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4실수
제1신전 재건 현장 밖, 운하의 뱃사공 크산토스는 티티와 그녀가 아테누스에 가져온 문화재에 눈독을 들인다.
“그리하여 아가멤의 가장 따뜻한 영웅이자 서사시의 영창자 케레세이라는 그녀의 리라를 월계수 가지 끝에 걸어두었다.”
“그 리라의 몸체는 힘노이 고산에 높게 솟은 삼나무로, 현은 아그네스 평원의 용맹한 버든비스트의 창자로 만든 것이었다.”
“리라 소리가 울리면, 만물은 영웅의 나라에서 노래하며 자유롭게 멀리 퍼져나갔다.”
티티, 그래서 당신이 완성된 케레세이라 조각상을 보고 신전 광장을 문화재 교환식 장소로 떠올린 거군요.
당신이 가져온 문화재가 당시 케레세이라가 사용한 리라였어요? 옛 아테누스 제1신전에 있던 그거요?
맞아!
케레세이라는 힘노이 산에서 산이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크게 고무되었다고 전해져. 그래서 그 후에 바위와 삼나무로 거대한 리라를 만들었지.
그건 축복받은 리라였어요. 중요한 날에 연주하거나, 케레세이라 같은 영웅이 연주해야만, 맑고 청아한 소리가 사람들 마음속까지 전해진댔어요.
하지만, 사르곤인들이 옛 아테누스에 쳐들어왔죠. 도시는 혼란에 빠졌고, 제1신전도 함께 파괴되었어요.
리라 역시 비통한 광경 앞에서 침묵에 빠진 듯, 그 이후로는 다시 울리지 않았고, 끝내 자취까지 감춰버렸죠.
다행히 파디샤 케리가 자신의 소장품에서 리라를 찾았지.
그게 어떻게 사르곤에 오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당시 어느 사르곤 병사가 옛 아테누스에서 몰래 훔친 뒤, 파디샤의 조상에게 판 게 아닐까 싶어.
음, 연도를 따져 보면, 지금 아테누스에는 한때 옛터에 있던 리라를 직접 본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아요.
아마도 고문헌을 잘 아는 몇몇 제사장이나, 카산드라처럼 영웅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만이 그 리라에 대해 알고 있을 거예요.
리라에서 아직 소리가 나요?
응.
소장품을 검사하면서 확인했어. 조금 낡긴 했어도, 연주는 가능해.
그렇군요. 전란 때문에 리라가 침묵에 빠졌다는 전설은 어쩌면 미노스 이야기에서 관용적으로 쓰이는 비유적 표현일 뿐일지도 모르겠네요……
나루터에선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신선한 린수를 제일 먼저 공급받으려고 비싼 임대료를 내면서까지 강가에다 호텔을 연 건데.
사장님, 식자재 갖고 왔습니다.
아이고, 드디어 왔구나! 식자재가 좀만 더 늦었으면, 사절단의 귀빈들을 대접하지 못할 뻔했어……
물건 내리는 거 도와드릴까요?
잠깐만, 오늘 배를 왜 그렇게 멀리 댔어? 물건 내리다가 물에 빠지겠다.
젊은 친구, 번거롭겠지만 배를 좀 더 가까이 붙여 줘. 주방에 최대한 가까이 부탁해.
……
알겠습니다.
정말 고마워. 그런데, 오늘은 왜 네가 왔어? 보통은 크산토스가 오잖아?
볼일이 좀 있으셔서요, 죄송해요.
아니야, 괜찮아. 식자재도 받았는데 뭘. 주방에 지장만 안 주면 돼.
크산토스 밑에서 배운 지 이삼 년은 됐나? 워낙 꼼꼼한 양반이니, 그렇게 한 데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전혀 걱정 안 해.
……
팔라스, 미안. 오늘 신전 사람들이 전부 바빠서, 도저히 운반팀에서 일손을 뺄 수가 없더라.
교환식의 일환으로, 리라를 미리 제1신전으로 옮겨서 케레세이라 조각상과 잘 어울리는지 보고 싶어서 말이야.
그렇지만 이렇게 무거운 리라는 덩치 큰 장인을 불러서 옮겨야겠지? 우리 둘이서 하기엔……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사료에 따르면, 케레세이라도 체구가 그리 크지 않아서, 리라 옆에 서면 엄청나게 대비됐대요.
어쩌면 저 혼자서도 충분할지도 몰라요……
후우…… 상자에 납이라도 채워 넣은 건가요? 왜 이렇게 무겁죠?
아하하…… 옛길을 통해 아테누스로 들어왔으니까, 길이 좀 험했거든. 그런데 중대한 문화재 교환 사안에 어떤 차질도 있어서는 안 되잖아.
출발 전에 특별히 박물관 수장고 담당자를 찾아가서 방수 및 방화는 물론, 진동과 압력을 완화해 주는 포장재를 준비해 달라고 했어. 그러다 보니 물건의 무게가 몇 배로 늘 수밖에 없었지.
그래도 장점은, 건물이 무너지거나 갑작스러운 지진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 리라는 아주 안전할 거라는 점이야!
당신이 박물관과 소장품을 아주 소중히 여긴다는 게 느껴져요.
내가 이것저것 관심이 많거든. 그래서 컬럼비아로 넘어가 박물관학을 전공했고, 사르곤에 돌아와서는 자연스럽게 박물관에서 일하게 됐어.
하지만,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고, 가문도 몰락했는데…… 파디샤가 왜 나를 사르곤 사절단의 대사로 지명한 건지 솔직히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어……
그래도 이렇게 된 이상, 열심히 해야지!
티티 씨, 제가 말했었나요? 당신은……
무슨 일이죠?! 티티, 괜찮아요?
괜찮아, 리라는 멀쩡해!
리라 말고 당신 말이에요!
지진이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지진이 일어나다니…… 문화재에 보호 장치를 제대로 해 둬서 다행이야.
아래층이 엄청 시끄럽네, 무슨 일이지?
음, 나루터에서 온 배가 그대로 호텔 주방을 들이받은 것 같은데요?
망했어…… 다 망했어!
너 배 몰 줄 아는 거 맞냐! 겨우 5미터밖에 안 되는 데 돛을 올려? 오늘처럼 바람이 센 날에는, 배가 전달자 헤르메스의 발보다 더 빠른 거 몰라!
주방이랑 가까울수록 좋다고 하셨잖아요.
……
가까운 게 아니라 냅다 들이받아 버렸잖아!
잠깐만요, 다들 비켜주세요.
치안관이 사람들을 해산시키고 있습니다. 다들 여기 모여서 구경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제가 먼저 파악을……
리케이온?
……
서기관, 내 말 좀 들어봐!
나는 식재료를 실은 배를 주방에 가깝게 대 달라고 했을 뿐인데, 저 녀석이 내 주방을 박살 내 버렸다고……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배를 몰 줄 몰라서요.
크산토스랑 그렇게 오래 같이 일하고, 매일 나루터에 있으면서 배를 몰 줄 모른다고? 누굴 속이려는 거야!
이론만으로는 실전을 감당하기가 어렵네요.
너 이 녀석!
그만하세요!
제가 증언할 수 있어요. 이 친구는 제사장 학원 시절에도 포뮬러 전차 레이싱을 한 번도 통과한 적이 없어요.
이, 이렇게 큰 정박 표지도 제대로 못 봤다는 말이야? 뱃머리가 난간을 넘어 들어왔잖아!
못 봤다고요……?
(오리지늄 감염이 벌써 시각 중추까지 퍼진 건가…… 그래서 그날 레나 씨가 방문 진료를 오신 거였어?!)
리케이온……
……뭐야 그 표정은, 곧 죽을 사람 보는 것처럼……
퉤퉤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네, 네 입으로 그런 말 하지 마!
저, 서기관. 둘이 동문인 건 알겠는데, 지금은 공정하게 내 주방 피해부터 처리해 줬으면 좋겠어.
자.
어? 이건 당신 지갑이잖아?
필요하신 만큼 가져가세요. 제가 대신 배상할게요.
누가 너더러 배상해 달래?
너는 제사장 학원을 떠나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적이 없잖아. 크산토스 씨가 숙식을 해결해 주신다고 해도, 얼마 모으지 못했을 거 아냐.
배상금은 신경 쓰지 말고, 네 돈은 네 병 치료하는 데나 써. 그리고 나한테 변론 한 번 빚진 거, 잊지 마.
아니, 나는 진짜 괜찮…… 콜록콜록……
기침…… 설마 급성 발작이야? 의사는, 의사는 어디 있어?
연기 때문이니까 조용히 좀 해! 시정감독관의 서기관 씨, 너는 일단 불부터 끄러 가.
불길이 거세졌어요. 뱃머리가 하필 주방 화로를 들이받은 것 같아요…… 콜록, 연기가 왜 이렇게 자욱하죠?
일단 밖으로 나가서, 넓은 곳으로 가야 해. 안 그러면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셔서 위험해질 거야. 그러면 리라는 어쩌지……
리라의 방화 조치는 완벽하다면서요. 게다가 밑에서 치안관들이 소화 작업을 진행 중이라, 불길이 위로 번지는 일 없이 10분 안에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계단이 이렇게 좁은데 리라를 옮겼다간 사람들의 대피로를 막을 수도 있어요. 게다가, 커헉……
팔라스, 괜찮아……?
네 말이 맞아. 일단 이곳을 벗어났다가 연기가 걷히면 다시 오자. 가자.
불났다고? 큰일이네. 방 안의 짐들은 어떡해!
걱정하지 마세요. 불은 1층 주방에서 났고, 위층 객실까지 번지지는 않을 겁니다. 불이 완전히 꺼지고, 연기가 빠져나가길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다들 밀지 마세요! 호텔 입구를 막으면 안 됩니다. 아직 못 내려온 손님들이 있어요……
저기요, 선생님, 지금 들어가시면 안 돼요.
……
팔라스 어때, 좀 괜찮아?
괜찮아요, 연기를 조금 마신 것뿐이에요.
10분쯤 지나면 방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그때 같이 제1신전으로 리라를 옮기죠. 괜히 호텔에 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곤란하니까요.
고마워.
앗, 죄송해요. 여기 사람이 너무 많아서.
……
팔라스, 방금 그 사람 봤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네? 누구 말인가요?
이봐, 들었어? 배가 주방을 들이받은 사고 말이야, 나루터의 그 녀석 짓이래. 똑똑해 보이더니, 배 모는 건 영 서툰가 봐.
크산토스는? 보통 크산토스가 배달하잖아?
몰라, 바빴나 보지. 그래도, 멋모르는 어린애가 사고 치게 두는 건 그 사람 스타일이 아니긴 한데.
그건 그래.
……생각났어. 방금 나랑 부딪힌 사람, 나루터의 크산토스 씨였어.
크산토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호텔에 올 시간이 있었다면, 왜 운전에 서툰 제자에게 키를 맡겨서 주방을 들이받게 했을까요? 잠시만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저도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