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3마탄의 사수
에벤홀츠는 드디어 체르니의 인정을 받는다. 한편, 공연 전 점검을 위해 음악 홀에 들른 체르니는 우연히 게르트루트와 마주치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체르니, 에벤홀츠, 히비스커스, 히비스커스 더 퓨리파이어
그게 아닙니다.
삼연음 여기가…… 아니, 곡 전체가 다 그래요.
전에는 당신이 뭔가를 과시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과시가 아니라, 어려운 구간에서 일부러 기교를 부리고, 기술이 그다지 요구되지 않는 구간은 대충 넘기려는 거군요.
이쯤 되면 이 곡을 숙달할 법도 한데, 왜 간단한 구간은 대충 넘기려 하는 겁니까?
왜냐하면…… 틀에 박힌 반복 연습을 싫어하니까. 만족해?
화났나요?
과시니, 대충이니, 다 핑계지?
나는 그저 똑같은 곡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을 뿐이야.
이해 못 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저의 무대에 설 거니까, 제가 안 된다면 안 되는 겁니다.
연습하세요. 제가 한 말을 완벽하게 이해할 때까지.
좋아. 마침 나도 궁금했거든. 도대체 내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고 하는지……
17번째 소절부터. 하나, 둘, 셋, 넷……
……
왜?
……아까 다시 불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죠?
무슨 기분? 아무런 기분도 안 들었는데.
아닙니다.
제게 화를 내고 있었어요.
……그걸 굳이 콕 집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솔직히 말할게요. 지금 이 연주가 오늘 연주 중에서 최고였습니다.
농담이지?
제가 당신과 농담할 필요가 있을까요?
……
당신의 머릿속에는 온통 저에 대한 반항심뿐입니다. 그렇죠?
사실 그렇게 하는 게 맞습니다. 제가 저에게 반항하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이 곡을 썼으니까요.
……
아무 말도 안 하는 걸 보니, 화가 잔뜩 난 거 같군요.
아니면, 상대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제가 거슬린다는 겁니까?
아니, 사실은……
사실은?
(후우……)
……나한테 불만이 있는 줄 알았어.
……당신한테 불만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확실하다니…… 설마 내가 귀족이라서?
그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그리 중요하진 않습니다.
솔직히 제가 귀족을 싫어하는 건 맞습니다만, 그렇다고 제가 귀족의 연주를 칭찬하지 않는다는 건 아닙니다.
귀족들이 저를 불결한 자로 여기면서도, 집에서는 제 곡을 연습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풍족하게 지내면서 세상의 고통을 전혀 모르는 행운아라 할지라도, 그가 음악에 대한 존중과 탐구심만 충분히 가졌다면, 삶의 기쁨을 표현하지 못할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연주는 때론 기교를 부리기도, 때론 대충 넘어가기도 하죠. 전반적으로 보면……
연주를 건성으로 하면서도 세세한 부분에는 쓸데없이 기교를 부림으로써, 자신은 실력이 없는 게 아니라, 그저 하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어필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건 음악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태도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다행히도 당신은 고의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군요.
적어도, 당신에게는 그 상태에서 벗어날 의지가 보입니다.
심지어, 당신에게는 실력은 뛰어난데 학생에게 너무나도 무책임한 선생님이 있지 않았나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맞아. 그 사람은 확실히 그런 사람이야.
그 사람 덕분에 내가 거의 모든 악기를 어느 정도 연주할 수 있게 됐지만, 난 그 사람을 마음속으로부터 증오하고 있어.
정말 그렇다면 그 사람의 음악도 보통은 아니겠군요.
맞아. 하지만 더 이상 그 사람의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
알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오늘 이 느낌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반항심을 갖고 연주하라는 게 아니라, 이 템포, 감정의 표현, 구간 연결의 처리, 이런 것들을 명심하라는 뜻입니다.
알았어.
연습을 오래 했으니 아마 많이 피곤할 겁니다.
저도 오늘 밤에 후원자를 만나 음악 홀을 둘러봐야 하니, 너무 늦게까지 연습에 어울릴 수 없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우르술라 씨에게 두 사람을 위해 음료를 가져오라고 부탁하고 오겠습니다.
우르술라 씨……
우르술라 씨, 어디 계십니까?
크라이데 씨, 우르술라 씨는요?
우르술라 할머니는 약을 가지러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에 가신다던데요. 벌써 30분이 넘었어요.
30분? 사무소는 그리 멀지 않은데……
아무래도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에 가봐야겠습니다. 당신은 먼저 돌아가세요.
마침 저도 할아버지를 뵈러 사무소에 갈 생각이었는데, 같이 가시죠.
에벤홀츠 씨, 같이 갈래요?
그래,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에벤홀츠 씨, 크라이데 씨, 그리고 체르니 씨까지!
마침 잘 왔어요. 저녁 준비 중인데 이따 같이 드실래요?
히비스커스 씨, 우르술라 씨는요?
우르술라 할머니도 주방에서 도와주고 계셔요……
선생님, 오셨군요.
약 받으러 온 게 아니었나요? 어째서 요리까지 하고 계십니까?
선생님의 약을 받으러 왔다가 히비스커스가 저녁 준비하는 걸 봤죠. 마침 안단테도 나갔고…… 저 때문에 늦을 것 같아서 도와주고 있었어요…… 내친김에 선생님의 저녁까지 준비했습니다.
에벤홀츠 씨와 크라이데 씨도 왔으니 좀 더 준비해야겠네요.
할아버지 것도요.
할아버지는 계속 주무시고 계셔서 같이 식사하지 못하실 거예요.
계속 주무신다고요? 상태가 악화된 건가요?
안심하세요. 상태를 보아 흔한 약물 부작용인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알겠습니다……
히비스커스, 이 사과같이 생긴 건 뭐지?
건강에 좋은 고구마인데, 아직 양념을 안 했어요. 이따가 제가 할게요……
당신은 후원자를 만나서 음악 홀을 둘러본다고 그러지 않았어?
그 전에 저도 배를 채워야죠.
체르니 선생님의 후원자라면, 틀림없이 선생님과 마음이 잘 통하는 분이시겠네요.
……
마음이 잘 통하다니…… 훗,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예?
처음엔 저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안 지나, 그녀는 저와 길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죠.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아침 그리고 저녁》과 깊은 관련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당신과 진정으로 마음이 통했지. 하지만, 그 사람은 곡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고.
맞습니다.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처음 당신한테 불만을 느꼈던 게 아마도 이 곡의 유래와 관련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을 당신이 그렇게 해석했으니, 제가 다소 불쾌했던 것 같네요.
하지만 지금의 당신은 이 곡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제 마음속의 돌덩이도 이젠 사라졌습니다.
이게 다 몇 시간 동안 이어진 당신의 엄격한 지도 덕분이지. 안 그랬다면……
말에 뼈가 있는 것도 버릇입니까?
……아마도.
괜찮아요.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음악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말에 뼈가 있는 건 고사하고, 설령 뼈에 사무치는 증오라 할지라도, 적절한 기법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마지막 요리도 완성됐습니다!
우르술라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이 많은 요리를 만드는 데 한창이나 걸렸을 거예요.
이렇게 다 같이 밥을 먹으니까 꼭 가족 같네요.
(작은 목소리로) 가족……
가족 얘기하니 우리 귀염둥이 라바가 본함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귀염둥이 라바요?
제 동생이에요, 감염자이기도 하고. 남에게 걱정만 끼치지만, 그래도 착한 아이예요.
히비스커스 씨, 동생 얘기 나오니까 눈이 반짝이는데요.
앗, 그래요? 아하하.
다들 라바에게 잘해주고, 라바도 그걸 잘 알고 있지만, 워낙 표현이 서툴러서 늘 사고를 치고 그래요.
라바도 감염자지만, 저와는 달리 오리지늄 아츠의 연구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식사에도 더욱 신경 써야 하고요.
그리고 자주 먹고 자는 걸 잊고 훈련에만 몰두하는 탓에, 제가 매번 챙겨줘야 하는 편이라……
앗, 미안해요! 라바 얘기만 나오면 저도 모르게 말이 많아져요.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저는 크라이데 씨 할아버지의 약을 갈아드리고 올게요.
동생을 끔찍하게 아끼는 것 같네.
자매니까요.
나도 가끔 우리 선생님에게도 형제자매가 있었다면 지금보다 붙임성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어……
우르술라 씨!
아하하.
히비스커스 씨, 다 됐나요?
이제 곧 끝납니다……
끝났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
그럼, 먹어볼까요!
자, 새콤 양배추 볶음 나왔어!
감사합니다.
겨우 제대로 된 음식을 먹게 됐군……
잠깐, 너 설마 건강식을 포장해 온 거야?
맛은 좀 이상해도 음식을 낭비할 수는 없잖아요……
그건 내일 너 혼자 먹어!!
선생님, 수프 더 드릴까요?
아니요…… 배가 부릅니다.
주방에 계실 때 그 요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습니까?
남의 주방인지라, 제가 맛볼 수도 없고.
게다가 히비스커스의 요리는 확실히 건강에 좋아요. 저도 그렇게 보였어요.
그래서 말인데, 저희도 히비스커스의 레시피대로 조리법을 바꿔보는 게……
아이고, 선생님. 농담이에요, 농담. 같이 가요……
다녀왔어!
저녁은 먹었나요? 이거 먹어볼래요……
……고마워! 밖에서 먹고 왔어!
아, 일부러 안단테 씨 몫을 남겨 놨는데.
당분간 저는 밖에 나가지 못하니, 죄송하지만 안단테 씨에게 조사를 부탁하는 수밖에 없네요.
괜찮아, 나도 애프터글로 사람이라, 비정상적인 호전의 원인을 찾으면 내게도 좋은 일이지.
이제 데이터를 분석해야겠네요……
음악 홀의 준비는 예상 이상이군요.
과찬이십니다.
체르니 씨의 고별 음악회니, 최대한 화려하게 꾸며야죠.
제가 말한 건 음향 설비입니다.
아, 네. 그, 그렇죠! 게르트루트 님께서 최고급 설비를 마련하느라 큰 비용을 들였습니다. 회장과 음향 설비에 대한 요구를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했죠.
이제 다 둘러보신 것 같은데요……
휴게실은 아직 안 가 본 것 같은데요?
아, 그걸 깜빡했네요.
가시죠.
이상하네, 문이 왜 안 열리지?
안에 누가 있는 게 아닐까요?
맞아요, 안에 누가 있어요.
게르트루트 님?
이번 음악회의 중요성을 고려해, 제가 직접 음악 홀의 장식을 살펴보는 중이었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까지 신경 쓰게 하다니, 저희 불찰입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체르니 씨도 와 있는 것 같던데……
맞습니다. 안에서 뭘 하고 계셨습니까?
휴게실 내부 장식을 확인하고 있었죠.
이 휴게실이 당신과 연주자들의 기본적인 요구를 그럭저럭 충족시키긴 하겠지만, 제가 볼 땐 아직도 부족한 게 많습니다.
(하아)
거울의 물때, 서랍 손잡이의 녹, 카펫에 난 구멍…… 이 문제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이번 음악회는 그렇게까지 거창할 필요 없다고 전에도 말했을 텐데요. 사용하는 데 지장이 없으면 됩니다.
당신의 후원자로서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당신과 당신 부하의 퍼포먼스가 저의 명예와도 깊은 관련이 있으니까요.
몇 번씩이나 말합니까, 그들은 자발적으로 음악회에 지원한 음악가들이지, 제 부하가 아닙니다.
당신이 초대한 사람들이 보기엔 둘 다 똑같아요.
……마음대로 생각하시죠.
안의 시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제가 문을 열어드리죠.
필요 없습니다. 하던 일이나 하시죠.
정말 안 봐도 괜찮겠어요?
전혀 관심 없습니다. 걱정하는 척하지 마시죠.
당신도 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죠? 우리 서로 불쾌하게 하지 맙시다.
(작은 목소리로) 체르니 씨, 말투가 조금……
저는 이 여자와 늘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해왔습니다.
좋으실 대로. 그럼 저는 계속 필요한 점검을 진행하겠습니다.
저의 이런 잡무가 음악회 당일에, 당신한테 방해가 아닌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