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아
현지 귀족 저택을 떠나 우연히 감염자 소녀가 추격에 쫓기는 것을 보게 된 카넬리안은, 상황을 파악 뒤 그 감염자 소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등장 오퍼레이터: 카넬리안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계약서는 곧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번 협력 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전부 정리되어 있으니, 백작님께 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질문이 더 있으시면, 언제라도 저에게…… 카넬리안 씨? 듣고 계시나요?
응?
아…… 미안, 잠깐 딴생각했어.
……
그럼 이번 협력에 대해 더 질문하실 게 있으신지요?
아직까지는. 호엔로에 님에게 전달할 테니, 모든 건 백작님께서 결정하실 거야.
알겠습니다. 백작님께서 모두에게 유익한 결정을 내리실 거라 믿습니다.
그럼 돌아가시겠습니까? 다른 계획이 없으시다면, 푸에르바흐 후작님께서 카넬리안 씨를 모셔드리라고 제게……
됐어,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전해줘.
모처럼 왔는데 시내 구경이나 할까 생각하고 있어.
아하, 그럼 가이드라도 붙여드릴까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괜찮아, 알아서 잘 돌아다닐 테니까 걱정 마.
……그러고 보니 지난번 협력 때도 내가 백작을 대표해서 왔던 거 같은데. 아마 여황들이 궁중 연회를 열기 전이었지?
그렇습니다.
그때 기억으론 분명 여기에 이종족의 뿔 장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스타일이 바뀌었나?
흠, 예를 들면 이 테이블 장식, 이런 질감과 광택은 좀처럼 보기 힘든 물건이야. 아마도 전부 경화 오리지늄 결정의 정제품이겠지?
역시 대단하십니다.
카넬리안 씨, 전보다 안목이 훨씬 높아지셨습니다.
……뭐 이런 걸 가지고.
내가 알기로는 이렇게 안정적인 결정은 깊은 오리지늄 광맥에서만 얻을 수 있어. 그리고 대부분은 오리지늄에 덮여 있어 희소성이 매우 높아.
게다가 이런 결정은 암석보다 훨씬 단단해서, 일반적인 가공 기술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거든.
가공 난이도까지 감안하면, 이처럼 정교한 장식품을 손에 넣기 위해 푸에르바흐 후작께서 상당한 공을 들이셨겠는데?
말씀하신 만큼은 아닙니다. 얼마 전 푸에르바흐 후작님께서 영지를 시찰하실 때 우연히 오리지늄에서 떨어져 나온 이 보물들을 발견하셨지요.
후작님께선 이런 검은 광택이 뭔가 특별하고 숨겨진 비밀이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셔서 귀빈들도 감상하실 수 있게 이곳에 장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작의 호의에 건배를 해야겠군.
카넬리안 씨도 이쪽으로 상당한 견식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견식까진 아니고, 단지…… 예전에 이런 결정의 생산 과정을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감회가 남다를 뿐이야.
봐봐, 이런 작은 경화 오리지늄 결정을 채굴하려면 지하 수백, 심지어 천 미터 깊이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자칫 발을 헛디디기라도 했다간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게 되거든.
최근 그쪽 채굴장에도 사고가 적지 않았다지? 이런 조그마한 결정에 묻은 피를 다 모으면 후작님의 욕조를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
카넬리안 씨께서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이것은 확실히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죠. 하지만 푸에르바흐 후작님께는 그저 하나의 장식품에 불과합니다.
푸에르바흐 후작님께서는 카넬리안 씨가 말씀하신 것을 고려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후작님께서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저희에게 말 한마디만 하시면 됩니다. 그게 저희가 여기에 있는 이유입니다.
호오……
혹시, 카넬리안 씨는 다른 견해라도 있으십니까?
별로 듣고 싶지 않을 거야.
……외람된 말씀이지만, 당신은 백작님의 절대적인 은총을 받고 계십니다, 카넬리안 씨.
음?
2년 전, 아직 미성년자였던 호엔로에 백작님 곁에 출신 불명의 외지인이 불쑥 나타났을 때,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일은 지금까지 없었으니까요.
당신은 백작님의 입장과 체면을 고려해서라도 신중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 말투는, 내게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급하게 부인할 필요 없어. 사실 내게 적의를 품은 사람은 많이 봐왔어. 심지어 백작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꽤 있어.
안 그래?
……라이타니엔 어디에서든 이종족을 받아들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유언비어에 개의치 않습니다. 그렇죠? 당신에게는 걸맞은 재능과 담력이 있지요. 그리고 제가 한 말은 당신에 대한 칭찬일 뿐입니다.
훗, 잘도 빠져나가네. 뭐, 일단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채굴장 사고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위병대와 캐스터들이 이미 대처하고 있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대로 이러한 상황에서 저희는 더 조심해야 합니다. 이 사건은 적절히 처리될 것이기에, 누군가 후작님을 공격할 약점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그런 걸 걱정한다고 생각했구나?
뭐, 그렇다 쳐. 하지만 내가 알기로 너희들의 '처리' 방식이 그다지 평화롭지 않다던데?
그냥 카펫 위의 먼지를 털어내는 것뿐입니다.
와, 사건과 관련된 사람을 전부 처분하는 게,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거야?
……
됐다, 아무래도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네. 이제 슬슬 가볼게.
한 가지 더 충고하자면, 후작은 감염된 영지 주민들을 멋대로 처리해도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황들은 순한 어린 양이 아니야. 그들을 우습게 보다간 큰코다칠 거다.
네? 아, 아닙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카넬리안 씨. 저희는 여황들을 경시한 적 없습니다.
여황들은 권력과 더 강하고 힘 있는 통치를 원하십니다. 추종을 넘어 복종을 요구하고 있지요. 그분들은 지금 저희 쪽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잘 알고 있네. 어떠한 통치자도 결국엔 그런 방향으로 가는 걸 피할 수 없나 봐.
놀랍지도 않습니다. 저희는 서로의 생각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자신 있어 보이는데?
당신이 그렇게 염려하는 건 아마도 라이타니엔의 과거를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카넬리안 씨.
금빛의 여황이든, 아니면 더 무서운 검은빛 여황이든, 과거 라이타니엔을 뒤덮은 그 어둠의 그림자와는 비교조차 될 수 없습니다.
비록 여황들이 그 그림자를 직접 지워버렸지만 말이죠.
그 말은?
저는 그 시절을 겪어보았습니다. 고탑 꼭대기에 걸린 빨간 수정은 그 시절 부모들이 아이를 훈육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위치킹.
그 이름은 이제 거의 거론되지도 않지요.
하긴, 나도 딱히 들어본 적이 없어. 어둠 속에서 붉은빛이 하늘을 비추어, 라이타니엔 전역에서 볼 수 있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이야.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 시절을 잊지 못하는 것 같지만, 또 그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있단 말이야.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건 복종도 있겠지만 공포도 있습니다.
저도 그 붉은색의 하늘을 목격한 적 있습니다…… 다음날, 조용해진 옆 마을에는 살아있는 사람이 없었고, 새들마저도 날개가 꺾인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붉은빛과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메마른 시체밖에 없었습니다.
무슨 공포 소설 같네.
안타깝지만 소설이 아닙니다.
이유도, 법칙도, 설명도 없고, 화제를 꺼내려는 사람조차도 없었습니다. 이 라이타니엔은 한때 그런 시대를 살았습니다.
물론 여황들의 통치도 편하다고는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적어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는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무도회장에서 서로 체면을 차리며 인사도 나눌 수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옥좌 밑에서 입을 꾹 다문 채, 언제 불운이 이유도 없이 소리도 없이 자신에게 닥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상상도 안 되네.
직접 본 적이 없다면 확실히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과거에 대해 더는 거론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가능성이 많은 시대입니다.
가능성이 많다…… 라……
그럴 수도 있겠지. 확실히 우린 아직도 할 수 있는 게 많아.
그런 의미에서 우리 협력도 잘 되길 바랄게.
그럼 이만.
……
저 사람이 히아신스 백작의 이단아 시종인가……
괴짜 주인에, 거칠고 막무가내인 시종이라…… 역시 소문 대로네.
정말이지 상대하기 힘들군……
후우……
공기는 여전히 지독하네, 매연 냄새도 있고. 하아, 그래도 아까보다는 낫다.
이게 '발전'과 '선진'의 냄새인가, 최근 2년 동안 나도 꽤 익숙해졌나 봐……
어딜 가든 화려한 옷차림과 호화로운 가게뿐, 다른 곳의 번화가랑 별 차이가 없네. 이제 슬슬 질려.
이 도시의 보통 사람들은 다 어디 갔지? 음률이 다 같은 곡은 감상할 가치가 없잖아.
여기는…… 어느새 외곽까지 와버렸나?
……
음?
(뭐야, 그래도 좀 색다른 경치가 있잖아.)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저건……)
(이런 상황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음, 일단 '전문가'에게 연락하는 게……)
(이걸로 괜찮겠지?)
……
(……누군가, 뒤를 쫓고 있네?)
(또 위병인가? 안 돼, 따라잡히면 안 돼……)
후우……
이제 따돌린 것 같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젠 괜찮……
어? 정말이야?
윽?!
……
찾았나?
아니, 이쪽에는 없는 것 같아!
계속 수색해. 도망친 감염자는 그리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자, 이쪽으로!
……아, 위험했어……
설마 여기까지 쫓아올 줄이야……
저건 귀족 위병들인데. 음, 아츠의 흔적이 있는 걸 보니 캐스터도 한두 명 있는 것 같네.
저기,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아까는 고마웠어요.
고맙긴, 별거 아니야.
하지만 아직 마음 놓긴 일러, 녀석들은 따돌리기 쉽지 않아. 분명 끈질기게 널 계속 쫓아다닐 거야.
너는…… 이 도시 사람이 아니지?
……
그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 뭐 경계한다고 나쁠 건 없지만. 특히 지금 너의 상황이라면.
아마…… 저들이 널 한동안 쫓아다녔겠지?
……
감염된 지는 얼마나 됐어?
그, 그걸 어떻게?!
아, 아니에요. 전 감염자가 아니에요. 오해하셨어요!
옷깃 안에 다 보이거든, 결정 말이야.
……
자, 여기를 꽉 묶어…… 이제 됐어.
다음부턴 더 조심해.
……
당신은 누구죠? 목적이 뭔가요?
안심해, 널 잡아서 팔아넘기고 그러진 않아.
봐, 내가 널 어떻게 하려는 거였다면 위병들보다 더 쉽게 할 수 있어. 애초에 너랑 이런 얘기 할 필요도 없고.
……
(확실히……)
그럼 당신은……
어, 이제 믿어주는 거야? 말투가 갑자기 공손해졌네.
앗, 죄, 죄송합니다!
사과할 필요 없어. 난 존경 받을 만한 높은 인물도 아니니까, 아까처럼 하는 게 더 편해.
라이타니엔 귀족 방식은 원래 나랑 맞지 않아.
당신은……
'너'라고 해.
하지만……
하지만은 없어.
읏, 아, 알겠어.
당신, 아니, 너는 여기 사람 아니야……?
난 사르곤 사람이야. 사르곤이라고 들어봤으려나?
아니……
사르곤은…… 어떤 곳이야?
아주아주 먼 곳이야, 그리고 되게 자유로운 곳이기도 해.
그곳엔 사막이 있고 정글도 있고, 크고 작은 아미르들이 자신들의 영지를 다스리고 있지. 조공만 내면 누구나 평화롭게 살 수 있어. 그리고 지도에조차 없는 아주 외진 곳도 있고.
거기서는 각자 알아서 사는 거야.
그런 곳은 들어본 적도 없어.
그럴 만도 해.
내가 처음 라이타니엔에 왔을 때만 해도 내 고향과 다른 대지인 줄 알았다니까.
신기하네……
믿기 어려워?
아니, 그냥 좀 상상하기 힘들 뿐이야.
아하하,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확실히 믿기 어렵겠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한 것 같은데.)
(인정하긴 싫지만, 그 가식적인 귀족 시종의 말이 도리가 없진 않아.)
(……)
……?
어? 아…… 또 딴생각하고 있었네.
어쨌든 여기는 안전하지 않아, 위병이 다시 올지도 몰라. 다른 곳에 가서 사르곤 얘기를 계속해 줄까?
어? 응, 좋아!
에!? 그게 정말이야??
진짜 하늘에서 떨어지는 강이 있고, 마을보다 큰 나무가 있다고!?
물론이지. 산처럼 높은 모래 언덕도 있어. 사막을 넘으면 거대한 동굴이 있는데, 그 안엔 무수히 많은 보물이 묻혀 있지……
와!
……는 거짓말이야.
어~엇!?
야야, 그런 표정 짓지 마. 사실 나도 예전에 주워들은 거라 정말인지 아닌지 아무도 몰라.
어쩌면 금은보화가 가득한 동굴이 정말 존재할지도 몰라.
정말이었으면 좋겠다……
아아아아, 얘기하다 보니 갑자기 고향이 그리워지네.
그럼 왜 돌아가지 않는 거야? 너무 멀어서?
음, 뭐랄까…… 나도 처음엔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는데, 약간의 사건 사고도 있었고, 또 귀찮은 녀석에게 발목이 잡히는 바람에……
내가 떠나면 녀석은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하니까, 좀 더 남아서 걔를 도울 수밖에 없었어.
귀찮은 사람 아니었어? 왜 도와줘…… 둘이 친구라도 된 거야?
음…… 친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더 복잡한 관계야.
잘 모르겠어……
그건 그렇고, 위병들이 쫓아오지 않은 걸 보니 일단 안심해도 되겠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빨리 여기를 떠나는 게 좋아.
……
저기,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
그럼.
사르곤에도 감염자가 있어?
있어.
역시 그렇구나……
하지만 우린 그 사람들을 재난으로 취급하지 않아…… 적어도 내 고향에선 그래.
그 사람들은 그냥 병에 걸린 것뿐이야. 정글에서는 야수도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나무에서 과일 따다가 재수 없으면 떨어져 죽기도 하는데…… 병이라고 두려울 게 뭐가 있어?
……거긴 좋은 곳이네.
그렇게 좋은 곳도 아니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어. 그래서 일일이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거야.
너희는? 여기 영주는 항상 이런 식이야? 감염되면 위병한테 잡혀가?
……원래는 이렇지 않았어.
부모님 모두 채굴장에서 일하셔서 우리는 채굴장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에 살았어. 거기서 많은 사람이 병에 걸렸고.
갱도에서 일하는 아저씨 아줌마들도 모두 이 병에 걸려 몸에서 돌이 나왔지만, 그래도 일은 계속해야 했어.
돈이 좀 있는 나리들은 그곳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고, 아직 건강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빨리 나가려고 할 뿐이야……
마치 격리 구역 같네.
비슷해. 듣기로는 좋은 격리 구역은 돈을 내야 갈 수 있대. 거기는 빵도 준다는데, 우린 그런 대우 없거든.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도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어.
어떻게? 부모님처럼 채굴 노동자가 되어 평생 그 동네에서 살게?
……그렇게 나쁘지도 않아. 살 곳이 있고 돈도 받으니까. 그거면 충분해.
적어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갱도가 무너지면서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았고, 위병들이 갑자기 동네를 봉쇄하더니 사람을 막 체포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아무도 밖에 나갈 엄두를 못 내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더니, 위병들이 이번엔 집집마다 쳐들어가더라고……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길래?
……
(이게 소위 말하는 '적절한 처리'였나……)
나와 다른 아이들은 위병들 몰래 폐건물을 빠져나왔거든. 밖에 있는 나리들은 병에 걸리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난 죽고 싶지 않아!
흐흑…… 너무 무서워……
울지 마…… 너와 함께 도망친 애들은? 다들 어디 있어?
그저께 이 근처까지 쫓겨 왔지만, 마땅히 숨을 만한 곳이 없어서 다들 뿔뿔이 흩어졌어.
그 후론 다른 애들은 못 봤어. 지금 여기에 남아있는 건 나뿐이야……
나, 애들을 찾으러 가야 해!
일단 진정해. 내가……
……
쉿, 조용히.
……
여기네.
사람이 머물렀던 흔적이……
(……!)
(진정해, 저쪽 보지 말고 천천히 호흡해……)
(……후우……)
(잘했어.)
(여기서 기다려.)
……
드디어 납셨군?
손님이 일부러 찾아왔는데, 기다리게 하면 되나?
그런데 위병들은? 왜 너 혼자야?
그들은 필요 없어.
되게 자신 있어 보이네.
사르곤인, 왜 감염자를 숨겼지?
너희들이야말로 뭣 때문에 이러는 건데?
특별한 이유 없어. 우연히 만났고, 내친김에 도와줬을 뿐이야.
단지 감염자를 쫓아내는 거면, 너 같은 캐스터까지 움직일 필요 없잖아? 너희들은 며칠간 채굴장에서 도망친 노동자를 쫓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명령을 받았을까?
……우리 뒤를 캐고 다녔던 거야?
뭘 또 그리 심각하게 말해. 그저 협력 상 필요한 절차랄까.
원래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방금 알게 됐어. 푸에르바흐 후작이 너희나 자신의 위병들을 이용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덮어 버렸는지 하나씩 얘기해 줘?
……
계속 잠자코 있을 거야? 전에 너희가 아츠를 시전할 때 노예를 데리고 다니는 걸 봤거든. 그거 다 감염자 맞지?
아무래도 위치킹이 남긴 어둠의 기억이 근절되지 않은 것 같네. 그런 잔혹한 아츠 기술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직도 남아있다니……
너희가 감염자를 잡는 게 그것 때문이 아니었어?
……
정말 과묵하구나. 이래서 대화가 되겠어?
대화는 필요 없어.
난 그저 오리지늄 아츠의 사용자를 한 번 만나러 온 것뿐이야, 예의상.
그럼 바로 시작할까? 원래는 말썽 피우면 안 되지만, 마침 나도 그 유명하다는 라이타니엔 캐스터의 능력을 구경하고 싶었거든.
……!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지…… 대체 무슨 말이야!?)
(노예…… 연구? 그럼 잡혀간 아저씨 아줌마들은…… 설마……)
우리는 호엔로에 백작을 적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
사르곤인, 네 소문은 들었다. 경의를 표할 만한 아츠를 가지고 있는 것 같군.
어머, 이거 감사라도 드려야 하나?
필요 없다.
역시 너희를 도통 이해할 수 없다니깐.
라이타니엔에 와서 팽창하는 거대한 권력과 그 권력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2년여 동안이나 지켜봐 왔지만,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너는 이 땅의 공기를 마시지 않았으니까.
여긴 공기가 너무 탁해.
그럼 여기서 질식하겠군. 공기가 맞지 않으면 질식사하는 게 당연하지.
어째 나를 저주하는 것 같다?
해괴한 주술에 죽고 싶다면, 오랜 혈맥을 가진 살카즈라도 찾아봐라.
너와의 충돌은 계획에 없었다…… 저기 숨어있는 감염자는 네게 넘기마.
오, 그것참 반가운 소리네. 어떻게 하면 네가 사나운 비명을 지르지 않게 할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어쨌든 우리의 협력 관계에 금이 가면 나도 곤란하다고.
흥, 건방진 사르곤인. 오늘 일은 이대로 끝내겠지만, 이 한 가지만 기억해……
라이타니엔은 라이타니엔만의 규칙이 있다. 개인에 따라 달라지는 그런 건 없어.
……후우.
드디어 갔네, 싸우지 않아서 다행이다. 뭔가 망가뜨리기라도 했다간, 돌아가서 백작에게 꾸중 듣는 게 너무 싫단 말이야……
이제 괜찮아, 나와도 돼……
……
응? 왜 말이 없어, 또 겁먹은 거야?
무슨 간땡이가…… 내 여동생보다도 작네.
……겁먹은 거 아니야!
그냥…… 아까 둘이서 했던 말이……
끌려간 아저씨 아줌마들은 어떻게 됐을까?
거짓말로라도 위로해 줘?
……
아니……
그럼, 현실적으론 아마 상황이 좋다고는 할 수 없겠지.
여기 귀족은 갱도 사고와 노동자를 모두 '없던 일'로 처리하려고 해. 저 캐스터에게 잡히든, 위병에게 잡히든, 십중팔구 좋은 결과는 없을 거야.
이게 네가 알고 싶어 하는 현실이야.
……흐흑……
어째서……
아, 왜 또 울고 그래. 너처럼 어린애들이 울면 제일 곤란하다고.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너랑 같이 도망친 애들을…… 찾으러 갈 거야?
!
마, 맞아! 울고 있을 때가 아니야, 다른 애들을 찾아야 해……!
만약…… 만약에 이곳 나리들이 우릴 받아주지 않는다면, 우린 다른 데로 갈 거야. 내가 가장 언니니까 모두를 지킬 거야……
……아저씨 아줌마들의 원수도 언젠가는……
여길 떠난다고? 다시는 고향에 못 돌아올 수도 있는데?
설령……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어차피, 어차피 이제 더는 잃을 것도 없으니까.
……확실히 그러네.
알았어. 그렇게 다짐했다면 나보다 더 믿을 만한 사람을 소개해 줄게.
더 믿을 만한 사람?
이제 그만 나오지, '전문가' 씨. 숨어있지 말고.
……정말이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일부러 숨어있는 것 같잖아. 멋있게 당당하게 등장시켜줄 순 없어?
미안해. 그러기엔 네 발소리가 너무 커서 못 들은 척 멋지게 등장시키기에는 너무 무리야.
네 귀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건 아니고?
칭찬 고마워.
칭찬 아니야…… 뭐, 됐다.
이, 이 사람이…… '전문가'야?
그냥 하는 말이니까 무시해. 난 그저……
뭐야, 너희들 감염자 문제 처리 '전문가' 아니었어? 처음에 그렇게 소개한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너도 우리 일원인데.
아, 뭐…… 하하……
(또 대충 얼버무린다!!)
(일일이 따지지 마. 어쨌든 상황은 봐서 알 테니, 이 아이를 너희에게 맡겨도 되겠지?)
(그거야 문제없지.)
(오히려 네 신분으로…… 계속 이 아이를 챙기는 게 무리야.)
(크흐, 믿음직스러워라.)
(놀리지 마. 그리고 애들을 울리는 게 대체 몇 번째냐고?)
(당최 이해가 안 돼. 매번 말썽 피우기 싫다면서, 맨날 '말썽 피우는 일'만 골라 하잖아?)
(그러게, 어째서일까? 나도 잘 모르겠어, 하하하.)
(……나도 나름대로 원칙에 따라 한 것뿐이야.)
저기……
응?
우리…… 또 만날 수 있어?
그거라면……
네가 지금의 신념을 계속 가지고 있는 한,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겸손한 사람은 늘 말한다, “나는 이곳에 속한다”라고.
거만한 사람은 비웃는다, “이곳은 내게 속한다”라며.
사르곤인의 생명은 자신들을 키워준 모래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다듬어진다. 여기 있는 이 사르곤인은 그다지 거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겸손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을 다듬지 않으면 타향에 적응할 수 없다. 그러면 뭐 어떤가, 그렇다고 굳이 끼워 맞출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차라리 이단아가 되는 편이 좋다.
자기 자신다우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