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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시어셔는 사윈을 기념하는 축제의 분위기로 가득하지만, 로흐시니는 이상함을 감지한다. 조각상, '연회', 숨겨진 증오…… 이번 여정에서 본 것들은 자신을 언니와의 재회로 이끌었고, 이어서 온 도시를 뒤덮은 보랏빛 불꽃을 보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브리지드, 리드 더 플레임 섀도우, 네크라스
호외, 호외!
빅토리아, 싸우지 않고 철수!
타라의 영토, 전부 광복!
사윈 축제를 앞두고, 타라 전역에 평화가 찾아온다!
차 세워.
당신이 곧바로 전하를 뵈러 갈 수 있도록 호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언니와 만나기 전에 직접 봐야겠어. 언니의 도시, 전후의 타라, 그리고 생존자와 평범한 사람들…… 이제야 그들의 삶이 시작된 건지.
……그렇게까지 하시겠다면, 좋습니다.
하지만 타라인들은 아직 두 붉은 용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도 알아.
그냥…… 그냥 받아줘!
칼, 도끼…… 그리고 그릇들. 모두 철이야, 최상급 철로 만들었어.
부탁이야, 쿨란. 그걸 녹여서 우리의 조각상에 눈이라도 달아줄 수 있는 거잖아?
가을의 끝자락, 나 시어셔의 새벽은 춥고 축축했다.
상처투성이인 큰 손이 온기 하나 없는 철기를 쓰다듬고 있었다. 마치 전쟁 중 공로를 치하하는 훈장의 끈을 쓰다듬듯이.
사람들은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며 손에 든 낡고 망가진 철 덩어리가 조각상의 재료가 되기를, 영웅이 만드는 조각상에 녹아들길 희망했다.
영웅, 그렇다. 영웅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이런 영웅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테오, 테오! 와서 도와줘, 공방에 물건 좀 가져다줘!
테오, 이리 와! 저녁에 시간 내서 네 칼을 더 날카롭게 가는 법을 알려줄게!
그 녀석은 게으름 피울 줄밖에 모른다니까. 아주 응석받이가 됐어.
……
아니, 내 말은 테오 그 녀석이 있든 없든 일단 이 물건 좀 받으라고!
안 돼. 그건 전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잖아. 네 의족은 말할 것도 없고.
난……
근데 멀쩡히 잘 서 있잖아?
네모스가 만든 나무 의족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야. 도시에서 더 훌륭한 기능공이 와서 네 의족을 제대로 고쳐 줄 거야.
넌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조각상을 만들고 있잖아. 그건 사윈에 도시 중심의 광장에 놓이겠지!
쇠로 된 내 의족을 승리의 빛을 더하는 데 쓰겠다는데, 안 된다는 거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쿨란, 그냥 받아줘. 이 물건들은 전부 집 청소하면서 정리한 오래된 물건들이야. 이젠 쓸모없어.
식기들이 왜 쓸모가 없어?
철그릇이 없으면 자기 그릇을 쓰면 되고, 칼이나 도끼는 빌려서 같이 쓰면 되니까.
이제 막 전쟁이 끝난 참이라 도시에는 부족한 것 천지야. 우리가 널 도와주지 않으면, 조각상이 미완성인 채로 남을 텐데, 그걸 우리가 두고 볼 수 있겠어?
……
아무리 그래도 의족은 받을 수 없어.
넌 정말 훌륭한 데다 나의 영웅이기도 하지만, 융통성은 정말 부족하네!
로흐시니가 천천히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로흐시니는 왠지 모르게 자신과 이 사람들 사이에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모닥불 너머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다들 여기서 뭐 해?
못 보던 얼굴이네? 요즘은 보기 드문데! 와이번, 어디서 왔어?
아주 먼 곳에서 타라로 돌아왔어.
쿨란, 이것 봐. 네가 이 물건들을 진작에 받았으면 멀리서 온 동포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내 대답은 똑같아. 다른 건 몰라도, 의족은 안 돼.
왜 모두 부엌살림에…… 의족까지 다 내놓고 있는 거야?
사윈 때, 광장에 조각상을 세워서 타라의 새로운 탄생을 축하하려고 해.
사윈을 기념할 생각이야?
타라의 전설 속에서 그 이름을 들어 본 적 있어. 가을의 수확을 마치고 겨울이 오기 전에 열리는 축제,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날.
많이 알고 있네, 와이번!
모두 가을 수확을 끝내고 풍요로움을 축하해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더블린 출신이 우리에게 이 축제의 유래에 대해 알려줬네.
집을 청소하고, 연회를 벌여 손님을 대접하는 거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모닥불을 피우는 거지. 생명과 죽음이 교차하는 날, 연회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을 대접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정말 많다고!
게다가, 이번 사윈은 타라가 새롭게 태어난 이후 맞는 첫 축제야. 그래서 더 성대하게 치러야 한다고.
정말 다행이야. 만약 성대하게 치르는 게 아니었다면, 쿨란은 자신의 집을 부숴가면서까지 우리의 물건을 받으려 하진 않았을 테니까.
말이 나왔으니, 너도 철로 만든 물건을 영웅에게 줘서 조각상을 만드는 데 보태도록 하는 게 어때?
내가 가진 건 책갈피밖에 없어. 철로 만든 것 같긴 한데 이것도 괜찮아?
이 사람에겐 결정권이 없어, 돌아온 동포 씨.
아하하……
어떤 조각상을 만들고 있어?
붉은 용의 조각상. 타라의 새로운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거야.
붉은 용……
쿨란, 내 의족을 받아 주지 않으면…… 오늘 여기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일 거야!
널 둘러업고 가면 되지.
참나, 답답한 사람아! 생각해 봐. 사윈을 지내고 조각상을 세우면 우린 좋은 날을 보내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새로운 의족을 만들고 싶은 만큼 만들면 돼.
거대한 붉은 용 조각상이 어둠 속에 우뚝 서 있으면, 겨울이 되어도 불꽃은 마치 전설처럼 영원히 꺼지지 않고, 사람을 집어삼키는 모든 안개를 내쫓을 만큼 타오를 테고……
그 빌어먹을 야간 통행금지를 더는 지킬 필요도……
야간 통행금지는 붉은 용이 내린 명령이야,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나도 알아, 당연히 알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조각상에 필요한 쓸만한 물건들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몰려들었다. 작은 골목길이 꽉 막혀 오도 가도 못할 지경이었다.
쿨란은 인내심 있게 일일이 대응했고, 발밑에는 물건이 점점 더 많이 쌓여갔다. 사람의 품이 아무리 넓어도 이 뜨거운 호의를 한 번에 안고 가긴 힘들 것 같았다.
쿨란, 내가 도와줄게.
아니야, 괜찮아. 내 제자 테오를 부르면……
아직도 테오 얘기를 하는 거야? 도대체 어디에서 농땡이 피우고 있는 건지, 앞에서는 뭐든 할 것처럼 말하더니만 결국 먹는 거랑 게으름 피울 줄만 아는 녀석이라고. 하여튼 전형적인 빅토리아인이라니까.
테오의 부모님은 테오가 어릴 적에 세상을 떠났어. 테오가 빅토리아가 뭔지 알기나 할까?
……
거기 동포, 이름이 어떻게 돼?
리드라고 해.
리드, 머물 곳은 있어? 괜찮다면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어도 돼. 그렇게 하면 야간 통행금지 시간에 거리를 배회하지 않아도 되잖아.
머물 곳은 있을 거야. 그런데, 야간 통행금지라니…… 도시에 아직 소등종이 있기라도 한 거야?
빅토리아의 소등종은 타라인을 억압하기 위해 존재했던 거고, 지금 나 시어셔에 있는 야간 통행금지는 우리를 지키기 위한 거야. 목적이 달라.
검은 숲에 있는 자욱한 검은 안개가 나 시어셔 전역을 지켜주고 있지만, 가끔 검은 안개가 도시의 거리까지 들어오기도 해.
야간 통행금지는 검은 안개로부터 모두를 지키기 위한 조치야. 검은 안개는 누구의 무례함도 허락하지 않지. 허락 없이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돼.
안개가 사람을 잡아먹기라도 해?
……내 정신 좀 봐, 먼 곳에서 돌아온 사람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서 뭐 하자는 건지. 어쨌든 금방 괜찮아질 거야.
날 따라와, 나 시어셔를 구경시켜 줄게.
하지만 조각상을 만든다던 저…… 쿨란이라는 저 사람은 어떻게 해? 오리지늄 아츠로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신경 쓰지 마! 쿨란은 검은 숲에서 홀로 빅토리아 선발 부대를 해치운 영웅이야. 안타깝게도 마지막에 마음이 약해졌지, 그렇지 않았다면 테오 그 녀석은 없었을 거야.
혼자서?
검은 숲에 있었으니까. 검은 숲은 늘 우리 타라인을 도와줬다고. 그나저나 리드, 왜 내 말을 끊는 거야?!
나랑 같이 가서 맥주로 목 좀 축이고 고기 스튜도 먹으면서 긴장 좀 풀고……
그리고 꼭 알아둬, 넌 정말 좋은 시기에 돌아왔다는 것을.
휴, 다행이다. 가게에 감자라도 남아있었다니……
큰일이다, 벌써 시간이!
뭐야, 도대체 누가 앞도 제대로 안 보고 다니는……
테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지금 빨리 돌아가야 해서요. 일부로 밟은 게 아니에요. 제가 깨끗이 닦아 드릴게요!
……너까지 날 무시하는 거야?
네? 아, 아니요.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오해하신 것 같은데, 그러니까 뭐라도 도와드릴 건 없는지……
오지 마!
남자는 손에 든 지팡이를 들어 올린 다음 테오의 가슴을 찌르며 힘껏 밀쳤다.
이른 아침의 안개로 울퉁불퉁한 돌바닥의 움푹 팬 곳에 물웅덩이가 만들어졌다. 테오는 무기력하게 그 웅덩이에 넘어졌다.
이 더러운 빅토리아 자식, 네가 뭔데 감히 나를 돕네 마네야?!
윽……!
손에 든 거 내려놔!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테오, 괜찮아?
브리지드 누나, 전 괜찮아요. 제가 먼저 부딪힌 거예요……
여기저기 떠도는 유목민과 한시도 가만히 못 있는 빅토리아 잡종이라니, 끼리끼리 잘 노네!
조상님의 얼굴에 먹칠을 잘도 하는구나, 브리지드.
뭐라고?
흥, 이 빅토리아 자식은 그렇다 치고, 넌 뭔데?
넌 추방된 왕의 후손이잖아. 타라인을 대신해 소식을 전하고 재앙을 예고하는 종족 출신이라고. 근데 어째서 이 녀석과 어울리는 거야?
전쟁 때도 똑같았어. 아군이 이기든 지든 신경 쓰지도 않았지. 그저 담담한 얼굴로 요새에 전보를 넘겼고, 필요도 없는 가족들이 보낸 편지는 꼬박꼬박 다 배달하고……
그런 너희를 타라인이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곳밖에 올 곳이 없었던 거야? 왜 곧바로 쿨란에게 안 갔어?
옷…… 옷을 깨끗하게 빤 다음 돌아갈 거예요. 금방 괜찮아질 테니 제 신경은 쓰지 마세요, 브리지드 누나.
내가 아니면 누가 널 챙기겠어? 난 널 찾으러 온 거야.
그리고 너도 참, 전쟁 중에 파괴돼서 아무도 재건하지 않는 이곳이 도대체 쿨란의 공방보다 뭐가 더 낫다는 거야? 최소한 그곳에는 화로도 있고, 따뜻한 음식이라도 있잖아.
그게 아니라…… 쿨란 님에게 더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부탁이에요, 오늘 있었던 일을 쿨란 님에게 말하지 말아 주세요. 옷을 깨끗하게 한 다음 곧장 돌아갈 거니까……
난 쿨란한테 안 가. 테오, 난 널 데려가려고 왔어.
데려간다고요? 쿨란 님이…… 누나에게 뭐라고 했나요?
그게 쿨란이랑 무슨 상관인데?
오늘 내가 오지 않았다면, 넌 반격도 못 하고 그냥 맞았겠지? 내 직감은 틀린 적이 없어. 네가 계속 도시에 머물렀다면 사람들은 계속 방법을 바꿔가면서 널 괴롭혔을 거야.
오늘은 웅덩이에 빠뜨려 널 때렸다면, 내일은 또 어떤 방법으로 널 못살게 굴까?
아무튼 나랑 같이 가자. 널 들판에 데려다줄게. 네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데려다줄게.
우리는 이 도시의 주민이 아니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일단 네모스가 살았던 곳으로 가자. 영혼수호자의 마을로 가서 한동안 지내자.
네모스 누나가 영혼수호자와 관련된 얘기를 많이 들려주긴 했어요. 그래서 정말 가보고 싶기는 해요……
그렇지만, 쿨란 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전 갈 수 없어요.
네모스 누나는 쿨란 님을 챙길 겨를이 없고, 붉은 용 조각상 역시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요. 이런 때에 제자인 저까지 빠져버린다면 쿨란 님 혼자서 어떻게 하겠어요?
어쨌든, 정말 고마워요. 브리지드 누나.
그럼, 쿨란한테 널 데려다준 다음 도시를 떠날게.
아니에요. 브리지드 누나, 지금 날이 추워서 옷이 마르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요. 전 조금 더 있다가 돌아갈 거예요.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저기 있는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 가서 좀 쉬면 돼요. 거긴 누가 남기고 간 이불도 있고, 전에도 거기서 지낸 적 있으니까 괜찮아요.
……정말 나와 함께 가고 싶지 않다면, 여기에 있어. 도시의 다른 어떤 곳보다도 안전할 테니까.
아무래도 쿨란도 널 자주 챙겨주진 못하는 것 같네?
쿨란 님은 더 중요한 일이 많으니, 제가 걱정을 덜어 드려야죠.
……
갈게, 몸 잘 챙겨.
도착했어!
네가 진짜 시기를 잘 맞춰 왔어. 오늘은 신선한 맥주, 고기 스튜, 그리고 오트밀 죽도 있어…… 모닥불이 없는 게 아쉽지만.
아직 사윈 시작 전이잖아.
전통에 따르면, 사윈이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모닥불을 피울 수 있어.
하지만 전쟁이 이제 막 끝난 참이고, 도시에는 여분의 연료가 없어. 게다가 검은 숲에서 마음대로 벌목할 수도 없는 데다가, 야간 통행금지령까지 떨어졌지.
뭐 어찌 됐든, 아직 날은 밝아. 태양이 바로 우리의 모닥불 아니겠어?!
말은 그만하고 빨리 앉자고, 네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
로흐시니는 앞으로 다가갔다. 축축한 찬 공기 속에서 테이블 위에 있는 푸짐해 보이는 음식들에서 하나같이 같은 냄새가 났다.
따뜻하고, 소박하고, 간단했지만…… 겉모습만 그럴싸한 것이었다.
로흐시니는 놀라움을 감추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게, 고기 스튜야?
그래. 이건 고기 스튜, 저건 린수 구이. 옆에 있는 컵에 담긴 건 맥주야. 참, 그리고 오트밀 죽도 있어. 내가 한 그릇 떠 줄게……
하지만……
하지만 이 요리들, 죄다 같은 식재료로 만들었잖아……
죄다 감자로 만든 거 아냐?
조각상은 식기, 모닥불은 태양, 연회는 감자.
주민이 '오트밀 죽'을 뜨러 간 사이 로흐시니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버든비스트차로 향했다.
전하께서 금방 돌아오실 겁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여긴……?
나 시어셔의 요새입니다. 옆에 있는 계단 위가 바로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이죠. 이곳은 전하께서 나 시어셔에 왕림하신 후 가장 자주 머무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촛불도, 악사도, 푸짐한 연회도 없어서 정말 다행이네.
설명해 드렸듯, 도시의 물자가 부족한 주요 원인은 빅토리아와 타라 사이의 무역 교류가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죠.
도시 주민들의 반응은 온전히 이해, 선의 그리고 타라에 대한 뜨거운 마음에서 비롯된……
에블라나 전하!
그만 가봐.
네!
로흐시니.
언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사람들이 풍요도, 모닥불도 없고 심지어 먹을 것이 감자밖에 없는 사윈 축제를 기념하려 하고 있어!
네가 날 만나러 온 이유가 '교관'이 했던 말을 내 입으로 또다시 반복하게 하려는 거라면, 오랜만에 만난 정을 봐서 못 할 것도 없지.
……
그보다, 난 네 창에 더 관심이 있는데. 어딨어?
창?
내게 준 그 창을 말하는 거라면, 그건 로도스 아일랜드의 창고에 고이 모셔져 있어. 난 이제 필요 없거든.
무기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권력을 쟁취한다는 거야? 권력은 차치하고, 언제든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난 '내게 준 창'이라고 했어.
……
……게다가, 언니는 날 못 죽여. 적어도 지금은.
간신히 영혼을 되찾은 꼭두각시잖아, 지겨워지기 전에 부수지는 않겠지.
그 말은 약간 상처가 될 것 같은데.
누구나 꼭두각시가 될 수 있겠지만, 넌 아니야, 로흐시니. 넌 차라리 내 그림자가 될지언정, 나랑 춤을 추지 않으려는 댄스 파트너지.
그리고, 아마 언니가 싫증을 냈던 게 한 1년 전쯤이었지?
……기억이 잘 안 나네.
물론, 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온 건 아니야. 그건 당연히 언니 거야.
오호?
언니는 타라 곳곳에 불을 지폈고, 타오른 불길은 타라인을 옥죄고 있던 사슬을 끊어냈어. 이건 사실이야.
그럼 넌 뭘 하러 돌아왔지?
지켜보러 왔어.
언니가 정말 권력을 이용해 타라인들이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면, 난 최선을 다할 거야.
도시의 물자 부족 문제에 대해 언니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면, 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의향이 있어.
붉은 용으로서 얼굴을 드러내든, 방금처럼 신분을 감추든 난 상관없어.
그 고상함은 변함이 없네, 로흐시니.
하지만 난 모르겠어……
……과연 언니가 이것으로 만족할지.
내가 아는 언니는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권력을 좇는 사람이 아니야. 언니는 분명 거기서 멈추지 않겠지.
하지만 언니가 걸어온 길은 언제나 시체와 피로 뒤덮여 있어……
나도 언니가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믿고 싶어.
그리고 창을 갖고 언니를 만나게 될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제법이네.
방황 생활을 하며 깨달은 것이 내 그림자였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 같아.
언니, 우리 더 이상 돌려서 말하지 말자. 난 내가 이곳에 온 의도에 대해 모두 말했어. 언니가 날 받아준 건, 설마 또 나한테 원하는 게 있어서야?
곧 알게 될 거야.
그 전에 우선 날 따라와, 붉은 용의 둥지를 보여줄게.
전설에 따르면, 설계사는 의도적으로 타라 왕성의 모양을 본떠 이 땅의 높낮이를 들쑥날쑥 설계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설에 따르면, 타라의 석공들은 건축물에 자신들의 정교한 기술을 최대한 사용했지만, 꼭두각시를 맞이하게 될 요새에는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로흐시니는 이런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자신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인지, 아니면 암벽을 비추는 그림자인지는 한 번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로흐시니는 언니를 따라 계단에 올라 자신의 두 눈으로 도시를 바라보았다.
로흐시니의 눈에 광장에 놓여 있는 빈 대좌가 들어왔다. 그건 마치 거대한 뭔가를 올려놓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로흐시니는 광장에서부터 뻗어 가는 구불구불한 자갈길과, 너무 사랑스러울 정도로 소박하게 지어진 석조 집을 보았다.
자세히 보기 위해 애쓰고 있던 중, 로흐시니는 자신과 주민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뭔가를 마침내 제대로 보게 되었다.
절대 이곳에 나타나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불?!
불이었다.
자세히 보니, 도시의 곳곳에서 대화하고, 뛰어다니고, 소리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주민들 몸에 작은 불꽃이 보였다.
보랏빛 죽음의 불꽃이었다.
도시 주민들에게 무슨 짓을 했지? 사람들을 죽은 자로 만든 거야?!
너는 방금 저 사람들과 함께 있었어.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
불꽃은 번지는 법이지.
언니가 가진 죽음의 불꽃이 산 자에게 번져선 안 돼.
애석하게도, 사람이 있는 곳에는 죽음이 있어. 그게 전장이든 소란스러운 도시든 말이야. 불꽃은 그저 죽음을 앞당길 뿐이지.
하지만 인정할게, 난 그 사실이 못마땅해.
죽은 자는 생전의 욕망에 기댄 채 광야를 떠돌고, 살아있지만 죽음의 불꽃에 물들어버린 자는 진정한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없게 돼…… 삶과 죽음이 이렇게 뒤섞이고, 서로를 모욕하는 일이 계속되어선 안 돼.
언니가 했던 일이 아니었다는 거야?
죽음은 내가 다스리는 것이 되어야 해. 내가 별로 개입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멋대로 파괴하는 게 아니라.
……
그렇다면, 내 귀여운 동생 로흐시니의 의견은 어떤지 물어보고 싶네. 넌 타라가 어디로 가길 원해?
산 자는 남기고 죽은 자를 잠들게 할까, 아니면 타라 전체를 죽음의 나라로 전락시킬까?
……뻔한 걸 굳이 물어보지 마.
그렇다면 네가 할 일은 아주 간단해.
날 죽여, 로흐시니.
뭐라고?!
네가 사람들을 데리고 길을 나섰을 때, 난 많은 것들을 준비했어.
너의 창끝이 내 심장을 찌르고, 죽음이 나를 감싸는 그 순간, 죽음의 불꽃에 물든 모든 것이 나와 함께 사라질 거야.
그리고, 넌 수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타라 역사상 유일무이한 리더가 될 거야.
……난 다시는 언니의 그림자가 되지 않을 거야. 붉은 용이 세상의 비난을 받으면 안 되는 것처럼, 가족끼리 광기의 살육을 벌이는 건 안 돼.
서로를 죽이는 것과 고상한 품성은 모순되지 않아.
그렇다면, 죽음의 불꽃에 물든 산 자들이 다시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언니가 약속했던 것처럼?
난 삶과 관련된 그 무엇도 약속한 적 없어, 로흐시니. 죽음의 불꽃에 물들지 않은 사람 역시 마찬가지야.
도시 사람들은 이미 보랏빛 불꽃에 전염되었어. 그들은 점점 네가 봤던 좀비처럼 변하겠지, 그리고 곧 나와 함께 사라질 거야. 다른 가능성은 없어.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이야! 언니를 따라서, 언니를 위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람들이라고. 그들에겐 새로운 삶을 시작할 권리가 있어!
이건 단지 불행한 숙명일 뿐이야.
절대 안 돼, 에블라나. 절대.
그렇다면 네게 다른 방도가 있을까, 로흐시니?
로흐시니는 더 말하고 싶었지만, 에블라나는 이미 몸을 돌려 긴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발걸음 소리가 너무 희미했던 탓에 로흐시니는 순간적으로 언니가 떠났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언니의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뒤, 로흐시니는 다시 도시를 바라봤다.
로흐시니는 이 모든 것이 에블라나가 만든 속임수이길 간절히 바랐지만…… 불꽃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다.
로흐시니는 주먹을 꽉 쥐고, 후드를 뒤집어쓰고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