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6장봉
옥문에 진군 명령이 하달되고, 쥔은 대리사로 돌아와 심철과 옛일을 회고하고 법을 논한다. 첸 일행은 천경각 최상층에 도착하고, 막일은 불반의 존재에 대해 말한다. 바로 그때, 예상 밖의 인물이 유유히 등장한다.
망일 하루 전, 사시
……
다소 연로한 장군이 막사 안에서 오랫동안 침묵하며 서 있었다. 마치 오래된 성벽의 벽돌 같았다.
등 뒤에는 마음속으로 이미 만 번도 더 그려본 행군 지도가 있었고, 눈앞에는 백조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였다.
서북의 황사에 익숙한 그에게는 비 내리는 중원의 날씨가 오히려 적응하기 어려웠다. 먹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장군의 생각은 아득히 먼 곳으로 흘러갔다.
귀공이 새로 온 옥문 장수로군.
숴라고 불러주게, 장군의 군내 사무를 보조하고, 또 이곳의 훈련을 돕고 있지.
필요하면 내가 이곳을 소개해 주겠네.
……나를 못 알아보겠소?
조정에서 내려온 공문에 있는 장군의 이름이 좌선료인 건 확인했지만…… '알아본다'라니?
……
됐소.
나는 옥문으로 돌아온 터이니, 안내는 필요하지 않소. 몇 년 전에도 옥문에서 칼을 손에 쥐어보았소.
그랬군, 내가 멋대로 생각한 거였나.
아무래도 그때부터 우리는 이미 전우였던 것 같군.
이곳에 있었던 시간이 너무 길어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일이 많나 보군. 무례했다면 용서해 주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흥, 재밌군.
준비하시오, 대련해 보도록 하지.
오느라 고단했을 테니 일단 쉬는 게 어떤가? 나중에 원한다면 기꺼이 함께하겠네.
말이 많군, 쉴 필요는 없소.
주먹질도 하고 발길질도 하면서 좀 움직여야 밥을 먹을 수 있지 않겠소?
좌 장군,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행군과 전투도, 군수 물자도, 군의 사기도 전부 한계야.
데몬과 무리해서 싸우면 안 된다네. 더 깊이 들어갔다가는 변고가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이야.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장군, 이 전투에서는 이미 충분한 성과를 거뒀다네.
데몬이란 인간의 두려움을 먹고 사는 것…… 허나, 좌 장군처럼 처음으로 군대 전체의 안위를 어깨에 짊어지고도 털끝만큼의 두려움도 없는 장수는 나도 평생 처음 보는군.
무엇이 두렵단 말이오!
나의 장병과 백성을 해치고, 우리의 비옥한 농토를 파괴했소…… 이번 전투에서 저것들을 남김없이 쓸어버리지 못한 게 개탄스러울 뿐이오!
나에게 20년만 주어진다면, 이 검을 경계로 삼아 저 흉악한 데몬들을 전부 쓸어버릴 것이오!
나도 장군을 믿고 있다네.
좌 장군의 기백이라면, 이 세상에 좌 장군을 물러서게 할 적은 없을 테지.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소?
당신은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고, 절대 패배하지 않는 사람 아니오……
두려움을 느껴본 적은 있소?
발령이오?
옥문에서의 내 임기는 100년이었으니, 이제 떠날 준비를 해야겠지.
사세대는 점점 더 규칙을 지키지 않는군. 이젠 옥문의 인사이동을 내게 먼저 알리지도 않는 겐가?
최근 몇 년간 서북쪽이 불안정해 사람이 필요한 때인데, 가란다고 정말 떠날 생각이오?
여기서 오래 지내다 보니 좌 장군도 벌써 잊은 모양이로군……
나는 옥문에서 관직 같은 것을 받지 않았다네.
……
어디로 가시오? 단연? 아니면 미촉?
옥문을 떠나면 완전히 그만둘 생각일세.
……어째서요?
그간 쉐이 능묘를 감시하던 지촉인들에게서 소식이 빈번해진 걸 보니, 쉐이가 깨어날 날이 가까워진 것 같더군.
이럴 때는 요직에 있는 게 좋지 않아서 말이지.
……
그래도 지금 옥문에는 훌륭한 병사도, 유능한 장군도 있는 데다, 튼튼한 성과 뛰어난 무기가 있으니, 염국 서북부를 지키든 다른 일을 하든 다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말게.
이곳을 떠난다면…… 어디로 갈 생각이오?
이 넓은 세상, 어디든 갈 곳은 있지 않겠나……
……여봐라.
전방에 보낸 척후병은 아직인가?
아직입니다, 장군님.
최근 사흘 동안 백조에서 아무런 명령도 오지 않았습니다.
사세대는 쉐이 능묘의 상황과 상관없이 옥문에 연락을 보내야 했거늘……
지금 바로 전달자를 보내……
장군님! 이곳에 쳐들어오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냐?
좌 장군.
아무리 군 감찰어사라고 해도 이렇게 내 막사에 함부로 쳐들어온 것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할 거요.
누구의 명령이오?
태위께서 좌 장군에게 전쟁의 때를 놓친 죄를 물으셨습니다.
황당하군!
옥문에서 전투준비 명령을 받은 이후, 언제나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거늘, 내가 언제 군령을 지체했다는 거요?!
좌 장군, 혹시 잊어버리셨습니까? 연초, 옥문에서 7월 그믐까지 백조에 도착하라는 군령을 보냈습니다만, 장군께서는 사흘이나 늦게 도착했습니다. 이것이 그 죄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건 옥문에 연초에 재앙이 일어나 2달이라는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인데, 조정에서는 어찌 그걸 모르……
나서지 마라!
후…… 옥문성의 행군을 지연시킨 건 나의 죄가 맞소.
태위께서 지금 이 일을 문책하는 게, 설마 전투를 코앞에 두고 장수를 바꾸려는 생각인 거요?
잘 아시지 않습니까. 태위께서는 언제나 좌 장군을 높이 평가하고 계십니다.
한데 지금 보니 좌 장군은 태위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군사 요충지에서 그런 멍청한 소리는 삼가시오.
좌 장군, 옥문을 쉐이 능묘 방향으로 20리 이동할 것을 명령해 주시지요.
옥문은 이미 쉐이 능묘와 아주 가까이 있는 상태요. 어째서 더 가까이 이동하라고 하는 것이오?
쉐이 능묘 안의 상황이 아직 분명하지 않은 상황인데, 설마 옥문에서 먼저 공격하는 거요?
좌 장군은 명령만 수행하시면 됩니다. 어찌 질문하십니까?
그럼 폐하께서는 어찌 말씀하셨소?
좌 장군은 군령을 의심하는 겁니까?
이렇게 분명하지 않은 군령은 따를 수 없소!
따를 수 없다면, 이 막사를 내놓으셔야겠습니다.
어딜 감히!
멈춰라!!
좌 장군, 지금 제가 여기에 왔다는 것은 이것이 바로 태위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좌 장군은 명령에 따라주시면 됩니다. 이후 설령 폐하께서 추궁하셔도 할 말이 있을 겁니다.
쉐이가 곧 깨어날 것이니, 전쟁은 이미 정해진 일입니다. 설마 지금 같은 시점에 항명을 고집해 옥문을 혼란에 빠뜨릴 생각입니까?
상황이 급박합니다. 염국 만백성의 생사가 장군의 결심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경성에 있는 장군의 부인과 아드님의 생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찌 감히!!
우리가 아니라 장군의 일입니다.
병부의 예상에 따르면, 좌 장군의 항명으로 옥문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경우, 백조에는 반드시 불행이 일어날 것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좌 장군의 결정을 기다리겠습니다.
……
나를 알아보겠어?
모습이 다소 바뀌긴 했습니다만, 천하의 공리를 결정하는 판결원인 건 한눈에 알 수 있죠.
오랫동안 안 돌아오더니, 왜 하필 지금 같은 상황에 돌아온 거야?
누가 만나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온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대리사까지 온 이유는 후배들이 당신을 실망하게 한 건 아닌지 확인하려고 온 거 아니야?
제 의견은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대리사는 천하의 백성들을 실망시키지 않게만 노력하면 되니까요.
아쉽게도 얼마 전에 대리사의 한 소경이 사직했어…… 당신이라면 그 아이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을 텐데.
실망해서 사직한 건 아니길 바랄 뿐이에요.
장담은 못 하겠네……
아직도 악기 연주해?
오음으로 덕을 바르게 세우는 법, 단 하루도 거른 적 없습니다…… 요즘에도 계속 새로운 악기를 익혀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죠.
좋네…… 《염국 법률》을 연구하는 것보다는 훨씬 홀가분하게 들려.
확실히 재미있는 학문이죠.
당신이 오래전에 남긴 《염국 법률의 초급 이론》을 몇 번이나 읽었지만, 그래도 내용의 3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
그 책을 연구하다가 하마터면 형부에 들어가지 못할 뻔했어. 어쩌면 지촉인이 되어버렸을지도 몰라.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이해하게 됐어…… 당신이 쓴 공정함이란, 인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야.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걸 그릴 순 없어요. 붓도 똑같죠. 마음속에 존재하지 않는 양심은 쓸 수 없는 법이니.
인간 세상에서 공정함을 볼 수 없다면…… 누구에게 속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때 일에 아직 한이 남았나 보네.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나요?
그때 그 난리로 목숨을 잃은 사람과 무고하게 휘말린 사람이, 과연 그자를 미워해야 할까?
똑같이 미워해야 하죠.
그렇다면, 당신은 그 일을 어떻게 공정하게 판결할 생각이야?
아무래도 잊은 모양이군요.
염국 법률 중 어떤 조문도 단순히 증오를 없애기 위해 존재하는 건 없습니다.
지금 재판이 필요한 사람은 따로 있죠.
당신은 당신네 오빠가 쉐이 능묘에서 어떻게 될지 전혀 걱정하지 않는 것 같네. 오히려 어떤 심판을 받게 될지가 더 걱정되는 건가?
공정함은 원래 생사와 무관한 일입니다. 그리고 저와 오빠는 각자 추구하는 게 다르고요.
맞는 말이야……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나는 점점 더 진심으로 믿게 돼……
쥔, 법과 율은 인간이 만든 거지만, 당신의 마음속에는 속세의 분쟁을 초월하는 숭고한 율법이 있어…… 그건 아마 인간 세상에는 영원히 나타날 수 없는 거겠지.
그럼에도 단 한 번…… 만약 정말 그 죄인을 심판할 날이 오게 된다면, 그때 당신을 재판석에 앉혀 직접 심판하도록 할게.
당신 말이 맞아요.
하지만 저 역시 오랫동안 아무도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만.
잠깐만. 가기 전에 나랑 인간 세상의 차 한잔 어때?
음?
가끔은 있지, 인간 세상의 차라는 게 아무리 하늘의 신선이 마신다고 해도, 결국 사람 손으로 우려내고 사람이 따라 올려야 제맛이 나는 법이라고 생각하거든.
망일 하루 전, 유시
후아…… 천경각 진짜 더럽게 크네. 저 앞에 있는 게 천경각 꼭대기의 봉인된 방이겠지.
가서 문 좀 두드려 봐, 어떻게 여는지 확인해 보자.
여기에는 아무도 없어. 우리가 제일 먼저 왔을 거야.
……좌락,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
태위가 대리인의 유품을 가져오라고 했다면, 태위는 그걸 사용해 쉐이를 진압하는 방법을 안다는 소리인가?
……그분은 삼공이십니다. 가져오라고 하셨다면, 이미 어떻게 할지 생각을 끝내셨을 겁니다.
전 의심됩니다…… 만약 누군가가 왕과 쉐이가 사투를 벌이는 틈을 타서 그 서도로 대리인 1명의 이름을 더 지운다면……
하지만 이 모든 게 웨이 옌우와 도대체 무슨……
그 태위에게 정말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서도까지 사용할 필요도 없었을 거야. 직접 쉐이 능묘로 가서 쉐이를 제거하는 게 훨씬 빨랐겠지.
그렇다면 당신의 생각은 무엇이죠?
너희 관가 일에 관심은 없지만, 너희가 떠드는 걸 들어보니 대충 알겠더라고.
결론은 40년 전에 반란을 일으킨 혐의를 받고 행방불명됐던 그 태자가 지금 다시 돌아온 거야. 맞지?
그런 큰일을 그렇게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세요!
하아, 말해봐야 내 입만 아프지……
아무튼, 또 다른 진룡의 순수 혈통은 지금 백조에 있어.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면 설명이 쉽겠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백조 밑에 쉐이를 진압할 수 있는 특별한 오리지늄이 묻혀 있다는 이야기, 설마 못 들어봤어?
저 멀리 용문에서 온 첸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치고, 너희 둘도 모르는 건…… 직급이 너무 낮아서 그런가?
당신이 말하는 건 설마……
“땅의 은택이 만백성에게 미치니, 이 기이한 돌을 내렸고, 하늘이 염국을 도와 괴수 쉐이를 제거하였다.”
이건 대사냥에 관한 전설인데요. 저는 줄곧 신화 속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저는 쉐이 능묘 전체가 어떤 특수한 장치 위에 묶여 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됐어, 모르는 것 같네.
어째서 당신은 잘 알고 있는 겁니까?
사세대의 기록에는 누가 그 오리지늄을 염국에 줬는지 절대 적혀있지 않을 거야.
그건 쥐서우의 가장 친한 친구, 최초의 산해중인 우리 조사님이었어.
?!
정확히 말하면 그분은 그 오리지늄을 진룡 한 사람에게만 줬어…… 다시 말해……
무슨 일이죠?
백조 백성들의 대피 작업이 끝나고 이동 섹터를 해체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시간이 없어요. 지금 당장……
설마 정말로 여기까지 올 줄이야.
누구냐!
긴 복도 반대편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어떻게 당신이……
폐하께 아뢰옵니다. 백조 각 도심의 대피 작업이 모두 완료되었고, 각 부서의 관리들도 모두 제 위치에서 대기 중입니다.
폐하, 다음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내일이 분명 망일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알겠다.
백조를 해체해라.
석양이 황금처럼 녹아내렸고, 하늘이 울부짖었다.
백조 외곽의 섹터들이 하나둘씩 중심부에서 떨어져 나갔고, 거대한 구조물들이 움직이며 넓은 벌판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것들은 이 도시를 멀리 보내는 발이었고, 이 도시가 서 있게 하는 뿌리였다.
강산, 거리, 삶, 노랫소리.
대장간, 곡식 창고, 관청, 무기고……
백 세대에 걸친 인간 역사의 흥망성쇠에 각 구역이 함께해왔다.
8개 지역이 함께했고, 9개 주가 동행했다.
하지만 이번의 헤어짐, 그 앞날은…… 가늠할 수 없다.
……
언제쯤 찾아올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폐하……
때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