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T-10갑판실
사냥이 곧 끝날 무렵, 아마이아가 스펙터를 막아 나선다. 시본은 바다에 뛰어드는 데 성공해 진화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제 막 여정에 오른 켈시와 카르멘이 뒤쫓아갈 수 있을는지 알 수 없다.
넌 기회를 낭비했다.
뭐라고?
나였다면, 살비엔토에서 그 말할 줄 아는 시본을 잡았을 때, 그 녀석에게 에기르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하도록 협박했을 거다.
너는 육지에서 산 지도 몇십 년이 지났지만, 에기르에 관한 정보는 들어본 적 없었지. 하지만 바다는 달라, 한 번도 연락이 끊긴 적이 없다.
넌 시본이 그냥 죽게 내버려 뒀고, 아무런 가치도 얻지 못했다. 비효율적인 결정이지, 글래디아.
쓰레기 같은 정보 따윈 필요 없어요. 사냥감이 내놓는 대답엔 하등한 사고만이 가득하니까요.
육지에서 조력자를 찾은 듯하군, 그 사람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높은 소리) 별들…… 묘지……
너, 봐줬군. 놈이 왜 아직 서 있는 거지?
……아니요.
저 기사가 생각보다 더 튼튼했을 뿐이에요.
……
기사는 반격하지 않았다. 갑자기 제자리에 멍하니 서더니, 고개를 들고서는 휘청휘청 빙빙 돌면서 위를 바라보았다.
글래디아는 이 틈에 추격전을 끝내려 했지만, 곧 그녀도 어렴풋한 예감이 들었다.
……시본의 냄새가 변화했어요.
넌 저것들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예리해진 건가?
……
그래야지, 글래디아.
아무리 다른 사람과 너 자신을 위로한다 해도,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언젠가 마주칠 문제겠지…… 우리 자신 말이야.
……가르시아!
(흐느끼는 듯) 크르르르……!!
조…… 좋아…… 녀석을 크게 다치게 만들었군! 핏자국을 따라 찾아보면 될 거야, 금방 돌아오마.
잠깐, 이 불에 탄 자국은 뭐지? 놈이 내 배에 무슨 무슨 짓을 한 거냐?
……이건 그 괴물이 남긴 흔적일 리는 없어.
맞아요. 이건 우리 귀여운 이베리아의 아기 새가 남긴 거죠. 놀랍네요.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다니.
시본과 이런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무서울까요?
……그 옛 이베리아인이? 그 계집을 말하는 건가? 말도 안 돼, 이 배에서 수많은 전투를 겪었던 선원 중에 아무나 데려와도 그 여자보다 강했을 거다. 대체 어떻게……?
(선장의 소매를 살짝 물어뜯는다.)
……알았다.
그…… 그 옛 이베리아인이 무슨 짓을 했든 간에, 우린 서둘러야 한다.
수개월간 지속된 사냥을 끝내야 한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요, 선장님.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하!
긴 사냥의 끝을 곧 맞이하게 생겼는데, 안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너희들은 계속 추격해라. 난 다른 길로 가겠다. 이곳의 벽을 뚫지는 못하니…… 바다와 더 가까운 곳으로 향했을 테지.
가르시아…… 치명상은 아니니 조금만 참아라. 금방 돌아오마!
……
부상 입은 일등 항해사는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말없이 선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쁨. 감출 수 없는 흥분. 그리고 오랜만에 느끼는 활력.
가르시아는 안심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 그는 상처 회복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건 사랑하는 사람의 사냥을 돕기 위해서였다.
아주 잠깐의 꿈이었다. 짧고 황홀한 꿈. 육체에 큰 변화가 일어난 뒤로는 이러한 상황이 극히 드물었다.
꿈속의 그곳은, 이베리아의 해안이었다. 하늘 가득 퍼진 폭죽과 우렁찬 경적소리. 패기 넘치는 알폰소가 그의 곁에 서 있었다. 알폰소는 물었다.
가르시아.
해안의 저 아이들 보여? 우리 둘 다 아이를 좋아하잖아.
아이들은 이베리아의 미래야. 우리의 영예, 얻은 공적들, 그리고 길고 닦은 재주는 모두 생명의 마지막과 함께 사라지게 되겠지.
하지만, 아이들은, 새로운 생명이야, 이베리아가 함께 키운 생명이지, 모두가 이 모든 것을 이어 나갈 거야.
가르시아.
나의 모자와 네 모자, 저 아이는 어느 쪽이 어울릴 것 같지?
(다쳤는데도 저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다니…… 못 따라잡겠는데!)
(게다가…… 겨우 핸드캐논을 쏘긴 했지만…… 몸이 좀.....)
으윽!
명흔…… 배 위에까지…… 어떻게?! 좀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심하진 않았는데!
형광색 명흔이 이베리아의 황금빛 홀을 삼키고 있다.
정교한 천장은 은은한 푸른빛을 반사하고 있다. 그 빛의 중심에는, 주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손을 앞으로 교차한 채, 아무 말도 없이 눈앞의 왕좌를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명흔은 그녀의 발밑에서 퍼져나갔고, 황금빛은 그녀로 인해 색채를 잃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눈에는 자비로움과 기대감뿐이었다.
……안녕, 아이린.
(심해 신도다!)
빗나갔어……?! 아, 아니야!
오리지늄 아츠?!
맞습니다, 아이린. 다리오가 지금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분명 기뻐할 거예요.
……네가 어떻게 나와 대재판관님의 이름을 아는 거지? 넌 누구야!?
번역가랍니다.
그런 거짓말에 아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전 거짓말은 하지 않아요, 아이린. 많은 저작들을 번역했어요. 당신 책장에 있는 가울의 현실주의 비판 소설도 제 손을 거쳐 간 것일 수도 있죠. 번역가의 이름을 확인한 적은 있나요?
네 발아래를 봐봐! 네가 명흔을 데려온 건가?!
그 주장은 편파적인 것 같네요. 제가 명흔을 데려온 게 아니라…… 빛을 발하는 바다와 연결고리를 만든 거예요.
그것들의 일부가 된 것을 영광이라 생각해요, 정말로 말이에요.
……이 배에는 어떻게 오른 거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이린.
당신이 시본을 물리칠지, 제가 여기서 목숨을 잃을지, 이 배가 에기르와 다시 연락이 닿는 관건이 될지. 이것들은 모두 중요하지 않아요.
그렇죠…… 다리오와 징벌군의 희생, 그란파로의 붕괴, 이베리아의 눈, 기나긴 시간……
진화하고 변화하는 장대한 과정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은 단지 생명이 일으키는 작은 물보라에 불과해요.
제가 존중하는 이유는 저희 모두가 그 일부분이기 때문이에요. 전체와 비교하면 사소하기 그지없겠지만 말이죠.
……잠깐. 선생…… 대재판관님이, 어쨌다고……?
아아, 가여운 아이린…… 보세요, 어떤 질문이든 전 대답해 주고 있잖아요. 그런데 적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정말로 그 답이 필요한가요?
어떻게 됐냐고 묻잖아!!
그의 희생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아이린.
바닷바람이 그의 죽음을 전해줬어요, 안타깝네요.
아니…… 그럴 리 없어……
……불가능한 일은 없어요, 아이린.
신탁이 내려지는 순간, 이 대지의 모든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게 됩니다.
저희는 땅을 기는 벌레에 불과합니다. 저희는 운명에 따라야 해요. 장벽도 차이도 없는, 국가와 형태 구분이 없는 생명을 선택하는 것에 또 무슨 죄가 있을까요?
……
……저항을 그만 멈춘다면, 가장 좋겠지만, 만약에……
……정말로 아무 상관 없다면, 저 부상당한 사냥감을 위해 시간을 끄는 건 그만두는 게 어때, 아마이아?
……어머.
로렌티나, 깨어났군요.
완전히 깬 건 아니지만, 적어도 네 이름은 생각나네, 아마이아. 큰 실례가 되지 않았길 바랄게.
아이린!
……
……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별거 아니에요, 대화를 했을 뿐이죠.
스카디. 먼저 가세요.
네 사냥감 아니었어?
더 그리운 사람을 만났으니 어쩔 수 없죠.
……알았어, 조심해.
아이린?
……거짓말이야.
바닷바람은 거짓말하지 않아요.
아니. 전에도 말했듯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대재판관님의 죽음은 분명 의미가 있을 거야, 재판소에 '의미 없는 희생'은 없어.
만약 아니라 생각한다면, 심해 신도……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가 보여주겠어.
……
그래요…… 정말 강한 아이군요.
으윽!
헌터, 간다!
아이린…… 이제 겨우 재판소의 핸드캐논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리 우쭐대는 건가요?
계속 그리도 거칠게 명흔을 태워버리면, 알폰소 선장이 화가 많이 나실 텐데요.
휴우…… 됐어요.
쫓아가지 않는 건가?
하…… 전 퀸투스처럼 그렇게 성급하지 않아요, 두 헌터를 동시에 상대하다간, 명줄이 너무 짧아지지 않을까요?
순간과 찰나에 차이가 있으려나?
다를 건 없어요. 그런데 예전의 성격으로 돌아온 걸 보니 그때가 그립긴 하군요. 첫 번째 실험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계속 혼수상태였으니까요.
우리 곁을 떠나고, 잘 지냈나요?
스펙터가 살짝 웃는다.
이건 오늘 밤 그녀가 보인 가장 아름다운 미소다.
저 녀석,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내가 이미……하아…… 저 녀석의 몸에 구멍을 두 개나 냈는데, 저 녀석은 피가 얼마나 많은 거야?
구멍 두 개를…… 네가 어떻게……
그건 나중에 말하고, 나도 싸울 힘이 얼마 안 남았어……
……놈은 계속 동족을 포식하고 있었어! 어쩐지!
조심해, 시본이 다가오고 있어!
……으윽!
이샤-믈라, 그분은, 어디에 있지?
대답, 원한다.
괴물!
시본은 아이린이 핸드캐논을 쏘기 전에 몸을 움츠렸다.
벽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그 힘을 빌려 점프한 스카디는 거의 순식간에 시본 앞으로 다가갔다.
힘을 실은 칼날은, 또다시 시본에게 닿지 못했다.
뭐야……??
(죄다 피한 거야?!)
……부족하다.
영양, 시간, 부족하다.
이샤-믈라, 우린 답이 필요해, 하지만, 난 그분의 존재가 느껴진다.
말, 내가 받아낸다.
이샤-믈라, 네가 대답하지 않아도, 그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종족이 방향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다.
방향, 종족이 파악한다. 우리, 스스로가 파악한다.
생존은, 유일한 목표야.
너흰 항상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싸우기 좋아하는 거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바다로 돌아갈 생각도 하지 마!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곧 끝나.
……! 귀를 막아! 아이린!
엇, 아!
(귀청을 째는 듯한) 크르르르……
(쉰 목소리로 속삭이듯) 로시…… 난테……
크르르르르!!!!!
곧 거센 파도가 몰려온다. 우리는 기다린다. 밖에서 기다린다. 무기, 찢는다…… 가자!
(호응하며) 크르르르
멀리서 시본의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온다. 글래디아가 미간을 찌푸린다.
육지 사람이 무모하게 바다에 접근하여 영원히 미쳐버린 것일 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를 따르는 또 한 마리의 시본은?
하지만, 글래디아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불쾌한 예감이 그녀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목덜미를 간지럽히고 있다.
위에서 무슨 일이 발생한 거죠?
이 배는 바다를 60년 넘게 표류했다.
만약 저것들이 이 배를 싫어하거나, 혹은, 작정하고 배를 부수고 배 위의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간주했다면, 이 '스툴티페라 나비스'는 진즉에 침몰했겠지.
……놈들이 배를 받아들였단 얘기군요.
그들은 이 배를 환경의 일부분으로 보는 것 같다. 목적이 뭐였든 간에, 그들은 이 배가 바다 위에 존재하도록 허락한 게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
네 말은……
음.
명흔? 어느 틈에…… 게다가 이 속도는……
이 배의 침몰은 이제 피할 수 없을 거다.
글래디아.
브레오간과 같은 에기르의 인재가 왜 마지막 순간에 열쇠를 '이런 모양'으로 만들었을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건 에기르가 꿈꾸던 비밀의 열쇠이고, 브레오간이 심혈을 쏟아부은 결정체여야 할 텐데 말이지.
그렇다면 왜 누구의 피던지 상관없이 그걸 열 수 있을까? 왜 연약한 기사의 손에 쥐어지게 내버려 두었을까?
우린 그 녀석이 입을 다물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신이 전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연약하고 위선적인 인간이야말로 손을 모아 바다에 기도나 하면서 위로를 얻으려 하겠지.
우리가 쟁취한 시간은 한정적이다, 글래디아
아직도 티아고의 일을 생각하는 거야?
음, 꼭 그런 건 아니네. 내가 겪어온 수많은 비극 중에, 티아고는 특별히 신경 쓸만한 사람이 아니었지. 마치 백사장의 모래알 같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백사장에 또 얼마나 많은 모래알이 있겠나.
이 배는 징벌군이 준비한 게 아니네. 대부분의 배는 징벌군이 관리하고 있지만, 극히 일부만…… 잊힌 채 바닷가에 방치되었지.
지금 보면, 징벌군 중 어느 한 장교의 허술함 덕분에 많이 편하게 된 셈이지.
나는 그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걸 잊게 될 것이고, 얼마나 많은 걸 좌초시킬지 생각하고 있었네.
켈시, 만약 테라가 한 척의 배라면, 어떤 배일 것 같나?
……
……곧 이베리아의 눈에 도착해.
……그렇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