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P-ST-3엇갈린 자와 동행한 자
에기르가 테라 대륙 전역에 통신을 보낸다. 울피아누스는 시본으로 변해버린 고대 문명 연구자를 가로막는다. 더 많은 진실을 밝히고 에기르를 구하기 위해, 어쩌면 그는 정말로 시본과 동행할지도 모른다.
정말 돌아가야 하오?
겨우 그 남자의 행방을 알아냈어.
놈이 누구든, 어느 수렁에 처박혀 있든 상관없어. 우리 딸을 해쳤으니,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줄 거야.
그러면 나도 함께 가겠소. 앞을 가로막는 것이 패밀리, 잔혹한 재앙, 끝없는 해일, 하늘에서 내리는 불비라 해도, 우리 함께 맞섭시다.
신사를 두고 떠나도 괜찮을까?
걱정 마. 고작 몇 명 죽이는 것뿐이니까. 놈들은 진작에 저승으로 갔어야 했어.
또 이별의 시간이 왔구려……
하늘도 취한 벚꽃, 구름 발끝이 비틀비틀 흔들리네~
새로 지은 하이쿠야? 좋은 운율이네. 칼을 휘두를 때 읊기 딱이겠어……
(코를 훌쩍인다)
난 영문을 모르겠네, 왜 우는 거야?
한 암살자는 자신의 딸의 복수를 하면서 유서 깊은 두 가문의 원한을 샀어. 결국 멀리 도망칠 수밖에 없었지.
수년 후, 그녀가 다정한 남편과 이별하고 다시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뛰어든 것도, 다 딸을 위해서였어.
이 캐릭터가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걸 생각하면, 슬픔을 참을 수가 없어…… 내 생각에 이 영화는, 그녀 시점에서 찍어야 해!
……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게 하나 있는데. 이 영화는 패밀리가 그 새로운 도시에 보내는 명함 같은 거야. 우리는 패밀리를 대표해 시사회에 온 거라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보스고, 우리 사업이 영화에서 어떻게 묘사됐는지야……
저번에 괜찮다고 하지 않았어?
괜찮다고? 이 여자 암살자는 왜 여기서 나오는 거야?
게다가 '잔혹한 재앙', '끝없는 해일', '하늘에서 내리는 불비'라니. 이 대사는 대체 누가 쓴 거야?
컬럼비아인들이 하늘에 구멍을 뚫었지만, 쏟아지는 불비라는 게 언제, 어디서 일어난 일인데? 들어본 적도 없다고.
네가 언제쯤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될까?
냉혈한 암살자가 결국은 우리에게 감화되어, 뉴 볼시니에서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손을 씻는다…… 지금 트렌드에 이보다 더 맞는 게 어디 있겠어.
으, 네 말을 들으니 이 영화가 더 구려 보이네. 하지만 네 말은 맞아. 그분 취향에만 맞는다면……
어떤 자식이 스위치를 건드린 거야? 습격인가?!
아니, 빨리 화면을 봐!
……
틴맨 씨?
곧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될 거야. 간단히 말해 줘.
당신들이 계속 온갖 발사 시험체를 하늘로 쏘아 올리는 동안, 난 카즈델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넌 이 일에 대한 내 입장을 알잖아.
네, 젊은 밴시여. 알고 있지요.
내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들이 당신을 대하는 태도와 당신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죠.
물론, 그들과 테라 국가들과의 열악한 관계를 고려했을 때, 만약 그들이 정말로 당신의 계획에 전폭적인 지지를 한다면 그야말로 매우 큰 골칫거리가 되겠죠.
알려줘서 고맙네. 슬슬 프레젠테이션 시간이라……
잠시만요. 제 말을 계속 들어보세요.
내스티 루노레이, 라인 랩 엔지니어링과 주임.
그 약속된 꿈을 공유할 수 있는 건, 결코 살카즈뿐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요.
당신과 당신의 엘프 친구가 함께 추진하는 이 대담한 계획에 대해, 메이랜더 재단은 가능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
메이랜더 재단은 추후 날짜를 정해 계획에 관한 모든 사항을 당신들과 논의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미래 발사계획에 보다 완벽한 재건을 포함한……
스텔라리아 말이지.
맞아요, 바로 그거죠.
내스티? 무슨 일이야, 누구랑 통화하고 있어?
프레젠테이션이 끝나면 회의실, 커피머신 그리고 주말 전부가 필요할 것 같아. 논의할 일이 있거든.
그렇게 나쁜 소식이야?
아니. 이건 좋고 나쁘고 할 얘기가 아니야.
일단 프레젠테이션에 집중하자고. 사일런스도 참석하나?
오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을 거야.
내가 쉐라그에서 돌아왔을 때, 사일런스 책상에 버든비스트 랜덤 박스를 놓아뒀어. 일주일 후에 가봤더니 박스는 열려 있었는데, 산더미 같은 심사 서류에 버든비스트가 파묻혀 있더라고!
하지만 정작 우리를 대신해 프레젠테이션에서 발표할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네.
2분만 더 늦으면 지각이야……
(목청을 가다듬는다)
신사 숙녀 여러분. 프레젠테이션이 곧 시작될 예정이니, 잠시 정숙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의응답 세션에서 이번 계획에 대한 여러분의 모든 질문에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의욕이 넘쳐 보이네.
그러면 먼저……
같은 수법도 두 번 반복되니 지루한걸.
아니…… 퍼디낸드도 당황했어. 이건 계획된 게 아니야! 도대체 이게 무슨……
……우리가 직면한 난관은 서로 간의 갈등이나 재앙을 훨씬 능가합니다. 우린 반드시 공동체를 형성……
에기르의 지도 아래, 우린 반드시 이 난관을 함께 극복해 낼 것입니다.
……
다시 한번 반복하겠습니다.
에기르는 모든 육지 문명에 선언합니다. 우리는 전 인류가 편견과 증오를 내려놓고, 에기르와 함께 방어선을 구축할 것을 요청합니다.
드론 대열이 봉쇄를 뚫고 해수면을 넘어섰습니다. 필요한 정보와 계산 결과가 곧 육지에 도착할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난관은 서로 간의 갈등이나 자연 재앙을 훨씬 능가합니다. 우린 반드시 공동체를 형성해야 합니다.
에기르의 지도 아래, 우린 반드시 이 난관을 함께 극복해 낼 것입니다.
……“에기르의 지도 아래”라.
켈시 선생님, 아직도 육지 쪽을 바라보고 계시는군요.
음…… 마치 두고 온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모습 같아요.
자식…… 이라.
짧은 통신 하나에 대륙의 수많은 세대가 목숨을 바쳐도 얻지 못했던 지식이 담겨 있어…… 푄 고온지대와 인피 빙원의 지리 데이터, 심지어 대륙의 깊은 북쪽의 영상 자료까지 말이지.
이것도, '성의를 보이는' 방식인가?
지식을 공유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성의를 보이는 건 의도적인 행위이니, 이 둘을 연결 짓긴 어렵겠군요.
하지만 상황이 급박하지 않았다면, 우린 더 신중하게 이 통신이 대륙의 동료들에게 과도한 충격을 주는 것이 아닌지 평가했어야 했습니다.
내가 우려하는 건……
아마도 우선은 현재의 위험한 상황에 대해 더 주목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클레멘티아 집정관님, 당신의 판단으로는 밀리아리움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모든 함대가 교대로 출항하며 24시간 연속으로 화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벌써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죠.
시본의 동향에 큰 이상은 없어요. 인공 중력장의 에너지 공급이 점차 고갈되고 있고, 시본에 대한 무기의 살상력 역시 서서히 떨어지고 있지만…… 아직 예상 범위 내에 있습니다.
이 도시는 최장 보름 정도 더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에기르 본토의 지원군이 도착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지?
일주일 정도로 봅니다.
수십억 개의 부유 기계가 안정적인 정보 흐름을 유지하고 있어요. 압축 상태의 함대와 도시들이 그 안을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 순식간에 대양을 건널 수 있죠.
하지만…… 힘을 모으려면 여전히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주일이라…… 금방이군.
켈시 선생님, 걱정을 숨기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와 육지인의 사고방식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어요. 단순히 성의를 표시하는 것 만으로는 양자 간의 효과적인 협력을 이루기에 충분치 않겠죠.
우리 모두 본토에서의 지원이 최대한 빨리 도착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당신은 앞으로의 접촉과 교류가 당신의 통제를 벗어날까 걱정하고 있기도 하죠.
뿐만 아니라, 스카디와 박사가 당신이 계획한 선로를 벗어날까 봐 걱정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스카디의 숨겨진 사정도 이미 알고 있겠군.
제 조력자가 스카디, 박사 그리고 마르투스가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만난 걸 기록했습니다……
두 사람의 정체에 대한 비밀을 알아내는 것보다, 그 정보의 확산을 통제하는 게 더 어려웠죠.
체내에 '퍼스트본'이 깃든 어비설 헌터스, 고대 문명의 흥망을 목격한 전인류의 과학자…… 그들은 에기르에 정말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단순한 진화의 논리대로라면, '퍼스트본'은 자신을 죽인 자에게 동족의 미래를 맡기지는 않았을 겁니다.
시본이 어떻게 파멸에 맞서는 최후의 해답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우린 아직도 그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죠.
기억을 잃었든 잃지 않았든, 박사는 여전히 그 사명을 짊어지고 있어요. 만물의 소멸이라는 것이 어디서 시작되고 테라가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우리는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스카디와 박사는 에기르가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겁니다.
스카디는 자신의 혈통과 마주하게 될 것이고, 박사도 자신의 의무를 다할 거야. 하지만 이는 누군가의 '계획'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어야만 하지.
난 에기르가 그들의 신분을 알게 된 순간부터, 두 사람을 이용할 방법을 이미 계획한 건 아닌지 걱정돼.
호라티아는 분명, 자신에게 뭔가 숨기는 게 있지 않냐며 제게 물어봤죠.
집정관님, 당신은 어떻게 대답했지?
걱정하지 마세요. 호라티아는 아직은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정말 스카디와 박사를 소중하게 여기시는군요. 문명의 존망이 걸린 대재앙에 앞에서, 여전히 이 둘의 선택을 존중해 주려고 하시는 것을 보면요.
다만, 우리에겐 헤맬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요. 결국 제가 호라티아를 얼마나 오래 속일 수 있을까요?
호라티아 집정관에게 숨기기로 했다면, 당신도 분명 계획이 있는 것이겠지.
저는 이미 글래디아와 합의했어요. 우리는 군단의 이름으로 어비설 헌터스에 대한 모든 연구를 인계받아, 헌터들이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할 겁니다.
그리고 나와 박사…… 우리 역시 에기르 본토를 방문해서, 직접 모든 수수께끼를 풀고 싶어.
아마도 우리에겐 에기르의 안내자가 필요할 것 같군.
음…… 기꺼이 그렇게 해 드리죠.
카시아는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겁니다. 밀리아리움의 부화실은 이미 안전한 구역으로 옮겨졌어요. 도시가 함락되지 않는 한, 카시아가 남긴 아이는 무사히 태어날 수 있을 겁니다.
공공 양육소에서 그 아이를 키우게 되겠죠.
……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고 있어요. 일개 심해 신도의 결말 때문에 굳이 당신을 이곳으로 불렀을 리가 없죠.
아비투스 씨, 지금도 모든 것이 파멸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여전히 역사를 믿어요. 이미 쓰인 역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바뀌지 않죠.
하지만 비장한 승리도 그 자체로 역사의 일부가 될 거예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기쁘네요.
조르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클레멘티아 집정관을 만나고 왔어요.
제 그동안의 생각, 행동 그리고 봤지만 말하지 않은 것들을 그대로 집정관님에게 말했어요.
저는 평의회의 심문을 받았지만 그들은 제가 타락자라고 불리기엔 부족하다 판단했어요. 전 그 위험한 선의 옆에 서서 관망했고 어쩌면 그 선을 밟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단지 그뿐이었죠.
평의회의 최종 결론은 제 직위를 유지시키고, 계속 밀리아리움에 머물러도 된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네요?
그들이 본 것은 제 참회였지만, 저는 제 침묵과 부작위에 의한 결과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전투의 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오만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만약에 제가 그때 카시아의 이상 행동을 보고했다면……
많은 것들이 바뀌었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저는 밀리아리움을 떠나기로 했어요.
그럼 어디로 가실 건가요? 에기르 본토로 돌아가시나요?
본토보다 더 먼 곳으로요.
더 먼 곳이요?
항로가 열렸고 에기르는 곧 시본에 의해 중단된 여러 작업을 재개할 거예요.
원양 함대가 다시 테라 너머를 탐험하겠죠. 물론 이번엔 다른 항로를 통해서겠지만요.
우린 림 빌리턴이라는 광업 국가에서 출발해 대양의 끝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밀리아리움에 머문 채, 슬픔과 자책감, 절망에 모든 기력을 빼앗기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미지로 향하는 여정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곳에선 앞으로 나아가든 아래로 내려가든, 무엇을 맞닥뜨리게 될지 알 수 없죠…… 우리는 당시 브레오간이 했던 것처럼, 미지의 세계를 탐구할 것입니다.
그, 그 말씀은?
맞아요. 조르디 폰타나로사, 난 당신에게 우리와 함께 이 긴 여정에 동참하자고 제안하는 겁니다.
이건 단순히 제 개인적인 바람이 아니에요.
조르디, 당신은 제게 당신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한 적 없다고 했었죠. 그 점에 대해 사과해야겠어요. 하지만 그때 적어도 한 가지, 진심으로 당신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 속했는지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의 흔적이 모두 사라졌다 해도, 당신은 여전히 자신의 미래를 에기르와 긴밀히 연결시킬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중대한 일이라……
괜찮아요. 에기르는 모든 시민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우리는 심사숙고 끝에 이뤄진 이별을 축복하고, 긴 이별 후의 귀환을 더욱 기대하지요.
……선생님.
오늘 이 등대의 유지보수 작업은 끝났습니다. 여기 오신 건 다른 등대에 문제가 있어서인가요?
아니, 자네와 마찬가지로 바다를 보러 왔을 뿐일세.
다른 재판관님 말로는, 저희가 밀리아리움에 있을 때도 선생님께선 매일 시간을 내어 바다에 오셨다면서요?
이베리아가 조약돌 하나를 바다에 던졌다네. 그 조약돌이 거대한 파도를 일으킬까 봐, 조약돌이 조용히 물밑으로 가라앉아 영영 소식이 끊길까 두려워하고 있었지.
다행히도 조약돌은 바라던 대로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고, 이베리아는 바닷속 광경을 엿보았지…… 그리고 결심을 굳혔다네.
그대는 이번 방문 임무를 잘 완수했어. 자네 인생에서 고개를 들고 가슴을 펼 순간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일 것일세.
네, 네!
선생님, 저는 최근에 그란파로에, 예배당에, 티아고 아저씨가 살던 장소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자네는 원래 티아고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만났어야 했거늘.
우리는 후회로 가득 찬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 자네가 재판소를 이러한 후회의 원인이라 생각한다면, 나도 굳이 반박하지는 않겠네.
짐을 꾸려야 한다면, 아이린이 도와줄 수 있을 걸세.
어?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정말로 그냥…… 다녀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말은, 아직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는 뜻이로군.
네.
전에 제게 말씀하셨죠, 재판소가 제가 에기르로 돌아가는 걸 허락한 것도 일종의 시험이라고요. 그 말은 결국……
정반대일세, 조르디. 절대 혼란과 잠깐의 망설임을 혼동해서는 안 되네.
그대는 이미 등불을 들어 눈앞에 놓인 갈림길을 보았지. 단지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 아직 결심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야.
짙은 바다 안갯속에서, 두 길은 모두 진흙탕처럼 보이겠지. 그로 인해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자네가 아니라네.
……
조르디 폰타나로사.
그대가 그 에기르의 학자를 따라 미지를 향한 여정에 나서기로 선택한다면, 재판소는 막지 않을 것일세. 서기 한 명의 거취가, 해안에 부딪치는 파도의 기세를 바꾸지는 못할 테니.
만약 그대가 해안에, 이베리아에 남기로 선택한다면 자네는 이전보다 훨씬 고생스럽지만 더 의미 있는 책임을 져야 할 걸세.
이것이 이베리아가 그대에게 거는 기대일세.
……선택권은 자네에게 있네.
알, 알겠습니다, 선생님.
참, 아이린이 자네가 요즘 불면증이 심하다고 그러던데. 어젯밤은 어땠나?
한밤중에 많은 비가 내렸고 하늘에는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죠. 새벽에 처리해야 할 긴급 상황이 두세 건 정도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아주 편안한 밤이었습니다.
시본도 꿈을 꿔?
꿈은 생각이나 감정이 흩날리는 불빛. 하지만 지금의 내게 남은 것은 본능뿐.
……
왜 또 이 장면이……
유적지들의 어두운 통로를 따라 내려가면, 길 끝에서 거대한 생물의 촉수가 선체의 벽에 살며시 붙어 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난 발을 내디뎠고, 짙푸른 나무의 그림자를 지나 그 앞에 섰다. 난 손을 뻗었다.
(알 수 없는 언어) 주의, 동면 프로그램이 3분 후 시작됩니다.
(알 수 없는 언어) 실시간 번역 프로그램이 곧 종료됩니다. 필요한 사항을 신속하게 전달해 주십시오.
……
(알 수 없는 언어) 이샤믈라, 이것은 너와 내가 공유하는 이름…… 이것은 너와 내가 함께 내린 결정.
(알 수 없는 언어) 우리는 서로 신뢰하고, 우리는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어. 그렇지?
(알 수 없는 언어) 난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너를 지켜볼 거야.
아니, 저건 내가 아니야.
이건 내 꿈이 아니야. 이건…… 이샤-믈라의 기억인가?
음.
너는 이미 많은 소굴을 지나 나를 쫓아왔구나. 어비설 헌터스여.
본토에서 오는 지원군이 곧 도착할 거고, 네 동족과 에기르 군단의 대립은 더욱 치열해질 거다. 그런데 네놈은 이 상황에 여기를 떠나는 건가?
육지는 이미 네놈들이 이동하는 최전선이 되었다. 시본, 왜 돌아서서 다시 깊은 바닷속으로 돌아가려는 거지?
이 싸움과 새로운 '퍼스트본'의 각성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
예리하구나, 헌터.
난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네놈을…… 네놈들의 존재를 발견했을 뿐이다.
너희들은 이샤믈라의 몸에 증거를 남겼지.
심해 교회 최초의…… 창립자.
네가 그림자 속으로 숨어든 건, 내 흔적을 찾기 위해서인가?
그림자에 섞일 수 있는 건, 그림자뿐이지.
재미있는 헌터로군.
넌 무엇을 알고 싶은 것이냐?
모든 것.
난 널 알고 있다, 헌터여. 넌 스카-디의 동료였지.
에기르가 네 모든 것을 부정한 건가?
이 나라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부정했다. 스스로를 파멸시킬 정도로 많이.
네가 노리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군.
애초에 숨기려 한 적도 없다.
나는 타락의 대가로 답을 얻을 것이다.
(두개골 속의 핵이 교차한다)
헌터여, 네가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은, 내가 알려줄 수 있다.
너의 다음 행방에 대해, 맨틀 유적군의 봉쇄된 통로에 대해, 다른 몇몇 '퍼스트본'들이 각성하는 형식에 대해……
에기르에 대해, 그리고, 테라가 곧 맞이할 다음 파멸에 대해……
……
종족에겐 사심이 없다. 종족은 헌신적이다. 종족은 모든 것을 기꺼이 공유한다.
그것은, 네가 진정한 종족의 일원이 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울피아누스가 시본의 '눈길'을 마주했다.
시본에게 이목구비는 없었지만 울피아누스는 시본이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투명한 신체를 통해, 그 미세하게 움직이는 핵들을 통해, 울피아누스는 자신의 눈을 바라보았다.
너는 방금, '타락'이라고 말했나?
아니다, 헌터여. 살과 피를 섞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고를 수용하여 굴욕을 환희로 바꾸어야 한다. 넌 종족을 신뢰해야 하고…… 네 본능을 믿어야 한다.
넌 상상을 초월하는 사명을, 종족의 사명을 짊어져야 한다.
종족의 품 안에서 넌 모든 진실을 모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때의 넌 그 진실을 에기르로 가져갈 수 없게 될 것이고, 원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시본이 울피아누스를 지나 소굴의 더 깊은 곳으로 헤엄쳐 갔고, 시본의 뒷모습은 곧 울피아누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직 소굴만이 울피아누스를 향해 입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감염된 산호들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고, 수많은 기이한 형태의 생명체들이 그 사이사이를 헤엄치며 희미한 빛으로 깊은 바다의 어둠을 몰아냈다. 그들은 성장하고 있었고 곧 거대한 파도를 이룰 것이다.
하지만 울피아누스는 그들을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금빛 바다를 지나, 모든 상처, 모든 살갗, 모든 세포, 모든 혼란스럽고도 선명한 꿈을 가로질러……
그가 절대로 볼 수 없는, 자기 자신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
울피아누스는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