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ST3언더 프레셔
해변가를 거닐며 박사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게 된 실론은, 드디어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같이…… 좀 걸으시겠어요?
- 걱정되는군.
알고 계신가요? 제가 어릴 적엔 이 해변에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자주 홀로 여기서 모래성을 쌓곤 했었죠.
……이 도시는 저희 아버지의 관리하에, 해를 거듭할 수록 훌륭한 도시가 되었지만,
저와 아버지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거의 대화가 없었어요.
줄곧, 아버지에겐 저와 얘길 하는 것보단, 도시나 돈 버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했었답니다.
어머니께선 제가 태어날 때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가끔 생각하죠. 아버지께서 절 좋아하지 않는 건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하고……
아버지께선 제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 같았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께선 집에 안 계셨던 때가 많다 보니, 부녀라기보다는, 그저 한집에 사는 낯선 사람 같았죠.
슈바르츠, 나가서 해변의 생태를 관찰하고 올게!
안됩니다, 아가씨. 주인님께서 분부하셨습니다. 함부로 외출하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집 안의 책은 이미 질리도록 봤는걸! 슈바르츠랑 같이 있는 건 재미없고 말이야.
죄송합니다. 아가씨, 전부 아가씨의 안전을 위한 겁니다. 밖은 너무 위험합니다.
네가 있잖아. 설마 네가 나를 위험에 빠뜨린단 거야?
……물론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럼 문제없잖아? 가자!
……그럼, 절대 제 시야에서 벗어나지 말아 주십시오.
슈바르츠가 제 삶의 일부였습니다. 그녀가 제 곁에 있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죠.
서둘러. 이 장식은 오늘 밤 라이브 때 쓸 거니까.
이거 늦으면 골치 아파진다. 빨리 끝내 놔!
아, 저분은……
기억이 맞다면, 2번 대로에 있는 '카페 로빈' 의 주인 할아버지 손자분이신 거 같은데.
예전엔 저 카페에 자주 들렀었어요. 주인 할아버지께서 정말 상냥하셨었는데… 가게엔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생전에 좋아하셨던 꽃이랑 분재가 놓여있었고, 두 분께서 좋아했던 음악이 늘 흘러나왔었죠.
그러고 보니, 몸이 안 좋아지셔서 손자에게 가게를 넘겨준다 하셨었는데…
시간 참 빠르네요.
왜?
제가 광석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아가씨.
저와 가까이 있으면 좋지 않사오니, 필요할 때만 불러주시면 되겠습니다.
그게 뭔데? 많이 아픈 거야?
……아프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병에 걸리면 죽게 됩니다.
불치병이라고 하더군요. 아가씨.
게다가……
그런 거 따위, 내가 고쳐줄게!
흥, 기다려! 광석병 따위, 내가 쓰러뜨릴 거야! 슈바르츠를 낫게 해줄게, 반드시.
제가 오리지늄을 연구하고자 하는 건, 감염자가 된 슈바르츠를 치료해주고 싶어서 입니다.
빅토리아로 유학을 가서도 제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바로 슈바르츠 때문이었죠.
오리지늄 연구는 저에겐 너무 난해하고 어려워서, 처음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답니다.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결국 버텨냈죠.
빅토리아는 정말 멀고도 다른 곳이었어요. 처음에는 전혀 빅토리아 생활에 전혀 적응하지 못 했지만…
이제와서 보니, 전 시에스타보다는 빅토리아 사람에 더 가까워져 있더군요.
박사, 제가 가진 모든 것은, 혹시 가짜였던 걸까요?
이곳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전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 나도 모르겠다.
- 어쩌면, 그녀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후우…… 그러네요. 박사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저한테도 말 못할 고충이 있었다 이건가요?
게다가 어떤 고충이 있었다고 해도, 나쁜 일을 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요.
박사, 전 포기해야 할까요?
- 그간의 일만 가지고 대답을 주기는 어렵다……
- 하지만 내가 아는 건, 너 또한 오리지늄을 연구하는 학자라는 거다.
우리는 광석병을 이길 수 있을까?
우리는 광석병 환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이 재앙에는 끝이 있을까?
끝이 보이지 않아. 감조차 오지 않아. 난 답을 모르겠어.
포기해도 되나? 포기해도 되겠지.
하지만, 포기하고 싶진 않아.
- 어쩌면 이 땅은 정말 많이 망가져 있는지도 몰라……
- 하지만 네가 해낸 모든 것은, 결코 헛수고가 아니다.
- 너 자신의 선택을 믿어.
……후우, 당신 말이 맞아요, 박사.
역시 선배는 선배네요. 이쪽으론 아직 배울 게 많은 가봐요.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은, 밖으로 나가 증거를 수집하는 거겠죠. 여기서 잡생각이나 할 게 아니라.
만약 그들이 정말로 시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려 하고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내겠어요!
전 제가 옳다는 걸 믿으니까요! 설령 아무도 저와 함께하지 않는다고 해도, 전 반드시 이 도시를 구해내겠어요!
좋은 각오이지 않은가.
아, 헬라그 할아버님.
보아하니, 마음은 잘 추스른 것 같군.
네. 박사, 제 말을 들어주실 수 있나요.
상황이 어떻든, 전 시에스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지금의 제겐, 이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죠.
개리슨 놀이공원 옆에 시에스타에서 가장 큰 방송국이 있어요. 도시 전체의 라디오 시스템은 전부 그곳에서 운영하죠.
방송국?
하지만, 그곳 또한 크로닌의 관할 구역이에요. 그도 종종 라디오를 통해 온 도시에 영향력을 행사하죠.
라이브가 시작될 때 사람들이 모여들면, 크로닌 씨의 부하들도 우리를 찾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때 방송국을 제어할 수 있게 되면, 온 도시의 사람들에게 화산에 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부탁합니다, 여러분, 저에게 힘을 빌려주세요.