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0역대 왕의 행적
일행은 하늘을 찌르는 거탑에 올랐고, 정상에 다다르자 하늘과 땅이 뒤바뀌게 된다.
마왕 일리스가 죽은 후, 나는 그를 몇 번이나 만났다.
일리스가 '마왕' 속에 남긴 감정과 경험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과는 많이 달랐다.
내가 기억하는 일리스는 늘 고개를 숙인 채 의사당 중앙에 앉아, 다투고 있는 왕정 멤버들 사이에서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일리스가 너무 나약하다고 생각한 두카렐과 네츠살렘은 그의 면전에서 검은 왕관이 또 한 번 후계자를 잘못 선택했다고 말했지만, 그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그저 창밖의 용광로에서 타오르는 연기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뛰어난 캐스터이자 장인이었던 일리스는 생활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아츠를 꾸준히 연구했으며, 카즈델이 결정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계획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밖을 떠돌다가 카즈델로 돌아온 일리스는 레버넌트를 설득해 도심에 가장 큰 용광로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왕관이 그의 머리에 씌워지면서, 새로운 마왕은 점점 더 침묵하게 되었다.
갑자기 너무 많은 감정과 기억을 감내하는 것은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왕관의 선택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광기에 빠져 죽어버렸다.
그러나 일리스는 광기에 빠지지 않고 그 모든 것을 견뎌냈다. 그는 충분히 의식이 뚜렷했기에 오히려 점점 더 절망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검은 왕관은 일리스에게도, 내게도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구상했던 살카즈의 미래는 어쩌면 살카즈 역사에서 어느 한 시기의 반복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가 애써 쌓은 모든 것이 결국 파멸하게 될 것이다.
전쟁은 그의 카즈델을 찢어발길 것이고, 전쟁은 그를 죽일 것이다.
전쟁은 나를 죽일 것이다.
크아아아아!!!
얼마 안 남았어!
공격해! 놈을 잡으면 이 주술 제단은 무용지물이 될 거다!
석궁이 살카즈의 가슴에 꽂혔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계속 전진했다.
“띠, 띠, 띠.”
고개를 숙인 그는 가슴에 꽂힌 화살촉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집속탄이 살카즈의 피와 살 속에서 폭발했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밀집 폭발은 아무리 강력한 주술이라도 상처를 빠르게 회복시키지 못하게 했다.
……성공인가?
하하하, 진짜 쓰러뜨렸어. 폭발에 뼛조각도 남지 않았다고! 이 방법이 정말 효과가 있었어. 역시 우린 이 괴물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던 거야!
잠깐……
살카즈의 잔해가 빛나고 있었다.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자욱한 불길과 오리지늄 분진이 전장의 한구석을 삼켜버렸다.
……
종장님! 몸이……
전투에 지장은 없다.
빅토리아의 공세가 맹렬합니다.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아무래도 저희를 상대할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저희의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 전사들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방어선은, 여전히 버티고 있다.
네.
그거면 충분하다.
나는 테레시스와 테레시아를 믿는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일찍이 테레시스와 '축성공' 굴둘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석의 아이 씨족은 이미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굴둘처럼 가고일에게 명령을 내려 독특한 재능을 발휘해 신속하게 성을 쌓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의 강인한 성격과 리더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직조공, 축성공.
나는 테레시스에게 어쩌면 내가 굴둘과 정말 닮았을지도 모른다며 농담으로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심각해진 테레시스는 나를 굴둘처럼 최측근의 배신으로 죽게 두지는 않겠다고 했다.
나는 굴둘이 생각하고 느낀 바를 테레시스에게 온전히 공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굴둘이 죽기 직전의 감정은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를 배신한 다이아볼릭이 아니라, 수많은 동포와 함께 만들었던 도시였다.
우리는 굴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은 마지막 마왕이 아니라는 걸, 그의 도시도 마지막 카즈델이 아닐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누군가가 여전히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한, 카즈델은 반드시 잿더미 속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BM과 TAA 두 루트 모두 뻥 뚫려있으니 통과할 수 있어! 15분 동안 오리지늄 결정이 자라지 않을 거야.
I9는 안 돼. 피스트, 비컨의 색깔 변화에 주의해. 근처의 오리지늄 산이 붕괴할 위험이 있어.
……클로저 씨, 우리는 I903 정찰 포인트에 있어요! 다친 사람이 있는데, 민간인 같아요.
아, 보인다. 로봇을 그쪽으로 보내고 있어. 방어구랑 약만 챙기면 로봇이 알아서 다른 데로 갈 거야.
참, 그리고 드론 두 대도 그쪽으로 가고 있어.
안개가 피어오르면 신호등의 색깔을 봐. 녹색은 앞길에 문제가 없다는 거야. 파라곤 부대의 사람들은 I901에서 접선할 거고.
클로저 씨, 대체…… 한 번에 몇 개를 조종하는 건가요?
뭐, 대충 일곱, 여덟……
음, 열 몇 개구나. 눈은 좀 더 많아.
지금은 로도스 아일랜드의 재앙 구조 임무보다 더 복잡한 상황이야. 팽……
걱정 마세요. 방심하지 않을 테니까요.
클로저 씨도…… 치지지직……
……통신 교란?
176번과 178번 드론의 신호가 끊겼네.
……
……물자 포인트 발견.
약이랑 먹을 거, 다 있네. 그런데 쓸 만한 무기는 없군.
약과 식량이라면 네 몫은 가져가 돼. 대신 그 이상은 안 돼.
네가 맨주먹으로 나를 막을 수 있을…… 윽, 뱀파이어잖아?
맞아.
겁먹지 마, 왕정과는 상관없으니까. 그리고 한 번에 너희들 피를 모조리 빨아먹는 아츠 같은 것도 안 써.
퉤, 네가 정말 그 빌어먹을 놈들과 한패라면, 네 목을 단번에 뚫어버릴 거야!
……너희들은 임무를 수행하러 온 게 아니야. 맨프레드가 우리 표식조차 모르는 사람을 보냈을 리도 없고.
이런 말이 너희에게 별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이곳은 곧 폭발할 거야.
그러니까, 내 일을 방해하지 말아 줄래?
윽……!
빌어먹을 재앙은 왜 또 오고 난리야? 왕정의 그 늙다리들이 도대체 뭘 만들어낸 거지? 이 망할 곳은 어디 발붙일 데가 없어!
어이, 여기는 467호다. 너희들 어디 있어? 여기……
캠프를 습격한 용병들은 모두 처리했어.
가자, 클로저. 다음 안전 구역으로 이동해야 해.
고마워, 마스터 자객 씨.
……
항복할 거야?
항복하면 우리랑 같이 가도 되고.
……이미 잡혔는데, 다른 선택지가 있겠냐?
전쟁이 지금까지 계속되면서 전장 곳곳으로 흩어지는 용병들이 늘어나고 있어. 군사위원회의 지휘를 따를 뿐만 아니라, 본업으로 돌아가기도 하겠지.
따라서 지금과 유사한 습격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야.
예전에도…… 이렇게 버텨냈잖아?
……그렇지.
재앙, 아니면 더 많은 적들을 넘어서라도……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도울 거야.
군사위원회의 또 다른 소식은 없어?
얼마 전 군사위원회가 빅토리아 대공작을 한 명 죽였다고 하더라고. 곧 두 번째와 세 번째도 죽일 거래!
콜록콜록…… 네게, 윽, 괜찮은 약이 있어? 이 다친 다리 좀 치료하게. 돌멩이가 조금만 적어져도 싸울 때 좀 더 빨리 뛸 수 있잖아……
……
너도 런디니움에 가려고?
런디니움? 거길 내가 어떻게 가. 설령 가고 싶다고 해도, 섭정왕이 날 원하지 않을 거야.
어차피 이 전쟁…… 조만간 카즈델까지 번질 것 같은데, 빅토리아인, 라이타니엔들이…… 우리를 쉽게 놓아줄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너도 미리 계획 좀 세워둬. 무기도 좀 더 날카롭게 갈아놓고. 어떻게 사람을 죽여야 할지 생각도 좀 해 보고……
……군사위원회.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우리의 도시는 또다시……
후우…… 하하…… 드디어 따라잡았네요.
어, 너는……
음…… 당신의 동행자라고나 할까요?
……
그러니까, 전달자라고요!
하아,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러서, 카즈델이 영 낯설게 느껴지네요. 그나저나, 이 좌표에서 제가 찾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들었거든요.
혹시…… '바벨'의 옛터로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나요?
바벨의 업무 진전에는 예상대로 어려움이 많았다.
실패가 두렵진 않지만, 내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건 희망을 품은 사람이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이다.
나는 '마왕' 속에서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켈시는 내 몸에 무리가 갈 수 있다고 했지만, 시간이 촉박했기에 나는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추방자', 살카즈의 첫 번째 마왕을 찾아냈다.
나는 하늘과 땅을 휩쓸고 간 전쟁, 점점 절망해가는 사람들을 어렴풋이 보았다. 그리고…… 그게 오리지늄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모양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검은 결정과는 거리가 멀었고, 매우 맑은 빛을 내고 있었다.
우리의 마왕, 카즈델 최초의 수호자는 자신의 피와 영혼을 그것에 바쳤다.
그 후, 영원한 밤이 찾아왔다. 소리와 빛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추방자'는 이름 남기기를 포기했고, 심지어 '마왕' 속에 감정도 얼마 남기지 않았다. 나는 그가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는 모든 살카즈 대신 어둠을 껴안았고, 자신마저 어둠 속에 묻어버렸다.
내가 발을 들인 곳은 쓸쓸한 무덤이었다.
나는 무덤을 배회하며, 소리 없는 곳에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어둠 속이 텅 비어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탑.
탑을 충분히 높이 세울 수만 있다면 우리 머리 위의 어둠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세운 모든 것은 무너지고 파괴되어 모래에 묻힐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지, 우리의 갈망은 먼지 속에서 수도 없이 일어설 것이다.
오른다.
올라간다.
끊임없이 위로, 우리의 무지를 넘어.
어둠을 넘어설 때까지.
……
이게 바로…… 여기에 탑이 있는 이유예요.
어찌 됐든, 드디어 끝에 도착한 거 같네.
도대체 얼마나 오른 거야? 왠지 인생이 몇 바퀴 돈 기분인데!
그러게요, 어쩌면…… 더 긴 시간이었는지도 몰라요.
꼬마 토끼! 뭘 멍하니 있어?
듣고 있어요.
……이미 죽어버린 노친네들의 푸념을? 지겹지도 않아?
음……
아미야는 자신이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알고 있다.
마왕은 영혼들 사이에 있다.
영혼들은 마왕이 듣기를 바란다.
아미야는 자기도 모르게 그 소리를 따라, '마왕'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수많은 시간과 공간의 파편 속을 더듬었다.
반지가 아미야의 손바닥으로 파고들었다.
그것들을 풀기만 한다면…… 그녀는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비밀, 모든 전말을 자신의 뇌로 흘러들게 할 수 있다.
아미야, 지금은 아니야.
켈시 선생님……
영혼들의 의지가 네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 영혼들은 네가 자신들의 선택을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
전……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싶어요.
그렇다면 직접 마주해야 해. 우리 모두가 그래야 하지.
- 맞아, 아미야.
- 우리 함께.
알고 있어요.
살카즈의 영혼들을 제외하면…… 박사님도, 켈시 선생님도, W 씨도 마음의 소리가 아주 또렷하게 들려요.
오리지늄 아츠로 내 생각을 엿본 사람들의 결말은 대체로 좋지 않았지.
그런데…… 훗, 장담컨대 여기까지 온 우리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절박함, 긴장감, 그리고 기대감도 있다.
고요한 지난날의 메아리와는 사뭇 다른,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감정이다.
함께 올라가요,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잠깐만, 이 투명한 천장은 어떻게 부숴버릴지 생각 좀 해볼게.
어쩌면……
테레시아 씨가 이미 제게 알려줬을지도 몰라요.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어둠 속의 눈.
마름모꼴.
어둠 속에 단 하나뿐인 빛 같기도, 만물의 빛을 집어삼킨 원흉 같기도 했다……
아미야는 고개를 들었다.
살카즈의 영혼 속 마왕들도 고개를 들었다.
아미야는 마름모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살카즈의 영혼 속 마왕들도 일일이 손을 내밀었다.
이것은 첫 번째 마왕이 내게 남긴 유일한 말이다……
“어두운 밤처럼 우리를 뒤덮는 돌, 그것은 우리의 고난이자 희망이다.”
우리는 희망을 위해서 왔다.
지금 이 순간, '추방자', '축성공', '분노의 푸른 불꽃'…… 모든 마왕이 나와 함께 있다. 일리스마저 다시 아츠 스태프를 잡았다.
그들은 나와 함께 싸울 것이다.
하나의 사명을 위해서.
마왕의 사명을 위해서.
살카즈의 미래가 이곳에서 밝혀질 것이다.
하늘과 땅이, 위와 아래가, 빛과 어둠이, 미래와 과거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탑의 정상이자 바닥인 곳에서, 종점이자 원점인 곳에서 아미야는 탄식을 들었다.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왕'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