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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질서

미니 스토리브릿지2026-08-13

레온투초, 라비니아, 드미트리, 그리고 시칠리아 부인까지…… 그들 모두 뉴 볼시니가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음을 알고 있다.

등장 오퍼레이터: 리프레사, 벨로네, 페넌스, 비질


???

정말 감사합니다, 레온투초 도련님!

???

도련님과 벨로네 패밀리가 아니었더라면 앞으로 어떻게 살지 정말 막막했을 거예요.

레온투초

……그런 말 하지 마, 엘리오 아저씨. 나는 별로 한 게 없어.

엘리오

도련님과 벨로네의 이름만 있어도 충분해요. 애초에 도련님이 뭘 더 하실 필요가 없었는걸요.

엘리오

집주인이 집세 독촉하러 왔을 때 도련님께서 집에 들러 주셨잖습니까. 도련님을 뵌 것만으로도 집주인이 마음을 조금 돌렸어요.

엘리오

도련님이 가시고 금세 2주를 더 미뤄주겠다고 하더군요. 이제 또 방법을 찾아봐야겠지만……

레온투초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왜 갑자기 이런 상황이…… 아저씨네 과일 가게는?

엘리오

과일 가게요? 하, 진작에 팔아버렸죠.

엘리오

우리 엠마가 여름에 고열에 시달렸거든요. 열은 내렸지만, 이후 갑자기 다리를 못 쓰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엘리오

다행히 드미트리가 좋은 의사를 소개해 줬어요. 의사 말로는 아이들이 여름에 걸리는 중병인데,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못 일어설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엘리오

그래서 당장 가게를 팔고, 친척들과 돈을 모아 치료비 일부를 냈어요. 나머지는 나중에 나눠서 갚기로 했죠.

엘리오

어쨌든 아이는 살렸고, 지금은 다리를 좀 절긴 해도 건강해요. 집세랑 의사에게 진 빚은…… 어떻게든 방법이 생기겠죠.

레온투초

……아저씨는 쭉 길모퉁이에서 가게를 운영했잖아. 나랑 드미트…… 우린 어릴 때부터 그 가게의 오렌지를 정말 좋아했어.

레온투초

오래된 이웃 사이이니, 진작 얘기했으면 내가 돈을 빌려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엘리오

아니, 아니에요, 레온투초 도련님. 그건 너무 큰돈입니다. 설령 도련님께서 빌려주신다고 해도, 저는 받을 수 없어요.

엘리오

그리고 도련님께 돈을 빌려도, 당장은 버틸 수 있어도 평생을 버틸 수는 없어요. 집세는 매주 내야 하고, 집주인은 또 찾아올 테니까요.

엘리오

그래도 이제 벨로네 패밀리의 비호 아래 있으니…… 집주인도 이젠 집세를 못 내면 당장 나가라는 소리를 하지 못해요. 빵집도 외상을 좀 봐주고요.

레온투초

……하지만, 아저씨는 분명…… 패밀리에 들어오고 싶어하지 않았잖아.

레온투초

평범한 사람은 패밀리와 엮일 필요도 없고, 엮여서도 안 된다고 항상 말했었지. 성실하게 일하며 자기 삶을 잘 꾸려나가는 게 최고라며.

엘리오

하하! 그건 제가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서 했던 순진한 말이죠.

엘리오

패밀리의 존재 의미가 싸움질이나 서로 죽이는 것뿐이겠습니까. 이 늙은이는 이제서야 깨달았어요.

레온투초

……

엘리오

걱정하지 마세요, 레온투초 도련님. 저는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엘리오

벨로네 패밀리의 도움을 받았으니, 나중에 이 늙은이가 어디 쓸 데가 있거든 언제든지 말씀만 하세요!

레온투초

……

레온투초

……일부러 그런 거지, 드미트리?

레온투초

전에 내가 엘리오 아저씨네 과일 가게가 왜 안 보이냐고 물었을 땐, 가족이랑 고향 친척 장례식에 갔다고 했었잖아.

레온투초

하지만, 엠마가 큰 병에 걸렸다는 걸 너는 알고 있었어.

레온투초

그저께 갑자기 내게 이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사달라고 부탁한 것도…… 엘리오 아저씨가 지나가면서 나를 볼 수 있다는 걸 진작 알고 있었던 거야.

드미트리

잘 대처하셨습니다, 레온.

레온투초

대처? 네가 유도한 대로 끌려다니는 게 무슨 대처야? 내가 진작 알았더라면……

드미트리

진작 아셨어도 달리할 수 있는 건 없었을 거예요. 당신은 그분 인생에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예측할 수 없고, 개인적으로 드릴 수 있는 도움도 극히 한정적이니까요.

레온투초

하지만 적어도 아저씨가 바라지 않았던 일만은 막을 수 있었겠지. 패밀리에 들어오는 것 말이야!

드미트리

지금 그분을 도울 수 있는 건 패밀리뿐이에요.

레온투초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패밀리의 이름을 내세워 부리는 허세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할지, 또 패밀리가 그 사람을 얼마나 오래 뒷받침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레온투초

그 사람한테 필요한 건 더 많은 일자리야. 그리고 우리…… 시라쿠사는 제도적으로 시민들의 삶을 보장해야 하지. 패밀리의 힘에 기대는 걸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드미트리

제가 이번 일을 통해 당신이 배웠으면 했던 건, 선행이나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아니었어요, 레온.

드미트리

당신은 벨로네 패밀리의 후계자입니다. 머지않아 이 패밀리를 이어받을 분이시라고요.

드미트리

적절한 때 도움을 주면, 사람들은 그 은혜를 잊지 않습니다. 훌륭한 보스라면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죠. 이렇게 빚을 만들어 두면, 언젠가 분명 도움이 될 날이 옵니다.

레온투초

말은 냉정하게 하는군, 드미트리. 그럼 왜 따로 엘리오 아저씨한테 의사를 소개해 줬지?

레온투초

단순히 은혜 베푸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다면, 그것도 내가 하게 뒀어야지. 안 그래?

레온투초

네가 그렇게 한 건, 그때 엠마의 병이 그렇게 심한 줄 몰랐고, 엘리오 아저씨가 과일 가게를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될 줄도 몰라서였겠지.

레온투초

그때의 넌 그저 아저씨를 돕고 싶었던 것뿐이잖아. 그건 패밀리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어.

드미트리

결국 우리는…… 힘이 닿는 범위 안의 일밖에 할 수 없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드미트리

그리고 엘리오 씨 가게의 오렌지는 언제나 가장 맛있었으니까요. 그분은 과일 고르는 눈이 정말 남다르시다니까요.


차레크

부디 제 와인 챔피언십에서 살인을 저지른 그 마피아 보스를 법대로 처벌해 주십시오! 시장님의 능력이라면, 이런 일은 간단하시겠죠?

레온투초

차레크 씨, 드미트리…… 아니, 벨로네에 대한 재판은 오늘 오후에 열릴 예정이야. 그전까지는 어디까지나 용의자에 불과해.

차레크

그 작자가 아니면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할 수 있답니까? 저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고 뒤에서 온갖 꼼수를 다 부린 인간입니다.

차레크

제 와인은 멀쩡히 저장고에 있었어요. 전문 경호 인력까지 따로 고용해서 지켰는데도, 결국 살루초 와이너리의 와인으로 바꿔치기 당했다고요!

차레크

살인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받은 처분이 가택연금이 다라니요.

차레크

게다가 그 집을 드나들며 문안 인사에, 위문에, 심지어 온갖 작당 모의를 하는 사람들은 전혀 줄지 않았다고요!

차레크

지금 뉴 볼시니 사람들은 다 그 작자가 무고하다고 말하고, 살루초 와이너리의 상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차레크

그런데 저, 이 늙고 가여운 라도스와프는 이 활기 넘치는 새 도시에서 조그맣게 장사나 해볼 요량으로 애를 써서 이벤트까지 열었는데, 수확이 하나도 없어요!

레온투초

하지만 카시미어에서 발행한 《레드 와인》 국제판이 이번 살인 사건을 연일 보도하면서, 덩달아 차레크 씨의 토너먼트도 명성이 크게 높아진 걸로 아는데.

레온투초

듣자하니 벌써 다음 와인 챔피언십 투자자를 모집 중이라고 하더군. 컬럼비아와 라이타니엔에서 온 와인 업체들도 출전 의향을 밝혔다지.

차레크

하지만 제 수확은 이것보다 훨씬 많아야 했어요. 지금 저는 그냥 손해를 최대한 줄이려 발버둥치는 것뿐입니다.

레온투초

차레크 씨, 우리는 《신도시 관리법》에 따라 도시 내 사무를 공정하게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어. 하지만 정부는 특정 상인 한 사람만을 위한 기관이 아니야.

레온투초

차레크 씨도, 다른 사람도 예외 없어.

차레크

그렇습니까? 벨로네 씨는 시장님과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다고 들었습니다만. 심지어 지금은 그 작자가 시장님 패밀리의 이름을 달고 있죠.

레온투초

난 이제 벨로네 패밀리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야.

차레크

하지만 그 작자가 패밀리의 멤버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죠. 그것도 시라쿠사의 최고 정통 패밀리요.

차레크

이 새로운 도시에서 상인 행세를 하고 있어도, 그 작자가 가장 잘 알고 가장 익숙하게 생각하는 건 결국 패밀리의 방식입니다.

레온투초

……증거를 가져와. 우리에게는 정식 재판이 필요해.

차레크

물론 절차야 당연히 밟아야죠. 알아요, 압니다.

차레크

다만, 부디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차레크

《신도시 관리법》이 반포된 이래로, 카시미어, 라이타니엔, 컬럼비아에서 적잖은 상인들이 이곳으로 무역하러 왔습니다.

차레크

저희가, 적어도 저희 상업연합회 소속 상인들이 시라쿠사의 다른 곳이 아닌 이곳을 택한 이유는 뉴 볼시니에 패밀리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장님께서 그렇게 약속했으니까요.

레온투초는 와인 상인이 떠나고도 한참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라비니아

많이 지쳐 보이네요. 또 그 와인 상인한테 시달렸나요? 아니면 드미트리 일 때문인가요?

레온투초

하아.

레온투초

그 상인은 우리가 공정하게 재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상업연합회를 내세우며 계속 나를 압박하는 거고.

라비니아

살루초 와이너리가 드미트리의 경영하에 뉴 볼시니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긴 했죠.

라비니아

하지만 어디까지나 현지 주류 업체인 만큼, 사업 규모만 놓고 보면 차레크 씨의 '골든 플레인'에 맞설 만한 실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라비니아

게다가 차레크 씨가 드미트리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건, 경쟁 상대이기 때문만도 아니고, 와인 챔피언십 사건 때문만도 아닐 거예요.

레온투초

드미트리는 그냥 차레크와 그 배후의 카시미어 상업연합회가 찾던 빌미일 뿐이지.

레온투초

지금 뉴 볼시니 상인치고, 한때 크든 작든 패밀리와 엮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어.

레온투초

그런데 만약 패밀리와의 연관이 현지 상인들을 옭아매는 빌미가 되고, 그 수법이 먹힌다면 뉴 볼시니의 산업은 강력한 압박을 받게 되겠지……

라비니아

하지만 우리에게 외국 자본가들이 필요한 건 사실이에요.

라비니아

그 사람들에게서 새 기술을 학습해야 하고, 그 사람들이 들여오는 자금과 상품도 필요하니까요.

레온투초

심지어 그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도 필요하지. 그런 부담이 우리의 산업을 한 단계 올라설 수 있게 해줄 테니까.

레온투초

나도 다 알고 있어.

레온투초

하지만, 라비니아, 지금 상황은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라비니아

맞아요. 애초에 우리는 그저 패밀리가 없는 도시를 만드는 걸 목표로, 어느 세력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공평하고 공정하게 이 이동도시의 사무를 처리하려고 했죠.

라비니아

하지만 현실은, 뉴 볼시니가 시라쿠사로 들어오려는 자들을 무방비하게 받아들이는 현관문이 되어, 온갖 속셈을 품은 외부인들을 잔뜩 맞이하고 있네요.

라비니아

가장 먼저 우리 《신도시 관리법》 조항의 허점을 파고든 게 카시미어인이었죠.

라비니아

차레크와 그 상인 동료들이 추진 중인 배타적인 상품 진열 계약만 해도, 현지의 각종 산업과 상품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어요.

레온투초

게다가 각종 상업 운송 계약에 거액의 위약금 조항을 넣어 현지 트럭 기사들도 압박하고 있지……

라비니아

맞아요. 에이레네의 말을 들어 보니, 상업연합회가 우리 정부의 운송보장국을 무력화하려는 것 같더군요.

라비니아

게다가 다른 부서가 올린 보고서에 따르면, 운송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의료 산업까지 잠식하려는 조짐이 보여요.

레온투초

……지난달 시청 데이터를 보면, 현지 서비스업 점포 상당수가 버티지 못하게 됐고, 제조업도 성장이 몹시 더딘 상황이야.

레온투초

외국계 회사와 상점은 꽤 많이 생겼지만, 자국 직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니…… 앞으로는 뉴 볼시니 사람을 고용하는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겠지.

레온투초

최대한 잡으려고 노력 중이지만, 물가도 여전히 오르는 추세야……

레온투초

뉴 볼시니 사람들의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아.

라비니아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건, 카시미어인, 컬럼비아인, 그리고……

라비니아

시라쿠사 전역에서, 심지어 각자의 목적을 품고 자국에서 건너온 라이타니엔인들까지 있죠.

레온투초

맞아. 그들 앞에서……

레온투초

우리가 추구하는 공평과 공정은 여전히 필요해. 그 점만큼은 언제나 굳게 믿고 있어.

레온투초

하지만 그런 이상을 위해, 뉴 볼시니 사람들의 삶을 갈아 넣어야만 한다면, 그 공평과 공정이라는 건 결국 형식에 지나지 않아.

라비니아

……맞아요.

레온투초

나는…… 계속 이 문제를 생각해 왔어.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신도시 관리법》에 새로운 수정안이 필요할 것 같아……

라비니아

이미 수정안을 하나 준비했어요. 한번 볼래요?

레온투초는 라비니아의 손에서 수정안 초안을 받아 들었다.

겨우 두 장 분량이라 금방 다 읽을 수 있었지만, 레온투초는 오래도록 반복해서 읽고 또 읽은 뒤에야 겨우 고개를 들었다.

레온투초

외국 상품에 관세를 추가로 부과한다……

레온투초

외국 상인의 운송, 금융, 에너지 등 핵심 분야 장악을 방지하기 위해, 과거 패밀리 세력을 하부 조직 관리에 영입한다……

레온투초

일부 패밀리가 운영하는 기업에 프랜차이즈 경영 허가증을 발급한다……

레온투초

이건…… 너무 심하지 않아?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이다, 정부가 패밀리에 이익을 갖다 바친다는 소리를 듣기 딱 좋겠는데.

레온투초

수정을 제안한 건 나지만, 이 조항들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네.

라비니아

걱정하는 거 알아요, 레온.

라비니아

당신이 그 누구보다 패밀리가 뉴 볼시니에 발붙이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것도요.

레온투초

그걸 알면서도, 외국 자본에 맞서기 위해 패밀리의 힘을 끌어들이자는 건가.

라비니아

레온, 우리 둘 다 알잖아요. 뉴 볼시니 정부, 우리의 권력은 시칠리아 부인의 일시적인 허락하에 얻어진 거예요.

라비니아

지금의 시라쿠사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건 여전히 패밀리뿐이고요.

라비니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패밀리 세력의 확장을 제한하고, 그들 서로 간의 다툼으로 인한 내적 소모를 방지하며, 패밀리 소속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이익이 침해받지 않도록 보장하는 거예요.

라비니아

쉬운 결정은 아니에요. 사실 이 수정안 초안도 지금 당장 내놓기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라비니아

뉴 볼시니 사람들 대다수가 여전히 외국 자본이 불러온 일자리와 값싸고 유행하는 상품을 누리고 있으니까요.

라비니아

카시미어인의 상업 논리가 불편함을 주기도 하지만, 예전에 패밀리끼리 칼부림하는 통에 일반 시민들이 겪었던 고통에 비하면……

라비니아

별문제로 느껴지지 않을 거예요.

사무실엔 침묵이 내려앉았다.

레온투초는 라비니아가 하는 말이 모두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도 한때 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결정을 내리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레온투초

무슨 말인지 알아.

레온투초

하지만 차레크와 상업연합회가 드미트리를 심판하는 데 필요했던 계기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과 이 도시의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계기가 필요해.

라비니아

네, 그 계기는 머지않아 올 거예요.


법정의 방청석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찼다. 오후에 열리는 이 재판이 얼마나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지 누가 봐도 분명했다.

뉴 볼시니 토박이 시라쿠사인뿐 아니라, 차레크의 카시미어 거래처 상인, 라이타니엔 악단 단원, 심지어 컬럼비아 상인들까지 방청석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이의 시선이 피고석에 앉은 드미트리 벨로네에게 모였다.

라비니아

《신도시 관리법》에 따라, 뉴 볼시니 형사 법정은 드미트리 벨로네의 파올라 살인 혐의 사건, 사건 번호 01452에 대한 심리를 개시합니다.

드미트리

……

라비니아

톰마소 에스포시토를 증인으로 소환합니다.

라비니아

에스포스토 씨, 당신은 살루초 와이너리의 매니저로, 살루초 와이너리의 화물 운송 조율을 담당하고 있습니까?

톰마소

네.

라비니아

2주 전, '골든 플레인' 와이너리가 주최한 와인 챔피언십 전날, 당신은 운송보장국의 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라비니아

그리고 살루초 와이너리의 와인 2병을 행사장으로 배송해달라고 요청했지요.

톰마소

맞습니다. 그맘때쯤 제가 너무 바빠서 챔피언십 출품 와인을 보내는 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거든요. 그래도 다행히 마지막 날에 생각이 났어요.

톰마소

하아, 장사가 너무 잘돼도 가끔은 탈이에요.

라비니아

샘은 오토바이 배송 도중, 운송보장국의 또 다른 직원 지아니가 사고를 낸 화물차와 마주쳤습니다. 지아니는 당시 '골든 플레인' 와이너리의 물건을 배송 중이었습니다.

라비니아

공교롭게도 지아니가 배송 중이던 화물은 '골든 플레인' 와이너리가 챔피언십 결선을 위해 준비한 와인이었습니다. 더 공교로운 건, 당신이 현장에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톰마소

그리 공교로울 건 없는 것 같은데요. 할 일을 끝까지 미루는 게 보통 사람들 습성이니까요.

톰마소

저는 단지 사장님께서 분부하신 일을 차질 없이 진행하려고 행사장에 가던 참이었어요. 가다가 마주친 거죠.

라비니아

사고 현장에서, 당신은 샘이 지아니를 구급차에 태우는 걸 도왔습니다. 그러고는 두 운전기사 대신 뒷수습도 해주었고요……

라비니아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이 살루초 와이너리의 와인 2병을, '골든 플레인' 와이너리가 행사장에 보낼 예정이던 와인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는 사실입니다.

톰마소

……'골든 플레인' 사람이 다른 운전기사가 올 거라고 해서, 일을 간편하게 처리하려 했던 겁니다. 어차피 목적지가 같으니까요.

라비니아

하지만 당신은 와인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골든 플레인'의 와인을 꺼냈습니다.

라비니아

그 결과, 챔피언십 결선에 올랐어야 할 와인, 운영 위원회에서 '골든 플레인'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와인은 살루초 와이너리의 것으로 바뀌었죠.

톰마소

그건 담당자들이 너무 허술했던 거죠!

톰마소

담당자들이 조금만 더 꼼꼼히 확인했다면 그런 실수가 있을 리 없었을 텐데요. 판사님, 그렇지 않습니까?

라비니아

……이상으로 질문을 마칩니다.

라비니아

레티치아 마로니를 증인으로 소환합니다.

라비니아

마로니 씨, 당신은 뉴 볼시니 경찰학교 소속 독물학 전문가이자 법의학자죠.

라비니아

이번 살인 사건에서, 당신은 파올라 씨를 부검하고, 관련 기물 및 와인을 검사했습니다.

레티치아

맞습니다.

라비니아

검사 결과를 간략히 설명해 주십시오.

레티치아

네, 판사님.

레티치아

부검 결과, 파올라 씨는 사이안화물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레티치아

파올라 씨가 사용한 와인 잔에서 사이안화물 잔류물이 검출됐습니다. 다만, 살루초 와이너리의 와인 자체에서는 사이안화물이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라비니아

즉, 범인은 살루초 와이너리의 와인에 독을 탄 것이 아니라, 와인 잔에 사이안화물을 발라 놓은 것이군요.

레티치아

현재까지의 증거로는 그러한 추론을 뒷받침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라비니아

리젤 메밍어를 증인으로 소환합니다.

단원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작은 체구의 카프리니가 걸어 나왔다. 그녀는 느리지만 단호하게 증인석으로 향했다.

라비니아

메밍어 씨, 당신은 슈바르처포어항 악단의 단원이자 피해자 파올라 씨의 양녀 맞습니까?

리젤

네.

라비니아

와인 챔피언십 당일, 당신은 관련 기물과 출품 와인이 보관된 와인 저장고를 점검하러 갔었지요.

리젤

네.

라비니아

그리고 와인 저장고 안에서, 경호 인력도 아니고 대회 참가자 측 인물도 아닌 누군가가 당신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리젤

……네.

라비니아

그 사람이 와인 저장고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셨습니까?

리젤

음…… 그 사람이 와인잔을 집어 드는 걸 봤어요. 하지만 그때는 좀 이상하다고만 생각한 게 다였어요.

리젤

저장고 안에 들어갔을 때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여서, 그냥 길을 잃은 관람객인가보다 했죠.

리젤

그렇지만……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았더라면, 곧바로 막았을 거예요. 그랬다면 엄마도……

리젤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며 점점 작아졌다.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몸을 움츠렸다가 다시 몸을 곧게 세웠다.

라비니아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라비니아

그 사람의 얼굴을 봤습니까?

리젤

스쳐 지나가는 순간 얼굴을 언뜻 보긴 했지만, 확실하게 보진 못했어요.

라비니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습니까?

리젤

아니요, 제가 아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차림새는 평범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행사장 경호원들의 눈을 피하려고 우리 악단의 단원인 척 위장했던 것 같았어요.

리젤

그 사람의 정체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사람이…… 시라쿠사에서 흔히 보이는 페로나 루포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리젤

그 사람 머리에 카프리니 특유의 커다란 뿔이 있었어요.

돌멩이가 물에 떨어져 파문을 일으키듯, 법정 안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번져나갔다.

라비니아가 몇 차례 더 질문을 이어가자, 리젤은 당시 단원들이 뭘 했는지 하나하나 막힘없이 진술하며 그들의 알리바이를 입증했다.

하지만 이미 아무도 그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성급한 배심원

그러면 벨로네가 범인이 아니네요. 애초에 단정 지을 근거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성급한 배심원

와인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그가, 악단 지휘자를 죽여서 얻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의심 많은 배심원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숨은 사정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의심 많은 배심원

카프리니를 고용한 것일 수도 있잖습니까?

차레크

그 작자의 부하는 우리가 인수한 와이너리를 일부러 망가뜨린 적도 있습니다. 줄곧 우리의 상업 활동을 방해했다고요!

라비니아

정숙하세요! 법정 질서를 지키십시오!

라비니아

엘리오 파브리를 증인으로 소환합니다.

레온투초는 놀란 눈으로 그 낯익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엘리오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엘리오가 뉴 볼시니에 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라비니아

파브리 씨, 당신은 살루초 와이너리의 직원으로, 회사의 와인 생산에 필요한 포도 원재료 구매를 담당하고 있지요.

엘리오

그렇습니다, 판사님.

라비니아

3주 전, 당신은 살루초 와이너리의 원재료 구매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베르디 와이너리와 접촉했습니다.

엘리오

카시미어의 와인 기업이 뉴 볼시니에 들어온 뒤로 베르디 와이너리의 사업은 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베르디 와이너리의 포도밭에서 생산되는 포도의 향미는 언제나 최고였지요.

엘리오

저희 회사는 베르디 와이너리와 오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그쪽 생산 규모로 감당하지 못하는 잉여 원재료를 구매해왔습니다.

엘리오

이번 접촉도 통상적인 업무의 일환이었을 뿐입니다.

라비니아

하지만 해당 접촉 과정에서, '골든 플레인' 와이너리가 베르디 와이너리를 곧 인수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엘리오

……그렇습니다.

라비니아

그래서 당신은 베르디 와이너리의 직원 니콜로와 공모하여 와이너리 내의 생산 설비를 훼손했습니다.

라비니아

또한, 단독으로 와이너리의 급배수 시설을 훼손했습니다. 그 결과, '골든 플레인'은 와이너리를 인수한 뒤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을 지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엘리오

……맞습니다.

라비니아

당신의 그러한 행동은 불공정 경쟁에 해당하며, 《신도시 관리법》 관련 조항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요.

라비니아

왜 그런 행동을 했습니까? 살루초 와이너리의 사장 드미트리 벨로네의 지시를 받은 것입니까?

라비니아

드미트리가 '골든 플레인'의 정상적인 상업 활동을 방해하려 했습니까?

엘리오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방청석의 카시미어 상인은 이미 조용해졌고, 다시 여유로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한편, 레온투초는 피고석에 앉은 드미트리의 평온한 표정 아래 감추어진 진짜 감정이 뭔지 읽을 수 없었다.

엘리오

저는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았습니다, 판사님.

엘리오

제가 한 그 모든 일은, 오직 뉴 볼시니인, 그리고 시라쿠사인으로서 제가 가진 양심과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엘리오

네, '골든 플레인'은 저희의 경쟁 상대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저는 이 카시미어 기업이 쓰는 수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엘리오

그들은 헐값에 상품을 쏟아내 현지 소규모 와이너리들의 활로를 틀어막고, 버티지 못하는 현지 업체들을 인수합병으로 사들입니다.

엘리오

하지만 인수한 뒤에는 제대로 경영하지도 않고, 그 와이너리들이 저마다 지녀온 전통 양조 방식과 상품은 더더욱 보전하지 않습니다.

엘리오

그들은 이윤과 효율만을 명목으로 내세워 기존 직원들을 해고하고, 잠깐 운영하는 시늉만 하다가 와이너리들을 폐업시키고 황폐해진 포도밭을 방치합니다.

엘리오

그들은 베르디 와이너리 이전에도 파사디 힐스, 드리즐, 트립틱 와이너리를 인수했었습니다만……

엘리오

모든 와이너리가 같은 꼴을 당했습니다.

엘리오

이게 바로 카시미어의 상업 논리입니다.

엘리오

그 사람들은 우리가 포도나무를 가꾸기 위해 쏟아온 수고도, 전통 와인의 약간 떫고 독특한 맛 안에 담긴 삶과 추억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엘리오

그저 이런 식으로 힘없는 경쟁 상대를 하나씩 제거하고, 자기네 상품으로 우리의 진열대를 독점할 생각만 할 뿐입니다.

엘리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결국 선택지를 뺏기게 될 겁니다. 그때가 돼도 그들이 제공하는 상품이 지금처럼 저렴할지, 저는 의문입니다.

라비니아

……일리 있는 의견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위법 수단을 사용한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엘리오

네, 알고 있습니다.

엘리오

제가 한 일이 와인 산업은 물론, 다른 산업 전반에서 전진하는 카시미어인들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압니다.

엘리오

하지만 뭐라도 해야만 했습니다. 당연히 그에 합당한 벌을 받을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방청석이 다시 웅성대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점점 더 크고 높아졌다.

라비니아는 의사봉을 들어 올렸지만, 오랫동안 내리치지 않았다.

드미트리

판사님, 잠깐 말씀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라비니아

……말씀하세요.

드미트리

지금까지의 증언으로, 제가 파올라 씨 살해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드미트리

그렇다고는 해도, 엘리오 파브리 씨가 저희 직원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드미트리

더불어, 제가 지시한 건 아니지만, 파브리 씨가 '골든 플레인'을 상대로 《신도시 관리법》에 저촉되는 행동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드미트리

물론, 파브리 씨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는 저뿐만 아니라 방청석에 계신 뉴 볼시니 시민 여러분께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드미트리

하지만 위법은 위법입니다. 법원의 너그러운 용서를 바라는 마음은 없습니다.

드미트리

다만, 파브리 씨의 고용주로서 제가 대신 상응하는 처벌을 받겠습니다. 벌금이든, 징역이든요.

웅성거리는 소리는 이제 의사봉 소리로도 억누를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방청석 뒷줄의 신문 기자들은 자사에 연락을 취하기 위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라비니아는 재판 종료를 선언하며, 판결은 배심원단의 협의가 끝난 후 며칠 뒤 다시 선고하겠다고 말했다.

혼란 속에서, 레온투초는 드미트리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드미트리는 손을 들어 검지와 중지를 모아 레온투초를 살짝 가리키고는, 다시 자신을 가리켰다.

그건 두 사람이 어릴 때부터 써온,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라는 의미의 신호였다.

하지만, 레온투초는 그에 응하지 않았다.

경비

네, 벨로네 저택을 감시하는 팀과 확인했는데, 엘리오 파브리는 파올라 씨가 피살된 이후 드미트리 벨로네의 거처를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경비

두 사람 사이의 전화 연락도 감청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레온투초

……그러니까 그 사람이 법정에서 한 발언은 전적으로 자발적 의사였다는 말이군.

경비

현재로서는 그렇게 보입니다.

경비

배심원단의 결론이 아직 나오지 않아서, 당분간은 벨로네 저택을 계속 감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파브리 씨는 이곳에 구금했습니다.

레온투초

단둘이 얘기하고 싶어.

경비

그러시죠.


레온투초

……엘리오 아저씨.

레온투초

당신도 뉴 볼시니에 온 줄 몰랐어.

엘리오

그래요? 시장님과 라비니아 판사님이 벨로네 패밀리 멤버들의 출입 신청을 엄격히 심사하셨을 때, 제 이름도 보셨을 줄 알았어요.

레온투초

미처 못 봤어…… 그런데 아저씨는 왜 아직도 벨로네 패밀리에 있는 거야?

레온투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벨로네 패밀리는 완전히 힘을 잃어서, 패밀리를 떠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텐데…… 아저씨가 패밀리의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

엘리오

떠난들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과일 가게도 팔았고, 엠마는 병의 후유증 때문에 계속 약이 필요했어요. 저는 계속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있었습니다……

엘리오

드미트리 나리께서 저를 와이너리에 불러들여 원료 매입 업무를 맡겨 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을 거예요!

레온투초

뉴 볼시니는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어……

엘리오

그런가요? 하지만 지금처럼 카시미어 상인의 압박 속에서, 개인이 작은 장사를 시작한다고 한들 정말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레온투초

그런데 당신이 한 파괴 행위는 과거 패밀리의 방식이랑 다를 바 없잖아……

엘리오

패밀리의 방식이라…… 확실히 그 말을 들으면 도련님도 저도, 그리고 뉴 볼시니의 그 누구라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를 연상하게 되겠지요.

엘리오

제 행동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나마 다행히 라비니아 판사님은 제가 법정에서 해명할 기회를 주셨지요.

레온투초

……라비니아가…… 당신을 증인으로 불렀다고?

엘리오

네.

엘리오

때로는 선택의 여지 없이,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레온투초

……

엘리오

아까 제게 왜 아직도 드미트리 나리 밑에서 일하냐고 물으셨죠.

엘리오

그건 그분이 아직까지 패밀리의 가장 근본적인 신조를 지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오

힘없는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누구도 더 거대한 것에 삼켜지지 않도록 가능한 한 약자를 돕는 것이요.

엘리오

도련님의 취임 연설도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가슴이 뜨거워지는 연설이었어요.

엘리오

그때 도련님은 물으셨죠. 이웃 국가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과연 우리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라볼 것인가?

엘리오

제가 보기에 그들은 지금 확실히 우리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기네 주머니를 불리는 데 쓰일 새로운 가능성으로요!

엘리오

네, 저는 드미트리 나리 밑에서 일합니다.

엘리오

하지만 제가 마음에 두는 것, 제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벨로네 패밀리의 산업뿐일까요?

엘리오

아니요, 우리 자신의 산업입니다! 드미트리 나리가 우리에게 주신 건, 힘을 합쳐 상업 거물들과 맞서 싸울 기회입니다!

레온투초

……


차레크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살인범의 오명을 벗으셨군요, 벨로네 씨!

드미트리

그런가요? 저는 이 도시에서, 이 일로 제가 잡혀 들어가길 가장 바라는 분이 바로 당신인 줄 알았는데요.

차레크

단순한 오해였을 뿐이죠!

차레크

법정 재판으로 당신의 결백이 명백히 드러났고, 온 도시 사람들이 당신의 기품을 알게 됐습니다.

차레크

챔피언십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가 있긴 했습니다만, 살루초 와이너리의 와인이 우승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차레크

이제 살루초 와이너리가 뉴 볼시니 와인 업계의 최고 브랜드가 됐으니, 정말이지 부럽기 짝이 없어요!

드미트리

그쪽 덕분입니다.

차레크

……하하하.

차레크

다음 챔피언십에도 물론 참가하시겠죠? 타이틀을 지켜낸다면 정말 멋진 스토리가 될 겁니다!

드미트리

글쎄요.

드미트리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 살루초 와이너리가 뉴 볼시니 와인 업계의 최고 브랜드가 되었으니……

드미트리

이제는 굳이 와인 챔피언십 같은 행사를 빌려 제 상품의 가치를 끌어올릴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차레크

……그렇긴 하죠. 하지만 엘리오 파브리가 지금은 '골든 플레인' 와이너리의 소유가 된 와이너리의 급배수 시설을 훼손한 일로 당신도 영향을 좀 받지 않겠습니까.

차레크

그 사람을 대신해 벌금도 내고 형까지 대신 치르겠다고 하신 자세야 대단합니다만, 굳이 실제로 이행하실 필요는 없을 테지요.

차레크

이 정도 사소한 일은 애초에 기소가 가능한 사건도 아니니, 제가 소송만 제기하지 않으면 그냥 없던 일로 지나갈 수 있습니다.

드미트리

차레크 씨, 이제 그만 돌려 말하시죠.

드미트리

진짜 목적이 뭡니까? 저와의 관계를 회복할 목적으로만 그런 사소한 호의를 베풀려는 게 아닐 텐데요.

차레크

하하, 역시 시원시원해서 좋네요.

차레크

출신이야 어떻든, 지금은 우리 모두 상인입니다. 벨로네 씨, 속 터놓고 비즈니스 하나를 상의하고 싶은데……

차레크

우리 '골든 플레인'이 살루초 와이너리에 투자하게 해주세요. 강자끼리 힘을 합치면 시라쿠사 시장을 석권할 수 있을 겁니다.

차레크

시간이 더 지나면 우리의 사업은 시라쿠사와 카시미어를 넘어, 훨씬 더 넓은 곳으로 뻗어 나갈 겁니다!

드미트리

오, 그렇습니까.

차레크

물론이죠! 지금 당신에게는 자금도, 생산 기술도, 뉴 볼시니 현지 인지도도 부족하지 않겠죠.

차레크

하지만 아시다시피, 제 뒤에는 카시미어의 상업연합회가 있습니다.

차레크

손을 잡는다면, 당신은 상업연합회의 각종 자원을 활용할 수 있어요……

차레크

원재료, 유통망, 심지어는 우리와 거래하는 언론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차레크

당신처럼 수완도 좋고 배짱도 있는 젊은 사업가가 본인 이름도 안 달린 와인 산업 하나만 지키고 있을 생각입니까?

차레크

언젠가 '벨로네', 아니, '드미트리'라는 이름을 내건 상업 제국을 세우겠다는 꿈을 꿔본 적 없습니까?

드미트리

……

드미트리

흥미로운 말씀이군요.

드미트리

이번 재판의 결과가 당신네 기업과 당신의 판단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습니다.

차레크

재판이 우리 와이너리에 다소 영향을 주긴 했습니다만, '골든 플레인'의 상품은 여전히 가격 경쟁력이 있으니……

드미트리

저와 손잡으러 오신 건, 상업연합회의 뜻이겠죠.

차레크

……

차레크

우리는 상인입니다, 드미트리 씨. 우리는 태생적으로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에요.

차레크

비즈니스 협상에서는 개인적인 호불호와 가치 판단은 잠시 내려놓고, 가장 유리한 결과만을 추구해야죠.

차레크

당신 직원의 말대로, 이게 바로 카시미어의 상업 논리입니다.

차레크

젊은 친구, 잘 생각해 보세요. 서둘러 거절하지 말고요.

드미트리

거절이요? 제가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레온투초가 드미트리의 거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비가 가늘어지더니, 점차 그칠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CG: 071_mini02]

아직 철수하지 않은 시청 경비가 벨로네 저택 앞에서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만남을 청한 드미트리가 나와 맞이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드미트리는 그저 패밀리의 오랜 규칙에 따라 보스만이 앉을 수 있는 그 의자에 앉아,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둑한 빛이 부드럽게 그의 머리 위에 내려앉아,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레온투초는 문득 드미트리의 표정을 제대로 본 게 꽤 오래되었음을 깨달았다.

드미트리

그래도 왔군요.

레온투초

……응. 네가 만나자며. 그 손짓 기억하고 있어.


드미트리

한잔하시겠어요? 좋아하시는 사과 주스를 베이스로 사과 생강 피즈를 만들어 드릴 수 있는데.

드미트리

요즘 뉴 볼시니에서는 전통 방식으로 압착한 사과 주스를 구하기가 많이 어려워졌잖아요. 못 마신 지 한참 됐죠?

드미트리

일부러 부탁해서 좀 챙겨뒀습니다.

레온투초

……옛날 얘기나 하자고 나를 부른 게 아닐 텐데.

드미트리

그렇게 경계하실 것 없어요.

레온투초

오면서 카시미어인의 차가 나가는 걸 본 것 같다만.

드미트리

'골든 플레인'의 사장입니다.

레온투초

차레크? 무슨 일로?

드미트리

살루초 와이너리와 협력하고 싶다더군요.

드미트리

저도 동의했고요.

레온투초

왜지?!

드미트리

왜냐니요? 이게 바로 시청이 바라던 일 아닙니까?

드미트리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현지 산업의 도약을 돕고, 뉴 볼시니, 나아가 시라쿠사의 사업을 더 넓은 곳에 편입시키려고 했잖아요.

드미트리

차레크 씨가 상업연합회의 제안을 들고 와서, 좋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어요.

레온투초

……카시미어 상인들은 그렇게 선하지 않아.

드미트리

저를 걱정하시는군요.

레온투초

……살루초 패밀리의 사업을 손에 넣는 건 어떻게든 해냈겠지. 그렇다고 해서 카시미어인을 상대로도 이득을 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

드미트리

해봐야 알죠.

드미트리

그리고, 시청이 우리 현지 기업의 이익을 지켜줄 거잖아요. 그렇죠?

드미트리

《신도시 관리법》 수정안이 지금 당신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다는 걸 압니다. 아직 서명하지 않았을 뿐이죠.

레온투초

……네가 어떻게……?

드미트리

뭐, 대놓고 쓰기 어려운 패밀리의 수단이죠.

드미트리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언제나 더 많은 정보를 쥐고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요……

드미트리

예전에 당신을 패밀리 보스로 키울 때 가르쳐드렸을 텐데요.

레온투초

그 수정안은…… 그냥 초안일 뿐이야.

레온투초

서명하지 않을 수도 있어.

드미트리

망설이고 있군요. 저도 알아요. 결심을 내리기 어렵겠죠.

드미트리

당신은 비난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어요. 지금껏 이뤄온 것들이 물거품이 될까 봐, 뉴 볼시니가 다시 예전 패밀리의 길을 걸을까 봐 두려운 거예요.

레온투초

당연히 두렵지 않겠어? 모두에게 익숙한 옛 방식으로 돌아가는 건 쉬운 일이야. 게다가 새로운 불씨는 너무나 약하지.

레온투초

뉴 볼시니 밖에서 각 패밀리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어.

레온투초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우리는 찢어발겨지고 말 거다.

드미트리

하지만 지금 당신이 맞서야 할 건, 더 이상 패밀리뿐만이 아닙니다.

드미트리

《신도시 관리법》의 허점을 파고드는 카시미어와 컬럼비아 상인들, 그리고 뉴 볼시니에서 영향력을 확장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라이타니엔인까지……

드미트리

알고 계십니까? 와인 챔피언십 직전에 뜻밖의 정보 하나를 손에 넣었거든요.

드미트리

라이타니엔에서 이곳으로 파견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망명자 파올라 메밍어를 제거하기 위해 보내진 거였죠.

드미트리

그 '영원한 은총'이라는 분은 라이타니엔 영토 밖에서조차 자신을 찬양하지 않는 소리를 허용하지 않는 모양이더군요.

레온투초

……그걸 이용한 거였군.

드미트리

부추긴 건 아니에요. 그냥 내버려둔 것뿐이죠.

드미트리

다행히 결과는 나쁘지 않았고, 당신도 덕분에 《신도시 관리법》을 수정할 절호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드미트리

이게 바로 당신들이 기다리던 계기 아닙니까?

드미트리

라비니아도 그걸 노리고 이번 재판을 준비한 걸 텐데요.

레온투초

외국 자본을 제한할 생각을 하고 있는 건 맞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미트리

우리 같은 현지 상인들 말고 더 좋은 기댈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드미트리

패밀리 배경이 있든 없든, 적어도 우리는 모두 뉴 볼시니에서 당신의 규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드미트리

우리는 당신의 버팀목이 될 수 있습니다.

레온투초

……

레온투초

껍데기뿐인 약속은 아무 의미가 없어.

드미트리

당신이 패밀리를 의심하고 있는 건 압니다.

드미트리

하지만 최초의 패밀리는 시라쿠사의 황량함과 혼란함에 맞설 힘이 없는 약자들의 모임에 불과했습니다.

드미트리

주변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언젠가 돌아올 약간의 보답으로 삶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할 뿐이었죠.

드미트리

시라쿠사인은 자기 가족을 돌봅니다. 이게 우리의 전통이고, 제가 쭉 해온 일입니다.

드미트리

그래서 보스가 죽고 당신이 떠난 뒤에야 제가 벨로네 패밀리 보스의 중책을 짊어진 겁니다.

드미트리

벨로네 패밀리 멤버들을 갈 곳 잃은 사람들로 만들 수는 없었으니까요.

드미트리

당신이 카시미어인, 라이타니엔인, 컬럼비아인 앞에서 시라쿠사인이 무너지게 내버려둘 수 없는 것처럼요.

드미트리

그렇지 않습니까?

레온투초

……

드미트리

당신은 큰일을 할 사람입니다, 레온.

드미트리

언젠가 당신은 시라쿠사에서 당신의 생각을 실현할 수 있을 겁니다. 전 늘 그렇게 믿어요.

레온투초

전에도 나한테 그 말을 했었지…… 드미트리.

레온투초

그때 나는 너한테 내 오른팔이 되라고 했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어. 시청으로 와서……

드미트리

아뇨. 전 라비니아와 정말 맞지 않아서요.

드미트리

그리고 당신이 그때 말했잖아요. 라비니아가 해야 할 일도 있지만, 어떤 일들은 제게 더 어울린다고요.

드미트리

지금처럼요. 시청이 추진하기에 알맞은 일이 있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듯이.

드미트리

당신의 이상만으로는 뉴 볼시니를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이 도시는 옛 패밀리들의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레온투초

그렇게 확신하는 걸 보니……

레온투초

시칠리아 부인을 만나고 온 모양이군.

드미트리

당신도 그 부인을 잘 알지 않습니까. 그분은 포부 있는 젊은이를 만나는 걸 즐기시죠.

레온투초

……

드미트리

당신이 만든 규칙은 뉴 볼시니에서 패밀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기준이 될 거고, 저의 방식은 모든 시라쿠사인의 역량과 정신을 하나로 결집하는 힘이 될 겁니다.

드미트리

그리고 그건 이 도시의 새로운 '총과 질서'가 될 겁니다, 레온투초.


[CG: 071_mini02]

자리를 뜰 때, 드미트리는 레온투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협력의 신호였다. 레온투초는 잠시 망설이다가 손을 내밀었다.

한때 둘은 어깨동무도 하고, 포옹도 하고, 함께 웃고 떠드는 사이였다. 하지만 이렇게 격식을 차려 악수를 나누는 건 처음이었다.

맞잡았던 손이 떨어지자, 드미트리는 다시 그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마침내 그는 레온투초의 아버지처럼, 시라쿠사 모든 패밀리의 보스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비가 그쳤다. 비가 내린 뒤의 하늘은 의외로 맑고 고요했다.

레온투초

그 수정안…… 분하지는 않아? 라비니아.

레온투초

우리가 얼마나 시라쿠사에서 패밀리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어 했는데.

라비니아

전 벨로네 패밀리의 비호 아래서 십 년 이상을 보냈어요, 레온.

라비니아

조금 더 기다리는 것쯤은 상관없어요.

레온투초

……나도 마찬가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