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4가보, 황금 슬리퍼
대회 결과가 발표되는 자리, 1등 상을 받은 사람이 기권하는 바람에 페페와 아스파시아 모두 원하는 상품을 받지 못하게 된다. 아스파시아에게 보석을 받은 나란투야는 이를 이용해 페페를 유인하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보석은 메제티케티의 손에 들어가고 만다.
♪강가에 파피루스 흔들리고, 강물에 라주라이트 비치네♪
♪황금의 모래언덕을 지나는 긴 강은, 보석의 공양으로 영원히 마르지 않으리♪
♪그분이 강가를 거니는 모습 보게 하소서, 그분의 발자취 따라 영원으로 가게 하소서♪
열렬한 박수와 격렬한 합창 속에서, 찬란한 보석의 길을 따라 수상자들이 어색하게 걸어갔다.
역사의 무게를 실은 파피루스 배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황금 슬리퍼, 미노스에서 온 10개의 은메달이 모두 수면 위로 떠오른 기포가 되었다.
아쉽냐고요? 전혀요, 어떻게 아쉬울 수 있겠어요? 하트셉수트 님을 뵙게 된 게 이번 대회 참가의 가장 큰 수확이었는걸요!
그것과 비교하자면 대회 순위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아, 물론 우승을 놓친 사람과 우승자가 같이 찍은 사진은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존경하는 하트셉수트 님, 저와 사진을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1등 상으로 받으신 조각상도 보여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하하, 물론이지…… 고마워……
터무니없는 경쟁에 참가해 버렸네.
그래, 터무니없는 경쟁이었지.
내 본뜻은 역사를 탐구하고, 영웅의 위대한 업적을 존경하며, 승리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운명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어.
그래, 운명에…… 뭐였더라. 어쨌든, 네 은메달 10개가 새로운 은메달 1개로 변했네.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 마. 여긴 사르곤이니까, 이건 실패라고 말할 수 없어.
“지상의 모래, 지하의 황금.” 아미르나 파디샤의 말 한마디면 모래가 금만큼 귀해질 수 있어.
방금 손실은 신경 쓰지 마. 언젠가 기회가 와서 인정받게 되면 금잔을 공짜로 줄지도 모르잖아.
공짜로?
금잔을 받은 사람한테 가서 얘기해 보고, 거짓으로 신뢰를 산다든가……
……맞아!
응?
내가 내놓은 보물이 인정을 받았어. 이건 미노스 문화가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해.
심사위원들이 한 평가의 수준이 높진 않았어도, 이 은메달들이 받은 점수와 순위 자체만으로도 전문 사르곤 역사학자가 미노스를 기본적으로 존중하고 있다는 게 증명돼.
금잔을 받은 수집가와 잘 대화를 나눠봐야겠어. 그 사람도 물건 뒤에 숨겨진 무거운 역사를 이해한다면, 어쩌면 감당할 만한 가격으로 내게 판매할지도 몰라.
……정말로 인정받은 거야?
좋아, 이걸로 네게 신세를 갚았다고 치면 그것도 좋은 일이네.
정말 고마워, 나란투야.
흰 벽 아래서 토론하던 현자들처럼, 당신이 날 일깨워줬어. 난 그 은메달들이 상징하는 명예를 잃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은 걸 얻은 게 됐어.
그렇게 생각해 보면, 설령 운명의 장난이라고 해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던 거야.
그리고 만약 그 은메달들을 물에 던지는 것으로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그림자를 볼 수 있게 되는 거라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어.
만약 이 보석을 물에 던져서 사람들이 말하는 신의 그림자를 불러낼 수 있다면……
……잠깐!
기분이 좋은 건 알겠는데 진정해. 던지지 마.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그보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나 할까.
이 보석에 별로 관심이 없다면…… 나한테 잠깐 빌려줄 수 있어?
함정 설치는 끝났어.
걱정 마, 난 일을 아주 꼼꼼하게 하는 사람이니까. 전문가일수록 더더욱 의심할 수 없을 거야.
좋아.
초대장도 몰래 그 여자애 가방에 넣어뒀어. 유물 운반용 장갑을 끼고 한 거니까, 지문 같은 건 절대 안 남았을 거야.
잘했어.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게. 이번 작전에 대해 더 궁금한 거 있어?
있어. 우리가 가진 미끼로 어떻게 파디샤의 딸을 낚는다는 거야?
이 보석도 별로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나랑 아야니가 그날 하수구에서 건진 돌처럼 불순물도 많고……
부자들 취미니까 깊이 파고들 필요 없어.
오늘 밤 너희는 문 앞을 지켜. 눈도 깜빡이지 말고. 그 여자가 사람을 보내서 미리 보석을 가져가지 못하게 해.
아, 알았어…… 이번엔 실망시키지 않을게.
맞아, 절대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을 거야!
……
야옹?
미오는 방 안에 설치된 함정들을 날렵하게 피해 테이블 앞까지 왔다.
반짝이는 눈동자에 테이블 위의 찬란한 보석이 비쳤다.
익명으로 쓴 편지다. 흐릿한 보석 사진이 있고, 편지에는 시간과 장소가 적혀 있군. 혼자 오라는 내용이다.
함정이 분명하다. 가면 안 된다, 페페.
난 갈 거야. 안 그러면 어떻게 보석을 손에 넣겠어?
하지만……
하지만 뭐?
오늘 밤 나를 인공 호수에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내가 그랬나? 네가 착각한 거 아냐? 내일 밤 아니야?
새로운 머리를 갖게 된 후부터 난 절대 잘못 기억하는 일이 없다.
참나, 보석들의 위치는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아나트한테 부탁해 봐. 요즘 네 일로 공문서를 많이 썼다고 하던데.
사실 이 고대 장군에 대한 관찰 노트랑 논문 초고도 조금 있어요.
아나트가 데려가 줄지도 모르잖아.
……
……며칠 더 야근해야 할 것 같아요.
이 편지는 누가 보낸 거죠, 정말 짚이는 게 없나요?
2등을 했던 그 관광객은 좋은 사람 같던데.
그런데 내가 풍작 집회에서 너무 티를 냈나 봐. 내가 그 보석을 원한다는 걸 다들 알아챈 것 같아.
……하지만 보석을 손에 넣어야만 주바이르한테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내가 찾는 보물도 그렇고, 네 논문에 필요한 자료도 그렇고 말이야.
그래도 위험을 무릅쓰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 사르곤 전역을 다 돌아다닌 지금의 나도 안 돼?
하지만 학교 다닐 때만 해도 2번이나 돌아오지 못할 뻔했던 기억이 나는 걸요. 저와 티티가 당신을 찾으러 갔으니 망정이었죠.
맞아, 너희 중 누가 역사 문헌을 더 신빙성 있게 해석했는지에 대한 내 판단을 듣고 싶어서 버든비스트 탐험대를 고용해 사막에서 날 찾았지.
티티가 여기 있었다면 내 편이었을 텐데.
다행히 여기 없네요.
……그러게? 그러고 보니 티티는 어디 갔지?
'성가신 일'이라니…… 내가 자기 일을 망친다는 거야 뭐야.
하아, 내가 서류도 대신 검토해 줬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사무실에서 쓰러지거나 하진 않았겠지……
무, 무슨 소리지?
내 귀여운 보석 구조체라면 얌전히 나와. 날 놀라게 만들지 말고……
…… 셋 셀 동안 안 나오면 오리지늄 아츠를 쓸 거야.
하나, 둘…… 셋!
야옹!!!!
아, 이런……! 또 이 클라우드비스트잖아?!
미안해, 용서해 줘…… 자, 쓰담 쓰담 해 줄 테니 화내지 마……
네가 성질이 나쁘고 잘 할퀴는 건 알지만, 내 말 좀 들어봐. 오늘 내가 이렇게 예민한 데는 이유가 있어!
야옹……
기억나? 박물관에 같이 있었을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물건들 때문에 놀라기도 했고……
……거기에 오늘은 아나트랑 싸우기까지 했어.
우리 귀여운 클라우드비스트, 부탁할 테니까 그 녀석처럼 나한테 화내진 말아 줘.
(가르릉거리는 소리)
하아……
알아, 우린 항상 다퉈. 물론 학문적인 문제로 다투는 거지.
아나트가 자신의 연구 성과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건 나도 알아.
이번 특별전 개최도 쉽게 얻어낸 기회가 아니란 것도 알아. 그래서 아나트가 더 신중한 상태인 것도, 지나치게 긴장했다는 것도 알아……
어쩌면 너무 긴장한 나머지 본래의 취지마저 지키지 못하게 될지도 몰라.
난 아나트가 특별전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
메제티케티의 쓰다듬는 속도가 무의식중에 빨라졌다.
미오는 그 때문에 더 크게 가르릉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자기 생각에 빠져 점점 더 빠르게 클라우드비스트를 쓰다듬었다.
예전의 아나트는…… 목소리도 작았고, 긴장하면 몸짓이 커지곤 했지.
아나트가 앞에서 말할 때마다 사람들은 뒤에서 킥킥거렸어.
하지만 웃음소리에 목소리가 묻혀도 아나트는 그 자리에서 끝까지 말을 이어갔지.
……하아,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그렇게 쉽게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귀를 문지르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메제티케티는 양손으로 클라우드비스트의 얼굴을 감싸고 세게 문질렀다. 자신의 감정을 꺼내놓느라 클라우드비스트가 내는 소리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갑자기 그녀의 손바닥에 열기가 느껴졌다.
으악! 헤어볼을 토하려는 건가? 내 소매에는 안 돼!
……어?
보석?
아니면 내가 옷에 도청기를 숨긴 채로 혼자 약속 장소로 가고, 주변에 사설 경비원들을 매복시키는 건?
시간이 촉박해요, 페페. 지금은 범람 축제 직전이라 경비 회사에서 인력을 빼기도 힘들어요. 게다가 한밤중에 협상할 수도 없고요.
그럼…… 비행 유닛을 빌려서 언제든 나를 구출할 준비를 해두는 건?
그런 날아다니는 것들은 의심을 사게 될 거다.
내가 문 앞에 가서 망치로 문을 부숴버리고 상대방을 겁주는 건?
그건 가능할지도……
……하지만 그건 역사적 건축물을 훼손하는 일 아닌가?
음, 확실히 그럴 수 있겠네. 네가 살던 시대에 비하면 역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하지만 난 매우 좋다. 내가 살던 시대 이후의 사람들이 살던 흔적이라니……
다들 안녕!
어? 페페도 있었네? 마침 잘 됐어.
내가 방금 오다가 무슨 일을 겪었게?
티티, 마침 잘 왔어! 방금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네 동의가 필요해……
맞아요, 빨리 페페를 말려주세요.
이건 중요한 역사 유적을 발굴할 기회야. 너희라면 자신의 안전 때문에 이걸 포기할 수 있겠어?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잖아요. 발굴 작업에 가장 필요한 건 인내심이에요! 당신은 지금 동생을 따라잡으려고 하는 것뿐이에요. 이건 정말……
와, 아나트.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무섭게 변해버린 거야……?
어, 아무도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궁금하지 않아?
……옷에 털이 많이 묻어있다.
고마워, 주바이르. 맞아, 작은 클라우드비스트를 만났어.
내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은 클라우드비스트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었지.
이제 나도 믿어.
……그 애가 행운의 보석을 토해냈거든.
……
……뭐라고?!
제발, 보여줘!
잠깐.
아나트한테 들었어, 박물관의 소장품인 그 보석을 너한테 빌려줬다며? 그래서 네가 새 전시관에 투자하기로 했고.
알겠어 알겠어. 네 이름으로 추가 투자할게.
아니, 페페.
난 네가…… 아니, 너희가 다른 걸 약속해 줬으면 해.
페페, 아나트, 그리고…… 주바이르도.
이 보석이 우리 모두의 소원을 이뤄줄 수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