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6지난날의 시
티티는 팔라스와 작별을 고했다. 한편, 옥중에서 크산토스는 세상에 분노를 품은 한 노인을 만난다.
등장 오퍼레이터: 티티, 팔라스, 퍼퓨머 더 디스틸트, 바르카리스
……
……
날이 저물었어, 팔라스. 이제 각자 움직이자.
티티, 정말 그렇게 할 건가요?
응, 베누이 씨는 우리가 가져온 문화재가 모조품이란 걸 알게 된 후로, 내가 한 발짝도 접근할 수 없게 수행원들에게 리라를 감시하라고 시켰어.
그러니까 오늘 밤은 분명 경비가 강화될 거야. 하지만 내일 교환식 때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리라를 공식 석상에 내놓을 수밖에 없고, 그때가 우리의 기회라는 거군요……
맞아.
하지만 그다음은요?
그다음? 사르곤 당국은 이 사건에 대해 형식적인 사과를 하겠지.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외교관을 파견해 시정감독관과 협상을 벌일 거고.
겉으로는 사르곤의 사절이 미노스 국보를 들고 도주한 것처럼 보이지만, 양국의 관련 책임자들은 사라진 게 사실상 모조품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거지.
티티, 그걸 물어본 게 아니에요. 저는 당신이 어떻게 할 건지 묻는 거예요.
나?
나는 가짜 리라와 미오를 데리고 옛길로 빠져나갈 거야. 메나트 하마이트로는 다신 못 돌아가. 파디샤 케리의 위병들이 쫓아 올 테니까.
만약 붙잡힌다면, 베누이 씨든 파디샤 케리든 자기들에게 불리한 증거는 인멸하고 잘못을 전부 미노스에 떠넘길 거야.
내가 계속 도망치는 한, 사르곤의 권력자들은 '도난 사건'을 섣불리 결론짓지 못하겠지. 내가 가져간 건 가짜 리라지만, 사건의 진실이기도 하니까.
티티……
됐어. 날 말리지 마.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나도 무겁고 커다란 리라를 가지고 테라를 떠돌고 싶지 않은걸.
그만 돌아가, 팔라스. 나 혼자 있고 싶어. 내일 아침에 봐.
네……
……
티티는 광장 관객석에 몸을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노스의 밤하늘은 늘 맑아 별을 관측하는 이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미노스인은 예로부터 영웅과 별자리를 연관 지어왔다.
어릴 때부터 티티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별을 보며 영웅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중에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고, 출처를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문학 애호가였던 아버지가 지어낸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후에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티티는 그 이야기 하나하나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수많은 이야기 속에, 혹시 리라를 들고 도망치는 영웅은 없을까?
밤하늘에 수많은 별이 반짝였으나, 티티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퇴근 시간은 진작 지났으니 내일 출근해서……
시정감독관 서기관님, 저예요.
카산드라 님?
죄송합니다. 이미 쉬고 계신 걸 알지만……
저기…… 이 밤중에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거죠?
크산토스 씨와 그 제자의 절도 사건과 관련해, 혹시 리디아 시정감독관에게서 들은 얘기가 있나 해서요.
아까 시정감독관 사무실을 방문해 리디아 씨와 연극 의식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면서 며칠 전 절도 사건을 언급했는데, 태도가 모호하더군요.
아, 리디아 시정감독관께도 분명 나름의 고려가 있으실 거예요. 내일이 바로 문화재 교환식이라, 절차뿐만 아니라 사르곤 사절단 대응에도 신경 써야 하니까요.
그게 제가 걱정하는 점이에요.
만약 사르곤 측이 신뢰 관계를 빌미로 사건의 성격을 재규정하라 요구한다면, 외교 담당인 그녀는 거절하기 어려울 거예요.
실제로 논의할 때 리디아 씨가 다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책상 위에는 미노스 법전과 사건 조사 보고서가 쌓여 있었어요.
사절에게 협박받았을 가능성이 아주 커요. 그러면 크산토스 씨와 그 제자의 죄명은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죠. 게다가……
게다가?
광석병에 걸린 당신의 동창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게 아니라면, 당신 집 소파 팔걸이 뒤로 불포의 꼬리가 보일 일도 없겠지요.
……
……
드디어 만나 뵙는군요.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 담당자, 레나 씨.
안녕, 카산드라……
크산토스 님과 리케이온은 레나 씨의 환자예요. 레나 씨는 수감 중인 두 사람에게 약을 전해달라고 도움을 청하러 오신 것뿐입니다.
도움을 청해요? 일반적인 유치장이라면, 레나 씨가 수감자에게 약을 전달 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요.
제 예상이 크게 빗나가지는 않은 것 같군요. 리디아 시정감독관이 사르곤 사절의 요구대로 진짜 중형을 내리려는 듯합니다. 크산토스 씨와 그 제자가 이미 사형수 감옥에 갇혔을 가능성이 높아요.
엔디미온 신전의 해몽 담당자이신 카산드라 제사장님께서 이토록 추리에 능하실 줄은……
하지만 헤카데모스 씨, 시정감독관의 서기관 신분으로도 사형수 감옥에 갇힌 죄수를 면회할 수 없다는 걸 알고 계시겠지요.
아주 위험한 생각을 하고 계신 게 아니라면요. 이를테면……
탈옥을 돕는다든가.
……
리케이온과 크산토스 님이 광석병 급성 발작으로 감옥에서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그 둘이 잘못을 저지른 건 맞지만, 판결이 지나치게 무거워요.
카산드라 님, 오늘 밤 당신은 제 집을 찾아오신 적도 없고, 절도 사건에 중형이 내려질 거라는 사실도 전혀 모르시는 겁니다……
이 일을 눈감아 주실 수 있을까요? 영웅들께서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다면, 이런 불합리한 일을 결코 두고 보지는 않으실 겁니다.
레나 씨도 사람을 구하려고 하시는 건가요?
맞아.
나는 내 환자를 구해야 하고, 내 여동생도 '구해야' 해. 나는 그 아이가 시정감독관으로서 품은 포부가 있다는 것도, 나름의 고충을 안고 있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잘못을 거듭하게 둘 수는 없어……
내일 열릴 교환식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쏠릴 거예요. 개인적인 인맥을 이용해 감옥의 도면을 확보해 두었고, 이동 경로도 짜 놓았습니다.
그 둘을 데리고 나올 수만 있다면, 아니, 급성 감염 억제제를 놓아 줄 수만 있어도 좋습니다……
이동 경로를 짜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시정감독관 사무실과 사형수 감옥에서 시간을 끌어줄 사람이 필요해요.
리디아은 내가 찾아가 볼게. 그리고 감옥 쪽은……
제가 돕죠.
어르신, 지금 무엇 하나 온전히 미노스인만의 것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훗, 우리가 방목하는 버든비스트를 본 적 있겠지?
그 녀석들의 커다란 머리 위의 시야를 통제하는 두건과 마스크는, 사르곤에서 들여온 것 아닌가?
아, 그 두건이 상징하는 바를 잘 모르시는군요. 실은……
하하, “그건 점령기 때 사르곤인들이 우리에게 두건을 쓰게 강요했던 걸 비꼬는 표현이다” 같은 말은 하지 마.
풍자와 찬양이 어떻게 다르지? 결국 사르곤인들이 미노스 문화에 남긴 흔적 아닌가?
그걸 어떻게 똑같이 취급할 수 있죠……
수긍이 안 돼? 그렇다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에 대해 한 번 이야기해 보지.
100여 년 전, 미노스는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자연 하천을 가까이에 둔 낙원이었어. 하지만 지금은 어떻지?
'저편의 여왕' 파디샤 말라가 사르곤과 미노스의 엔지니어, 그리고 수많은 노동력을 모아, 세 개의 도시국가를 강철의 캐터필러 위에 올려놓았어. 아테누스는 이미 오래전에 본래의 자리에서 벗어나고 말았지.
어르신, 논점을 흐리고 계시네요. 사르곤인들이 아니었더라도, 우리는 언젠가 도시국가를 이동 섹터로 옮겼을 거예요. 그건 기술 발전으로 인한 필연적인 추세이니까요……
그래, 말 한번 잘했구나! 너, 테로스 신전에서 지낸 적 있지? 그런데 네가 놓친 게 하나 있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대화에 쓰는 이 언어조차도 '혼종'이라는 사실 말이야.
전통 미노스어는 사르곤 점령기 때 이미 사라져 버렸어. 제사장들이 머리를 쥐어짜며 꿰맞춘 현대 미노스어 중에, 너희가 적대시하는 국가에서 비롯된 단어가 얼마나 될 것 같으냐?
당신……
그만!
……
리케이온, 너는 어르신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전쟁의 흔적은 지울 수 없고, 정전협정 하나로 모든 것이 지나간 일이 되지는 않아. 우리가 우리 마음속의 미노스를 위해 싸울 수 없는 건, 그 미노스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야.
투구를 쓴 쪽은 꽤 재밌구먼.
연세를 보아 점령기를 직접 겪으신 건 아닌 듯하지만, 방금 하신 말을 미루어 보아 그 시기에 대해 아주 잘 알고 계시는 듯합니다……
낯선 이의 과거를 캐내는 데 귀한 시간 쓰지 마.
나는 그저 길거리에서 죽으나 감옥에서 죽으나 다를 바 없는 떠돌이일 뿐이야. 그럭저럭 쓸만한 아들 녀석이 하나 있었지만, 꿈에게 빼앗겨 버렸지.
꿈?
9년 전 어느 날 아침, 그 녀석이 자기 방에서 뛰쳐나와 숙취에 찌든 날 흔들어 깨우면서 말했지. 꿈에서 강을 봤다며, 떠나야 한다고 말이야.
피로 물든 강을 봤다지. 하, 엔디미온 신전의 제사장에게 가보지 않아도, 나는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어.
그 녀석은 나한테서 벗어나고 싶었거나, 전장에 나가고 싶어 환장했던 거야. 우리 가문의 선조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제 아비가 왜 술과 도박에 찌든 폐인이 되었는지도 모두 잊어버린 채 말이야.
신탁…… 피로 물든 강……
당신…… 설마, 이타코스의 부친 되십니까?
……
티티! 왜 이제 와. 나는 네가 이미 도망친 줄 알았는데.
어쩌면 정말 도망쳐야 할지도 몰라, 미오.
뭐?! 밖에서 그렇게 오래 싸돌아다니며 생각해 낸 게 겨우 그거야? 게다가 나더러 같이 고생하자고?
가짜 리라를 갖고 다른 곳으로 떠나, 모든 잘못을 개인의 '절도 행위'로 귀결시키는 게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이었어.
그건 최선이 아니라, 그저 '메제티케티'다운 해결법이잖아!
뭐?
3주 전, 사절단이 사르곤을 떠날 때, 넌 케레세이라가 처음 아테누스에 왔던 길로 직접 가보고 싶다며, 고생스럽더라도 옛길로 가겠다고 했어.
하지만 사실은 베누이와 부하 놈들이 압박해오는 걸 눈치채고, 분쟁을 피하면서 문화재가 함부로 다뤄지지 않게 혼자서 그 크고 무거운 리라를 옮기기로 한 거잖아?
그뿐만이 아니지. 몇 달 전, 메나트 하마이트에서는 페페 그 계집애를 도와주려고 와인 한 병을 네 몸에 들이부었어.
우리 알고 지낸 뒤로, 너는 계속 나에게 불평만 했어. 박물관 관장 월급이 쥐꼬리만한데 세탁비가 엄청 깨졌느니 어쩌니 하며.
그런데도 너는 페페에게 아쉬운 소리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도리어 친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고 생각했지.
네가 생각해 낸 방법이 결국 너만 손해 보게 만드는 일이라면, 차라리 때려치워!
풉……
왜 웃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네 말을 들으니까,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어.
크산토스 씨와 리케이온 씨도 마찬가지지. 그 둘은 미노스에 돌아와야 할 문화재가 외교적인 도구로 전락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리라를 훔치기로 결정하고, 모든 결과를 감당한 거야.
그 사람들의 진짜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들이 한 일도 영웅 이야기로 남겨질 수 있다고 생각해.
지금 나는 그저 '모방자'일 뿐이야. 내가 감히 영웅의 기개를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싶어……
내가 '영웅'이라 할 수 없더라도,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없더라도 말이야.
의외네요, 메제티케티 씨. 그만한 각오를 하고 계신 줄은 몰랐어요……
카산드라 씨?
리라를 훔친 크산토스 씨와 그의 제자가 원망스럽지 않으세요? 그 사고가 일어나지만 않았다면, 당신이 가져온 리라가 가짜라고 해도 문화재 교환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을 텐데요.
어떻게 그 사람들을 탓하겠어요?
베누이 씨가 선수를 쳐서 시정감독관을 압박해 그 두 사람에게 부당한 판결을 내리게 할 거란 건 예상했지만…… 사실 진실을 드러나게 한 건 그 사람들이었는걸요.
하지만 제가 가짜 리라를 들고 도주하며 갈등의 초점을 돌린다면, 크산토스 씨와 리케이온 씨는 분명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죠……
잠깐만요, 카산드라 씨. 사르곤 사절단이 가져온 리라가 가짜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
메제티케티 씨, 저를 따라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