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10양축머리
좌락이 도시 안의 진실을 전달하고, 평숭후는 지휘권을 되찾지만, 쉐이 능묘 포격 명령은 이미 내려진 후였다. 쉐이 능묘 안에서 왕은 지에가 남긴 기보를 손에 쥐고, 마침내 그림자 속 백을 집은 자를 만난다.
망일
모래바람이 해를 가렸다.
좌락은 옥문성의 그림자 아래 쪼그리고 앉아 눈을 들어 멀리 내다봤다. 병풍위, 모래 방아, 분명하게 들리는 포성……
도시 전체가 쉐이 능묘를 향해 천천히 전진하고 있었다.
옥문이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구나.
그런데…… 폐하께서는 왜 아직 자고 있는 쉐이를 공격하라고 명하신 거지?
잠시 후, 옥문은 낮게 엎드린 지촉인의 지척에 다가왔다.
곧 그의 앞에 있던 길이 사라지고, 지면과 거의 수직인 성벽만이 남았다.
이 모래 방아에서 탈출하고 싶나? 경공은 정말 충분히 익혔나? 이번에 나가면……
……됐다, 능력껏 하겠지.
이렇게 다쳤다고 처벌을 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소란을 피우고 싶었으면 혼자서나 할 것이지, 어찌 운청평까지 데리고!
장군님, 좌 공자님은……
그 녀석 편을 들어줄 필요는 없다
뛰어내리기 전에 어떻게 올라올지 잘 생각했어야지! 무식하게 굴어서 남들 걱정이나 시키고!
……
돌아가서 대기해라, 상처가 좀 낫거든 알아서 벌받으러 와라.
성벽은 이제 좌락의 코앞까지 바짝 다가왔다.
좌락은 단숨에 뛰어올랐다. 평소 사람들이 칭찬하던 경공은 이제 좌락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옥문의 모래 방아는 꺼져 있었고, 병풍위는 높게 솟아 있었다. 평평한 성벽에서는 발 디딜 곳도 없었기에, 실수 한 번이면 그대로 산산조각 날 터였다.
중간 지점까지는 그나마 벽의 돌출부를 이용해 힘을 쓸 수 있었지만, 위로 더 올라가니 무게가 천 근은 가중되는 듯했다.
더 빨리……
소년은 모래바람 너머로 성루 위 장병들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있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자신이 성벽 위를 몇 년이나 지켰는지 잊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 갑작스러운 나팔 소리 한 번에, 그들은 새로 시작된 사냥에 남은 생을 바쳐야 했다.
더 빠르게!
더 높이 올라가니 생각이 맑아졌고, 다리에도 힘이 더 많이 실렸다.
그렇다 한들, 높은 성벽의 끝에 있던 길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쉐이 능묘까지 15km 남았는데, 여기서는 쉐이의 움직임을 더 관측할 수 없어.
사세대에서는 소식도 없고…… 위에서 진짜 발포 명령을 내린 건가?
……아니, 절대 아니야! 그래! 알겠다!
……
누구……
실례하겠습니다.
……!
움직이지 마십시오.
여, 여기 첩자가……
……여기는 이미 텅 비었습니다. 마음껏 불러보십시오.
어떻게 알았지? 대체 뭘 하려는 거야?
조정 특사입니다. 옥문성의 무단 작전을 조사하러 왔습니다.
조정 특사? 전에 이미 떼거리로 왔잖아? 지금 그렇게 수상한 꼴을 하고 특사라고 사칭할 생각이냐?
(이미 왔다고?)
전 조정의 특사입니다. 이 옷을 못 알아보겠습니까?
웃기고 있네! 그 사람들은 너랑 다른 옷을 입고 있었어! 그 사람들이 입은 건 진짜 조정 관리의 복장이었다고!
……병부군요.
어떻게 알았지?
병부의 특사가 성에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 옥문에 이동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맞습니까?
좌 장군께서는 그 후에 모습을 보이셨습니까? 장군은 평소 전쟁 직전에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직접 성루에 올라 북을 치는 분입니다만.
……너, 정말 조정 사람이야?
물론입니다.
진군 명령이 정말 이상하긴 했어. 하지만…… 좌 장군 말고 누가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었겠어?
……그래요, 알겠습니다.
손목에 묶여있던 줄은 풀어뒀습니다. 지금 성루로 돌아가면 의심받을 수 있으니, 여기 잠시 계십시오. 그럼 이만.
병사는 저린 손으로 눈을 비볐다. 경공을 사용해 떠난 소년의 모습에서 어쩐지 낯익은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
좌락?! 어떻게 성에 들어온 거냐!
모래 방아 쪽에서 올라…… 아니, 지금 해야 할 건 이 얘기가 아니라……
무사하니 됐다……
아버지, 병부 사람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네가…… 그 사람들을 찾아서 뭘 하려고?
쉐이 능묘로 진군하라는 명령과 쉐이 능묘 포격 명령은 아버지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내린 거죠?
만약 그게 아니라면, 아버지께서는 왜 연금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여기에 혼자 계신 겁니까?
입조심해라, 군사 전략을 함부로 논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 태위가 이런 행동을 하는 건, 폐하의 뜻을 거스르고 직접 쉐이에게 포격을 가하고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입니다!
태위는 본인의 세력을 구축하고, 사세대 감정과 결탁해 백조에서 창궐하는 글자 창괴를 방치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천경각에서 대리인의 유물을 탈취하려 했으며, 용문의 웨이 총독을 협박해 쉐이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모두 실패하자, 쉐이 능묘를 향해 발포하라고 옥문을 압박한 겁니다.
폐하께서는 전쟁을 명하신 적이 없습니다. 옥문의 이동 명령과 발포 명령은 전부 엉터리예요! 절대 속으면 안 됩니다!
태위가 쉐이와 전쟁을 벌이려고 그렇게 많은 짓을 벌였다는 말이냐……?
설마 제 말을 못 믿는 겁니까?
……아니다. 내 어찌 너를 믿지 않겠느냐.
하지만 너도 알아야 한다. 지금 옥문 앞에는 쉐이 능묘가 있고, 뒤에는 백조가 있다. 무슨 명령이든 간에 옥문성이 혼란에 빠져서는 안 된다!
위에서는 전진을 명하고, 아래에서는 관망하기를 원한다. 두 명령이 충돌하면 옥문은 혼란에 빠지게 되겠지, 만일 쉐이가 정말로 깨어나면, 옥문성의 사람들 전부 큰 화를 당할 거다!
그렇다면 옥문의 사람들은 본인이 염국의 의지가 아닌, 태위의 말도 안 되는 명령 때문에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진군 전, 장군은 관례대로 성루에 올라 북을 쳐서 군대의 사기를 높여야 하는데, 좌 장군은 그렇게 하셨습니까?
……
장군의 격려가 없으면, 군의 사기가 높아지기는커녕 혼란스러워할 뿐입니다. 그들이 정말 쉐이에게서 백조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걸까요?
아니면 단지 태위가 원하는 모습인,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염국을 위해 소모될 희생양에 불과할까요?
좌락!
아버지, 아버지는 옥문의 장군이기도 하지만, 염국의 평숭후이기도 합니다……
방금 수상한 사람이 옥문에 잠입했다는 급보가 있었는데, 좌 장군 댁에 있었군요.
좌 장군, 아드님을 군사 금지구역에 무단으로 침입하게 한 죄는 어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좌선료가 입을 열려고 했지만, 좌락이 반 보 앞으로 나서서 허리춤의 검을 반쯤 뽑았다.
어사께서는 방금 대화를 다 들으신 모양인 것 같은데, 그 대화를 다 듣고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태위와 한통속인가 보군요.
이 애송이가 무슨 헛소리를!
좌 장군, 아드님께서 겁도 없이 날뛰는데, 못 본 척할 겁니까?
어사, 나도 궁금하군. 태위께서 이렇게 쉐이와의 전쟁을 서두르시는 이유가 무엇이오?
지금 이 상황에서 좌 장군께서는 아직도 군령에 토를 다는 겁니까?
난세의 격동 속, 조정의 위아래가 모두 뜻을 모아 이십팔책을 정했습니다. 이십팔책 너머에 있는 숨겨진 정책 2가지 중, 첫 번째가 바로 반드시 쉐이의 화를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쉐이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이 문제를 바깥의 적이 쳐들어온 이후가 되어서야 해결하겠다는 말입니까!
장군에게 사실대로 말하자면, 태위뿐만 아니라 조정에 있는 관리 대부분이 이 계획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태부께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폐하는 또 뭐라고 하셨죠?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어사, 그건 나도 묻고 싶은 거였소.
태위와 병부, 나머지 내각 육부의 관리들, 그리고 폐하께서는 이 일을 다 알고 동의하신 거요?
좌선료, 이건 당신 같은 장수가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모른다는 말이군.
……
군이란 반드시 명령을 따라야 하고, 옥문이 혼란스러워지는 일은 더더욱 있어서는 안 되기에, 난 계속 참았소. 설령 전쟁을 앞두고 장수를 바꿨다 한들 참았소……
하지만, 앞으로 정말 큰 전쟁의 시대가 찾아온다면, 자네들이 하는 행동이야말로 염국을 어지럽게 만들고, 내부의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이오!
나는 한낱 무인에 지나지 않지만, 염국의 평숭후이기도 하오. 이런 말도 안 되는 명령은 받들 수 없으니, 용서하시오!
……죽고 싶은 모양이로군. 잡아라!
보아하니 정말로 반란을 일으키려는 모양새군요.
누구냐?!
숙정원 부감찰어사 태합입니다. 우연히 이곳에서 부상을 치료하다가 뜻밖에도 옥문성에 내란을 일으키려는 병부의 독단적 행동을 보았군요.
저는 신경 쓰지 마시죠. 저도 여러분의 행동에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태합이 살아서 이 의사당을 떠난다면, 오늘 일어난 일을 그냥 넘어갈 거라고는 생각해 주지 말아주십시오.
병부의 특사와 그가 대동한 병사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만하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옥문의 장수요. 일이 일어난 후에 태위께서 우리를 군법으로 처벌하겠다고 하면, 그 벌이 파면이든 유배든 달게 받겠소.
그러니 지금은 비키시오. 병사들을 보러 가야겠소.
좌락은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부친의 앞을 호위했다. 두 사람은 곧장 의사당 밖으로 향했다.
아버지, 그 특사라는 자들은 잠시 구금했습니다.
잘했다. 그러면 이제……
보, 보고드립니다! 성안의 통신 시스템을…… 누군가가 끊어놓았습니다!
뭐라고?!
그자들이 의사당에 쳐들어오기 전에 무슨 소리가 났던 것 같은데, 그때 한 짓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사람이 직접 명령을 전달해야 합니다.
동력층은 괜찮지만, 대포가 옥문 전체에 퍼져 있고, 발포 명령도 이미 하달된 상태입니다. 게다가 병사들이 받는 명령이 계속 바뀌고 있어서……
즉시 통신 시스템을 복구해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포격을 막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태합, 내 명령을 동력층에 전달하게.
예.
좌락, 대포가 있는 도시 안쪽을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일은…… 참 잘했다.
……빌어먹을! 이 괴물들, 죽지를 않네!
더 이상…… 못 버티겠어……
또 하루가 지나갔지만, 백조의 방어선에서는 아직도 창괴와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기괴한 창괴는 마치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왔다. 녀석들을 쓰러트린다 한들, 다시 나타날 때는 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지금 수비군이 상대 중인 건, 당시 '신을 사냥한' 군대임이 분명했다.
기운 내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포기하지 마라!
그녀의 손에 들린 칼은 이미 날이 휘어져 있었고, 입고 있는 갑옷에도 점점 상처가 늘어갔다.
폐하의 명령입니다!
순방영, 어림위를 비롯하여 성을 수비하는 모든 병사는 백조 코어에서 순차적으로 철수하라. 성밖 군대와 함께 백조에서 10km 떨어진 곳으로 철수하라.
철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금성이 바로 우리 뒤에 있는데!
설마 폐하께서는 코어 섹터를 버릴 생각인가?
장교님, 그것이 바로 폐하의 뜻입니다!
폐하……
폐하는 지금 어디 계시지?
그는 40년 만에 다시 이 밀실로 돌아왔다.
또한,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던 때의 기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후회, 혼란, 원한, 두려움……
40년의 세월은 그 모든 것을 가라앉히기에 충분했고,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무력함'이라는 감정을 제외한 모든 것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40년, 눈 깜짝할 사이였다.
……만약 자네가 아직도 염국에 머리를 숙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천 년 동안 자네가 품었던 모든 분노는 내가 홀로 떠안겠다.
불충의 죄도…… 내가 홀로 응징하겠다.
천년 넘게 이어진 은혜와 원한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 염국은 앞으로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할 것이다……
하늘은 염국을 보우할 수 없다. 하늘보다 더 위대한 건…… 인간의 의지다.
진룡은 눈앞의 뜨거운 빛을 똑바로 바라봤다. 마치 분노로 이글거리는 그 고대의 커다란 눈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쉐이가 완전히 깨어나기 전, 자신의 몸을 바쳐야 할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황금색의 빛이 완전히 사라졌고, 한 줄기의 잔광만이 남아 왕의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그 찰나의 순간, 파편처럼 부서진 기억의 파도가 왕의 눈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왕은 그 파도 속에서 동생의 흔적이 새겨진 조각을 붙잡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120년 동안,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왕은 조각 하나를 움켜쥐었다……
그것은 기보였다.
그 기보에 있던 건 후세에 전해질 만한 명경기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건 단지 남매가 장난삼아 두었던 대국에 불과했다.
왕은 자신이 기억 속에서 놓친 것, 동생이 자신에게 남긴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기보의 뒷면을 보았다……
그리고, 왕은 그 내용을 보았다.
둘째 오빠는 비관적인 사람이야.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헤아리기 어렵고, 끝없이 악한 생각을 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계산을 통해서, 이성적인 논리로 추론해야 한다고 했지.
하지만, 난 오빠와 정반대였어. 난 사람은 본디 선하고, 악을 행하는 것은 단지 본심이 가려졌기 때문이라고 믿었어.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굳이 계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 역사를 읽고 세상을 경험하기만 하면 유추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오빠는 내가 게으름 피우는 걸 꿰뚫어 보고, 나에게 '한'이라는 글자를 선물했어. 근데 난 오빠가 굳은 얼굴로 그런 수를 두기 전부터 이미 나를 놀릴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
이치를 따지든, 유추하든, 결국 사람의 마음으로 귀결돼. 이건 길이 달라도 결국 같은 곳에 이른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거겠지. 우리 가족 중에서 서로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건 오빠와 나였지만, 우리는 사람의 마음이 가진 본질을 밝히려 했어.
어쩌면, 오빠와 내가 같은 답을 얻게 되었을 때……
서신의 내용은 여기까지였다.
바둑꾼은 자신이 아직 생사를 건 전장에 있다는 걸 잊기라도 한 듯, 아주 오랫동안 그 수려한 필체를 바라봤다.
길은 달라도 같은 곳에 이른다.
길이 다르다. 동생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면 같은 곳은……?
……마지막 국면이었다.
재미있군, 지에는 너희 중 처음으로 내게 반기를 든 녀석이었다.
나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겠군. 천 년 동안, 비록 한순간뿐이었지만, 난 나날이 커지는 지에의 힘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지에의 계획은 본인의 무모함 때문에, '헤아리기 어려운 인간의 마음' 때문에 패배했다.
그것보다 더 황당한 건, 지에가 마지막 희망을 네게 남겼다는 것이다……
……지에는 누군가에게 패배했던 적이 없다.
지에는 결단을 내렸고, 그렇게 우리에게 희망을 남겨주었다.
지에는 믿고 있었다. 본인이 세상을 떠난 후…… 우리가 너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하하…… 하하하하……!
정말 불쌍하구나!
설마…… 지금 후회하고 있나?
넌 지금 죽음을 각오하고 나와 싸우고 있지만, 정작 본인 내면의 나약함조차 이겨내지 못하고 있군.
……지에가 마음에 걸리기라도 하나?
……
그래…… 마음에 걸린다.
솔직히 난 지에를 신경 쓰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난 오직 너와의 승부를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나중이 되어서야 배웠다.
이것이 바로 야만스러운 짐승인 네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을.
그러니…… 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만!
이것이 네 마지막 발악인가…… 설마 이게 네가 백 년을 공들여 준비한 결과인가? 나에겐 오락거리에 불과한 이것이?
이번 결말도 지난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네가 그때보다 더 나약해졌다는 거다!
아니면, 지에가 그때 내렸던 선택 때문에 나를 죽이는 것이 지에를 죽이는 것과 같아지기라도 했나? 그래서 손을 쓸 의지조차 잃은 것이냐?
불쌍하구나! 애처롭구나! 가소롭구나!
하지만 상관없다…… 이젠 다 상관없다.
우리는 여기서 계속 기다리면 된다, 앞으로도 계속.
어디 한 번 보도록 하지. 이번에는 네가 자랑하는 형제자매 중 누가 지에처럼 여기로 뛰어 들어와 너를 대신해 죽을지 말이야.
초췌해진 바둑꾼은 바둑판 앞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통 안에는 이제 흑돌이 몇 개 남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은 매우 느렸고, 아주 뻣뻣했다. 마치 정말 이곳에 120년 동안 앉아 있었던 것처럼.
너는 반쯤 잠에 빠진 상태에서 네 공허함을 꼭두각시로 만들었고, 지난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사건을 일으켰다.
넌 그 꼭두각시가 어둠 속에 있고, 우리는 밝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그 꼭두각시는 처음엔 걸음마를 배웠고, 숨어서 힘을 축적하다가, 마지막에는 거리낌 없이 날뛰었다.
하지만 잊었나 보군……
결국 그 꼭두각시도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을.
120년 전의 그 대국에서 내가 그 넓은 바둑판이 전부 네 세력이라는 것을 잊고 홀로 그곳에 고립되었던 거라면……
이번에는 그 꼭두각시가 염국 각지…… 나아가 염국 밖에 있는 검은 바둑돌들을 상대하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닐 차례다.
자 어디…… 이번엔 내 포석을 간파할 수 있겠나?
허……
넌 본인을 181개의 분신으로 쪼개어 거의 광기에 빠져들었다. 근데 겨우 그런 식으로 나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큰 상처를 입었다는 이유로 깊은 잠에 빠져 생기를 회복해야 하는 베헤모스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악몽 속에서 모든 정신을 쏟아부으며 대국을 벌이는 것……
그것은 결국 네 생명의 근간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큰소리쳐봤자 나를 속일 수 없다…… 넌 약해지고 있어.
……그게 뭐 어떻다는 거냐!
너 역시 처음 떠난 나와 같은 옛길을 걸으며, 내가 깨어나는 것을 애써 지연시켰을 뿐이다.
하지만, 넌 정말 네가 깨어 있다고 생각하나?
모든 추억과 꿈속에서 나를 죽인다 해도, 네가 정말 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왕과 쉐이의 대결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수한 가능성, 무수한 상상, 무수한 결말.
인과를 초월한 더 많은 것들이 쉐이 능묘 정중앙에서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대리인은 흩날리는 눈송이 속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결말을 봤다.
……거기까지다.
드디어……
드디어 그 우스꽝스러운 장난을 집어치우고 내게 칼을 겨누는 건가?
……
하하, 하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꿈에서 깨어나기 전의 마지막 오락거리라고 생각해 주지.
……
……드디어.
……
백을 집은 자, 거울 속의 나, 쉐이의 악몽.
너란 녀석은 정말 만나기 힘든 녀석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