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그녀'
프리스티스와 맞서는 과정에서 박사와 켈시, 그리고 아미야는 온 힘을 다한다.
조금 우울해 보이네, {@nickname}.
무슨 일이야? 나한테 말해 줄 수 있어?
QHU9112, 또 빛바랜 은하야.
이건 새로운 만조야. 우리 근처에 닿은 건 첫 번째 물결에 불과하고. '그'의 도래는 우리 예상보다 더 빨라.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아……
하지만 우린 준비가 돼 있잖아, 그렇지?
우리는 이미 희망의 씨앗을 심었어. 이제 그 씨앗이 답을 틔워주길 기다리기만 하면 돼.
걱정하지 마. 그냥 평범한 휴면이라고 생각해. 시간이 조금 길 뿐, 이전의 시간 여행과 본질은 같아.
더군다나, 이번엔 내가 당신 곁에 있잖아.
고요하고 영원한 밤을 넘어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당신을 가장 먼저 봤으면 좋겠어.
하지만 우리는 아직 변론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어……
오리지늄은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야. 다른 방법이 거의 없어. 반드시 신중하게 명확한 길을 정해야 해.
……
프리스티스는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녀가 말로 꺼내지 않은 생각은 이 사고의 공명실 안에서 형태를 갖춘 화면들로 나타났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기쁨과 희망을 상징하는 화면이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어둠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nickname}, 나는 한 번도 우리가 논쟁하던 주제를 잊은 적 없어. 우리 사이엔 어떤 벽도 있어선 안 돼.
봐, 이건 우리가 우리만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거야. 우리는 아마 같은 기대를 품고 있었겠지.
우리의 사고 속에 박혀 있는 똑같은 린치핀은, 우리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이기도 해.
우리 둘의 사고는 단단히 연결되어 있어. 우리의 의식이 우주와 함께 소멸할 때까지 연결되어 있겠지.
우리의 생각은 계속 부딪치고, 끝없이 논쟁을 벌였어.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본성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거야.
나는 확신해, 미래를 기대하는 건 우리의 천성이야. 그리고 이 허무한 별바다에서 우리는 서로의 고정점이지.
설령 오리지늄에 대한 우리의 견해가 좁혀지지 않더라도, 설령 우리가 선택한 길이 결국은 공존할 수 없는 길일지라도……
프리스티스, 난 확신할 수 없어……
그렇다면, 계속 기다리자.
당신이 지금 휴면에 들어가고 싶지 않더라도 괜찮아.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조금 있으니까.
우리 함께 DWDB에 보관된 고서를 읽어봐도 돼. 우주에는 아직 우리가 해석할 만한 죽은 행성이 남긴 시가 많거든.
당신이 결정을 내리기 전까진, 강요하지 않을게……
나는 내 의지를 절대로 당신에게 강요하지 않아.
{@nickname}, 나는 기다릴 거야. 당신이 내 곁에 서는 걸 스스로 선택할 때까지.
프리스티스……
무리하지 마, {@nickname}, 요즘 관측 업무 때문에 엄청 피곤하잖아.
눈 감고 조금만 쉬어. 내가 멀리 있는 항성이 중력으로 연주하는 화음을 들려줄게. 좋은 꿈을 꾸게 될 거야.
잘자, {@nickname}.
시간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고요해진 우주를 넘을 때까지.
그 세계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게.
(흥분한 듯) 크르르르르……
……
Mon3tr가 평소와 다른 자태로 당신 앞에 나타났다.
그는 켈시의 명령도 없이 맹렬한 속도로 적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오리지늄 결정 무더기가 바닥에서 솟아나 검은색 괴물을 완전히 감싸버렸다.
- 켈시! 조심해……
놀라웠어, AMa-10.
쌍생 순환 시스템을 끊어내는 대가로 내 통제를 벗어났구나. 그게 네 생명을 취약하게 만들지라도.
그런데 있잖아, 정말 그런 방법으로 나를 죽일 생각인 거야?
나도 알아. 아주 오래전, 넌 네 의식을 오리지늄 속 정보의 바다에 동기화했어.
그러니까 너를 죽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겠지.
하지만 테레시아와 테레시스가 해낸 일을 보고, 나도 확신한 게 있어.
너는 오리지늄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게 아니야. 너의 권한을 제한할 방법은 아직도 존재해.
네가 말한 그 두 사람, 확실히 오리지늄 안에서 만났어.
그 둘의 노력은 정말 예상 밖이었지, 놀라울 정도로 치열한 몸부림이었어.
근데 그게 왜? 여기서 나를 죽인다는 게 헛수고가 아니라는 건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데?
Mon3tr가 공격했을 때, 너는 방어를 선택했어.
……
……어떻게 한 거지?
이미 눈치챈 것 같네.
테레시아가 진행한 오리지늄 연구를 바탕으로, 네가 {@nickname} 박사를 상대로 함정을 만들었던 것처럼, 나도 네가 있는 각성실에 똑같이 손을 써뒀거든.
네가 그곳에서 깨어나기만 하면, 네 의식도 그 육체에 갇혀 버리지. 다시는 오리지늄 속 정보의 바다로 돌아갈 수 없을 거다.
……?
어쩌면 넌 언젠가 이 한계를 벗어날지도 모르고, 오리지늄을 다룰 권한 역시 계속 갖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너는 그냥 인간일 뿐이야.
나에게 저항하려고 이렇게까지 하다니……
프리스티스, 너는 테라의 창조주가 아니야. 이 대지의 모든 생명은 네 뜻에 따를 의무 따윈 없어.
……이게 내 복수이자, 마지막 저항이다.
당신은 맞은편에 있는 여자의 얼굴에서 잠시 망설임이 스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곧 오리지늄이 그녀를 맴돌기 시작했다.
……이미 늦었어.
- 아미야! 켈시를 도와줘!
(격앙된 듯) 크르르르르……
켈시 선생님…… 이번엔 제가 지켜드릴게요……
검은 아츠의 난류가 오리지늄 결정 군집을 부쉈고, Mon3tr는 그곳을 필사적으로 벗어나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다시 돌진했다.
오리지늄 결정 군집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지만, 이미 Mon3tr의 발톱을 막아낼 만한 보호막을 만들기엔 늦었다.
당신은 프리스티스의 긴장한 표정을 보았다. 창조주가 자신의 피조물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
프리스티스가 마침내 자신에게 닥친 위협을 인정하기라도 한 듯, 갑판 위의 오리지늄이 모두 그녀의 의식에 반응하여 급격히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Mon3tr는 사냥감에 점점 가까워졌다.
우측 5명, 빈사 상태 확인.
'몰망'.
뭐 엄청난 것처럼 굴더니, 결국은 우리가 쓰러뜨린 적을 다시 내오는 것뿐이잖아. 별거 아니네.
내 공격을 받아라!!
기분 탓인가? 어째 적이 다시 생겨나는 속도가 느려진 것 같은데?
여긴 PRTS의 핵심 시스템이야. 애초부터 우리가 싸웠던 적들의 데이터를 읽고 복제하고 있었어.
그런데 지금 데이터베이스를 읽는 속도가 느려졌어. 뭔가 방해라도 받았나 봐……
아무래도 박사 쪽 작전이 통한 거 같아.
이 기회에 단숨에 해치우자.
우리는 어비스의 깊은 곳으로 가야 해…… 아직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Mon3tr, 용해!
검은 아츠와 레이저가 차례대로 전방의 거대한 오리지늄 결정 군집을 향했고, 그 맹렬한 공격은 오리지늄의 확산세를 억누르기까지 했다.
그리고 아츠의 빛이 프리스티스의 형체를 집어삼켰다.
연기와 먼지가 걷힌 뒤, 바닥에 남은 건 오리지늄 파편뿐이었다.
그리고 찢겨버린 하얀색 겉옷도 있었다.
- 우리가…… 이겼나?
……
생명의 흔적도……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요……
어쩌면……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신은 눈앞에 일어난 모든 변화가 아직 실감 나지 않았다.
당신은 매우 위협적이던 적이 눈앞에서 한순간에 사라지는 걸 직접 목격했다.
하지만 안도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장난은 여기까지만 할까?
- 어떻게 된 거지……!
이게 대체……
박사, 아미야, 물러나!
꽤 괜찮은 반항이었어, AMa-10. 네 계획도 효과적이었고.
네 말대로, 지금이 바로 날 죽일 기회겠지……
하지만, 고작 오리지늄으로 만든 대역 때문에 이렇게까지 허둥대는 거야?
……!
AMa-10, 나는 네가 믿는 가치에 대해 너와 토론할 생각이 없어.
네가 계속 고집했던 것은 너무나도 하찮아서, 그 의미를 평가할 만한 설득력 있는 논리조차 찾을 수 없거든.
하지만 실험 과정에서는 확실히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지. 작은 오류가 결과적으로 큰 걸림돌이 되는 경우 말이야. 그리고 난 이런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안타깝지만, 너라는 오류를 제거해야겠어.
프리스티스가 손을 들어 올렸다.
오리지늄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하더니, 결정으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가지들이 순식간에 당신들을 집어삼킬 것처럼 당신과 아미야의 주변을 빼곡히 감쌌다.
아미야는 온 힘을 다해 아츠로 주변의 오리지늄을 부쉈지만, 결정이 자라나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박사님! 제 뒤에 숨으세요……
……!
Mon3tr……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당신은 오리지늄 결정 군집이 가까운 곳에서 폭발하는 걸 보았다. 아미야가 당신을 지키려 했으나, 시간은 그녀에게 어떤 반응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순간 검은 괴물이 당신과 아미야의 곁으로 다가와, 거대하고 단단한 몸으로 당신들과 오리지늄 결정 군집 사이를 가로막았다.
당신은 켈시를 보았다……
아쉽네.
박사, 너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의심해 본 적이 있나? 나는 있어.
나는 내 사명을 잘 알고 있어. 비록 힘들지만, 그 의미도 인정하고 있고.
미래에 대해, 너라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다…… 난 그렇게 계속 바랄 수밖에 없어.
로도스 아일랜드는 누구 하나 빠진다고 멈춰서는 안 되니까, 나에 관한 거는 너무 신경 쓰지 말도록 해.
내 소원?
그건 너와 아미야의 소원을 지키는 거다.
내 맹세를 저버리는 일은 하지 않아. '지킨다'는 말을 어떻게 정의할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여기에 있을 거다.
우리는 과거를 망각할 수는 없지만, 네게는 또 다른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나는 이미 내 생명의 의미를 찾았어.
부디, 로도스 아일랜드를 이끌고……
계속 나아가줘.
{@nickname}.
어느샌가 나는 누군가 내 옆에서 나를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데 익숙해졌어.
이제서야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확실히 알게 됐어.
어찌 됐든, 나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갈 거야. 희망을 절대 포기하지 않아.
그런데……
……너는?
켈시 선생님……!
- ……켈시……?
예상치 못한 일이 너무나 갑작스레 일어났지만, 당신에게 이 사실의 잔혹함을 깨닫게 하기엔 충분했다.
당신들이 맞선 상대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그녀는 모든 오리지늄을 조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켈시의 오른쪽 어깨에 있던 그 작은 오리지늄 결정은 그녀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증거이자, 그녀의 생명을 앗아간 근원이기도 했다.
오리지늄 결정이 퍼져 나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그녀의 온몸을 집어삼켰고, 산산이 부서져 바람에 흩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육안으로 포착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강할수록, 더 약하다.
장생한 자의 삶은 이렇게 끝났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