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T-3갈림길, 다시 출발
위기를 넘긴 사람들은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각자 새로운 여정을 떠난다.
아, 정말 아쉽네요. 제 정원이 반만 망가졌거든요. 이참에 정원의 분위기를 바꿔볼까 했는데, 남은 조각상과 식물들 때문에 오히려 처리하기 불편해졌어요.
하지만 복구 작업은 거의 끝났어요. 휴일에 잠깐 앉았다 가시는 건 어떠신가요?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마 시간을 내긴 어려울 것 같아요. 제 보석 컬렉션이 모두 뒤섞여버렸거든요. 수백 년 된 수집실을 복원하려면 먼저 보석의 효과를 하나씩 감정해야 해서요.
그래서, 박물관 손상 건은……
절대 비밀로 할게! 만약 비밀로 하지 못했다면 아버지에게 전후 상황을 다 알려줘서 설득하고, 감동하게 만들어서…… 어쨌든 모든 투자자를 설득하는 걸 아버지가 도와주실 거야.
그리고 박물관의 특별한 새 소장품들도요.
안심해, 그것도 내가 편지에 잘 설명해 둘 테니까.
근데, 아버지는 보석 구조체가 복원한 고대 건축물의 일부를 전시하는 걸 허락하지 않을 텐데?
네, 알고 있어요. 전시보다 더 중요한 박물관의 임무는 역사를 보존하는 것이죠……역사의 이면이 보이지 않게 하는 것도 포함해서요.
고마워요, 페페. 오늘 밤엔 편히 잘 수 있겠네요.
아니야, 내가 더 고마울 따름이지. 너와 티티가 보석을 찾는 걸 도와줬고, 이번 역사적 대발견도 해낸 데다가……
……
어…… 나란투야?
……응? 괜찮아 괜찮아, 그냥 너희가 박물관 얘기만 한참 하길래, 잠깐 지루했을 뿐이야.
죄송해요, 제가 나란투야 씨를 부른 건 원래 페페와 함께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나란투야 씨, 말씀하셨던 “아야지와 아야니를 우대한다”라는 내용을 박물관 규정에 넣어달라는 요청은…… 지금 조용히 이행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건 어느 시대의 토용이길래?
아뇨, 박물관에 정식으로 입사한 두 사람이에요.
날씨가 더워서 길이 녹아내린다 해도 정시에 출근할 바보 녀석들이지.
관장 대행직을 내려놓고 박물관을 떠나기 전에 모두에게 그 둘을 특별히 돌봐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에요.
……아직도 믿기 어려워, 아나트. 정말 직위를 포기할 생각이야?
하하, 아버지는 제 결정을 좋아하지 않으시겠죠.
하지만 저는 기억이 생길 때부터 항상 창문을 통해 이 도시를 바라봤어요. 그리고 지금은 이 도시의 모든 것을 다 읽었다고 생각해요.
이 도시의 역사와 전신, 지하 깊이 묻혀 있는 것들, 그리고 당신 같은 모험가가 무작정 뛰어든 게 아니었다면 발굴되지도 않았을 비밀을요.
……정말 신기해요. 이틀 만에 도시가 정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아직 언제 수리가 끝날지 모를 집도 많이 있고, 갈라진 길은 다시 포장해야 하지만요…… 그래도 수로는 완전히 깨끗해졌어요.
당연하지. 강물은 계속 흐르니까.
맞아, 강물은 영원히 앞으로 흐르지. 아무리 많은 도시가 모래로 변한다 한들, 그리고 그 위에 아무리 많은 새로운 도시가 세워진다 한들.
……흐르는 물에 모든 걸 맡기는 건 선택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몰라. 영원 앞에 있는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영원함에 의미는 없죠.
휴, 티티의 말대로 박물관에서 가끔 파격적인 전시회를 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흠흠,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고 보니 여기 오기 전에는 짜릿한 모험을 하게 되는 걸 꿈꿨어.
그렇다고 이런 모험을 꿈꿨던 건 아니야. 내가 꿈꿨던 건 누군가가 내 보석을 노리고 나랑 치열하게 싸우는 거였어.
하아, 근데 결국 날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어. 생각해 보니까 조금 아쉽네.
……하하.
그러고 보니 페페, 물어볼 게 하나 있어요.
아시다시피 저는 항상 에릭슨 씨를 존경했어요.
근데 제가 주바이르에 관해 연구한 논문이 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기도 했으니…… 에릭슨 씨처럼 대지의 다른 곳들을 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분처럼 제가 보고 들었던 것을 편지로 써서…… 그분께 보내고 싶어요!
아무튼, 전 반드시 그 사람과 펜팔 친구가 되겠어요!
오, 그건 박물관을 떠날 충분한 이유가 되겠네.
근데 넌 도시 중심에 있는 공원에서도 일사병에 걸리잖아, 야외 조사를 가려면 최소한 강한 사람에게 체력 훈련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당신의 경험을 배우고 싶은 거예요, 페페.
……근데 에어컨이 있는 버스를 타고 대지를 돌아다녀도 될까요?
미안, 나란투야. 우리도 더 멀리까지 배웅해 주고 싶긴 한데……
개근상을 타려면 박물관에서 열심히 일해야 하거든.
그리고 이 카메라 정말 재밌어!
조용히 해. 이건 나란투야한테 줄 비우프테이프야. 항상 갖고 다녀주겠지.
저기, 나란투야, 만약 네가 정말 정말 보고 싶어지면 우린 강에 금화를 던질 거야.
도시에 있는 이 강은 대지의 끝까지 흐른다고 들었어. 그러니 네가 어디에 있든 우리가 남긴 금화를 주울 수 있을 거야.
맞아, 아야니 말이 맞아.
지리학적 사실을 짚고 넘어가자면, 사실 이 강은 미노스까지도 흐르지 않아.
이 세상엔 굳이 할 필요 없는 말도 있어.
게다가 난 대지 끝까지 갈 생각도 없고.
……왜 갑자기 두 사람을 두고 혼자 '천도'를 가기로 한 거야?
두고 가는 게 아니야. 가장 바보 같았던 저 두 사람도 이젠 갈 곳을 찾게 되었을 뿐인 거지.
이전엔 천도의 규칙을 하나도 행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젠 최소한 혼자 돌아다니게 됐잖아. 겸사겸사 이 여정에 천도라는 이름을 붙여주자고.
그게 더 편하지 않아?
……
몇 번이고 속으로 당신이 과연 나이츠모라일까 생각했어. 당신도 그 신분을 꺼려하는 줄 알았지.
음? 그건 말해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하지 않았을 뿐이야. 나란투야라는 내 이름이 나이츠모라라는 정체성보다 유명하지 않으면 창피하잖아.
……그렇다면 당신의 천도 종착점은 어디야?
원칙적으로 보자면, 천도의 마지막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하지만 먼 옛날에 잘못을 저질렀던 적이 있어서 돌아갈 수 없어……
집?
맞아,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시련의 장소를 종점이라고 부르지만, 천도는 시련의 장소에 도달한 뒤에 살아서 집에 돌아와야 끝나.
하아, 그게 제일 어렵다니까. 많은 사람이 점점 더 멀리 가버리지.
나도 나 자신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차라리…… 다음에 부하가 될 사람을 만나게 되면 천도가 끝난 셈 치지 뭐.
……순조로운 여정이 되었으면 좋겠네.
너는? 이 며칠 동안 박물관 구경은 충분히 했어?
메제티케티 씨의 관대함 덕에 많은 비공개 소장품을 볼 수 있었지만, 보면 볼수록 내가 가진 지식의 공백과 미노스 역사의 빈 곳을 더 느끼게 돼.
미노스 전시실을 개축하는 서류 작성을 도와준 후에 이곳에서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
박물관이 소유한 사진을 가지고 미노스로 돌아가 전문가들에게 자료를 제출할 거야. 미노스에 철학 변론이라는 경기 종목이 있었다는 걸 증명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아마 금잔을 들고 집에 갈 것 같아.
오, 얘기가 나온 김에 너한테 줄 선물이 하나 있어.
버스가 곧 출발할 거야. 이거 들고 빨리 도망…… 아니, 미노스로 돌아가.
잘 가, 친구야.
석양을 등지고 나란투야는 멋지게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예상대로 잠시 후 아스파시아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박물관에 있던 금……
쉿.
그냥 고맙다 한마디 하고 빨리 그걸 갖고 떠나. 그거면 돼.
더 묻지 마.
……고마워.
……헛, 정말 안 물어보네?
이 세상엔 굳이 할 필요 없는 말도 있잖아.
정말 고마워, 나란투야. 이번 여행에서 많은 걸 얻었어.
그래.
차량 행렬의 출발 벨이 울렸고, 나란투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내가 준 금은 축복인 셈이야. 그러니까 너도 금메달 하나는 따야 할 거야.
……
그러고 보니……
한 달 동안 바쁘게 지내면서 얻은 보물은 그 금잔 딱 하나인가…… 뭐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됐다, 기억도 안 나네.
……괜찮아, 이건 다 내가 선택한 거니까.
금으로 만든 잔이야 뭐, 앞으로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겠지!
저기 라즈바르, 이제 떠나는 마당에 진짜 한 번만 보여주면 안 될까?
약속할게. 네 태엽 장난감을 한입에 삼키고 다시 온전히 뱉어낼 거야. 이빨 자국도 안 남길 거라고.
……네가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면, 과연 내가 널 막을 방법이 있을까?
삼켜봐.
나도 알고 싶어. 정말 변화가 일어날지, 정말 깃털이 자라날지.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그러는 거야, 라즈바르. 괜히 발걸음을 늦출 필요 없어.
보석 거래소가 세운 규칙은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어. 네가 없으면 그랜드 바자르는 새 관리인을 뽑거나 다른 질서를 만들 거야. 넌 마음 놓고 떠나도 돼.
……너희는 거의 영원한 존재잖아. 정말 아쉬움을 느낄 수 있어?
그러게, 여긴 찬란한 도시의 보석 거래소잖아. 난 항상 최고의 거처만 골랐다고!
진정한 애완동물을 키워봐. 나나 미오 같은 비스트 아리스토크랫도 아니고, 태엽 파울비스트도 아닌 걸로.
알겠어.
내가 관찰한 바로는 성공한 사업가들은 다 특별한 애완동물을 키워. 그러니까 최소한 알비노 파울비스트나 3m짜리 알록달록한 린수를 기준으로 삼아, 알겠지?
……
이리 와, 머리 쓰다듬어줄게.
미오는 별로 내키지 않는 듯 인간 앞의 탁자 위로 뛰어올라 고개를 숙이고 꼬리를 감았다.
(가르릉거리는 소리)
……
안녕, 꼬마 인간.
잘 가.
한참 후, 미오는 눈을 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방에서, 미오의 등 뒤에 비친 그림자는 클라우드비스트의 크기를 훨씬 넘을 정도로 커졌다.
……그럼, 넌 여기 남을 거야?
주바이르는 이미 영원한 안식을 얻었어. 샤의 후손은 보물창고의 진실을 알아냈고. 그 긴 세월 동안 메아리치던 헛소문에 대한 진실을……
그리고, 넌 그 나이츠모라를 데리고 가서 금은보화를 보여줬지?
그 나이츠모라는 하수구 깊은 곳으로 뛰어드는 것으로 용기를 증명했어. 그래서 난 주바이르와의 약속을 지켰지.
약속…… 주바이르가 떠났으니 우리의 약속도 다 끝난 건가.
지금의 약속도, 천 년 전의 약속도 모두 끝났어. 이 도시는 이제 우리가 처음에 했던 약속과 아무 관계가 없어.
하지만 난 여기 남을 거야. 이 도시가 아직 살아있으니까.
내가 죽은 자들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건 그들의 부활을 위해서야.
넌 황금의 도시를 그리워할 줄 알았는데.
그 침묵하는 황금의 도시를? 그곳은 더 이상 우리가 필요 없어.
흥, 맞아. 도시 전체가 왕중왕에게 혀를 잘린 것 같은 곳이지. 마음에 안 들어.
그래서 난 네 생각과 달라. 난 꼭 가서 볼 거야.
자, 방문할 투자자 명단 줘봐.
이쪽 소장품들 한번 확인해 봐. 나중에 복원 작업 일정을 잡을 테니까.
……잠깐, 이건 호박이 아니야. 자연 전시관으로 보내지 마. 안에 보석 구조체 파편이 있는 거 안 보여?
이건 내 개인 소장품으로 취급해. 일단 옆에 둬……
이 클라우드비스트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라즈바르가 키우던 녀석인가?
이리 와, 또 한 번 만져보자. 이번엔 입에서 뭘 뱉어낼지 봐야지……
음, 음, 그래 이거야. 이게 내가 원하던 거야.
……
뭐야?!
맞아, 내가 말하고 있어.
넌 이미 내 사육사로 간택됐어, 알겠지?
앞으로 어디 갈지는 내가 정해.
6개월 후
……
페페, 찾는 사람이 있어요.
잠깐만…… 마지막 한 문장만 더 쓰면 돼.
저희가 쓴 주바이르에 관한 논문이 학계와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요즘 당신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네요.
부담스럽다면 제가 대신 거절할게요.
아니, 괜찮아. 다 만나볼 수 있어.
이 논문이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으면 좋겠어. 주바이르에 대한 글이 사르곤 전체의 주목을 받았으면 해.
알겠어요. 그럼 손님을 데려 올게요.
발걸음이 정말 가벼운 사람이네. 오는 동안 장신구 소리만 들렸어. 발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오…… 찬란한 사관 가문…… 선택받지 못한 후계자……
당신은……?
실례했습니다. 제 소개를 깜빡했네요. 저는 왕중왕의 사자입니다……
폐하를 대신해 감사와 찬사를 전하러 왔습니다. 사르곤 역사에 멋진 한 획을 그은 것에 대한 감사와, 폐하의 뜻을 전하려 합니다.
……
하트셉수트, 폐하께서는 당신이 직접 황금의 도시를 방문해 메나트 하마이트에서 있었던 경험을 들려주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출발 준비를 부탁드립니다. 폐하께서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