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4설리홍
블레이즈는 백진연에서 열리는 요리사 선발전 참가를 위해 정풍루에 왔고, 레이즈도 사건 조사차 정풍루에 도착한다. 연속되는 행운으로 모든 시험을 통과한 블레이즈는 막불복을 만났지만, 정풍루 경연 현장이 불길에 휩싸인다.
등장 오퍼레이터: 블레이즈, 싱주, 좌락, 블레이즈 디 이그나이팅 스파크
정풍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와…… 여기가 말로만 듣던 정풍루구나.
아직도…… 긴장돼요?
응? 긴장될 게 뭐 있어.
곧 경연 시작이잖아요. 그런데 왜 제가 불안한 걸까요……
그리고……
뭐가 걱정이야? 꼬마 주방장도 마지막에는 이만하면 됐다고 했어.
게다가 우린 진짜 요리사가 되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전설의 요리사에게 귤홍소 조리법을 직접 물어보러 온 것뿐이잖아.
하긴,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 그런 식으로 마음을 진정시킬 수밖에 없겠네요……
시간이 되었습니다. 관람하실 손님은 이곳에 남아주시고 경연에 참석할 요리사께서는 저를 따라오시죠.
어려움에 부딪혀도 흥분하지 말고 침착하게 생각해요. 해결책은 항상 있기 마련이니까요……
걱정 마, 이제 가볼게.
앉으시죠.
여러분들은 경연의 참가자이지만, 저희 가게에 오신 이상 손님이기도 하니, 우선 차를 한 잔씩 드리죠.
감독관이 테이블 위에 놓인 찻주전자를 들어 블레이즈에게 차를 따랐다. 향긋하고 달콤한 향이 가득 퍼졌다.
경연이라더니 분위기가 꽤 화기애애하네……
마침 목이 말랐던 참인데, 고마워!
블레이즈는 찻잔을 들고 고개를 젖혀 쭉 들이켰다.
뒤이어 감독관이 그녀 앞에 종이와 펜을 내려놓았다.
이 차에 들어간 재료들을 적으세요.
푸웁……
콜록콜록…… 뭐라고?!
블레이즈는 자신의 찻잔을 들여다봤지만, 남은 건 고작 몇 방울뿐이었다. 블레이즈는 다시 고개를 들어 눈앞의 감독관을 봤다. 그는 여전히 예의 바른 모습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혹시…… 한 잔 더 마셔볼 수 있나?
오늘도 안 될 모양이네. 오전부터 지금까지 수십 명이 왔지만, 첫 관문을 통과한 사람이 없어.
총주방장님이 내는 문제가 워낙 까다로워서 그래. 시험을 치러 들어가자마자 저런 상황에 놓이면 그 누구라도 어안이 벙벙할걸.
혀는 곧 주방장의 눈이야. 혀가 예민하지 않으면, 결국 요리 실력 향상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이 단계도 통과 못 한다면 총주방장이 굳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어. 차라리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나아.
어어 손님, 이곳은 주방입니다. 여기는 어떻게……
대리사 사건을 조사 중입니다. 협조 부탁합니다.
침착하자…… 침착해……
메커니스트가 그랬어, 사람의 혀는 4가지 맛밖에 느낄 수 없지만, 후각으로는 수백 가지 맛을 구분할 수 있다고……
다만, 그의 '머신 오일' 술에서 향 같은 건 맡아본 적 없지만……
블레이즈는 약간 식은 잔을 조심스럽게 들고 찻잔에 남은 향을 자세히 음미했다.
꽃향기가 나. 이건 재스민 향이야……
아냐, 재스민만 있진 않아. 뭔가 더 있어…… 그래, 국화야! 꼬마 주방장의 식당에서 나오는 국화차가 딱 이런 향이었어!
그리고, 차를 마실 때 분명 꽃향기 말고도 새콤달콤한 맛이 느껴졌는데……
재스민이나 국화에는 산미가 없어. 그렇다면 끝에 느껴졌던 맛은 도대체 뭐였을까……
근데 그 새콤달콤한 맛은 어쩐지 익숙한 것 같기도 했단 말이지?
매실주를 왜 마시자고 한 거야?
이 매실주도 어떻게 보면 백조 특산품이라 할 수 있어요.
백조 북쪽에는 매화 숲이 있어요. 매년 6월 초여름이면 신선한 매실이 무르익을 때라, 사람들은 매실을 따서 술을 담그죠. 소한주로 담그는 게 가장 맛이 좋아요.
흐음…… 이런 모쏘앗으로 담근 술은 특유의 향 때문에, 매실과 특히나 잘 어울리죠.
3달 정도 숙성하면, 추석에 마시기 딱 좋게 돼요.
매실주에도…… 역사적 배경이 있어?
방금…… 백조가 세워질 때 희생된 사람들이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잖아요?
이건 사실 특별히 역사랄 건 없어요. 힘들었던 옛날, 인부들이 자주 먹던 음식이라는 게 생각났을 뿐이죠.
백조가 생긴 후, 어느 해인가부터 도시 북쪽 산에 매화 숲이 생겼어요. 언제 생긴 건지, 누가 심었던 건지 아무도 몰라요.
그것도…… 그들을 '기리는 것'이라 볼 수 있을까?
최소한 그들을 잊은 적은 없죠……
흠, 내년에 매실이 익을 때쯤에 산으로 데려가서 보여 줄게요.
……이게 내 답이야.
재스민, 국화, 청매실, 천악춘, 빙설탕…… 소한주?
백조 북쪽에 매화 숲이 있다고 들었어.
6월에 수확한 매실로 술을 담그면 추석에 딱 알맞게 숙성돼. 여기에 사용된 매실이라면 아마 그전에 수확한 거겠지, 그래서인지 시고 떫은맛이 조금 남아 있네.
알코올은 차를 끓이면서 날아갔고, 매실의 새콤달콤함만 남았어. 거기에 꽃을 넣어 꽃 본연의 부드러운 맛과 은은한 향이 더해졌어……
막 마셨을 땐 강렬하지 않지만, 여운이 많이 남는 맛이야…… 한 잔 더 마시고 싶어!
앞선 재료들을 맞출 수는 있어도, 소한주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아낸 건 당신이 처음입니다.
내가…… 맞혔어?
본인이 내놓은 답에 자신이 없나요?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하하……
첫 번째 관문 통과를 축하합니다.
저를 따라 위층으로 가시죠.
뒤에서 큰 징 소리가 울렸고 블레이즈의 옆에 있던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첫 번째……? 관문이 몇 개나 남은 거지……
대인…… 여기 요청하신 정풍루 요리사들의 명단입니다.
실례지만 무엇을 조사하러 오셨습니까……?
……대리사의 주요 기밀 사건이라 지금은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아……
이곳 총주방장의 이름이 '막불복'입니까?
네, 백조 요리 업계에서 막불복 님의 명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막불복님께서 정풍루로 오기 전, 무슨 일을 했는지 아시나요?
그건 저도 잘 모르죠…… 총주방장님께서 정풍루로 오신 지는 아직 10년이 안 됐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솜씨는 잘한다는 경지를 넘어선 수준이라 빠르게 총주방장 자리에 오르셨어요.
총주방장님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만나야겠어요.
정말 죄송합니다만, 총주방장님께서는 지금 시험을 주관 중이라 만날 수 없습니다.
시험이요? 무슨 시험이죠?
정풍루 신입 요리사 시험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몇 년에 한 번 치러지죠.
관심이 있다면 여기서 생중계를 볼 수 있습니다!
저 참가자는……
블레이즈……?
여긴……
여긴 식당이잖아…… 왜 서재처럼 생겼지?
정풍루는 수백 년의 역사가 있는 곳이고,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방문한 곳입니다. 정풍루에서 특별히 서재를 마련해 그들의 묵보를 보관해 두었죠.
진귀한 음식과 서화 모두 귀중한 보물입니다. 정성과 기술이 깃들어 있죠.
블레이즈가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천장에는 수백 가닥의 실이 매달려 있었다. 각각의 실에는 나무패가 매달려 있었고, 마치 무대의 장막처럼 보였다.
나무패에 전부 요리 이름이 적혀 있네……
정풍루에서 요리사를 뽑는 이유가 백진연 준비 때문이라는 사실은 당신도 알고 있을 겁니다. 이는 요리사에게 실력뿐 아니라 자신이 만든 요리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 소양도 갖추고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여기에 적힌 요리 이름은 전부 역대 백진연에서 큰 의미를 지녔던 것들입니다. 나무패 하나를 뽑아 그 요리의 유래를 설명해 내면, 오늘의 두 번째 관문도 통과입니다.
(백진연의 요리? 내가 알 리 없잖아!)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블레이즈는 눈을 감고 나무패 하나를 힘껏 뽑았다. 그러자 주변 나무패들이 흔들리며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이건 뭐야……
“천하일백”?
블레이즈 씨에겐 요리 지식이 전혀 없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던 건 행운이었지.
빅토리아에서 자란 블레이즈 씨가 이런 이야기를 알 리가……
블레이즈 씨…… 이건 저도 도와줄 수 없겠어요……
시간제한이 있습니다. 이 요리의 유래를 알고 있습니까?
……
약 50년 전, 염국의 태사가 진룡에게 요리를 바쳤어. 그건 아주 간단한 무조림이었지.
하지만 특이한 점은, 이 요리에 사용된 무가 아주 먼 곳에서 오느라 무 본연의 맛과 식감이 변해 버렸다는 거야.
하지만 무를 오래도록 푹 삶았더니 무에 국물이 충분히 배게 되었고, 맛있게 변했어.
염국은 줄곧 교육을 중시해 왔다고 들었어. 하지만 염국의 영토는 워낙 넓고 도시마다 환경이 천차만별이라, 외진 곳에 사는 학생들일수록 교육받기가 어려웠지.
그 태사는 진룡에게 모든 학생이 출신에 상관없이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야.
진룡은 태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교육 개혁에 힘을 썼지. 학교를 설립했고, 지역적 문제 때문에 교육에 제한이 생기지 않도록 교육을 균등하게 했어.
이듬해 백조학궁에서 선발 명단을 발표하였고, 합격자 천여 명 중 절반 이상이 변두리 지역 출신이었지.
그 후 수십 년 동안 천사부에서 조예를 갈고 닦은 천사, 학궁에서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 모두 그 태사의 충언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고 해.
이게 바로 '천하일백'에 담긴 뜻이야……
말을 마친 블레이즈는 관중석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순간 작아졌던 것을 느꼈다.
그녀의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모두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블레이즈 씨가…… 어떻게 이 이야기를 알지?)
(출제자는 왜 이 요리를 문제지에 넣은 걸까……)
(그 사람은 대중들 앞에서 거론될 수 없는 인물인데……)
혹시 내가 틀린 건가……
재미있구나.
높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블레이즈는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계단의 나무판자를 밟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걸음걸이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블레이즈는 마침내 그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근엄한 표정을 한 노인이 긴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일을 기억하는 자가 있군.
누구……
방금 자네가 들려준 이야기는 자네의 나이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라네. 그 이야기를 어떻게 알고 있지?
오래전, 내 가족에게 들은 적이 있어.
그 말을 해준 내 가족은, 그 당시 수많은 가난한 학생 중 하나였다고 했어.
일의 근원은 잊지 말아야 하는 법, 자네의 가족도 정과 도리를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들이었군.
그런데 자네는……
자네는 어떤 마음을 품고 이곳에 온 거지?
난…… 당연히…… 경연에 열심히 임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기회를 주마.
마지막 관문은 정정당당하게 한 가지를 '요리'를 만드는 거다.
따라와라.
아직 식사 시간 전이라 식당에는 손님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종업원과 주인도 보이지 않았고 주방도 조용했다.
저기……
저기! 좀 도와주세요!
오늘 급히 나오느라 깜빡하고 돈을 안 가져왔네요. 딱 봐도 명문가 자제 같아 보이는데 선심을 베풀어 돈 몇 푼 빌려주시죠!
그건……
무조건 달라는 게 아니에요. 자, 이건 집안의 가보입니다. 담보로 드리죠. 제가 돈을 가져오면 보석을 돌려주세요.
빌려주는 건 상관없지만…… 이렇게 곤란한 상황이라면 직접 식당 주인장에게 설명하면 되지 않나요……?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돈을 어떻게 돌려주시려고요?
달라요, 달라. 이 보석은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그런 물건이 아닙니다. 공자님을 보니 그 기품이 남달라 맡겨두려는 겁니다.
알…… 알겠습니다……
좌락은 주머니에서 돈 몇 푼을 꺼내어 손님에게 줬고, 손님은 돈을 받자마자 표정이 환해졌다.
그럼, 돈은 언제 갚으실 건가요……? 어디서 만날까요?
인연이 닿으면 보고 아니면 말죠. 인연이 없다면 그 보석을 전당포에 맡기고 돈으로 바꾸시면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공자님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테니까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님은 쏜살같이 식당 밖으로 뛰쳐나가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전당포에서…… 돈으로 바꾸라고?
내가 준비한 요리야, 그럴듯하지?
……장수면?
막불복은 탁자 위에 손을 올렸지만, 젓가락은 들지 않았다. 그는 한참 동안 침묵한 후에야 숟가락을 들고 국물 한 숟갈을 떠먹었다.
블레이즈는 조심스럽게 막불복을 관찰했다. 하지만 블레이즈가 기대했던 만족스러운 표정은 한참 동안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
이 면의…… 육수는 누구에게 배웠나?
어떤 꼬마 요리사가 가르쳐 줬어. 이 면을 만들려고 적잖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지……
자네와 '위미각' 사장은 무슨 사이지?
그걸 어떻게……
역시……
……나를 농락했구나!
응……?
그 주방장에게는 재능이 있는 것 같아 그에게 능력을 펼칠 기회를 주려고 했었건만, 감사는커녕 이따위 사람을 보내 내게 치욕을 주려 하다니!
블레이즈는 분명히 잘 마무리했어…… 잘못 만들 리가 없는데.
근데 어째서…… 설마, 막불복이 꼬마 주방장을 알고 있나?
잠깐, 잠깐!
정말 미안해! 단번에 내 요리 실력이 바닥이란 건 알아봤겠지. 하지만 난 일부러 경연을 망치려고 온 게 아니야!
반드시 물어봐야 할 것이 있어서 그랬어!
……
난 어렸을 적 빅토리아에서 자랐어. 그때 먼 염국에 있던 내 가족이 귤홍소를 종종 보내주었지. 정말 달콤하고 맛있었어……
백조에 와서 한참을 찾아 헤맸지만, 아직도 똑같은 맛을 찾지 못했어……
당신은 백조 전역에서 가장 뛰어난 요리사잖아, 당신이라면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고작 디저트 때문? 그게 직접 경연에 참여해 날 찾아올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는 건가?
궁금한 건 많아! 하지만 지금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란 말이야. 이건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가족과 관련된 유일한 실마리야!
자네……
……귤홍소를 만들 때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설탕을 넣는 것이라네. 단맛으로 부족한 솜씨와 서툰 식재료 사용을 감추려는 거지.
누가 그렇게 뛰어난 능력으로 귤홍소를 달콤하고 맛있게 만들었는지, 내게는 알 방법이 없군.
다 물어봤으면, 이제 그만 가게.
잠깐……
두 사람 바로 위에서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블레이즈와 막불복은 위를 올려다봤고, 액체 같은 것이 얼굴에 떨어졌다.
어째서 물이 새는……
아니야…… 이건 기름이야!
말이 끝나자마자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순식간에 타오르며 거센 불길에 휩싸였다.
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