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8보금자리
메이랜더는 결국 부유층을 폭파했고, 파크의 사람들은 남아 있는 지상 구조층을 이끌고 국경으로 도망친다. 한편, 내스티는 양모와의 마음속 응어리를 풀게 되고, 양모와의 작별을 마무리하며, 끝내 '나무'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채우게 된다. 짙은 연기가 걷히고, 하늘 위에는 오직 '나무'만이 남게 된다.
움직이지 마.
말로 해, 말로 하자니까. 앗……
폭동 가담자들이 모두 여기에 있다.
지하 감옥에 가뒀다가 특별구 법정에 넘겨.
곧 작전 시간이다. 혹시 모르니 모두 낙하 장비를 다시 한번 체크해.
무슨 일이야! 누가 벌써 기폭 버튼을 눌렀는데?
그럴 리가. 섹터가 특별구까지 몇백 미터밖에 안 남았는데…… 잠깐, 정부 청사의 첨탑을 봐. 우리 지금 특별구에서 멀어지고 있는 거지?
계획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
처음부터 폭발을 직접 막을 생각이 아니라, 섹터의 방향을 바꾸려고 시간만 끈 거였어?
우리에겐 숙련된 특수요원들이랑 맞설 만한 힘이 없는걸?
……계획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임무를 변경한다.
아래층에 주둔 중인 요원들은 계획된 루트로 철수해. 위층에 있는 팀은 주변의 민간인들을 보호하고 낙하를 준비한다.
0번 지점, 기폭.
무슨 일이지! 스튜디오의 화면이 다 꺼졌네…… 밖의 생방송 화면에는 신호가 잡히나요?
지금 생방송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에요! 감독 협회의 대피 안내를 못 들었어요?!
부유 구조층에 심각한 에너지 사고가 발생했어요. 10분도 안 돼서, 모든 부유 시설이 연달아 추락할 거예요! 어서 비상 시설로 대피하세요!
추락이요…?
오클리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자, 수백 개의 소형 부유 캡슐이 600미터 상공에서 불덩이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하늘 가득 흩날린 재가 맑은 하늘을 전부 뒤덮었다.
햇빛이 사라지자, 구름처럼 가볍고 투명하던 캡슐은 다시 본래의 무거운 금속 덩어리가 되어 파크의 하층부를 향해 회전하며 떨어졌다.
조심하세요.
커헉…… 큰일 날 뻔했네요. 고마워요.
어? 그런데 어느 과학기술 기업의 테스터세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요?
……
지금은 제 소개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오클리 씨.
길에 엄폐물로 쓸 만한 것들이 별로 없어서, 떨어지는 파편에 다칠 거예요. 어서 비상 시설로 대비 피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추락.
통제할 수 없는 추락.
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그녀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었다. 헬멧 양쪽에 달린 벨트가 그녀의 뺨을 때리고 있었고, 덕분에 그녀는 추락에 대한 공포를 잊었다.
기폭 장치의 신호가 연결된 파이프라인을 따라 순식간에 부유 시설 전체에 불을 붙였다. 7번 플랫폼이 동력을 상실하기 직전, 그녀는 땅으로 몸을 날렸다.
추락하는 캡슐이 시커먼 유성처럼 굉음을 내며 펀의 곁을 스쳐 갔다.
캔디색 광고 물감이 거대한 불길에 타올랐고, 녹아 끊어진 플렉스 와이어는 기류를 타고 흩날렸으며, 공기 중에는 타르의 쓰디쓴 냄새가 가득했다.
부유층 전체가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공중에서 아련하게 나부끼고 있었다.
'럭키 치스티비스트', '싱글 부츠', '파라솔'……
펀은 자신과 함께 추락한 회사의 상표들을 식별하며, 이 정도면 죽음의 황무지 일몰에 못지않다고 생각했다.
펀 씨, 낙하산을 펴세요!
아, 깜빡했네.
상승기류가 필라인을 가볍게 떠받쳤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함께 모여든 낙하산이 커다란 구름의 형상을 만들었다.
우리, 성공인가요?
지상층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죠. 자신의 투자와 제품이 잿더미가 된 걸 보면 충격이 클 텐데……
그 사람들은 그래도 안전하잖아. 섹터가 서둘러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부유층의 커다란 잔해들이 그대로 파크 아래층으로 떨어졌을 거야.
게다가, 그 사람들은 누군가가 단지 자기들의 꿈을 단념시키기 위해, 얼마나 치밀한 음모를 꾸몄는지 영영 모를 거야.
……
이제 우린 어디로 가면 되는 겁니까, 펀 씨?
애스펜, 이제 북노스빌로 아내를 만나러 가도 돼.
물론이죠. 하지만 그다음은요?
그다음?
우리가 다시 땅에 두 발을 딛고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게 되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타오르는 불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완전히 변해버린 파크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별다른 아쉬움이 없었다.
특별구와 파크 사이의 황무지에 '프로펠러 파라다이스'의 잔해가 마치 반송된 선물처럼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펀은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그녀는 '파라다이스'와 함께 추락해 인간 세상으로 돌아왔다.
노쇠한 밴시는 200년 전의 그 전쟁을 회상하며, 동족이 불타 추락하던 모습이 꼭 실이 끊어진 연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몸부림치며 공중에 떠 있었다. 마치 너무 많은 실로 땅에 매여 있는 연처럼, 셀 수 없는 뿌리와 가지가 흔들리는 자신의 몸을 붙잡고 있었다.
그녀는 바라던 대로,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연이 되었다.
횃대나무…… 내가 그 나무에 지어준 이름이야. 나는 그곳이 모든 밴시의 귀착지가 되기를 바라며 그 나무 밑에 오두막을 지었지.
하지만, 라케라말린이 나를 그 나무 아래로 데려갔을 때…… 내가 느낀 건 공포뿐이었어.
그 나무는 아주 커다란 공동 같았어. 달빛도, 촛불도, 반딧불도 그 어둠을 밝히지 못했어. 그저 아무 말도 없이, 나의 기억을 조금씩 빨아들이고만 있었지……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시들어가는 냄새를 맡았어. 그건 우리가 고칠 수 없는, 토석의 아이도 어찌할 수 없는 그런 냄새였어.
매 순간, 그 냄새는 협곡이 얼마나 슬픈 곳인지 나에게 알려주었어.
전하와 장군은 결국 전쟁과 죽음으로 살카즈의 내일을 얻어냈고, 아이파닐 그 아이는 지금도 밴시를 위해 새로운 미래를 찾고 있지.
하지만 나의 전부, 나의 협곡은…… 소리 없이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실패한 피난처일 뿐이야.
더 이상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그래서 횃대나무에서, 죽음에서 도망쳤구나.
그런데 왜 여기지?
협곡 밖의 땅은 다 똑같았어. 어둡고, 혼란스럽고, 방향조차 알 수 없지.
그때 내가 기억하는 길은 하나뿐이었어. 그날 네가 말했던 낯선 이름들…. 라이타니엔, 라테라노, 컬럼비아……
나는 그 이름들을 따라, 네 숨결을 따라왔어…… 결국 어디로 가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단지…… 그 나무에게 삼켜지고 싶진 않았어.
하지만 당신은 결국 또 다른 나무에 들어갔잖아.
처음에 네가 이곳에 또 다른 횃대나무를 심은 걸 봤을 때, 난 슬플 뿐이었어.
그날, 이 시들어가는 기운이 여기 퍼져 있다는 걸 느꼈을 때…… 나는 네가 우리의 전철을 밟으려는 줄 알았어.
협곡의 횃대나무를 어떻게 해도 구할 수 없다면…… 나는 이 나무를 위해서라도 뭐든 하고 싶었어.
그저 시드는 걸 조금이라도 늦춰서, 너의 슬픔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어.
하지만 나무를 마주한 순간 나는 알았어…… 내가 나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나무는…… 나를 살릴 수 있겠다고.
횃대나무는 내 기억을 뽑아갔지만, 이 나무는 내게 기억을 나눠주었어.
협곡의 이야기, 그리고 너의 여정…… 이 나무 덕분에 나는 아직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어.
미안해, 내스티, 정말 미안해. 너를 위해 그 무너진 길을 다시 잇기 훨씬 전에, 나는 이 나무와 하나가 되었어. 내가 다시 한번…… 널 속이고 말았어.
……그래서 지금은 기억이 또렷한 거구나.
그것 때문에 '나무'가 평소와 다르게 내 주문도 배척하고 있는 거겠지. 당신이 문법과 작동 로직을 완전히 바꿔놓았네.
지금 이 나무는 당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고, 당신은 나무의 작동을 유지하고 있어. 둘 다 모두 원래와 다른 존재가 되었지만.
마치 꼭 서로의 결함에 기대서 실행하는 프로그램 같아……
결함…… 프로그램?
……마치 자신에게 기생하고 있는 덩굴 덕분에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고목처럼.
그것도 나쁘지 않잖아?
이렇게 해서라도 영원히 시들지 않는다면, 나는 결국 뭔가를 이루게 된 거야. 너를 위해, 밴시를 위해, 그리고 살카즈를 위해.
내가 이 나무를 데리고, 너를 데리고 함께 협곡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그건 의미가 없어.
……!
어째서…… 이 나무, 더 이상 제어할 수 없어……
그렇다면 효과가 있다는 거군.
찰칵 소리와 함께, 내스티 허리춤에 있던 장치의 케이스가 떨어지며 종이테이프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형태 없는 설계도를 따르듯, 테이프들은 내스티 주변에서 펼쳐지며 치밀한 프레임 구조를 구성했다.
테이프마다 빽빽한 구멍들이 뚫려 있었는데, 그것은 주문이었다. 그것들은 내스티만의 문법을 구축하고 내스티만의 규칙을 수호하며, 미친 듯이 뻗어 나가는 뿌리줄기와 나뭇가지들을 밀어냈다.
말했지, 나는 여기서 발생한 모든 일을 알아야 한다고. 그래야 잘못된 결합을 끝낼 수 있다고.
이제 충분히 이해했어.
내스티는 펜을 들어, 함수와 주문을 써 내려갔다.
(살카즈어) 재구성.
안 돼…… 나무가 내게 나눠준 기억들이…… 사라지고 있어.
내스티…… 내스티! 뭐 하는 거야!
지금 '나무'에 미리 로드했던 데이터를 전부 지우는 중이야. 나무가 공유한 모든 데이터는 그냥 실험용 임시 데이터일 뿐이거든.
당신이 잊고 싶지 않은 거, 나도 알아. 하지만 당신이 정말로 기억하고, 남기고 싶은 게 실험용으로 짜맞춘 임시 데이터는 아닐 거잖아.
내스티, 그래도……
적어도 내가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네가 스스로 자신의 심혈을 파괴하는 장면이 되진 않게 해줘……
이것 때문에 그렇게 먼 길을 걸었고, 그렇게 많은 고생을 했는데……
당신은 협곡을 자신의 심혈이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심혈'이라는 게 존재했던 적이 없어.
내겐 목적이 있고, 이 '나무'는 그 수단이야.
이에 대한 나의 판단은, 내가 얼마나 많은 걸 쏟아부었는지가 아니라, 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없는지야.
당신은 결합을 통해 이 '나무'를 영원히 시들지 않게 하고 싶겠지만, 영원히 시들지 않는다고 해서 더 쓸모 있어지는 건 아니야.
……마치 협곡의 횃대나무처럼.
너무 잔인한 말은 하고 싶진 않지만, 횃대나무는 애초에 죽음을 앞둔 이를 진심으로 위로해 줄 수 없어. 그것은 단지 주문의 무게로 휘어버린 매량나무일 뿐이니까.
타르강길스 고목과, 매량나무속, 테라 남동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자재용 수목. 라인 랩에 들어온 후, 내가 엘프 동료에게 다시 한번 확인받았어.
그 나무가 협곡의 횃대나무가 될 수 있었던 건, 당신이 그걸 상징으로 삼기를 원했고, 나무의 변화를 슬퍼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나무가 시든 건 그저 자연스러운 생명 주기의 끝에 다다랐을 뿐이야.
단지, 그것뿐인가……
심지어 줄기에 흐르던 그 광채조차도, 아마 오랫동안 주문을 받은 결과에 불과할 거야.
나무가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이젠 기억이 안 나……
하지만 내스티, 정말 그렇다면……
너는 어째서 네 나무를 횃대나무와 비슷하게 만들었니?
당신을 떠올리게 해주니까.
당신이 나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
베일라, 내가 왜 이 '나무'를 심었는지 알아?
난 아직 우리가 헤어지던 그날을 기억해.
당신이 나를 불렀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어. 얼굴을 마주하면, 어떤 말들은 차분하게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물에 비친 당신의 얼굴을 봤어……
당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었으니까.
눈물이 자연스럽게 눈물 자국을 따라 흘러내렸어. 마치 눈물이 흐르는 자리가 이미 정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협곡에서 당신과 함께 십수 년을 살았어. 마지막까지도 내 기억 속의 당신은 한순간도 눈물 자국이 사라진 적이 없었어.
협곡에서의 생활은 정말 좋았어. 카즈델과 비교하면 나는 몇 번이라도 협곡을 선택했을 거야. 하지만, 베일라……
협곡에서의 200년 동안, 당신은 단 한순간도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어. 그렇지 않아?
처음에는 내가 쉬운 방법으로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고, 당신을 웃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
네가 무심과의 열매로 내 얼굴을 하루 종일 닦았지……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당신이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를 알게 됐어.
당신이 고통받는 근원은 바로 그 결정과 그 거짓말이었어.
천성을 거스른 탓에 끝내 좋은 결말을 얻지 못한 동족, 그리고 인도해 줄 이가 없어 영혼들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동포.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나는 반드시 밴시의 문제, 모든 살카즈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해.
하지만 그 해답은 협곡 밖에, 카즈델 밖에, 이 대지의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있어.
바로 내가 이렇게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베일라……
나는 당신과 함께 하늘에서 배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았어.
물에 비친 하늘인가……
그날은 분명 바람이 없는 날이었지, 하지만, 한순간이었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잔물결이 일었고, 당신 얼굴의 지울 수 없던 눈물 자국이 지워졌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
그 뒤로, 당신을 미소 짓게 만들고 싶을 때면 나는 하늘을 생각해.
어쩌면……
우리가 머물 곳도, 우리 영혼의 안식처도, 모두 하늘에 있을지도 몰라.
(살카즈어) 하늘은, 살카즈에게 허락된 땅이기도하니까.
네가 바깥에서 한 모든 일, 그리고 이 하늘에 떠있는 '나무'는……
모두 그때부터 시작된 거야.
감시카메라 화면 보여줘.
추, 추락…… 실이 끊어진 연처럼……
아무래도 메이랜더는 결국 목적을 달성한 거 같네. 수천수만의 특별구 주민들이 이 대규모 추락을 목격할 거야.
그런데 방금 전 그 떨림은 하층부에서 온 건데. 설마, 고든이……
우리도…… 추락하는 거야?
아직은 잘 몰라. 내가 결합을 해제하고, '나무'의 설정을 복구해서 다시 작동 가능한 상태로 돌려놨어.
다만 '나무' 자체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
내스티, 적어도…… 너 자신은 구해야……
3년 전, 아이파닐이 영혼들을 인도하면서 내 가설에 한 가지 조건을 덧붙였어. 그리고 2년 전, 한 친구가 하늘을 가르고 내게 미래로 향하는 길을 가리켜 주었어.
하지만 그 답에 이르기까진 늘 딱 한 걸음이 모자랐어. 앞으로의 모든 건 우리가 그 답을 찾을 수 있는지에 달려있어.
그 답…… 나에게는 보이지 않아. 설령 이미 하늘에 있다고 해도.
모든 게 다 추락하면, 하늘은…… 텅텅 비겠지.
……
그러게. 하늘은 원래 텅텅 비어 있었어. 하늘을 가득 채운 건……
……우리였으니까.
베일라, 아무래도 하늘에는 확실히 그 답이 없는 것 같아.
답은 당신한테 있어.
당신을 괴롭히는 그 포효, 그 저주, 그 통곡은 나에게도 들려.
내가 인도했거나 인도하지 못한 동포들…… 뱀파이어, 나흐체러르, 디얄…… 그리고 밴시.
미리 '나무'에 업로드 해뒀던 모든 실험용 임시 데이터를 전부 지웠어.
이제 당신을 괴롭히는 건 당신 자신의 미련과 분노, 그리고 슬픔이야. 마치 당신이 지난 200년 동안 보내줬던 모든 밴시들처럼, 수천수만 년 동안 영혼들에게 돌아간 모든 살카즈처럼.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동족은 고통 속에서 망각 때문에 텅 비어버리게 되지, 그래서 살카즈의 영혼들은 항상 포효하고, 저주하고, 통곡하는 거야.
하지만, 우리가 죽은 후에 반드시 정보의 잔재가 생긴다면, 그리고 살카즈의 영혼들은 그 잔재가 모여 만들어진 집합체에 불과하다면……
마지막에 남는 게 웃음과 노랫소리여서는 안 된다고 누가 결정한 거지?
단지 우리의 천성이 그랬다는 게 그 이유일까?
아니.
만약 정보의 잔재를 처리해야 한다면, 서버를 만들면 돼. 만약 지상에서의 신호로는 커버할 수 없을 정도라면, 하늘로 옮기면 그만이야.
단순히 살아있는 자의 피난처가 되는 것만이 아니야, '나무'는 망자의 영혼이 돌아오는 곳이 될 수도 있어. 그리고 이번에, 마지막으로 무엇을 남길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거야.
어쩌면 '나무'에게 부족했던 건 어떠한 기능이 아니라, 하나의 명령, 하나의 결정, 하나의 진지한 소망이었을지도 몰라.
베일라, 답을 알려줘…… 당신이 진정으로 남기고 싶은 게 도대체 뭐야?
이 '나무'가 당신을 위해…… 내가 당신을 위해 그 기억을 보존할게.
당신이 남기고자 하는 것들은, 절대 망각에게 빼앗기지 않아.
……
모르겠어.
모르는 건가……
처음에는 그저 모든 동포들이 덜 고통스럽고, 덜 분노하고, 덜 슬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해야 그걸 실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협곡도, 횃대나무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내가 뭘 남기든 아무런 의미가 없어……
베일라……
내스티는 뭔가를 하고 싶었고, 뭔가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술만 움직일 뿐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이 '나무'를 더 일찍 완성했더라면, 동포들을 더 일찍 하늘의 피난처로 옮길 수 있었다면……
어머니에게도 마음 놓일 만한 추억이 생기지 않았을까?
수백 개의 부유 캡슐이 불타며 추락하고 있었다. 시커먼 유성 같기도, 묵직한 빗방울 같기도, 실 끊어진 연 같기도 했다.
모녀는 그렇게 침묵한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렇게 하면 이 순간을 영영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처럼.
……
아니……
내스티…… 너는 멈출 아이가 아니야. 어렸을 때부터, 넌 정한 길을 반드시 걸어가야 하는 아이었지.
여기서도 멈추지 마. 네가 이룬 모든 것의 의미를 내가 빼앗지 않게 해줘. 설령 내 인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해도, 너의 노력은 분명히 가치가 있을 거야……
만약 이 '나무'가 살카즈의 영혼을 위한 새로운 안식처가 될 수 있다면, 내가 그 첫 번째 주민이 되어줄게.
20여 년 전, 내가 너에게 집을 찾아 줬듯, 이제는 네가 날 위해 집을 찾아 줘.
하지만, 앞으로 아이들이 '나무' 옆에 둘러앉아 나무가 들려주는 소리를 들을 때…… 들리는 건 당신의 울음소리가 아닌, 웃음소리였으면 좋겠어.
당신을 생각할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당신의 웃는 얼굴이었으면 좋겠어……
내스티, 사랑하는 우리 딸……
내게도 있었어…… 좋은 추억,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기억이, 내게도 있었어……
아직도 기억해, 그것은……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자신의 망각이 시작됐음을 알게 된 이후, 횃대나무의 오두막에서 도망쳐 내스티의 흔적을 따라 이곳저곳 전전하다 컬럼비아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반년이 훌쩍 넘어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밴시에게 이건 너무나도 긴 임종 여정이었다.
비록 이 재회가 그녀의 뜻대로 전개되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지탱하던 집념마저 사라지자, 죽음은 결국 그녀를 향해 덮쳐왔다.
베일라의 머릿속에서 무수히 많은 장면의 색이 바래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스티의 눈 앞에서는 선명해지고 있었다.
밴시는 손에 든 노를 오랫동안 젓지 않았다.
그녀는 슬픈 탄식을 들었다. 한때 함께 하나의 소망을 그렸던 전하께서,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밴시는 한참 동안 횃대나무 아래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녀는 3달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동족이 망각 속에서 비워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밴시는 허름한 오두막 바닥에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는 과거 자신을 도와준 한 가고일을 위해 장례를 치르겠다고 약속했지만, 눈앞에 남은 건 이미 오래전에 돌로 굳어버린 꼬리의 끝자락이었다.
밴시의 슬픔과 안타까움은 끝없이 이어져, 마치 긴 눈물의 강처럼 내스티 곁을 흘러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사라진 뒤 남은 것은 짧고도 가벼운 단편 한 장면뿐이었다.
밴시는 얼마 전 협곡으로 데려온 아이를 재우고 있었다.
오랜 친구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피로가 가득했지만, 막상 입을 열면 온통 그 아이의 귀여움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밴시 또한 한때는 아이였다.
그녀는 이제 막 눈을 떴고, 대지를 향해 첫 시선을 보냈다. 그곳이 좋은지 나쁜지도 알지 못한 채.
하지만 내스티는 분명 그녀가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시간은 그렇게 밴시를 지나갔고, 마치 안개 호수의 수면을 스치는 바람처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베일라는 그렇게 허공에서 사라졌다.
이윽고 잎사귀 하나가 나플나플 떨어졌다.
내가 당신을 받아줄게, 내가 당신을 기억할게……
어머니.
내스티는 살포시 그 잎사귀를 받았다. 마치 예전에 어머니가 나무 아래에서 잎을 따 주던 그때처럼.
……미소를 위한 반주라면, 굳이 골피리를 사용할 필요도 없어.
그녀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그 잎사귀를 불기 시작했다.
풀피리의 선율은 마치 비단실처럼 내스티의 일생에서 가장 부드러운 주문을 엮어냈다.
편히 잠들기를.
야라 씨, 우리 내기할까요?
제 비서 파바르 아시죠? 아주 진중해 보이는 친구 말입니다. 그 친구가 방금 풍선을 나눠주고 나서 하늘 테마주를 얼마나 샀을 것 같습니까?
한 주도 못 샀을 겁니다. 올 때 보니, 줄이 증권 거래소 입구부터 두 블록 밖까지 늘어서 있더라고요.
특별구에서 이런 열기를 마지막으로 본 건, 국방부가 볼리바르에 파병을 결정한 해였죠. 그때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던 선인장 모자, 지금도 제 사무실에 있습니다.
모두가 그 모자를 쓰고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와, 특별구의 혈관을 초록빛으로 물들였죠.
그 모자를 쓰는 사람을 못 본 지도 한참 되었네요.
로버트 매케슨과 그의 '볼리바르인으로부터 볼리바르를 구한' 위업이 저녁 라디오의 웃음거리가 된 이후, 세금이 대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다들 머리에 프로펠러를 쓰고 있죠.
파란색, 프로펠러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자. 솔직히 말하자면, 좀 시끄러워요.
더 고급스러운 버전도 있다더군요. 돌기 시작하면 누구나 다 아는 그 국민 록 음악이 재생된답니다.
……
저는 《테라가 보우하사》, 《66번 항로》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노래는 《굿나잇, 아크 1호》가 될 줄 알았는데.
결국, 《굿나잇, 크리스틴》이 되었더군요.
미래에 대한 컬럼비아인들의 열광적인 신념은 영원히 변하지 않지만, 그들이 따르는 대상은 어느새 바뀐 것 같습니다.
애초에, '우상'이 되는 건 크리스틴의 본의가 아니었어요.
저녁 라디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도 국방부의 본의가 아니죠.
술잔을 부딪치며 국방부의 실패를 축하할 때, 우리 중 아무도 이런 생각은 못했죠. 볼리바르에서 트리마운츠에 이르기까지, 신뢰를 잃은 게 사실은 국방부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요.
치즈 마카로니로 가득 찬 커다란 냄비를 둘러싸고 저녁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은 국방부, 연합 의회, 내각을 따로 구분하진 않을 테니까요.
……
부통령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전설, 기적 같은 것에 더 감화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기적을 낳은 그 땅으로 시선을 돌려야 할 필요도 있죠.
'컬럼비아' 그 자체에.
드디어, 우리는 그토록 기대했던 '프로펠러 파라다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2년 전의 그날 밤부터 오늘까지, 우리는 매일 그 모습을 상상했고……
조금 전의 가지런하고 일사불란한 공중회전은, 아무리 평화로운 시대라도, 아무리 부유 캡슐을 운전하더라도, 우리 에이스 파일럿들의 기량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
지금, '프로펠러 파라다이스'는 컬럼비아가 그려온 꿈의 결정체와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들을 통해, 우리에게 선보여……
우리에게 증명……
우리에게 선고……
……
………
침묵.
모든 매체, 모든 채널에서 흘러나오던 감정 가득했던, 허스키했던, 날카로웠던, 두꺼웠던 목소리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에 빠졌다.
거리를 가득 메운 기업가, 투자자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 역시 순식간에 침묵에 빠졌다.
그렇게 몇 분 동안, 거대한 맥스 컬럼비아 특별구에는 사람들이 쓴 모자의 프로펠러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스르르, 스륵스륵, 마치 잎사귀가 떨어지는 것 같은 이 소리는 특별구 수백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진 성대한 추락의 유일한 반주였다.
……“기적을 낳은 그 땅으로 시선을 돌려야 할 필요도 있죠.”
'컬럼비아' 그 자체에.
테러일까요?
계획된…… 테러입니다.
현장 조사팀이 방금 확인한 결과, 폭발은 일반 부품으로 위장해 반입된 아츠 무기에서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 출처는 여러 핵심권 국가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중에는……
기사도 정신과는 이미 작별한 카시미어와 예로부터 아츠와 함께해온 라이타니엔이, 그들의 치욕스러운 수법을 우리에게 사용했습니다.
오늘날의 컬럼비아에 '진보'의 목소리는 없습니다. 우리의 80여 년의 역사에서 오늘은 틀림없이 가장 어두운 날입니다……
컬럼비아가 제 발언을 기다리고 있군요.
전 이렇게 말해야겠죠. “그들이 파괴한 건 사이언스 파크 하나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컬럼비아인의 꿈과 열정을 파괴했습니다.”
“이런 비열하고 무도한 테러 행위는 우리의 눈부신 성취를 시기하여 우릴 겁주고 위축시키려는 시도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할 것입니다. 컬럼비아는 쓰러지지 않을 겁니다. 그 어떤 음모도 대지 서쪽의 불과 별이 영원히 빛나는 것을 막지 못할 겁니다.”
그러면, 컬럼비아인들이 다시 세금을 대포로 만드는 데 동의할까요?
사람들은 '프로펠러 파라다이스'에 쏟아부은 것들…… 하늘 테마주, 프로펠러 모자…… 그 모든 것을 '방패와 검'으로 바꿀 것입니다.
짙은 연기가 걷히고 나면, 그 텅 비어있는 하늘은 그 어떤 광고 문구보다 더 강렬하게 사람들의 신경을 자극할 겁니다.
컬럼비아 황야의 바람은 한 번도 멎은 적이 없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바람은 '프로펠러 파라다이스'를 뒤덮은 연기와 구름을 가차 없이 몰아냈다.
화려한 추락이 끝난 후, 구름 위의 하늘은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그러나 텅 빈 건 아니었다.
설마 제 눈에 뭐가 들어간 건가요?
저도 봤습니다, 부통령님.
수백만의 특별구 시민들도 보았을 겁니다.
거대한 열기구와 복잡한 프로펠러를 떠받치던 부유 플랫폼은 추락했고, 모양도 기능도 다양한 부유 캡슐도 추락했다.
부유층을 하나로 연결하던 케이블 시스템은 수백 개의 캡슐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땅과 하늘의 접시형 고탑을 연결하던 고공 엘리베이터도 붕괴했다.
그러나 단 하나뿐인 부유 시설이 두툼한 구름층을 뚫고 컬럼비아의 푸른 하늘로 떠올랐다.
……
……
부통령님, 메이랜더에서 온 정보입니다.
방금, '프로펠러 파라다이스'는 특별구 쪽으로의 접근을 멈추고, 남동쪽 국경 지대로 방향을 돌려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목적은 컬럼비아를 탈출하려는 것 같습니다. 메이랜더는 해당 행위를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 국경 지대를 지키는 기동 기병부대가 '프로펠러 파라다이스'를 향해 진군 중이며, 가능한 진행 경로를 모두 차단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하늘 위에 있는 정체불명의 부유 시설입니다. 특별구 항로에 배치된 수성포가 이미 조준을 마친 상태입니다.
부통령님, 연설이 곧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부통령님께서 저 시설을 뭐라고 정의하실지 듣고 싶어 합니다.
국방부는 즉각 발포를 건의했으며 입장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메이랜더는 해당 시설의 '생존' 사실을 중심으로, 다른 형태의 선전을 펼칠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에 수반되는 위험성도 지적했습니다. 결국 저 시설 역시 라인 랩의 작품이니까요.
저들이 움직이기 전에, 저 부유 시설을 먼저 자세히 보고 싶군요.
저건 '나무'인가?
네, '나무' 맞네요.
야라 씨, 라인 랩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군요. 당신은 저 나무 모양의 시설이 뭔지 알고 계십니까?
저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부통령님. 이곳에서의 제 역할은 부통령님께서 라인 랩 때문에 크게 화를 내실 때 가벼운 농담이나 던지는 정도겠지요.
하하, 상관없습니다.
저 나무는 곧 사람들의 눈에 날지 못하는 풍선이 될 겁니다. 원래 무엇이었는지는 상관이 없겠죠.
국방부의 생각대로라면, 저 '나무'는 기사에게 살해당한 아기, 위치킹에게 잔혹하게 죽임당한 사절 같은 게 되겠죠. 나무의 추락으로 사람들의 분노는 절정에 달할 겁니다.
메이랜더가 말한 가능성대로라면, 저 '나무'는 컬럼비아 정신을 잇는 새로운 상징이 될 것이고, 그 실루엣은 향후 10년간 생산되는 모든 모자에 찍힐 겁니다.
그런가요? 저한테는 그냥 '나무' 그 자체로만 보이는데요.
저 파울비스트들을 보셨습니까? 나무 위에서 털을 다듬고, 부리를 갈고 있더군요.
파울비스트들은 이미 나무를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무로요.
컬럼비아 전체가 상처를 입었는데, 날아다니는 나무라니요? 사람들이 저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해할 필요 없습니다.
부통령님께서 젊었을 적 수업을 빼먹고 구경하러 갔던 황야의 이동식 채굴 플랫폼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요.
그때는 알고 계셨나요? 거기에 타고 있던 이들이 자신감 넘치던 개척자들이었는지, 아니면 막다른 길에 몰린 파산자들이었는지? 물건을 가득 싣고 오는 길이었는지, 아니면 목적 없이 표류하고 있었는지?
……하하하.
저는 그날 정말 시험을 보고 싶지 않았고, 그 이동식 채굴 플랫폼이 마침 석양을 쫓아가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석양을 쫓아가는 채굴 플랫폼, 하늘을 나는 나무.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부통령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야라 씨, 저는 컬럼비아의 부통령입니다. 제겐 저의 입장과 책임이 있습니다.
더는 예전처럼 수업을 빼먹고 석양을 좇아가는 이동식 채굴 플랫폼을 구경하러 갈 수 없겠지요.
하지만……
그 일 덕분에 제가 처음으로 컬럼비아라는 땅에 애정을 갖게 된 건 사실입니다.
만약 컬럼비아의 새로운 시대를 길러 낼 토양이 저 하늘이라면……
나무 한 그루를 품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