까 지나온 길로 다시 돌아가게 돼.

나란투야

……지하 수로를 그렇게 오래 돌아다녔는데, 왜 이런 미로 같은 곳은 한 번도 못 봤던 거지?

나란투야

미리 말해두는데, 평소 부하들을 이끌고 다닐 때 난 절대 길을 잃지 않아. 이건 내 능력 문제가 아니야.

아스파시아

나도 이게 당신 능력의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아. 아마도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게 이 구불구불한 통로의 본래 목적이겠지.

아스파시아

박물관의 관장과 부관장이 몇 년간의 측량 자료를 뒤적이면서 했던 대화를 조금 들었어.

아스파시아

그 사람들은 우리가 있는 이 오래된 지하 수로가 이 도시 지하 구조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아마 역사 자료를 통해 더 깊은 층으로 가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아스파시아

그 사람들은 최근에 계속 한 고고학자가 단서를 찾는 걸 도와주고 있었어. 그 단서들이 가리키는 곳은 아마도 고문서에서 '보물창고'라고 불리는 건물 유적일 가능성이 크겠지.

아스파시아

만약 이 도시 깊숙한 곳에 정말로 다른 거대한 건물의 유적이 숨겨져 있다면……

나란투야

보물창고가 있다고?

아스파시아

……아무것도 아니야. 못 들은 걸로 해줘.

아스파시아

당신은 하나도 두렵지 않은 모양이네.

나란투야

두렵다니? 뭐가?

나란투야

우리의 임무는 모래가 새는 구역을 찾고, 거기 수문을 닫는 거 아냐? 수문이 고장 났다면 우리가 들고 온 재료로 그냥 막으면 되고.

아스파시아

하지만 찾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커.

나란투야

음, 그건…… 좀 아쉽긴 하네. 우리가 실패하면 도시가 모래에 묻히겠지.

나란투야

하지만 우리는 지하에 있으니까 모래가 차오르는 걸 제일 먼저 볼 수 있을 거야. 통신으로 박물관에 있는 사람들한테 빨리 도망가라고 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우린 도망가지 못하겠지만.

나란투야

……잠깐. 설마 이것 때문에 지하 수로에 오겠다고 고집한 거야?

나란투야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데다, 이럴 때는 네가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나트

나란투야, 아스파시아, 들리나요?

나란투야

……들려, 둘이 같이 있어.

아나트

약간의 실마리를 찾았어요.

아나트

주변의 소리에 주의를 기울여보세요. 라즈바르의 태엽 파울비스트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파란색의 파울비스트 모양을 한 기계장치예요.

아나트

심층 구조가 있을만한 곳을 몇 군데 추측해 냈어요. 여러분이 태엽 파울비스트를 위해 벽에 틈을 만들어주면, 날아가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거예요.

아나트

충분한 정보를 얻게 된다면, 우리가 모래가 흘러들어오는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겠지만……

아나트

태엽 파울비스트는 장치를 닫거나 균열을 메우는 일은 할 수 없어요…… 죄송해요, 아무래도 여러분께서 직접 위험을 무릅써야 할 것 같아요.


주바이르

그대는 내가 보여준 기억 속에서 아마 눈치챘을 거다. 그대의 이마 장식은 누님이 썼던 것과 똑같다.

페페

이 이마 장식은 우리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왔던 거야.

페페

나는 왜 우리 가문이 대대로 왕중왕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직책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했었어. 아버지에게도 물어봤지만, 아버지도 이 직책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모르고 계셨어, 그냥 천직이라고만 하셨지.

페페

근데 이렇게 간단한 이유 때문이었구나. 한 아이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였어.

주바이르

누님은 아버지가 언젠가는 돌아오실 거라고 믿었다.

주바이르

하지만, 안타깝게도 누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도 누님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었지.

주바이르

누님이 돌아가신 후, 오직 아버지의 허상만이 나와 함께했다.

페페

……

주바이르

페페, 황금의 도시에 대한 집착은 버려라. 나는 의식을 보석에 봉인하는 방법과 불멸의 육체를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

주바이르

그대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 경험하고, 발견하고,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페페

미안…… 주바이르…… 난 네 누나를 대신할 수 없어.

페페

나도 동생이 있어. 걔는 황금의 도시에서 사관으로 일하고 있지.

주바이르

안타깝군, 그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그들은 종이에 쓸 수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알게 된다.

주바이르

내 어리석은 형님은 사관을 이용해서 마음대로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누님의 쌍둥이 아들 중 하나를 궁전으로 보내라고 강요했다.

페페

그 협박이 천 년 후엔 영광으로 바뀌었다니, 상상도 못 할 일이네.

페페

그 비스트 아리스토크랫의 말에 의하면 모든 사관은 혀를 잘라야 한다고 하던데, 사실이야?

주바이르

지금의 왕중왕이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그건 확실히 효과적인 비밀 유지 방법이다.

페페

……어쨌든 나는 황금의 도시에 가서 동생을 찾아야 해.

주바이르

……

주바이르

그럴 줄 알고 있었다……

주바이르

그렇다면 떠나라, 페페.

페페

아니…… 난 아직 떠날 수 없어.

페페

이 도시를 이대로 버릴 순 없어.

페페

구조체들이 계속 도시에서 난동 부리게 놔둘 수 없어.

페페

이곳은 그냥 내버려둬. 네 말대로 가장 귀중한 보물들은 아직 더럽혀지지 않았잖아.

주바이르

아니, 페페. 이젠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다.

주바이르

사람은 살면서 크고 작은 선택을 하게 되고, 그것들은 서로 얽히게 된다. 그리고 무한한 갈림길 속에서 각자 유일무이한 회로를 새기게 된다.

주바이르

아버지와 누님에게 한 나의 맹세는 이미 회로가 되어 이 보석에 영원히 새겨졌다.

주바이르

절대 어길 수 없다.

주바이르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지.

페페

그렇다면 알려줘, 주바이르. 어떻게 해야 구조체를 멈출 수 있어?

주바이르

답은 이미 말했다. 페페, 이제부터는 그대 자신의 힘으로 해야 한다.

주바이르

이곳을 침공했던 군대처럼, 전력을 다해 나를 잡아라.


아스파시아

사실 그날 아야지와 아야니랑 얘기한 후로 계속 당신에게 말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 일이 있어.

나란투야

이거 진짜 안 부서지네. 시간이 충분하길 빌어야겠는데……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파란색 태엽 파울비스트가 두 사람의 머리 위를 맴돌며 눈앞의 벽돌을 깨라고 재촉했다.

아스파시아는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옳을지도 모르는 통로에 들어가기 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뿐이었다.

아스파시아

당신이 부를 갈망하는 이유를 알게 됐어. 당신은 과거의 부하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고 있지.

나란투야

오, 어디서부터? 급하게 도망쳤던 그날 밤? 아니면 내가 모든 재물을 다 나눠준 때?

아스파시아

당신이 떠난 후의 얘기야.

아스파시아

아야지와 아야니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 그 둘은 벌목장에서 일했지만, 늘 힘으로만 일해서 톱날을 망가뜨리기 일쑤였고, 가게를 봐줄 때는 장부를 엉망으로 기록했다고 했어.

아스파시아

당신이 없는 동안,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마지막 버든비스트를 죽인 뒤 칼을 팔아 솥을 사고 모두를 초대해 잔치를 벌였다고 했지.

아스파시아

……근데 그 덕에 요리 실력이 온 마을에 퍼졌고, 시장에 작은 음식점을 차리게 됐어. 음식점은 매일 문전성시를 이뤘고.

아스파시아

그리고 사막 도적 시절의 이야기를 작은 신문에 연재해 큰 호평을 받은 사람도 있어. 지금은 벌써 당신들이 천 년의 시간을 넘어 샤의 왕좌를 빼앗으러 가는 내용까지 썼다고 하더라고.

아스파시아

대부분 모두 각자의 집이 생겨서 계절에 맞춰 이사할 필요도 없어졌고, 우기에는 지붕을 미리 수리해서 비가 새는 일도 없다고 해. 당신의 부하들은 지금 잘 지내고 있어.

나란투야

……그건 당연히 알고 있지.

아스파시아

당신의 뜻은 존중하지만, 당신이 부하들에게 진 빚은 없다고 생각해.

아스파시아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도시 하나를 통째로 구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아스파시아

그러니까 당신은 도망가. 그리고 고향에 돌아가…… 그다음엔 당신이 짊어진 짐, 당신의 '직책'을 내려놓고 앞으로 나아가.

거대한 바위가 천천히 미끄러지는 우렁찬 소리가 아스파시아의 말을 끊었다.

두 사람이 마치 고대 미궁의 장치라도 건드린 듯, 그 양각이 새겨 있던 벽돌이 갑자기 수로의 벽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그리고 몇 초 후, 두 사람은 벽돌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곧이어 벽 전체가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나트의 말대로 벽 밖은 모래가 아니었다.

텅 빈 어둠이 두 사람 앞에 어떤 거대한 건물의 내부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앞으로 향하는 길은 없었다. 모래가 흐르는 소리가 깊은 곳에서 무척 선명하게 들려왔다. 마치 범람기의 강이 심연 속에서 세차게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다.

발을 내디디면 아마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CG: 53_i08]

그 순간,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손에 든 곡괭이를 버리고 재빨리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모래 먼지가 일며 두 사람은 10보 남짓한 거리를 벌렸다.

나란투야

뭐 하려고?

아스파시아

당신이 뛰어내리는 걸 막으려고.

나란투야

이상하네, 방금 전까진 내가 너를 막고 있었잖아?

나란투야

아까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만약 네가 죽으러 온 거라면 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나란투야

넌 그 둘보다 믿음직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도 결국 내 도움이 필요한 부하였구나.

아스파시아

……말했잖아, 당신이 그런 짐을 짊어질 필요는 없다고.

나란투야

오해하지 마, 난 그냥 직접 보고 싶을 뿐이야. 그리고 내가 누구보다 이 일에 적합하다고 믿을 뿐. 그게 전부야.

나란투야

부하들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난 역시 산더미 같은 금을 원해. 어쩔 수 없어, 난 욕심쟁이니까.

나란투야

“사람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선택을 하게 돼.”

나란투야

너는 이걸 직책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이걸 내 선택이라고 부르고 싶어. 이게 바로 나니까.


나란투야

자, 너는 잘 훈련된 격투가니까 그리 쉽게 당하지는 않겠지? 그럼 난 진심으로 한다. 화내지 마.

아스파시아

……당신에겐 감사한 마음뿐이야, 나란투야.

아스파시아

지금의 난, 당신과 진정한 대결을 펼치는 게 두렵지 않아.

아스파시아

난 내 마음을 믿지 못했어, 왜냐하면 나는 가문을 따라…… 피와 폭력에 관한 것을, 그리고 전쟁을 가장 공정한 유린이라고 맹세했으니까.

아스파시아

하지만 난 굳건한 의지를 가진 사람을 만났어.

아스파시아

어쩌면 사르곤인들의 신념에도 본받을 점이 있을지도 몰라. 나는 내가 내린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러므로 앞으로……

아스파시아

……아니! 왜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아스파시아의 시야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펼쳐진 검은 부채칼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눈을 감았다가 뜬 순간, 지하 수로의 유일한 불빛이 완전히 삼켜졌다.

아스파시아는 확실히 나란투야에게 검은 칼 2자루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장치가 달려있어 칼집에서 곧바로 빼낼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스파시아는 순간 역사 속의 한 엘더즈 쿠란타 무리가 떠올랐다.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행군했으며, 정오의 태양을 삼켰기에 나이츠모라라고 불렸다.

그녀는 기억을 더듬으며 상대가 있는 위치로 돌진해……



……허공만 갈랐다.


나란투야

약간의 모래를 이용한 눈속임과 오리지늄 아츠로 만든 환각이야.

나란투야

그리고 굳이 승패를 가려야 하나? 그냥 먼저 뛰어내리면 되는 건데!

어둠과 환영 속에서 나란투야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아스파시아

잠깐, 나란투야! 이건 공정한 대결이 아니잖아!

나란투야

자, 은메달 하나 추가.


페페

주바이르, 진심이야?

페페

나를 공격하도록 유도해놓고 자신은 빠르게 도망만 다니잖아.

주바이르

어서 포기해라 페페, 난 분명 말했다. 어떻게 해도 헛수고일 뿐이라고.

주바이르

그 무거운 망치를 아무리 세게 휘두른다 한들, 내게는 닿지 않을 것이다.

페페

흥! 지금 무시하는 거야?

주바이르

호오…… 이 홀의 기둥을 부숴서 내 이동 범위를 좁힐 생각인가?

주바이르

좋지 않은 방법이다.

말하는 순간, 모래가 휘날리며 부서진 기둥과 바닥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페페는 수많은 허상을 뚫고 지나 주바이르의 모습을 찾았다.

하지만 주바이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그는 허상 뒤로 재빨리 숨었다.

주바이르

좀 더 집중해야 한다, 페페.

페페

주바이르, 그거 알아?

페페

14살이 되기 전까지 의사들은 나를 허약한 아이라고 판단했어. 이런 무거운 망치는 평생 들 수 없을 거라고 했지.

주바이르

하지만 지금의 그대는 작고 여린 몸으로 그 망치를 잘 휘두르는군.

페페

맞아, 사막과 정글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잃어버린 고대 유적을 찾은 뒤, 고고학 연구를 하기 위해서 사르곤에서 강하기로 유명한 사람에게 부탁해 훈련을 받았어.

페페

17살 때는 혼자서 광활한 사막을 횡단하고, 수십 명의 사막 도적과 맞서 싸울 수 있게 됐지.

주바이르

페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페페

아니, 난 네게 내 능력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야.

페페

난 그냥 어렸을 때부터 내가 하려고 마음먹었던 일은 반드시 해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야.

페페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페페

반드시 해낼 수 있어!

주바이르

아니다, 페페. 그대가 그런 착각을 하는 건 겨우 22년밖에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바이르

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시절, 나는 몰려오는 수많은 적들을 베었다.

주바이르

적의 비명을 듣고 나는 기고만장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이 세상에 내가 얻지 못할 것도, 하지 못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바이르

그땐 모르고 있었다. 내 삶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시간이었다는 것을!

황금빛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고개를 채 돌리기도 전에 페페는 발목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 지팡이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웠다.


주바이르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페페.

주바이르

내 보석 회로에는 아버지의 능묘를 침범한 자를 모조리 죽인다는 지령이 새겨져 있다.

주바이르

그리고 그대의 끊임없는 공격에 회로가 분노하고 있다.

주바이르

그 회로는 모든 걸 끝내라고 나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페페

나랑 이런 게임을 했으면 안 됐어, 주바이르.

주바이르

이 싸움은 장난이 아니다, 페페.

페페

아니, 이건……


주바이르

호오, 눈을 감은 건가.

눈앞이 캄캄해졌다. 페페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눈이 충분히 예리하지 않았기에 되려 방해만 된다는 것을.

어렸을 적 동생과 정원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시절, 페페는 아무리 노력해도 재빠른 동생을 잡지 못했다. 동생의 몸놀림은 마치 린수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그녀는 눈을 감고 있으면 돌로 된 바닥 위를 걷는 동생의 발소리가 매우 선명하게 들린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다 숨었어, 누나. 찾아도 돼.”

바로 뒤에 있어……

“왜 안 오는 거야?”

내가 더 빠르게 뒤돌아서면……

“눈 감고 뭐해? 포기할 거야?”

잡을 수 있어!

두 눈을 감고 페페는 전력을 다해 망치를 앞으로 휘둘렀다. 예상대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