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5노이즈 화면
호시구마는 모모카의 안내로 잠시나마 모모카의 집에서 몸을 피하며 모모카의 과거를 듣는다. 하지만 모모카의 집에서도 오래 머물 수는 없는 일, 두 사람은 텟사이가 있는 카지마치로 이동하게 된다. 호시구마와 텟사이는 옛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텟사이는 분노를 금치 못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호시구마, 키치세이, 호시구마 더 브리처
내려줘. 직접 걸을 수 있어.
그래.
이…… 이게 뭐야?!
우리 집이 왜 이렇게 엉망이 된 거지…… 킨베에가 정말로 사람을 보냈던 건가?
조심해. 누가 안에서 잠복하고 있을 수도 있어……
모모카는 호시구마의 당부를 완전히 무시한 채, 성큼성큼 창가로 다가갔다.
내 하스……
……케?
잠깐만. 이럴 리가…… 이게…… 어째서……
누가 내 하스케를…… 잘랐지?
잘랐다니?
호시구마는 모모카를 따라 한걸음에 창가로 뛰어갔고, 그곳에서 일렬로 놓인 물건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화분이 있었다.
안에는 식물 줄기의 아랫부분만 남아 있었고, 윗부분은 딱 봐도 누군가가 잘라낸 것이 틀림없었다.
호시구마가 고개를 돌려 쓰레기통을 보자, 시들어 축 늘어진 식물의 윗부분이 그 안에 놓여 있었다.
하스케가 나무였어?
걘 그냥 묘목이야! 내가 잘 돌보지 못해서, 제대로 자라지도 못한 작은 나무라고!
왜 하스케가 이렇게 두 동강 나야 하는 거야?! 왜? 도대체 왜?!
모모카, 일단 진정 좀 해……
막지 마, 난 반드시 하스케의 복수를 하겠어!
왜인지 호시구마가 모모카에게 말을 건넬 때마다, 모모카의 분노는 격해졌다.
몇 마디 후, 모모카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온몸을 떨며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목숨까지 걸 기세였다.
호시구마는 반사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섰고, 침을 삼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건 모모카가 자신에게 달려들 것 같아서가 아니라……
살기,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호시구마는 다시 한 발 뒤로 물러서다가 손에 물병이 닿았고, 컵에 물을 따라 모모카에게 내밀었다.
진정하고, 일단 물부터 조금 마셔.
모모카는 아무 말 없이 화난 얼굴로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호시구마는 종이컵 가장자리에 이빨 자국이 남은 것을 어렴풋이 보았다.
어쨌든 물을 한 잔 마시고 나서야, 모모카는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주 조금.
호시구마, 하스케는 틀림없이 킨베에 부하한테 당한 거야, 그렇지?
……가능성이 높지.
하지만…… 왜?
내가 집에 없다고 하스케를 자르면서 화풀이라도 했던 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지?
쓰레기통을 보니까, 하스케의 상태가 원래부터 별로 좋진 않았던 것 같은데……
모모카가 호시구마 앞으로 성큼 다가섰고, 호시구마는 피하려다 뒤에 둔 물병을 넘어뜨릴 뻔했다.
하스케의 상태는 당연히 안 좋았지! 난 모든 시간을 전부 연예인 활동에 쏟아붓고 있었다고! 하스케의 상태가 안 좋은 게 당연하지 않겠어?!
어?
물론 나도 하스케가 건강하게 쑥쑥 자라서, 계속 분갈이를 해주고 또 해주다가, 나중엔 우리 집에 다 안 들어갈 만큼 커지길 바랐지!
하지만 기획사에서 잔업을 시키면 할 수밖에 없었다고, 집에 오면 새벽 3~4시였지. 마지막으로 물을 준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때가 많았어.
그래도 괜찮았어. 노트에다가 잘 적어두면 물을 얼마나 줄지 계산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기획사에서 출장을 가라고 하던 때, 난 하스케를 데려가겠다고 했어. 근데 나를 바보 취급하면서 비웃었어!
도시 간 네트워크에서 본 블로거들이 가르쳐 준 대로, 흙에다가 안약 병을 꽂아뒀지만 소용없었어.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하스케는 노랗게 시들어 있었고, 몇 번이나 말라죽을 뻔했지!
그럴 때마다 필사적으로 살려냈어. 하스케는 늘 생사의 경계를 오가고 있었다고, 어떻게 잘 자랄 수 있겠어?!
그렇게 소중하게 여긴다는 건……
입 밖으로 가장 먼저 튀어나올 뻔한 말은 '값비싼 품종'이냐는 말이었지만, 호시구마는 곧바로 그 말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거…… 소중한 사람이 준 거야?
……아니. 내가 길에서 주워 온 거야.
주웠다고?
본가에서 미츠쿠에로 왔을 때, 난 본가에서 키우던 클라우드비스트인 '하나마루'를 계속 데리고 다녔어.
하지만 일이 점점 바빠지면서 도저히 돌볼 시간이 없었어. 그래서 결국 클라우드비스트 타워까지 함께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기념으로 비슷한 타워를 하나 샀어.
나도 내가 동물을 키울 시간이 없다는 걸 아니까, 꽃이나 식물을 키우면 되지 않을까 싶었어.
그렇게 하스케를 키우게 된 거야?
아니. 처음에 키웠던 건 '난짱'이야……
열심히 시간 내서 돌보고, 책에 적힌 대로 열심히 보살폈지만, 몇 달도 안 돼서 난짱은……
호시구마는 클라우드비스트 타워 옆에 있는 화분을 바라봤다.
그런데 난짱의 화분에서 작은 싹이 올라왔어. 꽃집 주인한테 물어보니까, 어떤 베리류의 묘목이라며, 분갈이해서 키우라고 했어. 그렇게 베리가 생겼지.
하지만, 어느 날 미츠쿠에에 강풍이 불어 우리 집 창문 유리가 전부 깨져버렸어. 집에 돌아왔더니, 베리는 이미……
난짱, 베리, 마츠마루, 가시가시…… 내가 키웠던 식물들은 늘 별의별 이상한 이유로 죽었어. 가시가시는 윗집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물에 잠겨 죽었다고!
그래서 난 설마 식물과 인연이 없는 건 아닌지 생각하기도 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동물을 키울 수는 없었지, 언제 출장을 가게 될지 모르니까.
하지만 매일 퇴근해 집에 오면, 집은 텅 비어 있었고, 사람은커녕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식물조차 없으니까…… 견딜 수 없었어. 결국 타마사부로가 생겼지.
아, 전자 애완동물 말하는 거야? 그럼 타마사부로는……
수리점에 가서 사장님한테 말씀드렸더니, 그 로봇은 출고될 때부터 메인보드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셨어.
……
하스케는…… 내가 수리점에서 돌아오는 길에 쓰레기통 옆에서 화분이랑 같이 주운 거야.
하스케를 데려오면서 결심했어. 하스케조차 죽는다면…… 식물을 키우겠다는 마음을 접겠다고 말이야.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모모카가 창틀을 따라 하나하나 소개했고, 호시구마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그러다 마침내, 모모카는 마지막 스포츠백을 열었다.
그 안에 있던 건 작은 동물이나 식물이 아니었고, '시노 카즈히코'와 '시노 쿠미코'라는 이름이 새겨진 위패가 2개였다.
……이건?
우리 아빠랑 엄마야.
설마?!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남부 국경에 있는 고카와가 내 본가야.
거긴 별로 유명하지 않은 이동도시고, 카네시로 가문의 구역이야. 크지도 않고 특산품도 딱히 없지. 굳이 찾자면, 플라스틱이랑 화학 공장이 가장 유명해.
……
화학 공장에서 나온 폐수가 물순환 시스템을 오염시켰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수년간 오염된 물을 마셨지. 내가 태어날 무렵에야 그 일이 폭로되었어.
나는 운 좋게도 건강하게 자란 편이었지만, 부모님은 아니었지.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어, 대여섯 살 때부터 이미 안 계셨지. 엄마 혼자서 나를 키운 거야.
아빠에 대한 건 별로 기억나는 게 없어. 그리고 엄마는…… 늘 몸이 안 좋으셨어. 잘 안 보인다거나 손발이 저리다고 자주 불평하셨고, 먼 길을 가면 이유 없이 넘어지기도 하셨지.
카네시로는 이 일을 계속 덮어왔어. 명백하게 아픈 사람들한테는 터무니없이 적은 지원금을 줬고,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사람들한테는 온갖 이유를 대면서 그 사람들 문제라고 했어.
그러다 내가 킨베에 기획사에 반강제적으로 끌려가서 연예인이 됐을 무렵, 엄마의 건강은 심각하게 나빠진 상태였어. 내가 연예인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돌아가셨지.
장례를 치르러 고카와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기획사가 끝내 허락하지 않았어.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을 때라, 내가 고카와 출신인 걸 숨기고 싶어 했거든.
그리고 '시노'라는 성은 내 출신을 떠올리게 해서, 기획사에서 일부러 북쪽 이미지를 주는 '하'를 예명에 넣은 거야.
친척이 대신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주셨지만, 기획사는 내가 돌아갈 수 없는 진짜 이유를 친척들에게 숨기라고 했어.
엄마의 위패와 유골을 미츠쿠에로 보내면서 친척은 나랑 절연했지.
기획사는 기회다 싶었는지 나보고 연예인으로 성공하는 것만이 하늘에 계신 부모님을 위로하는 거라고 했어.
마치 파울비스트를 훈련시키는 것처럼 계속 말했어. 미츠쿠에 그리고 극동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연예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야…… 그게 내 삶의 의미라면서.
나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그 길을 걸었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획사가 옳다고 말하며 나 자신을 속였지.
연예계 일은 내 전부였어. 연예계 활동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아무리 하기 싫어도 했고, 반대로 해가 되는 일이라면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지.
하지만…… 연예인은 정말 너무 힘들어. 매일 마음을 졸이게 하는 기괴한 괴담들이 없더라도 지쳐버린단 말이야.
내 일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일 외의 얘기는…… 누구랑 해야 할까?
그러다…… 그러다 이렇게 돼버렸어…… 뭐 하나 오래 키우지 못하고, 창가에 일렬로 세워둔 게……
웃기지 않아? 뭐든지 키우기만 하면 죽이는 사람이라니.
하뉴 모모카는 홀로 집에 돌아간 뒤, 화장을 지우고 쓰러져 잠들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출근해……
하뉴 모모카는 기획사 사장님 말처럼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어. 연예계 일이 바로 삶의 전부니까.
하지만 하스케는 정말 오래 살았어. 내가 아무리 못 돌봐줘도, 꿋꿋하게 살아남았는데, 이제는…… 이제는!
모모카……
미안해. 네 진짜 이름은 뭐야?
하루카.
아빠랑 엄마는 내가 고카와를 멀리 떠나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셨어. 수도관에서 흘러나오던 건, 아무런 맛은 없지만 치명적인 독과 같은 물이었거든.
그래서 진짜로 엄청 멀리 오긴 했는데, 자유로운 삶은……
……
그렇다면 이제부터 하루카라고 불러야……
아니야. 그렇게 부르지 마. 모모카라고 불러줘. 하뉴 모모카.
미안.
아니야.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싫어하는 게 아니야…… 싫어할 리가 없잖아?
그냥……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탓에,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삶이 없을 뿐이야.
시노 하루카에겐 부모님도, 친척도 없고, 이 이름을 알고 있는 친구도 없어. 아마 바람 한 점만…… 그래, 바람 한 점만 불어도 날아가 버릴 거야.
난 연예인밖에 될 수 없어, 하뉴 모모카밖에 될 수 없지.
기획사에서 나를 버리고 킨베에가 날 광석병에 걸리게 한다 하더라도, 입막음을 위해 나를 죽인다 해도, 나는 하뉴 모모카야. 내 삶은 이럴 수밖에 없고.
긴 침묵이 흘렀다.
그…… 모모카, 짐 챙기자. 이제 가야 해.
킨베에 측 닌자가 언제 돌아올지 몰라. 카지마치로 가야 해.
응.
에기르는 눈물을 닦고 조용히 짐을 챙겼다.
모모카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호시구마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아직 눈물 자국이 남아있는 얼굴로 애써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내일 저녁에 하는 불꽃 축제 말인데, 같이 보러 갈래? 미츠쿠에에 온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도, 한 번도 불꽃 축제를 보러 간 적이 없었거든. 시간이…… 없어서.
일자리를 잃으면 불꽃 축제를 보러 강가로 가겠다고 늘 미오 씨한테 농담처럼 얘기했는데. 지금은……
지금의 나는…… 그러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모카의 얼굴에 그나마 남아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아마 이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질문인지 알고 있고, 누군가 말을 끊어주길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호시구마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덤벼! 다시 덤비라니까?!
킨베에 그 자식이 얼마를 줬길래 그래? 내가 2배로 줄 테니까 킨베에의 흰 꼬리를 잘라 와. 마침, 이 옷에 포인트를 줄 수 있는 벨트가 필요했거든……
그 거지 같은 것 좀 그만 던져! 도대체 뭐가 들었길래 자꾸 던지는 거야? 킨베에의 수영복 화보라도 들었어? 도대체 얼마나 꼴사나운 게 들었길래 사방으로 막 던지는 거야?
입조심해라.
어쩔 건데!
불발이라고?!
아얏!
오른손도…… 말을 안 들어……
위인들의 사세구를 생각해 보자, 뭐였더라? '인생오십년'이었나? 근데 난 그만큼 오래 살지도 못했는데……
헛소리는 그만둬라. 원래는 사장님에게 데려가기만 할 생각이었지만, 지금 보니 네가 사라지면 미츠쿠에가 훨씬 깨끗해질 것 같군.
하하, 영광이네……
저승길에서는 얌전히 있어, 외로운 원귀가 되고 싶지 않다면……
뭐야?!
……쇼기 말로 내 칼을 부수다니?!
텟사이 영감님, 조심해. 저 녀석들, 보통이 아니야!
노인네, 이거나 먹어라!
닌자는 텟사이를 향해 소리쳤지만, 바닥에 쓰러진 키치세이를 향해 부러진 칼을 던졌다.
그리고 키치세이는 처음으로 텟사이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텟사이의 철부채는 갑자기 자력이라도 생긴 것처럼 부러진 칼을 부채의 손잡이 옆으로 끌어당겼고, 텟사이가 철부채를 휘두르자 부러진 칼이 한 바퀴 돌더니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크윽!
영, 영감님…… 살려줘서 고마워.
일어나거라. 내일도 가게를 보려면 가서 자야지.
응……
발소리가 들려! 동료들이 온 건가?
호시구마랑…… 모모카잖아! 두 사람 다 괜찮아?
모모카, 울었어?
괜찮아.
키치세이, 너……
텟사이 영감님이 날 구해주지 않았다면, 난 무사하지 못했을 거야.
텟사이 아저씨, 여기 있는 모모카 씨가 지금 킨베에 사람한테 쫓기고 있어. 갈 곳이 없는 상황이라, 잠깐 카지마치에 피신하려고 하는데……
좋은 거 같아! 텟사이 영감님 파친코는 엄청 크니까, 우리……
키치세이는 텟사이를 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노인의 표정이 밝지 않은 걸 보자마자 급하게 말을 바꿨다.
그, 그러니까, 위층에 숨어있어도 된다는 거야! 내 가게에!
흥. 알아서 하거라.
고마워, 텟사이 영감님! 지금 바로……
잠깐만. 이 아이를 대놓고 데리고 다닌다는 건, 내 귀한 아들을 아예 무시하는 것 같구나.
테츠야…… 말하는 거야?
그 녀석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다. 녀석이 떠나기 전까지 우리 집에 숨어 있거라.
……어차피 그곳으로는 오지 않을 테니까.
후우. 어쨌든 일단 집으로 가서……
테츠야?!
아, '키치세이'는 오늘 영업 안 해. 내가 집에 없는 틈에 들어와서 뭘 하려는 거야?
아, 그게……
미안! 호쿠인의 스파이를 찾고 있었거든, 근데 아직 이 집을 보진 않아서……
이 집에 있는 건 나 혼자야, 내가 스파이 같아?
……
잠깐만. 다쳤어? 설마 호쿠인……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호쿠인 스파이가 날 왜 공격해? 다른 사람이랑 싸운 거야.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져.
아니면 내가 치료해 줄까?
그러고 보니 킨베에 밑에서 일하기 전에는, 검호가 등장하는 만화를 보고 왔는지 갑자기 의학 공부를 열심히 했었지. 마을에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꼭 치료해 주고 싶어 했고……
뭐, 해봐. 실력이 늘었는지 한번 보자.
쯧, 누가 이렇게까지 다치게 만든 거야? 자칫하면 관통상이 될 뻔했어.
킨베에라고 하면 믿을 거야?
키치세이, 미후네 씨한테 그렇게까지 적대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미후네 씨도 모두를 위해 그렇게 행동하는 거니까.
다른 사람은 차치하고, 일단 너부터 얘기하자. 너희 어머니가 그런 일을 당한 뒤, 넌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서는 검호가 돼서 어머니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했잖아.
근데, 일단 억울함을 풀어주는 건 둘째 치자고, 카지마치가 재개발되면 넌 어디서 검호를 하겠다는 건데? 사치품 쇼윈도에서?
그때쯤이면 난 이미 떠났을 거야. 난 너희와 한가로이 보상금 같은 걸 누릴 생각도 없고, 내가 사익을 위해 킨베에 일을 도와줬던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싫어.
우와, 이 세상에 너처럼 멍청한 사람이 또 있을까?
농담 아니야, 내 몸에 난 상처들은 다 킨베에가 보낸 사람들이 낸 거야! 너희 아빠가 나서지 않았다면, 난 지금쯤 죽어 있었을 거고!
……뭐라고?
아얏!
미안해! 하지만…… 뭔가 이상해. 미후네 씨가 왜 너를 죽이려 하는데? 분명 뭔가 오해가 있는 거겠지!
오해라고? 내가 신사에서 호시구마를 만나고 오는 길에 미후네 쪽 사람이 계속 쫓아왔어. 이게 뭐가 오해라는 건데?
내, 내가 가볼게! 정말 무슨 일 때문에 미후네 씨가 네게 화가 난 거라면, 내가 가서 말해볼게!
네가 뭐 킨베에의 아들이라도 돼?
……
……너, 정말 구제 불능이구나? 지금 네 입에다 총을 쑤셔 넣고 싶은 심정이야.
남은 건 내가 할 테니까 얼른 가. 네 얼굴에 한 방 먹이기 전에.
……멍청하기는.
이게 바로 괴담들의 진실이라고?!
그렇다면 오래된 저택은? 시마스, 사노구치…… 그자들도 킨베에 녀석 손에 죽었다는 거냐?
엄밀히 따지면, 사노구치 말고는 증거가 없어.
모리우치 녀석이랑 모모카, 그리고 그 '신명'이라는 자는 증거라도 있다는 거냐?
그리고 20년 전에 네가 의원 후보를 죽였다는 증거는, 그건 있느냐?
나는……
그날 밤의 일이 잊히지 않아.
넌 피투성이가 된 채로 아무 말도 없이, 이 저택의 문 앞에 꼿꼿이 서 있었지.
난 네가 킨베에를 막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넌 내게 의원 후보를 죽였다고 했지.
킨베에를 막는 과정에서, 실수로 녀석의 부하와 너와 친했던 슈지를 죽이게 됐고, 이후 완전히 이성을 잃고 무차별적으로 죽이기 시작했다……
네가 제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의원 후보를 죽인 다음이었지.
그걸 네가 했다는 것을 누가 증명할 수 있지? 이성을 잃었던 네가 증인이라도 되겠다는 거냐?
……
시마스와 다른 녀석들이 미후네에게 죽은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무슨 근거로 의원 후보를 네가 죽였다고 말하는 게냐?
그거야……
당시 회장 후계자에 관련된 일 때문에 소리 없이 움직이던 녀석들이 있었고, 너는 형제를 죽였기 때문이지. 그것도 1명이 아니었어.
자신의 형제를 죽인 자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너도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지.
그 의원 후보는 정말 죽은 게 맞다. 게다가 나는 킨베에 보다 너를 훨씬 아꼈지, 그래서 너를 밀어내야만 내가 중립적이라는 것을 표명할 수 있었다.
킨베에는 유능한 간부였으니, 킨세키가이가 업종을 전환하는 데 필요한 많은 일을 도맡았지. 그때까지만 해도 성실한 아이였어. 너처럼 주먹질밖에 모르는 녀석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건 전부 네가 다음 날 정신을 차린 뒤 해준 말이야. 다 맞는 말이지, 대의를 위한 일이었고. 당시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어.
하지만 그것들이 의원 후보를 죽인 일과 관련이 있느냐?
그래서 마지막에 솔직하게 말하라고 했던 거다. 그 코레토라는 성을 가진 의원을 정말로 네가 죽였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맞으면 맞다고, 아니면 아니라고 대답하라고 했지.
그리고 네 대답은…… '맞다'였지.
……
그 후에는 너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행방불명으로 처리했다. 죄책감에 자살했다는 식으로 꾸미고 몰래 용문으로 보냈던 거다.
하지만 거짓말은 다른 거짓말로 덮어야 하는 법. 네가 그 의원 후보를 죽인 거라면, 킨베에와 녀석의 부하들은 그 의원을 지키는 셈이 되는 거다…… 그 후, 모든 일은 엉망진창이 됐지.
이제 다시 물어보마, 호시구마, 정말로 그 후보를 죽인 게 네가 맞느냐?
그래, 그렇다면 내가 더 불평할 건 없겠구나. 네가 일을 저지른 뒤로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왔다. 킨세키가이가 이 지경까지 온 건 내 책임이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텟사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빛나는 눈동자로 호시구마의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텟사이 아저씨, 내가 극동으로 돌아올 때 마음속엔 오직 한가지 생각뿐이었어. 그때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기를 바랐고, 킨세키가이에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랐어.
하지만 내가 틀렸어. 그것도 완전히.
네가 죽인 게 아니라고 인정하는 거냐?
아니, 나는……
모르겠어.
그때의 난 이성을 잃은 상태였고, 베고 죽이는 것밖에 몰랐어. 실수로 슈지를 죽인 순간부터 의원의 시체가 눈앞에 나타나기까지의 일들은 전혀 기억이 안 나.
그런데 어째서 '맞다'라고 대답했지?
……
호시구마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자신의 오래된 저택 쪽을 바라봤다.
네 아빠 때문에?!
아빠, 왜 여기 있어?
주변에…… 나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쓰러져 있지? 다 아빠가 죽인 거야?
괜찮아. 카지마치는 안전해. 텟사이 아저씨랑 사람들이 아빠를 찾고 있어……
저, 저건 세츠코 아줌마잖아?! 그리고 키누에 할머니도…… 어째서 나쁜 사람들한테 살해당한 거야? 테츠야 오빠까지?!
아빠, 가자. 이 일을 텟사이 아저씨한테 말해야……
왜 칼을…… 나한테 겨눠?
텟사이 아저씨, 왔구나! 아빠가 이상해……
아빠?!
네 아빠가 그날 광기에 휩싸여 테츠야를 죽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세츠코와 내 어머니의 죽음이 네 아빠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게냐? 네 아빠는 그 사람들을 계속 지켜오지 않았더냐?
전부터 말하지 않았느냐. 테츠야…… 아니, 그 아이뿐만 아니라 네 아빠 일까지, 전부 그 떠도는 악귀들 탓이라고! 악귀들만 아니었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게다!
백번 양보해서, 내가 언제 네 아빠가 나한테 했던 일까지 너더러 책임지라고 했느냐!!
내가 대신 책임지려는 게 아니야.
난 그저, 그때 나와 아빠가…… 똑같은 상태였다는 것만 알고 있어.
의원 후보를 죽인 사람은 나 아니면 킨베에야. 다른 사람일 수는 없어.
하지만, 내가 아니라고는 단언할 수 없어.
이러한 날들이 계속된다면 나도 그 사람처럼 되어버리겠지.
연로한 오니가 탁자 위에서 쇼기 말 하나를 집어 들더니, 바닥으로 힘껏 내던졌다. 그렇게 쇼기 말은 두 동강 났다.
그래, 난 네 아빠를 원망하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너는, 너는 내 딸만큼 소중한 사람이다!
내가 누구를 생각하면서 반야에 있는 오니 얼굴을 만들었는지 아느냐? 어째서 네가 가기 전에 그 방패를 너에게 줬는지 알고 있느냐?!
애초에 반야를 만들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다 너 때문이었다. 난 네가 네 아빠처럼 잘못된 길을 걷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으니까!
내가 재료와 기술을 사 왔던 몰락한 공가의 조상들은 무기를 좋아했고, 많은 전설을 남겼지.
이야기에 의하면, 그들은 사원에서 비법을 훔쳤고, 그렇게 단조한 무기는 날카로울 뿐만 아니라 비법으로 오니족의 광기도 누를 수 있다고 했다.
무기가 만들어지기 전, 그 비법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술은 정말 좋다는 게 느껴지더구나. 그 당시에도 난 그 방패가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문제가 생겼지.
……손잡이?
그래, 손잡이다.
그 비법이라는 것에 따르면, 어떤 무기를 만들든 손바닥과 맞닿는 부분은 반드시 무기를 쥘 자가 맨손으로 잡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을 때까지 직접 다듬어야 한다고 되어 있었지.
충동적으로 돈을 쓰긴 했지만, 그때쯤 되니 정신이 확 들더구나…… 결국 스스로 수양하라는 뜻 아니겠느냐?
단순한 고철 덩어리를 그 정도까지 만들어야 한다면 말이다. 그 정도의 심성, 정신을 가진 자에게 과연 비법 따위가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그래서 난 그 방패를 네게 못 주고 있었다. 그러니 내부가 뒤숭숭해졌고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던 자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지.
그 시기에는 내부에서 갈등이 잦았다. '거물'들이 서로를 몰아내려 했고, 그 불똥은 안 그래도 힘들었던 부하들에게 튄 것도 모자라, 카지마치에 거주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튀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날 밤의 일이 일어난 거다.
호시구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건 다 업보다. 그래, 업보다!
옳든 그르든, 상황은 이미 이렇게 돼 버렸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
용문에서는 잘 지냈느냐?
잘 지냈던 게 아니라면, 물건을 챙겨서 킨베에랑 끝장을 보러 가자꾸나. 나랑 네 아빠는 그래도 무가의 마지막 자손인데, 죽더라도 가치 있게 죽어야겠지.
만약 잘 지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 킨베에 일에 끼어들지 말고 지금 당장 떠나라. 이건 네 아빠가 나한테 잘못한 거지, 네 잘못이 아니니까.
더 이상 대의를 위해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 말거라. 너는 그럴 필요가 없다.
……
나는 용문에서……
……잘 지냈어.
텟사이는 호시구마가 오늘 밤 처음으로 자신과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는 걸 느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하지만 함께할게.
굳이?
이게 정말 전부 업보라면, 용문으로 돌아가기 전에 직접 끝을 봐야겠어.
……알겠다.
반야를 다오.
어떻게 수리할지 결정했어?
너와 그 모모카라는 아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지만 않았어도, 진작 네게 수리된 반야를 건넸을 거다.
이 붕대는 뭐지?
용문 친구들이 준 선물이야. 계속 사용하고 있었어.
자, 여기 있다. 안 되는 걸 알고 물러서서 다음을 기약하는 것도 너한테는 큰 발전이다. 그런 네가, 수리한 반야를 가진다면, 적소에 또 질 일은 없게 되겠지.
반야가 수리된 건 좋은 일이지만…… 구해야 할 사람이 있어. 내 실수로 모리우치가 킨베에한테 잡혔거든.
그 어묵 파는 정보상 말이냐?
반야의 수리를 더 미룰 수는 없다.
괴담은 킨베에가 꾸며낸 일이야. 아저씨, 나, 모모카 그리고…… 신명이랑 모리우치가 그걸 알고 있어. 킨베에가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모리우치가 위험에 빠진 것도 나랑 연관이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도와줘야 해. 그것도 최대한 빨리.
손이 허전하다면, 이걸 가져가거라.
노인은 뒤편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서 먼지가 얇게 쌓인 상자를 끌고 나왔다.
텟사이 아저씨, 이 상자는……?
네 예전 복장과 칼이 전부 여기 들어있다. 매년 꺼내서 햇빛에 말리고 손질해 뒀으니, 아마 아직 쓸만하겠지.
……
그래, 이건 그날 밤 네가 갖고 갔던 그 칼이다. 들어보거라.
20년 동안 실력이 조금이라도 늘어났다면, 이 칼을 가져가라.
……알겠어.
여전히 당차구나.
저번에 봤을 때부터 궁금했다. 용문에서 대체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게냐?
조직원이라고 하기엔 옷이 너무 평범하고, 조직을 떠났다고 하기엔 싸움을 자주 했던 것 같구나.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아, 용문에서 경찰 일을 하고 있어.
……
뭐라고?
용문근위국에서 일하고 있어. 용문 경찰이야.
네가 경…… 푸웁, 푸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 그런 거였구나. 어쩐지 네가 이 방에 들어오면 경찰 냄새가 진동을 하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