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그녀'
프리스티스와 맞서는 과정에서 박사와 켈시, 그리고 아미야는 온 힘을 다한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어. 더 탐색한다 해도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아.
내가 휴면에 들어간 지 만 일이 지났지만, 테라의 변화는 여전히 한정적이야.
탈로스 II에서 온 생명의 불씨는 아직 다 자라나지 못했어. 예전의 동료들이 묻어둔 희망의 씨앗들도 아직 싹틀 기미가 보이지 않아.
(풀이 죽은 듯한 동작)
실망했냐고? 아니…… 이런 결과는 이미 예상했어.
난 모든 발전의 속도를 잘못 판단했어. 이건 시간의 오류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한정적이지.
시간…… 내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난 이 육체의 수명을 계속 낭비할 수 없어. 그 석관에 다시 돌아가 휴면하면서 더 적절한 시기를 기다려야만 해.
……내가 약속을 어겼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어. 이건 확실히 배신이야.
단지 내가 생명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희망 말고는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어.
다만, 프리스티스도 내가 일찍 깨어날 거란 걸 알고 있었을 거야.
내가 휴면 중이던 석관에서 린치핀을 수정하는 프로그램을 발견했어.
(궁금한 듯한 동작)
그건 잃어버린 시대에 만들어진 기술이야, 우리의 사고와 신념을 견고하게 해주는 데 사용됐지. 그게 아니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끝없는 절망을 버틸 수 없었을 거야.
나와 프리스티스는 그 시기를 함께 보냈어……
난 확신해, 프리스티스는 나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야. 그렇기 때문에 프리스티스와 갈라진 건 내게 가장 아쉬운 일이지.
그녀는 내 행동을 예상했고, 석관 속에 숨겨진 프로그램은 내가 깨어남과 함께 가동됐어. 그 프로그램은 내 인지와 '변론'의 목적을 수정하겠지……
그리고 나는 반드시 그 유일한 석관으로 돌아가 내 생명을 연장해야만 해. 설령 그게……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의미라 할지라도 말이야.
AMa-10……
아니, 더 이상 이렇게 부르면 안 되겠다.
이건 기계에나 붙는 코드네임이야. 너에게 진정한 이름을 지어줘야겠어.
방해석…… 빛은 결정 속에서 두 개의 다른 편광으로 굴절돼. 정말 아름다운 현상이지, 너랑 닮았어.
Calcite……Kal'tsit…… 그래, 켈시라고 짓자. 이 이름 어때?
(기쁜 듯한 동작)
그리고 내가 다 끝내지 못한 일은, 네가 대신해 줬으면 좋겠어.
……
켈시, 나는 네가 이 땅의 생명을 지켜줬으면 좋겠어.
새로운 문명은 언제나 취약해. 하지만 그렇다고 거친 환경이 자비를 베풀진 않아.
문명의 발전에 개입하는 건 일종의 오만이지만, 우리에겐 기회가 얼마 없어. 이번이 우리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문명은 끊임없이 반복되며, 잘못된 길을 숙명처럼 되풀이하지. 그들은 폭력적인 싸움, 스스로 증명할 수 없는 사고의 함정, 그리고 자기 의심의 막다른 길에 이르게 될 거야……
이 모든 건 피할 수 없어. 하지만 아주 미세한 차이 하나만으로도 문명은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파멸될 수 있어. 문명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적이야……
그러니까 켈시, 네가 저들을 이끌어줬으면 해.
쌍생 순환구조는 너에게 무한에 가까운 생명을 줄 수 있어. 너는 이 미숙한 문명의 발전과 함께해도 좋고, 너의 지식을 활용해 그들을 이끌어줘도 좋아.
힘겨운 사명이겠지만, 너라면 해낼 수 있을지도 몰라. 너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열정적이던 연설이 갑자기 멈췄다. 예언가는 조용히 눈앞의 섬세하고 정교한 기계 생명체를 쳐다보고는 먼 곳의 모래바람에 반쯤 가려진 산맥을 바라보았다.
……
아니……
……방금 내가 한 말은 잊어, 켈시. 다 잊어줘.
가, 켈시. 주변을 둘러보고 저 산 너머에도 가봐. 가서 생명의 흔적을 찾고, 존재의 형태를 찾아봐.
……나는 돌아가야겠어. 내가 필요할 때가 되면, 그때 깨워줘.
켈시, 내가 너에게 바라는 일, 혹은 내가 너에게 부여한 사명은 오직 하나야.
너 자신을 찾아.
생명의 흔적을 찾고, 희망과 미래를 찾아.
켈시…… 스스로 답을 찾아.
……켈시.
네 생명의 의미를 찾았어?
(흥분한 듯) 크르르르르……
……
Mon3tr가 평소와 다른 자태로 당신 앞에 나타났다.
그는 켈시의 명령도 없이 맹렬한 속도로 적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오리지늄 결정 무더기가 바닥에서 솟아나 검은색 괴물을 완전히 감싸버렸다.
- 켈시! 조심해……
놀라웠어, AMa-10.
쌍생 순환 시스템을 끊어내는 대가로 내 통제를 벗어났구나. 그게 네 생명을 취약하게 만들지라도.
그런데 있잖아, 정말 그런 방법으로 나를 죽일 생각인 거야?
나도 알아. 아주 오래전, 넌 네 의식을 오리지늄 속 정보의 바다에 동기화했어.
그러니까 너를 죽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겠지.
하지만 테레시아와 테레시스가 해낸 일을 보고, 나도 확신한 게 있어.
너는 오리지늄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게 아니야. 너의 권한을 제한할 방법은 아직도 존재해.
네가 말한 그 두 사람, 확실히 오리지늄 안에서 만났어.
그 둘의 노력은 정말 예상 밖이었지, 놀라울 정도로 치열한 몸부림이었어.
근데 그게 왜? 여기서 나를 죽인다는 게 헛수고가 아니라는 건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데?
Mon3tr가 공격했을 때, 너는 방어를 선택했어.
……
……어떻게 한 거지?
이미 눈치챈 것 같네.
테레시아가 진행한 오리지늄 연구를 바탕으로, 네가 {@nickname} 박사를 상대로 함정을 만들었던 것처럼, 나도 네가 있는 각성실에 똑같이 손을 써뒀거든.
네가 그곳에서 깨어나기만 하면, 네 의식도 그 육체에 갇혀 버리지. 다시는 오리지늄 속 정보의 바다로 돌아갈 수 없을 거다.
……?
어쩌면 넌 언젠가 이 한계를 벗어날지도 모르고, 오리지늄을 다룰 권한 역시 계속 갖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너는 그냥 인간일 뿐이야.
나에게 저항하려고 이렇게까지 하다니……
프리스티스, 너는 테라의 창조주가 아니야. 이 대지의 모든 생명은 네 뜻에 따를 의무 따윈 없어.
……이게 내 복수이자, 마지막 저항이다.
당신은 맞은편에 있는 여자의 얼굴에서 잠시 망설임이 스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곧 오리지늄이 그녀를 맴돌기 시작했다.
……이미 늦었어.
- 아미야! 켈시를 도와줘!
(격앙된 듯) 크르르르르……
켈시 선생님…… 이번엔 제가 지켜드릴게요……
검은 아츠의 난류가 오리지늄 결정 군집을 부쉈고, Mon3tr는 그곳을 필사적으로 벗어나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다시 돌진했다.
오리지늄 결정 군집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지만, 이미 Mon3tr의 발톱을 막아낼 만한 보호막을 만들기엔 늦었다.
당신은 프리스티스의 긴장한 표정을 보았다. 창조주가 자신의 피조물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
프리스티스가 마침내 자신에게 닥친 위협을 인정하기라도 한 듯, 갑판 위의 오리지늄이 모두 그녀의 의식에 반응하여 급격히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Mon3tr는 사냥감에 점점 가까워졌다.
우측 5명, 빈사 상태 확인.
'몰망'.
뭐 엄청난 것처럼 굴더니, 결국은 우리가 쓰러뜨린 적을 다시 내오는 것뿐이잖아. 별거 아니네.
내 공격을 받아라!!
기분 탓인가? 어째 적이 다시 생겨나는 속도가 느려진 것 같은데?
여긴 PRTS의 핵심 시스템이야. 애초부터 우리가 싸웠던 적들의 데이터를 읽고 복제하고 있었어.
그런데 지금 데이터베이스를 읽는 속도가 느려졌어. 뭔가 방해라도 받았나 봐……
아무래도 박사 쪽 작전이 통한 거 같아.
이 기회에 단숨에 해치우자.
우리는 어비스의 깊은 곳으로 가야 해…… 아직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Mon3tr, 용해!
검은 아츠와 레이저가 차례대로 전방의 거대한 오리지늄 결정 군집을 향했고, 그 맹렬한 공격은 오리지늄의 확산세를 억누르기까지 했다.
그리고 아츠의 빛이 프리스티스의 형체를 집어삼켰다.
연기와 먼지가 걷힌 뒤, 바닥에 남은 건 오리지늄 파편뿐이었다.
그리고 찢겨버린 하얀색 겉옷도 있었다.
- 우리가…… 이겼나?
……
생명의 흔적도……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요……
어쩌면……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신은 눈앞에 일어난 모든 변화가 아직 실감 나지 않았다.
당신은 매우 위협적이던 적이 눈앞에서 한순간에 사라지는 걸 직접 목격했다.
하지만 안도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장난은 여기까지만 할까?
- 어떻게 된 거지……!
이게 대체……
박사, 아미야, 물러나!
꽤 괜찮은 반항이었어, AMa-10. 네 계획도 효과적이었고.
네 말대로, 지금이 바로 날 죽일 기회겠지……
하지만, 고작 오리지늄으로 만든 대역 때문에 이렇게까지 허둥대는 거야?
……!
AMa-10, 나는 네가 믿는 가치에 대해 너와 토론할 생각이 없어.
네가 계속 고집했던 것은 너무나도 하찮아서, 그 의미를 평가할 만한 설득력 있는 논리조차 찾을 수 없거든.
하지만 실험 과정에서는 확실히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지. 작은 오류가 결과적으로 큰 걸림돌이 되는 경우 말이야. 그리고 난 이런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안타깝지만, 너라는 오류를 제거해야겠어.
프리스티스가 손을 들어 올렸다.
오리지늄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하더니, 결정으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가지들이 순식간에 당신들을 집어삼킬 것처럼 당신과 아미야의 주변을 빼곡히 감쌌다.
아미야는 온 힘을 다해 아츠로 주변의 오리지늄을 부쉈지만, 결정이 자라나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박사님! 제 뒤에 숨으세요……
……!
Mon3tr……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당신은 오리지늄 결정 군집이 가까운 곳에서 폭발하는 걸 보았다. 아미야가 당신을 지키려 했으나, 시간은 그녀에게 어떤 반응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순간 검은 괴물이 당신과 아미야의 곁으로 다가와, 거대하고 단단한 몸으로 당신들과 오리지늄 결정 군집 사이를 가로막았다.
당신은 켈시를 보았다……
아쉽네.
박사, 너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의심해 본 적이 있나? 나는 있어.
나는 내 사명을 잘 알고 있어. 비록 힘들지만, 그 의미도 인정하고 있고.
미래에 대해, 너라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다…… 난 그렇게 계속 바랄 수밖에 없어.
로도스 아일랜드는 누구 하나 빠진다고 멈춰서는 안 되니까, 나에 관한 거는 너무 신경 쓰지 말도록 해.
내 소원?
그건 너와 아미야의 소원을 지키는 거다.
내 맹세를 저버리는 일은 하지 않아. '지킨다'는 말을 어떻게 정의할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여기에 있을 거다.
우리는 과거를 망각할 수는 없지만, 네게는 또 다른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나는 이미 내 생명의 의미를 찾았어.
부디, 로도스 아일랜드를 이끌고……
계속 나아가줘.
{@nickname}.
어느샌가 나는 누군가 내 옆에서 나를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데 익숙해졌어.
이제서야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확실히 알게 됐어.
어찌 됐든, 나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갈 거야. 희망을 절대 포기하지 않아.
그런데……
……너는?
켈시 선생님……!
- ……켈시……?
예상치 못한 일이 너무나 갑작스레 일어났지만, 당신에게 이 사실의 잔혹함을 깨닫게 하기엔 충분했다.
당신들이 맞선 상대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그녀는 모든 오리지늄을 조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켈시의 오른쪽 어깨에 있던 그 작은 오리지늄 결정은 그녀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증거이자, 그녀의 생명을 앗아간 근원이기도 했다.
오리지늄 결정이 퍼져 나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그녀의 온몸을 집어삼켰고, 산산이 부서져 바람에 흩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육안으로 포착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강할수록, 더 약하다.
장생한 자의 삶은 이렇게 끝났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