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2애수가 피어나는 때
패배한 테레시아는 자신의 마지막 사명을 완수하였고, 모든 살카즈들은 어느 순간에 살카즈의 영혼들이 모조리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박사와 아미야는 일행과 함께 융합 우주를 벗어난다.
등장 오퍼레이터: 아미야, 켈시, 위셔델, W, 로고스, 파프리카, 이네스, 샤이닝, 니어 더 래디언트 나이트
하아…… 하아…… 쿨럭……
또 왔구나…… 아미야.
언니, 제가 뭐 그렸게요!
하하, 격리실에 뭘 그렸다고 들었어…… 아미야.
하지만 볼 수는 없겠네…… 어제부터 눈이 보이지 않거든.
……
방법이 있어요! 제가 들어가서……
들어오지 마. 난 언제라도……
괜찮아요, 언니. 잊으셨나요? 저도 감염자인걸요. 게다가 바벨의 의사들도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겨도 저희를 잘 치료해 줄 거예요.
언니, 빨리 손 이리 주세요! 제가 그려줄게요!
꼬마 카우투스가 병상 위 감염자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검은 결정이 그녀의 몸을 가득 뒤덮었고, 결정 안에는 오리지늄의 매혹적인 색채가 흐르고 있었다.
아미야는 이것이 감염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이미 본 적이 있으니까.
아미야의 손가락이 감염자의 손바닥 위에서 열심히 움직였다.
언니, 가족이 언니에게 지어준 이름은 언니가 본 적 없는 꽃의 이름이라고 했죠?
박사님과 테레시아 씨에게 물어봤더니 그 꽃을 찾아주셨어요!
느껴져요, 언니? 방금 언니 손바닥에 그 꽃을 그렸거든요.
언니 이름, 너무 예뻐요!
……
음, 제가 그림을 잘 못 그렸나 봐요…… 다시 그려볼게요……
꼬마 토끼야…… 넌 내가 안 무섭니?
에이, 무서울 게 뭐 있나요?
……
비록 바벨에 온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난 아미야를 정말 좋아해.
우린 친구잖아, 그렇지?…… 그러니 나 좀 도와줄래? 벨을 눌러서 의사를 불러 줘.
의사 선생님한테 그 꽃을 보러…… 아니, 만지러 가게 해달라 하려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
안 돼. 아미야는 아직 아프니까, 여기 있어야 해.
그럼 언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게요.
감염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미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미야는 고통을 참아내는 그녀의 표정과, 팔뚝에서 빛을 뿜어내는 오리지늄을 보았다.
……
아미야, 네가 박사를 따라 바벨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지.
그날 네가 격리실 문 앞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던 게 기억나.
박사가 침묵하는 네 곁에 앉았고, 너는 박사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어.
나도 널 안아주고 싶었지만, 차마 방해할 수 없었어.
아미야…… 넌 똑똑한 아이야. 넌 그 감염자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거란 걸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거야.
어린아이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었기에, 그 사람은 자신이 떠나는 모습을 너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지. 하지만 그 사람은 자기 생각보다 네가 훨씬 강하다는 건 몰랐을 거야.
나는 네 상냥한 눈빛에서 많은 것을 보았어. 네가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한다는 것을……
다른 종족이든, 감염자이든, 네 눈에는 그저 모두 살아있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으니까.
그때부터, 난 줄곧 이기적인 생각을 해왔어.
어쩌면…… 미래의 네가 이 왕관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네가 나보다 더 멀리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막중한 임무를 서둘러서 네게 맡기지 않으려 했어. 네가 성장하는 동안 내가 같이 있어줄 생각이었으니까……
미안해, 아미야. 약속을 지키지 못했네.
- ……우리를 속박했던 아츠가 사라졌네.
테레시아 씨의 기척이…… 사라지고 있어요.
박사님, 켈시 선생님, 다 끝난 건가요?
- 이게…… 모든 것의 끝인가?
- 그런데…… '암나남'은?
죄송해요, 박사님. 저는…… 테레시아 씨로부터 최초의 오리지늄에 관한 어떠한 단서도 찾지 못했어요.
결국 한발 늦었군.
- 이곳에 '암나남'은 없어……
- 최초의 오리지늄은 이미 다른 곳으로 보내졌어.
박사, 눈치챈 건가.
지금도 이 탑의 끝이 보이나?
켈시 선생님, 하지만 지금 저희가 서 있는 곳은……
- ……흰색 기둥이 계속 아래로 뻗어 나가고 있어……
- 이제 기둥의 끝이 보이지 않아……
아마 이대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아.
- 잠깐……
- W는?
정말 거슬리는 실이야……
W 씨!
꼬마 토끼, 도와줘!
너희들이 아무리 테레시아가 떠났다 말해도,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어.
연분홍 실이 나뭇가지처럼 거대한 흰색 기둥에서 자라났다.
그것들은 붉은 뿌리에 떨어져 그 뿌리를 감싸고 얽혀버려……
결국 이 끝이 없는 탑을 완전히 뒤덮을 것이다.
아미야, 난 그때의 후회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을 거야.
적어도 이번만큼은……
알고 있어요.
저희 모두 마찬가지니까요.
하얀 실에 싸인 뿌리로 다가간 아미야는 부드러운 뿌리를 살짝 건드렸다.
불똥이 그녀의 치맛자락에서 떨어져 나와 그녀가 온 길에 뭉게뭉게 타오르는 불꽃을 남겼다.
그 불꽃은 바로 꺼지지 않고 하얀 실에 옮겨 번졌다.
불꽃은 계속 타올라 끊어진 하얀 실 대신 하늘과 땅 사이의 유일한 탑을 단단하게 휘감았다.
그리고 다시 우수수 떨어졌다.
바닥의 뿌리에는 순식간에 실로 뒤덮였고, 마치 바람의 재촉에 피어난 꽃밭처럼 불길이 그 안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그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테레시아는 뿌리에 기대어 앉아 '하늘'의 잔잔해진 황금빛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미야. 네 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생기가 넘치는구나. 정말로 따뜻한 불이야……
“부패를 태우는 화염”. 아미야, 결국 해냈구나.
하아,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가까이 오렴.
테레시아 씨, 저희는……
쉿……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우리 머리 위에 있는 저 바다를 봐. 우리가 일으킨 파도가 가라앉고 있어. 우린 이제 가야 해.
아미야,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되는 소원도 있어. 말해봤자 슬픔만을 남길 뿐이니까.
아니요, 테레시아 씨. 저는 더 이상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저희는 테레시아 씨가 남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다시 너희를 실망시킨다 해도?
소중한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알려주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요? 박사님이 가르쳐 주셨어요.
……
훗, 아미야, 정말로 많이 성장했구나.
……난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거야, 아미야. 내가 약속했던 것처럼……
비록 오리지늄에 더 이상 내 메시지를 남기진 않겠지만, 내가 바라던 꿈은 결코 너희에게 버림받지 않게 되겠지.
그래도 테레시아 씨가 남을 방법이 없나요……
나를 구한다고 이 전쟁이 끝나?
이 땅에는 모든 일이 항상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 그건 창조주도 무리일걸.
아미야, 죽은 사람 때문에 안타까워하지 마. 아직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희망을 비웃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해.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떠나기 전에, 편안하게……
미안해, 전하! 나, 더는 못 참겠어!
어머…… 날 껴안은 게 W야?
전하……?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이 몸을 유지하는 정보의 흐름이 점점 멀어지고 있어.
하지만 만질 수는 있지. 울고 있지는 않구나, W. 다행이야.
테레시아는 손을 뻗어 W의 어깨를 토닥였다.
……?!
전하, 시, 싫지 않은 거야……?
내가 왜 싫어하겠어?
음…… 하지만 너라면 그런 걱정을 하는 것도 당연하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W.
바벨에 있을 때, 네가 카메라를 들고 구석에 숨어 망설이면서 나오지 못하던 모습이 떠오르네……
……봐, 봤었어?!
당연하지. 사실 너랑 같이 사진 찍기를 기다리고 있었거든. 그런데 도저히 나오지를 않더라고.
전하, 당신…… 본 것뿐만이 아니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
그, 그러니까……
몰래 찍은 거? 그것뿐이 아니지. 난 그 천방지축 용병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도 몰랐어.
체르노보그와 용문의 충돌이 진정된 것에 대한 진실, 맨프레드가 최근 몇 년 동안 골머리를 앓았던 용병단, 그리고 너희가 나타나선 안 되는 이곳에 나타난 것까지……
너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해냈어, W.
이제는 너도 내가 생각만큼 신성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이 보잘것없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을 거야.
하하…… 하하핫! 전하가 날 위로해 주든, 거짓말을 하든, 전부 받아들일게!
전하, 당신은 늘…… 이렇게 상냥했지. 우리가 막 이 빌어먹을 곳에 올라와서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난 정말 무서웠어……
전하, 그때 못 찍었던 사진, 지금 다시 찍고 싶어!
카메라, 내 카메라…… 잠깐만, 이게 언제 고장 났지…… 빌어먹을 칼리초아!
고장 나지 않았어도, 아마 여기선 카메라를 쓸 수 없었을 거야.
……
W, 네가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건 알아. 나도 마찬가지거든.
네게 끝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아.
어?!
기억나? 아직 너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잖아.
……?!
'W'는 이미 죽은 살카즈의 것, 본래는 끝났어야 할 윤회지……
내가 말했던 것처럼, 너는 너 같은 살카즈 여성에게 더 어울리는 이름을 가져야 해.
음, 그때는 카즈델의 운명이 정해지면 네게 이름을 지어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난 그날을 못 보게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잠깐만, 전하, 잠깐만! 나, 나…… 이해 못 했어……
나 숨 좀 돌리고! 아니야, 일단 메모부터 해야겠어!
아아~ 모르겠다! 준비됐어!
'위셔델'.
……
……기억하기 좀 어려우려나?
……그럴 리가.
'위셔…… 델', 맞지? '델'은 나도 알아, 집이잖아. 위셔…… 위셔는……
'바람'.
집을…… 바란다?
맞아. 그러니 나 대신 카즈델의 운명을 지켜봐 줄래?
하지만…… 나…… 전하…… 테레시스……
카즈델의 미래는 나와 테레시스가 아니라 너희 손에 달려있어.
그날이 오면 너도 알게 될 거야.
하하…… 좋아! 위셔델…… 위셔…… 델……
기억했어, 평생 기억할 거야!
이 이름, 마음에 들어. 외드레르가 사전에서 찾아준 글자보다 훨씬 더 멋있어.
켈시, 아미야, 후드, 다들 들었지? 앞으로 날 위셔델이라고 불러. 잘못 부르면 안 돼.
그리고 군사위원회의 1층에 폭탄으로 내 이름을 다시 새기기로 방금 결정했어. 그럼 앞으로 누가 봐도 잊지 못하겠지.
아니면 옥상으로 가는 거야. 폭발의 불빛이 저 멀리 있는 런디니움에서도 보일 수 있게 말이야……
……위셔 ……델 씨.
네가 뭘 말하려는 지 알아. 나 안 울었다고.
내가 떨고 있는 건…… 후후…… 스으……
……
……
크흠, 왜 다들 아무 말도 안 해?
그게…… 끼, 끼어들 수가 없어서……
가 봐, 아미야.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네가 곁에 있어 준다면, 테레시아도 기뻐할 거야.
절대 스스로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
박사, 우린 이제 테레시아와 완전히 다른 입장이지만, 그래도 테레시아가 나조차도 상상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는 건 인정해야만 해.
박사, 지금의 네게 과거의 기억이 없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추측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 그 신비한 사람과 관련이 있어.
- ……프리스티스……
우리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렇지, 테레시아?
……
최초의 오리지늄은 이미 그 사람에게 넘긴 거지?
……테레시아, 네가 우리에게 남긴 난제는 정말이지……
켈시, 많은 일들이 항상 우리의 뜻대로 되진 않아. 우린 그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박사, 지금 네가 내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내 도박이 성공했다는 것이 증명된 거야.
- 테레시아……
- 아직도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구나.
하하, 박사, 조금만 더 뜸을 들일게.
……지금의 넌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 비록 너희가 이미 날 뛰어넘었다고 해도……
황금빛 바다의 파도가 보여?
이젠 시간이 별로 없어.
우리의 재회는 그저 또 한 번의 이별을 의미한다는 거 난 알고 있었어……
친애하는 켈시, 우리 모두 각자의 결말을 알고 있는 이상, 더는 슬퍼할 필요는 없겠지?
좀 더 가까이 와줄래?
테레시아가 손을 뻗어 켈시의 머릿결을 만졌다.
아, 여기 있었구나. 강인한 우리 켈시가 이번에도 울지 않았으면 좋겠네.
넌 항상 그래.
난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이야, 켈시.
내가 멀리 갈 때마다, 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와 함께 있었으니까……
고마워.
……
테레시아 씨가…… 사라지고 있어요……
사라진다고? 꼬마 토끼, 그게 무슨 헛소리야, 전하는 아직 여기 있잖아? 내가 분명 안고 있……
위셔델, 넌 이미 모든 소원을 이뤘잖아……
날 만났고, 이겼으며, 결국엔 죽였지.
아쉬워할 필요 없어.
나는 완전히 떠나게 될 거야. 이젠 너희가 볼 수 있는 어떤 곳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겠지.
테레시아, 네가 말한 '완전히 떠난다'라는 건, 오리지늄에 너희의 정보가 존재했던 흔적조차 사라진다는 말인가?
맞아. 난 오리지늄이 우리의 감옥이 되게 하지 않을 거야.
나는 살카즈의 완전한 자유를 위해서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어.
살카즈는 삶과 죽음 모두에서 자유로워져야 해.
“무언가를 멸망시켜 계단을 만든다……” 설령 마지막 파멸이 나 자신일지라도 말이야.
- 넌 내 기억 속의 테레시아와…… 많이 다른 것 같아.
{@nickname} 박사…… 이게 우리의 '첫 만남'이야.
네가 들었던 그 짧은 이야기 속의…… 네 상상 속의 테레시아는 어떤 사람이었어?
바벨의 창시자이자 완전무결한 이상주의자?
아니면 냉혈한 살카즈 마왕이자 전쟁을 일으킨 음모가?
- 아니, 다 틀렸어.
- 그건 주위 사람들이 바라는 너의 모습일 뿐이야.
그렇구나……
우리가 이렇게 평온하게 작별 인사를 할 기회가 있을 줄은 몰랐어.
- 여기는……?
- 와 본 적 없는 곳이네.
아주 오래전, 한 친구가 여기서 나와 작별을 고했지.
이곳에서 친구의 죽음을 지켜봤고, 이곳에서부터 나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게 됐어.
……난 이곳이 좋아.
하지만 이곳은 내가 결코 닿을 수도, 도달할 수도 없는 곳이기도 해.
내 허무한 기억 속에서만 영원히 존재할 뿐, 평생 이곳으로 갈 수 없을 거야.
{@nickname} 박사, 지금 네 눈에 비친 나는 어떤 사람일까……
- 종족의 운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지.
- 더 숭고한 이상을 영원히 추구하는 사람이지.
- 난…… 모르겠어.
그래? 재미있는 대답이네.
너와 나, 과거와 현재, 지나간 것과 다가올 것……
시간은 여기서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어쩌면 과거에, 우린 서로에게 비슷한 말을 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네 말이 전혀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야.
내 미래에 대해 경고한 사람이 있었지만, 난 그게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
나는 포기하지 않아. 죽든 살든, 이 몸이 어디에 있든.
하지만 네 입에서 들은 건 결코 빈정거림이 아니었어.
고마워, 박사.
숭고함이란 대체 뭘까? 숭고함은 누가 정의하는 걸까?
나는 살카즈의 자유를 위해서 다른 종족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며, 내가 목숨 바쳐 지키던 신념을 버리고 너희들의 반대편에 섰어……
로도스 아일랜드, 너희들은 이미 바벨의 그늘에서 벗어났지만……
한때 살카즈를 위해 바벨이 굳게 지켜왔던 일부 이념도 버렸지.
너희들은 평화를 내세우면서도, 박해자들이 폭력을 이용해 살카즈에게 고통을 되돌려줄 수 있도록 도왔어.
하지만 나 역시 과거의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는 것처럼, 너희의 숭고함을 부정할 수는 없어.
어쩌면 너는 '숭고함'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너무나도 무거운 단어야.
그래도 고마워, 박사.
……
난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만약 지금 이 순간에마저도 내게 적당히 얼버무리려고 했다면…… 난 더욱 실망했을 거야.
물론 약간의 서운함은 있지만. 네가 들려줄 대답이 정말 기대되는걸, 박사.
박사, 답을 찾는 걸 포기하지 마. 만약 지금 이 순간에도 로도스 아일랜드의 기존 이념을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라면……
솔직히 나는 좀 걱정이 돼. 네가 정말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해 제대로 대비하고 있을까 말이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 과거의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 ……솔직히 말해서, 난 널 제대로 평가할 수 없어.
- 넌 내게 여전히 수수께끼야.
넌 아주 신중해. 아직도 내게 적의와 경계심을 품을 정도로…… 물론,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대립하고 있지만.
괜찮아, 너는 아직 모든 수수께끼를 다 풀지 못한 것뿐이니까.
우리의 대화가 늘 이렇게 급급히 끝나야 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야.
-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
- 넌 이미 많은 것을 했어.
- 넌 아직 미련이 많아.
내 사명은 이제 끝났어.
오래전, 너와 켈시가 내게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지.
하지만 나는 살카즈의 왕으로서 살카즈의 고통과 숙명을 짊어지고 있었어.
내 이상과 시선이 거짓된 하늘을 뛰어넘고, 무거운 현실이 여전히 날 이 대지로 끌어당긴다고 할지라도 말이야.
그때 난 확신했어. 살카즈의 미래를, 테라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내가 아니야, 애초에 내 역할도 아니었어.
내가 가장 믿었던 그 절친한 친구는 이미 이런 결말을 예언했었어.
- 그 사람이…… 나야?
박사, 손 이리 줘.
맞아. 운이 좋게도, 난 가장 '진실'한 널 만났어.
그 사람은 지혜롭고 상냥한 사람이야.
무거운 사명을 짊어졌어도, 튼튼한 멍에를 뒤집어썼어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지.
난 너무 기뻐.
지금의 너는 켈시, 아미야와 함께 있어. 그때 내가 한 선택은 결국 옳았던 거야.
지금 이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것도, 각자의 선택에 의해서지.
처음의 그 급작스러웠던 만남은 지금 이 순간, 두 낯선 이들의 작별과 비슷한 것 같아…… 안 그래?
- 너의 말에서 나에 대한 원망이…… 들리지 않는데?
왜 원망하겠어?
네 영혼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진실에 닿았기에, 나에게는 아쉬움과 그리움만 남았을 뿐이야.
그래…… 네 마음에 닿았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거야…… 우리는 같이 걸어갈 기회를 놓치고 말았으니까.
그 사람의 매력은, 어쩌면 아무도 공감할 수 없는 모순된 마음에서 오는 것일지도 몰라.
-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
- 추측하고 질문해도 나는 '나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모르겠어.
- 모순된 정보가 나를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어.
아직도 모르겠어? 지금의 넌 자신의 결정을 의심하지 않아.
무엇이 진실한 널 만들 걸까?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것, 아니면 이미 가려진 과거?
우리가 있는 곳을 봐, 박사.
고요한 기억, 그리고 모든 진실이 전부 네 곁에 있잖아……?
- 오리지늄……
과거, 현재, 미래. 오리지늄의 끝에서 시간은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는 규칙에 의해 정의되지 않아.
넌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한테 말해 준 적이 있어, '오리지늄'은……
이 대지에 무수한 고통과 무수한 가능성을 가져다준 물질이, 너의 시대에서 수도 없는 무수한 희생으로 얻은 창조물이라고.
네가 오리지늄을 창조해 냈을 때, 오리지늄에게, 그리고 이 세계에 어떤 기대를 품고 있었을까?
봐, 이 황금빛 바다에 기록된 모든 것들은…… 네 기대와 일치하고 있는 걸까?
당신은 보았다……
우르수스의 불, 쉐라그의 눈, 이베리아의 파도……
동서고금의 모든 시공간이, 문명을 단위로 한 정보의 홍수가 당신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당신은 갑자기 깨달았다……
- 내가 품고 있는 모든 의문……
- 내가 잊고 있던 모든 과거……
- 모두 이 오리지늄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 아니.
- ……
- ……아니야.
당신을 손을 뗐다.
-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이 나를 만들었어.
- 가려졌던 과거가 아니라.
너는 언제나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나……
박사…… 내가 정보의 바다 깊숙한 곳에 빠졌을 때, 우린 재회한 적이 있어.
그것은 내 과거이자, 네 미래이기도 해.
너는 여전히 자신을 찾는 여행 중이지만, 여전히 내게 증명하려 하고 있어……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네가 답을 찾은 모습을 나는 직접 보고 싶지만, 미안해…… 아무래도 난 멀리 못 갈 것 같아.
박사, 나는 이제 가야만 해. 그리고 너희도……
이 끝없는 허무에 영원히 갇히고 싶지 않다면 이만 떠나.
잘 가, {@nickname} 박사.
서로 만난 적 없던, 참된 벗이여.
- ……테레시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탑 꼭대기에 있던 하얀 모습은 이미 사라졌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테레시아 씨는…… 떠났어요.
……아.
박사, 방금 뭘 봤어?
- 테레시아가…… 알려줬어……
-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 내가 어떤 사람인지.
- 내가…… '암나남'의 위치를 알아냈어.
우리는 이만 떠나야 한다.
정보의 흐름이 이제 멈췄다.
살카즈 영혼들이 멀어지는 노랫소리가 들리나, 밴시……?
탑은 편히 잠들었다. 전하……
파도가 거꾸로 흐르며, 헤아릴 수 없는 지옥에 떨어지고 있다.
뿌리를 태울 수 있는 불꽃도 이 끝없는 어둠을 밝히지는 못하겠지……
너희는 또 어디로 가게 되는가?
영원한 허무, 진정한 죽음.
우리는 더 이상 피안에 머무르지 않을 거야, 아이파닐.
'로고스', 넌 이렇게 부르는 게 더 익숙하겠지.
넌 이미 자신을 로도스 아일랜드의 정예 오퍼레이터로 선택했어.
로고스는 끝없는 정보의 흐름 위에 서서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자신의 그림자를 각인시켰다.
그림자 곁에, 그녀의 가느다란 실루엣이 조용히 서 있다.
잔물결의 흔들림이 그녀의 몸을 흔들자, 몸은 점점 흐릿하게 변해갔다.
네가 강가에서 스스로를 위해 울린 조종의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을 때부터, 난 내 오랜 친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안타깝게도 라케라말린은 여전히 이 전쟁에 연루되길 원하지 않구나.
어머님…… 어머님은 확실히 날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셨지.
교묘한 방식이긴 하지만, 라케라말린의 예전 성격과도 잘 어울리긴 했어.
라케라말린도 너처럼 자신의 선택을 한 거야.
네가 영혼들과 맞서는 모습을 봤어. 그 당시 나와 어깨를 나란히 싸우던 네 어머니의 모습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더라.
이제 네 어머니와는 다시 만날 순 없으니, 나 대신에 작별 인사를 전해줘, 로고스.
전하, 몸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떠나는 것 역시 반항이지. 이건 우리 스스로 선택한 우리의 의지야.
오리지늄은 우리를 영원히 여기에 가둘 수 없어.
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감금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며, 당신은 왜 그걸 원하는 거지?
이해할 필요 없어, 로고스.
넌 그저 영혼들이 얽힌 정보의 집합이, 복잡하고 분석할 수 없는 정보의 흐름 속에서 흩어지고 있다는 것만 알면 돼.
더 이상 읽을 수도 없고, 기록되지도 않는……
진정한 죽음이로군.
왕과 영웅들이 더 이상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있다. 피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인가……
전하, 오늘 이후로 남아있는 영혼들이 있을까?
없을 거야.
피안의 나루터에는 횃불을 밝히는 나루터지기가 남아 있을까?
더는 없어.
미래에 죽을 동포들은 어디로 돌아가게 되지?
나도 몰라…… 그 답을 지켜볼 시간은 내게 없을 것 같네.
난 벌써 끝에 도착했고, 이 앞에는 문명의 진실에 대한 안개가 펼쳐져 있지. 나는…… 닿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너희가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건 아니야.
전하……?
훗, 하지만 난 미래를 걱정하는 짐은 이미 내려놨어. 영혼들이 걱정하는 건 오직 살카즈뿐이야.
“새 생명은 멸망에서 나온다”…… 넌 이미 숙명의 필연성을 이해했지만, 죽음의 진실은 깨닫지 못했어.
살카즈의 영혼들은 더 이상 우리의 속박이 아니며, 오리지늄도 더 이상 우리가 짊어진 업보가 아니야.
로고스, 떠나는 것도 우리에겐 해방이야.
만년 동안 지속된 분노의 속삭임도, 영원히 잊지 못할 고난의 전승도 이젠 없을 거야.
우린 처음으로 바꿀 수 있는 미래를 갖게 됐어.
“우린 처음으로 선택할 권리를 갖게 됐어.”
후우…… 후우……
이곳에 항복 따윈 없다. 있는 건 오직 죽음뿐.
나, 날 죽일 필요는 없어……
이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는, 내 몸의 검은 돌들을 봐…… 으으…… 그리고 내 전우를 봐. 녀석들은 이제 안갯속에서 나올 수 없어……
난 살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훗.
용병이 휘두르던 칼이 죽어가는 자의 눈앞에서 갑자기 멈췄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고, 무언가가 떠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살육의 충동에서 점점 침착해졌다.
……쳇, 착각인가?
으으……
……
……하.
“살카즈는 더 이상 과거의 굴레를 위해 살지 않아도 된다.”
“우린 오직 생존을 위해서만 살아갈 것이다. 이 땅의 다른 모든 이들처럼 평등하게 고난에 맞서 싸울 것이다.”
앗, 내 털뭉치가!
조심해, 파프리카. 겨우 잡았네.
어, 감사합니다! 이, 이젠 놔주셔도 돼요, 이네스 씨!
우린 아미야와 박사를 구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당황하지 마.
네 목숨은 저 털뭉치보다 가치가 있으니까 말이야.
……저건 제가 떠나기 전에 외할머니께서 주신 거예요……
어…… 잠깐만요. 이네스 씨, 뭔가 안 느껴지시나요?
뭘?
……!
영혼 깊은 곳의 울림이요.
……
내가 해골 조종에 너무 집중한 것 같네. 예상치 못한 곳에서조차 영향받지 않도록…… 해골을 움직여야 하니까.
파프리카,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이야? 혹시 이후 계획에 영향이 있을까?
서, 설명이 안 돼요. 하지만…… 여러분의 표정을 보니 다들 느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착각은 아닌 것 같아요!
너…… 우는 거야?
아, 정말이네요! 그…… 그런데 왜일까요?
“그러면 당신은?”
“나? 모든 살카즈와 똑같지.”
“떠나고, 사라지고, 죽게 될 거야.”
“로도스 아일랜드와 함께 나아가줘. 자신의 결정을 의심하지 말고.”
“고마워, 로고스.”
전하, 살카즈의 영혼들이 멀리 떠나간다고 해서, 과연 우리가 과거와 작별할 수 있을까? 아마 당신도 의구심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지……
피안은 텅 비게 되었지만, 죽음이 역병처럼 번지는 이 전장에서, 우리 동족의 망령은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전하, 내가 당신 대신 우리의 결말을 보도록 하지.
나룻배가 없다면, 내가 넋을 달래겠다.
영혼들이 갈 길이 없다면, 내가 노를 젓겠다.
내 노랫소리가 피안의 횃불을 밝힐 거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맹세하지……
피안의 기슭에서 더는 동포들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을 때……
이 대지에서 동포들의 죽음이 안식을 찾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조종을 멈추겠노라고.
황금빛 수면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영혼들이 응답했다.
왕과 영웅, 인간 혹은 원혼들이 빠르게 떠나갔다.
살카즈의 흔적이 오리지늄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이 순간…… 당신을 떠나보내는 것을, 영혼들을 떠나보내는 것을 허락해 주길.
로고스의 입에서 엘레지가 울려 퍼졌고, 그 또한 수면을 밟으며 걸어갈 준비를 했다.
젊은 밴시가 영혼들을 배웅했다.
(불명확한 살카즈어) ……떠났군요…… 종장……
그녀가 떠났다.
(고대 살카즈어) '암나남'은 피었고, 운명은 우리 손에 달렸다.
테레시아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고, 전쟁도 테레시아의 손을 들어주었지.
가라, 더 이상 안갯속에 숨지 않아도 된다. 죽음으로 죽음을 적시고 승리로 이별을 기념하라.
빅토리아의 애도는…… 테레시아를 대신해 내가 직접 받으러 가겠다.
파란 파울비스트가 흰 뿔 악마의 눈물을 쪼아 먹고 있었다.
그녀는 파울비스트 미간의 솜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영혼이 허무로 가득 찬 나이팅게일은 이 이별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을까?
리즈 씨…… 느껴지나요?
영혼의 울림을,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의 슬픔을요.
깊은 잠에 든 리즈의 눈가가 꿈틀거렸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샤이닝, 리즈의 상태는 아직도 악화되고 있어?
아니요, 괜찮을 거예요.
마가렛 씨, 지금 즉시 박사님 일행과 합류해야 해요.
……하늘에 있는 저것의 변화 때문에?
저게 변하는 순간, 네 행동이 좀 많이 이상해졌거든.
이것도 고해신부의 음모인가?
아니요…… 적어도 당분간은 그자가 이 일에 개입할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것 역시 계획의 일환임은 분명해요.
모든 살카즈가 느꼈을 거예요. 저희에게 더없이 중요한 존재가 멀어졌음을요.
음……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의 상황은 어떤 새로운 변수만으로도 전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네 말이 맞아. 박사 일행은 분명 더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거야.
지체할 수 없겠군. 지금 바로 출발하자.
장군님, 장군님!
여기는……
전장을 정리하는 중에 당신을 발견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장군님…… '라이프 스파인'의 탈환에 실패했습니다.
……
이곳에는 나 혼자 있었나?
아스카론은……
장군님, 몸에 난 상처는……
지금 바로 캠프로 모시고 가 치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우리는 이미 시기를 놓쳤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런디니움으로 돌아가서 섭정왕 전하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상의하는 것이지.
전방 초소에 협력을 요청하도록. 전투 지역에서 빠져나갈 준비를 하겠다.
장군님! 바닥에 흐른 피 좀 보세요…… 지금 상황이 아주 안 좋습니다! 군사위원회는 더 이상 고위 장교를 잃을 수 없습니다!
이건 명령이다.
……아직 남아 있는, 그리고 아직 살아있는 살카즈를 위해서.
……!
알겠습니다…… 장군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말도 안 돼. 이 느낌은……
전하, 이것이 바로 당신이 말한 대가인가……?
살카즈의 미래를 위한……
앞으로는 오리지늄에서조차 네가 존재했던 흔적을 찾을 수 없겠군……
너는 그 길의 끝에서 혹시 그놈들을 만난 것인가? '신' 혹은 조물주라고 자처하는 그 거만한 생명체들을……
……테레시아?
너와 내가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을 느낀 후부터, 네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어.
지금의 나는 주변의 공허 속에서 답답하고 지루한 잡음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앞길이 이미 뚫렸으니, 이곳의 모든 것을 끝낼 때도 되었군.
테레시아……
“아직도 내 목소리가 들리는가……”
들려.
너의 목소리도, 새로 태어날 사람의 목소리도, 곧 죽게 될 사람의 목소리도…… 여기서, 우린 모든 살카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영혼은 무의식의 바닷속에 갇혀 익사하기 직전에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안내를 기다리고 있어.
어떠한 시간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응답한 이름은…… '테레시아'.
만여 년 전, 별의 바다에서 빙원으로 추락한 해골이 요동치는 굉음이 들려. 미지로, 공포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우리는 그때부터 핏줄에 낙인 찍힌 억압을 끝냈어…… 아니, 우리는 끝내지 못했지.
그렇다면 우리의 반항은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의문을 제기했어.
……미래가 증명해주겠지.
그렇다면, 지금은?
이제, 우리는 멀리 떠나게 될 거야.
이게 내 대답이야.
사라질 때까지도 항쟁을 포기하지 않은 영혼들이 오리지늄에 속에서 살카즈를 위해 이룬 최후의 일은……
살아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평등하게 살기 위해 싸울 권리가 있는 미래를 쟁취한 것이야.
……
여러분, 계속 앞으로 나아가.
그날, 피곤했던 한 살카즈 소녀는 카즈델의 영혼 용광로의 따뜻한 불빛 속에서 곤히 잠들었습니다.
그녀는 먼 이국땅에 계신 어머니를 꿈꿨습니다. 어머니는 어둠에 둘러싸인 밝은 빛 속에서 그녀에게 뭔가를 말했습니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 그녀는 어머니가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 눈을 뜬 그녀는 머리맡에 핀 순백의 꽃을 보았답니다.
용광로가 죽음을 태우면서 뿌려진 검은 먼지가 연약한 꽃잎에 떨어졌지만, 꽃잎의 불꽃은 더욱 눈부시게 빛났고, 생명력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죽음과 빛이 이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소녀는 죽음을 불태우기 위해 만들어진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이후, 영혼 용광로를 지나던 살카즈들은 매일 이곳에 나타나 오리지늄의 먼지와 뼈의 잔해 속에서 자라는 꽃 한 송이에 물을 주는 소녀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꽃이 시들어 죽는 그날까지 빛에 선물을 바쳤답니다.
“그게 동화의 끝인가요…… 테레시아 씨? 왜 이렇게 슬프죠?”
“슬퍼? 난 오히려 희망이 다가왔다는 기쁨을 봤는데, 아미야.”
“꽃은 시들어 땅으로 돌아갔지만, 신생의 씨앗 역시 이미 땅에 심어졌지.”
……버림받은 건가?
아니, 레버넌트는 원래 영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
비록 사고가 다시 모였다고 해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어. 결국, 오리지늄이 끼친 영향은 되돌릴 수 없다는 의미야.
영혼들과 함께 떠나지 못할 운명인 거야.
그러니까 전하는 처음부터 레버넌트를 데려가지 않을 생각이었단 거야?
그건 나도 알 수가 없지.
하…… 전하도 거짓말을 못하는 건 아닌가 보네……
노친네, 결국 내 손에 떨어질 줄이야.
W 씨, 레버넌트를 더 이상 다치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위셔델이라고 부르라 했지!
걱정 마, 꼬마 토끼, 나는 레버넌트를 때려 부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데려가려는 거야.
노친네는 이미 한 번 죽었어. 전하가 이놈을 되살린 이유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지.
전하는 죽을 때까지 살카즈의 단결을 갈망했어. 레버넌트에 대한 전하의 계획은 간단하지……
일단 사람처럼 살아남아라. 쳇, 진작에 사람 꼴은 아니게 되었지만 말이지.
너도 더는 자신을 태우지 마, 너희의 사명은 진작에 끝났어야 했으니까. 앞으로는 더 유능한 사람들에게 이 일을 맡기도록 해. 예를 들면 나 같은……
쳇, 일단 이 무기 안에 잠시 들어가 있어.
“아미야, 그 봉제 인형의 이야기 기억나? 봉제 인형은 눈물이 모여 만들어진 강으로 걸어 들어가 강바닥으로 가라앉고 말았지……”
“슬픔, 절망…… 하지만 그게 진정한 결말이라고 할 수는 없어. 이야기란 끝도 없이 확장될 수 있으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야기꾼이지.”
“이야기꾼…… 그건 자신을 말하는 건가요, 테레시아 씨?”
“나? 아니…… 난 그 사람이 너였으면 좋겠어, 아미야.”
잠시만요. 설마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나요? 그게 가능한 건가요?
늦었어. 이곳이 변하는 속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라.
후드, 할망구와 세웠던 원래 계획은 뭐야? 우린 대체 어떻게 이 빌어먹을 곳에서 나가야 하는 건데?
- 아직 시도 중이야!
(폭약을 꺼낸다)
위셔델 씨, 흥분하지 마세요!
박사, 여길 벗어날 수 있는 원리를 너에게 설명할 수는 없어. 어쨌든 나조차도 닿을 수 없었던 비밀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난 테레시아가 분명 네게 그 핵심에 대해 말했을 거라고 믿어.
제길, 또 뭔데!
박사님, 켈시 선생님, 이것 보세요! 뿌리가 부서지고 있어요, 뿌리가…… 위로 떠오르고 있어요?!
“테레시아 씨, 어쩌면 봉제 인형은 처음부터 혼자가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눈물의 강 아래에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잖아요!”
“우리처럼요. 박사님, 켈시 선생님, 테레시아 씨…… 그리고 바벨의 모두처럼요!”
“수많은 작은 골렘들이 있었을 거예요. 하얀 것, 검은 것, 푸른 것, 붉은 것…… 아주 많이요.”
“모두가 봉제 인형을 에워싸고, 거센 강물을 따라 멀리 나아갔을 거예요.”
“음, 그런데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있는 이 플랫폼이 '추락'하고 있어.
'그녀'는…… 드디어 테레시아가 무엇을 했는지 깨달은 거야.
이 탑은 지금 지워지고 있어. 질서 정연하게 조립된 정보들이 다시금 흩어지고 있는 거지.
켈시 선생님, 하지만 저는 여전히 테레시아 씨를 감지할 수 있어요. 마치 이 흩어진 정보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요……
어디에나 있지만,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요……
그녀가…… 살카즈의 영혼들이 저항하고 있어.
후드, 머리 좀 굴려봐! 우리가 서 있는 곳까지 무너지고 있잖아!
빌어…… 먹을! 추…… 락…… 한…… 다……
박사……
박사님, 제가 잡았어요!
할망구! 그 괴물의 도움도 없는 지금, 떨어져서 산산이 조각나기 싫으면 멋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추락 속도를 늦출 방법은 내가 생각해 볼게. 노친네, 너도 나와서 좀 도와줘.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니까!
저도 아츠를 써서 최대한 여러분을 감쌀게요!
- 로도스 아일랜드 함선이 안 보여!
- ……로고스는?
함선은 이미 파도의 고요함과 함께 쓸려갔다.
하지만 난 여전히 너희를 위해 나룻배를 띄울 수 있지.
박사, 말했을 텐데. 우리가 다시 만날 때, 이곳은 평온할 것이라고.
“생각났어요! 봉제 인형이 마지막에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아요, 테레시아 씨!”
“작은 골렘들에게 둘러싸인 봉제 인형은 눈물의 강을 따라 나아갔어요……”
“{@nickname}.”
“강바닥의 암류에 휩쓸려 휘청거리더라도,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손을 잡고 있으면……”
“슬픔의 눈물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거예요……”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때, 당신은 기억날 거야…… 답은 항상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알 것 같아.
테레시아 씨, 당신이 제게 길을 알려주고 있는 건가요? 박사님……
-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과 아미야는 무의식적으로 동시에 손을 들었다.
적막한 공간, 정보의 바다 위로 눈에 익은 함선 한 척이 떠올랐다.
비행선. 이미 부서졌어야 할 그 비행선이 당신들의 마음에 따라 다시 조립되어 당신들의 발밑에 정박했다.
당신과 아미야가 아득히 먼 하늘에 있는 거대한 마름모꼴을 바라보았다……
오리지늄. 진실. 프리스티스. 테레시아.
“이곳을 떠날 때가 됐어.”
비행선은 가속하며 허무를 찢었고, 빛을 향해 돌진한다.
“봉제 인형과 그의 친구들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지만,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한 가지 염원을 품고 물살이 느려진 틈을 타, 온 힘을 다해 물 위로 떠올랐어요. 그들은 성공했고, 드디어 보았어요……”
“바다. 햇빛이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였어요.”
“알고 보니 그들은 눈물의 강을 건넜을 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끝없는 미지의 바다까지 건넜던 거예요.”
“그렇게 그들은 다시 땅을 밟았어요.”
“안녕, {@nickname}. 나는 여기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