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9겨울의 갈무리
총웨는 야를 물리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옥문을 위한 도리를 따진다. 이후 와이틴푸이에게 검을 맡기면서 두 사람은 40년 후에 다시 대결하기로 약속한다. 옥문의 복구 작업은 두 달이나 필요했고, 그 정보를 입수한 야는 다시 길을 떠난다.
……
……
그것이 두 번째였다. 아득한 혼돈 속을 헤매던 여정.
그러다 여정의 끝에서 깨어났다……
후회, 굴욕, 분함, 몽매.
......
그보다, 곤혹이 더 많았다.
나를 붙잡으려면, 그것을 대신해 내 질문에 대답해!
……
너를 만나기 위해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까.
알고 있느냐? 저 어리석은 버러지들은 암맥을 파헤치고, 강바닥을 뚫고, 산과 호수의 맑은 물을 흐리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 흉측한 상처를 도시라고 이름 지었지……
이 병에 찌들어 버린 땅이 정녕 과거 우리가 서식했던 공간이란 말인가?
알고 있느냐? 이 옥문이라는 추악한 도시의 성벽에는 아직도 그것이 죽기 전에 남겼던 발톱 자국이 남아 있어.
천 년 동안, 저 버러지들은 그곳을 보수하지 않았어. 오히려 그걸 영광으로 삼고 비약적으로 발전한 문명의 이정표로 삼았지.
그런데 너의 조각은 지금 그런 도시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것이냐?
나는 나고, 그것은 그것이다.
(천지가 조용히 분노한다)
쪽배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강기슭의 초목은 한결 낮아졌고 눈은 더 두껍게 쌓였다.
기억하느냐? 우리의 의식이 아득한 혼돈 속에서 헤매다 어떻게 최초의 생명이 되었는지.
기억하느냐? 천지개벽이 일어나고, 시간에 순서가 생기고, 사물은 질서가 생겨, 세상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는지.
기억하느냐? 구름과 안개를 꿰뚫던 그 눈빛을. 우리는 창공에서 마주하고 부딪쳤고, 하천은 붉어지고 뭇 산은 평지가 되었으며, 시체들이 하늘 높게 치솟았고, 고름은 곪고 썩어 새로운 봉우리가 됐지……
그것이야말로 웅장하고, 진정한 전쟁이 아니었던가?!
(천지가 조용히 분노한다)
배는 계속해서 움직였고, 강은 뱃머리를 따라 끝없이 펼쳐졌다.
눈은 갈수록 두껍게 쌓여, 질문을 할 때마다 눈사태를 일으킬 듯한 메아리가 울려왔다.
위아래가 온통 새하얘 하늘은 손에 닿을 듯 낮아 보였다.
그런 시대를 겪었으면서도, 왜 자신의 비늘과 발톱 사이에 끼인 버러지와 그 버러지들이 일으키는 먼지 따위를 신경 쓰는 것이냐?
인간을 골탕 먹이기 위해 너는 비를 뿌리고 우스꽝스러운 '상서'를 내려, 소위 진룡이라는 자가 정벌에서 이기도록 도와주었지. 시시하기 짝이 없어……
그런데 왜 천 년 후에, 다시 응답한 것이냐? 자기 동족을 괴롭히고, 도발하고, 사냥하고, 몰아낸 놈들에게?!
작지만 용감했던 놈들의 조상에 비해, 이 허약하고, 하찮으며, 더러운 버러지들을, 너는 왜 굳이 지배하려 하는 것이냐……?!
왜 놈들의 가소로운 '신'이 되려고 한 것이냐?!
(천지가 조용히 분노한다)
태고부터 지금까지의 이 아득한 시간 동안, 우리 같은 존재들이 이런 치욕을 겪었던 적이 있나?!
대답해라…… 나의 동족이여!
화가 많이 난 것 같군.
수천 년 잠들어 있는 동안, 그것도 늘 귀공과 같은 모습이었지……
굴욕을 참고, 배신감을 곱씹으며, 답을 캐물었어.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 같은 파편도 생기지 않았을 테지.
……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아니야.
따라서, 귀공의 질문에 난 답할 수 없네.
나는 귀공의 분노를 이해할 수 없네. 마치 귀공이 내 분노를 이해할 수 없듯이.
분노?
아직도 인간을 위해 도리를 따지겠다는 건가? 여기서?
그 검을 뽑는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나.
귀공이 이 공간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궁금하군.
봄에는 만물을 낳고, 여름에는 성장하고, 가을에는 거두고, 겨울에는 갈무리해 두지. 세월을 베고 공간을 잘라 배 속에 넣는다.
천 년 전, 귀공이 염국에서 도망쳤을 때 어떻게 이 작은 세상을 잘라내어 황급히 도망쳤는지 상상이 가는군.
심지어 이 땅의 어느 외딴 구석에 숨어, 몇 번이고 되짚어 보며 영원히 변치 않는 이 환상에서 상처를 핥았을지도.
베헤모스가, 언제부터 이렇게 감성적인 생물이 되었는가?!
이게 정녕 귀공이 비웃는 그 허약하고, 하찮으며, 더러운 인간과 뭐가 다르단 말이지?!
팔천 년의 봄, 팔천 년의 가을, 눈은 영원히 멈추지 않고, 이 세상은 영원히 그대로네.
이게 바로 귀공이 시간을 가늠하는 방식인가……
참으로 가소롭군.
일, 월, 년.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면 한 해가 지나간다.
아무리 긴 세월이라 할지라도, 시간을 하나하나의 조각으로 쪼갤 수 있다.
한마음 한뜻으로, 한 초식 한 동작으로, 삼구에서 삼복까지, 그리고 다음 삼구까지.
인간은 늘 이런 방식이었다. 생명을 미세하게 분해하고, 그 미세한 것으로부터 모든 것을 느꼈다.
배가 멈췄다……
그리고 단단한 주먹이 야의 가슴팍에 꽂혔다.
만 가지 기술을 하나로, 간결한 무공으로,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천지의 빙설이 순식간에 녹아내렸고, 야는 쪽배 밖으로 날아가……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이게…… 네가 그것의 힘을 포기하고 터득한 재주인가……
확실히 너는 그것이 아니군……
……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눈앞의 마지막 남은 숨을 고르고 있는 '사람'을 그저 묵묵히 바라보았다.
죽음을 앞둔 모든 생명은 어쩜 이리도 하나같이 비슷한 모습일까.
왜…… 나를 죽이지 않는 거지?
대리인의 육신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겠지. 그 육신을 망가뜨린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옥문을 떠나게.
……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다.
쿨럭……
장군님, 초기 피해 조사는 마쳤습니다.
사상자는?
재앙이 오기 전에 동쪽의 백성들은 이미 안전하게 서쪽으로 대피했습니다.
핵심 구역에서 2차 폭풍과 맞서 싸우던 흠천감 캐스터들 절반 가까이가 다쳤습니다. 그리고, 용문의 린 선생님과 린 특사도 함께 도왔는데…… 린 선생님은 중상을 입으셨습니다.
……
이, 이미 군영 의원으로 보내졌습니다.
린 선생은 의를 위해 나섰으니 옥문의 은인이나 다를 바 없다. 최선을 다해 치료하도록,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
예.
건물 파손 상황은?
서쪽은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남북 두 지역은 재앙이 가장 심할 때 모래바람의 습격을 받아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 피해를 면치 못했습니다……
동쪽은 황사와 오리지늄 폭풍을 직격으로 맞아 상황이 가장 심각합니다.
옥문사위 중 두 개는 심하게 파괴된 탓에, 수리조차 할 수 없어 토목천사가 바로 제거했습니다.
문제는 성벽도 영향을 받아 일부 입면 구조가 심하게 틀어져 긴급 보강해야 합니다.
기타 방어 공사의 피해율도 약 6할 정도 됩니다.
……
토목천사 쪽에는 결론이 났는가?
몇몇 천사의 계산에 따르면, 가장 빠른 속도로 성벽을 복구해도 옥문이 항행을 재개하려면 적어도 두 달은 걸릴 것 같다고 합니다.
두 달이라……
그나마 예상보다 조금 나은 편이군.
명을 받들라.
재앙의 여파가 있을지도 모르니, 모든 장병은 태만해서는 안 된다.
계속해서 재해 상황을 점검하고, 부상자는 즉시 치료한다. 임시 막사를 증설하여 백성들을 서쪽 대피소에서 이주시켜 안치하도록 한다.
예.
산해중의 상황은 어떤가?
산해중이 방어 공사를 급습하여 소란을 일으키려 했지만, 순방영이 적시에 대응하고, 또한 강호 인사들이 도와준 덕분에 대부분은 이미 처리했습니다.
일부만 성벽이 파괴된 틈을 타 도시를 빠져나갔습니다.
……음.
단, 일전에 군영에 잠입해 암살을 꾀하던 산해중 수장은 돌연 모습을 감추어, 이미 추가 인원을 보내 수색에 나섰습니다.
모습을 감췄다고?
그 재주를 가지고 혼란을 틈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니……
종사는?
종사님도 도검방에 간 후로 보이질 않습니다.
……
그 검을 내게 주겠다니, 무슨 뜻인가?
귀공이 대신 보관해 주길 바라는 걸세…… 부탁인 셈이지.
역시 이 검 때문에 온 도시가 떠들썩했던 거였군.
대체 어떤 물건이지?
이 검은 확실히 많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쉐이 의식의 12분의 1이 봉인된 기물, 사랑과 증오가 뒤엉킨 증거, 연식이 오래된 검.
이걸 나중에 다시 대결하는 증표로 삼아도 좋네.
더 이상 도둑맞거나, 빼앗기거나, 혹은 저당 잡히지만 않으면 되네.
음……
아무래도 꽤 중요한 물건인 것 같은데.
귀공이 곤란하다면……
내 말은…… 우리가 서로 아는 사이라고 할 수는 없잖나.
난 귀공에 대해 알고 있네. 귀공은 와이틴푸이라 하며, 총명한 친구 둘이 있고, 영리한 딸을 하나 뒀지.
그리고 지금까지, 유일하게 내게 일격을 가한 사람이야.
좋다.
나도 너에 대해 알고 있다. 40년 동안 무예를 익혀온 내가, 유일하게 이길 수 없는 사람이지.
이 검은 내가 가져가도록 하지.
그리고 다시 40년 무예를 더 익혀서 찾아오겠다.
좋네.
기다리도록 하지.
의사 선생님, 여쭤볼 게 있는데요.
전에 의원에 머물렀던 그 직원 말인데요. 선생님께 빚진 약값이 얼마나 남았나요? 제가 대신 갚겠습니다.
됐네,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뭐 빚지고 말고 할 게 있는가.
그냥 핑계 삼아 정착할 곳을 마련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사람을 살리고 돌보는 일이 종일 치고받고 싸우는 일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자넨 그자의 딸인가?
네……
정신 나간 사람처럼 굴던 그자에게도 자네같이 교양 있는 딸이 있다니, 참으로 이상하군.
……
다만, 이렇게 갑자기 종업원이 하나 사라지니, 적응이 안 되는군.
집안에 쌓인 이 모래를 나 혼자 언제 다 치울 수 있을지……
제, 제가 도와드릴게요!
또 말도 없이 갔다고?
네.
역시나는 역시나네……
하지만, 이번에는 저도 서둘러서 그 사람을 찾고 싶지 않아요.
이젠 너도 네 계획이 있나 보구나.
탐정사무소 일은 계속할 거예요. 학업도 계속 이어가고요. 물론 무공도 계속 연마할 거예요.
다음에 만날 땐, 턱만 걷어차는 거로 끝나진 않을 거예요.
……
위에서 서신이 내려왔다. 약간의 재정비를 마치고 다음 임무 장소로 가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옥문은 멀쩡한데 우리 쪽은 사상자가 많이 나왔습니다.
(코웃음) 흥……
편지는 복면을 한 남자의 손에서 타올라 금세 잿더미가 되었다. 하지만, 금빛으로 된 한쪽은 불세례에 오히려 더욱 빛이 났다.
그것은 특수 제작된 화칠이며, 조정의 일품 요원이나 정승들에게만 제공되는 것으로, 그걸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다섯을 넘지 않는다.
남자가 화칠을 손에서 잠시 쥐고 놀다가 살짝 비비자, 부스러기가 먼지 속으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원래 우리 임무는 조정의 주의를 끌 만한 소동을 일으키는 거였다. 옥문은 아직 큰 쓸모가 있으니, 정말로 파괴됐다면 득보다 실이 더 많았을 테지.
……
즉시 철수한다.
선생님은 안 기다립니까? 이번에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우린 일을 성사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디서우네요…… 선생님이 돌아왔습니다!
……
조심하십쇼……
설마 옥문에 선생님께 중상을 입힐 수 있는 자가 있단 말입니까?!
한 '인간'이었지.
더 알아낸 소식은 없나?
(길게 울부짖는 괴이한 소리)
얼마나 걸리지?
(길게 울부짖는 괴이한 소리)
두 달?
……충분해.
이미 그것의 위치를 알아냈다.
당신의 목적은…… 대체……
선생님, 아무래도 우리는 여기서 헤어져야 할 것 같군요.
너희 마음대로 해……
내 일을 방해하지는 말고.
……
아무리 먼 길이라도 종점은 있다.
깨어났을 때, 나는 그게 곧 올 거라는 게 갈수록 뚜렷하게 느껴졌다…… 이른바 '죽음'이라는 게.
그 사냥에서 입은 상처는 이미 아물 수 없다.
너도 깨어나는 게 좋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얼마 남지 않은 동족.
우린, 마무리를 지어야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