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3추락 보호
연로한 밴시 손님은 내스티와의 과거를 희미하게 떠올리며 라인 랩 생태원을 향해 걸어간다. 한편, 펀은 머시아의 말을 듣고 귀빈실로 가서 단서를 찾던 중, 그곳에 감금된 오클리를 발견하고, 두 사람은 함께 탈출한다.
대접해 줘서 고마워.
천만에. 요즘 같은 때에 밴시를 만나기 쉽지 않은데, 오히려 내가 더 기쁘지.
왜 기쁘다는 거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나나 우리 가족이 생을 마감하게 되면, 너한테 엘레지를 부탁해도 되니까.
카즈델은 여전하지만, 밴시는 좀처럼 오질 않잖아.
너희들의 인도가 없으면, 죽은 동포들도 살카즈의 영혼을 찾지 못해.
미안하네.
내가…… 최선을 다할게.
하하하, 농담이야. 이곳에 찾아온 건 그 '횃대나무'를 치료하기 위해서겠지?
이게 그 나뭇가지인가?
주문으로 해석을 시도했지만, 시들어가는 원인을 찾을 수 없었어.
다행히, 한 친구가 너처럼 초목에 정통한 토석의 아이를 소개해 주더군. 이건 밴시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존재야, 그러니까 부디……
도와주지. 우선 흙을 좀 준비해야 해……
미안한데, 뒤뜰에서 쟁반 하나만 가져다주겠나? 채소를 훔치러 온 파울비스트가 있으면 그냥 쫓아내면 돼.
“물러가라.”
파울비스트들은 놀라 사방으로 날아갔지만, 망가진 텃밭은 좀처럼 평온을 되찾지 못했고, 채소 모종 한 포기가 베일라 눈앞에서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윽고, 먼지투성이 잎사귀 사이로 나뭇가지처럼 생긴 뾰족한 검은 뿔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채소를 훔치러 온 파울비스트'…… 인가?
꺼져. 안 그러면 네 목을 비틀어버린다.
그렇게 고함치며 겁주는 건, 목에 좋지 않아.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아이를 해칠 생각은 없으니까.
어린 밴시는 잎사귀 뒤에서 머리를 내밀더니, 반쯤 뜯어 먹은 채소잎을 저도 모르게 등 뒤에 숨겼다.
내 채소도 넘보지 마.
……그게 정말로 '너'의 채소라면.
손에 든 건 뭐야?
베일라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어린 밴시는 그녀의 손에서 횃대나무 가지를 낚아채, 입에 넣고 씹으려 했다.
퉤. 그냥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평범한 나뭇가지잖아. 냄새도 고약해.
배고프니? 잠깐만…… 안개 호수 근처의 이슬잔풀이 막 익어서, 오기 전에 그걸 따다 과자를 좀 만들었는데……
차라리 시체에서 먹을 걸 찾는 게 더 낫겠다. 그만 좀 따라올래?
(위협하듯 으르렁거린다)
……
……안 무서워? 이런 소리에는 덩치 큰 용병들도 벌벌 떨던데.
그건 밴시의 소리잖아. 우리 종족의 목소리지.
밴시의 노래에서 그 음을 듣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마지막으로 그 소리를 냈던 사람은 몇 년 전에……
……네가 바로 그 아이구나.
이 소리를 가르쳐 준 사람을 알아?
하지만 당신은 처음 보는데.
우리는 이제 카즈델에 거의 오지 않아. 우리는 머나먼 협곡에 살고 있단다. 커다란 나무가 잔뜩 자라고, 열매가 많이 열리는 곳.
밥을 얻어먹는 건 힘들어. 맞을 때도 있고.
만약 네가 말한 그곳에, 정말 열매가 공짜로 열린다면…… 그 대가는 뭐지?
……역시 총명한 아이구나.
나랑 같이 돌아가지 않을래? 너는 그곳에 속하니까, 분명 그곳을 좋아할 거야.
네가 그곳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왜 믿어야 하는데?
네 이름은…… 내스티 맞지?
……!
저쪽에…… 밴시의 기척이? 그리고…… 뭔가가 시들고, 썩어가고 있는데?
안 돼…… 내스티, 너 설마……
같은 전철을 밟을 셈이야?
고든 장관님, 라인 랩 인력은 전부 생태원에서 철수했습니다. 내스티와 몇몇 연구원은 자료 정리 중인데……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왜, 즐겁나? 우리의 원래 계획은 생태원 전체를 날려버리는 게 아니야.
말씀하셨잖습니까. 그 가이드가 밴시를 아주 잘 아니까, 이번 기회에 내스티와 가까운 사이라고 꾸민 뒤, 가짜 신분을 폭로하면…… 일거양득일 거라고.
애초에 치밀하다고 하기는 어려운 계획인데다, 마침 생태원에도 사고가 발생했으니, 이참에 라인 랩의 점검을 중단시키는 게 그림상 더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림상 더 자연스러워? 그럼 말해봐, 그 빌어먹을 가이드는 지금 어디 갔지?!
그건……
내스티의 능력과 일 처리 방식이라면, 생태원에 이런 큰 허점을 만들 리 없어. 더군다나 전시회가 코앞인데 라인 랩이 전시품으로 모험할 리도 없고.
그 가이드는…… 경보가 울리기 전부터 보이지 않았습니다!
틀림없이 그 녀석이 한 짓이야.
연구원 몇 명을 내쫓는 걸로는 부족해. 내스티가 이미 내 계획을 눈치챘을 가능성이 커. 나머지는 증거야…… 절대 손에 쥐여줄 순 없지.
부하들에게 전해, 해 지기 전에 반드시 펀을 찾아내라.
네!
진정해, 펀. 손님이 제 발로 나갔을 수도 있잖아……
아니야. '프로펠러 파라다이스'에 온 이유까지 잊어버린 사람이, 어디로 갈 수 있겠어?
만약, 스스로 나간 게 아니라면……
그렇다면 누군가가 데리고 나간 거겠죠.
누구야!
펀 씨.
네가…… 왜 여기에?
다들 뭐 하고 있어요! 전시회에 내보낼 실험종부터 빨리 옮겨 심어요! 저게 우리가 가진 마지막 묘목……
겨우 5분 만에…… 전부 말라 죽다니?
머시아는 손을 뻗어 생태원 중앙의 말라버린 나무를 만졌다. 그러다 시선이 닿는 높이에서 자그마한 구멍 하나를 발견했다.
자연적으로 생긴 구멍…… 은 아니네. 이건, 접속 포트인가?
시들어버린 나무, 나무에 뚫린 구멍, 설비에도 고장은 없고…… 말해 봐, 네 몸에 꽂혀 있던 그 '나뭇가지'는 뭐였지? 그건 어디로 갔어?
……
펀 씨!
지금 들고 있는 그 골필, 생태원 나무에서 떼어낸 거 맞죠?
그건 투박하고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아, 외부인은 그게 생태원 전체를 작동시키는 '열쇠'라는 걸 몰라요. 당신도 고의로 그런 게 아니겠죠.
……고든 장관의 경비들이 벌써 문밖까지 들이닥친 거야?
아뇨, 저 혼자예요. 펀 씨, 저는 이번 생태원 사고가 당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슨 말이야……?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게 많지만, 당신이 그 정체 모를 밴시 손님을 도와주겠다고 한 순간부터, 고든 장관은 라인 랩을 공격할 계획을 짜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니면,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했거나……
지금 자기 상사를 의심하는 거야? 하지만 고든 장관이 컬럼비아는 착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컬럼비아에서 가장 상대하기 쉬운 것도 착한 사람이다.” 이런 말도 했죠.
그럼 내 손님은……
장관님의 사무 구역 밖에 특별한 '귀빈실'이 한 줄 있는데, 그쪽으로 가서 확인해 보세요.
부디 그 손님이 그저 바람 좀 쐬러 나간 것이길 바라죠, 진심이에요.
……
기가 막히네요. 이건 분명 고든의 짓이에요!
엔지니어링 점검 명단에 손을 댄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생태원을 망가뜨리고 라인 랩의 전시 구역까지 봉쇄하다니…… 그다음은 뭐죠? 우리를 '프로펠러 파라다이스'에서 전부 내쫓겠다는 건가요?
우리 시스템 하드웨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그 인간이 사람을 시켜 주임님의 골필을 훔친 게 분명해요.
그 녀석의 일 처리 방식은 아니야.
왜 도둑놈의 심보를 헤아리려고 하세요?
형식적인 말만 할 때를 빼면, 고든은 애초에 우리랑 같은 규칙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 파크의 다른 기업들도 녀석과 마찬가지고.
우리는 차단층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당연히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죠.
탈락한 과학기술 기업은 무수히 많지만, 로비에 민원이 접수되는 일은 거의 없어요. 왜겠어요?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시대에서, 이 사이언스 파크 사람들 모두가 더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더 존중받아야 한다는 공동 인식을 갖고 있으니까요.
고든이 우리 실험을 고의로 방해한 건 공동 인식을 어긴 거예요. 그럼 마땅히……
규칙에 얽매이긴 싫은데, 규칙을 이용하고 싶다?
너의 그 말은 라인 랩이 그렇게 높은 곳에 설 자격이 없다는 걸 충분히 증명하고 있어.
네……?
다들, 하던 일을 잠시 멈춰 봐. 오늘 일어난 사고와 관련된 후속 조치를 알려줄 테니까.
배양팀 연구원들과 여러 차례 확인해 봤는데, 생태원에 있던 교목 72그루, 식물 묘목 350개, 그리고 이제 막 발아한 씨앗 약 1000개가 전부 말라 죽었어.
생태원의 사고 조사는 파크의 경비대가 전담할 거야. 조사 기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전시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생태원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는 건 분명해.
그래서 선임 연구원들은 나랑 함께 사고 보고서를 정리할 거고, 나머지 사람들은 잠시 휴가를 즐겨도 좋아. 다른 질문 있어?
내스티 주임님, 전에 이 생태원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말씀했잖아요. 고리형 실험실에서 온 데이터가 응축된 성과라고 했잖아요.
그렇다는 건, 우리가 스텔라리아의 마지막 유산조차 지켜내지 못했다는 뜻인가요?
……
해산.
……
사무 구역 밖의 귀빈실이라…… 여기네.
머시아도 그저 의심만 할 뿐이고, 그것만으로 고든 장관이 그랬다고 단정하는 건…… 일단 손님을 찾아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어딜 도망쳐, 때려죽인다!
방안에 사람이 있네?
*컬럼비아 욕설* 하루 종일 질질 짜고만 있네. 전시회가 끝날 때까지만 얌전히 갇혀있는 게 어렵나?
아이고 머리야, 담배 한 대 피우면서 머리나 좀 식혀야겠다.
……
제발 저 좀 보내주세요. 고든 장관님의 실수는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을게요……
네가 왜 여기 있어? 눈 좀 떠봐, 오클리!
너는, 짝퉁……
예의는 갖춰줄래? 내 이름은 펀이야.
고든 장관이 너에게 엄청난 보상금을 주고 잘 대접할 거라고 했는데, 대체 왜……
감금도 대접이라고 할 수 있나?
네가 내 신분만 사칭하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어!
뭐? 그날 밤,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나한테 네 단말기 번호랑 이력서 받아달라고 매달린 게 누군데. 뭐라고 했더라? 사랑이 고프고, 그리고……
됐어, 됐어, 그만해!
하아, 운도 없지……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사이언스 파크에 외부인이 스며든 건 중대한 과실이니까, 저들이 내 입을 막으려는 거야.
그러는 넌, 아까 경비들이 오늘 고든 장관이 사고만 치는 짝퉁을 처리할 거라 하던데…… 너 도망친 거야?
……그런 거였구나.
하아, 우린 이제 살아서 여길 나갈 수 없는 걸까? 미래의 생활이 어떤 건지 구경하려고 왔는데, 이래서는 미래조차 없어지게 생겼어……
저기 정품, 너 혹시 내 여행단에 들어올 생각은 없어?
뭐?
내가 아무도 모르게 들어왔다는 건, 당연히 너도 무사히 내보낼 수 있다는 뜻이잖아.
네가……?
이런 빌어먹을, 담배 한 대 피우고 온 사이에 한 놈 더 늘었네?
좋아, 그럼 둘 다 여기서 못 나간다!
하, 평온하게 끝낼 수는 없겠네……
짜, 짝퉁, 방금 한 말 책임지는 거지? 내가 네 여행단에 들어갈 테니까, 빨리 여기서 데리고 나가 줘!
좋아, 후회하기 없기다. 나는 죽음의 황무지도 3번이나 드나든 몸이라고……
허세는 나중에 부리고, 일단 눈앞의 저 덩치부터 해결해! 젠장, 나는 아직 손이 묶여 있다고……
걱정 마, 훌륭한 가이드가 손님을 번거롭게 할 리는 없잖아?
자자자, 펀 여행단에 들어온 걸 환영해. 참고로, 지금부터 약간의 소음이 울려 퍼질 수 있어.
그러니까 귀를 잘 막거나, 나한테서 조금 떨어져 있어. 그럼, 출발한다!!!
크윽……
빨리 가자!
*컬럼비아 욕설* 쫓아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