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7정화된 밤
게르트루트는 밀정에게 끌려갔지만, 크라이데의 건강은 더 나빠졌다. 실험실에서 입수한 자료를 검토한 후,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무모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체르니, 에벤홀츠, 히비스커스, 히비스커스 더 퓨리파이어
쓰러지세요!
허튼 수작을!
아직 여유가 있나 보군요……?
이벤에는 진심으로 공격하겠어, 미스 슈트롤로!
당신…… 그동안 실력을 숨긴 겁니까?!
왜, 너도 힘이 미치지 못할 때가 있나?
아직이에요. 당신은 어차피 속세의 음에 의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츠의 컨트롤이라면 아직 멀었어요……
하아압!!
하아…… 하아…… 하아……
쓰, 쓰러트린 건가……?
……하, 우르티카 백작. 설마 제가 질 줄이야.
너도 패배를 인정할 줄 아냐?
뭐, 패배는 패배니까요. 인정하지 않는다고 제 승리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너는…… 왜 그렇게 여유를 부리지?
왜냐면…… 당신들은 저를 어찌할 수가 없으니까요.
저는 이 도시의 영주입니다. 당신들은 이 야심한 밤에 제가 관리하는 음악 홀에 침입해서, 제가 합법적으로 개조한 기자재를 함부로 망가뜨렸습니다.
심지어, 당신들을 저지하러 나선 저를 다치게 했어요……
우르티카 백작, 로도스 아일랜드, 그리고 체르니 당신까지, 당신들이야말로 자신의 처지를 걱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게르트루트, 여전히 비열하군요.
비열하다고? 그게 십수 년 동안 당신에게 자금을 지원해준 후원자에 대한 태도인가요?
체르니, 이 음악 홀을 당신에게 허락한 사람은 저예요.
지금 당신의 지위도 제가 준 것이죠. 감염자 주제에.
그리고 당신이 오매불망 걱정하는 이 애프터글로도 제가 자비를 베풀었기에 오늘까지 이어져 온 겁니다.
잊지 마시길.
당신……!
돌아가세요, 여러분.
……
이건 어떨까?
우르티카 백작이라는 신분은 라이타니엔에선 일종의 치욕이지.
하지만, 내가 가는 곳마다 여황의 눈이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해.
그게 뭐 어떻다는 거죠? 제가 말했잖아요, 저의 음악 홀을 파괴하려 한 건 당신들이에요.
설령 여황 폐하의 밀정이 진짜로 나타난다고 해도, 그가 잡아가야 할 건 당신들이지, 제가 아닙니다.
비글러, 비글러!
지금까지 다 지켜봤지?
계속 구경만 하고 있을 건가?!
제가 본 건 우르티카 백작이 야심한 밤에 사람을 데리고 당당하게 음악 홀에 침입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저 여자가 음모에 관해 얘기한 건 듣지 못했나?!
슈트롤로 백작이 꾸민 음모를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우르티카 백작과 슈트롤로 백작이 함께 꾸민 음모를 말하는 건가요?
너……
분명히 듣긴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방금 들은 당신들의 대화를 모두 녹취해도, 그건 아무것도 증명할 순 없어요.
증거 말입니다, 우르티카 백작. 무슨 일이든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슈트롤로 백작이 여황께 반항하려 했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
증거라니, 이제 와서 무슨 증거 타령이야……
아, 맞다. 속세의 음!
우리가 하수도에서 같이 발견한 속세의 음 연구 노트가 있잖아!
……뭐라고요?
훗.
그래도 당신이 그렇게까지 어리석은 것 같지는 않군요, 우르티카 백작.
무슨 연구 말이죠? 저는 전혀 모르는 일이에요.
모른 척해도 의미 없습니다, 슈트롤로 백작.
당신이 하수도에 있던 그 실험실의 노트와 계획서랑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저희에게도 다 방법이란 게 있습니다.
하수도의 단서가 있으니, 당신의 다른 거점을 찾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죠.
당신은 폐하께서 금지한 '속세의 음' 연구를 진행한 혐의가 있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
……
잠깐, 죄명이 고작 속세의 음 연구야?!
다시 한번 말씀드리죠, 우르티카 백작, 그리고 다른 분들도.
당신들이 말한 그 나쁜 결과가 확실히 발생할 거란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당신들이 열거한 모든 죄명은 저 여자에 대한 모독이 될 뿐입니다.
그 속세의 음 연구 노트를 제게 보여주세요. 그러면, 제가 최대한 상세한 증거를 제출할게요!
유감입니다만, 그건 라이타니엔의 기밀 사항에 해당하기에, 외국에서 온 조직에 넘길 수 없습니다.
그건 너무 불합리하잖아요!
이 대지엔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아가씨.
하지만……!
됐어, 히비스커스.
비글러의 뜻은 명확해. 우리가 발견한 것들이 슈트롤로 백작의 죄를 단정 짓기엔 아직 부족한 게 맞아.
하지만, 그가 나타났다는 것은 아마 슈트롤로 백작의 또 다른 죄를 발견했다는 뜻이겠지.
오히려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나타나 준 것만 해도 내가 감사해야 할지도 몰라. 안 그래, 친애하는 밀정 씨?
뭐 솔직히, 당신과 슈트롤로 백작을 비교한다면, 확실히 저는 당신이 더 마음에 들기는 합니다, 우르티카 백작.
그리고, 체르니 씨.
음?
지금 슈트롤로 백작은 저희 통제하에 있습니다. 설령, 당신들이 걱정하던 상황이 단순한 유언비어가 아니더라도, 음악회는 더 이상 위험이 없습니다.
물론, 저 역시 이번 음악회를 취소하길 권장해 드립니다만. 그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니까요.
저는 내일의 음악회가 이미 금지된 줄 알았습니다.
개최 여부는 당신에게 달렸죠.
슈트롤로 백작, 여황 폐하에 대한 당신의 충성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저는 단지 당신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싶을 뿐이니, 당연히 응해주시겠죠?
흥, 꼭두새벽부터 시작하는 아침 식사 말인가요? 얼마든지 어울려 주겠습니다.
우르티카 백작, 저를 배신한 걸 후회할 겁니다.
난 많은 것을 후회했어. 하지만 이건 절대 아니야.
이대로 가버렸네요……
게르트루트……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상스러운 말도 가능하다면.
크라이데는 아직 깨나지 않았네……
제게 맡겨 주세요. 지금 당장 출발해 로도스 아일랜드 본함으로 데려갈게요.
크라이데를?
네, 로도스 아일랜드가 아니면 제대로 치료할 수 없어요.
안 돼.
왜죠?
너희들이 크라이데의 병세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해도, 속세의 음은 어떡할 건데?
너희의 의료 수준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너희들이 정말 속세의 음을 해결할 수 있을까?
……장담은 못 해요.
그렇지만, 저희는 지금 다른 선택지가 없어요.
게르트루트 씨가 말한, 합주를 통해 속세의 음을 제거한다는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난 믿을 수밖에 없어.
당신……
그럼, 비세하임에서 네가 말한 본함까지 얼마나 걸리는데?
……
대답하지 못하는 걸 보니, 너도 크라이데가 그때까지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게르트루트 씨가 말한 게 정말 사실이라고 해도, 당신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그걸 할 생각인가요?
할 수만 있다면 안 될 게 있겠어?
히비스커스는 아연실색했다.
눈앞에 있는 이 청년의 눈빛은 처음 만났을 때와 사뭇 달랐다.
그는 진심이었다. 히비스커스는 이렇게 느꼈다.
좋아요.
제가 최대한 돕는다 해도 저희가 속세의 음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너무 적어요. 그것도 모두 그 백작의 입에서 들은 거라 사실 여부도 확실하지 않아요……
내가 때를 맞춰 온 것 같구나.
할아버지……
너희들이 속세의 음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면, 내게 그 계획서가 있다.
……?!
할아버지, 설마……
설마 당신도 비글러처럼……
그래.
너희도 이미 알아챘을 게야. 크라이데는 그때 그 실험의 생존자였지.
여황 폐하가 이렇게 불안정한 요소를 자유롭게 떠돌아다니게 놔둘 리는 없잖나?
하지만, 두 분은 함께 십수 년간 살았잖아요?!
그러니까 의심을 사지 않았던 거지.
하지만, 비글러 씨는 기밀 사항이라 했는데……
그래서 내가 녀석한테서 훔쳐 왔다.
이렇게 해서라도 크라이데를 살릴 수만 있다면, 이런 빌어먹을 계획 따위가 세상에 알려진다고 무슨 상관이겠느냐?
쿨럭, 쿨럭.
흐, 흥분하지 마세요, 할아버지. 아직 몸이 약해져있으니까요……
계획서는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히비스커스 씨, 당신은 이 어르신을 돌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이 사실은 크라이데도 알고 있나요?
말하지는 않았지만, 걔는 워낙 똑똑한 아이라서 대충 짐작했을 테지.
이건 크라이데한테 너무 잔인해요.
잔인해?
훗.
꼬마 아가씨, 내가 어쩌다가 감염자가 됐는지 아는가?
……몰라요.
들어봤겠지만, 예황 폐하가 집권하기 전에 라이타니엔의 고전 아츠에 대한 탐구는 이미 타국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지.
네, 맞아요.
그럼, 그런 수준까지 도달하기 위해 라이타니엔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는 알고 있는가?
감염자들이 대거 포함된 무수히 많은 생명이죠.
그래, 감염자야.
그 시절, 정기적으로 일정 수량의 감염자를 상납하는 게 선제후들에겐 불문율이었지.
하지만 감염자도 사람인데…… 마냥 죽음을 기다릴 순 없지.
그래서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나?
설마……?!
아무래도 눈치챈 모양이군.
……오리지늄으로 네 팔에 줄 하나 그어주면, 너도 어엿한 감염자가 되는 게다.
나도 그렇게 감염된 거였지.
선율…… 이 선율, 속세의 음은 위치킹이 남긴 선율인 건가요!
그렇다면……
아니, 그럴 게 뻔하죠!
위치킹은 라이타니엔에서 가장 막강한 캐스터인 동시에, 가장 무서운 음악가이기도 했습니다.
위치킹은 음악적 조예가 매우 높아, 그의 음악에 관한 연구는 아츠 연구와 같은 수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그가 세간에 남긴 곡들은 리듬, 음색, 질감…… 이런 음악의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요소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모두 침략성과 파괴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위치킹의 작품들은 오래전부터 금지곡이 되었어. 만약 속세의 음 하나하나가 위치킹이 남긴 선율이라면……
속세의 음은 틀림없이 위치킹이 남긴 작품이며, 당신들은 그 작품의 연장이겠죠.
우린 그 녀석의 작품이 아니야!
자신을 속일 필요는 없어요. 게다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방법이 있나?
당신들이 원석충을 몰아냈을 때의 그 연주를 재현했으면 합니다.
그때 당신들은 아마 자신만의 속세의 음을 잡았을 거예요…… 그렇죠?
연주? 지금?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그래?
알죠, 당신보다 더 잘 압니다!
하지만……!
에벤홀츠 씨, 체르니 선생님의 말씀대로 하죠.
크라이데, 너 괜찮아? 혼자 온 거야?
안단테 씨가 데려다줬어요.
그래도 저번처럼 속세의 음 선율에 따라 연주하면 안 돼. 저번에도 너의 상태는 위험했잖아……
저는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체르니 선생님,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요?
만약 속세의 음 하나하나가 선율이라면, 당신들에게 실험했던 위치킹의 잔당이든, 게르트루트든……
그들이 원하는 건 분명 선율에 깃든 아츠, 또는 아츠에 흐르는 선율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속세의 음에 대한 탐구 목적은 그 안에 있는 신비를 파헤치는 거죠.
쉽게 말하면, 속세의 음을 더 '우렁차게', 더 '아름답게'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계획서엔 속세의 음 '이전'에 관한 그 어떤 방법도 적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제 놀랍지도 않아.
하지만 그게 너무 어려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낭비라고 그들이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위치킹이 남긴 선율은 모두 다른 시기에 만들어졌고, 각기 전혀 다른 감정과 생각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완전히 다른 두 곡을 하나로 맞춰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치 당신들이 합주했을 때처럼, 깊이 탐구할수록 더 끔찍한 결과만 초래할 뿐이죠.
원석충마저 도망친 것도 아마 당신들의 연주가 너무 귀에 거슬렸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비슷한 연구를 했었고, 아마 효과가 별로였다는 걸 깨달은 거…… 겠죠.
맞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두 곡이라도 충분히 기반을 다듬어 주기만 한다면 완벽하게 융합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저의 《아침 그리고 저녁》을 연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녁때 했던 것처럼, 당신들이 곡에서 자신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들의 몸 안에 있는 속세의 음을 통해 제가 새로운 곡을 만들어 볼 예정입니다.
잠깐만요, 어찌 됐든 속세의 음을 이전하려면 그릇이 필요할 텐데요.
하지만, 한 그릇에 두 개의 속세의 음을 담는 실험은 이미 실패로 끝났잖아요?
내가 그 그릇이 될게. 당신은 이 말이 하고 싶은 거지?
그 정도의 결심으로 자신을 충분히 희생했다는 착각은 하지 마세요.
제가 최대한 연주를 통해 당신들 몸 안에 있는 속세의 음을 끌어낼 것입니다.
그게 안 된다면, 제가 그 그릇이 되겠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데?
……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당신이 플루트를 배운 계기는 제가 쓴 《아침 그리고 저녁》 때문이었죠?
그래서?
그렇다면, 당신은 제가 그 곡을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도 들어봤을 겁니다. 저는 그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지만, 게르트루트 그 여자는 한사코 그걸 '세일즈 포인트'로 이용하고 싶어 했죠.
당신이 소중한 친구를 잃고, 비통 속에서 그 곡을 썼다고 들었어.
'비통'인가요.
그런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비분'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습니다.
그 사건으로 저는 처음으로 인생이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고, 저에게 있어 음악이 가지는 의미 또한 깨닫게 된 거죠.
즉, 정해진 운명에 저항하는 겁니다.
평범한 사람을 감염자로 만들다니, 너무 잔인하잖아요……
내가 얼마나 위치킹의 잔혹함을 저주했는지 몰라. 아마도 내 저주가 누군가에게 닿았을 테지.
실험실로 끌려가기 전에 여황 폐하께서 위치킹을 쓰러뜨려, 덕분에 나도 살아남았지.
그래서 난 맹세했지. 내 남은 목숨을 폐하께 바치겠다고.
그래서 밀정이 된 거예요?
그래.
밀정의 업무에 대해서는 알려줄 수 없다. 네가 알 필요도 없고.
당시 속세의 음을 연구한 위치킹 잔당을 밝혀낸 밀정이 나란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내가 그자들을 발견한 건 그들이 크라이데한테 했던 실험이 실패한 뒤였고, 크라이데는 이미 지금과 같은 체질이 되어 있었지.
……당신들은 크라이데를 구할 생각이 없었네요, 그렇죠?
그걸 어떻게 알았지?
제가 알기로는, 쌍둥이 여황이 즉위한 후 위치킹 시대의 모든 연구를 금지했어요. 속세의 음에 관한 연구도 분명 포함됐을 거예요.
그리고, 이 속세의 음이라는 게 정말 그렇게 대단한 거라면, 위치킹이 쓰러진 이후 지금까지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위치킹이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든가 “위치킹이 선율 속에 힘을 숨겼다” 등 이런 소문의 주체는 모두 위치킹이잖아요.
그러니까 속세의 음에 대한 탐구는 어쩌면 위치킹에 대한 숭배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더 크죠.
그리고 비글러 씨의 행동에서 알 수 있듯이, 밀정의 원칙은 여황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인 것 같아요.
다시 말해, 당신들이 보기에 속세의 음 자체가 여황에겐 전혀 이득이 없다는 거죠.
아가씨, 전에는 너무 막무가내여서 난 아가씨가 현명하지 못하다 생각했어.
지금 보니, 아가씨는 단지 자신의 지혜를 잘 쓸 줄 모르는 것 같군.
으윽.
네 추측이 맞다. 너희에게 계획서까지 건네준 이상 숨겨둘 필요도 없지.
속세의 음은 아주 특별한 것이며, 그건 위치킹이 이 땅에 남긴 잔향임이 틀림없고, 힘이 깃들어 있는 것도 확실하지.
하지만, 위치킹이 그 안에 자기 분신을 남겼다고 믿는 건 위치킹의 광신도들뿐이야.
속세의 음에 깃들어 있는 힘은 너무 특이해서, 일반적인 방법으론 사용할 수조차 없지.
적어도 지금의 궁중 캐스터들이 보기에, 속세의 음에 관한 연구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이겠지.
그래서, 에벤홀츠와 크라이데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고민거리가 된 거였고.
에벤홀츠 씨가 그나마 안전했기 때문에 선택받은 건가요……?
그래. 우리는 이 계획이 최종적으로 실패했다는 발표를 해야 했고, 몸이 멀쩡한 에벤홀츠가 자연스레 최고의 선택이 된 거지.
크라이데는 이미 체질에 문제가 생겼기에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 게야.
겨우 위치킹 잔당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결국 죽음이라니…… 너무나 가혹해요!
네가 보기엔 우리의 방식이 비정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많은 비극을…… 비정한 사람들 때문에 일어난 비극을 겪고 나면……
그 어떤 일에도 인정을 베푸는 게 불가능해지지.
비글러만 봐도…… 그가 비정하다는 걸 알 수 있잖나?
확실히 그러네요.
그렇지만 너는 몰라. 그 녀석은 애프터글로에서 십수 년도 넘게 살았어…… 이곳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그가 애프터글로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 못지않을 테지.
그 녀석은 게르트루트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겠지만, 그렇게 못할 뿐이야.
게르트루트의 말에 가장 화난 사람은 누굴 것 같나?
……
비글러…… 씨, 그는……
게다가 크라이데는 체질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또 그것 때문에 누구와도 가까이 지낼 수 없다. 이런 과거가 그 아이에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었지.
그 아이한테는 선택지가 없었던 게야.
……하지만 당신은 그에게 인정을 베풀고, 죽음 외의 선택지를 주셨잖아요.
이미 반죽음당한 늙은이랑 여기저기 떠돌면서, 간신히 첼로를 배웠는데 정작 첼로를 켤 기회도 거의 없는 이 현실이, 과연 선택지라고 할 수 있을까?
친구를 사귀기는커녕, 남에게 접근조차도 할 수 없는 이 나날이, 과연 삶이라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살아남았잖아요.
……글쎄.
벌벌 떨고 있는 저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내 팔도 함께 쿡쿡 쑤시는 것 같아.
위치킹…… 그놈의 위치킹.
나, 크라이데, 무심코 감염된 사람들, 그리고 강제로 감염된 사람들까지……
위치킹이 라이타니엔에 남긴 상처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의 귀환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고, 심지어 위치킹 잔당들의 연구를 두둔해주고 있는 귀족들이 있다는 게……
너무 원망스럽구나……
그 녀석들이 전부 처벌받는 걸 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게 원망스럽구나.
콜록, 콜록콜록……
할아버지는 분명 살아남으실 거예요.
위로할 필요 없어, 아가씨.
그 아이와 함께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는 게 기적일 뿐이야.
그 아이는 나에게 진짜 손자 같은 존재야.
요번에 여기로 데려오면서, 사실 비글러에게 소개해서 그 아이한테도 밀정 일이나 찾아줄까 고민했어.
그래야, 내가 죽어도 마음이 놓일 것 같았지.
……하지만 지금, 밀정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나는 줄곧 밀정으로서 여황 폐하를 위해 모든 걸 바치는 게 내 운명이라 생각했지.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구나, 허허……
어르신……
쾅
방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
가 봐, 이 늙은이는 여기에 좀 더 앉아 있을 테니. 가서 저들을 도와줘.
……불편한 곳이 있으면, 꼭 저를 불러주세요!
속세의 음에는 원래 이름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위치킹에게 버림받은 선율이니까.
하지만, 궁중 악사들은 위치킹이 변덕스럽게 써 내려간 선율을 일일이 기록했다.
위치킹이 완벽하게 만든 곡은 심연으로부터 울려 퍼진 울부짖음과도 같다면, 이 토막 난 단편들은 확실히 아직 속세에 남은 선율이 맞다.
그리하여 이 단편들에는 속세의 음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치킹의 힘은 여전히 무서웠다.
……
에벤홀츠 씨, 전에는 당신에게 음악에 있어서 자신의 가장 순수한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지만, 지금은……
지난 십수 년 동안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거기에 담긴 당신의 울분을 쏟아내 줬으면 합니다.
음악은 삶의 거울이고, 당신의 발걸음이며, 당신이 대지를 들여다보는 눈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감정에 현혹되지 말고, 그렇다고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그걸 탐구하고 쏟아내면서, 당신의 영혼 깊숙이 자리 잡은 선율을 끌어내길 바랍니다!
……!
나…… 찾았어……
맞아요, 바로 이겁니다!
이게 바로 당신의 머릿속에 새겨진 선율입니다…… 모든 걸 때려 부수는 파멸의 선율이죠……
……
하지만 크라이데 씨, 당신은 반대로 자신을 억제해야 합니다.
당신은 자신이 안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경험했던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습니다. 그 착함이 가장 큰 약점이란 걸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타협? 왜 타협합니까? 뭣 때문에 타협합니까? 누구도 당신에게 타협을 요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모두가 당신은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죠?!
……저는……
……
……여기까지 왔는데도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 입니까?
뭐, 좋아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당신의 선율은 저도 느꼈습니다……
허무,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는 허무입니다.
으윽……
크윽……
끝까지 버티세요!
두 갈래의 완전히 다른 오리지늄 아츠의 힘이 방안에서 뒤엉켰고, 두 청년의 얼굴엔 고통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체르니는 알고 있다. 자신이 나서야 할 차례가 왔다는 걸 알고 있다.
연주를 멈추지 마세요. 당황하지도 말고.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바로 멈추세요.
하지만, 그 이상이 당신들의 몸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면……
모든 걸 저에게 맡겨주세요.
피아노 앞에 앉은 체르니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두 갈래의 힘에 적응해 보려고 애써봤지만, 체르니는 자신이 주제넘었다는 걸 이내 깨달았다.
그것은 강력한, 분통한, 두려운, 비장한, 피가 서린, 울부짖는……
또 자기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그런 선율이었다.
어느 순간, 체르니의 마음은 위치킹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찼다가, 또 느닷없이 가슴 깊이 우러나는 동경을 느꼈다.
어느 순간, 체르니는 자신이 갓난아이처럼 느껴졌다가, 이내 세월이 자기 몸을 흘러가는 걸 느꼈고, 다음 순간에는 자신이 이미 늙어버린 것을 느꼈다.
그가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이성으로 자기 모습을 유지하려 애쓸 때, 그는 마치 끝없는 황야를 걷는 느낌이 들었고, 거센 모래 폭풍에 눈조차 뜰 수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모래 폭풍을 헤집고 나가자, 하늘 끝까지 이어진 높은 벽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고통도, 분노도, 죽음도.
그냥 순수한 벽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그는 자신이 넘을 수 없는 장벽이란 걸 깨달았다.
순간 공포가 그의 마음속에 가득 찼다.
으윽!
체르니는 격한 기침을 토했고, 시뻘건 피가 입에서 뿜어 나왔다.
너무 심한 기침에 그는 물을 마시려고 일어섰지만, 비틀거리는 발걸음 때문에 옆에 있던 악보대를 쓰러뜨렸다.
이봐, 괜찮아?
체르니 선생님!
밖에서 소리가 들리던데, 무슨 일인가요?
……별일 아닙니다.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은 시도를 해본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아마 시도한 사람들이 전부 살아남지 못한 거였겠죠.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웃음이 나와?!
체르니 씨, 입가에 핏자국이…… 제가 닦아 드릴게요.
아까 당신들은 느낌이 어땠습니까?
……속세의 음을 끄집어낼 때 강렬하게 찢기는 느낌이 들었어.
하지만 체르니 선생님이 합류하고 나서 확실히 부하가 줄어든 느낌을 받았어요.
즉, 적어도 제 계획에 실행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의미하네요.
하지만, 당신은 지금……
피를 조금 토한 것뿐입니다. 제 몸은 제가 잘 알고 있어요.
계속합시다.
체르니는 다시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그는 두 눈을 감고 한 가지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체르니는 누구지?
그는 대답했다. 체르니는 겁쟁이라고.
과거 그는 가장 친한 친구와 은사님의 날개 아래에 숨어서, 음악에 의지해 평생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의 죽음, 광석병의 고통, 경제적인 궁핍으로 자신은 그저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당신이 죽을 수도 있어.
제가 오늘날까지 살 수 있었던 건, 게르트루트가 제게 아직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 돈을 아끼지 않고 제게 약을 사줬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다른 감염자들보다 몇 년 더 살게 됐죠.
하지만 오늘, 제가 이 곡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제게는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저의 죽음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그 플루트를 들고 연주를 시작하세요.
……
그는 대답했다. 체르니는 음악이 전부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무명 시절 그가 집 문을 나서면서 애프터글로 주민들의 수심에 가득 찬 표정을 보았을 때, 그들이 음악의 아름다움에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을 때, 그건 그들이 내일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살기 위해 게르트루트의 제안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고, 위치킹이 남긴 음악 홀에서 귀족들이 자신을 그저 진귀한 동물처럼 바라본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루하루의 지루한 삶에 싫증 났을 때, 그는 다시 그 작은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도망치려는 자신을 붙잡은 건 바로 음악이었다.
그에게 음악밖에 없는 건 아니지만, 그는 음악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했다.
크라이데 씨, 연주가 너무 약해요.
그렇지만……
저를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당신에겐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이건 제가 아니라 당신의 생사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자기희생이 꼭 미덕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의 희생이 때로는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소리쳐 울부짖고, 불만을 털어놓으세요. 당신이 가져야 마땅할 존엄을 쟁취하세요!
……알겠…… 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체르니는 운명에 저항하는 사람이라고.
운명에 저항하는 거란, 음악으로 자신의 운명에 저항한다는 것인가?
아니! 음악은 그의 몸부림이고, 그의 외침이며, 그가 소리 높여 부르는 노래이다.
그는 음악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친구를 대신해 몸부림친다.
그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외친다.
그는 고통 속에서 태어났지만, 마음속엔 여전히 즐거움이 가득한 사람들을 대신해 소리 높여 노래 부른다.
그렇다면, 그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 연주하고 있는 건가?
아니! 그는 죽음에 대한 친구의 분함을 느꼈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거리 곳곳을 누비면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즐겁게 사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가져다주었다.
다시 한번 위치킹이라는 높은 벽 앞에 섰을 때, 그는 결코 그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친구와 음악을 함께 탐구한 것에 대한 기쁨, 애프터글로 사람들에 대한 애정, 매일 아침 맞이했던 햇살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저의 상대는 저 자신입니다.
……쿨럭, 커어헉.
체르니 씨, 또 피를 토하셨어요!
……
(내 말이 전혀 들리지 않나 봐……)
……
조금 쉬죠, 에벤홀츠 씨.
하지만……
여긴 이제 저희가 필요 없어요.
저희가 해야 할 일은 체르니 선생님이 곡을 완성할 때까지 힘을 비축하는 거예요.
……히비스커스, 체르니를 부탁할게.
……적어도 당신보다 먼저 쓰러지는 일은 없을 테니, 얼른 가서 쉬세요.
체르니의 적은 위치킹이 아니다.
아무리 위치킹이 수많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설령 위치킹이 혐오스러운 존재라 할지라도, 음악 자체는 선악과 무관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적은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이다.
그는 더 이상 그 절망의 벽을 오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연주하기 시작했다.
발밑엔 발판이 나타났고, 체르니는 발판과 함께 구름층을 뚫고 하늘 높이 올라갔다.
벽의 끝이 보이지 않아도 그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힘이 몸 안에서 일렁거려 그는 몇 번이고 더 각혈했다.
옆에 있던 히비스커스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녀는 체르니의 목숨이 엄청난 속도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꼈고, 체르니가 적어놓은 음표들은 이렇게 외치는 것처럼 느꼈다.
가져가, 다 가져가! 그의 모든 것을 가져가거라!
오늘이 바로 체르니의 기일이다!
하지만, 체르니의 음악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곧 날이 밝아온다.
쿨럭, 쿨럭, 쿠울럭……
완…… 성…… 했다……
해냈네요! 체르니 씨……
음악가는 일어서려 했지만, 그의 상반신은 피아노에 푹 쓰러지며 새벽을 앞둔 피아노에 불협화음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