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이른바 기적
카우투스 감염자는 죽지 않고, 누군가에게 구해져 자신의 인지를 뛰어넘은 곳으로 오게 된다. 런디니움 사건 3년 후, 로도스 아일랜드 본함의 오퍼레이터들은 차례대로 각지로 외근 임무를 떠난다.
등장 오퍼레이터: 지마, 켈시, 새비지, 와파린, 굼, 아미야, 폴리닉, 워미, 라바, 알라나, 히비스커스, 이스티나, 로사, 레드, 레토, 터치, 듀나, 압생트, 케오베, 히비스커스 더 퓨리파이어
……종소리? 왜 모든 방향에서 동시에 울리지?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 사방의 벽에조차 메아리를 일으키지 못했다.
짙은 안개 같은 빛이 비칠 때마다, 벽에는 수많은 작은 구멍들이 나타나 열리고 닫히며 호흡했다. 그러다 빛이 사라지면 벽은 다시 깨끗하고 고요한 상태로 변했다.
저 빛은…… 주교 할아버지가 설명했던 신성한 도시의 빛과는 다른데……
(미지의 언어) 그것은 시뮬레이션 된 F형 스펙트럼이야.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요…… 어떻게 하면 당신을 찾을 수 있나요?
그녀의 손끝이 벽에 닿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마치 누군가의 손끝과 맞닿은 듯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손바닥을 벽에 대고 벽 표면의 섬세한 결을 느꼈다.
그녀의 손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든, 그 결은 손을 따라 뻗어 갔다. 마치 그녀의 손을 잡은 것처럼.
저에게 응답하시는 건가요?
그녀가 앞으로 살짝 나아가자 벽도 멀리 뻗어 가며 그녀를 이끌었다.
이곳에는 문도 많고 길도 많아요. 모두 어디로 통하는 건가요?
카우투스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공중에 떠 있는 '신'을 보았다. 그 모습은 압도될 만큼 거대했다.
그 존재의 신체 표면에선 금속과는 다른 어두운 광택이 반사되었고, 수많은 빛나는 조각들이 서로 다른 규칙에 따라 유연하게 배열되고 있었으며, 색깔 역시 그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신'의 머리에 광륜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물체는 그녀의 존재를 무시한 채 스쳐 지나갔다.
……?!
♪~
또 다른 비슷한 존재가 그녀 앞에 다가왔다.
♫?
그건 마치 질문 같았다.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신'은 잠시 말이 없더니 자신의 언어로 소통하는 것을 포기했다.
(미지의 언어) 너의 언어 사용은 매우 원시적이군.
'신'이 유연한 사지를 움직여 카우투스의 뒷머리를 덮자, 카우투스는 긴장한 듯 눈을 꼭 감았다.
(미지의 언어) 두려워할 필요 없다. 너의 사고 주파수를 분석하고 안세타에 업로드했을 뿐이다.
사용 가능. 언어. 너.
……벡터화 미진행, 추측, 판단. 언어, 임시 사용. 공명, 필요.
저기……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나요?
물론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신'인가요?
카우투스는 긴장하며 머릿속에서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신', 의문. 정의, 필요.
주교 할아버지께서는 신은 율법의 화신이며 신성한 도시의 주인이기에, 병들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준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씀은 그 어떤 고서에도 나와 있지 않아요.
신, 부정.
신, 필수, 아니다.
……?!
당신이 신이 아니라면, 누가 저를 구한 거죠? 전 왜 여기에 오게 된 거예요?
……아니면, 이곳은 사후 세계인가요? 당신은 저를 이끌어 줄 존재인가요?
질문. 너무 많다.
공명, 부족. 소통 효율, 너무 낮다.
굴광자. 나.
일부 답변. 제시.
자칭 '굴광자'라는 존재는 자신의 몸을 이용해 공중에 창문을 그려내더니, 그것을 가장 가까운 벽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창문에 비친 광경이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그리고 어디선가 새어 나온 희미한 빛이 창문 전체를 가득 채웠다. 이미지는 점점 선명해졌고, 카우투스 소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산산이 부서진 한 구체가 수많은 별이 가득한 어둠 속에 떠 있었다. 그것은 죽음의 순간에 굳어버린 상태였다.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옛일들은 모두 먼지로 부서져, 차가운 허공 속으로 내던져졌다.
그 먼지들은 서로를 찾아 한때 터전이었던 곳을 에워싸며, 공중에 떠 있는 고리를 형성했다.
카우투스와 굴광자는 그 고리 위에서 돛 없는 거대한 배를 타며 이 고요한 정적을 항해하고 있었다.
항해. 인양. 우리는 보았다.
너, 떨고 있다. 두려워?
저 멀리서 빛나고 있는 마치 사람의 눈처럼 생긴 것은…… 정말 무서워요.
마치 별처럼 생겼지만 아주 낯설게 느껴져요. 너무 많고, 너무 가깝고…… 너무 밝아요.
당신은 두려움을 못 느끼나요?
두려움. 필수, 아니다.
두려움, 제한적이다. 묘사, 필요 없다.
카우투스는 창문 아래쪽의 선체 벽에 작은 구멍이 수없이 많이 생긴 것을 보았다.
아주 먼 곳에 하얀색 밝은 점이 나타났고, 그 점은 계속해서 커지더니 마침내 창문 전체를 가득 채웠다.
눈 부신 빛은 죽음의 대지를 스치며 모든 것을 덮고 숨겨버렸다. 마치 모든 염탐하는 자들의 해석을 차단하는 것처럼.
카우투스 소녀는 그 빛의 근원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두려움이 그녀의 심장을 계속해서 덮쳐왔고,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머나먼 별의 창백한 불꽃이었다.
죽어버린 행성은 여전히 그 주위를 맴돌았고, 별의 고리에 붙어있는 거대한 배는 반복해서 그 빛과 통곡을 맞이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봤나?
오직, 무덤뿐. '신성한 도시', 없다.
오직, 주기뿐. 오직, 법칙뿐. '신'…… 없다.
우주. 환영한다.
여행자. 너, 이름?
……
힐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수도사들이 장난삼아 부르던 별명이 제 이름이 되어버렸어요.”
……
……
관리자 권한 확인 완료.
제한된 접근 항목을 해제 중: PRTS 음성 복구 기록 #0422
권한 잠금 해제 완료.
기록 시간: 복구 불가능
재생 기록: 개발 대기 구역
기록 대상: 켈시
런디니움의 혼란은 끝났지만, 빅토리아의 평화는 아직 멀었어.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지? PRTS, 듣고 있는 거 알아.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로도스 아일랜드 중간층 개발 대기 구역의 요람 프로세스에 대한 감시를 재구성해 줘.
그리고…… 클로저에게도 나와 같은 레벨의 권한을 개방해줘.
음성 명령…… 어비스. 고마워.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할 수 있을까?
프로젝트 재생 완료. 접근 기록 삭제 중……
3…… 2…… 1…… 기록 삭제 완료.
관리자님, 다음 권한 기록을 해제하시겠습니까?
작업 확인 완료. 다음 기록이 재생됩니다……
로도스 아일랜드 본함1101년 여름
런디니움 사건이 끝나고 3년 후
(빠르게 비행한다)
(우쭐거린다)
잘했어, 꼬맹이. 클로저와 메커니스트의 업그레이드가 꽤 효과가 있는 것 같네.
(기뻐하며 빙글빙글 돈다)
휴, 이 구역의 점검 작업은 거의 끝났네.
알라나는 작고 여린 몸이 자신의 등 뒤에 달라붙어 목을 끌어안고 까르르 웃는 걸 느꼈다.
그녀는 이 웃음소리가 익숙했다. 때로는 그녀를 기쁘게 했고, 때로는 그녀를 걱정시켰던 사람의 웃음소리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 소중한 아이를 등에 업었다.
냄비 뚜껑, 크림 스튜 냄새가 나네!
라나 언니, 이러면 서프라이즈가 아니잖아요!
냄새가 너무 좋아서 어쩔 수 없었어.
이렇게 신이 나 있는 걸 보니, 박사가 허락해 줬나 보네?
네! 림 빌리턴 사무소의 외근 지원 신청서를 보자마자 바로 지원했어요.
제가 만든 요리로는 광산의 아저씨랑 아주머니들의 광석병을 치료해 줄 수 없지만, 로도스 아일랜드의 언니, 오빠들은 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전 사람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 줄 수 있고요.
새비지 언니랑 레이 언니가 저 대신 보증해 주지 않았다면, 박사님은 제 신청서를 바로 거절했을지도 몰라요.
흠, 너와 같이 있는 건 애당초 보호자인 내 책임인데.
레이 언니랑 새비지 언니가 함께 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제가 없는 동안에도 밥을 잘 챙겨 먹어야 해요. 주방에 언니가 좋아하는 맛으로 '매일 수프'를 일주일 치나 준비해 뒀어요.
후방지원부 언니, 오빠들이 저 대신 언니를 감독할 거예요.
하하, 그래 알았어. 네 말 잘 들을게, 냄비 뚜껑.
그래도, 여기서 사귄 친구들과 헤어져 있을 수 있겠어?
(과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네, '삐빅이'도 물론 제 소중한 친구죠.
그렇지만 아는 사람들이 거의 다 각지에 외근 지원을 신청했더라고요. 저만 뒤처질 순 없죠!
다들 임무를 마치면 우리의 새로운 집을 구경할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어요. 분명 라나 언니가 그랬죠? 개조가 끝나면 로도스 아일랜드가 더 크고 더 멋있게 될 거라고요!
(쉿…… 그건 당연한 얘기야. 사실 클로저의 설계도를 몰래 봤거든.)
게다가……
게다가?
이제 전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가족들에게 인사하고 먼 길을 떠날 만큼 용감해졌어요. 라나 언니, 제가 돌아올 때까지 꼭 기다려야 해요!
거대한 쿠키? 케오베가 우리한테 준 거라고?
각지로 파견 준비 중인 오퍼레이터들은 다 받았대.
“여행 때는 배불리 먹어야 해.” 케오가 이렇게 강조했어.
……그런데, 다 나눠주기 전에 자기가 반 이상을 먹어버릴지도.
굼이랑 벌컨 언니가 최대한 빨리 더 많이 구워서, 케오의 이름으로 외근 나가는 오퍼레이터들에게 모두 나눠주려고 해.
그럼, 소냐가 케오랑 같이 나눠주면 되겠네요.
내가 왜……
아니다, 그럼 레토도 데리고 갈게.
……?!
헤헤, 어쨌든 우리가 도착하면 내게 빚진 벌꿀 음료나 갚으라고……
그럼 난 동장군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게!
아오, 내 머리야…… 사람들을 상대하는 건 역시 나탈리야에게 맡겨야 해……
로사도 여유가 없다고 하네요. 아미야와 구체적인 작전 사항을 논의해야 하잖아요.
이번 여정은 좀 까다로울 거예요. 어쨌든 목적지가……
(우르수스어) “우르수스”니까요.
……
아니면 본인이 해결하지 못할까 봐, 아미야와 상의하는 일을 로사에게 떠넘긴 건가요?
누가 해결 못 한다고 그래. 나는 단지……
우르수스, 모두가 함께 떠나온 곳.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지마는 모두에게 맞설 용기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굼, 손이 왜 그래?
벼, 별거 아니야. 그냥 조금 욱신거려. 쿠키를 너무 많이 준비한 바람에, 식당에 있던 사람들이 쉴 틈도 없었거든.
케오도 벌컨 언니한테 붙잡혀 식당 밖에서 얌전히 돕고 있다니까.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지마 언니. 케오는 자신을 챙겨준 오퍼레이터들이 집을 떠나도 배불리 먹게 하고 싶었던 거야. 나도 같은 마음이고.
……우리도 가서 도와주자.
어차피 나탈리야도 아직 시간이 좀 필요하니까……
뭘 도와? 나도 껴 줘.
저기 곰돌아, 내가 주방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교관님?!
박사한테서 너희 신청서를 보고, 너희와 같이 가려고 나도 신청했어…… '보호자' 신분으로 말이야.
솔직히, 박사는 너희를 많이 걱정하고 있어. 나도 마찬가지고.
지마 언니……?
당연히 환영이지!
로사 씨, 사실 박사님은 처음엔 로사 씨가 가는 걸 반대했어요.
의료부는 당신의 상태를 평가했고, 우리에게 객관적이고 신중하게 당신들의 작전 계획을 검토해달라고 의견을 냈거든요.
하지만 박사는 결국 우리의 결정을 존중해 줬잖아?
그건 지마 씨 때문이에요.
지마 씨가 직접 박사님의 사무실로 찾아와, 여러분 모두를 로도스 아일랜드로 무사히 데려오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때처럼 말이죠.
……
그때, 체르노보그에서 난 해냈잖아. 이번에도 해낼 거야.
- 이건 단순 너희의 안전 문제만 있는 게 아니야.
- 이번 우르수스와의 접촉은 이전과 달라.
나랑 나탈리야가 생각해 봤어. 나탈리야네 로스토프 실업의 이름을 빌리면 우린 더 편한 신분으로 행동할 수 있을 거야……
- 너희의 신분을 걱정하는 게 아니야.
- 로도스 아일랜드에도 너희의 신분을 해결할 방법은 있어.
- (의료부 보고서를 건넨다)
- 평가 결과는 너희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나와 있어.
……
- 다른 외근 임무를 선택해도 돼.
- 로도스 아일랜드를 도울 수 있는 선택지는 많아.
우리 모두 조금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지만, 그곳에서 도망칠 수는 없어.
이건 '힐링을 위한 귀향 여행' 같은 게 아니야. 이건 우리가 우르수스 관련 임무의 수행 자격을 충분히 판단하고,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야.
우리는 이미 로도스 아일랜드를 우리의 진정한 집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야.
그러니까 약속할게. 모두를 무사히 데려오겠다고…… 이 집으로.
소냐는 늘 나보다 더 용감했어.
아미야, 로스토프 실업과 협업하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닥터 켈시와 박사에게 더 고민해달라고 전해줘.
이게 우리의 작전에 해가 되지 않을 거라고 믿어.
알겠어요, 로사 씨.
하지만 전 여전히 여러분의 작전 구역은 체르노보그 직할구의 활동 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르수스는 여전히 그 구역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기에, 여러분의 신분에 대해서 아주 예민할 거예요.
본함과의 연락은 계속 유지할게. 우르수스 작전과 관련된 많은 일들은 여전히 너희의 판단이 필요하니까.
행운을 빌게요, 로사 씨.
그리고 본함은 후방지원 오퍼레이터와 메딕 오퍼레이터도 함께 파견할 거예요, 여러분의 우르수스 임무를 지원하는 동시에 우르수스에 사무소를 설립할 가능성도 모색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요.
참, 여러분이 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합류하고 싶다는 사람이 절 찾아왔어요.
응?
(꼬르륵~)
……?
굼, 냄비는 내려놓고 일단 배부터 채우세요!
에? 그러고 보니, 배고픈 게 정말 오랜만이야.
(꼬르륵~)
헤헤, 아마 오늘 너무 신나서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잊어버렸나 봐, 이스티나 언니.
이스티나 언니랑 지마 언니가 있으니까 괜찮아.
그래도 일단 뭘 좀 먹고 나서 얘기하자.
자, 우리 굼, 입 벌려.
으읍…… 더, 더는 못 먹겠어, 레토 언니!
그러고 보니, 지마는 챙길 개인용품 있어? 내가 엄청 큰 상자를 가져왔거든.
그럼 나탈리야가 선물로 준 기타를 가져가자. 도착해서 또 이것저것 캐묻기 전에.
다른 건 집에 두고 가면 돼. 안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레토, 아까 아무것도 안 가져간다고 하지 않았나요?
낡은 물건 중에 누구에게 줘야 할 물건이 생각나서. 소냐, 가는 길에 쉐라그에 잠깐 들르면 안 될까?
……알겠어. 박사에게 우리 일정 보고하고 올게……
저기, 여러분, 나도 너희와 함께 우르수스에 가도 될까?
미안, 이런 부탁이 조금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난……
소냐, 조야도 우리랑 같이 가게 해줘.
이번 지원 임무는 오래 걸릴 테니까, 서로 챙기면 돼.
나탈리야, 이미 알고 있었어?
제가 로사 씨에게 알려드렸어요.
하하. 걱정하지 마, 조야. 우리가 함께 외근하는 게 처음도 아니잖아……
케오베, 잠시만요, 그 쿠키들은 아직 다 안 익었어요!
엥?
안 돼요, 얼른 막아요. 배탈 날 수도 있어요!
음?
(정중하게 막는다)
이러다 늦겠어!!
(화를 내며 빙글빙글 돈다)
케오는 쿠키를 잔뜩 준비했다.
쿠키는 아주아주 착한 사람에게 줄 거야.
아주 착한 사람들이 먼 길을 떠나게 됐어, 그 사람들은 '집'에서 케오를 잘 보살펴 줬으니, 케오도 그 사람들이 배고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뿐이야.
선생님, 요 며칠 모든 층의 인쇄실에 사람들로 인산인해예요.
각 지역으로 지원 나가는 이번 외근 임무가 현지 기념품을 살 수 있는 좋은 기회라 그런가, 사람들이 작성한 위시리스트를 보면 테라 박람회를 개최해도 될 정도예요.
클로저가 오퍼레이터들 대신 구매부에서 일괄적으로 물건을 구입하자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내가 거절했어.
이런 의식적인 느낌은 그대로 가져가야 제맛이지. 구매부에서도 곧 비용처리를 해준다는 공지를 낼 거야.
선생님, 저 이번에 빅토리아로 가는데, 혹시 필요한 게 있으세요?
켈시는 고개를 저으며 다소 의아한 듯 폴리닉이 손에 든 쿠키를 바라보았다.
케오베가 강제로 준 거예요.
아까 주방을 완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더라고요. 아미야 씨가 아직도 뒷정리를 도와주고 있어요.
아미야가 고생이 많네.
폴리닉, 이번 빅토리아 임무는 결코 쉽지 않을 거야.
공작령 사무소에 있는 데이터를 회수하는 것 외에도, 나 시어셔와 리드의 상황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해.
최대한 각 지역의 사무소와 조율해서 그녀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럼 런디니움 쪽은요……?
하이디에게 본함 복귀 일정을 잠시 미루라고 전해. 런디니움 의회가 외교교섭의 통로를 복구하고 나면, 핵심권 국가들의 정보는 다시 그곳으로 모일 거다.
하이디가 지금까지 구축해 온 정보망은 매우 중요해. 내가 너를 지원 임무에 배치한 이유이기도 하지.
……그러니까 실제 상황은 그렇게 낙관적이진 않다는 거네요? 특별히 신경 쓰겠습니다.
폴리닉, 긴장 풀어.
네?
너는 항상 자신을 너무 옥죄이는 습관이 있어.
네 임무 일정을 봤어. 너무 빡빡하고 가득해서 몇 개 지웠어.
……
두려워하는 건 신경 쓰지 말고, 그걸 억지로 통제하려고도 하지 마.
폴리닉, 나는 단 한 번도 너에게 네 어머니나…… 나의 모습을 기대한 적이 없어.
나는 고통을 겪은 사람에게 증오와 폭력을 잊으라 하는 것에 동의하진 않아. 더 나은 시대를 추구함에 있어서 필요한 건, 절대 포기가 아니야.
그러니까 조금만 천천히 다가가. 더 나은 삶 때문에 조급하게 자신을 밀어붙이는 건, 단순히 자신을 고문할 뿐이니까.
빅토리아까지 가는 길은 매우 멀지만, 난 네가 이 방에 막 들어왔을 때 지었던 그 웃음을 꼭 기억했으면 해.
이건 너에 대한 나의 유일한 요구야.
……
알겠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 드릴 기념품은 제가 알아서 하나 고를게요.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레드, 숨을 필요 없어.
……레드, 켈시가 화낼까 봐.
켈시, 레드한테 시라쿠사 일로 괴로워하지 말라고 했잖아…… 레드도 켈시를 괴롭게 했어……
레드, 이번에 로도스 아일랜드를 떠나고 싶지 않아. 켈시가 허락하지 않을까 봐……
난 S.W.E.E.P.에 출동 명령을 내릴 생각 없어, 레드.
……!
함선에 남아서 대기하면 돼. 아스카론의 명령이 곧 도착할 거야.
……그럼, 명령이 올 때까지 레드가 켈시 옆에 있어도 될까?
당연하지, 이미 와 있잖아?
응, 이미 와 있었지.
이 황금 당근 통조림들은 젬마 아줌마랑 엄마가 동료들에게 주라며 특별히 준비해 주셨어.
미, 미안, 좀 많을 수도 있긴 한데…… 일단 주방에 놔둘까?
- 통조림이 산처럼 쌓여있네……
네게 줄게.
갑자기 그렇게 됐어. 오랫동안 집에 안 가면, 엄마는 통조림을 놓을 곳이 없을 정도로 잔뜩 쌓아 둬. 그리고 내가 갈 때마다 이렇게 몰아준다니까……
- 동료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라 하지 않았어?
어…… 그, 그렇긴 하지!
뭐, 어차피 내 물건이니까 어떻게 쓸지는 내가 정하는 거야!
박사, 나중에 사람들에게 나눠줘. 워미의 출발 시간이 곧 다가와서, 나는 안 될 것 같아.
참, 안에 이름 적힌 두 통은 너랑 아미야 주려고 남겨둔 거니까, 헷갈리면 안 돼!
- 겉으론 다 똑같아 보이는데.
……너…… 당연히 다르거든!
그러고 보니, 이번 출발할 때 나도 30개를 챙겨야 되네.
- 보급용인가?
아니, 선물로.
워미랑 레이에게 제리라는 친구가 있거든. 그 친구가 키이라와 결혼한 뒤로 일이 점점 잘 풀리고 있어.
저번에 보내온 사진을 보니 아기들이 많아졌더라고. 이번에 가는 김에 워미랑 같이 보러 가기로 했어.
- 워미가 말했던 것 같아.
- 시간 참 빠르네.
다행히 다들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아…… 음, 아미야는 카즈델에서 돌아온 뒤로 확실히 많이 성장했지만……
- 워미랑 레이도 잘 부탁할게.
- 너도 몸조심해.
림 빌리턴은 익숙하니까, 걔네가 고생할 일은 없을 거야.
걱정 마, 박사.
외근 임무를 끝내고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을게.
그런데 이번 외근 임무 지역이 꽤 넓어서, 한동안은 내 방에서 편히 잘 수는 없을 것 같네.
- 걱정 마, 로도스 아일랜드는 너희를 기다리고 있어.
응! 알지!
그러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박사.
야, 왜 안가?
갑자기 생각난 건데, 전에 준비한 의료용품이랑 관리 매뉴얼을 아직 못 나눠줬어. 따로 이야기 안 해주면, 분명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을 거야.
이번엔 장기 외근인데, 다들 제때 밥을 먹고 제때 약도 먹을 수 있을까……
다른 메딕 오퍼레이터들이 챙겨줄 텐데, 네가 왜 신경 써.
하지만 대부분은 바빠서 자기 몸도 제대로 못 챙기잖아. 라바, 너도 매번 내가 준비해 준 음식 챙기는 거 깜빡하고……
그건 내가…… 아냐, 됐어.
예비작전팀 A1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대장은 위험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고, 크루스도 혼자 멀리 가야 하는 데, 다들 잘할 수 있을까……
아, 쫌…… 그만해!! 사람들을 애처럼 취급하지 말라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철부지인 꼬맹이가 어디 있겠어!
알아…… 나도 아는데……
그냥, 오랜 시간 함께 지냈던 곳을 갑자기 떠나야 하잖아.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그래서 마음이 조금 허전한 기분이야……
……
……걱정 마, 우리 모두 돌아올 거잖아.
로도스 아일랜드에는 지금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들이 몇 가지 있지만, 나는 박사와 닥터 켈시 그리고 아미야가 잘 처리할 거라고 믿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돼.
로도스 아일랜드는 우리의 집이야, 그러니까 절대로 잃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돌아올 거고.
……언젠가는.
응……
우리 모두 다시 함께할 거야.
체온이 안 내려가네. 지금까지 썼던 약물 조합이 더는 효과가 없는 걸까.
하지만 너의 신진대사 속도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어. 혈중 약물 농도가 옅어지면 새로운 약물을 몇 가지 투여해 줄게.
새로운 약물이 통증에 대한 감각을 더 확대하겠지만, 더 강한 진통제를 함께 처방할 거니, 걱정하지 마.
네.
병상이…… 또 비었네요?
어제 떠났어. 걱정 마, 더 적절한 치료를 받기 위해 잠시 다른 곳으로 이송된 거야.
참, 몇 명이 너에게 쪽지를 남겼더라, 침대 서랍에 넣어 놨어.
……넌 증상이 특수하니, 치료 환경을 바꾸는 것보다 이곳에서 내가 관찰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
네, 감사합니다.
클로에, 뭘 보고 있어?
천장에 작은 점들이 빙글빙글 돌고 있어요……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결정이 여전히 시신경에 영향을 주고 있어. 다음 수술에서는 망막 근처의 결정을 제거할 거야.
매번 저걸 바라볼 때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마치 저한테 말을 거는 것처럼……
들리시나요?
(눈을 감으며) 마치 예전에 알던 종소리 같아요.
고향에 있었다는 그 종루 말하는 거야?
하나뿐이 아니에요…… 계속 고치려고 했어요. 여러 번 고쳤지만, 결국 포화 속에서 무너지고 말았죠……
빅토리아에 있는 오퍼레이터들에게 알아봤더니 그 마을은 이미 복구가 되었대. 거기 사람들이 너를 대신해서 종을 고쳤다고 들었어.
다행이네요…… 종소리가 울리고, 삶은 계속 이어지겠죠. 정말 안심되네요, 그렇죠?
와파린은 마지막으로 각종 기기의 수치를 다시 한번 확인한 뒤, 조제된 약물을 수액 장치에 주입했다.
기기의 경고음, 수액 펌프가 작동하는 소음, 그리고 클로에가 이따금 내뱉는 고통스러운 숨소리가 뒤섞였다.
……와파린 선생님, 지난 3년 동안 약을 몇 가지나 시도해 봤죠?
그건 내가 신경 쓸 문제야. 중요한 건 너의 신체 지표가 안정되고 있다는 거야.
광석병에 걸리기 전에, 저는 종루에서 다친 감염자 병사들을 돌보곤 했어요. 체표면에 돌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게 무슨 뜻인지 저는 알고 있어요.
클로에는 애써 얼굴 근육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피부에 붙어 있는 미세한 가시들이 그녀의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상처가 벌어지며 빨간 핏방울이 새어 나왔다.
(쓴웃음을 지으며) 이것…… 보세요…… 웃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네요.
의사로서 난 어떤 것도 확신할 수는 없어. 하지만 로도스 아일랜드의 모든 메딕 오퍼레이터들이 최선을 다해 너를 치료할 거라는 건 약속할게.
감사합니다, 와파린 선생님.
그냥…… 고향이 좀 그립네요.
……
이 검사 보고서는……?!
처음 이 환자의 의료 데이터를 보고 저도 데이터에 오류가 난 줄 알았어요.
하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확인해 보니 수치에는 문제가 없더군요.
이론적으로 봤을 때, 이 정도의 체세포와 오리지늄 융합률이라면 환자의 생존 가능성은 제로야.
이건 우리가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광석병에 대한 모든 지식을 뒤집는 거야……
하지만 그 오리지늄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어요.
그녀의 장기는 이미 결정화되었지만, 결정화된 장기의 기능은 기존의 사례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이에요.
이러한 증상의 원인은 아직 알 수 없지만, 데이터를 보면 감염이 심해질수록 그녀는…… 더 건강해지면서도 더 큰 고통을 겪고 있어요.
이건 전례 없는 사례야. 어쩌면 광석병의 새로운 변화일 수도 있어. 만약 치료법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만 있다면……
빅토리아에서 구출해 온 사람들이 정말 로도스 아일랜드에 기적을 가져다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