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등림의

WB-9겨울의 갈무리

사이드 스토리작전 전2023-07-28

재앙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지에윈은 자발적으로 총웨에게 검을 돌려주며 오랜 원한은 마침내 결론이 난다. 한편, 총웨도 다른 특이점을 발견하고 옥문의 코어에서 '옛 지인'을 만나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총웨, 좌락, 지에윈


끼익.

거리에는 흙이 두껍게 쌓였다.

성남 대부분 지역에 재앙의 피해는 없었지만, 폭풍 때문에 모래가 비 오듯 쏟아져 도시 어디에서도 태양이 보이는 곳이 없었다.


끼익.

자물쇠가 고장 났다.

넘어져 있는 화로, 너저분한 병기 선반, 부서진 기와와 벽돌들, 마당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하필이면 돌아와 정리할 주인도 없었으니.

하지만 이 나무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좌락

종사님.

좌락

실례를 무릅쓰고 종사님을 도검방으로 불러냈습니다.

좌락

검은 이미 되찾았습니다만, 이자가 기어코 직접 검을 전하겠다고 해서요.

지에윈

할 말이 있어, 여기서.

총웨

그래, 괜찮다.

총웨

그러고 보니, 여기 못 와본 지도 벌써 십여 년이 되는군.

총웨

분명 같은 도시에 있는데도, '옛 고장을 다시 방문'하는 꼴이 되다니.

좌락

맹철의 선배님 일은……

총웨

말할 필요 없다.

총웨

도시 전체를 위험에 빠트린 것은 매우 큰 잘못이야. 그렇게 마음먹은 이상 그에 따른 처벌 또한 염두에 뒀을 터. 어쩌면 애초부터 그리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좌락

……

좌락

엊그제 일은 확실히 이 좌락이 경솔한 탓에, 옥문의 강호 인사들을 실망시킨 게 맞습니다.

좌락

이번 재난이 평정되면, 직접 부친께 찾아가 죄를 청하겠습니다.

좌락

도검방의 모든 손실, 그리고 후속 복구와 수리는 모두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총웨

평숭후는 공평한 자이니, 잘 해명할 거라고 믿는다.

총웨

다만……

총웨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오해는 피할 수 없을 테야. 그 혼란 속에서 무모함 때문에 분수를 넘은 건지 아닌지는 스스로 판단할 수밖에 없지.

좌락

……

좌락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만, 저 좌락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총웨

……음.

좌락

염국에게 산해중은 베헤모스보다도 더 경계해야 할 존재라는 걸 종사님도 잘 아실 겁니다.

좌락

베헤모스가 무서운 건 사실이나, 천 년 전에도 우린 사냥에서 이겼습니다. 오늘날 염국의 국력으로 봤을 때 더더욱 '그것'들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죠.

총웨

확실히 세상이 달라지긴 했지.

좌락

하지만 진정으로 무서운 건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혼돈의 초기부터 드리워진 그림자입니다.

좌락

하늘과 땅, 별과 달, 비와 바람, 계절…… 모두 변화가 심하고, 그 근원을 알기 어려우며, 하나 같이 우리가 가진 지식의 한계를 초월했습니다.

좌락

그 당시의 인간에게 베헤모스도 아마 이러한 존재였을 겁니다.

좌락

무지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신앙으로 왜곡되죠. 미치광이들의 눈에는…… 저희야말로 이 대지의 이민족이자 '배신자'니까요.

총웨

신앙 또한 일종의 깊은 집념에 불과하지.

좌락

베헤모스가 염국 땅에서 자취를 감춘 뒤 산해중은 활동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좌락

더 큰 문제는, 근 백여 년 동안 도적, 수적, 대도…… 무법자들은 사리사욕을 꾀하는 무리와 결탁하였고, 산해중은 이 간악한 세력들을 최대한 흡수하였으며, '베헤모스'는 놈들을 가려주는 그림자가 되었죠.

좌락

사세대의 기록에 따르면, 산해중이 '베헤모스'란 이름으로 일으킨 혼란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좌락

수가 많은 데다, 조직구조까지 복잡하여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습니다. 놈들이 벌인 악랄한 짓 또한 끔찍하기 짝이 없고요.

좌락

최근 놈들은 여러 대리인과의 접촉을 시도하긴 했지만, 다행히 사세대 쪽에서 제때 대응했기에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총웨

아마 내 아우들도 이런 '신도'랑은 상대하려 하진 않을 테지.

좌락

하지만, 곧 쉐이의 본체가 깨어납니다. 옥문의 귀국, 산해중의 난, 여러 가지 일은 복잡하게 얽혀있고, 이건 결코 우연의 일치라 보기 어렵습니다.

총웨

그 말은……

좌락

그 죄인은 세상을 바둑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산해중이 꼭 그자의 한 수가 아니라는 법은 없죠.

총웨

만약 사세대에서 이미 이런 결론을 내렸다면, 이건 매우 심각한 고발이다.

좌락

……

좌락

또는, 산해중이 이미 쉐이와 어떤 관계를 맺었을 수도 있습니다.

총웨

……

총웨

그 말인즉, 사세대가 보기에는 이번이 염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베헤모스 문제일 수도 있다는 건가?

좌락

그렇습니다.

총웨

검을 찾고, 범인을 잡고, 산해중을 토벌하고…… 너는 사세대의 최연소 지촉인이자 옥문 평숭후의 아들로서, 이 일에서 분명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할 거다.

좌락

네, 그렇습니다.

총웨

어지러운 상황일수록 결단력이 있어야 하며, 벼락같은 수완으로 끊어야 할 땐 즉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총웨

잘못된 행보는 그 과오를 책임질 수 있으나,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

총웨

잘못 잡을지언정 놓칠 순 없다.

총웨

너는 분명 이렇게 생각하겠지.

좌락

……네, 맞습니다.

총웨

그 당시 좌선료의 패기가 엿보이는구나. 다만……

총웨

좌선료가 너에게 3일 이내에 세 가지 일을 끝내라고 지시를 내렸을 때, 마지막 당부가 뭐였는지 너는 잊은 것 같군.

좌락

……


좌선료

소식이 새어나가서는 안 되고, 백성을 놀라게 해서도 아니 된다.


총웨

조정에서 전문적으로 사세대를 설립하여 베헤모스 사건에 전력을 다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총웨

옥문이 먼 길을 항행해 귀국하면서, 미래를 위해 어쩌면 도시의 존망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그 이유 또한 무엇이라 생각하나?

좌락

……

총웨

바로 지금 성안에 있는 백성들, 바로 네가 군영으로 데려간 그 사람들 때문이 아니겠나?

좌락

예…… 백성을 위해서죠.

총웨

일을 처리할 땐 최소의 인정과 도리를 잊어선 아니 된다.

총웨

이 일에 있어서 어쩌면 네가 잘못한 게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상황에서 결단의 권한을 쥐고 있는 한, 네가 살인의 무기를 들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순간의 판단으로 실수를 저지르면 후회해도 소용없으니까.

총웨

이런 말은, 본래 내가 할 것이 아니거늘.

좌락

……

좌락

가르침을 명심하겠습니다.

총웨

재앙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가서 도와주거라.


당황한 산해중 멤버

두목, 빨리, 이쪽으로 철수합시다.

당황한 산해중 멤버

이 골목은 외진 데다가 길도 좁고 담벼락도 높아, 순방영이 찾아내기 힘들어 당분간은 안전할 겁니다.

산해중 두목

얼른 숨 좀 돌려…… 남은 건 이게 다인가?

당황한 산해중 멤버

모두 저 앞 거리에서 당했습니다.

당황한 산해중 멤버

옥문 수비군의 대응이 생각보다 빠릅니다. 이 짧은 시간에 재앙 공사와 주요 길목에 병력을 배치하다니……

당황한 산해중 멤버

그리고, 갑자기 튀어나온 호송원들도, *정체불명의 욕설*, 만만한 자들이 아닙니다.

산해중 두목

파견 보낸 디서우는?

당황한 산해중 멤버

한 마리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산해중 멤버

아마 나머지 형제들도 십중팔구는 결과가 안 좋을 겁니다. 만일 수비군에 생포되기라도 한다면……

산해중 두목

죄다 재앙을 틈타 한몫 챙기려는 오합지졸들이야. 어차피 꼬리 자르기용으로 임시 모집한 놈들인데, 걔네들이 뭘 알겠어.

산해중 두목

임무는 이미 완수했으니 철수한다. 재앙이 거의 끝나간다. 옥문 수비군이 총력으로 나오면 그땐 떠날 수도 없어.

당황한 산해중 멤버

맞다…… 두목, 선생님은요?

당황한 산해중 멤버

계획이 시작되었는데, 왜 선생님이 안 보이죠?

산해중 두목

그 여자는……


총웨

너는……

지에윈

당신 검을 가져갔으니, 돌려줄게.

총웨

돌려준다니, 빌려 갔던 거로 하지.

지에윈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 대답해야 검을 돌려줄 수 있어.

지에윈

뺏지 마. 당신의 무공이 대단한 건 알아. 어차피 나 당신 못 이겨.

총웨

……

총웨

그래, 물어보도록.

지에윈

왜 당신은 전혀 조급하지 않은 것 같지? 이 검이 신경 쓰이지 않는 거야?

총웨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신외의 물건'이긴 하지만……

총웨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건 아니지.

지에윈

……

지에윈

신경을 쓰면 쓰는 거고, 안 쓰면 안 쓰는 거지.

지에윈

사부님 말이 맞네. 당신은 말할 때 자꾸 뭔가를 숨겨. 밉살스럽게.

총웨

그 말을 한 사람은……

지에윈

이 검의 이름이 '총웨'야?

총웨

……

총웨

'숴'다.

총웨

총웨는 내 이름이지.

지에윈

……

지에윈

사부님은 자주 이 검에 대한 얘기를 들려줬어.

지에윈

하지만, 사부님이 그리워했던 건 이 검뿐만은 아닐 거야.

총웨

……

지에윈

요 며칠 나는 여기가 사부님의 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

사부님은 우리한테 무공을 가르쳤고, 이동도시에서 얻은 지식을 전수해 줬다.

좀 더 튼튼한 구조의 집을 지으면 모래바람을 막을 수 있고, 땅의 수맥만 정확히 탐지하면 척박한 황무지에서도 수원을 찾고 곡물을 재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부님이 말한 이동도시는 높고 견고했으며, 그곳의 사람들은 함께 모여 모든 걸 집어삼키는 재앙에 대항했다.

사람에겐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정착할 수 있는 터전이 있다면, 우리는 재앙을 두려워하거나, 계절을 좇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지에윈

이해가 안 돼. 20년 전, 사부님은 왜 떠난 거야?

총웨

……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총웨

병이 깊었을 텐데, 너희한테 무공을 가르쳤다는 건가?

지에윈

아나사는 신체 능력이 아주 뛰어나. 하지만 사부님은, 집이 생겼으면 집을 지키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고 했어.

지에윈

우리는 모든 걸 빠르게 습득했어. 제대로 이해를 못 하면 사부님이 늘 직접 시범을 보여줬어. 그래서인지 몸이 더 견딜 수가 없었어.

지에윈

부족 사람들은 사부님에게 황무지를 떠나 병을 치료하라고 여러 번 말했어.

지에윈

하지만 사부님은 “고질병 때문에 폐가 상했을 뿐, 치료하느라 발버둥 치느니 내가 가르쳐준 소주나 잘 빚어졌는지 보러 가는 게 낫겠어.”라고 했어.

지에윈

그때, 당신은 의사를 찾았어?

총웨

……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총웨

은둔자를 알아냈지만 만나진 못했다. 다시 찾아가려고 했을 때, 옥문으로부터 급보가 왔고.

“도시에 산해중 출몰, 속히 귀환.”

지에윈

다시 말하면, 사부님이 떠나지 않았어도 병을 고칠 수 없다는 거네?

총웨

……그렇다.

사부님은 생과 사는 인간이 반드시 겪게 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길든 짧든 크게 다를 바 없다고.

그러나 사람마다 차이를 느낄 수 있었던 건 생과 사의 중간에 있는, 저항할 수 없는 '노화'와 그보다 더 잔인한 '질병' 때문이다.

보이지만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애간장만 타들어 갈 뿐.

지에윈

사부님이 돌아가실 무렵, 마침 소주도 다 빚어졌어. 사부님은 우리와 함께 소주를 다 마셨고, 우리가 부르는 제목 없는 노래를 끝까지 다 들었어.

지에윈

그 노래는 원래 아나사가 죽은 동족을 배웅하고, 영혼을 위로할 때 부르는 고대 가요였어. 사부님은 어차피 자신에게 들려주는 노래인데, 죽어서 듣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했지.

지에윈

“내가 살아 있을 때 들려줘.”

총웨

……

총웨

다행이구나. 삶의 마지막 순간에 외롭진 않았겠어.

지에윈

어제 객잔에서 국수를 먹을 때 보니, 다들 당신을 배웅하는 것 같던데.

총웨

그런가……

지에윈

당신도 여길 떠나려는 거야?

총웨

백 년이 넘었으니, 다른 곳으로 가야지.

지에윈

그렇게 오래 머물렀으면, 여기가 당신의 집 아니야?

총웨

……많은 사람들이 염국의 다른 곳에 집이 있지만, 다들 여전히 옥문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 남아 있다.

총웨

다만, 앞으로 갈 길은 내가 동행하기엔 불편하지.

지에윈

만약, 사부님이 살아 있었다면 당신은 여길 떠난 후에 찾으러 갔을 거야?

총웨

……

봄이 다가왔는데 마음은 가을처럼 허전하구나.

사람이란.

지에윈

……

지에윈

당신은 아나사 같아.

아나사, 뿌리가 없는 자들.

총웨

(오래된 살카즈어) ……그럴지도.

발음, 단어, 모두 정확했다.

하지만, 아나사 소녀는 이 사람이 동족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이 사람은 그저 많은 곳을 다녔고, 많은 사람을 만났을 뿐이다.

지에윈

됐어, 검은 돌려줄게. 더 이상 묻고 싶지도 않아.

사실 남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답하지 않았지만, 피하지도 않았다.

아나사 소녀는 당시 사부님이 떠날 때의 심정을 문득 깨달은 것 같았다.

지에윈

너무 오래 있었어. 집에 돌아갈 거야.

지에윈

……

아나사 소녀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는 매우 허약했고, 그녀는 잠이 들었다.

총웨

이 아이의 상처는……

총웨

검을…… 뽑았구나.

오래된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사라진 고인의 흔적을 빼면, 전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총웨

매개체는…… 이마에 있는 이 옥석인가……

총웨

그녀가 전에 착용했던 것이로군. 마음을 진정시키고 악을 물리친다는……

......

그런 거였나.

이 한 수를 수십 년 전에 둔 거였나.

다만, 그 목적이 이 검이라면 그리 좋은 수는 아닌 것 같은데.

……거리에 있던 그자는?

앞만 보다가, 설마 바둑판의 다른 쪽을 보는 걸 망각하다니.


훗.

그런 거였나……

네가, 이 지경에 이르다니……

정말, 가소롭군.

네가 어떻게 삼키는지 빨리 보고 싶어지네……

그 치욕을 말이야.

'쉐이'?


총웨

전에는 평숭후의 막사에, 오늘은 코어 중추실에, 귀공은 매번 예고도 없이 이렇게 불쑥불쑥 찾아오는데, 너무 실례하는 거 아닌가?

???

......

???

너인가?

???

검을 되찾았나 보군.

총웨

방금.

???

아무래도 그자가 네 비밀을 알았나 보네.

총웨

귀공은…… 이미 내 아우를 만난 것 같군.

???

너는 그것의 일부분을 분리하여 봉인했지만, 그자는 하필 그것을 대신하려 했지.

???

두 '형제'가 가진 그것에 대한 태도는 대범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네.

???

결국은 시시하고 유치한 수작에 불과하겠지만.

총웨

귀공이 한 짓도 이런 시시하고 유치한 수작이 아닌가.

총웨

귀공의 이번 목적은 재앙도, 옥문도, 내 손에 있는 이 물건도 아니야.

총웨

이토록 소동을 벌인 건, 단지 길을 묻기 위해서였지……

총웨

쉐이가 어디 있는지.

???

네가 말한 것들이, 그것과 함께 논할 가치가 있나?

???

너는 반응이 너무 느려.

총웨

이 땅에서 조정과 내 형제자매들 외에 그것에 관심을 가진 자가 더 있다는 걸 잠시 잊었을 뿐.

???

본말이 전도되어 너는 네가 뭐였는지도 잊었나 보군.

총웨

……


베헤모스를 만나려는 건 당연히 다른 베헤모스일 터.

총웨?

오랜……

총웨?

만이군.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말투였다.

은은한 한숨 소리, 냉소적인 비웃음, 또는 이를 갈며 으르렁대는 소리, 수많은 감정이 순간 폭발했다가 다시 사라졌다.

오랫동안 들리지 않았던 말소리가 아득한 추억의 깊숙한 곳에 파묻혀 있던 상처를 다시 후벼팠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그것과 그것, 그것들은 이렇게 멀리서 대화를 나눴으니.

......

내가 이 땅에 다시 돌아온 건, 당연히 우리 사이의 원한을 청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고작 기물 속에나 봉인된 한 가닥의 파편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나와 대화하려는 거지?!

내가 만나려는 것은 본래의 너다.

......

총웨

……

총웨

궁금한 게 하나 있다만.

총웨

그 사냥 이후로 귀공은 크게 다쳐 자취를 감췄고, 천지가 변해도 감감무소식이더니, 왜 하필 지금 염국으로 다시 돌아왔을까?

???

......

총웨

역시 내 아우가 귀공을 깨웠나 보군……

???

......

총웨

그렇다면, 귀공과 함께 나타난 산해중은……

???

놈들 말인가? 훗.

???

가는 길이 같아서 동행했을 뿐.

???

나는 사막에서 놈들을 만나, 내가 봤던 이 재앙에 대해 알려주고 약간의 위력만을 과시했을 뿐이다.

???

그랬더니 놈들은 어떻게 베헤모스에 이렇게 자세히 아냐며, 나를 베헤모스와 인간을 연결하는 사도라 믿더군.

???

개중에는 위선자도 있었고 경건한 자도 있었다. 자신들의 신앙이 얼마나 굳건한지 내게 보여주려고 애를 쓰더군.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는 베헤모스의 비늘이니 하는 파편들에 경배하면서 말이지.

???

놈들은 밤낮으로 동포의 악을 저주하고, 눈앞의 모든 질서를 뒤엎는 상상을 하며,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각을 숭배하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내가 대신 그들의 신앙을 전달해 주길 바랐어.

???

정작 자신들 옆에 있는 것이 신앙 그 자체라는 건 모른 채 말이야.

총웨

만약 귀공이 산해중과 손을 잡은 게 단지 우연이라면, 귀공은 처음부터 코어 중추실에 잠입하여 옥문의 항행 좌표를 이용해 쉐이의 위치를 알아내려고 했다는 말인데……

총웨

그렇다면, 산해중은 왜 나타난 거지?

총웨

옥문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데.

총웨

귀공을 만나기 전까지, 산해중은 옥문의 항로에 공교롭게도 재앙이 일어날 줄은 아마 꿈에도 몰랐을 테지.

???

인간의 시시한 음모엔 관심이 없어.

???

내겐 마침 혼란을 일으킬 사람이 필요했을 뿐.

총웨

인간의 말로 하자면…… '이용'이 되겠군. 귀공은 신도들을 이용한 거야.

???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총웨

……

???

히스테리에 걸린 무리가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더니, 급기야 자신의 존재를 뒤엎으려 하더라고.

???

그나마 태어나서 죽음을 기다리는 우매한 자들보다는 흥미로운 존재들이었어.

???

그렇다고 얼마나 흥미롭겠냐마는.

총웨

궁금하군. 자신이 그토록 신앙했던 '천지신명'이 자신을 이토록 경시하고 우롱하는 걸 알았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

우리와 같은 존재에게 그 하찮고 추악한 신앙이 과연 필요할까?

???

쉐이처럼 어리석은 놈이면 몰라도.

???

......

총웨

……

총웨

벌써 가려는 건가?

???

너랑 말을 섞는 건 단지 네가 그것의 파편이기 때문이야.

???

넌 이미 내 시간을 많이 낭비했어.

총웨

저번에 맞부딪혔을 때, 그토록 생생한 꽃향기와 봄 풍경은 역시 오리지늄 아츠로 절대 낼 수 없는 효과라는 걸 깨달았어야 했거늘.

총웨

사세대 최초의 고대 탁본 기록에 따르면, '야'라고 불리는 짐승이 있었는데, 세월을 베고 공간을 잘라 배 속에 넣었다 하더군……

???

너는 그것의 기억을 갖고 있으면서, 감히 인간의 방식으로 나를 부르는 것이냐!

???

'야'라고?

???

'쉐이'와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천박한 호칭이야!

세월을 베어?

인간이 시간을 가늠하는 방식은, 실로 가소롭다.

[CG: 35_i11]

이건 환상이 아니다. 이렇게 진실한 환상이 있을 리가 없다.

이것은 빠르게 흘러간 어느 한순간에 사라진 시점이자.

또 영원히 흘러가지 않는 지금, 이 순간의 시점이다.

시간은 이미 멈추었다.

팔천 년의 봄, 팔천 년의 가을.

강물은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나무들은 벽옥 빛을 띠었다. 환상처럼 흐릿하여, 아득한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외로운 쪽배 한 척에 둘은 각각 양쪽 끝에 서 있었다.

[CG: 35_i11]

잔잔한 물결이 배 밑으로부터 퍼져나갔다.

나를 잡아둘 셈인가?

총웨

그렇네.

총웨

귀공이 보여준 공간 능력은 확실히 오묘하지만, 나는 반드시 귀공을 붙잡아둬야겠어.

총웨

아니, 못 잡는다 해도 붙잡아 둘 걸세.

[CG: 35_i12]
총웨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나는 이미 옥문을 떠났겠지.

총웨

귀공에겐 재앙이든, 옥문이든 쉐이와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총웨

공교롭게도 내게 있어, 쉐이는, 내가 가장 개의치 않는 존재야.

총웨

귀공에겐 지금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이 그저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뜬구름에 불과하겠지만……

총웨

내게 있어, 그것은 파괴되고 있는 성벽이고, 무너지고 있는 집이며, 고통받고 있는 병사와 백성들이네.

총웨

그리고…… 한을 품고 죽은 옛 친구도 있지.

총웨

재앙은 아직 끝나지 않았네. 사람들은 심지어 귀공의 존재조차도 모르지. 그러니……

총웨

누군가는 옥문을 위해 도리를 따져야만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은, 나밖에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