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6승육화방
블레이즈와 레이즈는 재회하게 되었고, 둘은 백진연에 가기로 한다. 한편, 염국 조정은 쉐이 문제에 관한 결론을 지어야 하는 때가 왔고, 진룡은 백진연에서 그 결정을 발표하려 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블레이즈, 블레이즈 디 이그나이팅 스파크, 싱주
친구는 벌써 갔나 보구나. 식사라도 하고 가라고 말하지 않은 거냐?
네…… 급한 일이 있어서 오래 있을 수가 없다네요.
어렸을 때부터 도통 친구를 데려오는 일이 없어서, 한 번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어쩌면 친구라고 할 수도 없을 거예요……
노인은 의기소침한 영인을 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결국 하지 않았고, 그녀의 어깨에 떨어진 나뭇잎을 손으로 털어주었다.
떠날 날이 가까워지는데, 아직 미련 남는 일들이 많지?
……할아버지도 그러신가요?
허허, 며칠 전만 해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는데, 막상 떠나려 하니 이 나무도, 풀도 두고 떠나기 아쉽구나.
기억하고 있느냐? 예전에 이 정자에 모래를 깔고 나무막대기 하나로 네게 글을 가르쳐 줬었는데 말이다.
그때 너는 다음 해 저택의 대련은 모두 네가 쓰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2달 동안 너를 데리고 연습했지만, 넌 견디지 못했었지.
그런데 이듬해 정말로 대련을 내게 선물로 줬더구나.
“만개한 꽃과 둥근 달, 원만한 삶이 영원하기를……”
할아버지께서는 그런 일까지 다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잊을 수 없는 일이지…… 또 추석이라니, 세월 참 빠르구나.
우리 둘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것도 참 오랜만이구나.
……네. 요즘 전 외출이 잦았고, 할아버지께서도 손님들을 맞이하시느라 바쁘셨으니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죠.
온 가족이 경성을 떠나는 일은 꽤 고생스럽구나.
그래도 낭이로 돌아가면 한결 홀가분해질 거다. 가는 도중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있을 테지.
네가 쓴다던 그 책은, 이제 다 쓴 거냐?
……
할아버지, 저는 아무래도…… 낭이로 함께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언제 내린 결정이냐?
영인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할아버지가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건 낙엽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세상의 이치기에, 가족 사람들 모두 이해하고 있어요.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보니 누구든 마음 편하게 따라가지는 못할 거예요.
그도 그런 것이, 영 씨 가문에는 인재가 많고 모두 염국을 위해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할아버지를 모시고 돌아갈 사람 중에 저만한 적임자는 없었죠.
하지만 저는 본래 낭이에 있던 먼 친척 집의 고아였고, 할아버지께서 가엾이 여겨 주신 덕분에 이 영 씨 저택에서 수십 년을 살 수 있었어요.
지금 낭이로 돌아간다는 건, 부모님이 생전에 계셨던 고향에 돌아가는 셈이 되겠죠.
너 스스로 나와 함께 고향에 돌아가겠다 했을 때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는 거냐?
……할아버지, 저는 사실 원래부터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전 모두 이치에 맞는 일이라고, 그런 식으로 합리화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요 며칠, 《백조식진록》을 마무리 짓기 위해, 마지막 인사를 한다는 심정으로 백조의 곳곳을 돌아다녔어요.
……그리고 제 모든 추억이 이 도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저는 그 뜰에 있는 감나무가 언제 심어졌는지, 그리고 술을 빚기에 적절한 감이 연제 열리는지도 알고 있어요.
게다가 골목 이곳저곳에 있는 다양한 식당들도 잘 알고 있어요. 요리사들의 성격은 어떠하며, 같은 요리의 다른 요리법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도요.
그래서 문득, 이 저택이 아니라 이 도시가 제 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아……
……내 잘못이구나. 네 생각을 진작 물어보지 않은 내 탓이다. 최근 너무 독단적으로 행동했구나.
할아버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할아버지는 저의 유일한 가족이었어요.
원래는 정말로 할아버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 백조에 남으려는 이유 역시…… 할아버지 때문이에요.
나 때문이라고?
……네.
제가 태사각에 들어가 역사서 집필에 참여하면서부터 줄곧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었어요.
염국의 수천 년 역사 중, 갑자기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문자가 보급되고 교육이 보급되기 시작했어요. 연구에 사용되는 일부 비문 역시 그 시기에 최초로 등장했고요.
전 분명 누군가가 그 시대에서 변화를 이끌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거의 모든 자료를 살펴봤음에도 작은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죠.
마치 염국의 역사에서 누군가 빠져 있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
그러던 어느 날, 기원에서 어떤 이상한 사람을 만났어요. 그는 제게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죠.
처음에는 그를 단지 허무맹랑한 이야기꾼일 뿐이라 여겼지만, 연구하던 중에 그가 했던 말들이 되려 사실임을 점차 알게 되었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온화한 사람이고, 백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어요…… 근데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왜 역사서에 이름 하나 남기지 못했을까요?
저는 그제야 깨달았어요. 역사서는 무언가를 담아내는 그릇이 아니라 걸러내는 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요. 남길 수 있는 이야기는 극히 드물다는 사실도요.
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어요. 하지만 돌이켜 보니 할아버지와 수십 년을 함께 지냈음에도 할아버지에 대해서……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쓸 수 없었어요.
영인은 마침내 고개를 들어 노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노인이 자신이 차마 말하지 못한 의문에 답해주기를 바랐다.
그녀는 오랫동안 기다렸다.
인기척이야!
인기척이라니?
흠…… 뭔가 들렸던 것 같은데.
요 며칠 이상한 사건들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언제라도 누군가 소란을 일으킬지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어.
여긴 대리사야. 어떤 얼뜨기가 여길 쳐들어오겠어?
정신 차려, 보초 근무가 끝나면 얼른 퇴근하자고.
잠시 후에 정문으로 들어가서…… 사건을 신고하러 왔다고 말하는 거야. 그리고 대기실로 가는 길에 층별 지도를 찾자……
어제 그 대기실 창문이 북향, 대리사 정문은 남향이었지. 뒤로는 높은 울타리가 있었고.
린 칭옌의 사무실은 3층에 있어…… 창문으로 나가서 소방 배관을 타고 위로 올라가면 들키지 않을 거야.
녀석을 보면 *염국 욕설* 일단 한 방 날려주고……!
누구냐?!
린 칭옌?!
블레이즈?!
당신이 왜 이곳에?!
내가 왜 여기에 있냐고? 널 잡으러 왔지!
관복은 어쨌어?
그만뒀습니다.
객잔으로 돌아갔더니 당신이 없더군요. 혹시 어리석은 짓을 벌이는 건 아닌가 했는데, 역시 예상대로였네요.
……일단 자리를 옮겨서 다시 얘기하죠.
그러니까, 고전이 오랫동안 영 대인 저택에 있었단 말인가요?
근데 그걸 당신이 어떻게……
그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그게 무슨 의미인지 바로 말해줄 순 없겠어?
영 상서는 고전 사건에 예상보다 훨씬 깊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증언에 분명 숨겨진 뭔가가 있어요.
전 한때 그가 살인범일 수도 있다고 의심했지만, 막불복의 증언대로 고전이 당시 옛 사건에 대한 억울함을 풀려다가 사형수 감옥에 갇혔고, 그런 고전을 영술이 꺼내 준 거라면……
영술이 다시 고전을 해칠 동기는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우징이 아주 일찍부터 고전과 접촉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제가 몰랐다는 겁니다.
이 일련의 사건 뒤에 얽힌 것들은, 제 생각보다 훨씬 복잡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여전히 궁금해. 우리 아빠는 혼자 백조로 와서 도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걸까?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블레이즈는 고전의 두 인생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어…… 고전이 당시 사건에 확실하게 연루되었다면, 왜 굳이 십여 년이 지난 후에 백조로 돌아와 직접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뛰어든 걸까?)
(영술의 입장, 우징의 계획…… 이것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갈피를 못 잡겠어.)
(이걸 블레이즈에게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까……)
저기, 뭔가 할 말이라도 있어? 왜 우물쭈물하는 거야?
그나저나,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블레이즈, 어제 일은……
됐어, 너처럼 '직책을 짊어진 사람'들은 종종 비정상적인 일을 하는 법이니까, 꼬치꼬치 따지기 귀찮아.
위험하니까 나 혼자 돌아가라는 바보 같은 소리만 다시 안 하면……
……
설마 여전히 날 쫓아낼 생각이야??
블레이즈, 믿어주세요. 이 일은 제가 반드시 끝까지 밝혀내겠습니다…… 다만 당신은 백조에 있으면 안 돼요.
전에 말했던 대로 이틀 안에 백조를 떠나 용문의 사무소로 가세요. 그곳에서도 오래 머물 수는 없습니다. 준비가 끝나면 바로 출발해서 최대한 빨리 염국을 벗어나야……
절대로 안 돼.
제가 끝까지 조사한다는 게 미덥지 못하기라도 합니까?
넌 믿어, 근데 넌 이제 관직도, 신분도 없잖아? 혼자서 어떻게 조사하려고?
……방법은 있을 겁니다.
우징이 관직을 내려놓고 은밀히 조사할 수 있었다면, 저도……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좀 더 확실하게 하자.
……어떻게 할 생각이죠?
블레이즈는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다.
그것은 막불복이 블레이즈에게 준 기회였지만, 이제는 두 사람의 기회가 되었다.
어차피 우리가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할 거야.
그러니까 백진연에 가서 진룡에게 직접 물어보자.
폐하, 예부에서 작성한 백진연 참석 관리 명단입니다.
때마침 명절이라 빅토리아, 라이타니엔, 라테라노 등 여러 나라에서도 사절을 통해 축하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폐하께서 한번 살펴보시지요.
쿨럭…… 콜록콜록……
폐하…… 병부가 사세대와 협력하여 완벽한 작전 계획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이 또한 폐하께서…… 콜록콜록…… 확인해 보시지요.
작전에 필요한 인력, 자금, 전후 복구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호부와 상의한 적이 없는 내용인데, 이 계획이 어떻게 마련된 거지?
태부 대인과 호부가 다사다망하여 병부에서 신경을 조금 더 썼다네. 이번 전투에 필요한 인력, 자금, 식량 그리고 공부에서 담당할 복구 비용까지 모두 계산해 놓았네.
마침, 폐하께서도 계시니 태부 대인께서도 함께 보시게.
식량과 자원은 계산이 가능할지 몰라도, 전쟁으로 염국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릴지는 정확히 따질 수 없는 문제 아닌가?
그럼 태부의 뜻은, 정확하지 않으니 아예 계산조차 하지 말라는 건가?
……
……
가을이 왔군…… 올해 북방의 수확은 어떤가?
지난 재해 이후, 대황성의 생산량은 신속히 회복되었습니다. 올해의 수확량은 예년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년은?
폐하……
백 년이 채 되지 않는 삶을 살면서, 천 년의 고민을 품고 있군…… 하지만 시간은 부족하다.
이 일은 염국 백성들의 생계와 관련된 것이니, 폐하께서 심사숙고해 주십시오.
태부 대인, 의논이 필요한 일은 내각 육부에서 이미 수없이 논의 했다네. 이제는 결정을 내릴 때일세.
폐하께선 이미 뜻을 정하셨다네. 백진연에서 폐하가 직접 선포하시는 일만 남았지.
……
날이 어두워진 걸 보니 곧 비가 내리겠구나.
……둘 다 그만 물러가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장막 뒤에 있던 자가 고개를 들었다…….
텅 비어 있는 궁, 높이 있는 자리 옆에 세 자리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운데 자리만 낡아 있었다.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이런 이런…… 갑자기 비가 내리다니, 비에 홀딱 젖어버렸네……
가을비가 내리면 금방 추워진다니까…… 며칠만 지나면 신선한 채소도 먹기 힘들겠어. 올해 겨울옷도 아직 준비 못 했는데……
주방장, 올해 겨울나기 채소는 뭐가 됐든 미리 저장해 둬야 해. 그러니까 창고에 있던 잡다한 물건들을……
주방장……?
블레이즈 씨? 싱주 씨? 다들 어디 갔지……?
평소에 북적이던 주방은 텅 비어 있었고, 조리도구 역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덕분에 비좁았던 공간이 꽤 널찍해 보였다.
화구 위에 국 한 솥이 끓고 있을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