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8운명
사투 끝에 애프터글로 구는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지만, 에벤홀츠와 크라이데는 더 가혹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에벤홀츠, 히비스커스, 히비스커스 더 퓨리파이어
바보 같은 놈, 이 바보 같은 녀석아……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잖느냐.
이 세상이 너에게 그렇게 많은 빚을 졌는데, 너는 왜 그렇게까지 한 게야?
할아버지?!
빨리 떠나세요! 여긴 오리지늄 활성 농도가 계속 상승하고 있어요!
손주 녀석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구나.
마지막 일격만 남았어, 히비스커스. 주의를 계속 끌어줘……
크라이데, 나 여기 있다.
당신?!
크라이데, 내 사랑하는 손자야.
네게 원망이 있다면, 나한테 퍼붓거라.
더 많은 걸 파괴하기 전에 나에게 화풀이하거라!
나는 너를 몇 년이나 속였고, 몇 년이나 너에게 숨겨왔다…… 너를 위해 죽을 생각도 했지만, 네가 이런 결말을 맞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구나!
남을 살리는 길을 선택했다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내가 널 따라가는 게 어떻겠느냐?
네 곁에 조금 더 있게 해주려무나, 내 사랑하는 손자야!
오리지늄 결정으로 구성된 괴물은 늙은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방금 보였던 순간의 각성은 그저 기적이었다. 지금의 괴물은 그저 첼로를 연주하며 주위를 영원한 허무로 끌고 가려 할 뿐이다.
그리고, 괴물은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죽음의 선율을 힘껏 토해냈다.
할아버지?!
아가씨, 어째서……
……에벤홀츠 씨, 여긴 제가 막을게요. 지금이에요!
하아아아아아아!!!
어떻게 이럴 수가?!
우정, 희생, 헌신…… 이런 유치한 신념은 현실 앞에서 산산이 조각나야 하는데. 왜, 도대체 왜?!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크라이데가 두 갈래의 속세의 음을 강제로 자기 몸에 담았지만, 그는 결국 그 중첩된 무질서와 광기를 완전히 제어할 수 없을 겁니다!
들려요. 크라이데의 선율은 이미 사라졌지만, 에벤홀츠의 속세의 음이 여전히 들리고 있어요. 그렇다면 아직……
크윽!
그쯤 해 두시죠, 슈트롤로 백작.
조금 전까지 하프에 걸쳐있던 게르트루트의 손이 맥없이 늘어졌다.
비글러는 게르트루트의 등 뒤에서 서서히 비수를 뽑았고, 새빨간 피가 그의 옷을 물들였다.
오리지늄 껍데기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광장에는 모든 소리가 사라졌고, 활성을 잃은 오리지늄 껍데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만 들려왔다.
마지막 껍데기가 마저 벗겨지자, 그 제자리에 남은 건 빈사 상태의 크라이데와 그의 첼로였다.
기다려…… 기다려!!
잠깐만요! 크라이데 씨는 지금 위험한 상태입니다. 일단 감염자 임종 처리장에 연락하는 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크라이데는 죽지 않아!
콜록……
크라이데, 정신이 들어?!
봤지? 크라이데는 살 수 있다고!
……
에벤홀츠…… 씨?
여기야, 나 여기 있어!
쓸데없는…… 일은 하지 마세요. 저는……
……
(하아…… 하아……)
몸이…… 너무 가벼워요……
아까는 정말 아팠는데,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어요……
응, 괜찮아질 거야, 분명 좋아질 거야……
에벤홀츠 씨, 아마 당신과 나누는 마지막 대화일 거예요.
제 말을 꼭 기억하세요.
에벤홀츠 씨, 살아남으세요. 기나긴 밤을 지나가야만 해요.
불공평한 운명에 저항하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세요.
그래야만 당신이 자리에 앉았을 때 제가 떠오를 테니까요.
그럼 전 물어볼 거예요. 에벤홀츠 씨, 오늘은 어땠나요?
그럼 당신이 가슴을 펴며 말할 거예요. 오늘도 충실한 하루를 보냈어……라고 말이죠.
당신은 제게 선행을 하던 중에 부딪힌 장애물에 대해 털어놓을 거고, 운명이 당신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며 불평하겠죠.
하지만 괜찮아요. 제가 다 들어드릴 테니까요.
당신은 노력하고 있으니까, 불평할 자격이 있어요.
그래야만 이 땅 위에서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당신 삶 속에서 평온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기억해 주세요, 에벤홀츠 씨. 우리는 함께 불공평한 운명에 대항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승리했어요!
그러니 제가 떠오를 때면, 당신은 울지 말고 웃어주세요.
응, 응!
그리고…… 에벤홀츠 씨, 미안해요.
기념으로 당신에게 어떤 선물을 줘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요……
뭐든지 다 좋으니까, 죽지 마. 제발 죽지 마. 부탁이야……
……
크라이데, 크라이데……
크라이데!!!!!!
그들은 언젠가 산산조각이 나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우정, 희생, 헌신……
유치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들 때문에 동정의 눈물을 흘릴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당신은요, 슈트롤로 백작?
당신은 자신과 체르니 사이에 싹튼 우정을 스스로 짓밟았어요.
당신은 자기 형제를 죽였고, 그가 무능하다고 비웃기까지 했습니다.
당신은 남이 당신을 위해 헌신하길 원했지만, 당신은 그들에게 무엇을 주었습니까?
게르트루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입술만 꿈틀거렸다.
“너희들을 저주하겠다.”
비글러는 독순술로 게르트루트가 하는 말을 읽어냈다.
“네가 어두운 시궁창에 빠져 죽도록 저주하겠다.”
“에벤홀츠가 그 핏줄의 광기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도록 저주하겠다.”
“애프터글로가 몰락하도록 저주하겠다.”
“라이타니엔이 위치킹의 그늘에서 영원히 떨도록 저주하겠다.”
“위치킹이 영원히 안식을 얻을 수 없도록 저주하겠다.”
……참으로 흉하군요.
제가 다소 충동적이었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민중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때 제거하는 게 저의 소임 중 하나이니까요.
당신을 위해 상세한 보고서를 써 놓겠습니다, 슈트롤로 백작.
안녕히 주무시길. 그리고 남을 축복하는 꿈을 꾸길 바랍니다.
손에서 피가 나요! 설마, 오리지늄 결정에 찔린 건가요?
아, 그런가…… 피가 좀 나긴 하네.
즉시 치료를 받아야 해요……
치료? 지금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은 크라이데야!
에벤홀츠 씨, 크라이데 씨는……
……
안 돼.
그 이상 말하지 마. 히비스커스, 제발 부탁이야……
……알았어요.
크라이데 씨는…… 감염자입니다. 감염자 임종 처리장에 연락하기 싫다면, 크라이데 씨를 위해서라도 밀폐성이 높은 방을 구해야 해요……
알아, 알고 있다고……
그렇다면…… 음악 홀의 휴게실로 가자.
알겠습니다, 제가 데려갈게요.
내가 할게.
크라이데, 자, 내가 안아줄게.
에벤홀츠는 조심스럽게 크라이데를 껴안았다. 오리지늄에 찔려 그의 몸에 상처들이 생겼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천천히 온기를 잃어가는 친구의 몸을 마치 짧고 아름다운 꿈을 껴안듯이 안고 있었다.
크라이데, 곧 도착할 거야.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고마워요.
아직…… 의식이 있어?!
지금 바로 히비스커스에게 데려다……
이 건물 안에 놓아주세요.
나중에 애프터글로에 다시 돌아온다면, 당신은 여기에서 친한 친구와 함께 다투기도, 웃기도 했다는 것을 떠올릴 거예요……
그리고 함께 멋진 연주를 했다는 것도.
아니야, 너는 크라이데가 아니야. 너는……
이게 네가 원했던 게 아닌가?
닥쳐, 이 늙다리야. 이런 식으로 크라이데를 모욕하는 건 용서 못 해.
크라이데는 속세의 음을 제거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어. 그런데 속세의 음은 왜…… 아직도 내 머릿속에 있는 거야?!
……
경고한다. 다시 한번 크라이데를 따라 하면, 나는 여기서 내 머리를 날려버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어.
하아……
……어리석은 나의 핏줄이여.
그 뒤로 에벤홀츠의 귓전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점점 무거워지는 크라이데를 끌어안고, 한 걸음 한 걸음 붉은 노을 전당의 휴게실을 향해 걸어갔다.
도착했어.
내가 밀폐 작업을 할 테니, 너는 소파에 누워 있어.
여기 소파는 부드러워서 편하게 누울 수 있을 거야……
소파가, 부드러워……
너는 집에 있는 침대에서조차……
……
……아무래도 나도 감염된 것 같아.
전에는 고생해서 겨우 사용할 수 있던 아츠가, 지금은 너무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됐어…… 뭐 감염된 것도 딱히 나쁘진 않네.
됐어, 이 정도면 충분해. 문은 내가 나간 후에 밀폐할게.
그 밖에…… 또 바라는 게 있어?
기념…… 맞다, 기념품이 있었지.
이 첼로는 내가 가져갈게.
너에게 사준 물건을 내가 다시 가져가게 되다니, 정말이지……
에벤홀츠는 입술을 움직였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침묵하다가 허리를 굽혀 자신이 늘 사용했던 플루트를 크라이데 옆에 고이 놓아두었다.
전에 동전에 구멍을 뚫어서 달라고 했었지. 하지만 지금 내게 남은 건 이 플루트밖에 없어……
미안해.
용서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