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8운명
음악회에서 에벤홀츠와 크라이데는 계획대로 연주했지만, 게르트루트가 음악 홀 전체를 완전히 개조했고, 심지어 두 사람의 연주까지 간섭한다. 급한 나머지, 에벤홀츠와 크라이데는 동시에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을 생각해낸다.
등장 오퍼레이터: 에벤홀츠, 체르니, 히비스커스, 히비스커스 더 퓨리파이어
힘내, 관중석에서 응원하고 있을게!
그렇지만…… 오늘까지 연습했다고는 하지만, 역시 자신이……
게다가 그 예언도 그렇고, 그 합주가 내 일이 되는 건 아닌지……
무슨 소리야, 별걸 다 겁내네! 어젯밤에 영향받은 사람은 모두 치료했고, 오늘도 분명 괜찮을 거야.
이렇게 많은 감염자와 같은 공기를 마시는 건 또 처음이군요. 이 음악회가 그만한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체르니 씨는 왔나요?
주최 측 말로는 어젯밤의 원석충 소동으로 인해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오늘 음악회는 취소할 생각이 없나 봅니다.
흥…… 그렇군요.
여러분, 먼저 입장하세요. 체르니 선생님은 잠시 후에 도착합니다.
거짓말은 아니죠?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아놓고, 체르니 씨는 못 오게 됐다고 발표하는 건 아니겠죠?
안심하십시오, 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체르니 선생님께선 약간 감기 기운이 있을 뿐입니다. 곧 도착할 겁니다……
역시 그 영감인가…… 어쩐지 자료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했어……
처벌은 나중에 생각하지. 자료도 딱히 중요한 게 아니니까. 무엇보다도 속세의 음에 관한 연구가 가장 중요해.
……설마 음악회에 갈 생각인가?
뭐, 됐어…… 관두자.
아무래도 밀정 일이 쉽지는 않나 보군요.
흥, 저보다 당신 걱정이나 하는 게 어떻습니까? 슈트롤로 백작.
본인의 영지에서 위치킹 잔당을 감싸고, 속세의 음 연구를 암암리에 도운 건 중죄에 속합니다.
그러고 보니 밀정 씨, 궁금한 게 있습니다. 당신들의 기록에는 저의 아버지와 오빠의 사인이 어떻게 적혀 있나요?
말 돌리지 마시죠.
그들은 이 사건과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만.
……
15년 전에, 당신의 아버지는 속세의 음을 연구하는 무리를 감싸다가 우리한테 발각되었고, 배후의 세력을 자백하려 했으나, 그 전에 살해당하고 말았죠.
만약 당신도 알고 있다면, 당신의 죄명은 하나 더 늘어나게 될 겁니다, 슈트롤로 백작.
설마 제가 그 사건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
아버지에 대한 제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바뀌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라 생각했죠. 아버지의 의지는 절대적이어서 아무도 그의 결정을 바꿀 수 없었으니까요.
마구 뛰어다니면 저를 가두어버리고, 밥 먹을 때 말하면 제 밥을 치워버리곤 벽을 마주한 채 한 시간 동안 말하게 했습니다……
나중엔 크면서 아버지에 대한 경외감이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소귀족들이 슈트롤로 백작한테 아첨하는 모습과 백작이 그들을 무시하는 것도 똑똑히 보았거든요.
설령 위치킹의 특사라도 슈트롤로 고탑에서는 조곤조곤 말을 해야 했죠. 지상에서 건방을 떨며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에요……
이것이야말로 슈트롤로 가문이고, 우리의 영주이자, 한때 그 선제후가 가장 중시했던 가문이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위치킹의 몰락과 함께 바뀌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당신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아요.
의사로서 마땅히 당신이 음악회에 참석하는 걸 막아야 하죠.
딱히 말리는 것 같지는 않군요.
……당신이 목숨을 불태워가면서까지 창작한 곡이 이대로 묻혀버리면 안 되니까요.
당신도 이제 융통성이라는 게 생겼군요.
때론 일에 우선순위가 있다는 걸 알았을 뿐이에요.
저는 아버지가 진심으로 위치킹의 통치를 옹호할 정도로 어리석었다는 게 우습게 여겨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 놀라운 어리석음으로 심지어는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낼 때도 있었죠.
덕분에 슈트롤로 가문은 선제후의 지지를 곧바로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가문은 이동도시 두 개의 영지를 잃었고,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위치킹의 고향인 우르티카와 가장 가까운 이 별 볼 일 없는 비세하임에 오게 된 거죠.
비세하임을 다스리고 있는 슈트롤로 백작은 스스로 얼마나 바보 같았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래서, 당신의 아버지가 불만을 품고 위치킹의 잔당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는 겁니까?
훗, 그 당시에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때의 저처럼 단순하지 않군요, 밀정 씨.
당신 같은 밀정들은 저보다 더 잘 알 거예요. 그 늙은 슈트롤로 백작이 처음부터 위치킹의 잔당들과 접촉하고 있었다는 걸 말이죠. 아닌가요?
참, 밀정 씨, 저의 질문에 아직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보기에 저의 오빠는 어떻게 죽었나요?
당신의 오빠는 식중독으로 죽었습니다. 이건 공식적인 입장이자, 우리의 최종 결론이기도 합니다.
식중독이라, 하하.
이렇게 하죠, 밀정 씨. 당신들은 저의 아버지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그 대가로 제가 오빠의 진짜 사인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사실 저희는 '위치킹의 잔당'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너무 포괄적이어서 말이죠.
위치킹의 영혼을 불러들이려는 놈들은 위치킹의 힘을 숭배하거나, 또는 위치킹 재위 시절의 정치적 이익에 미련을 가진 자들입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후자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후자의 배후에는 커다란 산이 있고, 당신의 아버지는 그저 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죠.
그리고, 슈트롤로 백작…… 착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을 심문하고 있는 것이지, 당신과 거래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당신의 질문에 대답한 유일한 이유는 저희가 당신 오빠의 사인을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음?
저기 봐, 체르니 씨랑 그 의사야!
체르니 씨, 괜찮으세요?
쿨럭, 괜찮습니다.
저희가 다 들었습니다. 오늘 신곡을 연주하신다면서요?!
네, 맞아요.
좌석이 한정되어 오늘 모든 분께 다 들려드릴 순 없겠지만, 나중에라도 꼭 모두에게 들려줄 것입니다.
우와, 너무 좋아요!
쿨럭……
체르니 씨, 무리하면 안 돼요.
체르니의 집에서 붉은 노을 전당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체르니의 발걸음은 매우 느렸다.
솔직히 체르니가 제대로 연주나 할 수 있을지 히비스커스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광석병은 실제로 존재하는 질병이며, 막연하게 의지로 꺾을 수 있는 그런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 히비스커스는 이 음악가의 의지를 믿기로 했다.
히비스커스는 체르니가 쓰러지지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바짝 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체르니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부축하는 것뿐이다.
이건 체르니 자신만의 싸움이다.
……맞다.
네?
신곡의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제목은……
잠시만요.
왜 그래요?
에벤홀츠 씨와 크라이데 씨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훗, 확실히 그렇군요.
저기 좀 보세요, 밀정 씨. 애프터글로의 대영웅, 우리의 대음악가 체르니가 등장했네요.
당신이 비세하임에 얼마 동안 잠복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체르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겠죠?
이런 도시에서, 이런 가문이 통치하는 도시에서, 이렇게 훌륭한 음악가가 탄생했다는 건 확실히 놀라운 일입니다.
체르니에 대한 평가가 아주 높은 것 같군요. 뭐 당연한 거겠지만, 순수한 음악가를 누군들 안 좋아하겠나요?
저조차도 줄곧 체르니를 좋아했으니까요.
어머, 오해하지 마세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뭐, 설령 그런 뜻이라 해도 제겐 기회가 없었을 겁니다.
체르니의 친한 친구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죠?
그 이야기에 게르트루트란 여자가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훗, 그만하시죠.
그거 아세요? 체르니의 곡과 그의 이야기를 이 나라에 알린 사람이 바로 저란 걸요.
제가 없었다면 체르니는 오래전에 이미 길바닥에서 죽었을 겁니다.
그래서 당신은 '감염자 구역에서 탄생한 감염자 대음악가'라는 명분으로, 소문을 듣고 찾아온 귀족들 앞에서 그에게 광대처럼 연주를 강요했던 겁니까?
아무래도 당신은 제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이 도시에 애착을 두고 있군요, 밀정 씨.
솔직히 제 계획은 이렇게나 온건한 게 아니었어요. 우리 슈트롤로 가문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그깟 음악가의 존엄 따위가 무슨 대수겠습니까?
다만……
라이타니엔의 귀족으로서 음악은 유년 시절의 필수 과목이죠.
아무리 저라도 그의 음악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저도 인정합니다.
들리나요? 음악회가 벌써 시작했군요.
체르니의 연주에 비하면 이건 그야말로 천양지차네요.
……
아까부터 당신은 계속 화제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죠?
어머, 체르니 얘기가 나오면 저도 멈출 수 없게 되네요.
제 주변 사람들은 모두 제가 그를 싫어하는 줄 알고, 체르니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가 절 싫어한다는 걸 잘 알고 있죠. 이런 슬픈 현실 때문에 저는 지금껏 체르니 얘기를 할 상대가 없었거든요.
어디까지 얘기했죠? 아, 맞다, 제 오빠였죠.
하아, 이 화제는 확실히 체르니 얘기보다 재미없습니다만……
당신들이 오빠의 사인을 알아내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왜냐하면…… 오빠는 제가 죽였으니까요.
……?!
후우…… 어때?
……이번엔 호흡이 아주 잘 맞았어요.
이 곡은 저희를 위해 만들었다고 하지만, 체르니 선생님의 색깔이 아주 짙어서, 《아침 그리고 저녁》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아요.
그것도 단 하룻밤 사이에…… 선생님은 역시 대단하시네요.
창작이란 원래 오래 쌓아온 경험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거야. 그는 단지 그 계기를 발견했을 뿐이고……
……
왜 그래?
당신이 남을 다 칭찬하다니, 신기하네요.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체르니의 음악적 조예를 얕본 적 없어.
하하.
지금은 그가 음악회에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꼭 오실 거예요.
작곡은 첫걸음이고, 악보를 확실한 음악으로 만들어내야 이 곡이 진정으로 완성됐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피날레 곡이 바뀌었다는 소식은 이미 내보냈으니, 체르니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군.
아, 에벤홀츠 씨, 이 옷은 잘 어울리나요? 이렇게 비싼 옷은 처음 입어보는 거라, 이상하지는 않죠?
……아주 잘 어울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아 참, 에벤홀츠 씨, 하나 더.
너 오늘따라 유난히 말이 많네……
평소에도 제가 수다스럽다는 말인가요?
……뭐, 조금은.
그래도 참아주세요. 이게 저희의 마지막 연주일지도 모르잖아요.
그렇지 않아.
왜 그렇지 않은데요?
이번 일이 끝나면 당신은 우르티카 백작으로 돌아갈 것이고, 저는 아마도 다시 떠돌이 생활을 하겠죠.
우리가 만난 게…… 비록 그 백작의 의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맨 처음엔 우연히 만난 거잖아요, 안 그래요?
하지만……
하지만 우리는 이제 친구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죠?
……그래.
친구라도 이별은 있는 거예요.
어쩌면 이번 이별은 길어질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했던 말이 기억나나요? 기념으로 서로 선물을 주기로 했던 거요.
……난 이 주사위를 줄게.
그건 당신의 무기 아닌가요? 하나 없어져도 괜찮나요?
사실 나도 잘 몰라.
그럼 바꿔요. 제가 말했던 것처럼, 동전에 구멍을 뚫어서 준다던가. 저는 그거면 충분해요.
……그럼 넌? 너는 뭘 줄 거지?
아직 생각 중이에요.
천천히 생각해도 돼. 오늘 공연을 순조롭게 마치면 시간은 많으니까.
……맞아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요.
농담하지 마세요, 게르트루트 슈트롤로!
당신이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있습니까?!
제가 오빠를 죽였다고…… 말했죠.
미쳤군요.
제가요? 아니, 잘 생각해 보세요, 밀정 씨.
불법 연구를 후원하던 거룩한 아버지가 사실을 숨길 수 없게 되자 배신하게 됐고, 그 결과 비명에 죽게 되었어요.
그 뒤로 그들의 지지를 받아 자리에 오른 오빠는 그들이 두려워 뭐든지 시키는 대로만 했죠.
하지만 오빠가 너무 무능한 탓에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실수해서 하마터면 배후에 있는 그 사람을 일러바칠 뻔했죠.
그런 오빠가 불만을 품은 사람들에게 죽느니, 차라리 제가 그 자리를 물려받기 위한 발판이 되는 편이 더 낫죠……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당신들 배후에 있는 '그 사람', 도대체 누구입니까?
세상에나, 그거 아시나요? 제가 당신보다 더 알고 싶어요.
이 정도면 제가 충분히 당신과 거래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당장이라도 거리에 나가서, 위치킹 잔당의 정보가 제 손에 있다고 소리쳐도 상관없습니다.
공범 증언, 요즘 컬럼비아에서 이 말이 유행하고 있다죠?
우리와 거래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자들을 지금까지 많이 봐왔습니다, 슈트롤로 백작.
하지만, 그들의 결말은 모두 좋지 않았죠.
체르니 선생님, 괜찮으세요?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거짓말이죠.
정 안 되면……
에벤홀츠 씨, 잊었습니까? 음악회를 무조건 열어야 한다고 고집부렸던 게 누구였는지.
……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도 있는 그대로 말할게.
우린 이미 당신이 쓴 곡을 충분히 연습했어. 만약 작곡가인 당신이 몸 상태가 나빠서 제대로 연주하지 못했다면, 그건 다 당신의 책임이야.
농담도 어지간하군요. 이 곡은 이미 제 머릿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당신들이나 제대로 따라오세요.
자신감이 넘치네.
그만 해요, 체르니 선생님도 오셨는데 빨리 무대에 오를 준비나 하죠!
우리를 위해서든, 관중을 위해서든, 오늘 최고의 공연을 선보여야 합니다.
크라이데, 그런데 너 오늘…… 유난히 들뜬 것 같다?
그래요?
어쩌면 제가 처음으로……
이른바 '살아있는 가치'라는 걸 느껴서 그럴 거예요.
……뭔 소린지 모르겠네.
체르니 선생님, 무대에 오르실 차례입니다.
맞다, 하나만 더 물어볼게, 미스터 체르니.
이 곡의 제목은 뭐지? 아직 제목을 붙이지 않았잖아.
오는 길에 이미 생각해 뒀죠.
곡의 제목은……
《빛과 그림자》.
다음 순서는 체르니 선생님과 에벤홀츠 씨, 크라이데 씨가 함께 연주하는 대미를 장식할 곡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이 곡은 체르니 선생님의 최신곡이며, 오늘이 바로 그 첫 공연입니다.
곡 이름은……《B 플랫 단조, 플루트-첼로-피아노 삼중주 '빛과 그림자'》입니다.
세 사람이 관중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하자, 사람들은 열렬한 박수로 화답했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짧은 몇 소절이 지나자, 기대했든 의심했든, 일반석에서부터 박스석까지 모든 관중들이 한결같이 등을 펴고 똑바로 앉았다.
속삭임도, 기침 소리도, 심지어 옷 스치는 소리조차 없었다.
이 짧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아무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체르니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렇다고 연주 외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 단지, 그가 제어하고 이끌어가야 할 힘이 너무나도 정밀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연주가 시작됐군요.
체르니, 당신은 저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어요. 당신이라면 그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낼 거라고 믿었어요.
들어보세요, 이 신곡을…… 청중들은 이 곡의 영감이 위치킹으로부터 비롯했다는 걸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모르겠죠. 왜냐하면 이건 당신의 곡이니까요.
……?
아, 이 선율…… 그렇군요.
두 갈래의 '속세의 음'을 모두 끄집어낼 생각이군요. 아주 용감하네요.
하지만, 끄집어낸 후에는? 설마 자신이 직접 그릇이 될 건가요?
비글러는 이 여자가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마치 친구에게 하소연하듯 음악 홀이 있는 쪽을 향해 계속 중얼거렸다.
밀정 씨, 제 연주를 들어보고 싶지 않으세요?
게르트루트는 비글러한테 묻는 것 같기도, 혼잣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방 한구석에 놓인 하프를 향해 걸어갔다.
이제 저의 인내심도 한계입니다, 슈트롤로 백작.
이 건물은 제가 일부러 사들인 거예요.
애프터글로 밖이긴 하지만, 음악 홀의 연주를 확실히 들을 수 있으니까요. 멋진 장소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저는 여기서 음악회를 듣는 걸 좋아합니다.
이렇게 하면 저와 체르니가 서로를 만날 필요가 없으니까요.
말하는 사이, 게르트루트도 연주를 시작했다.
슈트롤로 백작, 이 방에 설치했던 아츠 유닛도 이미 철거했습니다.
철거하지 않았더라도, 아츠를 이용해 저한테 영향을 끼칠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렇게 쉽게 음악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었다면, 밀정이 될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저는 단지 하프를 연주하고 싶을 뿐입니다, 밀정 씨.
체르니는 저를 미워해요. 음악에 대한 저의 불순한 태도를 미워하고, 제가 음악을 도구로 삼는 것도 미워하죠.
처음에는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의 모든 걸 드러내더라도, 저는 음악에 순수해질 수 없을 것 같네요.
밀정 씨, 혈육을 죽이고 저를 십여 년 동안 통제해 온, 그 쓰레기들에 대한 복수심만으로 가득한 인간이, 어떻게 순수해질 수 있을까요?
몹시도 내키지 않았지만, 게르트루트의 연주는 아주 훌륭했고, 심지어 창밖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아주 잘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을 비글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라이타니엔의 훌륭한 귀족이 마땅히 갖춰야 할 수준이었다.
그러나, 게르트루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를 섬뜩하게 했다.
잠깐, 복수?!
당신은 바보가 아닙니다, 밀정 씨. 어젯밤의 비참한 실패가 결코 저의 무모함 때문에 이뤄진 결과가 아니라는 걸 당신은 잘 알고 있을 텐데요.
하지만 당신은 제가 뭘 숨기려는지, 제가 뭘 원하는지 모르죠. 그래서 지금 여기서 저와 함께 얘기하고 있고요.
솔직히 제가 시간을 벌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어떤 말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제 마음속에 담아뒀던 터라, 이렇게 주절주절 얘기했던 것도 있습니다.
저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당신은 여기서 저와 함께 죽을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건 눈앞이 탁 트이는 곡임이 틀림없다…… 적어도 도입부는 확실히 그렇다.
제목처럼 이 곡은 처음부터 파멸을 연상케 하는 곡이었다. 마음은 나락까지 떨어졌고,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햇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곡조가 바뀌더니 묵직한 첼로를 베이스로 맑고 깨끗한 플루트가 피아노와 함께, 겹겹이 쌓인 먹구름을 뚫고 햇빛을 보는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빛!
누구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빛과 그림자》의 '빛'에 대한 의미를 깨달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림자'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이상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세 연주자의 얼굴에 고통의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마치 무언가가 그들을 안으로부터 갉아먹고 있는 것처럼.
얼마나 아름다운가.
뛰어난 음악가가 목숨을 불태워 위치킹이 남긴 힘과 사투를 벌이고 있네.
그는 패배가 결정된 이 싸움을 거의 무승부로 만들 뻔했지만, 결국 위치킹도 자신도 아닌 옛 친구의 집념에 패배하고 말았지.
저기,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하프 소리 안 들려?
예? 하프요? 어디에 하프가 있나요? 이 곡은 삼중주 아닌가요?
수준하고는.
저기 멀리 있는 건물에서 들려오는 하프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터져 나오는 날카로운 웃음소리마저도 이렇게나 매력적이지.
그리고 당신, 나의 옛 제자……
첼로를 이용해 말하는 법을 가르칠 적에, 난 이미 네 운명의 주제곡을 들었지…… 그 얼마나 잔인한 선율이었던가.
하지만, 네가 그걸 이렇게까지 빛나는 음색으로 연주할 줄은 몰랐어.
경의를 표하지. 내가 익숙한, 그리고 낯선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내 경의를 표하는 유일한 방법이야.
속세의 음 계획은 사실 제가 재가동시킨 겁니다, 밀정 씨.
……당신이?
우선, 속세의 음이 너무 귀하다는 것, 게다가 그 계획이 실현해도 속세의 음은 당신들이 통제할 게 뻔하죠.
그리고, 과거의 연구가 증명했듯이, 위치킹과 혈연관계가 없다면 그런 실험을 절대 견딜 수 없죠.
그래서, 그 계획이 당신들에게 파괴된 후 완전히 폐기되진 않았지만, 정체 상태가 되었어요.
결국 속세의 음이라는 이 계획 자체가 위치킹에 대한 숭배에서 비롯되었다지만, 두려움 자체를 진심으로 숭배하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이 존재할까요?
그들은 그저 쌍둥이 여황을 쓰러뜨릴 무기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쌍둥이 여황이 위치킹을 쓰러뜨렸던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저는 오빠의 무능함이 가문의 멸망을 초래할 거란 걸 깨달은 뒤로,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들에게 저의 가치를 보여줄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음악, 아츠, 금전, 권력, 심지어 제 몸조차도…… 다 소용없었죠.
하지만 마침내 아버지의 고서 더미에서 먼지투성이가 된 이 계획서를 발견했습니다.
이 계획이 재개되면서 저는 숨을 고를 기회가 생겼고, 그들도 저에게 약간이나마 기대하게 되었던 거죠.
하지만, 그들은 제가 이미 지쳤다는 걸 모릅니다.
더 이상 꼭두각시가 되어 그들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이 계획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죠. 다만, 이 계획의 목적은 누군가의 통치를 뒤집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들에게도 똑같이 고통을 안겨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래서 저는 온갖 아부를 다 떨며, 제 연구 성과를 감상하도록 그들을 행사에 초대한 거예요.
지금쯤 가서 돌아본다면, 당신이 예전부터 의심했던 대상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하수도의 인체 실험실부터 속세의 음 계획서까지, 모두 당신이 일부러 우리가 발견하게 한 거라고?
그건 원래 당신들 밀정을 위해 준비해둔 거예요. 우르티카 백작이 당신과 함께 있었던 건 확실히 예상 밖이었죠.
그렇다면 당신이 일부러 나타난 것도, 당신이 음악 홀을 개조했다는 걸 그들이 발견하지 못하기 위한 것이었군요.
물론, 증폭기는 어디까지나 속임수일 뿐입니다.
확실히 증폭기가 애프터글로에 재난을 가져올 수 있는 건 사실입니다.
증폭기를 떼면 애프터글로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음악 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변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음악 홀의 개조는 제가 속세의 음에 대해 좀 더 연구한 뒤부터였어요.
체르니가 지금 하려는 것은 자신이 만든 곡으로 두 사람 몸 안에 있는 속세의 음을 끄집어내려는 것이죠……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건 더 단순합니다. 속세의 음을 끄집어내는 순간, 그들은 알게 될 겁니다. 모든 것은 이미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속세의 음의 선율과 공명은 이미 제가 교란해 놓았으니, 그 누가 자신을 희생하여 그릇이 되려 하든, 반드시 평소의 수백 배에 달하는 혼란과 무질서를 직면해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그릇을 찾지 못하면 속세의 음은 위치킹이 남긴 이 음악 홀에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구멍이 되어, 모든 사람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거예요.
물론, 저의 연주도 그 일부분이기에 저도 무사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당신, 불행한 밀정 씨,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자신의 불운을 한탄할 수밖에 될 겁니다.
어머, 밀정 씨, 너무 흉악한 눈빛이군요. 당신이 뭘 하려는지 저는 알아요.
미안하지만, 저는 이제 이 곡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저를 죽이면 무대 위 세 사람 중 아무나 죽이는 것과 같은 결과입니다. 그저 모든 사람의 죽음을 앞당기는 것뿐이에요.
체르니는 연주를 멈추려고 애썼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속세의 음을 끄집어내기 시작한 순간, 그는 이상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이 음악 홀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아츠 유닛처럼, 그들의 연주를 흡수하여 반사하기 시작했다.
공명, 진정한 공명.
게르트루트가 개조한 게 증폭기뿐만은 아니란 걸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 음악 홀 자체가 이미 하나의 무기로 변한 것이다.
게르트루트, 왜 이렇게까지……
체르니 선생님, 계속 이대로라면……
멈추면 안 됩니다!
이 음악 홀의 간섭 때문에, 속세의 음이 더 흐트러졌습니다.
지금 멈춘다면, 당신들뿐만 아니라 여기 홀 안에 있는 사람들이 폭주한 속세의 음 때문에 모두 피해를 보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 곡은 에벤홀츠 몸 안에 있는 속세의 음에서 시작해, 크라이데 몸 안에 있는 속세의 음에서 끝나야 한다.
설령 그들이 지금 멈추지 않는다고 해도, 곡이 끝날 무렵이면 크라이데 몸 안에 있던 속세의 음이 완전히 끌려 나와,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이건 절대 만회할 수 없다.
이 불안감, 억누르는 듯한 오리지늄 아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저기요!
당신은 로도스 아일랜드의……
서둘러 홀 안의 사람들을 대피시키세요!
네?
큰일 날 거예요!
서두르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요!
이게 게르트루트의 연구 성과인가요, 재미있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개 백작치고는 나쁘지 않군요.
나중에 잠깐 보자고 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당신은 무슨 근거로 그들이 오늘 음악 홀을 사용할 거라 확신했던 겁니까?
틀렸습니다, 밀정 씨.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확신 따위는 없습니다.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여전히 크라이데를 구하려는 한 제가 이길 거라는 거죠.
크라이데의 병세가 마지막 카드이죠. 그들이 그것마저 해결한다면 저의 실패입니다.
단지 그뿐이에요.
서…… 설마? 이건…… 심지어 계획이라고 할 수도 없잖습니까!
왜냐하면, 저의 계획은 애초에 실패했으니까요!
여기서 당신이랑 수다 떨고 있는 게 설마 제게 승산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나요? 천만에요.
만약, 체르니가 저를 순순히 따랐더라면, 그 쥐뿔만 한 우르티카 백작이 자신의 보잘것없는 운명에 반항하지 않았더라면, 제가 굳이 이런 방식으로 도박을 했을까요?
체르니는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영원히 모를 거예요. 남들이 인정하는 재능도 있고, 제가 제공한 무대도 있었으니.
저에게 조금만이라도 굴복했더라면, 저는 그의 음악을 더 높은 곳으로, 심지어 여황 앞까지 이끌어 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그런 걸 원치 않았죠!
그리고 우르티카 백작…… 그는 스스로를 우르티카의 장식품이라 여기며, 조롱이나 모욕을 당하는 게 가장 큰 수치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저는 이 도시에서 그들에게 15년 동안이나 조종당했습니다. 무려 15년이라고요!
성과를 내지 못하면 죽임을 당할 운명인데…… 왜 그들은 살 수 있고, 저는 안 되는 거죠?
위치킹이든, 쌍둥이 여황이든 저는 관심 없어요. 저는 그저 살고 싶을 뿐이에요!
처음부터 그저 살고 싶었을 뿐……
……
비세하임에 온 뒤로 에벤홀츠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
그는 애프터글로를 거닐며 활기찬 이 동네를 돌아보고 싶었다.
그는 처음으로 음악의 진정한 매력을 느껴 더 많은 악기를 연주해보고 싶었다.
그는 체르니에게 사과하고, 그의 음악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심지어 체르니가 원한다면,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크라이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같이 있으면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수다? 말다툼? 아니면 싸움이라도? 그는 몰랐다. 그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가 이 도시에 오지 않았더라면, 게르트루트의 초대를 수락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들은 발생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의 경솔함 때문에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
그는 이 국면을 어떻게 타파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려고 했다.
실제로 체르니가 새로운 방법을 내놓지 않았더라면, 그는 게르트루트의 계획대로 실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에 그가 그렇게 하려는 이유가 마음속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였다면……
지금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것은 속죄를 위해서가 아니라고.
그는 체르니와 크라이데를 힐끗 쳐다보았다.
걸출한 대음악가, 새로 사귄 친구.
그는 그들이 자기보다 더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미처 몰랐던 건 음악에 대해 완전히 마음을 연 지금, 자신의 감정은 더 이상 감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에벤홀츠 씨, 바보 같은 짓은 그만두세요!
훗, 우르티카 백작, 나의 우르티카 백작이여, 당신은 이 곡의 서장입니다.
설령 이 곡을 억지로 뒤집어서 머릿속에 넣는다 해도, 그 안의 모순과 갈등을 어떻게 처리할 건가요?
그저 몸부림에 불과할 뿐이에요!
너도나도 도망치려 하고,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데…… 어떻게 도망칠 건가요? 무엇 때문에 도망치려 하는 겁니까?
저는 그들의 그늘에 가려져 15년이나 살아왔어요. 하지만 마지막에, 최후의 최후에 이기는 건 바로 저예요!
제가 이겼어요! 운명은 저의 편이라고요!
아무도 도망갈 수 없어요…… 아무도!
얼마나 추악한 모습입니까. 연주자가 자신이 연주하는 곡에 저항하다니.
이것도 게르트루트의 계획인가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공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러분, 잠시 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잠시 퇴장해 주세요!
사회자가 지금 퇴장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자의 입을 다물게 하죠.
네.
크윽……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감염자를 입 다물게 한 것뿐입니다.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고는 있나요?
당신도 입을 다물지 않으면, 저 감염자처럼 될 거란 건 알고 있습니다.
그만두세요!
(두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다면……)
……
크라이데에게 과거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지 물어본다면……
그는 분명 '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할아버지로부터 자기 몸이 특이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도 차츰 그것을 느끼게 되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괴로워했고, 그가 선의를 베푼 사람들도 결국 그를 멀리했다…… 그 후에는 그가 일부러 사람들을 멀리했다.
그렇다고 크라이데는 이런 삶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랫동안의 방랑 생활에서 깨달은 것은 바로, 운명을 저주한다고 삶이 나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자신이 존재하는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다.
……
크라이데는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삶의 가치에는 높고 낮음이 없다. 하지만 그는 친구를 사귀었고 우정을 얻었다. 그는 이에 만족했다.
오늘은 날씨도 좋아, 죽음을 맞이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음?
……?!
첼로…… 크라이데군요. 설마 같은 일을 할 생각인가요?!
크라이데 씨, 당신마저……?!
체르니 선생님이 목숨을 불태워 만든 곡을 이대로 짓밟히게 놔둘 순 없어요!
게다가, 저는 이 곡의 종결이에요. 제가 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죠?
당신,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합니까?!
……!
에벤홀츠 씨, 멈추지 마세요. 저의 템포에 잘 따라오기만 하면 돼요.
(하지만 너는……)
마지막 연주를 무사히 끝내도록 해요. 알았죠?
(하지만!)
저를 믿어주세요, 에벤홀츠 씨, 그리고 체르니 선생님. 제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나는……
(너를 믿어.)
곡이…… 정상으로 회복된 건가?
아니야, 이상해! 크라이데 씨가……
저 감염자 여인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괜찮습니다. 그냥 평민일 뿐입니다. 음악 감상이 더 중요하죠.
들어보세요, 이제 또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아까 그건 작은 서프라이즈였군요.
게르트루트는 아마 속세의 음이 통제하기 어렵다는 걸 보여줘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한 것 같습니다.
훗, 드디어 그녀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군요.
우리에게 흥미로운 기술을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우아한 곡까지 선보일 줄이야.
플루트, 첼로, 피아노의 삼중주 사이에서 빛과 그림자는 번갈아 가며 여실 없이 표현되었다.
결국, 첼로와 피아노의 합주로 곡은 피날레를 맞이했다.
청중들은 추운 밤의 속삭임, 어둠 속의 포옹, 심연의 부름을 들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들린 것은 허무에서 나오는 긴 한숨뿐이었다.
한참 뒤에야, 관중석에서 점차 박수가 터져 나왔고, 박수갈채는 점점 뜨거워졌다.
하지만, 음악 홀을 휩쓸기 전에 박수갈채는 공포에 질린 비명에 끊겨 버렸다.
끝났어…… 크라이데, 네가 해냈어!
아니, 아직 할 일이 더 남았어요……
크라이데, 너 왜 그래…… 너, 몸이?!
에벤홀츠 씨, 빨리 밖으로 나가요.
체르니 선생님, 히비스커스 씨와 함께 사람들을 대피시켜주세요. 가능한 한 멀리요.
당신……
크라이데 씨, 몸이……
미안해요, 체르니 선생님, 그리고 히비스커스 씨.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저를 데려가 주세요, 에벤홀츠 씨. 제가 아직 억제할 수 있을 때.
머릿속의 선율이…… 점점 더 세게 울려요……
두 선율이…… 머릿속에서…… 뒤엉키고 있어요……
에벤홀츠 씨, 빨리요, 저를 데리고 나가주세요.
이 홀이 두 선율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어요.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아요……
알았어!
에벤홀츠 씨, 당신……
크라이데는 내게 맡겨.
하지만……
맡기라고 했잖아!
히비스커스, 너는 체르니와 함께 사람들을 대피시켜!
무대 위의 이변을 발견한 사람들은 뿔뿔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공황에 질린 비명이 줄줄이 터져 나왔고, 그 속엔 히비스커스와 체르니의 고함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에벤홀츠에겐 이 모든 게 그저 소음으로 들릴 뿐, 그의 눈에는 바깥의 광장밖에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어?
그럴 리가요……
그냥 예감이 들었을 뿐이에요.
예감?! 오늘 왜 이렇게 들떴냐 했더니, 그게 이 예감 때문이었어?!
아, 아니에요…… 에벤홀츠 씨와 체르니 선생님과 함께 연주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요.
살면서 이렇게 기뻤던 적은 처음이에요.
그렇다면 이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기쁠 일은 아직 많이 남았잖아……
하지만 제가 아니면, 당신이 할 거고, 체르니 선생님도 할 거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그게 꼭 너 여야만 했어?!
너는 단 한 번도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낸 적 없잖아. 나는 충분히 지냈으니 이젠 네 차례라고!
미안해요, 에벤홀츠 씨.
뭐가 미안해…… 사과할 필요 없어!
지금 제 모습, 정말 흉하죠?
당신이 맞춰준 옷이 다 망가졌어요. 비싼 옷인데……
그만해!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사줄게!
미안해요……
이……
이…… 거짓말쟁이.
나는 지금 무척 화가 나, 크라이데.
진심으로 화난다고!
크라이데는 너무 쇠약해져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지만, 에벤홀츠의 흐느낌만은 똑똑하게 들렸다.
대체 왜 이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도 몰라…… 체르니 씨가 갑자기 음악회를 중단하더니, 히비스커스 아가씨가 또 우리 보고 빨리 도망치라고 재촉했어……
괜찮아, 우린 분명 무사할 거야.
그런데 갑자기 날이 흐려졌네. 설마 정말로 재난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그거 있잖아, 그 합주가 어쩌니 하는 그 예언 말이야……
괜찮아, 괜찮아. 그 예언은 히비스커스가 악마라고 했는데 뭘.
비가 오네?
거 봐, 별거 아니잖아. 그냥 비가 올 뿐이야.
……도착했어.
……
너 괜찮아?
아니요……
강제로…… 그 느낌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에요.
그럼 지금 내가 뭘 해야 돼? 뭐든지 말해……
그냥……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물어봐! 얼마든지 물어봐!
에벤홀츠 씨, 당신은 자신의 운명이 비참하다고 생각하나요?
내 운명이…… 비참하다고?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너를 만나고 나서야 과거의 나는 그저 엄살을 피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들이 당신의 자유를 빼앗았고, 당신의 눈과 귀를 가렸으니까요…… 그러니까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제 운명은 비참하다고 생각하나요?
처음 네가 사는 곳을 봤을 때 확실히 놀라긴 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너의 생활은 비참한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충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하, 그러면 다행이네요.
콜록…… 커헉……
크라이데, 너……
더 이상은 무리예요. 하지만,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세요, 에벤홀츠 씨.
속세의 음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요. 위치킹이 남긴 힘이 몸 안에서 울부짖고, 참혹한 생각들이 가슴속에 가득 차 있어요. 이것들은 저를 운명에 굴복시키려고 하고 있어요.
우리의 처지는 고통스럽고, 우리의 만남은 불행하고, 우리의 운명은 비참하다고 말하도록 강요하고 있어요.
하지만!
하지만, 에벤홀츠 씨!
저는 그걸 반박할 거예요!
그거 알아요, 에벤홀츠 씨?
속세의 음이 우리한테 수많은 고통을 안겨준 건 부인하지 않아요.
온갖 모욕과 모진 경멸에 시달린 백작의 삶이 참으로 불행했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아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떠돌이 생활이 비참했던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이런 단어들로 제 인생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싶지 않아요.
할아버지께서 짐이나 마찬가지였던 저를 데리고 십수 년 동안 떠돌아다니셨고, 그동안 저는 매우 가난하게 지냈어요. 심지어는 할아버지를 제외한 그 누구와도 친하게 지낼 수 없었어요.
하지만, 제가 먼저 선의를 보이면 저도 상대방의 선의를 느낄 수 있었어요.
심지어 제게 첼로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만났으니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십수 년이 지난 후에 당신을 만났다는 거죠.
에벤홀츠 씨, 우리는 그 잔인무도한 실험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걸 잊지 마세요. 우린 살아남았어요.
운명을 저주하고 싶을 때, 우리는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돼요.
우리는 다시 만났고, 다시 친구가 되었고, 무대에서 멋진 연주까지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불행할 리 없잖아요?
우리는 지금 너무 행복해요…… 우리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요? 어디에도 없어요, 있을 리도 없어요!
……알아, 알고 있어.
아니, 당신은 아직 몰라요!
크라이데의 목소리에서 점점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괴물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가.
하지만 에벤홀츠에겐 그 소리가 너무나도 친근했다. 마치 먼 길을 떠나기 전에 형이 동생에게 다정하게 부탁하는 것처럼.
당신이 정말로 안다면 저를 위해 슬퍼하지 말아요. 에벤홀츠 씨, 가장 사랑하는 형제여.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함께 죽어야 했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목숨을 잃어야만 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저항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소용없는 몸부림이겠지만, 우리에겐 서로를 위해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기회였다고요!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꺼이 그렇게 하기를 원했어요. 단지, 결과적으로 제가 그렇게 했을 뿐이고. 그게 다예요.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다른 걸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는 게!
우리는 운명에 저항하는 길을 가고 있어요. 마치 체르니 선생님이 모든 걸 쏟아부어 만든 그 곡처럼……
그러니까, 에벤홀츠 씨, 가슴을 펴세요.
당신에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남았어요. 그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가 이 도시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저를 멈추는 거예요. 괜찮겠어요?
……응, 알았어.
지금 그 눈빛…… 아주 좋아요.
크라이데는 휘청거리며 광장 중앙으로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오리지늄 결정이 몸속에서 넘실거리듯 튀어나왔고, 피와 살이 피부밑에서 들끓기 시작했다.
기괴한 선율이 광장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오리지늄 결정이 순식간에 크라이데의 온몸을 뒤덮으면서, 갑옷과 악기로 변했다.
순식간에 크라이데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나타난 것은 그를 괴롭혔던 괴물이었다.
그 괴물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단어가 떠올랐다……
위치킹.
곧 마지막 때가 온다. 존경하는 귀족 여러분, 친애하는 감염자 여러분.
그리고…… 에벤홀츠!
듣거라, 나의 마지막 곡을!
나를 위해 실의하고, 비탄하고, 슬퍼하고, 노래하라.
왜냐하면, 오늘, 나는 죽고, 너는……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