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P-ST-1파도의 파수꾼
에기르의 도시 '밀리아리움'은 육지와 스스로 접촉하여 이베리아 사절단을 심해로 초청한다. 시본 문제 해결을 위해, 에기르는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항로를 개척하려 한다. 이와 함께, 울피아누스도 인근 해역에 모습을 드러낸다.
헌터가 해안가에 올랐네♪
고향은 뒤에 두고 앞길만 바라보네♪
부모와 자식 모두와 헤어졌고♪
연인은 이미 바다에 잠겼네♪
헌터가 해안가에 올랐네♪
고향을 뒤로 두고 남은 건 슬픔뿐♪
그의 길은 끝이 없고♪
그의 길은 안개로 가득하네♪
헌터가 해안가로 돌아왔네♪
여정은 끝났고 고향이 눈앞에 있네♪
옛 파도 소리가 속삭이네♪
하지만 그는 왜 망설일까♪
왜 또 불안해하나♪
- 오랜만이야, 스카디.
- 안녕, 스카디.
오랜만이야, 박사.
약속대로라면, 낯 두껍고 말 많은 리베리가 박사를 맞이했을 텐데. 별로 놀라지 않은 것 같네
- 너와 엘리시움 모두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니까.
- 여긴 네 고향과 더 가깝기도 하고.
음, 하긴.
켈시가 예상한 것보다 한 시간 정도 늦었네.
성도가 발급한 공문이 있어도 재판소의 심사 절차는 여전히 빠짐없이 진행되는 모양이야.
겨우 세 달도 안 돼서 쓸만한 노동자를 제외하고는, 이곳 주민들 모두 대륙 도시로 이주했어. 그 자리를 몇 개 부대의 징벌군이 대신했지.
- 뭔가를 바쁘게 준비하는 것 같네.
- 매우 긴장한 것처럼 보였어.
일주일 전 이베리아가 에기르에서 온 연락을 받은 뒤로, 이 잊혀버린 작은 마을의 평온은 깨졌어.
도처에 있는 해양 잔해가 그 젊은 전사들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어. 에기르의 목소리는 불안을 더 키울 뿐이지.
- 에기르의 움직임은 확실히 주목하고 경계할 만해.
- 먼바다의 나라가 갑자기 목소리를 내니, 아무도 무시할 수 없겠지.
조각상 좌측에 있는 길을 따라 빠르게 걸으면, 10분 안에 바다를 볼 수 있어.
우린 곧장 이베리아의 눈으로 갈 거야.
저, 박사. 파도 소리 들려?
스카디가 고개를 살짝 돌려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스카디의 긴 머리카락은 바람에 흩날렸고, 눈 속의 어둠과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파도의 층이 매우 복잡해졌어. 별하늘이 흐르는 소리, 끝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노래,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을 들었어……
이샤-믈라.
여기에 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은 영원하리.
우리가 갈망하는 삶은 영원하리.
……
- 스카디, 괜찮아?
- 고향과 다시 연락이 닿아서 오히려 마음이 불안해진 거야?
고향이 가까워져 불안한 걸까…… 몰라, 이런 감정은 정리하기 어려워.
그냥 잠을 설쳐서 그런 걸 수도 있어. 지난번에 바다에 갔을 때, 상어가 꿈을 나한테 옮긴 것 같아.
그런데, 켈시는 왜 이렇게 급하게 널 부른 걸까?
당신은 바다와 접촉한 적이 없었던 걸로 아는데, 박사.
- 꼭 그렇지만은 않아. 다만 기억이 안 나.
- 그래도 이상하게 낯설지는 않네.
참 애매한 대답이네.
그렇지. 박사의 상황을 잊고 있었어. 정상적인 대답이었네.
됐어. 켈시가 박사를 불렀다면 이유가 있겠지.
가자, 곧 어두워질 거야.
물기를 좀 털어낼 테니, 가까이 오지 마세요.
어머, 켈시 선생님. 어비설 헌터스의 행적을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죠. 우리가 여기서 상륙한다고 소드피쉬가 미리 알려줬나요?
엘리시움이 이 해역에 정보 수집 장치를 설치했어. 지금은 조정이 완료돼서 이베리아의 눈 중앙 통제 시스템과 직접 연결되어 있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수중 환경용 위치 추적 시스템을 설치하다니. 그 리베리는 정말 능력이 뛰어난 것 같군요.
로도스 아일랜드와 재판소가 협력을 강화했다고 이해해야 할까요?
일주일 전, 수중 도시가 특수 주파수를 통해 이베리아에 알려왔어. 에기르가 에기르 본토와 대륙을 연결하는 '항로'를 개설할 거란 내용이었지.
하지만 이 거대한 계획을 앞두고, 이베리아는 등대의 위치 추적 시스템을 제외하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루트가 거의 없었지.
보아하니, 총전쟁설계사인 너도 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겠지.
상어, 우리가 발견한 것을 켈시에게 알려주세요.
대장님과 스툴티페라 나비스가 침몰한 곳으로 잠수한 건 이번이 세 번째. 지난번 잠수로부터 열흘 만이죠.
첫 번째 잠수 때는, 폭발 후 남은 선체가 해저에 박혀 있는 걸 볼 수 있었어요. 해수면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비친 선실 내부의 황금빛은 마치 번지는 물감 같았어요.
그런데 이번엔 거대한 금속 선체 구조물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대신 생기 넘치는 산호 군락이 자리 잡고 있었죠.
……꿈을 꾸는 건 익숙했지만, 역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문명과 역사를 애도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던 시간은 지극히 짧았습니다.
이제 '스툴티페라 나비스'는 완전히 바다의 일부가 됐습니다.
정확히는, 시본 소굴의 일부가 됐죠.
시본이 환경을 동화시키는 속도가 빨라졌군.
상당히 빨라졌죠.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있어요. 우린 전쟁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심지어 얼마 전의 것이죠.
완전한 공백, 해설조차 보이지 않는 해역. 뒤틀리고 부서져 미세한 특이점에 의해 찢긴 것이 분명한 해저……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아마 에기르 정규군 함대뿐이겠지.
켈시, 대륙에서 주로 활동하는 사람이면서도, 에기르에 대해 관심과 이해가 매우 뛰어나시네요.
광활한 바다 건너에 있지만, 에기르도 여전히 테라의 일부니까.
저와 글래디아는 그 도시에 가기로 이미 결정했어요.
명백히 모험적인 결정이군.
약간 위험하긴 하죠.
상당히 위험하죠.
그래서 어비설 헌터스는 오랫동안 관찰해 왔습니다.
그 작전 이전에, 전 어비설 헌터스 총전쟁설계사로서 과학원과 기술원의 군사 회의에 참석했었습니다.
당시 두 원에서 만든 전쟁 계획에 대륙에 가까운 군사 요새나 '항로'와 관련된 계획은 없었어요.
틀림없이 에기르에 중대한 이변이 있었겠죠.
이샤믈라를 처치한 후, 우린 본토와의 연락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알려진 정보만으로 진실의 퍼즐을 맞추기는 어려워요.
그걸로는 너희가 에기르로 돌아갈 충분한 이유가 성립되지 않아. 너희들을 먼저 만류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희의 옛 동료니까.
그건…… 울피아누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울피아누스도 분명 알 겁니다. 대륙에는 답이 없다는 걸요. 우린 반드시 바다로 돌아가야 합니다.
만약 울피아누스의 전략이 의도적으로 에기르와 거리를 두는 거라면, 우린 더욱 공식적인 형태로 에기르로 돌아가야 해요.
…… 제가 꿈에서 깨어난 이후로, 파도는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어요. 길 잃은 자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요.
어비설 헌터스는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해요.
이해할 수 있어.
글래디아, 나도 너희와 함께 가지.
당신에게 이건 정말 흔치 않은 기회인 건 확실해요.
이번 동행은 그저 나 자신을 대표하는 것도, 로도스 아일랜드만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야.
이베리아인가요? 이미 감당하기 힘든 당신의 어깨에 자신들의 짐을 하나 더 지게 했나 보군요?
이것 역시 내 선택이야.
로도스 아일랜드와 이베리아 재판소의 협력은 이제 막 첫 발을 내디뎠어. 우리 사이의 협력도 겨우 시작에 불과하지.
켈시는 글래디아를 응시했다. 바닷바람에도 상대방의 무표정한 얼굴은 찌푸려지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글래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린, 우리가 에기르한테서 연락받은 지 며칠이나 지났지?
8일째입니다, 성도님.
8일 동안 필요한 배치와, 회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여기 서서 바다를 관찰하고 계셨습니다.
에기르 측에서는 정확한 접촉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놓칠까 봐 걱정하시는 건 이해하지만……
아이린, 눈앞의 바다를 보게.
색을 구분하기 힘든 깊고 어두운 바다가 출렁이고 있었다. 바다가 너무 광활해서일까, 하늘이 낮게 보였다.
바닷물이 암초에 부딪히며 큰 파도를 일으키고, 좁은 공간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베리아에겐, 바다에 시테러의 살과 피가 넘실대지 않는다면 아무리 시끄러워도 자비롭다고 여기겠지.
내 옛 친구 중 한 명은 항구도시에서 가장 재능 있는 시인이었다네.
웅장한 항구도시가 고요 속에 잠기고 그 친구는 북쪽으로 도망쳤지. 굶주려 죽은 시체들이 깔린 땅을 밟으며 내륙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네. 그곳은 훗날 수도가 될 작은 도시였지.
그 친구가 허물어진 성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염없이 울부짖는 걸 봤다네. 도시는 그 울음소리로 인해 새 이름을 얻었지. 페르도니도라. “용서는 없다”라는 뜻이지.
하지만 그때 사람들에겐 애도가 아닌 위로가 필요했다네. 많은 이들이 그 이름을 줄여서 페르도니…… '용서'라고 부르는 것에 더 익숙해졌지.
이제 황금시대의 유산인 마지막 이베리아의 눈이 다시 밝혀졌네. 아이린,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 같은가?
희망과 결의입니다.
“희망과 결의”라. 물론이지.
젊은이여, 그대가 대답할 때의 눈빛은 다리오가 젊었을 때보다 더 굳건해 보이는군. 아주 좋아.
하지만 이런 격려의 말은, 가장 정확한 답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반세기가 지나고 우리가 계속 후퇴시켰던 방어선을 드디어 다시 이 지점까지 전진시켰네. 이곳은 곧 재판소의 새로운 중심이 될 것일세.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바다에 드러냈지. 시본, 그리고 에기르의…… 앞에 말일세.
이베리아는 이미 궁지에 몰렸다네. 이 나라에 오랫동안 쌓인 피로와 병약함을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그리고 또 다른 사실은, 우리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이네.
선생…… 아니, 아이린 님.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야.
그 복장이 아주 잘 어울리는걸.
감, 감사합니다.
아, 맞다. 긴급 상황입니다…… 등대에서 방금 출처를 알 수 없는 신호들을 포착했어요.
신호의 출처는 해저가 아니라 하늘인 것 같습니다.
조르디, 그건 육안으로도 보이는 것 같은데……
카르멘과 아이린이 먼 하늘을 뚫어지게 바라봤고, 젊은 서기도 두 사람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들은 하늘을 나는 린수 떼를 보았다.
저건?
생체 드론이네. 일찍이 섬 주민이 육지로 가져온 물건 중에도 비슷한 물건이 있었지.
드론 대열이 순식간에 바다를 건너 우뚝 솟은 등대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편대를 이탈해 천천히 세 사람 앞에서 정지했다.
날개가 지느러미처럼 움직였고, 빛의 입자들이 허공에서 춤을 추듯 움직였다. 곧이어 친근하면서도 매력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베리아어) 이베리아 여러분, 긴장하지 마세요.
이것은 에기르에서 전하는 인사입니다.
저는 본국 사회행정감찰소의 기술 집정관 중 한 명인 클레멘티아입니다.
카르멘이 등불을 들어 침착하게 눈앞의 드론을 바라봤다.
완전히 다른 두 개의 빛은, 마치 완벽히 다른 두 문명의 대화 혹은 대치를 연상시켰다.
난 이베리아 재판소의 성도, 카르멘 이 이베리아라고 하오.
아무래도, 이게 두 나라 간의 첫 공식 교류라고 생각해야겠지.
네, 맞습니다.
이베리아어가 꽤나 능숙하군.
본토를 떠나기 전에 이베리아 언어 모듈을 입력했어요. 제 표현에 부적절한 점이 있다면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런 방식으로 당신과 소통할 수밖에 없는 것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베리아…… 님.
이런 소통 방식에 이견은 없지만, 이렇게 늦게 교류가 이루어진 것이 유감스럽군. 집정관님.
그쪽에서 '항로'라고 일컬어지는 계획이 이미 후반부에 접어든 걸로 알고 있네. 하지만 바로 옆의 이베리아에선, 그 세부 사항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지.
그래서 우리는 이베리아의 사절단을 우리 도시로 맞이할 것입니다. 시본으로 인한 위기의 여파가 커지는 상황에서, 에기르는 이베리아가 보여준 노력을 존중합니다.
여파라…… 이베리아가 직면한 건 단지 위기의 여파일 뿐인가?
맞습니다.
외교적 수사에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성도님.
우리는 모두 언어의 힘을 인정합니다. 당신의 이름, 카르멘 이 이베리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상징입니다. 용기와 기개의 상징이죠.
그래서 에기르가 이곳에 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베리아와 대륙의 여러 나라와 협력하여, 육지와 직접 이어지는 항로를 개척하고자 희망합니다.
에기르의 주력 부대가 해안에 도착할 수 있도록, 에기르 본토에서 대륙까지의 넓은 해역을 정리할 예정입니다.
……대규모 군대를 다른 국가의 국경에 파견하는 행위가, 대륙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곧 닥쳐올 거대한 위협에 맞서기 위해 우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필요하다면, 제가 대륙으로 가 성도님을 직접 만나 뵙고 모든 것을 상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심해로 오신다면 여러분들께선 현재 상황을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8군단과 제10군단의 함대가 지금 차례대로 시본을 소탕하고 있습니다. 이후, 그들이 여러분을 우리 도시 '밀리아리움'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드론 편대가 지속적으로 여러분께 전투 진행 상황과 환경 변화를 동기화할 겁니다.
바다에선 어쩌면 유례 없는 재앙이 잉태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재판관님. 저는 대지가 아무리 광활해도 결국 또 다른 고립된 섬에 불과할까 우려스럽습니다.
드론 대열의 불이 꺼졌고, 이 갑작스러운 통신은 종료되었다.
바닷바람은 여전히 불어왔고, 노인은 천천히 손에 든 등불을 내려놓았다.
육지와 직접 이어지는 항로…… 집정관의 표현은 아주 적절하나……
에기르는 확실히 오만하군.
무기를 든 오만한 어른은 맨손의 아이에게 술수나 기교를 부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아이린, 방금 통신 내용을 우리의 파트너들에게 공유해 주도록 하게.
켈시는 이미 이베리아의 사절로 에기르를 방문하는 것에 동의했고, 항로 계획에 계속 의구심을 품고 있던 어비설 헌터스도 이제 결정을 내렸을 것일세.
네!
저도 최대한 빨리 그란파로의 다른 재판관과 업무 인수인계를 마치겠습니다.
선생님, 방금 에기르와의 통신 내용을 모두 기록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저, 저도 갈수 있도록 허락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서기, 그대는 일주일 전에 신청서를 제출했잖나.
네. 이제 에기르 함대가 곧 올 텐데, 혹시나……
이미 결정했다면, 망설이는 태도는 오히려 자네 입장의 설득력을 떨어뜨릴 뿐이네.
어렸을 때부터 티아고 아저씨는 늘 걱정이 많았어요. “조르디, 넌 그란파로를 떠나야 해. 이베리아를 떠나야 해.”라고 했죠.
하지만 아저씨는 제가 어디로 가야 할지 말해 주지 않았어요.
에기르, 그곳이 제 고향이에요. 제 고향은 바닷속에 있지만 바다에 접근할 수 없었죠. 저는 에기르의 소리를 듣지도, 그 모습도 본 적도 없어요.
하지만 지금, 에기르가 가까이 있어요.
조르디 폰타나로사, 재판소는 그대의 신청을 승인했네. 그대는 이베리아의 사절로서 아이린, 켈시와 함께 에기르의 도시로 가게 될 걸세.
감사합니다.
아니, 이건 포상이 아닐세. 그대는 재판소의 업무를 잘 처리했다 할 수 없으니 말이야.
아이린을 선택한 건 그녀가 준비가 되어 있었고, 심지어 오랫동안 고수해 온 신념까지 버렸기 때문일세.
그대를 선택한 건, 그대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상실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세. 나약함은 결국 자네를 갉아먹을 테지.
재판소로 들어온 건 첫 번째 시험이었네.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역시 시험이 될 것일세.
아, 알겠습니다, 선생님.
(흥분한 듯한 울음소리)
……
여긴 이미 해구의 가장 깊은 곳이다.
놈들은 해구 양쪽 절벽을 파내고 내부에 소굴을 만들었지. 그래서 우리가 여러 바퀴를 돌았지만 이곳을 발견하지 못한 거야.
(경계하는 울음소리)
그래. 나도 냄새를 맡았다.
이 냄새는…… 시본이 원래의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오직 자신들만을 위한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했군.
이토록 완벽한 시본 생태계는 원래 바다 깊은 곳에만 존재했는데.
돌아가라, 로시난테. 이제부터는 나 혼자 들어갈 거다.
(불만스러운 듯 목을 흔든다)
대륙붕 전체가 변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파도를 일으키고 있는지 알아야 해.
기사에게 사냥을 멈추지 말라고 전해라.
우린 잠시 헤어지는 것뿐이야.
울피아누스가 소굴로 헤엄쳐 들어갔다.
울피아누스는 잠행을 선택하지 않았다. 빛나는 식물이 시본 소굴의 구석구석을 밝히고 있어 숨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전하는 두꺼운 잎사귀 사이로, 기이한 모양의 미세 생물들이 깊이 잠들어 있거나 헤엄치고 있었다.
해저에 있던 암석은 보이지 않았다. 명흔이 작은 촉수를 천천히 흔들며 유기물 파편을 포획하여 겹겹이 쌓인 균담을 형성했다. 이로 인해 울피아누스의 헤엄치는 소리가 지워냈다.
울피아누스는 자신의 몸이 변하고 있음을 확실히 느꼈다. 의식이 확장되고, 육체가 이완되며, 체내의 모든 세포가 무언가에 반응하려 하고 있었다.
울피아누스는 분명 이곳에 침입한 이방인이었지만, 소굴 전체가 자신을 향해 열려 있었다.
울…… 울-피안…… 음…… 울-피아누스. 동포여.
울피아누스는 시본의 투명에 가까운 몸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울피아누스는 상대가 포식하겠다거나 포식당하겠다는 헛소리를 내뱉기를 기다렸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시본은 그의 사고에 대해 사고하고 있었다.
마침내. 긴 길을 걸어왔구나.
여기. 영양 충분하다. 쓸모없는 살과 피는 벗어버려라.
돌아와라. 번식해라. 이주해라.
흥.
난 너를 위해 태어났다, 울-피아누스. 오직 너를 위해.
풀어준다. 의혹을. 인도한다. 동족의 품으로.
너희는 왜 이주하는 거지? 어디로 가려는 거지?
울-피아누스, 넌 여전히 동요한다.
동포여, 넌 위매니를 알아야 한다. 넌 위매니를 알고 싶어 한다.
시대가 곧 깨어난다. 시대는 돌아가야 한다. 새로운 순환. 바다를 만들어. 바다를 떠난다.
시대가 깨어난다고? 바다를 떠난다고?
위매니. 봤다. 새로운 긴 여정을. 우리는 서둘러야……
……그렇다면, 그 도시에서 진행 중인 일은, 너희와 무슨 관련이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