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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지 않은 소리

미니 스토리브릿지2026-08-13

뉴 볼시니에서 집을 잃은 리젤에게 집의 온기를 되찾아준 건 파올라였다. 이제 파올라마저 세상을 떠난 지금, 그녀는 또 어떻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할까?

등장 오퍼레이터: 리프레사


파올라

이 조명 참 멋진걸. 네 눈을 에메랄드처럼 돋보이게 해주잖아. 오, 에메랄드빛 눈을 가진 착한 딸이 있다니, 나는 정말 복도 많지.

리젤

내가 무대에서 지휘하는 것도 아니잖아……

리젤

하지만 정말 복이 많긴 해. 나처럼 공연 일정 관리랑 악단 사무를 완벽하게 처리해 주는 딸이 있으니까!

파올라

하하, 맞는 말이야. 그럼 우리 딸, 내일 새로 개업할 쇼핑몰과의 비즈니스 미팅도 부탁할게. 문제없겠지?

파올라

나는 떠오른 악상이 있어서, 오늘 와인 챔피언십이 끝난 뒤에 작업 좀 하려고.

리젤

물론이지. 걱정하지 말고, 나한테 맡겨.

리젤

얼른 올라가 봐. 곧 공연이 시작한다.

리젤

오늘이 지나고 우리 슈바르처포어항 악단이 유명해지면, 앞으로는 정말 바빠질 거야.

무대 위의 조명이 무대 커튼 틈새를 통과해 지휘봉을 잡은 카프리니의 높이 솟은 뿔을 비추었다.


그때 그녀는 실루엣 하나를 본 게 다였다.

지하 저장고 천장의 조명이 비스듬히 쏟아지고, 유리잔의 빛이 누군가의 흔들리는 그림자를 따라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리젤은 가까이 다가가 상대가 길을 잃어 지하 저장고에 잘못 들어온 건지 확인하고,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막 걸음을 내디뎠을 때, 그 사람은 발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재빨리 돌아서서 선반 사이를 가볍게 지나갔다.

상대가 그녀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조명이 그의 어깨에 닿았다. 그의 새카만 후드 위에 높이 솟은 뿔이 있었다.

리젤

뿔? 카프리니…… 뿔인데?

파올라

……죄송합니다.

파올라

콜록, 콜록콜록……!


지나치게 밝은 극장 조명이 바닥에 쓰러진 파올라를 비추고 있었다. 그 주위로 흩어진 술이 선혈처럼 눈을 찔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를 칭찬하며 부드럽게 웃던 어머니의 입술이, 와인만큼이나 짙고 불길한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조명은 리젤 눈앞의 광경이 흐릿해 보이기 시작할 정도로 밝았다. 하지만 그렇게 밝은 조명 아래에서도, 떠있는 파올라의 눈에서는 그 어떤 빛도 볼 수 없었다.

리젤

파올라…… 엄마……?

리젤

엄마!!


???

……리젤 씨?

리젤

……어?

차레크

방금 말씀드린 대로, 추후 협력과 대금 지급 사안은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처리하지요.

차레크

리젤 씨도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으시죠?

리젤

아, 미안, 방금 잠깐 딴생각을 했어……

차레크

괜찮아요, 이해해요. 그렇게 큰 충격을 받으신 와중에도 악단을 지탱해야 하니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차레크

에휴, 파올라 씨의 일은 저도 다시 한번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차레크

그렇게 아름답고 뛰어난 예술가를 잃다니, 이 도시의 막대한 손실입니다!

차레크

저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양녀이신 리젤 씨는 오죽하시겠어요.

리젤

고마워……

차레크

부디 얼른 기운 내시기 바랍니다! 위로차 준비한 물건들이 있으니, 가져가서 악단 단원들에게 나눠주세요.

리젤

신경 써줘서 고마워. 당신과 함께 일하게 되어 영광이었어.

리젤

그럼 공연료는……

차레크

걱정하지 마세요. 지급한 계약금은 물론 돌려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요.

차레크

다만 방금 말씀드린 대로, 앞으로 저희는 귀 악단과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어요.

차레크

단원 모두들도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하루빨리 이 고비를 넘기시기 바랍니다.

리젤

뭐, 뭐라고?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다고?

차레크

맞아요. 파올라 씨라는 보석이 사라졌으니, 악단도 중심을 잃은 거나 다름없지요. 당분간은 공연 수준이 예전만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차레크

아무래도 저희는 상인이지, 자선가가 아니니까요…… 죄송해요, 제가 너무 솔직했나요?

리젤

그, 그럼 원래 잡혀 있던 내일이랑 모레 공연은……

차레크

당연히 취소죠…… 원래는 극장에서 이틀 더 공연하면서 뉴 볼시니 시민들의 시음 행사 참여를 유도할 예정이었어요.

차레크

그런데 그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시청에서 극장을 봉쇄하고 수사하기 시작했으니, 행사를 이어 나가려야 이어 나갈 수가 있어야죠……

차레크

하아, 저도 정말 손해가 크답니다!

리젤

……그럼 전에 진행한 공연 비용은? 와인 챔피언십 개최 전에 홍보용으로 했던 며칠 동안의 공연은 아무 문제 없었잖아! 반응도 엄청 좋았고……

차레크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잖아요. “불가항력으로 인해 공연이 중단 또는 취소될 경우, 갑은 잔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라고.

차레크

다시 말해, 모든 공연이 순조롭게 완료되어야만 저희가 나머지 대금을 지급한다는 거죠.

차레크

리젤 씨가 아직 슬픔에 빠져 계셔서 조항을 잊으신 게 아닐까요?

리젤

아니, 그건……

차레크

아무도 이런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희도 손해가 막심하니, 리젤 씨와 악단 여러분이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차레크

저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더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최선을 다해 도울게요.

리젤

……

리젤

……알았어.

리젤

나중에 악단의 공연이 필요하면 연락 줘.

차레크

그야 물론이죠.

차레크

그런데 이제 파올라 씨 없이 활동을 순조롭게 이어 나갈 수 있을까요?


팀파니

리젤, 드디어 왔구나!

팀파니는 그녀를 연습실 소파 한가운데로 끌어 앉히고는, 자신도 옆자리에 앉아 어색하게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등을 꼿꼿이 펴고 앉아 씩씩한 척하려 애를 썼지만, 두 눈은 온통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팀파니

하아, 차레크 씨도 참. 자기랑 계약한 파올라가 죽었으니, 양녀랑 얘기하겠다고 우기다니.

팀파니

다들 우리랑 얘기하면 된다고 했는데 말이다. 파올라가 떠나고 제일 힘든 게 너인데, 지금 같은 때 너를 콕 집어서 그러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냐?

바순

그러니까 말이야. 그놈이 너희 모녀 사이에 대해 뭘 안다고. 눈이 이렇게 부은 거 보면, 어젯밤에 혼자 얼마나 울었을지 안 봐도 알겠는데!

트롬본

리젤, 너는 그냥 앉아만 있어. 요 며칠은 아무 걱정 하지 마. 무슨 일 있으면 삼촌이랑 이모들이 다 처리할 테니까.

트롬본

에휴, 돈 아끼려고 청소 같은 궂은일도 다 도맡아 한 앤데. 이 작은 손에 굳은살이 도대체……

리젤

어? 아니, 나는 괜찮아……

리젤

삼촌, 이모들이야말로 이런 자잘한 일로 신경 쓸 것 없어. 다들 마음 편히 연습만 하면 돼, 연습만 하면……

팀파니

연습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차레크 씨가 이제 우리 공연은 어쩔 거라든? 전에 정해둔 곡으로 계속 공연하는 거야? 아니면 새 곡으로?

트롬본

하지만 파올라가 새 곡을 다 못 썼잖아……

리젤

그게……

리젤

앞으로의 공연은……다 취소됐어.

리젤

그리고, 차레크 씨가 하는 말이…… 계약서에 공연이 전부 다 끝나야 잔금을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지금……

팀파니

뭐?! 그 *라이타니엔 욕설*, 빌어먹을 카시미어 *라이타니엔 욕설*!

트롬본

(작은 목소리로) 야, 팀파니!

팀파니가 뭔가 더 욕을 쏟아내려던 찰나, 트롬본이 그를 슬며시 꼬집으며 눈짓으로 소파에 앉은 소녀를 가리켰다.

팀파니

아이고! 미안하다, 리젤. 삼촌이 너한테 화낸 게 아니야. 무서워하지 마.

팀파니

차레크 그놈이 애나 괴롭히고 있었다니, 인정머리라곤 쥐뿔도 없는 놈이야! 와인 챔피언십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애가 아직 마음도 못 추슬렀는데!

트롬본

리젤, 일단 방에 들어가서 좀 자. 어제부터 여태 제대로 못 잤지?

트롬본

이모가 네 방에 치스티밀크 데워서 갖다 놓았으니까 그거라도 좀 마셔…… 참, 식었겠다. 다시 데워줄까?

리젤은 뭔가를 말하려 입을 벌렸다. 그녀 눈앞의 트롬본, 팀파니, 그리고 악단의 다른 단원 모두 눈가가 빨개진 채 지칠 대로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힘없이 고개만 가로젓고는 자리를 떠났다.

연습실에서 복도로 나온 리젤은 벽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자 단원들이 작은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바순

이제 우린 어쩌지?

바순

파올라도 없고, 공연료도 날아갔어.

바순

와인 챔피언십인지 뭔지로 이름이나 좀 알려서 다른 일도 받아볼까 했더니. 지금 와서 또 새 일감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테고……

트롬본

연습실 빌리는 것도 돈이고, 악기 관리하는 것도 돈이야. 그리고 밥도 먹어야 하고.

트롬본

파올라도 저축해둔 돈이 없잖아. 돈이 좀 생기면 다 나눠줬는데……

팀파니

지금 우리가 가진 걸 싹싹 긁어모으면 열흘에서 보름쯤은 버틸 수 있겠지.

바순

근데 파올라가 없으면 누가 지휘해? 지휘자가 없으면 앞으로 공연을 어떻게 하지?

트롬본

왜 파올라가…… 그 벨로네라는 루포 녀석은 왜 우리 파올라를 죽인 거야?

트롬본

전혀 그럴 이유가 없잖아. 그놈들 패밀리랑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바순

파올라가 걸리적거린다고 생각했나?

바순

아니면 우리가 여기서 일을 받는 게 걔네 규칙에 어긋나는 건가?

팀파니

누가 알겠냐! 시라쿠사 패밀리 놈들이 다 그렇지. 죄다 지독하고 잔인한 족속들이잖아.

트롬본

시청에서 수사한다고는 하는데……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어.

팀파니

결과는 무슨? 여기도 결국 시라쿠사의 도시인데, 시청도 그냥 시늉이나 하는 거겠지.

팀파니

벨로네 패밀리가 파올라를 해친 이 원한은 반드시 가슴 깊이 새겨둬야 해.

팀파니

나중에 벨로네 패밀리 놈들을 만나면 어떻게든 한 대 갈겨주고야 말겠어!

트롬본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상대는 파올라를 그렇게 잔인하게 죽인 사람들인데, 마음만 먹으면 우리도 얼마든지 쉽게 짓밟을 수 있을 거야.

트롬본

우리도 다 파올라랑 똑같이 라이타니엔에서 왔잖아. 혹시 우리 라이타니엔인을 노리는 건 아닐까……

바순

……설마……

트롬본

아니면…… 설명이 안 되잖아…… 파올라처럼 착한 사람을 왜……

팀파니

시라쿠사 패밀리들, 정말 지긋지긋해! 그냥 여기를 떠나버리자. 빅토리아로 가든가, 아니면 더 먼 컬럼비아로 가는 게 어때?

팀파니

다른 데 가서 공연을 못 하게 되더라도, 막노동이라도 해서 먹고살면 되잖아. 파올라를 만나기 전처럼……

트롬본

그래…… 리젤도 데려가야지.

팀파니

물론이지. 이 팀파니가 온종일 일해서 고작 파스타 한 접시 살 돈밖에 못 번다 해도, 그 절반은 리젤한테 내어줄 거야. 절대 리젤을 굶기지는 않을 거라고!

단원들이 뒤이어 뭔가 더 이야기했지만, 리젤은 제대로 듣지 못했고, 더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저 머리가 몹시 아프고, 눈이 뻑뻑하고, 온몸이 무거웠다. 너무나도…… 엄마의 품속에 쓰러지고 싶었다.


끼익……

리젤은 자기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파올라의 방문을 열었다.

와인 챔피언십이 있던 날, 파올라가 창문 닫는 것을 깜빡한 모양이었다. 밤새 들이친 비가 창가에 쌓여 있던 악보들을 흠뻑 적셨고, 하루가 더 지난 지금 그 악보들은 이미 주름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리젤

엄마가 창문 닫는 걸 또 잊어버렸네.

리젤

맨날 내가 일러줘야 한다니까, 정말. 음악 생각만 하면 뭐든 다 잊어버리지.

리젤

파올라…… 엄마……

리젤

흐흑……

단원들을 너무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카시미어 상인과의 대화 자리를 위해 억지로 눌러왔던 눈물이 강둑 터지듯 마구 쏟아졌다.

리젤은 창가의 악보를 하나씩 거두어 주름진 종이를 펴려고 애썼지만, 자기 손가락조차도 빗물에 번진 음표처럼 흐릿하게 보였다.

리젤은 지금의 모습이 매우 우스꽝스럽게 보일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엄마가 이 꼴을 봤다면, 분명 같이 엉엉 울었을 거였다.

그날도 그랬다. 파올라는 리젤 부모님의 묘지에 동행했다가, 우연히 한 무덤 앞에서 어느 여인이 불고 있는 타향의 가락을 듣고는 멍하니 눈물을 흘렸다.

눈가가 벌개진 파올라를 보고 트롬본을 불던 여인은 깜짝 놀랐지만, 나중에 이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바순 삼촌도 그랬고, 그보다 더 전에 팀파니 삼촌도 그랬다……

그때 파올라는 부두에 서서, 금광이라도 발견한 것 같은 목소리로 말뚝을 박고 있던 팀파니에게 말했다. “리듬감이 정말 좋은데, 우리 악단에서 팀파니 치는 거 어때요?”

리젤은 파올라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처럼 대단한 악단 지휘자가 왜 라이타니엔을 떠났냐고.

하지만 그때 파올라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소 어리둥절하게 자기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저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하고 싶었을 뿐인데, 왜 동포들은 받아주지 못했던 걸까?

리젤

이 악보들, 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던 거야……

리젤

이 메트로놈은 칠이 다 벗겨졌네. 엄마가 라이타니엔에서 가져왔던 것 같은데.

리젤

어라, 이 귀걸이, 서랍 뒤에 있었구나. 엄마가 잃어버린 줄 알고 한동안 마음 아파했었는데.

리젤

……

리젤

이 무대 의상도, 고치고 또 고치더니 아직도 완성을 못 했네. 모레 공연 때 이거 입고 무대에 서겠다고 했으면서……

리젤은 진홍색 드레스를 살며시 안아 들고 손가락으로 옷깃의 금실을 쓸어내렸다. 천이 좀 낡은 탓에 모서리 쪽에 흰빛이 조금 돌았지만, 위에 새겨진 자수는 여전히 정교했다.

드레스가 걸려 있던 옷걸이 옆에는 아츠 스태프가 조용히 세워져 있었다.

리젤

엄마의 아츠 스태프…… 아직 나한테 가르쳐 주지 못한 아츠가 많잖아, 왜……

리젤

대체 왜, 엄마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거야?

창밖에 가로등이 켜지고, 차들의 깜박이는 불빛이 이따금 창 너머로 들어와, 눈물이 가득 고여 초점이 흐려진 리젤의 시야를 스쳐 갔다.

빛. 불빛. 깜박이는 빛.

유리잔에 굴절된 빛.

리젤의 손가락이 갑자기 멈췄다. 어떤 흐릿한 장면이 오래 억눌려 있던 물줄기가 얼음을 깨고 나오듯 거세게 터져 나왔다……

그 후드를 쓴 사람, 선반 뒤에 반쯤 숨어 있던 마른 체형의 그 사람. 불빛이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비쳤고, 그의 손에 유리잔이 쥐어져 있었다.

불빛 아래, 높이 솟은 뿔.

리젤

그냥…… 길을 잃은 손님인 줄 알았는데……

리젤

그 사람은…… 카프리니야……

리젤

벨로네가 아니었어. 루포가 아니었다고……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리젤

트롬본 이모도 말했어. 우리는 패밀리랑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리젤

어쩌면…… 벨로네는 억울할 수도…… 벨로네가 범인이 아닐지도 몰라……

리젤

그런데, 왜…… 어째서 카프리니인 거야……

리젤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파올라 침대 머리맡의 단체 사진에 꽂혔다.

그것은 슈바르처포어항 악단이 어느 공연을 마치고 찍은 정식 단체 사진이었다. 십여 명 중 몇몇 엘라피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카프리니였다.

그녀는 파올라에게 농담하듯 물은 적이 있었다. 시라쿠사에 있는 라이타니엔 출신 사람들을 다 단원으로 만들 거냐고. 그때 파올라는 웃으며 말했었다. “그럼 좋고말고.”

리젤

만약 그 사람이 낯선 사람이 아니라…… 악단의 누군가가 위장한 거라면?

리젤

……!

리젤

내,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내가 어떻게 가족을 의심할 수가 있어?

리젤

하지만……

리젤

범인을 찾아야 해…… 반드시 알아야겠어. 대체 누가 엄마를 죽인 건지!

리젤

……

리젤

엄마, 아츠 가르쳐줄 때 그랬었지. 진실은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도 있지만, 불꽃처럼 따뜻하고 힘을 가졌다고.

리젤

늘 그렇게 가르쳤잖아. 진실을 말하고, 옳은 일을 하라고……

리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 이 가족이 불타버리면 어떡해?

리젤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머지 추측들을 입 밖에 꺼내고 싶지 않았지만, 그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간 이어진 피로, 충격, 상처, 두려움이 리젤을 금방이라도 터뜨릴 것처럼 아주 작디작게 짓눌렀다.

그녀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저 몹시 추울 뿐이었다.


팀파니

며칠만 더 기다렸다가 그 살인범 벨로네에 대한 판결이 떨어지면 리젤을 데리고 이 슬픈 곳을 떠나자.

바순

……

바순

쳇.

팀파니

왜 그래?

바순

저것 봐, 건너편 저 고급 호텔.

바순

진짜 재수 없어. 어딜 가도 그놈 사업이네.

팀파니

어? 뉴 볼시니에서 제일 비싸고 방 예약도 안 되는 저 호텔도 그 패밀리 놈들 거였어?!

팀파니

벨로네 패밀리 *라이타니엔 욕설* 더럽게 많이 벌었구먼.

팀파니

저렇게 돈 많은 놈이라면, 판결을 받아도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이 있지 않겠어?

팀파니

*라이타니엔 욕설* 물은 제 손으로 떠마셔야 하듯, 원수도 제 손으로 갚아야지. 언젠가 그놈을 찔러버리겠어!

바순

됐어, 트롬본이 뭐라고 했는지 벌써 잊었냐? 게다가 사람 찔러 봤자 네 그 절뚝대는 발로는 몇 걸음 못 가 경찰한테 붙잡힐 텐데, 그러면 리젤한테 또 상처가 될 거잖아.

팀파니

그래, 리젤을 더 이상 힘들게 할 수 없지……아니, 그래도 이 분은 못 삭이겠어!

바순

아유, 됐어. 그냥 입구 지나가면서 침이나 뱉는 게 어때?

팀파니

좋아! 아니지, 역시 침으로는 안 되겠어. 그래도 한 대 갈겨주긴 해야겠다.

바순

훗…… 너는 참, 우리 단원 중에 제일 고집불통이 바로 너야.

바순

좋아! 그렇다면 나도 같이……


리젤

뭐?!

리젤

팀파니랑 바순 삼촌이 유치장에?

리젤

벨로네 패밀리 사업장에서 시비가 붙었다고?!

리젤

아니, 나는 파올라가 아니라…… 아, 그래. 나는 리젤 메밍어야. 이 번호 맞아.

리젤

아, 알겠어. 지금 바로 갈게……


어렵사리 선잠에 들었건만, 귀에 거슬리는 전화의 벨소리가 리젤을 깨웠다.

리젤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내용과 머릿속에서 무한히 형체를 이뤄가고 있는 장면 중 어느 쪽이 더 그녀를 무너뜨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끼며, 리젤은 외투를 낚아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밤이 너무 늦어서인지, 아니면 근방에서 막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서인지, 택시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다급한 나머지 경찰서 방향으로 마구 달렸다.

밤바람은 낡은 무대에서 새어 나오는 배경음 같았다. 리젤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하지만 머릿속은 안개가 잔뜩 낀 듯했고, 침착하려 할수록 더욱 요란하게 울려댔다.

리젤

삼촌들이 진짜로 벨로네 패밀리 사람을 찾아간 거야?

리젤

혹시 폭력을 쓴 건가?

리젤

설마 삼촌들이 나 대신…… 엄마의 원수를 갚으려고 무슨 짓이라도 한 걸까?

리젤은 바람 때문에 눈가가 따가웠지만, 계속 속도를 높이다 거의 넘어질 뻔했다.

벨로네 패밀리가 파올라를 해친 이 원한은 반드시 가슴 깊이 새겨둬야 해.

리젤

안 돼, 그러면 안 돼……

나중에 벨로네 패밀리 놈들을 만나면 어떻게든 한 대 갈겨주고야 말겠어!

리젤

팀파니 삼촌, 바순 삼촌……

리젤

아니, 아니야. 삼촌들이 그런 짓을 했을 리 없어!

리젤

후우…… 콜록, 콜록……

리젤은 잔뜩 부푼 풀무처럼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소매 속으로 파고들자 몸이 떨렸다.

앞서가던 행인들은 고개를 돌려 미친 사람을 보듯 그녀를 바라봤다.

리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더 빨리, 더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경찰서에 가까워질수록, 그 회백색 건물은 거대하고 무뚝뚝한 무대의 커튼처럼 어둠 속에서 한 치 한 치 그녀를 짓눌러왔다.

리젤의 발은 점점 느려졌다. 그녀는 길모퉁이에 서서, 불 켜진 경찰서 입구에서 한 경찰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리젤은 그대로 돌아서 도망치고 싶었다.

리젤

내가 너무 못나서, 삼촌들이 이런 식으로 나를 지킬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리젤

근데 삼촌들이 진짜로 무슨 짓을 저지른 거라면?

리젤

정말로, 악단 사람들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면?

리젤

만약 내가 찾은 진실이, 나를 비롯한 모든 단원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녀는 그들을 의심하고 있는 자신이 미웠다.

그녀는 '벨로네 패밀리'와 '유치장'이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그들을 변호하기보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자신이, 머릿속에 그 높다란 뿔이 스쳐 지나간 자신이 너무나도 미웠다.

리젤

이, 이젠 어떡하지……

리젤

엄마……

내 착한 딸, 네가 아니었다면 오늘 우리 악단이 이만한 성과를 거둘 수 없었을 거야. 정말 고마워.

그래, 나뿐만이 아니라 단원 삼촌들이랑 이모들도 모두 네가 없으면 안 돼.

리젤, 내 착한 딸, 내 최고의 자랑 리젤……

언젠가는 네가 나 대신 이 무대에 서야 해.

……아니, 나를 위해서가 아니야. 리젤, 이건 처음부터 나를 위한 일이 아니었어.

넌 언젠가 뉴 볼시니, 아니, 시라쿠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지휘자가 될 거야.

바람이 멈춘 것 같았다.

리젤은 무거운 두 다리를 끌고 느리지만 단호하게 그 회백색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리젤

……

리젤

그, 그러니까……

리젤

팀파니 삼촌이 때린 게 당신들이 아니라……

리젤

이 두 컬럼비아 상인이라고?!


난감해하는 패밀리 멤버

어……

냉정한 패밀리 멤버

맞아.

난감해하는 패밀리 멤버

뭐, 사실 나도 얻어맞긴 했지만, 사고였으니까……

난감해하는 패밀리 멤버

거기 아저씨, 다리는 절어도 팔뚝 힘이 말이야, 쯧쯧, 장사가 따로 없던데!

팀파니

당연하지, 이 몸은 엄연한 타악기 연주자라고!

냉정한 패밀리 멤버

이 아저씨가 두 번째 주먹을 날렸을 때, 저 컬럼비아 뚱보가 비틀거리다가 마침 피해버릴 줄 누가 알았겠냐고.

경찰

크흠.

경찰

상황 설명을 좀 드리죠. 저희가 받은 신고 전화에 따르면, 처음엔 네 명이 거리에서 소란을 피워댔고, 나중엔 여섯 명이 한데 뒤엉켜 치고받았다고 합니다.

경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컬럼비아에서 오신 이 두 분이, 벨로네 패밀리의 알도르 홀 호텔에서 패밀리 멤버…… 아니, 종업원과 시비가 붙은 것이더군요.

경찰

이 두 종업원이 컬럼비아 분들을 호텔 밖으로 내보냈는데, 컬럼비아 분들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갑자기 손찌검을 했다는 겁니다.

경찰

슈바르처포어항 악단의 두 분은 말리러 나섰다가, 도리어 컬럼비아 분들과 싸움이 붙은 거고요.

냉정한 패밀리 멤버

맞아, 저 뚱보가 잘못했어.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면서 우리 호텔 리셉션 여직원을 희롱했다고……

배불뚝이 상인

희, 희롱은 무슨. 나는 그런 짓 안 했소!

배불뚝이 상인

나는 그냥 돈 내고 호텔을 이용하려다가, 영문도 모르고 얻어맞은 것뿐이요…… 두고 보시오, 오늘 일은 그냥 안 넘어갈 테니!

냉정한 패밀리 멤버

흥, 감히 우리한테 큰소리쳐?

냉정한 패밀리 멤버

잔뜩 취해서 로비 한복판을 떡하니 막고 서서는 “줄은 왜 서야 하냐”, “제일 크고 좋은, 패밀리 간부가 쓸 법한 방을 내놔”라고 소리치면서 먼저 진상 부렸잖아!

냉정한 패밀리 멤버

뭐? '패밀리 간부가 쓸 법한 방'? 우리 같은 정식 호텔에 와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난감해하는 패밀리 멤버

체크인하려고 줄 서 있던 손님들까지 다 놀라서 나갔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이냐고?

팀파니

맞아! 내가 입구에서 똑똑히 봤어. 리셉션 여직원이 너무 놀라서 울더라고!

바순

(작은 목소리로) 야, 그만 좀 해!

바순이 팀파니를 세게 꼬집었다. 팀파니가 아파서 비명을 꽥 지르며 고개를 들자, 새하얗게 질린 채 굳은 리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리젤

……

팀파니

……

팀파니

어, 미안하다, 리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불러내서……

바순

그게, 우리 신상 정보의 긴급 연락처에 네 이름을 썼거든…… 전에 파올라가 그렇게 적으라고 해서……

바순

아이고, 내 잘못이야! 진작 팀파니를 말려야 했는데!

팀파니

리젤, 뭐라고 마, 말이라도 좀 해. 지금 너무 무섭단 말이야……

리젤

……

리젤

결국 둘이서 사실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은 일에 끼어든 거잖아?

팀파니

엥? 어…… 그, 그렇게 되는 건가……

벨로네 패밀리 멤버들과 컬럼비아 상인들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을 본 리젤은 문득 말문이 막혔다.

팀파니와 바순은 비에 흠뻑 젖은 파울비스트처럼 가운데 끼여 안절부절하며 불쌍한 눈빛으로 리젤을 쳐다보고 있었다.

리젤

가장 최근에……

리젤

이렇게 기가 막혔던 게 도대체 언제였더라……


부두에서 파올라의 제안을 들은 팀파니는 당혹스러운 듯 고개를 젓고는 눈앞의 두 사람을 무시하고 다시 말뚝을 박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리는 가운데, 리젤은 파올라가 갑자기 등을 꼿꼿이 세우고 손으로 옷깃을 매만지는 것을 보았다.

파올라

현장 감독 씨, 이분 대신 사직 의사 전달하겠습니다.

파올라

이제 이분은 저와 함께 아름다운 음악의 가능성을 펼쳐 나갈 거라, 더 이상 여기서 말뚝을 박을 수 없습니다.

파올라

그럼, 안녕히 계세요.

팀파니

어?

현장 감독

……자, 잠깐만, 거기 서?!

현장 감독

그만두긴 뭘 그만둬…… 내가 언제 보내준댔어?

파올라

어라, 안 되나요?

현장 감독

다, 당연히 안 되지! 아무리 단기 작업자라고 해도,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 당신이 슐라거를 데려가면 한 사람 몫만큼 작업이 더뎌질 것 아니야!

파올라

아! 그랬군요.

파올라

그럼 이거면 충분할까요? 다시 이 슐…… 팀파니 씨와 같은 작업자를 고용하세요. 그러면 작업이 지연되지 않겠죠!

현장 감독

뭐……?

현장 감독은 파올라의 행동에 할 말을 잃은 게 분명했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발언에 팀파니도 말뚝 박기를 멈추고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파올라의 뒤에 선 리젤은 화가 나면서도 우습기도 한 감정을 느끼며 그녀의 옷자락을 세게 잡아당겼다.

어린 리젤

(작은 목소리로) 엄마, 그거 우리 이번 주 식대야.

파올라

앗, 그래?!

분위기가 잠시 어색해졌다. 현장 감독은 마치 파올라가 번복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녀가 건넨 플로린을 꽉 움켜쥔 채 팀파니에게 손을 흔들었다.

현장 감독

어이, 거기! 인력시장에 가서 말뚝 박을 사람 하나만 구해다 줘……

현장 감독은 뒤쪽을 향해 외치더니 팀파니에게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팀파니

……어?

어린 리젤

하아.

파올라

미안해, 리젤…… 역시 앞으로 돈은 네가 관리하는 게 낫겠다.

파올라

이제…… 우리 셋이 거리로 가서 즉석 공연 같은 걸 하자! 그러면 오늘 저녁 밥값은 벌 수 있을 거야!

그날의 불타는 듯한 구름이 리젤의 머릿속에서 또 한 번 선명하고 생생해졌다.

해 질 녘, 어안이 벙벙해진 팀파니, 흐뭇하게 웃는 파올라, 그리고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 자신의 모습. 모든 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미래의 색으로 물든 듯했었다.



리젤

……푸흡.

리젤

참나, 우리 가족들은 다들 어쩜 이렇게 바보 같은 거야.

리젤

엄마도 바보고, 팀파니 삼촌도, 바순 삼촌도, 트롬본 이모랑 다른 사람들도…… 그리고 나도, 세상에서 제일 바보야.

리젤

내가 가족을 의심하다니…… 다들 그런 짓을 할 사람들이 아닌데.

팀파니

괜찮아, 리젤! 삼촌이 한 짓은 삼촌이 책임져. 이건 삼촌이 충동적으로 군 대가다. 걱정 안 해도 돼!

팀파니

기껏해야 며칠 갇혀 있는 거잖냐. 예전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닐 때부터 이런 일은 이골이 났는걸……

리젤

팀파니 삼촌, 박자 좀 쳐줘 봐. 아무거나 괜찮으니까, 삼촌이 좋아하는 박자로 부탁해.

팀파니

뭐……?

팀파니는 “자기 책임은 자기가 진다”라는 호언장담이 채 끝나기도 전에 리젤의 뜬금없는 부탁을 듣고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는 바순과 눈빛을 교환했고, 심지어 양옆에 앉아 있는 벨로네 패밀리 멤버, 그리고 컬럼비아 상인들과도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리젤의 확고한 어조에는 거스르기 어려운 위엄이 배어 있었다. 팀파니가 손을 까딱이더니, 저도 모르게 쇠 난간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리드미컬한 박자를 배경음 삼아, 리젤은 등을 꼿꼿이 세우고 손으로 옷깃을 매만진 다음 배불뚝이 컬럼비아 상인을 바라보았다.

리젤

크흠! 일단 자기소개부터 할게. 나는 슈바르처포어항 악단의 책임자, 리젤이야.

리젤

우리는 뉴 볼시니에서 가장 프로페셔널한 악단이거든. 우리 팀파니 연주자의 뛰어난 즉석 연주만 들어봐도 충분히 느껴지지?

리젤

참고로, 여기 바순 연주자의 실력도 매우 대단해. 아쉽게도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직접 보여주기 어렵지만.

배불뚝이 상인

……

리젤

자, 소개는 이쯤 하고…… 우선, 오늘 일어난 불상사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할게.

리젤

내가 남을 대신해 뭔가를 결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 단원들에 대한 책임은 질 수 있어. 우리 단원이 당신에게 손찌검한 건 분명한 사실이니, 내가 단원들을 대표해서 사과하지.

리젤

당신은 컬럼비아에서 온 상인이지? 당신이 투자한 고급 쇼핑몰 '피아차 파라소타'가 뉴 볼시니에서 오픈 준비 중이고.

리젤

당신들이 이 도시를 선택한 건, 분명 이곳의 잠재력과 질서, 그리고 앞으로 피어날 문화적 분위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리젤

그렇다면 내게 좋은 제안이 하나 있어. 이번 일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연주를 하게 해줬으면 해.

리젤

우리 슈바르처포어항 악단이 '피아차 파라소타'의 오픈 행사에서 특별 공연 1회를 무료로 해줄게.

배불뚝이 상인

트, 특별 공연?

리젤

맞아. 그쪽이 편한 시간에 맞춰 우리가 행사장으로 찾아가, 풀 편성으로 명곡을 연주할게. 조명과 무대 설계, 그리고 진행까지 포함해서, 콘서트홀에 뒤지지 않는 퀄리티로.

리젤

그리고 공연의 지휘자는, 나야. 파올라 메밍어의 딸. 실력은 내 훌륭한 어머니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나는 우리 어머니가 직접 가르친, 최고로 자랑스러운 딸이니까.

리젤

공연 후에 우리가 협력 상대로는 별로라고 생각해도, 분위기는 이미 띄웠을 테니 당신들은 손해 볼 게 없잖아.

리젤

반대로 우리의 공연이 마음에 들었다면, 당신들도 분명 '피아차 파라소타'를 현지 최초의 전속 악단이 상주하는 고급 쇼핑몰로 만들고 싶을 거야.

리젤

물론, 이 얘기를 하는 건 딱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야. 뉴 볼시니에서 투자할 만한 현지 악단은 단 하나, 바로 우리뿐이라는 걸.

배불뚝이 상인

……

어리둥절한 상인

저기, 사장님…… 이게 뭔가…… 듣다 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요……

배불뚝이 상인

……확실히 손해 볼 게 없긴 하군.

냉정한 패밀리 멤버

잠깐! 잘잘못은 제대로 따져야지?

배불뚝이 상인

아니…… 이 아가씨가 이렇게 말하는데, 따지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소!

배불뚝이 상인

우리도 일부러 그럴 생각은 아니었고……

냉정한 패밀리 멤버

흥.

배불뚝이 상인

히익!

리젤

그럼, 어떻게 할래?

배불뚝이 상인

……좋소! 공연 준비는 전부 댁한테 맡기겠소. 오픈 세리머니는 댁들의 연주로 홍보하는 걸로 하지. 다만……

배불뚝이 상인

어쨌든 우리는 프리미엄 노선을 지향하는 쇼핑몰이다 보니…… 실망시키지 않길 바라오.

리젤

물론이지.

팀파니와 바순은 컬럼비아 상인들 곁에서 석상처럼 굳어져 있었다.

경찰이 못 말린다는 듯 나가라는 뜻으로 손을 휘젓자, 두 사람은 그제야 방금 잠에서 깬 듯한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팀파니

리젤…… 너 방금 정말 파올라 같았어.

바순

아니, 파올라보다 더…… 어, 뭐랄까, 파올라보다 더 파올라 같았어!

리젤

나는 엄마 딸이잖아.

리젤

나는 슈바르처포어항 악단의 리젤 메밍어니까.


무대 커튼의 뒤편, 리젤은 분장실에 앉아 있었다. 주변에는 단원들의 기쁨에 찬 목소리가 가득했다.

리젤의 옆에는 누렇게 바랜 악보가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파올라가 남긴, 아직 제목도 없는 사중주 악보였다. 악보 모서리 여기저기에는 고쳐 쓴 흔적이 남아 있었다.

파올라가 가장 사랑한 그 곡은 방금 컬럼비아인들이 꾸민 화려한 무대에 올라 공연장 전체의 박수 화답을 받았다.

리젤은 손을 뻗어 바래진 잉크 자국을 어루만지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단원들을 마주 보고 섰다.

리젤

모두 남아줘서 고마워.

리젤

요 며칠…… 정말 힘들었고, 황당하기도 했지. 하지만 우리는 이번 공연을 해냈고,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공연을 해낼 거야.

리젤

엄마의 뜻을 품고, 슈바르처포어항 악단의 이름으로.

리젤

그래서, 꼭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어……

리젤

사건이 일어났던 날, 난 엄마를 살해한 범인을 봤어.

리젤

그러니까, 그 사람을 반드시 찾아내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할 거야.

리젤

그 사람은…… 루포가 아니었어…… 그러니 벨로네 패밀리 사람은 아닐 거야.

리젤

내가 본 건 카프리니였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