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W-4일파만파
틴맨은 습격당하고, 박사는 모함당하며, 야라는 압박을 받는다. 바람이 사일런스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몸을 돌렸고,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등장 오퍼레이터: 사일런스, 오올헤약, 틴맨, 이프리트, 사리아, 내스티, 로즈몬티스, 뮤엘시스, 사일런스 더 패러디그매틱
후우…… 익숙한 하수구 냄새에, 가로등 불이 닿지 않는 익숙한 골목길……
이런 골목들은 왜 하나같이 다 비슷하게 생긴 건지요.
단기간에 황무지에 도시를 세우려니, 도시를 계획하는 사람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은 걸까요.
오래 걷다 보니 새로운 풍경이 그리워지는군요.
안 그런가요, 우리 부하님? 위에서 이 도시를 내려다보는 느낌도 가끔은 괜찮죠?
텅 빈 골목에 갑자기 한차례의 바람이 불었다.
담배 연기는 뿜어내기 바쁘게 바람에 날려 모두 금속 틈새로 다시 들어갔다. 틴맨은 기침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지 잠깐 고민했다.
그러다 담뱃불이 꺼지자 누군가 이미 라이터를 건네왔다.
이런 역사도 없는 도시에 '독창성이 없다'는 평가는 참 슬프네.
……오올헤약.
연락이 예정보다 3일이나 늦었군요.
어머? 내가 기억엔 당신도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은 아니었는데.
소음이 너무 시끄럽군요. 왜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거죠?
잊은 거야? 여기는 13구역의 공장에서 아주 가깝잖아.
그날 떨어진 물건은 찾았나요?
그래,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각만 남았어. 별의 조각만으론 길 잃은 사람을 인도해 줄 수 없지.
그럼 크리스틴의 행방은요?
음……
하늘은 왜 봅니까?
역시 고층 빌딩이 없는 곳은 별하늘도 잘 보이네.
크리스틴이 저기 별 어딘가에 숨은 게 아닐까? 정말 그렇다면 아무도 찾지 못하겠지?
……오올헤약, 당신은 두 달 전에 도서관에 갔었죠.
나는 역사학자잖아? 도서관에 가는 게 내 본업 아닌가?
거기는 메이랜더의 '도서관'이에요.
그런 행동을 허락한 기억은 없습니다.
알다시피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편이거든.
지금처럼 말인가요……?
상사 씨, 지금까지…… 정말 궁금했던 질문 하나만 할게.
뭔데?
……담배 연기 말이야.
내뱉은 거 빼고, 몸에 들어간 얼마 안 되는 그 연기는…… 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그게…… 그 꼬리로 제 가슴을 겨누고 있는 이유입니까?
당신 몸에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역사의 냄새가 나.
가능하다면 자세히…… 자세히 당신의 부품 하나하나를 연구해 보고 싶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 머리, 가슴, 아니면 팔과 다리?
……오올헤약.
당신은 정말로…… 메이랜더 재단을 배신하는 게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까?
물론…… 아니지.
메이랜더는 이 나라의 가장 많은 비밀을 쥐고 있어. 그리고 이 컬럼비아에서 비밀은 돈이 되고……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되기도 해.
내가 역사 협회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데만 3년이 걸렸어. 그리고 당신의 믿음을 얻는 데 또 3년이 걸렸고.
나한테 6년이라는 시간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 메이랜더 특수요원이라는 신분은…… 내 인생의 7분의 1이나 마찬가지야.
그럼 더더욱 남은 인생을 감옥이나 도망치는 데 허비하면 안 되죠.
나도 알아…… 아주 잘 알지.
하지만…… 내 남은 시간 동안 그토록 꿈에 그리던 비밀에 다가갈 수조차 없다면, 10년을 더 살든 1분을 더 살든 무슨 차이가 있겠어?
메이랜더는 그 누구도 접해선 안 될 정보에 접근하게 두질 않습니다. 특히 배신한 요원에게는 더욱 더요.
아쉽지만 당신의 마지막 순간에 볼 수 있는 건 나뿐이겠군요.
그렇다면 별에 기도해야겠네…… 죽은 자는 입을 열기 어려우니까.
좋아, 다른 질문을 하죠……
……정말 날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
윽……?
당신이 공기를 다룬다 해도 나한테 영향을 줄 리는 없는데요…… 아니, 이건 쿠쿨칸의 능력이 아니군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네.
다행인 건…… 나도 당신을 꽤 잘 안다는 거지. 평범한 오리지늄 아츠는 당신에게 영향을 줄 수 없겠지만……
……주술인가요.
이건 살카즈의 가장 오래된 주술의 힘, 영혼을 구속하는 주술이군요.
이런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지?
그 당시 죽음의 황무지에 깊이 들어가 살카즈 왕정의 유적지를 조사했을 때, 우리 메이랜더 재단의 가장 뛰어난 요원이 전례 없는 생명을 위협하는 중상을 입었다지……
메이랜더에 그 자료가 남아 있을 줄은 몰랐군요.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메이랜더 극비 자료실에 들어간 게, 설마 단순히 크리스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뭐든 다 기록하는 게 좋은 습관은 아니라고 주의를 줬었는데 말이죠.
훗……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렇게 긴 기억을 가질 수 있는 건 장생자들 뿐이잖아. 당신처럼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려면 일반인은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처럼 수명이 짧은 종족이,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의 지배에 저항하겠어?
후우…… 하아……
내 몸을 파괴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텐데요?
나한테도 2분 정도 기다릴 여유는 있어.
그래도, 얼굴 정도는 보여주는 게 예의 아닙니까……
……밴시?
——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강조하지 않았어?
네가 상사를 죽이는 걸 지켜보는 건 관심 없다고 했지.
하지만, 저 사람은 그냥 네 상사가 아니잖아.
어라? 둘이 구면인가?
아니.
다만, 내 혈통이 저 사람을 알고 있어.
오, 신기하네. 내가 여러 번 확인했지만, 몸에서…… 살카즈 냄새는 안 나던데.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까 조심해. 겨우 죽였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살아나는 건 원치 않으니까.
앞으로의 계획을 방해하지 못하게 할 거야.
음…… 그건 곤란한데요.
아주 절묘한 함정이군요. 오올헤약이 하늘에 무슨 수작을 부렸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누군가 밴시의 저주를 공사장 소음 속에 감췄을 줄은 전혀 몰랐어요.
내 혈통은 내게 언어의 힘을 가르쳐줬어. 기계의 충돌음과 마찰음은 내가 가장 귀 기울여 듣는 언어고.
나까지 속이다니, 확실히 놀라운 재능이군요. 왕정 멤버를 포함해서 날 이렇게 골탕 먹일 수 있는 밴시는 정말 드문데 말이죠.
카즈델에서 태어났습니까? 아니면 밴시의 골짜기?
내 출신은 중요하지 않아. 난 순수한 혈통도 아니고 위대한 사건을 겪어 본 적도 없어.
지금의 난 그저 엔지니어일 뿐. 컬럼비아에 살며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
쿨럭…… 하하…… 컬럼비아에…… 터전이라도 잡은 건가요?
……
당신은 어떤데?
아…… 세월이 벌써 이렇게 많이 흘렀군요.
200년 사이에 그 두 젊은이…… 테레시스와 테레시아가 마침내 카즈델을 이동도시로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의 카즈델은 어떤 모습인지 모르겠네요.
거리는 여전히 붐비고, 아직도 성벽에 천 년 전의 깃발이 걸려 있습니까? 그 꺼지지도 죽지도 않는 용광로 코어는 아직도 뜨겁나요?
……
아가씨, 담배에 불을 붙여 주시겠어요?
이 정도 불꽃으론 영혼의 온기를 붙잡을 수는 없어.
압니다. 다만…… 조금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크리스틴의 꿈에서 당신은 뭘 봤죠?
……미래.
설마 당신에게…… 살카즈의 운명을 바꿔준다고 약속한 겁니까? 만 년 동안 아무도 못 해 낸 일을 그 여자가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나요?
아니, 크리스틴은 내게 가능성을 보여줬어.
나 자신에 대한…… 가능성 말이야.
엔지니어 씨, 우리 상사님한테 유언은 다 남겼냐고 좀 물어봐 줄래?
불이 곧 꺼질 거야.
나 같은 늙은이에게 시간은 언제나 너무 빠르게 흘러가죠.
마지막 질문은 내가 할게.
과거에서 온 늙은이. 당신이 카즈델의 파멸을 수도 없이 봐왔다면, 아마 당신도 이런저런 생각이나 고민을 해봤을 거야……
(살카즈어) 살카즈에게 허락된 땅은 어디에 있는 거지?
약속된…… 땅이라……
하아……
시간이 다 됐어.
은녹색 꼬리가 세찬 바람과 함께 틴맨의 한숨을 산산조각 냈다.
담배는 바닥에 떨어졌고, 그 순간 마지막 불꽃마저 꺼져버렸다.
골피리 소리가 울린다.
트리마운츠 상공에 이런 소리가 울린 적은 없다. 깊은 잠에 빠진 주민이든 철야 근무 중인 직장인이든, 다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것이다.
약속대로 그를 찾아온 사람을 제외하면.
- 로즈몬티스, 방금 들었어?
응?
- 로고스가 트리마운츠에 올 시간은 없을 텐데.
내 단말에는 로고스가 할 일이 아주 많다고 했어. 나랑 같이 연습 안 한 지도 엄청 오래됐어. 그래서 훈련할 때마다 힘을 쓸 수가 없어.
- 너무 메커니스트를 힘들게 하진 마.
- 블레이즈랑 샤프도 쉽지 않을 거야.
나도 알아.
내 장치는 로도스 아일랜드 선실처럼 망가지면 메커니스트와 클로저가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서 손봐야 하잖아.
응.
블레이즈랑 샤프는 나랑 훈련할 때마다 임무 나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투덜거렸어.
본함을 떠나기 전에 라이디언이 나한테 로고스가 곧 아미야랑 함께 돌아올 거라고 했고.
나도 아미야가 보고 싶어, 너무너무.
박사, 이번 임무를 끝내고 로도스 아일랜드로 돌아가면 두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
- 나도 다들 보고 싶어.
- 나도 하루빨리 모두와 만나고 싶어.
박사, 도착하지 않았어?
- 맞아, 정보에 적힌 위치는 이 골목이야.
- 틴맨이 기다리고 있겠지?
- 곧 집에 돌아갈 수 있어, 약속할게.
골목은 매우 깊고 어두웠으며 조용했다.
데굴데굴, 데굴데굴. 갑자기 골목 어둠 속으로부터 무언가가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너무 단단해서일까, 그것이 지면과 마찰하며 내는 소리는 마치 헛도는 톱니바퀴 소리 같았고, 고요한 밤에 울려 퍼져 스산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골목 입구까지 굴러왔고, 어둠으로부터 환한 곳으로 굴러 나왔다.
금속으로 된 머리.
평소에 그 얼굴은 늘 페도라에 가려져 있었고, 입에는 늘 담배를 물고 있었으며, 때로는 날카로운 때로는 엉뚱한 소리를 하던 그 머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담배도 페도라도 트렌치코트도 없다. 심지어 목 아래 부분도 없었다.
말 그대로 그냥 머리만 남았다.
- 틴맨……
- ……죽은 건가?
내가 당신이라면 지금 상황에서 경거망동하지 않을 거야.
움직이면 다음 순간에 당신의 머리도 바닥에 떨어져 우리 상사 씨와 함께 있을지도 모르니까.
-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 나랑 수다 떨려는 건 아닐 텐데.
좋아.
두 가지…… 로도스 아일랜드의 트리마운츠 관광은 여기서 끝이야. 그리고, 보다시피 메이랜더 특수요원의 리더인 '틴맨'을 죽인 범인이 필요해.
- 날 선택했군.
- 영광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물론 당신의 허약함은 신뢰도에 영향을 주겠지.
그렇지만 평소 눈에 띄지 않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적절한 신비감은 한동안 메이랜더의 조사 대상이 되기에 충분할 거야.
- 크리스틴을 위해 시간을 벌려는 건가.
- 너 자신을 위해 시간을 벌려는 건가.
더 많은 비밀을 알아서 좋을 건 없을걸?
- 어차피 난 도망가지 못하잖아.
- 서로를 좀 더 이해해서 나쁠 건 없지.
기회를 노려서 동료라도 부르게?
밑을 봐봐. 내 꼬리가 허락하지 않을 거야.
설마, 당신이 가장 잘하는 협상 기술로 내가 당신을 건드리면 안 되는 이유를 늘어놓으려는 건 아니겠지?
아쉽지만 트리마운츠는 티카론토가 아니야. 당신의 상대도 악덕 제약 회사 같은 건 아니고.
당신이 트리마운츠에 들어왔을 때부터 나는 쭉 지켜봤어.
이번 일은 원래 당신이나…… 로도스 아일랜드와 무관했는데.
당신들이 사리아처럼 불 속을 뛰어다니는 영웅 행세를 좋아하는 거라면, 왜 메커니스트 씨 같은 사람을 더 보내서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 거야?
- ......
대답하기 싫어? 그렇다면…… 당신 마음속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내가 한 번 열어 볼까?
은녹색의 리베리가 다가왔다.
그녀의 귀에 달린 깃털이 후드를 가볍게 긁으며 부드러우면서도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사실 난 당신도 그 정신 나간 과학자들처럼 크리스틴의 연구에서 미래에 관한 계시를 얻으려는 건 줄 알았어.
어찌 됐든…… 우리는 그저 가소로운 생물이니까. 수명은 한정되어 있는데 야망은 끝이 없지.
자신의 짧은 수명으로 더 많은 걸 추구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 잠시 오만을 내려놓고 지름길을 구걸하려 하지.
하지만 당신은…… 흐음…… 하아…… 욕망의 냄새가 안 나.
당신의 꿈은 뭐지? 당신의 과거는 뭐야?
나 점점 당신한테 관심이 생기려고 해, '박사'.
하지만 아쉽게도 내 동료들이 곧 도착하겠네.
당신 친구의 그 머리를 들고 이 나라 최고의 특수요원들이 경악하는 순간을 만끽해 봐.
아, 그리고 방금 한 질문들은 심문할 때 대답해도 돼.
- 그럴 기회는 주지 않을 거야.
잠깐……
어떻게…… 네가?
히히…… 후드를 썼다고 다 같은 사람인 줄 알았어?
……물 분신.
칫. 불쌍한 우리 엘프에게 비장의 수가 남아 있었나 보네.
뭐, 괜찮아. 로도스 아일랜드의 {@nickname} 박사……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박사, 그 골목으로 많은 사람이 몰려들고 있어.
- 메이랜더의 특수요원이야.
- 로도스 아일랜드가 함정에 빠졌어.
당신이 철두철미하게 내 분신을 '빌려서' 약속 장소에 보내길 잘했지. 안 그랬으면 정말 그 나쁜 년의 함정에 걸려들었을 거야.
- 로도스 아일랜드에 불리한 증거도 남겼을 게 분명해.
아까 대화는 통신기로 다 들었지? 그럼 우리는 군부와 메이랜더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거 아니야?
- 아마도.
아…… 하하…… 이거 정말 농담 아니지?
박사, 틴맨 씨랑 무슨 계획이 있었다면 지금 말해야 할 것 같은데?
- ......
그 침묵은…… 잠깐, 박사, 설마 틴맨 씨가……
그 트렌치코트를 입은 깡통, 슈퍼 미스터리 에이스 특수요원이, 정말 죽었다고?!
- 밴시의 골피리 소리를 들었어.
- 이미 틴맨을 위한 종이 울렸어.
그게 골피리였다고?
잠깐, 밴시라면…… 살카즈의 밴시?
크리스틴을 위해서? 설마……
……
뮤엘시스는 갑자기 침묵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트리마운츠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뿐이었다.
당신은 무심코 오올헤약의 질문이 떠올랐다.
트리마운츠에는 왜 왔을까?
- 크리스틴…… 그 여자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 그녀가 쫓는 꿈이란 대체 무엇일까?
서둘러, 사일런스, 이쪽이야!
응……
이 경보는…… 설마 야라 주임한테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사일런스, 괜찮아?!
난 괜찮아. 사리아가……
나도 부축할게.
사일런스, 얼굴이 땀범벅이야. 사리아가 얼른 깨어나지 않으면 정말 이대로 붙잡히고 말 거야!
……사리아 탓이 아니야.
하지만 네 얼굴이…… 금방이라도……
난 괜찮아, 이프리트. 갑자기 아까 그 순간이 또 떠올라서 그래.
내 앞에서 사리아가 쓰러지는 걸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걱정도 아니고 놀라움도 아니야. 그저 후회였어.
사리아한테…… 화를 내서?
응, 그게 정말 내가 사리아한테 한 마지막 말이 된다면, 내가…… 사리아를 탓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사실 난 사리아를 한 번도 탓한 적이 없어…… 난 그저……
누가 내 목소리를 들어줄지 몰라서 그랬던 거야.
그럼 화해하면 되잖아.
……응?
사리아가 깨어나면 우리 함께 돌아가는 거 어때?
……
사리아는 깨어나면 또 돌아올 거야.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래, 이제 알겠다. 너희 둘 다 돌아갈 생각이 없는 거지?
……응.
그럼 둘이 협력하면 되잖아?
협력?
응, 사일런스, 네가 장비를 새로 바꾸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사잖아. 지금처럼 쫓기는 상황에선 다치기 쉬워.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고.
사리아는 싸움을 잘하지만, 항상 단독 행동을 좋아한단 말이지. 이 몸조차도 협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는데 말이야.
우리 둘이 없었으면 사리아는 지금 더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거야!
너희 둘 다 날 데리고 다니기 싫어하니까, 그럼 적어도 둘이 같이 움직이겠다고 나랑 약속해.
아니면 너희가 날 걱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너희를 걱정하게 되잖아!
……이프리트.
약속할지 말지만 말해. 약속한다면 지금 당장 박사한테 돌아가라 해도 난 군말 없이 갈게!
난……
그리고, 같이 움직이다 보면 또 편하게 이야기도 할 수 있잖아?
그런 건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박사가 직접 가르쳐 준 대화 기술이야!
……음, 고민해 볼게.
좋아!
어라, 사일런스, 저건 뭐지?
전달물질…… 언제 떨어졌지?
은색에다가, 떠다니기까지 하네, 엄청 예쁘다!
만지지 마!
이프리트, 이 물질은…… 아주 위험해.
위험해? 말도 안 돼, 설마 내 불보다 더 위험해?
이것도 라인 랩의 실험 산물이야.
정말? 그럼 바로 태워버릴게!
아니, 잠깐. 당장 태워버릴 필요는 없어.
작은 은색 물질이 시험관 안에서 이리저리 부딪히고 있었다.
파르비스의 별장을 떠난 뒤로, 전달물질은 중추의 지령을 잃은 것처럼 더 이상 방향성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사명은 사일런스를 파르비스에게 인도하는 것으로 끝이라는 듯이.
선생님은…… 파르비스는 절대 쓸데없는 짓은 안 해.
나와 잡담이나 하려고 거기에 나타난 게 절대 아닐 거야…… 전달물질의 마지막 추적 목표가 본인이라고 생각하게 유도하려는 거지.
아니면…… 진실은 애초에……
사일런스, 저기 문이 있어!
윽……!
뭐, 뭐야…… 들켰나?
물러나, 이프리트.
칼슘화……!
사리아, 정신을 차렸구나. 다행이다!
몸은……
문제없다.
난 의사야. 그런 말로 날 속일 순 없어.
……너희가 안전하게 떠날 때까지 이 문을 막아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그러니까 문제없다.
군부의 기동 장갑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
이제 여기도 안전하지 않다.
야라 주임은……
쉽게 정보를 넘길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단 하나지.
……10분 지났나.
지금쯤이면 블레이크의 부하와 마주쳤겠군.
예전의 사리아였다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꽤 심각한 상처를 입었고 애물단지 둘까지 데리고 있으니. 과연 사리아가 완전히 무장한 특수부대 앞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
전화가 왔군, 야라 주임.
……
접니다.
물론이죠. 전 여전히…… 컬럼비아를 위해 일하길 원합니다.
……충고 감사합니다.
내가 확실히 노력했다는 걸 이제는 믿겠지?
난 이 대화 기회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 만약 아까 당신이 나와 의견을 같이했다면, 적어도 우리 전 방위과 주임의 목숨이 위험해지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당신은 끝까지 그들을 그곳으로 탈출시켰어…… 메이랜더 특수요원만 아는 비밀 통로로 말이야.
사리아는 어쩌면 당신 때문에 죽을지도 몰라. 그다음은 당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이 될 테고.
……
이건 내 진심인데, 아까 그 질문을 다시 한번 제대로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크리스틴 라이트는 대체 어디 있지?
야라 주임이…… 메이랜더 사람이라고?
10여 년 전에 그 사람을 조사했을 때엔 아무 정보도 얻지 못했다. 틴맨과 만나고 라인 랩을 떠난 후, 더 많은 단서를 얻고 나서야,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지.
야라 주임은 라인 랩에 아주 오래 있었는데.
나보다 더 일찍 크리스틴과 알고 지낸 사이다.
이프리트, 네 왼편에 있는 창문을 공격해.
알겠어!
너무 튼튼하잖아!
실험 구역의 유리는 모두 강화한 거야. 웬만한 충격으로는 깨트릴 수 없어.
힘으로 부순다 해도 그 소리에 병사들이 찾아오게 될 거야.
그럼 내 불로 유리를 절단할게.
이제 난 불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 할 수 있어.
(오리지늄 아츠 수업 때 선생님이 말했어. 불도 침착해질 수 있다고. 소리 없는 불, 조용한 분노.)
(내 불을 검으로 만드는 거야.)
(불을 가늘게 만들자……)
하앗!
갈라진다…… 조금 갈라졌어!
윽…… 쿨럭……
에나멜에 금이 갔어.
사리아, 조금만 더 버텨!
반은 끝냈어, 내가 꼭 해낼게!
집중해, 이프리트.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네가 쓰러졌을 때, 야라 주임이 그랬어. 네가 한 나라를 상대로 대항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그래.
정말 네 말대로 군부와 메이랜더가 어떠한 협의를 달성했다면,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건 이 나라 전체야.
맞아.
네 심박수와 체온은 이미 한계야.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지금의 너한테는 무리겠지.
아마도.
사리아, 넌 버틸 수 없어.
사일런스, 야라 씨가 네 드론을 개조해 준 거 안다. 그 방안의 최초 디자인을…… 본 적이 있어.
언제 그걸……
그 드론의 하중 능력이면, 성인 2명을 달고 단거리 활강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다.
이프리트가 구멍을 열면 거기로 나가. 드론으로 맞은편 빌딩에 착륙하는 거다.
빠르게 움직여야 해.
너희가 가면 난 이 문으로 나가서 추격병을 유인할 거다. 하지만 병력이 너무 많아서 시간은 얼마 벌지 못 하겠지.
……사리아.
응?
아직 대답 안 했어.
……
네가 진정으로 라인 랩과 대립할 수 없는 건, 네가 애초부터 그 사람들…… 그리고 총괄과 같은 부류이기 때문이 아니야?
……미안하다, 사일런스.
진지하게 생각해 봤지만, 너에게 명확한 답을 줄 수는 없어.
만약 크리스틴의 실험이 흔들리지 말아야 할 법을 건드렸다면, 난 크리스틴을 막았을 거다. 그동안 라인 랩이 저지른 모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지.
왜냐하면,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가, 크리스틴을 처음 만났던 때로, 모든 게 일어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간다면……
난 그때의 크리스틴과 라인 랩의 탄생을 막지 않을 거다.
심지어 훗날 라인 랩이 수많은 재난을 일으킨다는 걸 알고 있고, 심지어 크리스틴과 파르비스, 퍼디낸드의 야망이 통제 불가능한 정도까지 커진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해도……
난 여전히 모두와 함께 서 있을 것이다.
……
사리아…… 어쩌면 이 대답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확실할지도 몰라.
사일런스, 사리아! 봤어? 내가 해냈어!
가라, 사일런스.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이번 일이 끝나고 다 알려주겠다.
……그래.
사일런스, 사일런스?
응?
뭘 멍하니 있어? 빨리 가자.
……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가여운 리베리.”
“네가 원하는 건 진실이야? 정의야? 아니면 평화야?”
“네가 궁금해하는 걸 내가 알려 줄 수 있어.”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네가 뭘 할 수 있을까?”
이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야.
안 되겠어.
드론…… 스트랩?
사일런스, 너 뭐 하는 짓이야?!
등 뒤에서 드론 소리가 들려왔다.
에나멜의 보호가 없으면, 복도의 문도 에너지 무기의 충격에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반쯤 허공에 뜬 사리아는 한 손으로 이프리트를 잡았고, 다른 한 손을 뻗어 사일런스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사일런스는 그녀의 손을 잡지 않았고, 왔던 길을 따라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
진작에 너랑 얘기할 걸 그랬어, 사리아.
갑자기 깨달은 게 있어. 그동안 왜 내가 너한테 그렇게 화를 냈는지.
처음에 나는 '다이아볼릭 사태'의 여파 때문인 줄 알았어.
또는 모든 걸 혼자 짊어지려는 네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줄 알았지.
하지만 사실…… 내가 정말 화가 나는 대상은 나 자신이었어.
네가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고 탓한 건…… 내가 습관적으로 네게 의지했기 때문이야.
난 네가 총괄을 변화시키길 바랐어. 선생님이 이프리트를 구해주길 바랐던 거처럼. 왜냐하면 총괄은 라인 랩을 바꿀 수 있으니까…… 나는 더 강한 사람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랐어.
정말 약해빠졌지?
난 모든 것을 조종하고 무고한 생명을 소모품이나 숫자로만 여기는 권력자들을 증오했어.
하지만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또 다른 권력자들의 도덕과 공감 능력에 맡기고 있었지.
그리고 이렇게 사태가 개인의 능력 범위를 완전히 벗어났을 때, 지금에야 깨달았어. 아무도 진정으로 누군가를 대신해 모든 걸 짊어질 순 없다는걸.
여기까지 오면서, 기꺼이 날 도와준 로도스 아일랜드, 뮤엘시스 주임, 야라 주임, 그리고 너까지……
다들 그저 내가 이 일에서 손을 떼길 바라고 있어.
만약 네가 내 앞에서 쓰러지지 않았다면, 이프리트가 위험에 빠지지 않았다면, 난 아마 얌전히 포기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난 물러서고 싶지 않아.
더 이상 네 보호만 받는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 더 이상 포화가 다가오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두 팔을 벌리고 다친 사람들의 앞을 막아서고 싶진 않아.
이번만큼은, 내가 너희보다 먼저 전장에 뛰어들 거야.
드론은 두 사람을 옆 빌딩의 조금 낮은 층으로 데려갔고, 사리아가 깬 창문을 통해 두 사람은 무사히 착륙했다.
그 건물 밑에도 퍼디낸드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겠지만, 움직일 여유만 있다면 포위를 돌파할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사리아는 믿었다.
다만……
사일런스…… 뭐 하는 거야?
사일런스, 너도 얼른 드론을 타고 이쪽으로 와!
이프리트가 맞은편을 향해 애타게 소리쳤지만, 사일런스는 두 사람을 지긋이 바라보고는 등을 돌려 떠났다.
……
등을 돌리는 순간, 사리아는 사일런스의 눈빛을 똑똑히 보았다.
미안함이 담긴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드러난 건 결연함이었다.
퍼디낸드, 복도에서 한 명 발견했습니다.
당신에게 할 얘기가 있다고 합니다.
……사일런스?
네가 왜……
죄송해요, 야라 주임. 저 결정했어요. 끝내지 못한 일이 있어서 아직은 떠날 수 없어요.
기억난다, 파르비스의 학생이군. 359호 기지에서 너와 엘레나가 나를 꽤 성가시게 했지.
……네, 사일런스라고 합니다.
당신이랑 거래를 하고 싶어요.
거래? 설마 사리아를 놔달라는 건 아니겠지?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아니요. 그것만큼은, 제가 결정할 수 있어요.
네가 손에 든 건…… 359호 기지의 전달물질인가.
……
무슨 짓이지?! 전달물질을 체내에 넣어도 이젠 소용없어. 도로시의 '중추'는 이미 파괴됐으니까!
새로운 '중추'가 크리스틴의 손에 있어요.
말도 안 돼. 그건 내 실험이야, 나와 도로시가……
얼마 전에, 파르비스 선생님을 만났어요. 선생님의 실험실에는 대량의 전달물질이 보관되어 있었죠.
클루니 주임, 당신도 분명 알고 있었겠죠. 그저 인정하기 싫었을 뿐…… 자신이 실수했다고 생각할 수는 있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총괄에게 놀아났다고 믿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설마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나요?
군부와 더 밀접한 사람은 크리스틴이죠. 당신과 도로시의 실험을 프로토타입 때부터 말살할 방법은 아마 차고 넘쳤을 테고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당신들의 실험이 성공한 뒤에 나타났을까요?
……
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있어요.
크리스틴이 전달물질로 뭘 하려고 하든, 아직 성공하지 못한 게 확실해요.
클루니 주임, 나를 크리스틴에게 데려가 주세요.
전달물질은 내 몸 안에 있으니, 난 당신들이 크리스틴을 찾는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