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W-5물건과 사람
정 사장은 한발 앞서 블랙나이트라는 도둑을 막아섰지만, 지게꾼 상총이 끼어드는 바람에 결국 술잔을 빼앗긴다. 크루스 일행도 뱃사공을 찾아 리와 합류하려고 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블랙나이트, 좌락, 크루스, 크루스 더 킨 글린트
산바람은 늘 상쾌하다.
상쾌한 아침에는 불명확한 일들을 해결하기에 딱 좋다.
산골 마을 인가에는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봄 눈은 아직 녹지 않았다. 늙은이와 젊은이는 아무 말도 없이 서로 바라보았다.
멀리서 징 소리가 들려온다.
자넬 오래 기다렸네.
……쯧쯧, 이 녀석…… 라이트, 멋대로 움직이면 안 돼.
자넬 본 적이 있네, 음, 자네였군.
정말 의외군. 림 빌리턴 사람에, 처음부터 몰래 상촉에 숨어 있었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흥.
라이트!
뭐야……?
올가미?
슬럼버풋을 이렇게 잘 훈련한 걸 보면 자네도 대단하군. 보통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땅에 거꾸로 처박혔을 텐데 말이지.
(뒤에 있는 함정도 바로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올가미를 안정적으로 밟을 수 있다니…… 이 영감탱이……)
걱정 말게, 자네 같은 젊은 아가씨를 곤란하게 하는 일은 없을 테니.
자네 품에 있는 그 술잔이 어떤 물건인지 아는가?
……관심도 신경도 안 써. 질문이 너무 많은 바운티 헌터들은 다 초보던데.
그렇다면, 자신을 원망해야겠네.
너무 나대지 마! 헬멧, 드릴!
……
뭔지 모르겠으면 얌전히 내놓게, 괜히 이용당하지나 말고.
너, 감히 헬멧한테……! 이건 네가 자초한 거다!
……화살촉이 없네.
(소, 손으로 잡았다고? 이 거리에서?! 활시위를 바꾼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좋아.
자네가 사람의 목숨을 노리지 않은 점을 생각해 기회를 한 번 주지.
이 술잔을 내게 넘기고 자네 뒤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전하게. 행동거지 조심하고, 제멋대로 하지 말라고.
흥,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내가 이 길에서 자넬 막을 수 있다는 거야.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데?
자넨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여기서 도망갈 수 있을진 몰라도, 본인이 기르던 이 짐승들이 봉변당하는 꼴은 차마 볼 수 없을 거네.
협박하는 거야?
자넨 솜씨가 좋은 것 같지만, 석궁을 다루는 것 외엔 별다른 재주도 없잖아.
좋은 말로 할 때 듣는 게 좋을 거네. 강호에서 살아남으려면 눈썰미도 있어야 하는 걸세.
……확실히. 당신 같은 실력자가 방해할 거라고 그 사람도 말하지 않았어.
누군가에게 위험한 일을 부탁한다면, 나도 다 털어놓진 않을 것 같네.
외부인이 단지 일 때문에 굳이 목숨까지 걸 필요는 있는가?
술잔을 내게 넘겨주면 내가 표국의 명의로 약조하지. 그자가 자네한테 주기로 한 금액의 배로 주겠네.
……핫, 애초에 밑지는 장사였어, 의무로 한 것뿐이니까.
친구를 돕는다고 생각해도 좋아.
친구라고 했는가.
자네 같은 황무지 도적도 친구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구먼.
우리가 못마땅한가 봐.
……그런 거 아니네.
장사를 오래 하다 보면 귀인에게 굽신거리는 일이 많아지면서 친구도 적어지기 마련이네.
그럼 얌전히 장사나 하지.
그러게 말이야. 산 위에서 하는 장사가 가장 수월하니까.
이 삼산십칠봉엔 수백 갈래의 산길이 있는데, 가는 길마다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찻집과 객잔이 있지. 그리고 모든 길에…… 다 우리 사람들이 있고.
……
그러니 아가씨도 자기 분수를 알아줬으면 좋겠네.
나를 너무 얕잡아 보는구나.
정면 승부는 내 스타일이 아니긴 하다만, 이 정도까지 도발을 당했으니 가만있을 수 없지…… 얘들아, 안 그래?
(림 빌리턴어) 이 영감탱이한테 된맛을 보여줘야겠네! 우리가 그동안 굴러먹으면서 밥만 축낸 건 아니란 걸 보여주자고!
하아……
고집도 참.
그렇다면, 날 원망하지……
설령 제삼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그가 어떻게 한걸음에 다가왔는지는 똑똑히 보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걷기에 능하고 산 오르기에 능하기 때문이다. 그가 매일 쌓아온 걸음은 너무나도 많았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는 푸른 벽돌이 부서졌고, 자욱한 연기가 눈앞에 피어올랐다. 그리고 옆에는 푸르스름하고 평범한 대나무 멜대가 보였다.
멀리서 징 소리가 또 한 번 들려온다.
……
……뭐, 뭐야…… 이 사람은 어디서……, 라이트, 무서워하지 마. 드릴! 내 곁으로 와……!
……자네였군.
드이어 산에 올라왔구나.
그래서 당신을 찾으러 왔네.
……하아.
올 것은 결국 오는구나, 피할래야 피할 수 없지. 자넨 왜 또 이리도 서두르는가?
야, 꼬마 아가씨.
……나?
(저 움직임…… 저 막대기는 멜대라 했던가? 방금 뭘 했길래…… 바닥에 깔린 벽돌마저 산산이 부서졌지?)
저 녀석을 아는가?
아니.
그렇다면 둘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우리 사이에 있는 건 자네뿐이네.
그런가, 그럼 나야말로 당신에게 귀찮은 일이겠네.
일이 끝나면 자넬 찾아가지. 그런데 지금은 아닐세.
……꼬마 아가씨, 네가 손에 꼭 쥐고 있는 그 물건이랑 관계있나?
……아…… 그렇지……
자네와의 개인적인 원한을 이 일과 엮지 말게!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그래!
백성들의 안위, 병사들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일세!
……!
……그 비 오던 날 밤 이후, 당신의 이런 말투는 참 오랜만이군.
그래, 당신이 악인일 리가 없지. 의협심이 많은 검객이고, 본분에 맞게 행동하는 객잔 사장이니까.
그럼 자넨 비키게……
……당신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나도 알고 있지.
당신은 날 찾아오지도 않고, 내가 찾아가도 당신을 만날 수 없고. 그래서 난 산에서 내려간 적이 없어.
그렇다면……
……아! 당신……!
……
돌려줘!
……
……
……10년 만이네.
10년 전, 당신은 바로 이 술잔을 지키기 위해…… 내 아들을 비명에 죽게 했지?
……상총!
꼬마 아가씨, 이 일은 너랑 상관없어.
방심한 틈에 내 물건을 빼앗아 갔는데, 나랑 상관없다고!?
이 물건, 애초에 네 것도 아니지 않나?
윽……
상총, 자네 미쳤는가!
당신과는 상관없는데.
상총!
꺼져!
……칫!
당신들 잘 기억해 둬…… 내가 반드시 술잔을 되찾는다!
……정청월, 당신 칼은?
집에 뒀네.
허, 집이라.
그 비 오던 날 밤, 표국의 화물을 호송하는 도중에 열 몇 명이나 죽었지. 그중엔 아들 한 명과 아버지 한 명이 있었는데……
아들은 상 씨, 내 아들이었고 아버진 두 씨, 바로 두요야의 친부였지.
그래서 당신이 지금은 칼을 안 갖고 다닌다고?
참 어처구니없는 소리군.
……자네, 아직도 날 원망하나?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 당신이 고의가 아니란 것도 알고. 책임은 당신한테 있겠지만, 잘못은 당신이 한 게 아니니까.
그런데 '물건이 우선, 사람은 그다음'이라고? 흥.
물건도 잃고 사람도 잃었는데, 원망 몇 마디 해도 안 되는가?
반드시 해명이라도 받아내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까.
……내가 약조할 테니, 술잔은 내게 주게. 자네도 알지 않는가? 이 술잔에 관련된……
난 몰라. 아들이 이 술잔 때문에 죽었으니, 오늘 난 이 술잔을 아들 무덤에 묻어줘야겠어.
산 위에서 기다릴 테니, 가서 칼이나 가져와.
……신 사공!
어? 당신들이 여긴 왜? 지금 막 양대인네 저택으로 가려던 참인데.
리는?
그 술잔을 도둑맞아서 리가 우리 보고 널 찾아가랬어~
리가 당부한 말은 없어?
……리가 날 찾아오라 했다고? 양대인을 먼저 찾아가라 한 게 아니고?
당신들은 양대인 저택에서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응.
……음, 양대인을 만나라고 하지 않을 걸 보니, 리는 어찌 된 영문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인데……
무섭네, 무섭군. 정말 무서운 사람이군요.
태합 아저씨, 돌아오셨습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신분에 걸맞게 예의 발랐습니다, 소문대로.
예의 바르다는 것은 아직 여지가 있다는 뜻이지요.
그 여자가 어떻게 행동하든, 어떤 속셈이든 태부님의 친서가 있으니 속일 순 없을 거예요.
그녀는 영리한 인물입니다.
제가 관리의 신분으로 찾아간 이상 이미 눈치를 챘겠지요.
……알겠습니다.
이미 양쪽 모두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으니,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군요.
더 많은 구설을 일으키기 전에 일을 매듭짓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우리의 선택이 진정 염국의 후환을 깨끗이 없애기 위한 거란 걸 믿게 하려면, 우린 당연히 그 네 글자대로 해야 하죠……
…… '공명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