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W-4일파만파
로켄은 로즈몬티스를 초대하고 뮤엘시스를 거절한다. 의식을 잃은 사리아 앞에서 사일런스는 망설인다. 화려한 응접실에서 야라는 말이 없다.
등장 오퍼레이터: 뮤엘시스, 로즈몬티스, 사일런스, 이프리트, 사일런스 더 패러디그매틱
그 편지는 당신이 쓴 거야? 날 여기 오게 하려고?
그렇단다, 얘야. 난 지금까지 계속 너를 찾아가려 했었다.
하지만 도저히 시간이 안 나서 친구에게 편지를 부탁해서 보냈단다…… 그, 로도스, 맞아, 로도스 아일랜드에게 말이지.
그때 그 재난 이후에…… 널 받아들여 줬다고 들었는데, 그쪽에서는 너한테 잘해줬니?
거기 사람들은…… 내 가족이야.
닥터 켈시, 아미야, 박사, 블레이즈, 라이디언…… 그리고 작전팀에 있는 모두가 다 내 가족이야.
가족이라…… 새집이 생겼다는 것이구나…… 쿨럭, 쿨럭……
앙상하게 야윈 남자는 심하게 기침했고, 안 그래도 구부정하던 몸은 더 굽어 보였다.
남자는 로즈몬티스를 바라보며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 했지만, 얇은 물 장벽이 그를 막아섰다.
뮤엘시스 뿐만 아니라 당신도 그자의 이름이 기억났다. 로즈몬티스의 파일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됐던 이름이다.
원래는 감옥에 있어야 할 범죄자지만, 지금 느닷없이 일행들 앞에 나타났다. 마치 퇴근길에 다급히 아이를 보러 온 어른처럼.
- 당신 혼자 온 건가?
- 혼자…… 로즈몬티스를 찾아온 건가?
이건 내 소망일 뿐, 그 누구와도 관계없는 일이네.
어디…… 어디 자세히 좀 보자꾸나……
……
……많이 컸구나, 얘야.
4년…… 아니지, 거의 5년은 됐나? 그 긴 시간 동안 난 계속 널 생각했단다.
우리가 헤어지던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너무…… 아쉬웠다.
쿨럭…… 쿨럭, 쿨럭.
그 사람들 손에서…… 널 지켜주지 못해서 아쉬웠단다. 눈앞의 사소한 이익만 보는 속물들이…… 우리가 함께 도착할 수 있는 미래를 완전히 파괴해 버렸지.
우리의 미래? 우리, 같이 살았어?
하지만 난 할아버지가 기억나지 않아.
음…… 내가 기억했어야 했나? 난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은 모두 단말에 기록하는데.
날 잊은 게냐? 혹시 기억을 잃고 내가 저지른 잘못을 모두 잊은 게야?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이야? 나한테 몹시 나쁜 짓을 했어?
그건 내가 알려줄 수 없단다, 얘야. 그러면 이번 만남이 의미를 잃어버리니까.
네 기억이 손상된 게…… 그때 그 실험의 결과는 아닐 텐데. 설마 다른 사람인가? 메이랜더? 아니면 라인 랩?
그렇게 쳐다보지 마, 윌리엄스 씨. 난 그저 일개 생태과 주임일 뿐이니까.
게다가, 그 늙은 염소가 여기 있었더라도 당신에 비하면 그 사람은 위태로우나마 도덕적 양심이 있으니까.
이건 도덕과 무관한 일이네.
로도스 아일랜드, 자네들이 이 아이의 기억을 삭제하고 감정을 통제한 건가?
- 근거도 없는 비난은 받아들이지 않겠어.
- 로도스 아일랜드는 그런 짓 안 해.
그렇지, 자네들이 그랬을 리가 없지. 이건 내 작품이야…… 그렇게나 정밀하니, 아무도 생명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동시에 특정 부분을 떼낼 수 없지.
아, 아…… 또 내가 원인인가? 그때는 충분히 관찰하지 못해서…… 그래…… 우리는 확실히 시간이 부족했지…… 의식의 압박은 원래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거니까……
……설마 네 기억을 동포에게 넘긴 거니?
으……
그건……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디 보자, 분명 방법이 있을 거다.
그 사건들의 조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때 그 기록과 데이터처럼, 쓰레기통에 버리길 잘했지. 감정, 형태, 냄새…… 냄새…… 맞아.
꽃…… 향기?
이 향기는…… 으깨진 즙을…… 벽과 손에 바르고……
아니…… 아니야……
멈춰, 생각하지 마! 이런 건 필요 없어!
역시 그랬군! 네 머릿속에 아직 내가 남아 있었구나!
부탁이다, 기억을 떠올리거라. 나에 대한 원망을 떠올려서, 네 몸과 머리, 그리고 정신을 분노로 가득 채우거라!
윽……
- 그만.
- 당장 나가.
- 당신은 지금 로즈몬티스를 해치고 있어.
……내가 해치고 있다고?
아니, 저 아이의 고통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서 오는 걸세. 난 그저 아이가 오랫동안 바랐던 선물을 주려는 거야.
- 그건 선물이 아니야.
- 그건 괴롭힘이야.
자네들은 저 아이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한 적 있나?
자네들은 메이랜더에서 저 아이의 모든 정보를 받았고, 아이가 겪은 모든 일을 알았겠지. 그런데도 저 아이가 분노하고 원망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나?
그렇군. 자네들은 메이랜더와 같은 부류였어, 허허. 자네들은 아이를 더 편하게 통제하려는 거지. 자네들은 두려운 거네……
……다시 분노에 차오를 무기가 두려운 거야.
'무기'.
갑자기 로즈몬티스와 함께 체르노보그에서 겪은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당신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필사적으로 싸울 때의 결단, 생이별할 때의 아픔.
그렇다, 당신은 옆에 있는 필라인 소녀를 형용하는 이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매번 귀에 거슬렸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로즈몬티스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 즉 로켄 윌리엄스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미 그에게 반박할 수많은 말을 준비했다. 심지어 켈시가 있었다면 더 날카롭게 반박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 생각이, 다른 모든 말보다 먼저 떠올라버렸다.
- (주먹으로 때린다)
- (발로 걷어찬다)
- (뺨을 후려친다)
으윽…… 쿨럭…… 하하……
아주 좋아, 내 말에 화가 치밀어 오른 거군. 그 말은 저 아이를 '무기'로 보기 싫다는 거지. 하지만 보게…… 저 아이는 자네 앞을 막아서서 자네를 위해 검을 들고 있어.
으윽…… 쿨럭…… 하하……
아주 좋아, 내 말에 화가 치밀어 오른 거군. 그 말은 저 아이를 '무기'로 보기 싫다는 거지. 하지만 보게…… 저 아이는 자네 앞을 막아서서 자네를 위해 검을 들고 있어.
……
박사, 내 뒤로 와.
이제부터 내 검이 빌딩의 외벽을 뚫을지도 몰라.
- 로즈몬티스, 너……
……적이 오고 있어.
빠른 속도로 접근 중이야.
내가 지켜줄게, 박사. 아직은…… 너무 혼란스럽지만, 닥터 켈시랑 아미야가 내 정신이 많이 안정됐다고 했어. 박사를 지켜도 된다고 허락했어.
그러니까, 난 반드시 해낼 거야.
- 고마워.
- ……
- 나도 알아.
로도스 아일랜드의…… 박사.
정말 이 아이를 아낀다면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게 뭔지 알겠지.
아니면 본인에게 물어보게나…… 방금 지키고 싶었던 게 자네를 위해 목숨을 건 전사인지, 아니면 비참한 시절을 겪은 아이인지?
- ......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지만, 로켄이 원하는 건 당신의 대답이 아니었다.
이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의 시선은 줄곧 새하얀 필라인 소녀에게만 향했다. 혼탁한 눈동자에서 열정과 슬픔, 그리고 어떠한 기대가 반짝였다.
적이 왔어!
……아쉽지만 오늘의 만남은 여기서 끝내야겠군.
얘야, 넌 아직 준비가 안 됐다…… 하지만 언젠가 준비될 때가 오겠지.
내가 그 '집'에서 널 기다리마.
거기 서.
설마 따라잡다니…… 아니지, 여기서 날 기다리고 있었나.
어느 게 진짜지? 방 안에서 침묵하고 있던 자네? 아니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자네?
……그건 중요하지 않아.
아주 흥미로운 오리지늄 아츠군. 아니면…… 뭐, 됐네. 내겐 쓸데없는 호기심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거든.
무슨 일인가, 라인 랩의 주임?
……
크리스틴은 어디 있어?
음…… 자네야말로 라인 랩 사람이잖나. 그 질문을 내게 하는 게 맞는 건가?
……당신을 감옥에서 꺼낸 건 크리스틴이잖아. 가능성은 그것뿐이야.
당신이 여기 나타났다는 건 크리스틴이 맡긴 일을 다 끝냈다는 뜻이겠지.
크리스틴이 준비를 다 끝낸 거지? 크리스틴이 정말로……
……가엾구나.
당신……
아무리 그래도 내가 사흘은 안 씻은 것 같은 노친네한테 그런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거든.
경악, 분함, 걱정…… 자네는 지금 겁먹고 있어, 아가씨. 믿는 사람에게 배신당할까 봐, 가까운 사람에게 버림받을까 봐.
음, 더 최악인 건 막막함이군…… 자네는 지금 속수무책이야. 어쩔 수 없이 나 같은 '외부인'에게 물어봐야 할 정도로.
참으로 익숙하군…… 쿨럭, 쿨럭……
내 스승님이 내 연구 기록을 메이랜더에 넘기고 날 학계에서 쫓아냈을 때……
내 학생이 데이터를 군부에 넘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실험을 앞당겨야 했고, 결국 실험이 실패했을 때……
내 가족이 특별구의 모든 자산을 팔아버리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을 때……
나도 거울 속에서 그런 눈빛을 본 적이 있지.
……내 다크서클이 그렇게나 심하진 않은 것 같은데?
난 그저 이해가 안 갈 뿐이야…… 왜 크리스틴은 메이랜더의 그 나쁜 년이나 당신은 신뢰하면서, 사리아는 믿지 않고, 또…… 어……
설마 지금 시간 끄는 거야? 오올헤약이 당신을 데리러 온다 해도 나를 이길 수는 없을걸?
난 자네와 적이 될 생각이 없네, 아가씨.
……응?
자넨 정말 나와 크리스틴을 막고 싶어서 쫓아온 건가?
아니면……
나를…… 크리스틴을 따라가고 싶은 것 아닌가?
……
난……
뮤엘시스는 순간 당황했다. 로켄이 뒤돌아서 떠났지만, 그녀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익숙한 바람이 비웃듯이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스쳐 지나가자, 뮤엘시스는 그제야 로켄을 놓쳤다는 것을 알아챘다.
놓쳐버렸어…… 내가 뭘 한 거지……
……
- 뮤엘시스?
- 듣고 있어?
아, 박사.
괜찮아…… 계속 여기서 당신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고 있었어.
- 분신이 로켄을 막았어?
- 분신이 위험에 처하지는 않았어?
분신……
내…… 크흠…… 응, 바깥에 분신이 있지.
박사 추측이 맞았어. 녀석들이 로켄 같은 다 죽어가는 영감이 알아서 찾아오게 둘 리가 없지.
조력자가 로켄을 데려가기 전에 내가 확인한 건 한 가지야…… 로켄 윌리엄스는 확실히 크리스틴의 계획과 연관되어 있어.
- 로켄이 언급한 그 '집'……
- 메이랜더와 군부가 쟁탈하고 있는 비밀.
- 모든 수수께끼가 겹치고 있어.
- 그리고 크리스틴 라이트가 숨은 곳을 가리키고 있어.
박사, 단말기에…… 새 메시지가 왔네?
- 메이랜더에서 보내왔어.
- 메이랜더가 공유하고 싶은 정보가 있나 보네.
잘됐다. 안 그래도 틴맨 씨를 언제 다시 보나 했는데.
그 사람 의뢰 때문에 당신들이 군부에 쫓기고 있는데, 보상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어?
- 로즈몬티스, 작전 준비는 됐어?
응, 난 문제없어.
- 뮤엘시스.
……응?
-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 로즈몬티스를 도와줘서 고마워.
아…… 하하하…… 우리 협력이 끝나려면 한참 멀었는데, 자꾸 그렇게 예의 차리면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야 할걸?
……
박사…… 정말 날 그렇게나 믿어주는 거야?
- 뭐라고?
아니야. 가자, 출발하자.
사일런스, 온도 괜찮아? 너무 뜨겁지 않을까?
아주 잘하고 있어.
사리아의 체온이 안정됐으니 고비는 넘겼어.
이프리트, 가서 좀 쉬어. 장시간 오리지늄 아츠를 사용하면 몸에 부담이 되니까.
아니, 난 사리아 곁에 있고 싶어.
예전에 내가 하얀 방에 살 때, 사리아도 자주 내 침대맡에 와서 함께 있어 줬어.
그때 난 계속 몸이 너무 아프고 머릿속도 엉망진창이었어. 통제하지 못하고 물건을 태우기도 했지.
매번 사리아가 언제 왔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눈을 뜰 때마다 침대 곁에 서 있는 사리아를 보면 마음이 안정됐어.
그러니까 나도 여기서 사리아와 함께 있고 싶어. 사리아는 아직 눈을 안 떴지만…… 그래도 내가 있는 걸 분명히 느낄 거야.
……사리아도 알 거야.
지금은 그냥…… 조금 더 자야 할 뿐이지.
음……
아무래도 이상해.
왜 그래?
이렇게 보니까 사리아가 나보다 키는 얼마 안 크네. 게다가…… 손이 보들보들하고 손톱도 예뻐. 사일런스 손을 잡았을 때랑 느낌이 비슷해.
……응.
사리아도…… 평범한 사람이니까.
그래도 '평범'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좀 먼 것 같은데.
야라 주임……
번거로운 일이 생기면 입 꾹 닫고 혼자 해결하려 하고, 또 늘 무표정한 얼굴이라 사람들이 다른 의견이 있어도 말을 못 꺼내게 하잖아.
내가 매년, 얼마나 많은 방위과 직원과 심리 상담을 했는지 알아?
설마…… 사리아한테 불만이 있으신가요?
불만? 훗.
그때 내가 크리스틴한테 물어봤어. 꼭 연구원한테 방위과를 맡겨야 하는지…… 그 말을 듣고 네 앞에 있는 이 녀석이 어떻게 했는지 알아?
내 책상 위에 도청기 30여 개를 던져놓더니, 내 앞에서 개발한 지 얼마 안 된 오리지늄 아츠로 도청기를 가루로 만들어버렸지.
불행하게도 그중에 몇 개는 여전히 작동 중이었고, 그 도청기는 우리가 존경하는 시 정부에서 설치한 거였지.
정부는 그저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는 과학 기술 회사에 약간의 기본적인 경계심을 가졌을 뿐이었어.
나도 그쪽에 '통제 가능한' 소식을 기꺼이 나눠주길 원했지. 그래야 일부 조항에서 좀 관대해질 수 있으니까.
그 일이 있고 나서 내가 뒤처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하지만 누가 이 젊은 와이번의 결심과 수단을 부정할 수 있겠어?
듣고 보니…… 사리아는 예전부터 항상 제가 아는 그 사리아였네요.
맞아,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그때와 비교하면 하나도 나아진 게 없지.
……사리아는 제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의지가 굳건해요.
누가 아니래? 난 사리아와 크리스틴을 줄곧 지켜봤어. 그래서 사리아가 얼마나 꿋꿋하고 강인한지 아주 잘 알아.
하지만 아무리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나도…… 한 나라를 상대로 대항하는 건 불가능해. 애초에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계속 감당하게 두면 사리아는 목숨이 몇 개라도 부족할 거야.
……
이거 받아.
이건…… 차 키잖아요?
사리아랑 이프리트를 데리고 여기서 떠나, 늦기 전에.
사리아는……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
아니지, 얘야. 지금 나와 대화하고 있는 사람은 사리아가 아니란다.
“무고한 목숨은 타인이 일으킨 위험에 처하면 안 된다.”, 계속 이렇게 생각한 거 아니었니? 이 아이가 휘말려서는 안 돼, 너도 마찬가지고. 여기서 목숨을 잃어야 하는 사람은 없어.
……
시간이…… 조금 필요해요.
……
야라 주임?
아마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네. 비밀 통로로 나가, 어서.
왜 그러세요?
……옛 친구가 찾아왔어.
……회의실인가.
회의할 때면 파르비스는 늘 창가 쪽에 앉았고 뮤엘시스는 가운데 앉는 걸 좋아했지. 그리고 야라 주임…… 당신의 선택이긴 했지만, 늘 크리스틴으로부터 가장 먼 자리에 앉았지.
너도 예전이랑 똑같네. 늘 다른 사람 자리 뒤에 서 있는 걸 좋아했잖아.
훗…… 정말 그립군.
뭐 좀 마실래? 와인? 아니면 샴페인?
그럴 필요 있나?
물론이지. 퍼디낸드 클루니 씨가 다른 직장에 취직해 당당하게 라인 랩을 방문했는데…… 축하할 만한 일 아닌가?
내가 군부의 앞잡이라 생각하나?
아니, 군부는 라인 랩에서 손을 쓰려고 했지만, 난 찬성하지 않았어. 라인 랩에서 부통령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라인 랩은 그대로 끝이니까.
크리스틴은 라인 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나 본데, 나는 그렇게 못 해.
오늘 행사는 아주 순조롭게 마친 걸로 기억하는데.
시치미 떼지 마, 야라.
군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는 당신도 나만큼 잘 알 거야. 오늘 같은 일은 언제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어.
그 야만인들이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 온 십여 년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기 전에, 나한테 솔직하게 알려주지 않겠어? 크리스틴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블레이크 대령이 말 안 해 줬나 봐?
라이트 씨가 실종된 첫날부터 난 모든 프로젝트와 총괄에 관련된 자료를 넘겼어.
게다가 한 번이 아니야. 그것 때문에 내가 며칠을 야근했는데.
훗, '라이트 씨'라. 두 사람이 아주 평범한 관계인 것처럼 말하는군.
당신 사무실 서랍 비밀 칸에 있는 사진을 가져다가 블레이크한테 보여줄까?
아니면, 우리 존경하는 인사과 주임은 왜 20년 전 꼬마 크리스틴에게 받은 연하장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지, 설명할 말을 이미 생각해 둔 건가?
……그건 그저 오래된 종잇조각일 뿐이야.
아이들은 크고 나면 말을 안 듣잖아. 퍼디낸드, 그건 네가 더 잘 알잖아? 359호 기지에서 맞은 주먹이 꽤 아팠지?
……하.
크리스틴은 가장 아끼는 장난감을 품에 꼭 껴안은 아이처럼 숨어버렸어. 하지만 그건 장난감이 아니라, 빌어먹을 슈퍼 무기라고. 그 배후에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비밀까지 엮여 있지.
당신이 아직 크리스틴을 신경 쓴다면 크리스틴을 데리고 나와야 해.
아니면, 크리스틴이 허무한 꿈을 위해 죽는 걸 지켜만 보겠다는 건가?
……
나도…… 그 애가 그렇게 되는 건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내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
걔는 크리스틴이야, 퍼디낸드. 네가 완벽하게 패배한 상대라고.
만약 너희가 나와 크리스틴의 관계를 약점으로 본다면, 크리스틴이 정말 그렇게 큰 약점을…… 너희들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그냥 놔뒀을까?
……좋아, 당신은 협력을 거절했어.
그럼 다른 사람은 어때? 예를 들어……
사리아라던가.
당신은 사리아를 구해서 근처에 숨겼지.
나랑 이렇게 오랫동안 대화하는 것도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거 아닌가?
하지만 사리아가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간다고 해도 또 누구를 찾아갈 수 있지?
마찬가지로 수렁에 빠진 로도스 아일랜드? 아니면 당신처럼 숨어서 활동하는 메이랜더 특수요원?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조금 전에 군부에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어.
사리아……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로도스 아일랜드라는 회사, 이들은 지금 크리스틴을 도와 국가 안보 기밀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고.
……
라인 랩에서 십 년 넘게 일했다고, 설마…… 이 회사를 무슨 정의의 사도라 생각할 만큼 순진해진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