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V-7과열
주민들이 섹터를 떠나 개척지로 가는 걸 보며 제시카는 마침내 현지 주민들을 도와 은행에서 그들의 돈을 빼앗아 오기로 결심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제시카, 제시카 더 리버레이티드, 콜드샷, 아몬드
새해가 지났지만 데이비스 타운의 바람은 여전히 뼈를 에일 듯 차가웠고 조금의 온기도 없었다.
섹터 밖에서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서 마일스는, 찬바람 속에 차를 기다렸던 게 아주 오래전의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 여러분이 가야 하는 개척지는 어떤 곳이야?
……적어도 데이비스 타운보다는 따뜻한 곳이겠지.
내 걱정은 하지 마. 그래도 내가 옛 이웃들과 함께 묻힐 수 있도록 그들이 최소한의 인정은 베풀어 준 셈이니까.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시카, 어차피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 차라리 다른 걸 생각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매달리지 말고.
예를 들면, 방금 생각났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차를 기다린 건, 내 여동생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다른 이동도시로 갈 때였어.
그날도 이렇게 추웠지. 헬레나와 우드로, 리온이 나와 함께 차를 기다려 줬어.
난 헬레나의 레스토랑 꽃병에 모아 뒀던 꽃다발을 들고, 리온이 빌려준 낡은 정장을 입고, 몇 시간 동안 추위에 벌벌 떨었지.
그러고 보니 참 이상하네. 차를 기다리던 날 우드로의 수염이 얼마나 길었는지도 똑똑히 기억하는데, 차에 탄 뒤로는 모든 것이 흐릿해. 마치 불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둔 것처럼 말이야.
아주 큰 이동도시에 간 것 같기도 한데, 또 데이비스 타운만큼 크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해. 내가 울었던 것 같기도 하고, 또 울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해……
그다음은 데이비스 타운으로 돌아오는 차에 나 혼자 남아 있었고, 세 사람이 나를 부축해서 차에서 내렸지.
그 뒤에 일은 오히려 또 기억나. 나는 헬레나네 레스토랑에서 꽤 많은 술을 마셨어. 고주망태가 되었지만, 그날 밤에 취해서 한 말도 또렷이 기억나……
개척지로 가는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데이비스 타운 사람들은 탑승해주세요!
“내가 가장 아끼던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어. 앞으로 난 죽을 때까지 데이비스 타운과 함께 할 거야, 제기랄.”
“리온, 들었어? 나는 섹터에서 늙어 죽을 거야! 그때가 되면……”
마일스, 나도 다 기억해!
네가 그랬지, “그때가 되면 날 동력로에 넣어줘. 내 유골 때문에…… 데이비스 타운이…… 재채기를 하는지 봐야겠어……”라고.
엔지니어는 고개를 들고 또 크게 한 모금 삼켰다.
네가 말을 끝내자마자 데이비스 타운은 여전히 멀쩡한데, 내가 먼저 엄청난 소리로 재채기를 했지.
하하, 하하하……
그때는 아무도 웃지 않았어, 웃을 수가 없었거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웃긴 일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왜 말이 없어! 마셔, 마일스, 마시자고!
미안…… 우리가 좀 늦었어.
우드로 씨, 헬레나 씨…… 리온 씨는요?
우리가 출발하기 전에 시간이 좀 필요하다면서 생각이 정리되면 온다고 했어…… 그 말을 하고서는 또 한 병 따더라고.
……그런데, 우리한테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됐어, 오히려 그게…… 리온한테 좋을지도 모르잖아.
윽, 망할 놈의 날씨…… 더럽게도 춥네!
차에 타면 이 망할 놈의 날씨와 작별할 수 있을 거야.
우드로 씨!
맞는 말이네.
죄송해요……
하아, 제시카, 이제 정말 사과는 그만해도 돼. 이번 일은 은행에도 블랙스틸에도 잘못이 있어. 심지어 우리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너만큼은……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 우리는 처음부터 네가 뭘 해 낼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
마일스는 바로 자신이 실언했음을 깨달았다. 뭐라고 설명하려 했지만, 차량 행렬의 리더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영감, 할 말이 있으면 미리 했어야지. 영감만 남았으니까 얼른 차에 타!
제시카, 나는……
계속 시간 끌다가 황무지에서 녹슨 망치나 재앙을 만나면 영감이 책임질 거야?
가자고!
제시카, 오해하지 마. 마일스 씨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야.
저도 알아요…… 하지만 맞는 말씀인 걸요……
제가 많은 일을 했을지는 몰라도, 결국……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어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잖아요.
누구야? 우드로? 헬레나? 그만 재촉해, 생각이 정리되면 간다고 했잖아. 안 그래도 마일스를 배웅하러 가려던 참이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쳇, 뭐야, 날 쫓아내려 온 거야?
실비아는 리온이 늘 봐왔던 것처럼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거나, 달아나지 않았다.
가슴 앞에 있는 무언가를 꼭 쥔 채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더니, 뻣뻣하게 발을 내디디며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테이블 옆에 있는 자리까지 걸어가서는 레스토랑 입구를 등지고 앉아, 앞쪽의 빈자리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리온 씨, 우드로 씨와 헬레나 씨는…… 다시 돌아오나요?
우드로랑…… 헬레나?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두 사람은 마일스를 배웅하러……
실비아가 방금 연 문틈 사이로 찬바람이 파고들어 와 빈 술병의 병 아가리를 흐느끼며 스쳐 지나갔다.
리온은 몸서리를 쳤다.
두 사람은 마일스를 배웅하러 갔으니 이따 돌아올 거야. 하지만 여기에 널 찾는 사람은 없어, 알겠어? 알아들었으면 당장 나가. 난…… 혼자 있고 싶으니까.
실비아는 열 손가락을 테이블 위에서 꽉 맞잡고 있었다.
실비아는 침을 삼키더니 억지로 고개를 돌려 리온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리온은 실비아가 늘 꼭 쥐고 있던 게 뭔지 알아차렸다.
은색 반지였다. 위에 띄엄띄엄 다이아몬드 조각이 박혀 있었다.
리온 씨, 전……
목에 건 반지는 누구한테 받은 거야?
반지요?
나나 베니일 리는 없고…… 그렇다면……
……그 녀석이?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실비아는 살포시 고개를 끄덕이며 반지를 다시 꼭 쥐었고, 눈에는 일종의 광기에 가까운 확고함이 보였다.
실비아의 눈을 보며 리온은 칼의 눈빛을 떠올렸다.
출발하기 전날 밤에 몇 시간 동안 사라졌다가 돌아왔을 때, 칼의 눈빛은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과 똑같았다.
제시카, 너도 알겠지만…… 우리 팀은 명령을 받으면 바로 데이비스 타운에서 철수해야 해. 섹터에 무슨 일이 생기든 우리는 본함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저도 알아요, 알고 있어요……
저희는 떠나야 해요. 마일스 씨는 이미 떠났고, 우드로 씨와 헬레나 씨도 떠날 거라고 했어요. 리온 씨도 계속 여기 남지는 않을 테고…… 다들 떠날 거예요.
그런데 전…… 모두를 위해 뭘 했죠?
……너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난 말해야겠어. 넌 데이비스 타운 외곽에서 건달을 처리했고, 리온이 집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왔어. 그리고 클리프 씨가 은행의 월권행위를 알게 했지……
……하지만 결국 모든 게 헛수고였어요. 전…… 모두의 기대를 저버린 거예요……
아니면 더 최악일 수도 있어요. 마일스 씨가 말한 것처럼…… 처음부터 아무도 제게 기대하지 않았어요. 다 저 혼자 착각한 거라고요……
제시카!
아니, 착각이라고 해도 전……
……
로라 씨, 저 좀 나갔다 올게요.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우리는 곧 본함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짐은 내가 챙겨줄 테니까 넌 한숨 자. 다 정리하면 깨울게, 알았지?
……나갔다 와야겠어요.
어딜 가려고?
저도 몰라요.
진심이야?
네.
……
얼른 다녀와, 알았지?
최대한…… 그럴게요.
리온, 그만 마셔……
……잠깐, 술이 깬 거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럼…… 실비아는 무슨 일로 온 거야?
너희들이 돌아오면 우리 셋한테 할 말이 있다고 했어.
자리에서 일어난 실비아는 반지를 더 꼭 쥐었다. 하얀 손등에서 푸른 혈관이 선명하게 보였다.
헬레나 씨, 우드로 씨, 리온 씨……
전……
저는…… 은행에 돈이 있다는 걸 알아요.
은행에는 언제나 돈이 있지. 실비아, 그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
제 말은…… 블랙스틸이 은행에 가져온 거금이 지금 은행의…… 금고 안에 잠겨 있다고요.
왜?
은행에서 데이비스 타운의 새로운 주민을 위해 준비해 놨거든요.
섹터 전체를 비운 건 첨단 산업과 함께 올 정밀 기기의 기술자, 연구 인원, 관리 인원을 맞이하기 위해서예요……
그 사람들의 예금과 대출 수요를 만족하기 위해 지금 은행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돈이 있어요.
수많은 사람이…… 개척지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많죠.
……그렇다고요.
그렇다고? 실비아, 대체 무슨 뜻이야?
……리온, 당신이 술이 깼다면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을 거야.
……
하지만 안 물을 수가 없군.
실비아가 생각하는 일이 정말 내가 추측하는 거라면 더더욱 물어봐야지.
실비아, 우리가 그 돈을 진짜 주인에게 돌려주길 바라는 건가?
우리가 그 돈을……
빼앗길 바라는 건가?
실비아는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손으로 가슴 앞에 있는 반지를 쓰다듬으며 판결이 내려지길 기다렸다.
레스토랑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적어도 지금 다들 같은 일을 생각하고 있다는 거군.
리온, 당신은 찬성이야, 반대야?
……
말 좀 해 봐.
아니, 나는…… 그게 우리 돈인 건 알지만…… 그 건달들처럼 나쁜 짓을 저지르는 몹쓸 놈이 되기는 싫어.
데이비스 타운에서 나쁜 짓을 가장 많이 저지른 몹쓸 놈은 그 건달들이 아니야.
그럼 당신은 실비아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거네, 우드로?
……아니.
“아니”라고?!
실비아의 용기는 가상하지만 우리에겐 승산이 없을 거야.
예를 들면, 실비아, 은행 지도 있나?
……네.
꺼내 봐.
종이 지도는 없어요. 하지만 은행 입구에서 건물 전체의 메인 스위치까지 100걸음 가야 해요. 제 보폭으로 계산해 보면 61미터죠……
중간에 세 번 방향을 틀어야 해요. 각각 44걸음, 74걸음, 93걸음째죠. 기준점은 화분과 플로어 스탠드, 카운터예요.
메인 스위치에서 금고 입구까지 가려면 응접실을 지나 비밀 문 하나를 넘어, 36개의 계단을 내려가야 해요. 계단을 내려가면 직선 코스인데, 중간의 걸음 수는 각각……
실비아…… 너…… 그걸 다 억지로 외운 거야?!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실비아, 네 자리에서 식당 입구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지?
아까 전 18걸음을 걸었고, 6번째 걸음에서 오른쪽으로 90도 방향을 틀었으니까 총 약 11미터예요.
억지로 외운 게 아니라…… 그저 수도 없이 이렇게 걸어온 거야.
우드로, 지금은 우리가 얼마나 승산이 있는 것 같아? 당신을 포함하면? 리온을 포함하면?
……
하지만 어떻게 돈을 개척지까지 운반할 거고, 또 돈의 흔적은 어떻게 지울 거지?
그건 내가 맡을게.
너라면 황무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지. 하지만 돈은……?
헬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볍게 카운터를 뛰어넘어 테이블 위의 나이프를 들더니, 허리를 굽혀 바닥을 비틀었다.
끼익, 끼익……
쿵.
헬레나의 발밑에서 오랜 세월 쌓인 먼지가 피어올랐다.
물이 샜을 때 그 상자를 찾았다고 해서 날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진 마, 우디.
나한테 레스토랑과 통장을 남겨준 그 녀석을…… 내가 언제 만났는지 알아?
경청하지.
18살이야.
그때 우리 아버지는 본인 상사의 아들한테 날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었어. 자신이 한 단계 더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서였지.
그 소식을 듣고 난 술집으로 달려가서 밤새 있었어. 그리고 거기서 그 사람을 만났지…… 결국 우리는 그 사람의 버든비스트를 타고 밤새 달려서 날 숨 막히게 하는 곳에서 벗어났어.
잠깐, 18살 때 남자랑 도망쳤다고? 하지만 여기 왔을 때는 이미……
헤어졌거든. 20년 넘게 못 봤어.
그 20년 동안, 난 줄곧 혼자 개척지에서 살았어.
그동안 내가 황무지에서 내 주머니에 든 수표를 지키는 법도 못 배웠을 것 같아?
헬레나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에 있던 무기를 실비아 앞에 있는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당신들이 함께하기 싫다면 나 혼자 할 거야.
당신이랑 실비아 둘이서만…… 은행을 털겠다고?
어쩌면 난 금고 밖에서 잡힐 수도 있고, 돈더미 속에 갇혀서 죽을지도 몰라. 도망치는 길에 죽을 수도 있고…… 아무튼 내 숨이 붙어있는 한 난 이 일을 해낼 거야.
이게 내 의지야.
이제 당신들의 의지를 보여줘.
리온은 허리춤에서 스패너를 꺼내 헬레나의 무기 옆에 내려놓았다.
당신 차례야, 우드로……
누구냐?!
제시카? 이 시간에…… 여긴 왜 왔어?
저도…… 모르겠어요.
모른다고?
하지만 전 반드시…… 뭐라도 해야 해요.
오늘 아침에 마일스가 한 말이 걸리는 거면 마음에 담아두지 마.
너한테는 수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힘이 있잖아. 데이비스 타운이나 황혼기를 맞은 늙은이들한테 목매지 않아도 돼.
아니요, 우드로 씨……
이미 너무 많이 겪었어요. 전 열정이 가득했지만 결국 이러저러한 이유로…… 능력과 시간이 부족하거나 상황이 변해서, 또는 '명령'과 '요구' 때문에……
지금도 전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여러분이 쫓겨나서 앞날이 캄캄한 개척지로 가는 걸 지켜볼 뿐이죠……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전 아마……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하는 나날에 익숙해져 버릴 거예요.
그때가 되면 제가 어떻게 될지 다 보여요. 속으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제 능력이 부족하다고, 애초에 아무도 지킬 수 없었다고 믿겠죠……
제가 총을 든 건 처음부터 별 의미가 없었다고, 그저 잘못된 길을 선택해서 너무 멀리 가버렸고, 이미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겠죠……
전 그러고 싶지 않아요……
죽더라도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면……
실비아 씨?
지금이 당신에게 마지막 기회라면…… 저희가 은행에서 저희의 물건을 되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 제시카 씨, 당신은 우리를 도울 건가요?
실비아가 일어나고 나서야 제시카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실비아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창백했지만 두 뺨은 부자연스럽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른 부분이 마음 아프도록 더 창백하게 보였다.
이제 됐어.
우드로 씨? 왜 저한테 총을 겨누는 거죠?!
네가 방금 보고 들은 걸 다 잊고 여길 떠나, 제시카.
대체 무슨 일인데요?
우리는 은행에 가서……
실비아……
……원래 데이비스 타운의 소유였던 물건을 빼앗아 올 거예요.
……빼앗아 온다고요?
제시카, 네 친구 곁으로 돌아가.
우드로 씨!
넌 그저 우리를 찾아와서 하소연했고, 우리는 따뜻한 물을 건네주며 어깨를 토닥여줬어, 그게 다야.
넌 아직 젊어. 하루하루가 새로울 거라고, 정말이야.
……
눈물이 말라붙은 것처럼 제시카의 시야가 갑자기 선명해졌다.
제시카는 이상하리만큼 홍조를 띤 실비아의 얼굴과 테이블 위에 놓인 스패너와 낯선 무기, 그리고 우드로의 어두컴컴한 총구를 보았다.
순식간에 결정을 내린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녀는 우드로의 총구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실비아 곁으로 가서 허리춤에 있는 총을 뽑아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저도 끼워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