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8씨앗 파종
슈의 의식이 '베헤모스의 심장'에서 다시 응집돼 폭주하는 코어 에너지를 안정시켰다. 위기가 지나간 후, 사람들은 다시 한번 장엄한 석양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배후인 지는 다른 계획이 있어 보인다.
수가 많아서…… 감당할 수가 없어……
밖에 있는 농지는 아무래도 다 지켜내지 못할 수도.
상황이 급합니다. 사람들을 먼저 구해야……
착각인가? 뭔가…… 놈들이 아까보다 덜 사나워진 것 같아.
무슨 소리지?
이 섹터가 코어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역시…… 이 괴물들의 생명력은 대황성의 코어와 연결돼 있었습니다. 연결이 끊겼으니, 힘도 약해지는 것이겠죠.
버텨주세요! 모두 이곳으로 피난했나요?
공지는 보내놨어. 각 구역 사람들이 다 모였나요?
자에서 묘 구역 사람들이 다 왔어.
신에서 해 구역 사람들이 다 왔어!
사에서 미 구역 사람들도 다 왔어. 그런데 진 구역으로 간 사람이 아직 소식이 없어.
뭐라고요?!
중앙 구역에서 진 구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어떤 농지가 괴물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었어. 그곳으로 간 구조대와 연락도 끊겼고.
지금은 코어의 에너지 장치가 망가져서 통신이 마비됐을 텐데……
내가 찾으러 갈게!
잠깐만요!
계속 제게 무모한 짓은 하지 말라고 하셨잖습니까, 근데 왜 당신이 가장 먼저 뛰쳐나가려는 거죠? 그곳에 얼마나 많은 괴물이 있는데, 혼자 가실 생각입니까?
그곳은 시험 농지야, 나보다 길을 잘 아는 사람은 없어!
그곳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날 도와 농지를 봐주던 농부들이야. 최근엔 거짓말도 했지, 연구에 큰 진전이 있다고……
가는 건 괜찮습니다. 대신 저도 함께 가죠. 전 걸음이 빠르니 도움이 될 겁니다.
넌 이방인인 데다,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 게다가 나보다 어린데……
“……화생, 1101년에 천사부 중급 농업천사로 승진, 당시 나이 17세.”
너……
대황성에 자료를 조사하러 왔을 때, 천사부의 명부를 살펴봤습니다. 계산해 보니 저보다 1살 어리더군요.
화생, 위험하니까 무리하진 마라.
*염국 욕설*, 그 말투는 뭐야 갑자기?
*염국 욕설*, 저도 이렇게 말한 건 처음입니다!
잡담은 여기까지, 서두르죠!
신화는 거짓말이었던 걸까?
흐릿하게 보이는 논밭이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건 생명이 넘치는 땅이다.
바람이 불어왔고, 벼가 출렁이는 소리는 노래 같았다.
새로 태어난 의식이 이곳에서 자라나고 있었고, 누군가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돌아왔군.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
너…… 이미 깨어 있었구나.
여긴 어디야? 처음부터 여기 있었나?
왜 오래된 기억이 남아있지?
많은 것을 보았어……
전쟁, 죽음, 역병, 기근……
하늘에서 내려온 재난이 온 땅을 휩쓸었고, 땅은 모두 망가졌지. 그리고 그 후에도 끝없는 전란의 소용돌이가 계속됐어.
문명은 파괴되고, 생명은 공포에 떨었지.
왜 나는 여기에 갇혀 있는 걸까?
나는 누구지?
나는, 무서워.
밖은, 두려워.
고통.
수많은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들려.
이런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기억났어, 누군가 내게 이름을 지어줬어……
“쉐이”.
나는 너야.
잡초가 미친 듯이 자라 모든 땅을 덮었다.
영원한 밤이 이 순간, 굳어버렸다.
……
아니, 넌 그냥 그림자…… 내 그림자야.
이건 네 고통이 아니야. 이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것이지.
아니야.
넌 두려워하고 있어. 진짜로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넌 이 땅의 진짜 모습을 몰라.
세상이란 건, 두려운 게 아냐.
하지만 넌 결코 풍성하게 자란 작물도,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도 보지 못했지.
세상 만물의 생명이 서로 경쟁하고, 시련을 겪고 난 후에도 살아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어.
기회가 있다면, 그 모습들을 자세히 보도록 해.
난 더 이상 오만하고 쓸쓸한 베헤모스가 아니야, 의지할 곳 없이 방황하는 영혼도 아니야.
내가 살아왔던 건 진실한 삶, 난 대지의 수많은 생명과 함께했어.
이슬방울이 땅에 떨어지면,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넘은 생명을 땅에 불어넣었지.
편히 쉬도록 해.
노을에 붉게 물든 벼,
이슬에 젖은 옷깃,
천년이란 세월에 나의 푸르름 하나를 심는다.
여기 있어요! 도와주세요!
으아아! 오지 마!
……하압!
(울음소리)
사…… 살았나?
왕 아저씨! 여긴 어떻게 오신 거예요? 괜찮으세요?
화생! 올 줄 알았어!
*염국 욕설*, 어디서 이 짐승 놈들이 나타난 건지, 작물을 다 갉아먹었어. 깜짝 놀랐다고.
걱정은 말라고! 이 시험 농지는 우리가 지켰으니까, 괴물 녀석은 단 한 마리도……
왕 아저씨!
괜찮습니다…… 너무 놀랐을 뿐이네요.
농지는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고, 멀리서 땅에 생긴 큰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통신 장비가 모두 고장 났어. 토목천사들은 이곳에 사람이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 벌써 연결을 끊기 시작했어.
서두르자, 머뭇거리단 늦을 거야!
엄청 깊은 도랑이잖아……
우리를…… 포기한 건가?
……실례할게요!
소년 지촉인이 한 손에 사람을 하나씩 안고 몸을 날렸다. 두세 걸음 만에 도랑을 지나갔다
너…… 제법인데!
좌락은 분리된 섹터 사이를 오가며, 혼자 남은 사람을 한 명씩 건너편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섹터 사이의 높낮이는 점점 커지고 있었고, 소년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마지막 순간, 하마터면 헛발을 디딜 뻔했으나 바람이 소년의 등을 받쳐주었다.
조심해……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들 모두 데려다 놨습니다. 꽉 잡으세요, 올라갈게요!
(울음소리)
…… 아직도 남아있다니?!
집중해……
오리지늄 아츠를 너무 사용하셨습니다……
걱정 마…… 천사부 학생들은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지 않으니까……
두 사람은 함께 괴물을 물리쳤지만, 그 사이에 섹터 높이 차이가 더욱 벌어져 버렸다.
네다섯 장은 족히 멀어진 거리, 두 사람에겐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이나 다름없었다.
……젠장!
우리…… 여기서 못 나가는 건가……
이 섹터는 곧 무너질 겁니다. 충격에 대비하죠…… 부드러운 흙을 찾아 숨는다면……
이전에는 몰랐어. 대황성의 이동 섹터가 이렇게 높이 건설됐었다니……
좌락…… 우리가 몇 명을 구했더라?
안심하세요. 인원수는 확인했습니다. 이곳에 갇혔던 사람은 다 대피시켰어요……
정신 차리세요. 저희 둘이서 살아 돌아갈 방법을 찾죠, 저희만 돌아가면 성공하는 겁니다.
신화에도 있었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모두 함께 있다면 이겨낼 수 있다고……
이 몇 년간, 사람들의 도움만 받았어…… 단 한 번도 보답하지 않았지, 오늘에야 결국……
화생의 목소리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좌락은 그제서야 화생의 흰옷에 퍼진 선명한 피를 보았다.
다쳤나요?! 도대체 언제…… 지혈하겠습니다!
좌락, 네게 줄 게 있어.
이 상황에서요?
이건 내 천사의야. 중요한 실험 데이터가 들어있어, 무슨 일이 생겨도 잘 보관해 줘.
네…… 제가 보관하죠.
화생은 좌락의 손에 오리지늄 장치를 묶은 뒤, 스위치를 눌렀다. 작은 장치가 순식간에 연으로 변했다.
뭘 하려는 겁니까?!
네게 계속 안 좋은 소리 했지만, 넌 사실 좋은 녀석이야.
그러니까 널 이곳에서 죽게 할 수는……
소년은 마지막 힘을 다해 바람을 일으켰다. 좌락은 미처 반응하지도 못하고 연에 끌려 올라갔다.
섹터가 조금씩 떨어지면서, 화생의 모습도 점점 작아졌다. 하지만 좌락은 기괴한 괴물이 화생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
(위협하는 울음소리)
네놈들이 어디서 왔는진 모르겠지만……
난 두렵지 않아……
음……?
음메……?
일어나, 일어나!
내 말 들려?
숨은 쉬는 것 같은데, 다들 좀 떨어져 있어.
난……
보들이?
(걱정한 듯 비비적거린다)
그만…… 그만해…… 나한테는 먹을 게 없어……
눈을 뜬 화생은 자신이 들판에 누워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들이 화생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는 마치 기억 속에 없는 어느 날, 이 땅에 처음 온 그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다들…… 괜찮아?
난……
모두 당신을 찾고 있을 때, 보들이가 당신을 등에 업고 왔습니다.
어째서 그때……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 괴물들은…… 다 쫓아냈어?
네……
먹구름은 걷혔고 핏빛 노을은 색이 바랬다. 석양은 다시 황금색 빛으로 들판을 가득 채웠다.
끝…… 난 거야?
끝났습니다……
이긴 거지? 그치?
그때의 신농이 해낸 것처럼, 우리도 해냈어……
네……
누군가가 코어 에너지를 제어했고, 저희는 성공했습니다……
돌아보면, 이것도 새로운 신화가 아닐까요?
다 끝났으니 이제 돌아가……
잠깐!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지……?
저건…… 갑진호 섹터…… '완칭'의 시험 농지잖아!
멀지 않 곳, 황폐한 농지에 한 줄기의 벼가 우뚝 서 있었다.
좌락! 날 좀 도와줘!
왜 다시 돌아가려는 겁니까!? 이 앞은 위험합니다!
이건 뭐죠?
성공했어, 성공했다고!
만경의 비옥한 땅…… 희망이 생겼어, 이젠 생겼어!
소년은 벼를 가슴에 꼭 안고, 거의 미친 듯이 웃었다.
도대체……
“말해봤자 넌 모를 거야”, 인가요……
정말 희망을 찾았다고 생각할게요……
벌레는 자라면서 모두 시련을 겪게 됩니다. 시련을 이겨내면 고치를 뚫고 나오고, 실패하면 어둠 속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게 되죠.
파멸와 신생, 그 어떤 생명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베헤모스의 심장”……?
또 만났군요.
좌 공자님이 여기까지 찾아오시다니, 아무래도 제 계획을 알아차린 모양이군요?
……무슨 일을 벌이고 계신 겁니까?
보시다시피, 직물을 짜고 있습니다.
왜 직물을 짜고 계신 겁니까?
완성되면 팔아야 하기 때문이죠.
누구에게 파는 거죠?
고객 정보는 비밀입니다. 업계의 불문율이니까요.
직물 위에 그려진 건…… 무엇인가요?
산하백경…… 당신들의 말로 하자면, 염국의 '국조'려나요?
전 오랜 시간 동안 염국의 수많은 도시를 거쳤습니다. 대황성이 마지막이죠. 그리고 오늘, 이 직물을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아름다운 문양일수록 당연히 좋은 염료가 필요한 법, 산하백경도를 그리는 데 염국의 국조보다 더 좋은 염료가 어디 있겠습니까?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듯 쏟아진 이 수많은 비단, 이 비단 하나하나는 모두 하나의 도시이자 하나의 역사, 사람들의 삶입니다.
국조? 아니…… 그것은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비단 위의 이 화려한 색을 보세요. 이건 모두 제가 보았던 사람들의 마음의 색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 세상을 싫어할 수 있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