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등대
이베리아 북부 폐건물을 조사하던 중, 길을 잃은 인디고를 만난 블루포이즌과 글라우쿠스. 인디고는 그런 그녀들에게 이 폐건물이 원래 등대였다고 알려주는데……
2:18 P.M. 날씨/맑음
이베리아 이북, 해안가의 황폐한 도시
목표 지점 도착.
목표 건축물의 외관, 선행 조사 보고와 일치.
지금부터 소대가 건물에 진입 및 1차 조사를 실시. 그사이 통신 두절 예상, 특수 상황 발생 시 신호탄에 주의 바람.
블루포이즌, 오버.
여기 입구가 있어요. 음, 최초로 만들어진 입구는 아닌 것 같네요.
가장자리가 거칠군요. 예리한 도끼 같은 거로 억지로 깎아낸 것 같아요. 바운티 헌터의 소행일까요? 그들 중에는 '보물을 찾으러' 오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아마도 그들 대부분이 이베리아인이 아니기 때문일 거예요……
그럴 지도요. 어쨌든, 간신히 도망친 사람들에게 이런 유적은 '유혹'이 강할 수밖에 없거든요.
남은 사람들…… 교회나, 재판소. 그들도 이곳에 올 수 없을 거예요.
그들도 대처해야 할 일이 많거든요. 게다가 애초에 이런 건 보고 싶지도 않을 거고요.
……어릴 때 제가 제 다리를 보기 싫었던 것처럼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달릴 수 없었거든요. 지금의 이베리아도 '망가진 부품'에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거예요.
글라우쿠스 씨가 자신을 비유에 쓰다니, 저 이곳에 대한 동정심이 생기려 해요.
음, 놀리는 거 티 나요.
전자 펄스 안테나 가동 완료.
그럼 위로 갈래요? 아니면 밑으로?
저는 당신을 따를게요.
위로 가죠. 왠진 모르겠지만 위로 올라가야 할 것 같아요. 여긴…… 탑으로 된 것 같거든요.
탑? 그렇게 높을까요? 지상 부분도 삼층 정도밖에 없어요. 저희에게 도움이 될까요?
그렇게 말한다면, 내려가는 걸로 해요.
네?
글라우쿠스 씨 말이 맞아요. 우린 아직 이 밑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잖아요.
그럼 밑으로 내려가 보죠. 제가 따라가며 뒤를 맡을게요.
어머, 글라우쿠스 씨가 그렇게 말하니 안심이 되네요. 그렇다고 해도 오늘은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음, 어둡네요.
조명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졌어요.
글라우쿠스 씨도 고칠 수 없나요?
수십 년 전 이베리아의 기술이라서요. 레이시언 공업의 배선 설계와는 전혀 다르거든요. 며칠 시간을 준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럼 내버려 두죠. 복구라면 클로저 씨와 후속 엔지니어 팀에 맡기자고요. 이런 지하 무덤에 오래 있을 필요 없잖아요.
지하 무덤?
비유를 한 거죠, 아닐 수도 있고요. 여기선 음울한 냄새가 나거든요.
몇십 년 동안 황폐됐고, 바닷물에 잠겨 있었으니, 뭐가 묻혀 있어도 안 이상……
쉿.
네?
우리가 말소리를 내지 않으면, 유령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까요?
유, 유령……
어머, 농담이에요. 그러니까 제 옷 좀 그만 잡아당기세요. 나름 좋아하는 옷이라구요.
……아. 역시 휴대용 오리지늄 램프를 켜야겠어요.
이제 좀 밝아졌네요.
으음……
이 유적에 사용된 기술이 무척 궁금하신 모양이군요.
이건 과거 해변 도시에만 있던 기술입니다. 지금 이베리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죠.
이 건물은…… 용도가 무엇일까요?
전망대? 신호 중계? 에너지 생산? 아니면…… 그냥 관광용일까요?
어쩌면 사람을 감금하는 장소일지도 모르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어떤 사람들은 옛 이베리아를 생각하면 잊힌 기술과 먼지 쌓인 황금만을 떠올리곤 하죠.
하지만 그 빛나던 시절, 황금의 도시 밑에는 수많은 뼈들도 묻혀 있었어요.
미안해요……
글라우쿠스 씨가 왜 미안해요? 우리 선조들을 이베리아로 잡아간 에기르인들은 이미 오래전 파도에 부식되어 뼈조차 남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제가 이베리아나 에기르인을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은 제 자신을 싫어하지도 않고요. 모두 박사님과 글라우쿠스 씨 덕분이에요.
이 기술들이…… 당신에게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진 않나요?
전 이 건물이 로도스 아일랜드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에만 관심이 있어요.
그걸 확인하는 게 우리가 여기에 온 목적이잖아요. 아닌가요?
……맞습니다. 주변을 조사하고 데이터를 분석해서 회수 가능한 부품을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죠.
음, 다만 유감스럽게도 모두 엉망진창이군요. 단순 노화 또는 환경에 의한 부식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파괴될 리는 없어요.
이것 좀 보세요, 망가진 부품이 저쪽까지…… 아.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프랭커를 꺼내서는……
유…… 유령이 있어요!
유령?…… 저기 앞쪽 통로의 그림자를 말하는 건가요?
움직임이 없는 게, 살아있는 생물 같진 않아요.
복장을 보니…… 바운티 헌터 같은데.
여긴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에요. 그가 건물에 구멍을 내고 들어온 사람일 수도 있구요. 들어와서는 이곳에서 죽은 거죠.
아, 그렇군요.
잠깐, 가까이 가지 마세요.
네?
아직 사인을 아직 알 수 없잖아요.
위험이 있다는 건가요?
바운티 헌터가 입구에서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서 사망했어요.
바운티 헌터 정도 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닐지도 몰라요.
으음……
조금 더 뒤로 물러서요.
바다의 냄새를…… 맡았어요.
바다 냄새? 바닷가는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을 텐데요.
……
설마……
블루포이즌은 글라우쿠스를 제자리에서 기다리게 하고, 앞으로 걸어가 시체와 1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쪼그려 앉아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냥 해초네요……
뼈는 온전해요. 괴물에게 파먹힌 흔적도, 치명적인 외상의 흔적도 없어요.
(냄새를 맡아본다)
일반적인 독극물 치사의 흔적도 없어요.
시체의 자세를 보니, 해초에 몸이 묶인 채 익사한 것 같아요.
하지만 물 같은 건 보이지 않는데요. 주변 모두 건조한 상태입니다.
벽을 자세히 보면 바닷물에 부식된 흔적이 남아 있어요.
음…… 녹슨 정도가 다른 흔적이 두 개 있네요.
그럼, 여기가 바닷물에 두 번 잠겼었던 건가요?
여기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첫 번째 파도에 의해 건물이 완전히 파괴되었을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 파도가 밀려왔을 때 내부가 완전히 잠겨버린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운이 지지리도 없는 바운티 헌터는 두 번째 파도가 밀려오기 직전에 이곳에 들어와 횡재라고 생각하면서 벽에 있는 것들을 떼고 있었을 거예요.
바닷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거죠. 거기다 해초에 손발까지 묶여 발버둥 치다 목숨을 잃은 거예요.
이 사람의 부주의함을 탓할 수도 없어요. 이 사람은 쿠란타거든요.
……가엾어라. 그들은 바다의 힘에 대해 전혀 몰라요.
박사님이 그랬어요. 대부분의 육지 국가에서 바다에 대한 연구는 극소수의 해양 학자들에 의해서만 진행되고 있는 데다,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고요.
뭐, 그럴 수밖에 없죠. 누구나 눈에 보이고, 직접 정복할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니까요.
어쩌면…… 과거의 이베리아만 제외하고요.
그것도 이젠 지나간 일이에요. 저는 바다를 본 적도 없어요.
음…… 솔직히 당신이 왜 이렇게 바다 냄새를 경계하는지조차 이해가 안 돼요.
그 소문, 들은 적 있나요?
소문이요……?
그 재앙에 대한 소문 말이에요.
그런 건…… 입 밖에 내지 않습니다. 이베리아에서는 금지되어 있으니까요.
당신들은 입을 다무는 것에 습관 되어 있군요.
습관은 바꾸기 어렵잖아요. 로도스 아일랜드에서도 고향의 일은…… 별로 언급하지 않아요. 모두 그 사건에 대해 각자 다른 기억을 갖고 있기도 하고요.
가끔이지만 위디 씨랑 얘기를 하곤 했어요. 우린 같은 이베리아에서 자란 에기르인인데도, 그녀의 눈에 비친 이베리아는 제가 본 것과 전혀 달랐어요.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요? 토론을 금지한 이상, 한 사건에 대한 기억은 여러분이 각자의 눈으로 보고 생각한 조각들이 전부니까요.
그들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그 조각들을 연결할 기회를 차단했어요.
음, 지금 여긴 우리 두 사람뿐이니 말해도 되겠지만…… 전 못할 것 같아요. 왠지 목이 메어서요.
말을 꺼내는 순간, 이 통로에 비친 그림자가 절 덮칠 것만 같거든요.
……저건 단지 오리지늄 램프에 의한 투영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데도 말이죠.
투영…… 딱 맞는 비유네요. 그들은 교묘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유도해서, 그림자 배후의 거대한 진실이 아닌 그림자 자체를 두려워하게 만들었죠.
춥네요…… 그런데도 땀이 나요.
제가 당신과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거예요.
저도 그래요.
아마, 이 캄캄하고 폐쇄적인 건물이 우릴 보호하고 있는 거겠죠.
여긴 시체도 있고 통로의 끝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넓고 개방된 곳보다…… 훨씬 안심되는 곳이에요.
이 벽들이 우리가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렇네요. 적어도 다른 누군가가 숨어서 우릴 지켜보진 않으니까요.
과연 그럴까요?
이제 놀리는 건 그만해 주세요……
네네, 이제 그만할게요. 재앙 이야기로 돌아가죠. 토론을 금지한 것은 재판소가 아니라, 육지로 올라온 에기르인들의 결정이었어요.
네?
처음엔 아마 그냥 자기방어를 위한 것이었던 것 같아요.
자기…… 방어요?
에기르인들이 왜 육지로 올라왔는지 아나요?
그건…… 모르겠어요. 전 그냥 우린 원래 여기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많은 이베리아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요.
사실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음…… 그래도 당신은 우리보다는 더 많은 걸 알고 있잖아요.
웃긴 얘기지만, 에기르인의 머릿속에서 그 역사들은 점점 사라져 가는데, 오히려 저희는 더 선명하게 기억하죠.
우리 선조들은 백여 년 전에 에기르인에게 끌려갔어요. 그때 에기르인들은 우리들의 타고난 '독극물' 능력을 원했었죠.
그걸…… 왜요?
그들은 육지 깊은 곳에서 온 우리들의 몸에서 끝없이 독을 추출하고 실험을 반복했어요. 그 독을 무기로 사용하기 위한 가능 여부를 확인하려구요……
그들은 무엇을 상대하려고 했나요?
모르겠어요. 저도 본 적 없는걸요. 다만 우리 선조들의 기록에 의하면, 거대하고 육지엔 존재하지 않는 무서운 생물이라고만 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바다에서 온……
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물어봐야 하나 생각해 본 적도 있었어요. 박사님이나, 켈시 선생님, 혹은…… 그녀들에게, 직접.
한번은 복도에서 오퍼레이터 스카디 씨를 만났어요. 그 순간 제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의문이 떠올랐어요.
스카디 씨는 대답해 주지 않을 텐데요……
네, 저도 그녀가 대답해 줄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결국은 제가 묻지 않았어요.
……제게 진실을 들여다볼 용기가 있는지 확신이 없었어요.
마치 육지에 올라온 에기르인처럼요. 그들은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겨우 그 공포를 잊었어요. 그랬기에 그들은 안심하고 육지에 터를 잡아 점차 이베리아의 일부로 살아갈 수 있었던 거예요.
모처럼 얻은 새로운 생활을 버리면서까지, 끝없는 싸움에 뛰어들 사람이 어딨겠어요? 하물며 재앙이 언제 어디서 올지도 모르고, 정말 재앙이 온다면 지금까지 한 모든 것들이 헛수고가 될 텐데 말이죠.
저조차도, 박사님께 많은 걸 배운 후에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랐는걸요.
그럼 이제 저희…… 돌아가는 편이 좋을까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그럴지도요.
……하지만 블루포이즌 씨는 아직도 앞으로만 가고 있잖아요.
어머나, 정말이네요. 설마 아직도 앞으로 가고 있을 줄이야.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전 단 한 번도 제가 가진 독의 능력을 포기한 적이 없었어요.
어쩌면 저는 우리 선조들을 노예로 취급했던 에기르인의 유령에게서 단 한 순간도 벗어난 적이 없었는지도 몰라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언젠가는 나의 독이 기다리던 적과 마주칠 것이라고 믿으면서요.
우리가 몇 층까지 내려왔죠?
……까먹었어요.
저도요.
상상했던 것보다 더 깊…… 음, 높은 탑이군요. 폐쇄된 공간에 있으니 감각이 무뎌졌나 봐요.
아, 뭔가 환각도 보이기 시작했어요.
뭐가 보였죠?
(눈을 깜박인다)
앞에 빛이 보여요.
……
그리고 천천히 위로 향하고 있어요.
(목소리를 낮추며) 램프 꺼요!
어둠 속, 하얀빛이 멀지 않은 곳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그 빛은 그들의 램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블루포이즌은 확신했다. 저건 환상일까, 아님 현실일까? 어느 쪽 상황이 더 위험한 것일까?
(천천히 접근해요. 눈치 못 채게.)
(적일까요?)
(미리 준비해 두는 게 좋겠어요.)
(프랭커는 준비되어 있어요.)
(좋아요. 곧 마주칠 거예요. 앞쪽은 모퉁이에요. 제 신호를 잘 봐요. 세 번 노크할게요. 세 번째에 단숨에……)
화살 하나가 소리 없이 하늘을 갈랐다.
화살이 몽롱한 하얀빛에 명중했다. 아니, 명중하지는 않았다. 부딪히려는 순간, 각도가 살짝 어긋났다.
문제 될 건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화살은 발사된 순간 둘로 분열되며 앞뒤로 하얀빛을 에워쌌다.
그러자 다음 순간, 하얀빛이 팽창했다.
프랭커, 최대 출력!
잠, 잠깐!
마이크로파 증폭!
전 악의가 없습니다!
음?
쿨럭, 쿨럭쿨럭…… 엄청 아프네, 등을 부딪쳤어…… 굉장한 충격파네요……
다음 공격은 참아주세요……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먼저 아츠의 시전을 멈추시죠, 이름 모를 캐스터님.
아, 이 빛을 말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오해예요. 이 빛은 단지 조명 대신 사용하고 있을 뿐이에요……
아까도 무의식적으로 막았을 뿐이에요. 믿어 주세요, 정말 당신들을 공격할 의사가 없어요!
어쩐지…… 빛이 따뜻하고 밝은 데다 딱히 불편한 느낌이 없다 했어요.
글라우쿠스 씨, 아직 경계를 풀면 안 돼요.
이분의 오리지늄 아츠는 나름의 위력이 있어요. 그리고 좀 특별한 것 같아요.
음…… 그래요?
으아, 무기를 들지 마세요! 그리고 부탁인데 이 화살을 제 목에서 좀 치워주시겠어요…… 아주 조금이면 되는데……
저…… 숨도 못 쉬겠어요…… 으으……
크로스보우는 치워 줄 수 있어요.
그럼 당신도 그 아츠 스태프를 버리세요. 허튼짓을 한다면…… 당신의 움직임보다 제 화살이 더 빠를 거란 걸 기억하세요.
알겠어요……
소녀는 점잖게 아츠 스태프를 땅에 버렸고 빛도 이내 꺼졌다.
이제 오리지늄 램프를 켜세요.
네.
이제 보니 당신들의 램프에서 흘러나온 빛이었군요……
우리가 당신의 타깃이었나요?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원래 여기 밑에 저 말고 아무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빛이 보이길래 누가 왔나 싶어 인사를 하려고 올라온 거예요……
이런 곳에 혼자 있다니, 당신은 누구죠?
아, 제 소개를 깜빡했네요…… 저, 아리아라고 합니다.
그럼 아리아 씨, 당신은 이베리아 사람인가요?
맞아요, 그렇게 티가 나요?
그냥 찍은 거예요. 아니라고 하면 컬럼비아나 빅토리아인지 또 물었겠죠. 당신 입을 열게 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갑자기 소름이……
아리아 씨는 이베리아인이고 캐스터죠? 또 빛을 조종하는 오리지늄 아츠를 사용할 수 있고요. 그래서 재판소와는 어떤 관계죠?
재판소요? 아니, 아니에요. 그런 높은 분들은 본 적도 없어요.
그럼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죠?
(너무 취조 같지 않나요? 우린 이곳 상황을 살피러 왔을 뿐이잖아요.)
(직접 묻는 게 효과적이에요. 아리아 씨도 그다지 불쾌해하는 것 같지도 않구요.)
음…… 여기서 뭘 하고 있었냐구요?
실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네? 아리아 씨, 혹시 기억 장애가 있는 건 아니죠?
그건 아니에요. 여기 왜 왔는지, 며칠간 있었는지 다 기억하고 있거든요.
이틀 전에 현지인에게 물어봤어요, 근처에 돈을 벌 기회가 없냐고요. 일이 필요했어요…… 안 그럼 굶어야 하니깐요.
제가 가진 얼마 안 되는 마지막 돈을 전부 그 사람에게 주었더니 가르쳐 주더군요, 여기에 일확천금의 기회가 있다고요.
(아무래도 이 사람, 사기꾼을 만난 것 같네요……)
……
아마 그 사람은 당신을 바운티 헌터로 생각했나 봐요.
이 일대는 바운티 헌터가 많이 찾아왔었어요. 당신은 아츠 스태프에…… 신분도 좋아 보이니, 아마도 아리아 씨를 모험을 하러 온 어느 가문의 아가씨라고 착각했을 수 있어요.
아…… 그런 건가요? 제 의도가 오해를 샀다니……
(오해가 아닐 수도…… 여하튼 속이기 쉬울 것 같은 모습이잖아요.)
(미소)
그, 그렇게 웃긴가요?
아뇨. 제 친구는 낯을 조금 가리는 편이지만, 지금은 당신을 걱정하고 있는 겁니다.
흠흠……
그래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에요. 이 등대를 보고는 잠시 쉬려고 했던 건데……
네?
기, 길을 잃었……
그게 아니라, 이 건물이 등대라고요?
네. 등대라면 이베리아에서는 흔한데, 여러분은 본 적이 없나요?
(고개를 젓는다)
아…… 해변에서만 흔할 걸 수도 있겠군요. 반년 동안 밖을 다녀 보니, 바다에서 먼 마을엔 확실히 등대가 없더라고요.
아리아 씨는 해변에서 자랐나요?
네. 여기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에서 자랐어요. 아마 들어 본 적이 없을 거예요.
그곳은…… 지금 어떻게 되었죠?
별일 없겠…… 죠?
마을에 사람은 많지 않지만, 모두 사이가 좋아요.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운이 좋아서 바다의 재앙이 우릴 피해 갔다고 하셨어요.
휴…… 그거 다행이네요.
등대만…… 빼고요. 그날 이후 우리 마을의 등대는 두 번 다시 불을 밝히지 못했어요.
그날?
네, 그날. 수십 년 전, 가장 큰 재앙이 닥쳤던…… 그날이요.
눈 깜짝할 사이에, 이베리아에 있는 모든 해안선이 어둠에 잠겼어요.
그 이후로…… 다시는 빛을 보지 못했어요.
아리아 씨, 등대에 대해서 잘 아시나 봐요.
어릴 때부터 등대 안에서 자랐으니까요.
……등대 안에서요?
오해 마세요. 우리 마을의 등대는 이것보다 상태가 훨씬 좋아요. 손상도 별로 없고, 그저 등댓불을 밝힐 수 없을 뿐이에요.
메커니컬 부품, 시스템 제어 중추, 파워 서킷, 오토메이션 코어, 외벽 홀로그램 영상 장치, 안테나 설비 모두 문제없어요.
선생님을 따라 매일 매뉴얼대로 모든 부분을 점검하고, 외벽도 정기적으로 보수하고 있었으니까요.
노화야 어쩔 수 없다지만, 우리 등대의 상태는 수십 년 전과 비교해도 별반 차이가 없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대단하네요……
등대 이야기를 하는 아리아 씨의 눈이 빛나네요…… 제가 프랭커를 만질 때처럼요.
당신과 당신의 선생님은 혹시 등대의 관리자인 건가요?
아, 제가 말을 안 했나요? 죄송해요. 제 선생님은 영광스러운 등대지기십니다.
저는 아직…… 하나의 등대는 한 명의 정식 등대지기만 필요하거든요. 음, 저는 그냥 견습생이에요……
게다가 지금 전…… 으윽, 외부에 있으니 견습생조차 실격이에요, 휴.
밖에 나온 지 오래됐다면서 유지관리 과정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네요……
매일 밤 자기 전에 한 번씩 되뇌거든요!
……
아리아 씨는 그 일에 애정이 있군요.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경치를 보고 싶어서요. 그 경치는 선생님의 선생님께서 알려 주신 거예요.
밤의 해변, 등대 하나하나에 따라 갈라져 뒤섞인 항로.
멀리 웅장한 굴착장과 해상 요새들이 등불을 반짝이고, 크고 작은 배들이 교차하는 그 어떤 육지의 도시보다 활기차고, 그 어떤 낮보다도 눈부신 경치……
더 가까이 다가가면 이베리아의 에기르인들이 대륙붕 근처에 세운 수중 도시도 볼 수 있어요.
……
이 모든 게, 이베리아 해안에 우뚝 선 수천 개의 등대에 의해 지켜지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의 에너지 체계가 재앙 때문에 파괴되었어요. 이제 예전처럼 불을 밝힐 수 있는 등대가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선생님과 전 여전히 등대를 지키고 있어요.
지금도 매일 밤 선생님은 등대에 불을 밝히려고 시도하세요. 등댓불이 제 기능을 잃으면 우리는 새로운 광원을 만들고요.
우리가 만든 빛은 진짜 등대처럼 해역 전체를 비출 수는 없어요. 겨우 작은 구석 정도만 비출 수 있을 뿐이죠.
바다에 왕래하는 배도 사라진 지 오래됐지만……
우린 여전히 등대를 지키고 있어요.
……
당신들이 아무리 지켜도, 해안은 영원한 적막뿐일 지라도요?
네. 그럴 지라도요.
여기가 등대의 꼭대기예요.
이틀 전에 이미 조사를 마쳤어요. 손상이 너무 심해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더군요.
남은 건 이것뿐이에요
이건……?
이베리아 등대의 에너지 코어예요. 최첨단 기술이자 가장 먼저 파괴된 부품이죠.
이제 못 쓰나요?
최초의 기술은…… 이미 유실됐으니까요. 선생님도 저도 복구시킬 수 없었어요. 완벽했던 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잃으면 어떤 방법으로도 코어를 원래대로 회복할 수 없어요.
혹시…… 음, 괜찮으시다면 그걸 로도스 아일랜드로 가져가서 클로저 씨와 함께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아…… 확실한 건 아니고요…… 당시 이베리아의 과학기술이 워낙 특수해서…… 이 코어가 오리지늄 에너지 기술을 토대로 설계된 게 아니라는 거만 알아요.
……오리지늄이 에너지원이 아니라고요?
꼭 그렇지도 않아요. 오리지늄으로 에너지를 공급했을 가능성이 높긴 한데…… 기반 기술이 다른 거죠. 장치 가동을 위한 최적의 에너지가 오리지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
왜, 왜 그러시죠? 시시한 이야기였나요……
정말로 이 등대를 다시 밝힐 수 있는 건가요?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요.
저…… 저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네?
그 로도스 아일랜드라는 곳에 저 같은 사람은 필요 없나요? 할 줄 아는 건 그리 많지 않지만…… 최선을 다할게요.
읏……
그렇다면 먼저, 이력서를 준비해야겠죠.
이력서가 뭐죠? 저……
으윽…… 이상하네요, 머리가 어질어질……
어?
말하다가 쓰러져 버렸네요. 어떻게 된 걸까요?
(어깨를 으쓱한다)
아…… 혹시 중독일까요?
하마터면 아리아 같은 피디아도 당신처럼 제 신경독에 면역이 있다고 착각할 뻔했어요.
이제 보니 그저 발작이 늦게 일어난 것뿐이군요.
(뭐라고 해야 하나? 특수 체질로는 보이지 않고…… 그냥 둔하다고나 할까요?)
(분석은 나중에요. 우선 해, 해독약을…… 설마 준비하지 않은 건 아니겠죠? 저랑 동행 임무 중이면서……)
당황하지 말아요. 그냥 일시적인 마비일 뿐이니까요.
우선 등대를 나가요. 찬 바람을 쐬면 정신을 차릴 거예요.
전자기 펄스 해제.
드디어 통신이 연결됐네. 레이디들, 위험한 일 안 당했지?
예상 밖의 일은 조금 있었죠……
쿨럭쿨럭……
어, 깼어요?
죄송해요, 깜빡 잠이 들었나 봐요……
생각보다 일찍 깨어났네요.
……
경계할 필요 없어요. 정찰 임무도 순조롭게 끝났으니까요.
그럼 이건 누구의 목소리지? 모르는 젊은 아가씨의 목소리 같은데……
임무 지점에서 만난 아리아 씨예요,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를 알려 줬죠. 이제 저희와 함께 로도스 아일랜드로 돌아갈 테니, 인사부에 이력서 보내 놓을게요.
그렇구나, 그럼 일단 환영해!
아, 안녕하세요……
그리고, 결론부터 말할게요. 여기는…… 등대였어요.
뭐? 등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그럼 제보자가 말한 '복잡해 보임'과는 거리가 먼데.
(난 또 무슨 중요 시설인 줄 알았다고……)
그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이베리아에서 지은 건물이에요.
……그렇군.
내부 구조는 나름 양호하지만, 기술적 손상이 심해서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 진 모르겠습니다.
후방 대기 중인 엔지니어 팀에 전해주세요.
본 건물은 로도스 아일랜드의 새로운 사무소로 이용해도 될 것 같다고요.
……알겠어.
하아, 정말로 새 사무소가 된다면, 나 설마 자주 출장 가야 하진 않겠지?
이렇게나 가까우니까 말이야……
뭐, 어쩔 수 없나? 필요한 건 우리뿐이 아니니까.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최근 남쪽의 파괴된 도시에서 또 난민들이 도망쳐 나왔다고 해. 피난길도 험난한데 누군가는 도와줘야 할 거 아니야.
그렇네요. 이 등대…… 어쩌면 유용한 거점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인근 감염자에게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고, 매일매일 대지에 가까이 닥쳐오는 해조를…… 관찰하기 위해서라도요.
예전처럼 쉽게 빛을 비춰주진 못하더라도…… 이 등대는 여전히 이 해안을 지켜줄 수도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