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1고함 속에서
노시스는 라인 랩 관측소를 찾아가 재앙의 원인을 묻는다. 엘레나는 재앙 발생 직전의 관측 기록이 조작된 사실을 발견하고, 연구원 캐롤린은 행방이 묘연해진다. 뒤이어 분노한 쉐라그 민중이 관측소를 포위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뮤엘시스, 노시스, 사일런스, 사일런스 더 패러디그매틱, 아스트젠 더 라이트체이서
쉐라그-라인 랩 관측소 2달 전
와…… 정말 빨리 지었네. 이만한 규모의 관측소를 이렇게 빨리 짓다니……
이 정도 공사 규모면 비즈니스과의 출혈이 장난 아니었을 것 같은데.
쉐라그 관측소 안건이 위원회 표결을 통과하자마자 금융 기관 수십 곳에서 찾아왔어.
경비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걱정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었지.
사일런스, 사실은…… 나는 위원회가 이 안건을 이렇게 쉽게 통과시킬 줄은 몰랐어.
……나도 걱정했어. 나는 아직도 라인 랩의 '별깍지' 연구 진전 속도가 많이 빠른 편이라고 생각하거든. 아직 우리가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잠재적 문제도 많으니까.
하지만 깨달은 것도 있어. 내가 기대하는 안정적인 상황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거.
어떤 순간이 오든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건 사람뿐이더라고.
그럼 난 네 믿음에 고마워해야겠네, 사일런스 위원.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게 부디 가치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어……
물론이지. 라인 랩에도 이 관측소는 하나뿐인 기회잖아.
별깍지 연구도 그렇지만, 쉐라그의 저농도 오리지늄 환경도 접하기 힘든 연구 환경이야. 아, 그리고 마리암! 걔도 예전부터 카란 설산에 와보고 싶다고 했어.
퍼디낸드도 관측소 설립 통보를 받고 2주 만에 관측소 핵심 에너지 우물의 에너지 공급 방안을 내놓더라니까.
하지만 그 후에 또다시 본인의 이론 연구에 빠지는 바람에, 구현 작업은 에너지과의 엘레나가 다 맡게 되긴 했지.
……현장 조사도 조사지만, 쉐라그 쪽과도 잘 지냈으면 좋겠어.
그 부분은 학자들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 일인데 말이지.
관측소의 정문이 바깥에서 열리더니 누군가가 어깨 위에 쌓인 눈을 털고 안으로 들어왔다.
노시스, 또 만났네.
정기 방문. 관측소 공사에 도움이 필요하진 않은지 확인하러 왔다……
하지만, 진행이 아주 잘되고 있는 것 같군.
노시스가 위를 올려다봤다. 라인 랩 관측소의 매끈하고 탁 트인 천장에 은은한 빛을 내는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다.
라인 랩과 카란 무역회사가 손을 잡고 놀라울 만큼 짧은 시간 안에 지은 견고하고도 눈부신 소형 전당이었다.
쉐라그의 민가와 비교해 특이하고 선도적인 외관이 미래에서 온 구조물 같은 느낌을 줬다.
카란 무역회사는 라인 랩 관측소 프로젝트에 최대한 협조할 예정이다. 각자 업무 외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 또한 협조할 생각이고.
라인 랩이 합의한 조약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다들 쉐라그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을 거다.
……호의 고마워, 노시스 씨.
라인 랩은 과학 연구 회사라, 과학 연구 외의 다른 목적을 가질 이유가 없어. 조약을 깨뜨릴만한 사유는 우리한테 없을 것 같은데.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국제 협력은 테라 전역을 다 뒤져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첫 사례인 만큼 여러 난관이 있겠지……
우리가 과학 연구 정보와 관련해 최소한의 투명성만 유지한다면, 트리마운츠 같은 뜻밖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는 것은 강조하겠다.
……
참! 성녀님도 관측소에 와?
관측소 준공식 때는 성녀님이 참여할 예정이다…… 성녀님께 따로 전할 말이라도 있나?
아,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지난번에 성녀님을 뵈었을 때만 해도 분명 협력 프로젝트에 반대했는데, 나중에 갑자기 동의했잖아.
그래서 왜 마음을 바꾼 건지 묻고 싶었어.
성녀님은 업무 때문에 바쁘다. 만약 성녀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쉐라그의 의식에 참여하는 게 좋을 거다…… 물론 관심이 있다면 말이지.
성녀님과 만주원의 장로들이 너희를 기꺼이 맞이할 거다…… 만약 쉐라그의 의식에 참여할 생각이 있다면, 내가 대신 일정을 잡아주지.
진짜 세심하네. 정말 이 일에 딱 어울려~
이 정도 손님 접대는 기본이다. 쉐라그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쉐라그에서 한동안 머물게 될 텐데, 그동안 문제없이…… 즐거운 협력이 이루어졌으면 좋겠군.
신경 써줘서 고마워. 노시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번 협력이 이렇게 순조롭지는 않았을 거야.
아니, 도운 게 아니다. 이건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한 일이었다. 뮤엘시스.
카란 무역회사는 쉐라그의 산맥을 연결해 라인 랩에게 편리한 길과 이동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리고 라인 랩은 약속대로 연구를 통해 알아낸 현지 생태계 데이터를 부분 공유하고, 현지 약물 연구에 협조하는 거지.
물론, 세부적인 계약 내용에 관한 건, 피츠로이 주임이 카란 무역회사와 자세히 얘기할 거야.
나는 한낱 연구원이라 사회생활에 서툴러. 라인 랩이 온전히 우호적인 마음으로 이 신성한 땅에 왔다는 것만 믿어줬으면 좋겠어.
최소한 그건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둘은 '우호 협력을 펼쳤다'라는 뉴스 기사에 실릴만한 사진처럼 악수를 나누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계약만 잘 지킨다면, 우리는 계속 '친구'일 테니까.
엘레나 팀장님, 카란 무역회사 대표님이 오셨습니다.
최대한 빨리 라인 랩 대표님과 자리를 갖고 싶다고 하시는데요.
왜지? 최근에 카란 무역회사와 따로 회의 일정을 잡은 적은 없는데?
……재앙 때문인가?
네……
재앙의 원인에 대해서 라인 랩과 얘기를 하고 싶다고 하시네요. 관측소의 관측 데이터라도 제공해달라고 하셨어요.
알겠어……
참, 캐롤린 선배는? 관측 데이터는 선배가 맡고 있지 않아?
그것도…… 팀장님에게 여쭤보고 싶었던 겁니다.
어제 오전부터 선배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뭐……?
갑자기 호위병을 동원해 관측소를 포위하고, 연구원들을 모두 로비로 소집해 '조사'를 받으라니.
이게 카란 무역회사가 친구를 대하는 방식인가, 노시스?
넓은 로비 안쪽에 연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반대편 정문 밖에는 노시스가 대동한 실버애쉬 가문의 호위병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강 때문에 나뉜 양쪽 기슭처럼, 두 집단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경계선이 생겼다.
이건 '부탁'이 아닌 '요구'다…… 결론적으로 연구원 전체가 다 모이지도 않았군.
이해가 안 되는데, 노시스. 지금 누굴 찾고 있는 거지?
……
얼마 전 쉐라그 군사 금지구역에 한 연구원이 나타났다.
노시스가 연구원들을 훑어보며 1명씩 얼굴을 확인했다.
거대한 체구의 호위병들은 말없이 서 있었고, 연구원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서로 시선을 교환하기만 했다.
……그런데, 그 연구원은 여기에 없군.
아무래도 라인 랩이 각 연구원의 행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은데.
노시스, 라인 랩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고 의심하는 거라면, 정식 절차를 밟아서 소송을 걸든가 해.
오늘처럼 이렇게 갑작스럽게 굴면, 미안하지만 우리도 조사에 협조하기 힘들어.
물론…… 오늘 내가 여기에 온 건 다른 이유도 있다.
다들 이미 들었겠지만, 몇 시간 전에 쉐라그에 재앙이 일어났다. 쉐라그에선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일어난 적 없는 일이지.
쉐라그는 공포에 지배당하고 있다. 현재 쉐라그에 있는 모든 새로운 것들은 민감해진 사람들을 쉽게 자극하지……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을 거다.
노시스 너는 '민감한' 사람들 중 하나는 아닐 텐데?
……
이번 일에 나, 또는 카란 무역회사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해명을 기다리고 있다는 거다. 나도 너희와 함께 재앙의 원인을 찾고 싶은 생각이다.
그렇다면 실망하게 될 거야, 노시스 씨.
방금 관측소의 모든 관측 데이터를 확인했어. 재앙 발생 전 72시간 동안 그 어떤 데이터에서도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어.
그 말은, 이 땅에 천 년 만에 재앙이 발생했는데, 관측소에서는 그 어떤 이상 징후도 포착하지 못했다는 건가?
맞아. 관측 데이터상으로는 그래.
엘레나?
괜찮아. 노시스 씨가 궁금해하는데 답해줘야지.
이 관측소를 지은 가장 큰 이유는 하나야. '별깍지'를 연구하는 거지, 다른 이유는 없어.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로 보면, 별깍지와 재앙 사이의 연관성은 전혀 없어.
마찬가지로, 이곳에 관측소를 짓는 바람에 쉐라그에 재앙이 발생했다는 주장은 신빙성 없고 주관적인 억측이야.
(잠…… 잠깐만! 엘레나, 지금 같은 때 싸우자는 식으로 나가면 곤란해!)
미안하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몇 마디만 더 할게.
……좋아, 얘기해라.
소녀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눈빛 역시 올곧았다.
그렇다면 좀 더 명확하게 말할게.
쉐라그의 신앙적 관점과는 좀 다르지만, 과학적 상식으로는 '갑자기 닥친' 재앙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아.
쉐라그의 오랜 평온, 그리고 그 평온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야말로 '비정상'이야.
넓은 로비가 정적에 빠졌다. 긴 복도 끝에서 엘레나의 말이 메아리치듯 울렸다.
관측소 건축 초창기에, 라인 랩은 재앙 경보 기능이 탑재된 모듈을 구축하는 것도 고려했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험에 대한 과신으로 인해 모듈 구축은 후순위로 밀렸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가 있다면……
라인 랩과 카란 무역회사가 다시 협의해서 쉐라그에 최대한 빨리 재앙경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거야, 이게 제일 시급한 일이야.
……
좋은 의견이군, 에너지과의…… 엘레나.
네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카란 무역회사 쪽에서도 최대한 빨리 재앙경보 시스템 구축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그러니 카란 무역회사에서 관측소에서 측정한 최근 1달간의 데이터 사본을 받았으면 하는데…… 협조할 수 있나?
……물론이야.
잠시만 기다려줘, 노시스 씨.
하아……
정말 몰랐어, 엘레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을 줄이야.
미안해…… 뮤엘시스 주임, 방금은 내가 좀 감정적이었지……
음…… 좀 그렇긴 했지?
조금 화가 나서 그랬어. 왜 어딜 가든지 비과학적인 인식을 위해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한 건지……
가끔은 과학이 사람들에게서 아주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있거든.
우리를 곤란하게 만드는 저 사람들과 상황도 사실은 이 땅의 일부잖아. 우리가 외면해선 안 돼.
사일런스가 자주하는 말이 있지. “과학은 모든 사람을 진지하게 바라봐야 한다.”
알아…… 하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음…… 그 얘긴 나중에 하고, 일단은 필요한 데이터부터 정리하자.
데이터, 데이터…… 정리해도 이상 징후 같은 건……
잠깐…… 이 그래프……
엘레나는 흐트러진 자료를 정리하다가 빼곡하게 채워진 스펙트럼 그래프의 한 곡선 구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말도 안 돼……
왜 그래?
이 관측 장비는 고에너지 빔으로 별깍지에 지속적으로 충격을 줘서 수집한 전자파로 별깍지의 구조를 연구하는 장비인데……
방금 확인해 보니 12월 7일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의 데이터가 4일 동일 시각의 데이터와 완전히 일치해……
아주 특별한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은?
아니…… 이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자연에 완벽히 똑같은 눈송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기 중의 전자파도 시시각각 바뀌거든……
그런데 다른 두 날의 같은 시간대에 1시간 내내 같은 주파수가 나타났다는 건 한 가지 가능성뿐이야……
이 구간의 데이터를 누군가 조작한 거야.
조작한 데이터로 가설을 증명하려 했다는 거야? 조작을 한대도 그건 프로젝트 극 후반부에서나 할 짓인데……
이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이 누가 있지?
12월 7일…… 재앙 발생 하루 전……
내가 기억하기로는…… 캐롤린 선배가 그날 관측을 맡았어.
설마……
금속 벽 너머로 분노에 가득 찬 고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성산을 돌려내라! 쉐라그와 쉐라간드에게 돌려내라!
쉐라간드의 땅에서 꺼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