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5등대 관제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심해 신도들이 티아고와 뜻을 같이하기로 하고, 카르멘과 켈시는 발이 묶이게 된다. 한편, 이베리아의 눈에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헌터들은 아이린과 함께 먼저 선박을 찾으러 나선다.
목적지에 거의 다 왔어요.
……
왜 그러죠? 제가 없었으면, 당신은 스툴티페라 나비스에 무사히 도착할 수 없었을 거예요. 바다의 후손이 당신을 물어뜯어 가루로 만들었거나, 당신의 손발을 묶어서 소굴로 데려갔겠죠.
넌 퀸투스와는 달라.
그게, 무슨 뜻이죠? 이 몸? 이 껍데기 말인가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너,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당신이야말로 뭐 하려는 거죠, 헌터? 당신의 동족들은 적을 극도로 미워해요. 그래서, 자신의 피조차도 의심하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담담한 척하고 있네요.
저한테 원하는 게 뭐죠?
……
현명한 침묵이군요. 아무래도 에기르인이라고 모두 사교성이 별로인 건 아닌가 봐요?
아니면, 당신이 사실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고약한 성격이라 그런 건가요?
……
……저는 대답할 수 있지만, 퀸투스는 대답 안 할 거예요. 다른 사람도 대답 안 할 거예요. 하지만 시본은 대답하겠죠. 우리는 사자처럼 사물을 이해해야 해요. 인간의 생각에만 머물러 있어선 안 돼요.
수작 부리지 마라.
으음……
이곳에 오기 전, 우르수스의 저서 한 권을 번역했어요. 종족, 국가와 역사에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그 책을 이베리아어와 빅토리아어로 번역했거든요.
보세요, 헌터 씨.
울피아누스는 여자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무심코 바다를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바다다.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어 답답해 보이지만, 어렴풋이 별이 보인다.
에기르인이라 해도 해면에서 바다를 자주 바라보지는 않아요. 종족, 국가, 대지가 한 구역, 한 구역씩 나뉘어 있는 한, 전쟁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위에서, 당신은 저 장벽들을 상징하는 경계선이 보이나요?
큭! 이 괴물들……
조르디! 괜찮아?
(벽을 기는 사르륵 소리)
다, 다가오지 마……!
아무래도 설비들이 작동되니, 이 저열한 생명체들이 이곳은 이상적인 소굴이 아니라는 걸 알아챈 것 같구나.
대재판관님!
위로 올라가라, 에기르인. 네 손에 있는 건 공구이지 검과 등불이 아니다.
아이린과 계속 계획을 진행해라. 재판소와 헌터들이 원하는 것을 찾도록.
아, 알았어요! 조심하세요!
당신은 우리가 정말 그 배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
이베리아는 유일한 착안점이에요.
난 잘 모르겠어…… 만일 그 배가 로도스 아일랜드와 같은 곳이라면, 왜 60년간, 이베리아에 돌아오려고 하지 않았던 것일까?
길을 잃은 우리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못 찾고 있잖아요?
(바닷물을 튀기는 사르륵 소리)
이 녀석들 숫자가 많아지고 있네요.
……너 괜찮아?
저요? 제가 왜요……
이베리아에 오는 길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잖아.
당신 눈엔 제가 쉴 새 없이 떠드는 사람으로 보였나 봐요, 스카디?
……
스카디는 스펙터의 눈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스카디가 육지에서 겨우 로렌티나를 만났을 때, 로렌티나의 눈에는 희뿌연 무언가가 씌워져 있었다.
그 이후, 살비엔토에서 로렌티나의 옛 모습을 아주 잠깐 본 적이 있었다. 로도스 아일랜드에 돌아온 후, 로렌티나는 마치 심연 속으로 빠진 듯했다.
하지만 스카디는 지금 스펙터의 이성이 어느 정도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스카디는 한 가지 나쁜 추측이 떠올랐다.
줄곧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추측 말이다.
왜 그러죠?
……
허튼 생각 마세요, 스카디.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잠꾸러기 인어 공주님. 머지않아 당신은 깨어날 거예요.
그럴까요?
그럴 거예요.
이제…… 상어와 함께 저 잡것들을 처리해요. 저들은 무수히 많으니, 다들 호흡을 조절하고 힘을 아껴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내가 사실 이런 상황에 더 익숙하다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
……우리 또 급하게 공연하러 가야 하는 건가요? 비바람도 아직 준비 안 됐는데요.
후훗, 하지만 우리의 파트너가 벌써 몸이 근질근질한 것 같네요.
……쳇, 끝이 없군……
아이린 님!
괜찮아?! 조금 전의 불빛은 역시 대재판관님의 등불이었어!
그게, 대재판관님이 우리에게 계속…… 뭘 하라고 시키셨나요? 그 배의 위치 정보를 찾으라고 하셨나요?
처음에는 기술 인력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시작하자는 거였어. 하지만 너 혼자서도 이 큰 녀석을 작동시킬 수 있게 된 이상……
쉬익…… 쉬익……
……시간이 없어!
티아고? 너 드디어 알았구나……
너흰 왜 도망가지 않았지? 징벌군과 재판관은 진즉부터 이 마을에 매복해 있었어.
그럼 네가 자랑스러워하던 마을 주민은 왜 돌아오지 않았지?
……!
재판소는 이미 그 갈팡질팡하는 그란파로 사람들을 죄다 잡아갔어. 그 사람들의 결말이 어떨지는 너도 잘 알 거야.
너는 매우 익숙할 거야.
난 이대로 그란파로의 멸망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겠다……
재판소에 대항하려고? 그건 상관없다, 티아고. 하지만, 그건 그란파로의 멸망을 더욱 빠르게 할 뿐이야. 이베리아는 절대 반역 행위를 용납하지 않아.
우린 모든 사람을 환영하지만, 연약한 자는 자격이 없어. 순간의 굳센 의지는 그저 뇌의 장난일 뿐이지. 네가 지금…… 누구랑 대화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는 있나?
누구냐고? 만일 내가 마음먹고 조사했으면, 너희들은 진즉에 징벌군한테 잡혀갔을 거다.
말해 봐라, 너희들은 그란파로에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지?
그란파로는 결국…… 인간의 거주지일 뿐이야.
우리가 육지에 가져다주고 싶은 것은, 이런 허무한 물질보다 더 높고 심오하지.
(갈라진 건물 틈새로 들려오는 사르륵 소리)
너 미행을 당했군.
쉬익……
하하, 이 시테러들은 정말 예민하다니까.
외지인? 좋아, 네 혈육은 부상자의 양분이 되어, 우리가 이 대지에 되돌려 줄 것이다.
쳇, 명흔이 벌써 이 층까지 퍼졌어. 벽이며 계단까지, 틈새만 있으면 파고들잖아!
아직이야?! 놈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곧 끝나요!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이 수신 설비들이 과연 작동할까요…… 이건 무슨 원리죠?
어, 노트의 기록에는……
……차, 찾았어요! 어디 보자……
쉬익……
음……
(놈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명흔을 통해 이동하면서, 거의 지면과 하나가 된 거 같아!)
(이렇게 가다가는, 선생님과 그 헌터들이 온다고 해도, 명흔이 곳곳에 다 퍼진 이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는 없을 거야……)
(플랫폼을 기어 다니는 사르륵 소리)
위험해…… 아래쪽을 봐! 조르디!
뭐, 뭐야……
계속하세요.
……앗, 네, 알겠습니다……
어비설 헌터스!
당신은 너무 약해요. 이 끝도 없는 괴물을 상대하려면, 동작이 더 빨라야 해요. 호흡을 아끼세요.
이렇게 말이에요.
음……!
에기르인, 얼마나 더 걸리죠?
노, 노트에는 이 정보 단말기의 조작 방법이 없어서, 해봐야 알아요……
……일부 기록 데이터가 있긴 한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어요. 끝도 없어요!
끝도 없다고? 재판소에서 마지막으로 시도했던 거라 할지라도, 이미 여러 해가 지났을 텐데!
저, 저도 모르겠어요. 정전으로 데이터가 날아간 줄 알았어요, 하, 하지만……
……제 추측이 맞다면……
……어느 배 한 척이, 요 몇십 년간 지속해서 등대에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거예요……!
뭐라……
그 배가 여기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죠?
잠시만요, 찾고 있어요, 음, 항로 기록……
……
왜 그래?
……매우 가까워요.
이렇게…… 가까이 있다고?
우왓!
왜, 왜 그래?!
건물 지하에 이미 명흔이 다 퍼진 거 같아요.
우린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해!
결정이요? 배의 위치를 찾았으니, 바로 그 배로 가죠.
안돼! 우린 계속해서 시테러를 제거해서, 징벌군의 지원군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해야 해……
놈들을 전멸시키는 건 불가능해요. 게다가 더 강력한 사냥감이 아직 사냥터에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우린 이미 너무 지쳐 있어요.
아니면, 아래쪽에 입구를 지키고 있는 대재판관님 같은 분이 이베리아에 수백 수천 명이라도 있나요?
아니…… 하지만……
한번 놓친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아요.
……
좌표는 특정할 수 있나요?
아, 음, 범위를 지정할 순 있지만, 그 배가 왜 자꾸 맴도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이상한 해류가 그 배를 표류하게 만드는 걸 거예요. 시본에 포위된 네모난 상자, 이게 바로 그 배의 현재 모습이에요.
우리에겐 배가 한 척뿐이야.
당신들이 사용하세요, 바다 전투에서 우리는 배가 필요 없으니까요.
아니.
너는 저들과 같이 움직이도록.
대재판관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이베리아의 눈은 계획보다 빨리 작동됐다. 이곳에는 아직 작동되는 방어 장치들이 더 있을 테지.
카르멘 님은 해안에 남은 잔당들을 물리친 후, 이곳에 지원하러 올 것이다. 저 무진장 많은 적을 상대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돼.
그, 그럼, 저는 대재판관님과 함께하겠습니다!
아니, 너는 저들과 같이 움직여라.
바다를 그 눈에 새겨놓도록 해라.
저는……
네 목숨을 구하고, 구조 인원이 너를 발견하게 한 것은, 네 손 안에 있는 경전이지, 내가 아니다.
올바른 선택을 해라. 그렇지 않으면 넌 이베리아에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이니.
……알겠습니다, 대재판관님.
이베리아의 눈이 되어서, 스툴티페라 나비스가 이베리아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출발하거라.
네가 올바른 판결을 할 날을 기대하마.
네! 장관님!
……너도, 이곳을 떠나서, 저들과 동행하도록.
아니요…… 다리오 님, 저는 여기에 있을게요.
이곳은 위험하다.
저는 저 황금빛 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제가 아는 거라곤 저 배가 화려하고 웅장하며, 훌륭하다는 것뿐이에요…… 하지만…… 제 사명은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 그게,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저…… 저는 등대를 탐험하면서, 비로소 저 자신의 가치를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
제가 이곳에 남게 해주세요.
……족히 100마리는 되는 것 같은데, 아무런 효과가 없어 보여.
저것들은 마치 별 같아요.
포위를 뚫는 건 어렵지 않지만, 등대를 지켜야 하잖아? 언제까지 베어야 하는 거지?
저들의 시체는 녹아 분해되어, 알록달록한 카펫으로 변하네요.
생명의 카펫, 아…… 육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펫이에요.
(명흔이 확실히 퍼지고 있어, 이대로는……)
당신들의 무기로는 저 녀석들을 없앨 수 없지만, 난 가능하다.
그건 오래 가지 못할 거예요. 해초의 끝자락만 잘라내서는 저것들의 생장을 막을 수 없어요.
충분하다. 당신 쪽 사람들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라. 배를 타고 가도록. 그렇지 않으면 방향을 특정할 수 없을 테니.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알고 있다, 에기르인.
좋아요.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대재판관님.
상어, 스카디!
……저 배……
그래요.
육지에서의 오랜 기다림을 견뎌 내고, 우린 에기르로 돌아갈 거예요, 우리는……
글래디아는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자기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잘 감춰진 좋은 피부 결에서 거친 촉감을 느꼈다.
그 배는 눈앞에 있어…… 아니야, 글래디아, 조바심 내지 말자. 바다는 여전히 위험해. 위험하지 않았다면, 세 명의 헌터들이 육지에 갇히지 않았을 거잖아.
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조급해하고 있었다.
……
……출발했네요.
그래. 징벌군의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우리를 도와줄 사람도 없고, 이 암초에서 떠날 방법도 없지.
……
……에기르인, 넌 잘 해냈다. 그래서 대답할 자격을 얻게 되었다.
앗, 네, 네! 반드시 사실대로 대답하겠습니다!
너는 각오를 다진 후에, 해안가를 떠나 우리를 따라 이곳에 오기로 한 건가?
너는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청소부라든가, 다른 직업을 가졌을 수도 있겠지만, 전사는 아니지. 그런 네가 바다를 돌아다니며, 시테러와 싸우는 걸 지켜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봐라…… 내 등불 불빛에 비친 네 얼굴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원하는 게 뭐지?
……
제게 기억이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사람들은 제가 에기르인이고, 제가 본래 등대를 수리하기 위해 온 것이지만, 지금은 모든 게 허사가 됐다고 했어요.
저는…… 예전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흐리멍덩했어요. 솔직히, 시테러가 나타났을 때, 티…… 어떤 사람이 저를 급히 떠나게 했지만, 저는 사실……
……사실 전, 제가 어디로 갈 수 있는지도 몰라요.
에기르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에 순종하면서 살았어요, 그리고…… 그게…… 사실 저는 예배당의 간병인이지, 청소부가 아니에요.
하지만 그건 일이라고 할 수 없어요…… 엘리시움 씨가 말했던 것처럼, 그분처럼 그렇게 살아야만 진정으로 이 대지에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게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너는 지금 죽음이 두려운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대재판관님.
너에게는 사실대로 말해야겠군. 명흔이 이미 이 해안가를 철저히 포위했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지.
……아……
카르멘 님과 닥터 켈시에겐 방법이 있겠지만, 내 판단은 더욱더 비관적이다.
그들이 떠났다는 건, 우리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것과 같지.
그래서 당신은 저한테 한사코 그 사람들을 따라가라고 하셨던 건가요……?
이젠 후회해도 의미가 없다. 너 자신의 의지로 복종을 거부했으니까. 하지만 만일 네가 이곳에서 죽는다면, 너의 죽음은 절대 무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
……너는 동요하지 않는군.
하하…… 약간은 동요했죠. 하지만 그 사람들과 같이 갔어도, 구사일생 아닐까요?
이 등대 안에 머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베리아의 눈에는 자기방어 장치가 있을 거다. 그것들을 작동시켜라.
아, 알겠어요. 하지만 재판관님은 어디로 가실 생각이세요?
……지금.
우리는 고향을 떠나 바다 위에 고립되어 있다.
한번 또 한 번, 이 작은 암초에 다다르고, 실종된 배와 생명은 이 암초 자체보다 훨씬 무겁지.
……쉬익……
(떼를 지어 꿈틀대는 사르륵 소리)
바다와 이베리아 사이에는 정의도, 사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검과 등불……
……그리고 내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