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P-2평의식 환영
아이린은 해양 순찰대 지휘관 세쿤다를 따라 데이터 분석가 실종 사건의 진상을 조사한다. 글래디아는 평의회로부터 어비설 헌터스에 나타난 여러 이상 징후에 대해 질의를 받는다. 모두가 투지장에 모이는 와중에, 울피아누스가 조용히 박사 곁에 나타난다.
그동안 여길 들어온 사람은 없었나?
없었습니다.
방 안에 있던 조력자의 중앙통제실 장치도 확인해 보았지만, 조작된 흔적은 없었습니다.
저기, 이 기록은 어떻게 확인해?
열람 권한을 부여해 드리도록.
네.
아, 고마워!
세쿤다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장치를 떼어냈다. 그녀의 펜 끝이 공중에서 이리저리 움직였고, 해조류처럼 얽히고설킨 선들이 장치 표면에 끊임없이 나타났다.
당신 지휘관은 지금 뭘 하는 거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건 세쿤다 지휘관님의 사고를 빠르게 하시는데 도움이 됩니다. 지휘관님의 습관인데 연구원 시절부터 그러셨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키워드가 쓰여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지휘관님만 알 수 있는…… 음, 추상화 같은 겁니다.
(책들은 두께 순서대로 정렬되어 있고, 조개껍데기 장식품은 크기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다. 투지장에서 다운로드한 모든 자료는 시간순으로 분류되어 있어.)
(해조 지방질 크림은 피부 건조와 탈수를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지. 밀리아리움이 해안에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이 정도 양이면 3년은 충분히 쓸 수 있겠어.)
(평범한 에기르 여성이야. 신중하고 심지어 소심하고 고지식해 보일 정도야. 발전계획소가 제공한 자료와 일치해.)
(저 소형 수경 재배 상자들은……)
저 상자들은 뭐에 쓰는 거지? 다 비었는데 왜 아직도 벽에 걸려 있을까?
맞아요. 수경 재배 상자가 실마리가 될 것 같네요.
방 안의 모든 식물 재배 관련 장비들을 스캔해.
네.
그리고 툴리아 씨의 기록에서 관련 정보를 찾아보도록. 이런 방면에 취미가 있었을 수도 있어.
툴리아 씨는 생태 예술 창작소에서 일한 적이 있으며, 주로 멸종 위기의 심해 조류 배양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생태 예술 창작소의 자료에 따르면……
예술가의 정성스러운 재배로, 이 심해 조류들은 성장과정에서 서로 뒤엉키며 생명의 발전 과정과 역동성을 담은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될 수 있다…… 라고 합니다.
이 소형 수경 재배 상자들은 툴리아 씨의 개인 자산입니다. 여기 툴리아 씨의 당시 작품 영상이 있습니다.
아름다워.
……
하지만, 이 수경 재배 상자들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던 것 같아.
방금 기록에서도 나와있듯이 툴리아 씨는 부서를 옮긴 후 항로 계획에 합류했습니다.
어째서 과거의 생활을 포기한 걸까?
음. 그녀의 실종은 경력 상의 변화와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스캔 결과는 어떻지?
각종 식물 재배 장비에는 특이 사항이 없습니다. 하지만, 방의 통합 단말기에서 한 건의 작업 기록을 발견했습니다.
툴리아가 실종되기 이틀 전, 비콘탑 중앙 통제실에서 데이터를 다운로드한 뒤 자신의 방에서 백업본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방에서 백업본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툴리아 씨의 일정을 추적하면서, 중앙 통제실에 연락해서 그쪽의 다운로드 기록부터 데이터 내용을 역추적하도록.
툴리아 씨가 실종 전에 직장과 집을 일상적으로 오갔다면, 동료나 친구들이 동향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렇습니다.
주변 인물에 대한 조사는 준비되었나? 신고자는?
모두 준비됐습니다. 곧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
조르디, 내가 도와줄 게 있나요?
죄송해요, 머릿속이 질문으로 가득해서……
이 금속…… '나무'라고 해야 할까요? 여기에 질문하면 되나요? 어렸을 때 고목이 지식을 보관한다는 전설을 들은 적은 있지만, 이런 건 본 적이 없어서요……
당신이 '나무'라고 부른 산호 모양의 장치는 거대한 통합 단말기예요. 에기르 수천 년에 걸친 지식과 문화의 결과물이죠.
우리의 생각, 지식, 행동, 감상, 심지어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한 많은 질문들이 모두 여기에 저장되어 있어요. 이것이 투지장의 핵심을 이루고 있죠.
그러니까, 투지장이란 결국……
위대한 인류학자이자 고대 문명 연구자인 마르투스가 최초로 아이디어를 내고 건설을 주도한 공공시설이에요.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설계죠.
해수면 위에서 서로를 지탱하는 환초 도시들과 해구 아래의 모듈식 도시 네트워크를 제외하면, 우리의 다른 도시들은 대부분 제각각의 특색을 갖고 있고 동일한 설계는 매우 드물어요.
하지만 많은 도시들이 약속이나 한 듯 마르투스의 설계를 채택해 자신만의 투지장을 만들었죠.
주변 사람들을 보세요. 사람들은 이곳에서 생각하고, 질문하고, 토론하고, 결국 납득을 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가장 복잡한 공식, 가장 오래된 도면, 가장 아름다운 시…… 그리고 가장 적합한 길. 모두 이곳에서 탄생돼요. 마르투스는 바로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 했겠죠.
당신이 계속 언급하는 마르투스는…… 어떤 분이셨나요?
마르투스가 에기르에 공헌한 바를 세세히 이야기하자면 꼬박 하루를 써도 부족할 거예요. 하지만 그것 말고 그 성격에 대해서도 조금 알고 있죠.
그분을 아시나요?
아니요, 마르투스는 200여 년 전 인물이에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에기르에서 사라졌죠.
하지만 그 괴짜 같은 성격은 우리 학과 멘토들이 즐겨 이야기하는 주제예요. 마르투스는 이론 추론 능력이 매우 뛰어났지만, 스스로 결론 내리는 걸 매우 싫어했다더군요.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이미 확실한 것에 대해서도, 자기 자신과 오랫동안 토론을 한 후에야 결론을 내리려 했다죠.
어떤 이들은 마르투스가 사물의 가치와 의미를 지나치게 중시해서 이런 끝없는 논쟁에 빠졌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본성 아닐까요?
그래서 마르투스가 투지장 건설을 주도한 겁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든 자신과, 또 다른 이들과 사색을 나눌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는 사실이 증명이 되었죠.
제게 토론할 정도의 견해는 없습니다, 아비투스 씨…… 하지만 정말 많은 질문이 있어요. 당신에게 물어봐야 할까요, 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까요? 아니면 이 단말기에?
……
우리의 소소한 대화는 더 큰 논쟁을 위해 잠시 미뤄야 할 것 같군요.
무슨 일이죠?
여기서 곧 중요한 평의회가 열릴 예정이에요. 당신의 세 동행자와 관련된 일이죠.
어비설 헌터스 말씀이세요?!
어머, 당황한 육지 친구를 보이는 것 같은데요? 긴장한 얼굴로 우릴 걱정하고 있어요.
(손을 흔든다)
너무 멀리 있어서 알아채기 힘들 거야.
이미 다른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어.
이 평의회는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있어.
어비설 헌터스는 원래도 충분히 주목을 받지만, '죽었다 살아난' 스토리가 더 많은 극적인 요소들을 더했죠……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비설 헌터스'는 이미 이 무대의 주인공이 됐어요.
상어, 이 평의회가 우리의 마지막 '조사'지?
솔직히 난 이제 좀 귀찮아졌어.
- 스펙터, 넌 괜찮아?
- 스카디, 침착해.
- 스케일이 꽤 크지만, 환영식 치르는 셈 치자.
어비설 헌터스는 저자세를 유지해야 해. 박사, 우리도 신중할 필요가 있어.
- 로도스 아일랜드의 입장은 항상 이렇게 미묘하다니까.
맞아. 이번에 우리는 단순히 두 나라를 중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와 육지라는 두 문명을 중재하는 거야.
잠시 뒤에 너희와 헤어져서 글래디아를 지원하러 갈 거야. 회의가 끝난 후에는 공식적으로 에기르의 집정관과 접촉해 해양과 육지의 협력이 성사될 수 있도록 할 거야.
다만, 이 도시와 우리가 처한 상황은 아직 불분명해. 주목을 받고 있다 보니 자유롭게 행동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
- 그래도 네가 데려온 '조력자'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적을 거야.
- 그러니 내가 상황을 봐가며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지?
맞아. 행동에 주의해. 집정관과 협상을 할 때 갑자기 임무 목표를 바꿔야 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으니까.
박사님, 켈시 선생님은 특정 화제에서 유난히 수사적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지 않나요?
켈시는 늘 빙빙 돌려 말하지 않았나?
우리 의사 선생님은 너무 많은 걸 고려하느라 자신의 걱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러요.
박사님, 에기르의 솔직한 의사소통 방식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신가요?
- 동의해.
- 켈시도 본인만의 생각이 있어.
걱정 마, 나와 상어가 당신을 잘 보호할 거야.
그나저나 제2대 대장은 왜 아직도 안 왔지?
제2대 대장은 클레멘티아 집정관과 함께 나타날 거예요. 결국, 오늘 중앙에 서야 할 사람은 그녀니까요.
저기, 당신이 로렌티나 씨?
고문님, 역시 여기 계셨군요.
이번 환경 샘플의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 번 보시고 추가적으로 유전자 검사가 필요할지 판단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 미안하네…… 메시지를 보냈었군. 아직 단말기를 확인하지 못해서 말이야.
고문님께선 이번 어비설 헌터스 평의회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네요.
예전에 어비설 헌터스 연구소에서 일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 일은 언급하고 싶지 않군.
그랬었지. 난 그곳에서 유전자 키메라 방식을 연구하며 어비설 헌터스를 위한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개조 방법을 찾고 있었네.
어비설 헌터스 계획을 좋아하지 않으셨나요?
참혹한 희생을 치르고도 제대로 된 성과는 얻지 못한 실패한 프로젝트일 뿐이야. 좋고 말고 할 게 없지.
하지만 글래디아 일행이 아직 살아있다는 건 매우 중요하네. 그들을 위해서라도 난 와야 했어.
그 사람들과 관계가 좋으셨나 보군요?
하하. 글래디아도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겠군.
아비투스 선생님, 옆에 앉아도 될까요?
물론이지, 카시아. 조심히 앉아. 방금 배아 분리 수술을 받았으니 아직 회복이 필요하니까.
이분은 조르디라고 해. 이베리아에서 온 손님이야.
고마워요. 안녕하세요.
아, 안, 안녕하세요.
아비투스 선생님, 오늘 참석자가 너무 많은데요?
3개월 전 시설관리소도 도시 유닛 프레임 개조 때문에 평의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 관련 부서는 단 두 곳뿐이었죠.
평의회는 문제 해결을 최우선으로 하지.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부서 내에서 해결할 수 없을 때만 간접적으로 관련된 부서도 참여를 하게 돼.
하지만 지금 투지장이 벌써 절반 정도나 찼어요. 어비설 헌터스의 귀환이 정말 이렇게 파급력이 큰가요?
약 200년 가까이 논쟁을 거쳐 실행된 계획…… 그 이념이 에기르의 근간을 흔들고, 그 동향은 에기르의 명맥을 좌우하고 있어.
게다가 항로 계획이 가장 중요한 단계로 접어들었지. 예상 밖의 모든 상황은 주목할 가치가 있어.
올라오는 보고만으로는 결코 완벽한 결론을 얻을 수 없지. 클레멘티아 집정관은 더 많은 분야로부터 전문적인 판단을 들을 필요가 있어.
하지만 현장에는 자발적으로 방청하러 온 사람들도 많을 거야. 이런 민감한 시기에 헌터 세명의 귀환이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지.
난 이 평의회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네가 참석할지도 모른다고 해서……
당신은?
아, 미안해.
내 이름은 루실라야. 예전에 네 부모님과 한 번 만난 적이 있어!
표척, 잉크…… 당신, 이 도시의 돔 시스템에서 일하시나요?
나, 나는 그곳에서 일하다 작년에 자리를 옮겼어. 하지만 여전히 시설관리소에 있지. 지상에서 도시 유닛 프레임 점검과 해류 측량을 담당하고 있어.
“태양을 시기하지 마세요. 우리는 스스로에게 영원한 별무리와 무한한 바다를 선사했으니까요.”
……
아주 어렸을 때, 공공 양육소의 보육사가 우릴 데리고 여기서 공연을 한 적이 있어.
우리의 구상은 초소형 광학 기계를 나열하고, 불빛의 명암 변화로 사람이 사고를 할 때의 신경의 움직임을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것이었지.
모두가 오랫동안 연습했어. 하지만 공연 당일, 아주 드물게도 투지장이 고장 났고 순간 전체가 어두워졌어. 오직 그 작은 기계들만 빛을 내고 있었지.
그때 관객 중에 잘 어울리는 아저씨와 아주머니 한 쌍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마술을 부렸어. 한 줄기 빛이 투지장을 비췄고, 돔에서 촉수가 뻗어 나와 우리의 작은 기계들에게 춤을 청했지.
모든 게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고장이 오히려 정교하게 계획된 것처럼 보였어……
그 둘의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 상상이 가요. 어쩌면 고장은 그 두 사람의 짓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발전계획소에서 직업 평가를 할 때, 난 망설임 없이 돔 시스템을 선택했어. 그때가 돼서야 그분들이 유명한 돔 설계자라는 걸 알았지.
……그 후로 두 사람을 다시 보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이 당신에게 영감을 줬군요. 단 한 번의 만남이, 타이밍에 딱 맞았나 봐요.
그런데 방금 직무를 변경했다고 하셨죠. 우리 머리 위의 투명하고 거대한 구조물과 이미 인연을 맺으셨는데, 왜……
그건……
루실라! 평의회가 곧 시작해. 이쪽에 앉을 거야?
미안해, 로렌티나 씨. 동료가 부르네. 돌아온 걸 환영해. 모든 일이 순조롭길 바랄게.
……
올 사람들은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어, 박사. 어디 가려고?
- 어비설 헌터스가 너무 눈에 띄네
-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을 뿐이니 신경 쓰지 마.
그래, 넌 정말 켈시의 말을 잘 듣는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밀리아리움이 최근 이베리아와 성공적으로 접촉했습니다. 이는 항로 계획이 가장 중요한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합니다……
거대한 산호 모양 단말기에서 한 줄기 빛이 떨어지며 클레멘티아를 감싸고 공중에서 가벼운 고리를 만들어낸다. 그 고리는 집정관의 말에 맞춰 춤을 추듯 움직인다.
빛줄기들이 얽히면서 도시와 파도, 헌터와 시본의 모습을 형성화한다. 말이 영상으로 구현되고, 이 순간 소리는 무늬를 만들어낸다.
조금 전까지 왁자지껄 떠들던 군중의 소리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 중요한 시기에 세 명의 어비설 헌터스 글래디아, 스카디, 로렌티나가 무사히 에기르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의 건강검진 결과와 글래디아가 제출한 임무 보고서가 투지장 단말기로 업로드 되었으니, 여러분도 이미 확인하셨을 것입니다.
거기에 나온 여러 이상 상황에 대해……
어비설 헌터스 총전쟁설계사 중 한 명이자, 에기르 명예 군단장인 글래디아 집정관이 여러분의 질의를 받겠습니다.
당신은 에기르인들이 앉아 있는 좌석의 몇 행을 지나쳐 상대적으로 뒤쪽자리에 앉았다. 여기서 보면 투지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한눈에 볼 수 있었고, 주변 좌석도 많이 붐비지 않았다.
평의회가 시작되었다. 거대한 원형 건물 안에서 아무도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의 발언은 매우 선명하게 들렸다. 글래디아가 전장의 중앙에 섰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매우 은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깊고 아득한 돔이 당신 옆에 그림자를 드리운 것 같았다.
소리 내지 마라.
아니면 목을 비틀어 주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