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6지난날의 시
친구를 잃은 증오가 크산토스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친다. 노인은 봉인되었던 과거를 꺼냈고, 크산토스는 문화재 교환이란 명목으로 사절단을 파견한 파디샤의 진정한 목적을 깨닫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바르카리스
정말 마을을 떠나려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출발할 거야.
밭은 새로 갈아 놨고, 씨앗과 먹을 것도 충분해. 창고도 손을 봤고, 뱃사공 일은 젊은 몇몇 친구들에게 가르쳐 놨으니 걱정하지 마.
크산토스, 나는 널 걱정하는 거야.
넌 평생 이 늪지대를 떠난 적이 없잖아. 그 외지인을 찾으려고 이 먼 길을 떠나?
이타코스는 내 형제다. 우리 모두를 도와주기도 했지.
1년이나 지났잖아, 이타코스는 아테누스로 돌아갔을지도 몰라…… 거기가 그 친구의 고향이니까.
걔는 약속한 건 지키는 애야.
전쟁이 끝나면 돌아오겠다고, 나와 약속했어.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 만약, 만약에 이미……
그 친구가 간 곳은 사르곤인들과 싸우는 전장이잖아……
그렇다면 내가 대신 복수할 거다. 그 녀석, 그리고 미노스인을 위해.
미노스, 북부 산지
흥분하지 마! 사람 잘못 봤어! 나는 정말 이타코스인지 뭔지가 아니야!
흥분한 건 너다, 동포여. 나는 그저 네가 입은 갑옷을 알아봤을 뿐이야.
……
그건 이타코스, 내 동생의 갑옷이다. 길을 떠나기 전, 마을 사람들은 짐승 가죽이나 철기를 가져다주었고, 내가 직접 그 녀석에게 그럴듯한 전신 갑옷과 무기를 만들어 주었지.
미, 미안해. 크고 작은 전투를 쉬지 않고 치르느라 제대로 잠을 자 본지가 언젠지 모르겠어, 정신이 너무……
자, 주전자 안에 진정 효과가 있는 허브차가 좀 있어.
말해, 그 갑옷은 누가 준 거지?
다른 유격대의 전우가 줬어. 전투 중에 우연히 만난 친구였는데…… 화살을 맞고 숨을 거두기 전에 이 갑옷을 내게 줬지……
……
하지만, 이타코스라는 이름은 아니었어.
후우……
이 갑옷에 남은 흔적을 봐. 이렇게 얼룩덜룩한 걸 보면 분명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을 거야……
아마 잘 모를 수도 있을 텐데, 유격대는 사르곤의 정규군과는 달리 보급이 넉넉하지 않거든.
다들 무기, 방어구, 식량을 모아두었다가, 임무 우선순위에 따라 일괄 배분해.
그 전우가 속했던 유격대의 번호랑 현재 위치도 알려줄 수 있어…… 아, 우선 이 갑옷을 돌려줄게.
갖고 있어, 아직 필요하잖아. 동포여, 내게 방향만 짚어주면 된다.
알려줄 수 있긴 한데, 정말 산에 가서 찾으려고?
산지 전체는 유격대의 활동지야. 우리와 사르곤인의 전장인데……
그러면 내가 유격대에 들어가지.
전장에 나가본 적 있어?
(고개를 젓는다) 지금까지 내가 쥐어본 건 노와 농기구뿐이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지, 안 그런가?
미안해. 네가 말한 잘 웃는 장발의 포르테에 관해서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이 부츠는 내가 유격대에 막 들어왔을 때 받은 거야…… 그때 물자를 가져온 전우 말로는, 왼쪽 뿔 한쪽이 깨진 중년 남자의 것이었대.
찢어졌군.
미, 미안해. 나한테는 조금 작기도 했고, 꿰맬 시간도 없어서.
사르곤인들이 계속 우리 뒤를 쫓아왔거든. 네가 때마침 도와주지 않았다면……
앉아.
어?
내가 꿰매주지.
고마워…… 아, 네 손은 큰데 정말 섬세하구나…… 유격대에 들어온 지는 얼마나 됐어?
넉 달 조금 넘었어…… 찾을 사람이 있어서 들어오게 됐다.
부츠는 네가 갖고 있어.
싸우고, 이동하고, 잠복하고, 정비하고. 피를 흘리면 목숨을 잃거나, 그게 아니라면 피를 닦아내고 다시 전투에 뛰어들지…… 그런 나날이 아직도 수두룩하게 남았어.
……
이 부츠를 준 전우는 어디서 왔지? 동포여, 내게 방향만 짚어주면 된다.
……
역시, 이 방패 모서리의 부호에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 '이타코스'라는 이름의 약자였구나. 네가 새긴 거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지난 반년 동안 이 전장 저 전장을 떠돌며 거의 모든 유격대에 몸담은 게,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너도 내게 더 알려 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군.
미안해, 크산토스. 그리고 나는 이 방패를 너한테 돌려줄 생각이 없어.
방패에 남은 칼자국이 얼마나 많은지 봐! 그리고 이 검은 흔적들…… 사르곤인의 아츠도 부수지 못한 방패라고!
나는 이걸 갖고 있어야 해. 그래야 더 많은 전우를 지킬 수 있고, 집으로 돌아갈 그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된다면, 더할나위 없겠지.
'이타코스'라는 이름이 너와 함께하길. 우리의 피와 눈이 우리의 승리를 증명해 주길.
그러면 여기서 헤어지자, 나의 전우여.
동포여, 내게 방향만 짚어주면 된다.
방향을 바꿔 잡아 봐. 이타코스는 왼손잡이라서, 이 아츠 유닛을 만들어 줄 때 거기에 맞춰서 설계했다.
어쩐지, 출력이 안 맞다 싶었어!
……크산토스, 그러고 보니 벌써 1년이 지났네.
시간이 정말 빠르다. 얼음이 녹은 뒤 흐르는 강물처럼.
넌 이 산지에서 가장 유명한 유격 대원이 됐어. 가장 많은 전투를 치렀고, 가장 많은 전장을 누볐지. 다들 네 용맹함에 감탄해……
그런데 너 정말로 동생을 계속 찾을 생각이야?
그만둘 이유가 없으니까.
네가 전장을 등지고 떠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하, 맞는 말이네.
그 억양, 혹시 라케다이몬에서 왔나?
그런 셈이지. 정확히 말하자면, 내 고향은 이동도시 항로 옆의 계곡이야. 봄에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
방금 너에게 내 고향, 나와 이타코스가 함께 만든 작은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 너도 네 고향 이야기를 들려줘.
우린 100년이 넘도록 패배해 왔고, 이 전쟁의 결말도 확신할 수 없어. 우린 서로의 고향을 기억해야 해…… 서로 기억해 줘야 한다.
나의 동포여, 기꺼이 그렇게 하겠어.
내일이 되면 난 계속 내 동생을 찾으러 갈 거다. 동포여, 내게 방향만 짚어주면 된다.
미노스인, 왜 나를 나무에 묶고 모욕하는 거지?
질문에 대답하라고 했을 텐데.
이타코스! 이타코스! 그놈의 이타코스!
*사르곤 욕설*, 됐어. 더는 못 견디겠어…… 2년 전, 이 근처에서 내가 이끌던 부대가 부상자를 호송하던 미노스 유격대를 맞닥뜨린 적이 있지.
그들의 깃발이 네가 방금 말한 번호와 같았어.
우린 그 유격대를 전멸시켰어. 네가 말한 그 이타코스라는 놈도 아마 그 안에 있었겠지.
이제 됐어? 2년 전의 그 전투 때문에, 나 하나를 상대로 복수하겠다고 일부러 이 덫을 놓은 거야?
미노스인, 제정신이 아니군. 너는 정말 미친놈이야!
못 믿겠지만, 이건 우연이었을 뿐이다.
오늘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타코스를 찾거나 이타코스의 원수를 죽이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
이 전투는 지난 1년, 아니, 지난 100여 년간 있었던 그 어떤 전투와도 다르지 않아.
사르곤인, 너희는 남의 땅을 침략했고, 우리는 고향을 지켜야 했을 뿐이다.
나는 그저 사람을 만나면 습관처럼 묻곤 했지. “이타코스를 본 적이 있나? 잘 웃는 장발의 포르테를 만난 적이 있어? 아테누스 출신이지만, 남쪽 시골 억양이 조금 있는 남자다.”
그러고 보니, 네 말처럼 난 정말 '미친놈'이 맞군.
……
나는 이타코스의 갑옷, 부츠, 방패, 그리고 아츠 유닛을 찾았다…… 이타코스가 이 산에 남긴 모든 것을 찾았어.
나는 이타코스를 찾았다.
나는 너 같은 놈들이 전사한 모든 미노스인의 이름을 기억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너희 파디샤도 공훈록에 적힌 기록 한 줄 한 줄이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타코스', 이 이름만 기억해.
그 이름은 우리의 정과 사랑이며, 너희의 죄와 벌이기도 하다.
……
이제 대답해라.
그 전투가 정확히 어디서 벌어졌지?!
동포들의 피가 어느 전나무 아래로 흘러들었는지?!
……
크산토스는 고개를 들어, 수백 수천 그루의 미노스 전나무가 몸을 꿋꿋이 세우고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어오자, 숲 전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 땅과 이 숲은 많은 일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들은 말이 없었다.
그의 동생이자 벗, 신탁을 좇아 고향을 떠난 그 젊은이는 그 속 어딘가에서…… 또는 그 속 모든 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타코스, 무수한 이타코스가 발밑의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스러져 갔다.
크산토스는 거대한 노를 들어 올렸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노는 강물의 소리를 잊었다. 이제 그 노를 적실 수 있는 건, 오직 원수의 피뿐이었다!
……!
이타코스의 복수를 했나?
……
아니요.
내가 무기를 들고 그 사르곤인의 머리를 내려치려던 순간, 동포가 저를 막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나팔이 울려 퍼졌어요.
한 번도 제게 말씀하신 적 없으세요. 선생님께서 겪으신 그 전투가 바로……
미노스와 사르곤의 정전협정 체결 전 마지막 전투였지. 100년 동안 패배만 해 온 미노스가……
드디어 이겼어.
그 동포는 죽을힘을 다해 내 손을 붙들었다. 한 쪽 다리가 부러졌어도, 날 막는 힘은 아주 셌지.
고개를 돌려보니, 동포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고,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어…… 사르곤인이 아닌, 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 친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친구는 어렵게 얻은 '평화'가 깨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내가 새로 일으킨 충돌이 다시 잔혹한 전쟁으로 이어질까 봐, 자신도 이타코스처럼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억눌러왔던 분노와 슬픔을 터뜨리지도 못한 채, 그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사르곤 장교를 노려보았다. 놈은 멍하니 나팔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나도, 그놈도,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전쟁이란 우리의 육체 속에서 계속되는 것임을. 시작은 있을지언정, 결코 끝은 나지 않는 것임을.
……
어르신 말씀이 맞습니다. 제 마음속의 미노스는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오래전 전장에서 그 '이타코스'들과 함께 죽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적들이 다시 이 땅을 짓밟는 걸 용납할 수 없습니다. 비록 이곳이 그들이 만든 도시라고 해도 말입니다.
'그들이 만든 도시'…… 우리 교과서에조차 그렇게 쓰여있나?
무슨 뜻이죠?
이타코스가 너희 마을에 갔었지. 내 핏줄답지 않게 천성적으로 열정 넘치는 녀석이었으니, 분명 너희에게 많은 건축 기술을 가르쳐 줬을 거야.
그랬습니다. 마을의 거의 모든 중요한 시설은 이타코스가 다시 지은 겁니다.
녀석의 솜씨는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거야. 점령기 때, 내 할아버지도 뛰어난 엔지니어링 기술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르곤인에게 강제로 끌려가 이동도시를 짓는 데 동원됐지.
뭐라고요?
아테누스의 동력층에 내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았을지도 모르겠군.
죄송합니다. 방금 제가 어르신께 너무 무례했습니다. 저는……
젊은이, 그런 일로 고개를 숙이진 마.
나는 이동도시를 건설한 엔지니어도 아니었고, 우리 조상이 아테누스의 건설에 동원돼 노역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그 어떤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아. 모든 자료는 그 당시 사르곤인이 다 가져가 버렸거든.
사르곤인이 미노스 엔지니어의 업무 자료를 가져갔다…… 왜죠?
엔지니어의 작업 노트에는 전문 용어와 도면 수정본 말고 다른 것들도 적혀 있기 마련이거든.
당시 엔지니어는 자재 수량을 검토하고, 운반 및 시공 팀을 총괄해야 했기 때문에, 인력 배치에 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모든 작업자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어……
사르곤 작업자가 아닌 미노스 작업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출신, 그리고 어떻게 사르곤인에게 강제 징용되었는지와 같은 것들 말이지.
미노스 작업자요? 3대 도시 건설 시기 파디샤 말라가 미노스인을 단 한 명도 중노동에 동원하지 않았다는 게 지금의 통설인데요.
그렇다면……
우리가 최후의 전투에서 이겼다 해도, 역사는 우리가 쓴 게 아니야.
그렇다면, 그것들은 범죄의 증거네요! 세상에 그걸 공개해야 합니다. 어르신, 엔지니어 노트가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세요?
난들 어떻게 알겠나. 사르곤인에게 물어야지…… 아, 하지만 당시의 사르곤인들은 지금 이미 다 죽었겠군. 허허……
사르곤인…… 3대 도시 건설 시기……
아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사르곤 사절이 문화재와 맞바꾸려는 건 기술 자료 따위가 아니라, 사르곤인들의 범죄 행위가 기록된 엔지니어 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