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1고함 속에서
재앙 발생 직후, 삼대 가문은 구호 작업에 착수하지만, 재앙이 불러온 공포가 사람들 사이로 퍼지기 시작한다. 그때, 엔야는 키야르가 사라진 사실을 알아챈다.
1팀, 물자를 동쪽 공터에 둬라.
페일로쉬 지원 부대와 함께 의료 막사를 세우고 부상자들을 받을 준비를 하도록!
알겠습니다!
2팀, 삽과 수통을 챙기고 역 부근에서 생존자를 계속 수색해라. 샅샅이 잘 살펴서 구조 요청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해.
알겠습니다! 자, 다들 물자를 챙겨서 날 따라와라!
큰 소리를 내는 건 금물이다. 아직 산 위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추가로 눈사태가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찰조가 지금 산 정상으로 가고 있다.
동료들을 믿고, 쉐라간드께서 쉐라그인을 지켜줄 것이라 믿어라.
쉐라간드 신이시여.
……쉐라간드 신이시여.
쉐라간드 신이시여.
시간이 없다. 다들 움직여.
알겠습니다!
사람들의 대답 소리가 차가운 바람에 사라지기도 전에 실버애쉬 가문의 부하들은 눈밭으로 흩어져 각자의 목표 지점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눈사태로 인해 무너져 내린 새하얀 눈이 평화롭던 나날에 선명하게 생긴 상처가 있었다.
여기, 여기 생존자가 또 있습니다!
어이, 버텨! 쉐라그인이라면 이 악물고 끝까지 버텨야지. 잠들면 안 돼!
다리, 다리가……
다리가 안 움직여, 내 다리가…… 윽!
움직이지 마! 후방! 상황은 확인했나? 어떻게 됐지?
파냈습니다! 굴은 다 파냈습니다! 근데 생존자의 다리가 철근에 깔려 있습니다. 이 철근이 부러져 있지 않았다면 의사를 부르는 수밖에…… 아, 잠시만요, 조금 더 파보겠습니다!
후우…… 읏차! 휴…… 다행입니다! 철근이 부러져있어요. 들어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걱정 말라고, 다들 와서 들어 올려!
꽉 잡아. 하나, 둘, 셋!
……하앗!
으윽, 으으으…… 아파……
좋아, 틈이 생겼다. 끌어내, 어서!
제가 붙잡고 있으니 몸을 살살 들어 올리고 밑에 천을 받치세요. 그래요, 조심히, 상처가 벌어지지 않게……
그렇게, 천천히……
좋습니다! 됐어요! 들것, 들것 가져오세요!
비켜주세요! 지나갈게요! 들것 왔습니다!
감정을 억누르고, 절제된 듯한 외침. 구조. 들것. 생존자.
새하얀 눈밭 위, 수많은 이가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다 못해 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굴로, 여긴 잠시 네게 맡기마. 잘 살펴봐,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 절대 포기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십니까?
아크토즈 님…… 남쪽 구조는 다 끝난 겁니까?
아니, 아직이야.
그쪽은 굴로가 하고 있는 중이야, 난 널 보러 왔다.
여기도 나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브라운테일의 지원 인력도 도착했고, 담요와 식량도 많이 왔습니다.
라타토스 부인께서도 오시려고 했던 것 같지만, 시간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 그랬겠지.
다들 알고 있겠지. 오지 않았다고 해서 라타토스를 비난할 사람은 없다는 것을.
*쉐라그 비속어*,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재앙이 일어난 거야!
이번 눈사태는 너무 급작스러웠습니다. 조짐도 없었으니, 다들 대비도 못 했죠.
그래, 바로 그거야. 네게 묻고 싶던 게 바로 그거야!
쉐라그의 규정상, 이 눈사태가 일어난 지역은 페일로쉬의 영지야. 우리는 영지 안의 설산을 관리할 의무가 있지.
그리고, 우리는 적설량을 꾸준히 기록했어. 기록을 여러 번 확인해 봤지만, 분명히 다 정상 범주에 있었다고!
그래서 네게 묻는 거야, 너희 연구소에 설산을 조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사람들은 뭐라고 했지?
연구소라면…… 라인 랩 말씀입니까?
그래. 매일 산을 오르내리며 무슨 첨단 기술 장비를 만지작거리는 사람들 얘기야. 알아낸 게 아무것도 없진 않겠지?
아마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각자 맡은 일이 있었을 테니 설산 연구에만 온전히 집중하진 않았겠죠.
그리고 저희도 눈사태가 발생하고 바로 달려온 거라, 그 사람들이 뭘 알아냈는지는 저희도 잘 모릅니다.
엔시오데스 님께서도 데겐블레허 씨와 사람들을 조사차 산으로 보냈습니다. 아마 곧 돌아올 겁니다.
그렇군……
쯧, 뭔가 찜찜하군. 이 눈사태는 대체 뭐 때문인 건지……
바람이 눈보라를 싣고 울부짖었고, 산처럼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가 서 있는 산기슭 아래, 조용히 우뚝 선 거대한 산봉우리는 그를 작은 돌멩이처럼 보이게 했다.
저건……
눈이 무너져 내린 경사면에서 사람들이 빠르게 내려와 금세 두 사람 곁에 도착했다.
마터호른 님!
어서 엔시오데스 님께 알려야 합니다! 산 위, 산 위에서……
조사 대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가 신고 있는 털 부츠의 밑창이 잿빛 눈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뛰어서 거칠어진 숨소리는 바람에 섞여 불길한 울부짖음이 되었다.
협의안에 대해서는 다들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그럼 이제 세부적인 계약 조건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쉐라그와 카시미어의 연합 광산 세금 문제에 대해……
(작은 목소리로) 사장님, 데겐블레허 씨가 급히 보고할 사안이 있다며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작은 목소리로) 네…… 긴급 사항이랍니다.
긴급 사항이라고?
조사 대원이 눈사태 발생 지점에서 이걸 발견했어.
데겐블레허가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검은 오리지늄 조각 하나가 그녀의 손 위에 있었다.
……쉐라그 산에 있었던 건가?
역 옆의 설산도 쉐라그의 영지라면, 맞아.
노시스와 로도스 아일랜드 사람도 발견했어. 거의 확실해……
데겐블레허는 주변을 살피더니 다른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뒤에야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이번 눈사태, 재앙이었어.
……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지?
조사 대원들은 우리 쪽 사람이라 통제 가능한데, 산 아래에 벌써 감염된 사람들이 꽤 있어.
오래 숨길 수는 없을 거야.
……
마터호른에게 즉시 재앙 피해 현장을 봉쇄하고, 화물을 운송하는 사람들의 접근을 금지하라고 알려. 그리고 산 위에도 검문소를 설치해라.
로도스 아일랜드에 연락해서 감염자에 대한 건 반드시 숨기라고 일러두고, 필요한 지원은 카란 무역회사가 모두 제공하겠다고 전해.
그리고 라타토스와 아크토즈에게 1시간 뒤 재앙이 발생한 기차역에서 만나자고 전해라,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는 것도 함께.
알겠어. 다른 건?
……사람들을 충분히 데리고 곧장 만주원으로 가라.
그리고…… 노시스에게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라인 랩 관측소를 지키라고 일러.
알겠어.
엔시오데스는 옷매무새를 정돈한 후 회의실로 돌아갔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첫 번째, 쉐라그와 카시미어의 연합 광산 세금 문제에 대해……
……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어떤 책에도 그런 예언은 없어요. 쉐라간드께서 어찌 재앙으로 우리를 벌하신단 말입니까? 이건 말도 안 되는 헛소리입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났잖습니까! 쉐라간드가 노하셨고, 우리를 떠난 겁니다!
쉐라간드의 분노가 아니라면 지금 일어난 이 재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죠?
지금 만주원 밖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모두 쉐라간드의 독실한 신자, 쉐라그의 선량한 백성들입니다.
사람들에게 가족의 죽음과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전부 운 나쁘게 일어난 재앙이었다고 말해야 합니까?
지금 민심은 혼란에 빠진 데다, 신앙을 흔드는 소리도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의 신념은 더욱 굳건해야 해요.
이건 쉐라간드께서 내린 시험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내린 시험이죠.
쉐라간드께서 쉐라그를 버리셨을 리가 없어요…… 쉐라간드께서는 아무 이유 없이 쉐라그를 벌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어쩌면 저희가 쉐라간드의 뜻을 거슬러서 이런 일이……
젊은 수도사는 대전 중앙에 앉은 성녀를 바라보다가 씩씩대며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입을 닫았다.
괜찮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세요.
성녀님……
저는 이게 쉐라간드의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이건 경고예요……
만주원 때문일지도 몰라요…… 우리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겠죠.
불신자들이 성산에서 공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허락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끝까지 반대해야 했어요……
그 녀석들이 쉐라간드의 성전을 모독해서…… 그분의 분노를 사지만 않았어도, 쉐라그가 이렇게 될 리가……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지만, 목소리의 떨림은 오히려 점점 잦아들었다. 대전 안도 조용해졌다. 그의 말에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해했습니다.
당신은 성녀인 제가 쉐라간드의 뜻을 거스르는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쉐라그에 재앙이 발생했다고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아, 그게 아니라…… 성녀님, 제 말은……
아뇨, 수도사님의 관점도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 산 아래의 신도들뿐만 아니라 저와 여기 함께 앉아계신 여러분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이 꽤 있을 테니까요.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만주원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여러분 역시 흔들리고 있죠.
팡고트 수도사님과 로노아 수도사님, 두 분 중 한 분은 쉐라간드가 여느 때처럼 우리를 굽어살피고 계시고, 은총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다른 한 분은 쉐라간드께서……
소녀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새하얀 얼굴은 얼어붙은 물처럼 흐트러짐이 없었다.
두 분께서 제게 《쉐라간드》에 나오는 세 번의 '수호'를 읊어주시겠습니까?
……네, 성녀님.
첫 번째 수호, 《쉐라간드》. 7장 9절.
“그분께서 옆에 있는 목동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들의 피난처요, 너희들의 기댈 곳이 될 것이다.”
“나는 숲에서 사냥하고 대지에 씨를 뿌려 너희를 입히고 먹일 것이다. 너희가 얼어 죽거나 굶어 죽게 두지 않으리라.”
“이는 그분께서 우리를 추위와 굶주림에서 보호해 주신 순간이다.”
두 번째 수호, 《쉐라간드》, 25장 17절.
“그리하여 수호자가 군중 속에서 탄생했다. 그들은 일곱 빛깔 구름 속에서 깨어나 눈 녹은 물로 적신 흙으로 높은 벽을 세웠다.”
“이는 그분께서 우리의 터전과 혈육을 지키신 때이자, 우리에게 주신 외적을 막을 기술이다.”
그리고…… 《쉐라간드》, 39장 2절. 마지막입니다.
“그날, 그분께서 군중 가운데서 설교하셨다.”
“나의 눈이 너희를 지켜볼 것이며, 나의 가죽은 너희를 따스하게 할 것이다. 나의 뼈가 너희를 지킬 것이며, 나의 피와 살은 너희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너희는 눈보라의 이치를 깨달았으며,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또한 알고 있다.”
“너희는 쉐라그의 사람이다. 쉐라그의 대지는 이제부터…… 쉐라그인의 손에 맡기겠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대답해 주세요. 《쉐라간드》의 어느 부분에 쉐라간드께서 쉐라그를 재앙으로부터 영원히 지켜주실 거라는 말이 있나요?
설마 여러분이 쉐라간드를 대신해 쉐라간드의 백성들에게 약속이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장내를 가득 채운 수도사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하지 못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향 타는 냄새가 사람들의 코끝을 감쌌지만, 방금의 대화로 숨소리조차 얼어붙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성녀님 말씀이 맞습니다.
재앙이 쉐라그를 덮쳤습니다. 누군가가 재앙으로 인해 죽었으며,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감염됐습니다.
지금 이 소식이 온 히라에 퍼졌습니다. 공포와 불안, 그보다 큰 슬픔과 분노, 이 모든 것들이 쉐라그인의 몸에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해결책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말싸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한 것은 여러분께 혼란과 아집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모두 쉐라간드의 신자이자 말의 무게를 아는 분들입니다. 지금부터 만주원에 계신 여러분은 '쉐라간드의 징벌'과 같은 망언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내일부터 저는 서재에 들어가 경전을 해석하고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전념하겠습니다.
아드소 장로님.
그래.
대장로직을 이어받으셨으니, 제가 장경각에 있는 동안 만주원의 사무를 일임하겠습니다.
신도들을 보듬고, 추모식을 거행하고, 이재민을 구제하고 위령의 경문을 필사해 주세요. 그 무엇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온 마음을 다해 성실히 행해주세요.
알겠네……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쉐라그는 수많은 눈보라와 난관을 이겨내 왔습니다. 만주원은 언제나 쉐라간드의 백성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후우……
그래도 큰 소동이 일어나지는 않아서 다행이네……
소녀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책상에 엎어졌다. 눈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서 있는 소나무 같았던 소녀의 허리가 그제야 힘을 잃고 고꾸라졌다.
정말 모르겠어. 왜 사람들은 신을 소원 기계쯤으로 생각하는 걸까? 왜 세상의 모든 행운과 불행을 신의 탓으로 돌리는 거지?
성녀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나조차도 이해가 안 돼. 왜 하필 이런 시기에 재앙이 일어난 건지……
하아……
키야르 씨, 옷시중을 들 시종을 들여보내 주세요.
장례 의식 준비도 끝났으니 내일부터는 우리……
키야르 씨?
키야르를 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돌아오는 소리는 바람 소리와 장작 타는 소리뿐이었다.
엔야는 고개를 돌린 뒤에야 방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키야르 씨…… 계세요?
늘 그녀의 곁을 따르던 시녀장은 온데간데없고, 엔야의 그림자만이 어두운 방 안에서 타오르는 불빛을 따라 계속해서 모습을 바꿀 뿐이었다.
키야르 씨……?
엔야……
솔직하게 말해다오……
네게는…… 아직도 쉐라간드의 목소리가 들리느냐?
텅 비어 있는 방 안에서 들리는 건, 장작이 타는 소리뿐이었다.
창밖에서 매섭게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는 마치 막막한 신도들이 성산 아래에서 울부짖는 소리 같았다.
엔야는 처음 성녀의 방에 들어왔을 때의 느낌을 떠올렸다.
낯선 방, 새로운 냄새, 눈앞에 보이지만 자신의 이름으로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집. 그때의 엔야도 이 방이 마치 얼음 동굴처럼 텅 빈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엔야는 누군가가 이곳에서 함께 있어 주는 것에 익숙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한 사람, 의지할 수 있는 그 사람.
하지만 지금은……
탁자 위에는 오래된 《쉐라간드》 두루마리가 반쯤 펼쳐져 있었고, 거울 속에는 어쩔 줄 모르는 소녀의 얼굴이 있었다.
키야르 씨……
……약속했잖아요. 갑자기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도대체…… 도대체 무슨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